'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6.10.21 일단 탈출 7
  2. 2016.10.16 편견 3
  3. 2016.10.13 여권 6
  4. 2016.10.08 어색함 5
  5. 2016.09.29 홍옥 9
  6. 2016.09.21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2
  7. 2016.07.29 물음표 3
  8. 2016.07.02 다시 개판 4
  9. 2016.06.14 황당하다 18
  10. 2016.06.01 빌어먹을 6

일단 탈출

투덜일기 2016. 10. 21. 16:47

출판쪽 일 끊겨서 백수 됐다고 징징거리는 포스팅으로 여러 이웃의 위로를 받았으니 좋은 소식도 제일 먼저 여기에다 알려야 예의일 것 같다. ^^; 넉달 반만에 드디어 (책 번역 의뢰로 치면 거의 1년만의 희소식인듯) 책을 번역하기로 계약을 마쳤다. 휴우. 일단 안도의 한숨.

업계 지인들이 그간 내게 많은 조언을 했었다. 일단 몸값을 낮춰! 거래하던 출판사 담당자들이나 아는 출판사 사장님들한테 일 달라고 전화를 돌려! 아마존을 뒤져서 쓸만한 책 찾아 기획번역을 해! 등등... 하지만 겁쟁이인 나는 마냥 자괴감에 빠져 적극적인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그나마 옛날 영화 번역이라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감사한 일이다, 겸허하게 마음 먹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이 길로 망하면 과연 다른 직업으론 뭐가 좋을까 막연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편이었다. 주변에 1년씩 멍하니 기다려봐도 일감이 없어 부업하는 번역자들이 좀 많아야지. ㅠ.ㅠ 

이 업계도 빈익빈부익부여서, 출판사 편집자들도 번역가들의 최신 프로필을 온라인으로 살펴서 어떤 책을 작업했었나 최근엔 무슨 책이 나오나 근황을 확인하고 일감을 의뢰하기 때문에 만약 몇년 일 없이 논 사람으로 찍히면, 실력이 없든 성실함이 떨어지든 개인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어서 일을 못하든 사정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쉽다. 그럼 완전히 도태되는 수밖에. 나 역시 그럴까봐 겁이 났던 거다. 그나마 올 상반기에 번역해서 넘긴 책은 뿌리 깊은 불황으로 출간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니... 결과론적으로 난 올해 지금까지 딱 두 권의 책 밖에 못 낸 사람이다. 뭔가 퇴물 일보 직전의 느낌이 아닌가!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불황도 불황이려니와 최근 몇년간 마감일을 엄청 넘기며 불성실하게 굴었던 나의 게으름 탓이 다분할 것이다. 뭐든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문제가 발생하진 않으니까. +_+ 그러나 글줄로 밥먹는 사람들, 아니 인문학 관련 종사자 전체를 통틀어 마감 잘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으려나? 라는 핑계를 대며 단기 작업을 해야하는 요새도 며칠씩 마감을 어기고 담당자에게 늘 죄송하고 민망해한다. 아주 고질병이다. 다들 그런다고 해서 그게 옳은 건 절대 아닌데... 매번 애 먹이는 번역자에게 또 일을 맡겨준 분들에게 고맙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료는 고집 안부렸음. ㅎㅎ

재미 있는 건 이번에 맡은 소설도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외국이든 한국이든 요즘 웬만한 재미있는 책들은 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추세이니, 소설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의 원작을 번역해본 경험이 대부분 있지 않을까나. 사실 나는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영화로 만들어진 번역서가 엄청 많은 게 아닌데도 은근히 영화 원작 소설 번역 전문(?)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도 같다. 워낙 영화와 책으로 둘 다 대박 난 경우가 딱 하나 있어서 그럴지도... 암튼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더 유명한 작품을 번역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여겨주면 나로선 그저 감지덕지 영광이다. 이번엔 제발 담당자 속썩이지 말고 잘해봐야지 ㅠ.ㅠ 마침 마감을 절대 어기면 안될 중대 이유도 생겼으니 굳게 마음을 다잡고 있다. 석달치 스케줄표를 아주 면밀하게 작성해 일일분량 달성기록을 적기라도 해야하려나... 아무튼... 아자아자 화이팅이다. 흥해라, 출판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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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투덜일기 2016. 10. 16. 14:33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잘은 모르겠다만, 헐겁기는 해도 나름 '조직'이라는 곳에 새삼 여럿 소속되어 있다보니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자꾸 부대낀다. 내가 선택하라고 하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둥글둥글 지내야한다는 얘기다. 조직이 싫어서 직장생활을 관두고 홀로 일한지가 20년도 넘었는데, 괜히 왜 이러고 있나 회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뭐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인간관계로 인해 종종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일단 좀 두고보자 참고 있다.

하려던 이야기는 그런 푸념이 아니고... 

