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17.03.15 열쇠 10
  2. 2017.03.12 드디어 봄인가 5
  3. 2017.03.06 그래도 커피 4
  4. 2017.02.15 금고아 4
  5. 2017.02.10 괴로움 2
  6. 2017.02.05 하기 싫은 일 4
  7. 2017.01.31 명절 차례 2
  8. 2016.12.30 어제 9
  9. 2016.12.21 예매 실패 꿈 2
  10. 2016.10.31 욕이 모자란다 3

열쇠

투덜일기 2017. 3. 15. 14:56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요즘에도, 수십년간 꿋꿋하게 오래된 다가구 '주택'을 벗어나지 못하고 눌러앉아 살고 있는 우리는 여러모로 옛날 사람이란 걸 사방에 자랑하고 다닌다. 그 중 첫째가 묵직한 쇠로 된 '열쇠'가 아닌가 싶은데, 그나마도 자물쇠 하나가 고장나서 하나만 들고 다닌 건 최근 몇년이고 옛날엔 위아래 열쇠 두 개를 열쇠고리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었다. 난 자동차 열쇠까지 열쇠 3개를 매달고 다니며 무거워서 투털투덜하던 적도 있다.

오래된 철제 현관문의 자물쇠는 당연하게도 몇년에 한번씩 고장이 나 말썽을 부렸고, 십년쯤 전부터는 자물쇠를 교체해야할 때마다 우리도 편하게 번호키 좀 달자고 내가 아무리 징징거려도 엄마가 단칼에 '싫다'고 하셨더랬다. 이유도 다양했다.

첫째, 몇만원이면 되는 일반 자물쇠에 비해 번호키는 너무 비싸다. 헌 집에 비싼 거 뭐하러 다냐. (수십년 째 우리는 집이 팔려 이사가는 상상을 늘 하고 산다. ㅠ.ㅠ)

둘째, 손떨려서 번호 잘못 누르면 어쩌냐. 계속 잘못 누르면 아예 잠겨 버려 못 들어온다더라. ㅠ.ㅠ

셋째, 안그래도 깜박깜박하는데 비밀번호 까먹으면 어떡하냐. ㅠ.ㅠ

핑계없는 무덤 없다지만, 엄마가 무조건 싫다고 하시는 건 '변화'를 괜히 두려워하고 겁내는 노인 특유의 고집 때문이란 걸 잘 안다. 그래서 나도 독단적으로 마구 우길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 정신 건강이 안 좋아질 때마다 손도 괜히 더 떨리고 불안해지고 익숙하지 않은 걸 불편해하는 심정을 왜 모르겠나. 

그래도 나는 꾸준히 번호키의 편리함을 설파했다. 요즘 번호키 많이 싸졌다. 비밀번호 까먹어도 카드 키만 슥 대면 문 열리는데 무슨 걱정이냐. 설사 카드 키 없이 번호 까먹어도 나한테 전화 걸어서 물어보면 되고, 아니면 수첩 어디에 적어가지고 다니면 되지! 스마트폰 놀이에 심취하면서 손떨림은 이제 거의 없어진 것 같던데! 열쇠 깜빡 잊고 나간 엄마를 위해, 외출하며 열쇠는 우유 주머니에 넣어뒀다고 문자 보내놓고 혹시나 불안해할 이유도 없고 좀 좋냐고요!

그러던 차에 요번에 또 현관 자물쇠가 고장났다. 안에선 고리를 돌리면 잠기는데, 밖에선 열쇠로 암만 돌려봐도 꿈쩍도 하질 않는다. 내부 스프링이나 부품이 또 고장났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번엔 손잡이도 고장나서 보조 자물쇠와 손잡이 모두 바꿔야하는 상황.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데 웬일로 엄마가 먼저 이번엔 우리도 번호키를 달까? 물으셨다. 오예~!

어제 엄마 마음 바뀌기 전에 현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 번호로 득달같이 전화를 걸었더니, 30분 안에 온다던 양반이 10분만에 오토바이타고 나타나심. ㅋㅋ 드드륵드르륵 드릴로 현관 자물쇠를 교체하고 금세 뚝딱 번호키가 달렸다. 우리 현관문에도 드디어 '띠리릭' 경쾌한 디지털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스마트한 세상이 열렸도다! 무거운 쇳덩어리 열쇠는 얼른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가장 쉽게 익숙한 번호 네자리로 비밀번호를 설정한 뒤, 엄마 손에 카드 키를 쥐여주곤 연습을 하러 내려갔다. 역시나.. 익숙한 번호 네 자리와 별표시는 아무 무리 없이 한번에 성공! 그래도 번호 누르는 거 귀찮아서 카드키를 들고 다니시겠다고. ㅋㅋㅋ

오늘 아침 일찍 한방진료실에 가느라 외출에서 돌아오신 왕비마마가 띠리릭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와선 한 말씀하신다. 어두울 땐 열쇠 구멍 잘 안보여서 찔러넣기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편한 걸 진작 바꿀 걸 그랬다고. 아이고 오마니... 편한게 좋은 거라니까요. 여러가지 면에서 아날로그 방식을 좋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렇게 하나하나 취향이 무너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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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봄인가

투덜일기 2017. 3. 12. 22:02

뻔뻔하고 찌질하고 치졸하게 버티던 안하무인이 드디어 제집으로 돌아갔다는 뉴스를 보았다. 지난 금요일에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듣고 감격해 낮술을 마시며 축배를 들면서도, 아직 갈 길은 멀었음을 알고 있었다. 청산해야할 적폐와 비리가 어디 한두 가지라야 말이지. 아무리 역사는 반복되는 거라지만,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세상이 달라질 거라며 감격의 축배를 든 순간이 있었다. 물론 달라진 부분도 있었으나, 변화의 추진력이 꺾여 과거로 회귀한 것도 많았고 최근 10년은 확실히 삶이 더 팍팍해졌다. 게다가 감히 그 파렴치한 입으로 또 다시 진실 운운하는 헛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과연 그 여자가 정신 차릴 순간이 오긴 할 것인가 의심스럽다. 원래부터 정신 차리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괴물일 수도 있겠고. 

암튼 어제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는 광화문에는 선약이 있어 나가지 못했다. 마지막 촛불집회이길 바라며 3월 4일에 광화문광장으로 나간 이유도, 실제로 촛불을 들 마지막 기회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어제 저녁, 거의 매번 광화문에 동행했던 후배 하나가 사진을 보내왔다. 

하하하하... 재기발랄하기도 하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사먹진 않았지만 우리도 호떡은 사먹었고 주로 배낭에 빵과 과자, 뜨거운 커피와 차, 과일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 구호 외치는 틈틈이 우걱우걱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머릿수 채우러 나갔던 것도 맞고.. ㅎㅎ

노발평화상장은 탐나지 않는데 촛불 배지는 너무 예쁘잖아! +_+ 아이고 갖고 싶어라...

집회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고 나면 어느새 해방구처럼 변한 청진동 서촌 앞길과 세종로, 종로 일대에서 딱 한사람만 없으면 정말 축제로구나~ 느꼈던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분노도 분노려니와 그런 행복한 추동력이 다섯달에 이르는 긴 촛불 역사를 가능하게 했겠지 싶다. 

미국 대선에서 저들은 저급하게 굴어도 우린 고급지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고 했던 미셸 오바마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태극기 부대가 아무리 지저분하고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며 죽창과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대도, 촛불집회는 괜한 꼬투리 하나 안잡히겠단 신중함으로 어찌나 품위를 잘 지켜냈는지. 

집회 중간에 한장한장 빨간 종이 나눠주고 다니시던 할아버지 새삼 존경합니다..

당장 퇴진, 퇴장하라는 의미로 연출한 레드 카드 퍼포먼스마저도 왤케 아름답기만 했던지, 분노조절이 잘 안되서불끈불끈 수시로 뒷골을 잡던 나와 후배들은 너무 감상적인 거 아니냐고, 촛불이 더 이상 예쁘기만 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궁시렁궁시렁거렸었다. 

물론 분노와 슬픔마저도 아름답고 우아해서 더 감동적이고, 간간이 유머와 센스가 하늘을 찔러서 더 유쾌했던 건 사실이다. 

노발평화상을 준 주체로 적혀 있는 '앞으로 태어날 후손 드림'이란 글귀를 보니 휴대폰에 든 사진이 또 한 장 떠올랐다. 역시 3월 4일 집회에서 머릿수 채우는 역할은 다 했으니 헌재쪽으로 행진은 생략하고 슬슬 고픈 배나 채우러 가자며 인사동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귀여운 후손님의 사진이다. 