하여간에 내가 일부러 좀 거리를 두려고 애쓰던, 나와는 정말 코드가 안맞는구나 싶었던 어느분에게 엊그제 들은 이야기 때문에 약간 생각이 깊어졌다. 결론적으로 내가 너무 편협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나쁜 인간이란 걸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분이 나를 붙잡고 뭔가 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는 눈치인 걸 감 잡았으면서도 처음엔 굳이 알고 싶지가 않아서 아예 좀 슬슬 피해다녔다. ㅋ 물론 결국엔 붙들려서 이야기를 듣고 말았지만... (여기서 의문 잠깐, 내가 그렇게 맘 편하게 속을 막 털어놓고 싶게 생겼나? 아 진짜 반평생 '들어주는 사람' 역할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이젠 졸업하고 싶은데;;)

사연은 이렇다. 그분이 '살짝 나에게만' 들려주고 싶다던 이야기는, 얼마 전 제대한 24살된 아들을 결혼시키게 됐다는 거였다. 그분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고, 나이도 나와 별 차이가 없는 분이라 속으로 좀 놀라면서도 대번에 짐작했다. 오호라, 속도위반인가? 일단 기계적인 축하인사를 건네며 또 속으로 딴 생각이 들었다. 아오, 몰랐으면 모를까 결혼식 얘기를 들었는데(바로 다음날 지방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축의금을 챙겨드려야 하나? +_+

쌀쌀맞고 계산적인 나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그분은 구구절절 그간 마음 아팠던 사연을 털어놓으며 간간이 눈물까지 비쳤다. 철원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하던 그분의 아들은 상급자들의 폭언과 괴롭힘을 못 이겨 자살을 기도했고, 의식불명으로 응급 헬기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실려오는 사태가 벌어졌었단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들을 매일같이 면회다니며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도해도 일주일째 차도가 없었는데, 지방에 있는 여자친구가 면회를 다녀간 날 기막히게도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더란다. 엄마의 통곡은 안들려도, 여자친구의 통곡은 아들의 영혼에 가 닿았던가 보더라나. 

암튼 엄마가 잠시 배신감에 사로잡히든 말든, 아들은 눈을 뜨자마자 첫 마디가 "OO이는?"이라며 여자친구를 찾았고, 면회를 끝내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중이던 여자친구는 기차에서 그 소식을 듣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왔고... 아들의 부모는 둘이 그렇게 사랑하면 같이 있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지방에서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사정해 자기 아들 좀 살려달라고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청년이 종종 실어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곁에 있어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참 그 여자친구도 착하지, 부탁 대로 직장 관두고 서울에 올라와 남자친구가 회복될 때까지 돌봤다는 것 같다.

서로 깊이 의지하고 사랑하는 두 연인을 차마 떼어놓을 수가 없어서 결혼을 시키기로 했는데, 신부감 집안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일을 해서 친정 생계를 얼마간 도와야하는 입장이라 신혼집도 지방에 친정 근처에 잡아주었고, 집장만이며 세간살이, 결혼비용까지 전부 다 대출받아서 자기네가 부담하기로 했다고, 빚지고 아들 장가보내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 며느리 행복한 게 제일이라면서, 그분은 예쁘게 웃고 있는 둘의 사진을 여러장 내게 보여주었다. 미리 유럽으로 신혼여행 겸 셀프 웨딩촬영도 다녀왔다나. 

그러면서 속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씩 던지는 게 상처가 된다고도 털어놓았다. 늦둥이 중학생 아들도 있는 오십대 초반 엄마가 큰아들 장가보낸다고 하면 다들 첫 마디가, 속도위반이구나! 한다는 것. 속으로 나 역시 뜨끔했다. ㅠ.ㅠ 사고친 게 아니고서야 요새 누가 24살에 아들 결혼을 시키냐는 둥, 왜 좀 더 두고보며 좋은 사람 골라보지 그러냐는 둥, 쓸데없는 간섭을 하더라는 것이다. 아으...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놓고 함부로 추측하고 판단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인생마다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말고 그 속엔 얼마나 더 깊은 사연과 아픔이 있는지 함부로 판단하면 안되는데 왜 다들 섣불리 편견의 잣대를 들이대는지. 나를 포함해 인간들 참 못됐다.

민망함과 미안함 때문에 더 호들갑스럽게 축하인사와 위로를 전하고 돌아와 씁쓸한 반성 시간을 가지고도 뭔가 심히 빚진 기분이다. 요새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란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같다. 미국 학교내 총기사고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콜럼바인고등학교 사건의 가해자 엄마가 쓴 참회록이랄 수 있는 이 책은 나중에 따로 리뷰를 써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암튼 부모나 절친조차.. '아무도 몰랐던' 아이의 고통과 분노가 만들어냈을 엄청난 사건을 복기하며 함부로 타인을, 자식을, 현실을 속단하지 말라고 당부한다(책을 절반쯤 읽은 바로는 그렇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편협하고 속좁게 살아갈 나는 문제의 그분과 더욱 친해진다거나 코드를 맞추려는 노력 따위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젠 그분이 어떤 돌출 행동이나 좀 과한 발언을 하더라도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뭔가 다른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지레 눈쌀 찌푸리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만 보아넘길 수 있는 여유로움은 생겨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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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투덜일기 2016. 10. 13. 01:22

2006년에 만들었던 10년짜리 여권 만기일이 9월 중순이었다. 예전엔 만기일 이전에 갱신하는 비용이, 날짜 지나고 나서 새로 만드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했던 기억이 있어서 괜히 마음이 바빠졌으나 결국 만기일 이전에 여권을 만들진 못했다. 9월 중순이면 딱 추석연휴때가 아닌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심신이 좀 지치고 바빴어야지... 째뜬 요샌 뭐 전자여권이라 갱신이든 신규든 재발급 비용은 다 똑같다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군, 했다. 