초상권을 우려해 뒤에서 몰래 한 장 찍었더니만 앞에서 찍어도 된다고... 흔쾌히 v도 그려주신 호피 패션의 아기! 

다들 사진을 찍으며 이런 아이가 행복하게 살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촛불을 들어야하느니라..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꽃샘추위는 아직 한참 남았겠지만 나가보면 확실히 햇볕도 바람도 달라졌다. 봄 기운이 반가운 것과는 별개로 걱정은 계속 이어진다. 대선 정국에 휘말려 이제 겨우 진행되고 있는 비리 수사가 덮이면 안되는데, 세월호 인양도 진상조사도 더 늦어지면 안되는데, 끝까지 파헤쳐서 그네를 구속시켜야하는데... 또 두눈 부릅뜨고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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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커피

투덜일기 2017. 3. 6. 02:41

밤참과 함께, 혹은 그냥 따로 한밤중에 따끈한 차를 한잔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 동안 사소한 고민을 한다. 밤이니깐 원두 커피는 안되고 캐모마일? 둥글레차? 메밀차? 디카페인 커피? 그냥 뜨거운 물?

디카페인 커피가 두 종류나 있지만, 말이 디카페인이지 카페인 성분이 0퍼센트는 아닌듯, 좋아라 신나게 여러잔을 마시면 커피 많이 마신날처럼 똑같이 잠이 안온다. 그냥 잠의 질이 형편없어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암튼 사랑해마지않는 깨잠을 커피 때문에 망치고 싶진 않다. 잠과 커피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난 역시 잠. ㅋㅋ

해서 조금 전에도 잠시 고민을 했으나, 에라이 모르겠다, 디카페인 커피를 집어들었다. 오늘은 겨우 두잔째이니깐 괜찮겠거니...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역시 나는 커피파다. 평생 녹차를 물처럼 마시고 살았다는 차애호가 후배 하나는 도무지 커피 맛을 모르겠다면서 그저 쓴맛밖에 안나는 커피를 다들 왜 그리 좋아하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나로선 아무리 노력해봐도 풀 비린내가 나서 도저히 적응 못하겠는 차를 좋아라 마시는 니가 이해 안된다!  

볶은지 얼마 안되는 원두를 핸드밀로 갈아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뜨거운 물 부어 마시는, 하루 딱 한두번의 호사를 누릴 때만큼 행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씁쓸하고 고소하고 은은한 커피의 향과 맛에 이제 좀 일할 맛이 나는군 싶어진다. 커피와 잠은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고 큰소리치며,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의 본질을 거세당했으니 커피도 아니라고 마구 무시할 때가 있었는데, 한치 앞도 모르고 막말했던 그 시절의 악담이 부끄럽다. 커피는 그래도 커피인것을. 이나마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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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아

투덜일기 2017. 2. 15. 15:24

금고아.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길들이기 위해 씌운 머리띠 이름이란다. 이러면 잊지 않으려나 싶어서 제목으로 정해봄.

나날이 뇌세포가 죽어가는지, 생각하는 단어가 따박따박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많아졌다. 너도나도 '그거 뭐지'로 시작하는 친구들의 대화를 나도 이제 더는 짜증내거나 비웃을 수 없게 됐다. 손오공 머리띠 이름을 벌써 몇번이나 검색해보았는데도 매번 까먹는다. 어휴.

손오공 머리띠, 금고아를 자꾸 찾아본 이유는, 요즘 걸핏하면 두통이 머릿가죽을 조이는 것 같은 방식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감기가 오려는 전조 증상의 두통은 한쪽 머리가 묵직하게 아파오는 반면, 커피를 마셔주어야하는 시간을 건너뛰어 카페인 중독이 불러오는 두통과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은 비슷하게 머릿가죽이 쪼그라들면서 두개골 전체를 압박하는 듯한 두통이다. 실제로도 만져보면 뒷목부터 관자놀이 주변, 정수리.. 머릿가죽이 욱씬욱씬 다 아프다. 머리 감겨주면서 두피 마사지를 엄청 시원하게 하는 미용실에라도 찾아가고 싶은 심정. ㅠ.ㅠ 

순전히 나의 상상일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두통이 삼장법사가 금고아를 조일 때 손오공이 느낀 고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법 두껍고 글씨도 작기는 했지만, 서유기를 읽은 건 아주아주 옛날 초등학생(국민학생) 때였을 텐데, 중간중간 TV에서 본 만화 덕분인지, 손오공이 머리털을 뽑아 분신술을 부리거나 여의봉을 줄여 귓속에 숨기는 이야기가 꽤 디테일하게 기억난다. 삼장법사가 워낙 고리타분한 잔소리만 거듭하다 제 마음대로 안 움직이면 손오공을 벌주는 게 어린 마음에 꽤 부당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술을 부려 머리띠로 손오공에게 고통을 주는 건 잔인한 고문이다! 아무리 요괴라도 그렇지..) 

하여간 계속 머리가 아프다. 몸살 뒤끝에 속상한 일까지 겹쳐 심신이 완전 바닥인데도 굳이 겨울 등산엘 따라간 건 나름 몸을 마구 혹사하며 얻는 힐링(?) 효과를 노린 거였는데, 정말로 머리를 텅 비우고 칼바람 속 눈길을 걸었던 것은 참 좋았으나 (춥다, 힘들다, 풍경 멋지다 이 세 가지 이외의 생각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다녀와서 곧장 짧은 마감 폭풍에 시달렸더니 몸 상태는 더 말이 아니게 되었다.

머리는 욱씬거리고, 입천장이 다 헐어 너덜너덜 뭘 먹기도 말을 하기도 불편하다. 하루 이틀 푹 자면 낫겠지, 과일 많이 먹으면 낫겠지, 고기로 영양보충 하면 낫겠지... 그간 잘 듣던 방법 어느 것 하나 이번엔 별 효험이 없다. 결정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려나.

니가 그렇게 괴로워한다고 해결되는 거 하나 없다, 그냥 잊고 니 생각만 해라, 시간이 해결해 줄뿐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주변에서도 나도 똑같은 결론을 내리지만 어쩌겠나.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전전긍긍형 인간인 것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진실을 폭로할 순 없어도, 암튼 이렇게 허공에 대고 계속 징징거리면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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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

투덜일기 2017. 2. 10. 00:14

지금 당장 혈액검사를 해보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대박 많이 나올 거란 확신이 든다. 설날 이전부터 시작되었던 괴로움은(명절 스트레스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연휴 직후 눈덩이처럼 불어나 일주일 내내 나를 짓밟아대다 그저께 최대치로 치솟았다가 어제 비로소 한풀 꺾였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된 건 아니어서, 여전히 나는 뒷목이 뻣뻣하고 불면과 악몽에 시달리며 시시때때로 울음이 울컷 솟는다.

여기다라도 뭔가 말로 다 풀어낼 수 있는 괴로움이라면 머릿속 압력이 좀 낮아질 것도 같은데 속시원히 구구절절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더 괴롭다. 그래도.. 뭐가 문제인지 털어놓진 못하더라도 괴롭다는 현상 자체만 징징거려도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이러고 있다.

나도 잘 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은 있다. 헬조선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나. 그런 일은 뭐 찾아보면 수두룩빽빽이겠지. 내가 일의 주체인 경우도 그렇겠지만 째뜬 이번엔 특히 내가 주체가 아니었고, 나의 노력을 받아주어야하는, 아니 받아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또 염원하는 저쪽에선 오랜 시간 도무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속도 보여주지 않았다. 간절히 원하는 일은 꼭 이루어진다는 말, 그건 영화나 드라마, 만화에서나 나오는 일이었다.

우리가(나 혼자가 아니었다)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는 만약에 정말로 신이든 도깨비든 영이 있다면 알고도 남음이 있을 텐데! 결국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일을 위해 정성을 바치며 오히려 그 때문에 수년간 내가 들은 비난과 폭언 때문에라도, 나는 내가 바라고 실천하는 방향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헌데 결국 내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그럼 왜? 어떻게 했어야, 무슨 방식이었어야 하는데? 의문이 들면서 또 괴로웠다.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싫고 낯선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굽실굽실 비굴해지는 싫고, 원칙을 깨는 것도 싫고, 편법을 쓰는 것도 싫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시도했었다. 그런데도 되지 않았다. ㅎㅎㅎ 원체 안될 일이었단 뜻?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하는 내게 누군가 어쭙잖게 위로했다. 지금은 지옥에 떨어진 것 같겠지만 지나고 보면, 그 사람에겐 긴 인생의 한 시점으로 따지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다고.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나. 흥! 남의 말이니 그렇게 쉽게 하지! 섣부른 위로는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다. 