어차피 해외여행 계획이 당장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여권을 만들어둘 필요는 사실 없다. 그런데도 컴퓨터 모니터 아래 노란 포스트잇에 적힌 "9월 전에 여권 갱신!!!"이라는 글귀가 계속 시선을 끈다. (느낌표를 세 개나 붙여놓다니 어떤 심정이었던 거지? ㅋㅋ) 그 옆 포스트잇에 적힌 원고 마감 날짜는 일부러 게슴츠레 눈감고 잘 안보면서 참 나도 웃긴다.

하여간에 여행계획도 없으면서, 언제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이용권도 아닌, '일개' 유효 여권이 없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찜찜하고 불안한가 말이다. 더 웃기는 건 이미 충동적으로 여권사진도 찍어두었다는 사실. ㅋㅋ

앞으로 또 10년 쓸 여권이니깐 이왕이면 꽃단장 하고 예쁘게 찍어야지.. 했던 평소 마음과 달리, 지난달 말 외출에서 돌아오다 ATM 머신에 볼 일이 있어서 걸어가는데 동네 사진관이 눈에 확 들어오는게 아닌가. 충동적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찍기는 했는데 ㅠ.ㅠ 그날따라 화장품 파우치도 안 가지고 나간 걸 깨달은 건 좀 슬펐다. 아파 보이거나 말거나 그래도 당부했다. 전번에 운전면허증 사진 찍은 거 너무 심하게 손대서 얼굴 너무 뽀얗고 입술도 엄청 크고 뻔떡거려서 마음에 안들었으니 보정 심하게 하지 말라고...

해서 사진사가 앙심을 품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생긴대로 찍힌 여권사진은 나의 현재 모습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눈썹과 귀가 나와야하고 뿔테안경도 쓸 수 없고 배경은 하얀색인 악조건에서 뭘 더 바라냐 싶지만, 지난 여권 사진에서 정말로 확~ 10년 세월을 뛰어넘은 아줌마가 지그시 미소를 짓고 있다. ㅠ.ㅠ 아우쒸...

다시 좀 더 진하게 풀메이크업을 하고서, 동네 말고 신촌이나 이대 쪽에 프로필 사진에 준하는 여권사진을 찍어준다는 사진관을 검색해 다시 사진을 찍어 말어, 뭐 그런 허섭쓰레기같은 생각을 잠깐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게으름을 감안할 때 그건 어림없는 짓이겠고, 구청에 여권신청하러 가는 게 과연 언제일지 그게 궁금하다.

아무데도 떠날 계획이 없으면서도 여권이 없는 상태가 불안하고 괜히 속상하고 심지어 여행자의 삶에서 완전히 낙오된 것 같은 심정마저 드는 것과는 별도로, 포스트잇 메모를 보며 여권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하면서 막상 또 신청하러 몸을 움직이는 건 선뜻 하지 못하는 이 게으름이랄지 귀차니즘은 참 고질병이다. 어쩌면 여권만 미리 만들면 뭐하나... 갈 데도 없으면서, 하는 패배의식이 밑자락에 깔려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이 포스팅은 수일내로 여권을 만들고야 말겠노라는 다짐이다. ㅎㅎ 사실은 어디서 분실했는지도 모르게 운전면허증도 사라져 다시 만들어야하는데 이 또한 차일피일...  가끔 운전할 때마다 찜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두 개 다 얼른 만들란 말이닷! 그나마도 운전면허증은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 미리 재발급 신청하면 면허시험장 가서 오래 안 기다리고 바로 찾아올 수 있다는 팁을 얻었다. 좀 전에 퍼뜩 그 생각이 나서 이 새벽에 낑낑거리며 익스플로러 보안프로그램 다 깔았더니 +_+ 신청가능 시간이 아니란다. 내가 하는 일이 그럼 그렇지..

으음. 암튼 바람이라면 일단 새 여권을 만들어서, 어물쩡 새 여권에 어서 출입국 도장 하나쯤 찍어줘야한다는 핑계로 짧든 길든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면 좋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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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

투덜일기 2016. 10. 8. 08:18

안면은 있지만 먼저 알은체하기는 꺼려지는, 그저 그렇게 좀 아는 사람이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있다. 잠시 눈감고 음악감상하다 눈을 떴는데 눈앞에 딱. 차라리 지하철에 타는 순간을 보았더라면 인사하기가 더 쉬웠을까? 다행히 상대도 나를 못본 것 같다. 고갤 숙인 채 휴대폰에 열중하는 걸 보면... 아닌가? 상대도 나를 발견했으나 어색해 시선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에라 모르겠다. 다시 질끈 눈을 감는다. 음악이나 듣자.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져서 앞을 가려주면 좋으련만... 주말 이른아침 지하철엔 빈자리까지 듬성듬성하다. 알은체를 하면 아랫사람인 내가 옆으로 옮겨가 계속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야할 것이 더 싫다. 

하지만 결국 둘의 종착역과 목적지는 같고, 어차피 인사는 해야할 것이다. 그래도 그 순간을 가능한 미루고만 싶다.

휴대폰의 존재가 이렇게 고마울수가...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고자 이렇게 열심히 휴대폰 자판을 두들기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30분은 더 가야하는데.. 계속 고갤 숙이고 시선을 피할 수 있을까나... ㅠㅠ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고개를 들고 시선 맞추기를 기다려 인사를 해? 말어?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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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이야기. 

결국 나는 지하철에서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고 버티다가 얼른 내려야할 역에서 내렸다. 개찰구를 빠져나가면서 어차피 만나게 될 테니깐 그때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인사를 해야지, 그 정도 예의는 지켜야지 했었다. 

어랏, 근데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맙소사. 휴대폰 보다가 못 내린 모양이었다. 젠장. 

나는 정시에 약속장소에 도착했으나, 문제의 그분은 20분이나 늦어 헐떡거리며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난 괜히 제발이 저려 얼굴이 일그러지는 기분이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꾸벅 인사를 했다. 차마 시선은 마주칠 수가 없더라. 어쩐지 그분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진 않는 것 같았다. 뭐 할 수 없지. 별로 친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고 그냥 앞으로도 계속 적당한 거리에서 그저 '아는 사람' 정도로 지내면 그뿐이다. 다음에 또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아마 알은체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어색한 대화 나누기 싫어서 사람 못본 척한 게 어디 한두번인가. ㅋ 이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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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

투덜일기 2016. 9. 29. 21:42

식탐녀는 먹을거리로 계절을 실감한다. 옥수수의 계절이 지나고 어느덧 홍옥의 계절이 왔다. 열흘쯤 전 경복궁 주변 서촌 과일가게에서 제일 먼저 홍옥을 본 순간, 아 홍옥이다! 외치며 사들고 오고싶었으나... 음주하러 가는 길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며칠 뒤 동네 지하철역 근방에서도 홍옥을 만났다. 

등산갔다 오는 길이었는데... 무겁거나 말거나 10개를 골라 사들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시절부터 세뇌된, 내 뇌리 속 사과의 개념에 꼭 맞는 빛깔과 모양, 새콤달콤한 맛과 아삭한 질감은 역시나 뭐니뭐니해도 홍옥이다. 아으 맛있어라...

오늘도 냉장고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먹으려고 보니.... 아 이건 또 동화 <백설공주>에서 마녀가 일부러 독을 넣어 공주를 유혹하려고 만든 사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는 분명 이 노란 부분을 깨물겠지. ^^; 나머지는 잔뜩 독이 들었으렸다~!

나는 백설공주 코스프레를 하듯 새빨간 부분부터 와그작 깨물어 먹었다. 당연히 맛있어, 맛있어! ㅋㅋ 추석때 제수용품으로 샀던 큼지막한 홍로 사과는 복불복이어서, 아삭한 것도 있고 푸석한 것도 있고 맛도 제각각이었다. 헌데 이 홍옥은 크기도 작은데 안에 꿀(?)까지 들었다. 진짜로 꿀인지 어쩐지, 꿀사과라고 파는 건 안을 잘라보면 과당이 뭉친 듯 투명한 결정 부분이 존재한다. 근데 홍옥이자 꿀사과라니 꺄오...

먹기 아까울 만큼 예쁘다는 생각에 깨물기 전에 이 사진을 찍어놓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노라니 또 다른 사과 생각이 났다. 딱 요정도 크기였던가, 아니 훨씬 작았던가... 낯선 나라 과일가게에서 딱 백설공주에 나올 법한 새빨간 사과를 발견하고는 얼른 골라담아 호텔방에서 아침저녁으로 와그작와그작 깨물어 먹었더랬다. 


사진으로도 찍었었지.. 싶어 찾아보니 있긴 한데... ㅋ 화질이 아주 구리다. 

사과보다 엄지손가락 거스러미가 더 눈에 띄는 건 자격지심이겠지비... ㅋ 이제보니 터키에서 먹은 이 사과는 훨씬 더 작았었다. 기억에 남은 맛은 오늘 먹은 홍옥보다 좀 더 새콤했던 것 같고, 씹는 질감은 좀 더 단단했다. 그래도 이것은 홍옥이여~ 그러면서 기뻐했었지.  

시간이 기억을 왜곡하고, 일그러진 기억은 또 자체 보정을 거쳐 마치 생생한 '사실'처럼 내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을 텐데, 난 '남들보다 좋은 기억력'을 주문처럼 외우며 틀림없는 진실로 남들에게 들이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 또한 꼰대짓이고 옛날 사람 인증이다. 


흠...

한동안 멀리했던 블로그질에 다시 열을 올리는 이유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ㅠ.ㅠ 번역서의 역자후기 마무리를 도무지 하지 못해서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제대로 생각이 들어가고 고민이 깃든 글을 쓰지 않다보니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 

책도 안 읽으면서 무슨 글 타령이냐 싶고, 머리가 드디어 깡통이 되었구나 반성하며 그래도 방바닥에 굴러다는 책 가운데 젤 만만한 걸로 집어들었더니 거기서,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어야 글 쓸 자격이 있다는 글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맞다.  매일 써지는 글의 가벼움과 한계도 물론 존재하지만, 어쨌든 어딘가 몇줄이라도 생각을 적어놓는다는 것의 즐거움이 분명 있었는데, 더는 진득하게 앉아서 배설해내는 짓거리도 하지 않고 살았구나 싶었다. 여기다도 후다다닥 얄팍한 자랑 아니면 푸념만 반복했을 뿐.