미쳐서 날뛸 것만 같은 괴로움과 스트레스로 그저께는 진짜로 한밤중에 뛰쳐나가 볼이 얼도록 밤거리를 마냥 걸어다녔으나 당연히 머리는 맑아지지 않았다. 엉뚱한 대상에게 괜한 화풀이를 해보아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괜히 온 세상과 모든 사람들이 다 꼴보기 싫어지는 효과만 극대화됐을 뿐이었다. 알콜중독자처럼 확 술을 마셔버릴까 생각도 했으나 ㅋㅋ 안 그래도 어질어질 두통마저 심한데 그랬다간 길바닥에 쓰러져 얼어죽겠구나 싶었다. 

그나마 정신 나간 여자처럼 밤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닌 피로 덕분인지, 드디어 '포기'를 선언한 덕분인제 그젯밤에 좀 잠을 자고 났더니만 어젠 또 다른 대안을 찾고 있는 약간은 정상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했다. 그 일은 그 일이고, 이젠 일상으로 돌아와 내 삶에 집중해야한다고 말이다. 그래, 그래야지 하면서도 아직은 마음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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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일

투덜일기 2017. 2. 5. 23:47

나름 취미생활이랍시고 헐거운 조직에 다시 들어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언젠가는 겪을 수도 있는 일이란 걸 알고는 있었고, 그래서 그 전에 때려쳐야하는 게 아닌가 고민도 했었지만 어영부영 머뭇거리다보니 결국 발목을 잡혔다. 이런 걸 미련스럽다고 해야하나 책임감이 강하다고 해야하나, 그냥 우유부단한 건가 잘 모르겠고 그저 스스로 한심하다. 

아직도 종종 대체 내가 왜 아직도 이짓을 하고 있나 회의가 들면서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궁궐 자원봉사 일은 교육부터 따지면 올해로 벌써 4년째에 접어든다. 경력 챙겨야하는 회사생활도 아닌데 애당초 왜 3년은 채워야지 했었나 의문이지만, 일단 3년쯤 하고 나면 계속 할지 말지 뭔가 확고한 결심이 설 줄 알았다. 하지만 확고한 결심은 개뿔. 여전히 이 일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며 의미를 찾느라 가끔 신경질을 부린다. 

너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문제이니 운동 삼아 2주에 한번 궁궐 산책도 하고 잘 지은 한옥 구경이나 하지 뭐, 하는 게 가장 큰 핑계이고 지난번 폭설이 내린 다음날엔 정말로 감탄을 자아내는 궁궐의 설경을 보며 그래 이 맛에 나오는 거지, 했었다. 하지만 그밖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 에효..

놀라운 건 에라이 그만 때려치워야겠다 생각할 때 좀 찔리는 것도 그곳에서 시작된 인간 관계 때문이고 또 넌덜머리가 나서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이유 또한 그곳의 인간 관계 때문이다. 어디나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고 괜히 싫은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월급 때문에 버티는 회사도 아니고 대체 난 왜 이러고 있는 걸까나.. 심지어 올해부턴 순서가 돌아와 '총무'란 걸 맡게 됐다. 으악! 골치아파라... 

근데 또 나란 인간이 뭐든 주어진 일은 '잘하고 싶어하는' 병'이 있어서 슬렁슬렁 대충은 못 지나가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활동일지도 기록해야하고, 회비 수입지출도 관리해야하고... 어떤 조직이든 만만하고 말 잘 듣고 일도 제법 하는 사람은 일이 몰리게 되어 있다. 절대 그런 캐릭터로 보이고 싶진 않았는데, 구성원 중에서 처음엔 심지어 '막내'였고 몇년이 흘러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세명이나 생겼지만 아직 젊은 축에 들다보니 눈깜짝할 새에 계속 뭔가 일이 주어진다. 참 내..

궁시렁궁시렁 투덜투덜거렸지만 어쨌든 1월이 가고 2월 순서도 한 차례 지나가 총 26번 활동일 중에 23번이 남았다. 23번만 버티면 해방이다 그러면서 중간에 몇번 언제 빠져서 누구에게 임시 총무일을 넘길까 호시탐탐 노리는 중.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3번은 빠져야지 그러고 있다. 어차피 개근하던 사람도 아니었고..

등산 모임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작년에 개근하는 게 아니었다. 젠장. 첫해엔 계속 따라다닐까 말까 고민도 많았으니 절반이나 갔을까, 둘째 해에도 마감이다 집안행사다 바빠서 몇번 빠졌었는데 3년째인 작년엔 할일도 별로 없겠다 등산의 묘미도 좀 알았겠다 정말 열심히 체력단련까지 해가며 따라다녔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날 너무 성실히 본 게 문제!

무슨 기념문집인가 뭔가 만들때도 완전 독박을 쓰고서 쓸데없는 노동력을 착취당했는데! 이번엔 또 뭔 일을 맡기려고! 1월 등산은 마침 위에 적은 임무가 겹쳐서 처음부터 빠졌고, 올해 달력 정리하며 보니 다달이 둘쨋주에 아버지 기일에다 이런저런 집안 행사가 많아 빠질 날이 쎄고 쎘던데 눈치가 수상하다. 학연지연을 타파해야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놈의 '연줄' 때문에 제대로 '거절의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분명 싫다고 했는데 들은 척도 안하는 선배들 정말 와... 결국엔 늘 <더러우면 내가 떠나야지> 카드밖엔 쓸 게 없는 것 같다. 

암튼 그래서 올해는 이래저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할 조짐이 보인다. 재미삼아 본 토정비결은 올해 운수 되게 좋다고 그랬는데... ㅋㅋ 괜히 시간만 쳐들이고 기껏해야 욕만 먹을 이상한 일들 대신에,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일이 많아져야한다규! 속으로 이렇게 끙끙 앓으면서 또 막상 나가서는 어르신들 앞이라 크게 싫은 내색 못하고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열심히 몸바쳐 일하는 모습이 상상돼서 더 짜증이 난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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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차례

투덜일기 2017. 1. 31. 23:15

명절 연휴때마다 sns엔 명절이 사라져야한다는 아우성이 절절하다. 조만간 사라질 '악습'이라는 데 나도 한표. 그러나 그건 머릿속 생각일뿐, 현실에선 그 시점이 문제다. ㅠ.ㅠ 게다가 여자들'만'의 노동이 담보되어서 그렇지 조상 핑계대고 간만에 온 가족이 모여 먹고 노는 거, 특히 설날엔 세배하고 윷놀이 하며 노는 거 나름 괜찮다. 아니 사실은 심신이 고달파 괴로우면서도 퍽 좋아한다. 명절이 아니고서야 고모들이며 사촌동생들, 그들의 어린 아기까지 대체 언제 만나볼 수 있단 말인가.가족이 멍에라면서 아직도 가족주의를 못 벗어나는 내가 한편으로는 좀 부끄럽다. 오랜 세뇌 탓일까. ㅠ.ㅠ  하지만 많이 줄었대도 아직 스무명 넘는 가족이 모여 놀고 먹으려면 음식장만 스트레스가 만만치는 않다. 이 무슨 딜레마인지 원.