하여간에 그래서 또 이렇게 반성모드로 포스팅을 하다보면 글이 글을,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아이디어를 물고 꼬리를 잇는 마법 같은 것이 벌어지려나 기대하면서 이렇게 낑낑대고 있다. 이러면서 난 어떻게 글줄로 밥벌이를 계속 하려는 것이었는지? 참 나.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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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바쁜데 계속 마음이 시끄러웠다. 이도저도 아니어서 도무지 한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움. 뭔가 여기다 푸념이라도 적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남부끄러운 제 얼굴에 침뱉기 같아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 옛날 가증스럽게 일기장에 원하는 바를 적어 책상에 올려두고 '일부러' 발견되는 작전을 쓴 것처럼 보이면 곤란하다 싶기도 하고. 

암튼 일주일 가까이 곰삭이다보니 드디어 얼추 정리가 된 것 같다. 그간 내가 믿어왔던 건 혼자만의 판타지였다는 걸로 결론을 내리니 갑자기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서로 최선을 다했으나, 태생적인 한계 탓에 진심이 좀처럼 가 닿지 않는 관계도 있음을 인정하면 되는 거였다. 존재 자체가 부담인 관계에선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틀어지고 괜한 오해를 낳는 것을.... 다들 일정 거리를 두고 사는 관계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뭐 잘났다고 그 거리를 좁히려 들었을까나. 바보처럼... 나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이미 그렇게 스스럼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더랬다. 결국 다 내 잘못이다. 

또 한번 나에게 대실망. 이번에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쓸데없는 욕망,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큰그릇으로 착각하는 게 나의 패착이었다. ^^; 생각과 실천을 일치시키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였고...  그래서 여기서 다 놓아버리기로 했다. 안되는 걸 붙들고 미련떠는 건 그만 하기로.  

어제부터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1절 가사 때문이다. 구구절절 내마음일세.. ㅎㅎㅎ


김광진, 편지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결국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지닌 모든 관계를 담담하게 정리하고 위로하기에 정말 딱인 노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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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

투덜일기 2016. 7. 29. 22:06

얼마전 생일에 조카 ㅈㅎ이의 카드 내용을 읽고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고모 나이가 반백을 넘었네.. 어쩌구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고모 아직 반백 안 넘었거든! 딱 반백이거든!! 만으로는 아직 사십대거든!

아무리 발악을 해도 무슨 소용이랴. 문득 오래 전 스물다섯 살 생일에 너도 이제 꺾어진 오십이라며 청춘 다 갔다고 놀려대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맙소사... 꺾어진 오십도 어쩐지 충격적으로 느껴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하물며 반백. ㅠ.ㅠ

제아무리 백세시대라고는 해도 내가 100살까지 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건강설문 사이트 같은데서 계산해본 기대수명도 나는 78세쯤 나왔던 것 같고... ^^; 노후준비가 쉽지 않는 사람들에게 백세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확실한 저주다. 대체 몇살까지 일해서 벌어먹고 살라는 것이냐고!

번역을 평생직업으로 삼겠다고 정하면서, 막연하게 세운 계획은 60살까지만 일해서 나름대로 착실히 노후대비를 해 남은 생은 소박하게 놀고 먹어야지 하는 거였다. 정년 없는 직업이라 다행이야 그러면서... 근데 참 이게... 마음대로 되는 인생이 아님을 왜 진작 몰랐을까. 쥐꼬리만한 번역가 연봉 수입으로 꼴랑 60살까지 일해서 대체 2-30년을 어떻게 더 놀고먹겠다는 상상을 했던 것인지!

주변에 백수 됐다고 좀 징징거렸더니, 다들 기다려 봐, 곧 좋은 소식 있겠지 위로하다가도 하반기 접어들었는데 아직 아무 기미가 안보이는 눈치에 나보다도 더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미안하게스리. 심지어 알바 일도 좀 받았다. ^^; 푼돈이라 안 하겠다고, 들이는 품에 비해 벌이가 션찮다고 몇년 전 딱 거절했던 영상번역 일이다. 잔소리 말고 그거라도 일 하란 말에 얼른 오케이, 고맙다고 수그리고 들어갔다. 

다만 그 일이 또 언제까지나 보장되는 건 아니라서... 여전히 생각이 많다. 백세시대를 맞이하야 나름 재미나고 보람있게 절반 살았으니 나머지 절반은 완전히 새로운 인생으로 재설계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그렇다면 이 나이에 과연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 <인턴>을 뒤늦게 엄청 재미나게 보면서, 막연하게 회사에 재 취업을 꿈꾸기도 하고... (누가 뽑아준다고!)

다늦게 교사자격증 내밀며 기간제 교사나 방과후교사 일자리를 알아볼까 (늙은 보조교사를 행여나!)

그렇다면 입시학원 강사나 과외선생 밖엔 길이 없나?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하던 일인데! ㅠ.ㅠ)

셈이 느리고 서비스마인드 부족해서 뽑힐 자신도 없지만 암튼 마트 캐셔 일도 50살 이전에 구해야한다던데...

누군가는 왕비마마 섭생에 힘썼던 경험을 바탕으로 음식 사업을 해보라고 등떠밀기도 하고... (자본이 있어야지! ㅠ.ㅠ 반찬 가게를 하란 말쌈? 아니면... 건강음식 컨설턴트? ㅋㅋ)

조언이랍시고 속 뒤집어놓기 일쑤인 누군가는 이제라도 돈 많은 남편감을 찾아 '혼테크'를 하라며 권하기도 했다.. +_+ 

으휴. 

노희경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때때로 감동하며 봤지만, 그건 막강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와 대사빨 때문이었을 뿐, 내용만 놓고 보면 노년의 판타지라 은근 배알이 꼴리고 부아가 돋았다. 늙고 병들어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어떻게 가난한 노인이 한 명도 없어! 캠핑카 타고 다니며 여행하며 럭셔리하게 보내는 노년이 준비된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ㅠ.ㅠ (물론 폐지주워 생활비, 용돈벌이 해야하는 독거 노인들만 나왔더라면 더 보고싶은 마음이 안들었겠지...) 

번역작가로 나오는 고현정은 어떻고! 선배이자 연인이었던 출판사 사장을 든든한 '빽'으로 두긴 했지만 (소형 출판사가 또 그렇게 돈이 많냐고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ㅋㅋ) 집과 차는 부자 엄마가 장만해줘서 그렇다 치고, 소설 쓰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곧장 책을 써서 출판이 된다고? 에라이~! 

째뜬 요즘 같아선 타임워프 해서 몇년 뒤 나의 미래에 살짝 다녀왔으면 좋겠다 싶다. 커다랗게 허공에 물음표로 떠 있는 나의 인생은 과연 어느 방향으로 훌러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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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판

투덜일기 2016. 7. 2. 00:32

내방 아래층인 102호에 전격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더니, 한달쯤 비어있던 그 옆 101호에도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 밤이면 어쩐지 음산하고 깜깜하던 아래층에 양쪽 다 불이 들어온 건 반가운 일인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102호 집주인한테 듣기로는 혼자사는 젊은 아가씨가 이사온 거라던데, 아침에 부부처럼 출근하는 남녀를 엄마가 종종 보았고 인사도 했다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거 같고... 식구가 무려 넷이다. 반려견이 2마리나 있기 때문. ㅠ.ㅠ  처음 일주일은 좀 괴로웠다. 가뜩이나 잠귀도 밝은데다 요새 깊은 잠도 잘 못자서 괴로운데 새로운 집에 이사온 강아지들이 주인장 집비운 새에 낮이고 밤이고 꺼이꺼이 좀 울어댔다. 그래도 몸집 작은 강아지들이고 목소리도 크지 않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니들도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지 그러면서 참는 수밖에. 다행히 일주일 쯤 지나니깐 적응이 됐는지, 아님 이제는 낮에도 누가 사람이 집에 있는지 개 우는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주에 이사온 101호 아저씨! 이상하게도 뒷마당을 폐기물 업체까지 불러다가 깨끗하게 치우고 나무도 정리를 하더라니....(우린 혹시 텃밭을 만들려나 상상했었고, 엄마는 거기 햇볕 많이 안들어서 농사 못지어요.. 라고 조언까지 했었단다 ㅋ) 거기다 개를 데려다 놓을 거라고 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나.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얌전함을 지하철에서 몇번 목격한 터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골든리트리버던가, 별로 안짖는 개만 안내견으로 쓰는 것도 같고.

하여간에 드디어 어제가 개를 데려온다던 D데이였다. 비가 좀 오락가락했지만 크게 개짖는 소리는 나질 않아 종일 깜박 잊고 있었더니만 밤 11시쯤 부터인가.... 작은 개가 끄응끄응 깨앵깨앵 계속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 창문을 닫을 수도 없고! 일하다 말고 수시로 2층 창밖으로 타일렀다. "조용히 좀 해라. 왜 우니. 시끄럽다..."

그것만도 짜증이었는데 새벽엔 아래층(개 2마리 키우는 102호)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갑자기 왈왈왈왈 컹컹컹.. 작은 개 큰개 할 것 없이 한꺼번에 미친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으악... 개싸움이 벌어졌나. 이게 뭔가. 짐작컨대 나보다 더 시끄러움에 시달린 102호 사람들이 사태 파악을 하러 나갔던 모양.

그 뒤로도 길냥이들 때문인지, 떠돌이 개가 또 있는 건지... 암튼 컹컹 몸집 큰 개가 가끔 컹컹 짖고 작은 개는 깨갱깨갱 울어대고... 새벽부터 쏟아지는 비에 처량맞은 개울음은 커져만 가고 ㅠ.ㅠ

날이 훤해질 무렵 겨우 누워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사리를 만들고 있던 나는 오전 10시쯤 되자 미칠 것만 같았다. 대체 어떻게 생긴 개새퀴들이 우는지 얼굴이나 봐야겠다며 호기롭게 쿵당쿵당 계단을 내려갔다.

새까맣고 덩치 큰 개 한 마리와 몸집 작은 하얀 개 한마리가 뒷마당에 서로 멀찍이 쇠사슬에 매달려 있었다. 니들 왜 자꾸 우냐고 나도 모르게 하소연을 하는데 개주인 아저씨가 따라나왔다. 미안하다고, 자기도 밤새 괴로웠다고 사과를 하는데 뭐라고 따질 수도 없고 참 놔... 네, 쟤네들도 적응기간이 필요하겠죠. 근데 좀 힘드네요.. 뭐 그 정도로 이야기하고 올라왔다. 아... 이 건물에 개평화는 이제 사라졌구나 ㅠ.ㅠ

근데 또 오늘 비가 좀 많이 내렸나. 낯선 마당에서 폭우를 견디는 게 힘든 건지 개들은 또 이따금씩 컹컹컹, 깨갱깨갱 울어대고... 출근을 안한 건지 102호 여자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급기야 아래층 개주인들끼리 말싸움이 났다. ㅠ.ㅠ 

무서워서 난 내려가보지도 못하고 귀만 쫑긋... 아... 불안하여라. 101호 개 아저씨 이사오는 날에 내가 얼마나 친절한 이웃 코스프레를 하면서 냉커피랑 매실차도 갖다주고 그랬는데 ㅠ.ㅠ 에고 의미없다. 

놀라운 건, 101호에서 키우는 개가 한 마리 더 있다는 거다. 그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베이지색 복실 강아지 한 마리가 또 튀어나오더니 나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헐.. 하긴 뒷마당에 묶여 있던 작은 하얀개도 내가 왜 우냐고 징징 대자 꼬리를 흔들어 대답했다. 이놈.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ㅠ.ㅠ 

하여간에 그렇다면 졸지에 이 건물에 사는 개가 총 다섯마리다! 그야말로 개판일세. 맙소사...다시 시작된 개판의 귀추가 무섭고도 궁금하다. 부디 어떻게든 평화가 찾아오기를...  어제보다는 적응을 한 건지 비가 그쳐서 그런지 째뜬 어젯밤보다는 조용한 것 같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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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다

투덜일기 2016. 6. 14. 15:17

조금 전에 모교 XXX 교수에게 소개를 받고 연락처를 알았다며 통화하고 싶다는 문자가 왔다. 본인 이름도 용건도 없이 그냥 통화가능하다면 연락드리겠다... 는 내용. 뜨금없고 의아했으나 그러라고 했다. 


혹시나 일감 의뢰인가 하는 상상에 1퍼센트쯤 희망을 품었는데... ㅠ.ㅠ 방금 전화가 왔다. 대학원생인데 일을 하고 싶어서 연락을 했단다. 본인 이름도 말하지 않고 대뜸, 공부 마치고 일을 하고 싶어했더니 XXX 교수가 나한테 물어보라고 연락처를 줬단다... 헐....  네? 어... 그럼 번역일을 하고 싶다는 건가요? 당혹스러워서 내가 다 말문이 막혔다.


뭐지? 내가 새끼번역가까지 두고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나? 

내가 무슨 번역 브로커도 아니고 어떻게 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대학원생이라는 이 친구가 너무 떨려서 하려던 말을 제대로 전달 못한 건가? 


하도 황당해서 어떻게 통화를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만 암튼.. 번역이라는 게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서 일을 진행하므로 내가 일을 줄 입장은 아니라는 것(나도 지금 백수거든! 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ㅠ.ㅠ), 누군가 번역가 소개를 요청받았을 경우 서로 연결해줄 수도 있겠지만 경력 없는 사람을 근거 없이 추천할 순 없다, 게다가 요즘 출판계가 워낙 불황이라 기존 번역가들도 일감이 부족하므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근데 전화를 끊고 앉아 있으려니 화가 난다. 요즘 애들은 대체로 이렇게 앞뒤없고 예의가 없나?? +_+ 아니면 그냥 우연히 이상한 애를 만난 건가? 어휴...  그나마 대뜸 전화 안하고 문자로 미리 예고를 했으니 다행이고 예절은 지킨 걸로 봐야하나? 


버럭 짜증나고 답답해져서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얼음을 우드득 우드득 깨물어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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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투덜일기 2016. 6. 1. 15:35


일년내내 책 한권 읽지 않으면서 매년 노벨문학상을 기대하는 한국인들을 비아냥거리는 기사가 언젠가 뉴욕타임스에 실렸다고 했던가.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다. 스마트폰과 그밖의 쉽고 재미난 오락거리 탓에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건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해도, 책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한국사람들의 비율은 절망스러울 정도다. 특히 나처럼 책에 기대어 밥벌이를 해야하는 사람에겐 말이다.


어쨌든 요즘들어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맨부커상>에 대해서 내게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엊그제는 70대이신 어느 선배님이 조용히 나를 따로 불러 물으셨다. 맨부커상이 그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상인가? 근데 왜 난 금시초문이지? 내가 무식한 거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그렇게 훌륭한 작품이냐... 너는 읽어봤냐... ㅋㅋ 


일단 나 역시 세계 3대 문학상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다고 대답했다. 노벨상이랑 맨부커랑 또 뭐라더라...? 

물론 맨부커상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수상작을 더러 읽어보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출판계에 꽤나 몸을 담고 있었고 외국소설도 꾸준히 읽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단언컨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7,80퍼센트는 이번에 한강의 책이 후보작에 올라 연일 뉴스에 언급되기 전에는, 아니 후보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며칠 언급되다 수상에 실패했다면 또 다시 그런 게 있는지조차 관심없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에 수상을 했고, 김연아, 박태환 때처럼 개인의 성취를 마치 국가의 쾌거인양 '한국이 해냈다'는 식으로 언론에 도배질을 해댔기 때문에 전 국민이 관심을 쏟아 열흘만엔가 50만부가 팔렸겠지. 


어떤 책이든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책 구매로 이어졌다면 무조건 반길 일이다. 일시적인 냄비현상이든 아니든, 소비 둔화의 최일선에 놓여 간당간당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듯한 출판계에서 한두권이라도 집중 조명을 받아 책이 팔린다는 게 어디냐! 한강의 소설이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서, 군중심리와 호기심에 휩쓸려 덜컥 책을 산 사람들이 진짜로 완독을 하거나 애서가가 되리라는 보장은 결코 없지만, 선진국 따라하기 좋아하는 근성이 이번에도 발휘되어 노상 자기개발서나 힐링용 에세이만 읽어대던 사람들이 '문학'을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째뜬 나 역시 한강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고(공모전 출신 한국 소설가와 주류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은 잘 안없어진다. ㅠ.ㅠ <소년이 온다>는 출간됐을 때 서점에서 좀 넘겨보다 말았다.) 맨부커상은 오르한 파묵, 줄리언 반스 같은 작가가 탔었는데(<내이름은 빨강>,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같은 책 들어보셨세요?--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한 것 같다고 대답해 노년의 선배님을 안심시켜드렸다. 째뜬 그분은 워낙에도 계속 공부에 힘쓰며 더러 서점에 가서 책도 사시는 터라, 이참에 책을 사보실 요량인듯. 쉽게 설렁설렁 읽히는 책은 아닐 거라고 미리 귀띔하며 다 읽고 어땠는지 알려주시라고 부탁했다. 상빨 받은 <채식주의자>가 50만부 팔렸다니깐 어째 나는 영 사주고 싶지가 않아서 원... +_+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에 관한 논란은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론 한국소설이든 외국소설이든 이참에 출판계가 반짝 되살아나, 마케팅비와 물류비 아까워서 다 만들어놓은 책도 묻혀놓고 눈치만 보고 있는 많은 출판사들이 다시 움직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열렬히 빌고 있다. 그래야 나도 먹고 살텐데!


눈물겹게도 5월말을 기점으로 드디어 나는 프리랜서 번역가에서 백수의 신세로 전락했다. 전업 번역가로 밥벌이를 시작한지 21년만의 일이다. ㅠ.ㅠ 중간에 용감하게 대학원공부를 빌미로 일을 쉬었을 때에도(2000년), 2013년에 미친 척 자체 안식년을 결정했을 때에도 놀랍게도 번역 일 의뢰는 거의 끊이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건방지게 일을 쉬어야하는 사정을 이야기하면, 계약기한을 넉넉하게 주겠다고 방학 때 맞춰 일을 해달라는 곳도 있었고, 안식년 운운했을 땐 '이러시면 안된다!'고 설득해 6개월만에 휴식을 접게 만드는 출판사도 있었다. 내 게으름 때문에 따박따박 일을 못넘긴 탓도 있지만, 길게는 1년, 짧게도 6개월치 계약은 늘 밑바닥에 <깔아놓고> 일을 해왔던 것 같은데.... 그런데.... 작년 말부터 정말이지 새로운 번역의뢰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어떻게 작업 시간 되느냐고 묻는 전화나 이메일도 한 통 없는지!!? ㅠ.ㅠ


해서 작년에 미리 계약해두었던 올 1/4분기 작업건을 끝으로 원숭이는 완전히 줄을 놓치고야 말았다. 땅바닥에 아프게 떨어져서 뒹굴뒹굴... 아.. 정말 슬프다.  (물론 업계 일부 친구들은 내가 그간 계속 일이 끊기지 않았던 게 놀라운 미스터리라고 이야기한다. 같이 번역 시작했다가 접은 이들도 많으니깐)


요즘 백수라고, 일 없어서 한가하다고 말하면, 이 참에 여행도 다니고, 자주 만나 같이 놀자는 친구들도 있지만 몇년째 5월마다 종합소득세 신고하며 푹푹 한숨을 쉬었던 저연봉 프리랜서에겐 모든 게 사치 같다. 사정 모르는 어느 후배가, 선배님은 이제 일 안하고 사셔도 되지 않아요? 라고 물었을 때 어찌나 속이 쓰리던지! 젊어서도 그랬고 얼마전까지도 나는 나 한 사람쯤은 평생 부양하고 살 능력이 되는 줄 알았었다. 헌데 이젠 그럴 자신감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과연 이 직업으로 계속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뀌어가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하나? 지금 이 나이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ㅠ.ㅠ 일단 아르바이트 거리라도 좀 찾아야하나? 

 

누군가는 니가 아직 배가 덜 고팠다면서, 여기저기 연줄을 동원해 먼저 일 좀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한단다. 몸값도 좀 낮추고...  아아악~! 


빌어먹을.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민으로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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