요번 설날 sns에서 돌아다닌 명절 글귀 가운데 가장 웃기고도 정곡을 찔렀던 걸 퍼왔다. ^^;​


지인 한 사람이 페북에서 공유했던데 공감해 퍼올렸는데 원 출처는 딴지일보라는 것 같다. 킬킬 웃으며 나도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나 요번 명절에 도 난 음식상을 차려놓고 절을 했으니.. 이러고 보면 나도 아직은 영낙없이 악덕 시누이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명절 '차례'라는 이름에 맞게 상차림 음식을 간소하게 하고 그냥 맛있게 먹을 음식에 치중하자고 올케들과 작년부터 의논을 했다. 아는 게 병이라고, 궁궐 쫓아다니면서 이런저런 교육을 받다보니 '차례'는 말 그대로 '차'를 올리는 '다례'여서 왕실에서도 아주 간단한 다과와 함께 차만 올리는 게 전통이었단다. 근데 왜 우리는 제삿상과 똑같이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혜 따져가며 거창하게 상을 차렸던 걸까! 그건 조선말 신분제가 헐거워지면서 부역에서 놓여나고자 너도나도 돈만 있으면 양반 족보를 사들여 신분세탁을 했고, 막상 양반 체통 차려 조상에게 제사나 차례를 지내야하는데 대대로 보고 배운 바가 없으니 어깨너머로 남의 양반집 가풍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단다. 당연히 역사적 근거를 따지거나 제삿상과 차롓상의 차이 따위를 고민할 리 만무했고 한 가지 방식을 달달 외워 써먹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마저도 일제 강점기때 대부분 싸그리 잊혀졌는데, 해방 후 다시 전통 명절을 지킬 수 있게 되자 우왕좌왕 헤매는 무지몽매한 국민들을 위하야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걸 정부에서 정해 권장했고 이상하게 '통일된' 가정의례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발목과 편견을 붙잡고 있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곁다리로 빠지는 것 같지만, 암튼 난 옛날부터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지방에 적는 '현 고 학생부군신위'라는 글귀가 참 이상했다. 아니 왜 노친네가 돌아가셨는데 '학생'이란 말인가! 우리 할아버지가 86세때 돌아가셨는데 지방 글귀는 여전히 '현 고 학생부군신위'였다. 할머니 신위에 적인 '유인 장씨'라는 말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이 세상에 돌아가신 장씨 할머니가 한 사람뿐인가! 조상 귀신이 진짜로 제삿밥 드시러 온다고 해도, 귀신같이 잘 찾아온다는 속담처럼 뭐 집집마다 잘 찾아다닌다고 치더라도, 이왕 지방과 신위를 쓸 거면 본인 제삿상인 줄 딱 알아먹게 풀네임을 다 쓰던지 해야지 말이야...

헌데 최근 답사 다니며 알고보니 '학생'이란 유학을 공부한 양반 중에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품계를 받지 못했거나 서당에서 공부만 하다 사망한 이들에게 붙여준 예의상의 관직이고, '유인' 또한 종9품 맨 말단 직책의 부인에게 내려진 호칭이란다. '정경부인'이 정,종1품 문무관의 부인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듯이. +_+ 그런데 조선말엔 신분과 상관없이 일반 백성들에게도 사후에 선심쓰듯 '학생'과 '유인'을 붙여주게 되었던 것. 아니 근데 그런 시대착오적인 호칭을 써먹는 지방과 신위를 21세기에도 쓰고 있다는 게 말이 됨??!! 

해서 작년부터는 그 말도 안되는 지방 대신 제사 때 우리도 사진을 쓰자고 내가 우겼고, 설날과 추석땐 증조부모님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아버지, 젊은 시절 돌아가신 작은엄마까지 6분을 연달아 모셨던 터라 지방을 아예 생략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집도 설날엔 떡국 여러 그릇 한꺼번에 올려놓고 세배하고 끝낸대요! 라면서.

간소한 차례상에 대해서는 나름 나도 가족들을 설득할 역사적 근거를 마련했다. ​

​이것이 무려 대한제국에서 황제로 추존된 문조익황제를 위한 황실 차롓상 재현 모습이란다. 황제도 차례를 이렇게 간소하게 차렸다뉘! 

게다가 홍동백서니 좌포우혜 어쩌고 하는 제사 예법은 어딜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단다. 반찬도 딱히 무슨 음식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숙채, 침채, 육적, 어적.. 이런 식이다. 지방에 따라 해당되는 음식 아무거도 올리면 장땡이란 의미가 아닐런지.

별 의미도 없이 거창하기만 한 차례와 제삿상 차림 예법에 대한 문제점은 최근 몇년 새 계속 방송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어서 요번 설 전에도 뉴스에 여러번 같은 이야기가 등장했다. 

오히려 예법 따지는 종갓집에서 차롓상을 더 간소하게 지낸다는 것! 왼쪽 사진은 퇴계 이황 종가 차롓상을 재연한 모습이란다. 반찬이라고 할 진 음식은 두부부침과 물김치? 정도가 다고 밥과 떡국, 포, 과일로 끝이다. 으아 그동안 우린 정말 쓸데없이 헛고생을 했구나야.

녹두전, 생선전, 호박전, 동그랑땡 최소 4가지 전을 올리느라 울 올케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전과 나물 준비는 올케 둘이 나눠서 하고, 나는 끓이고 굽는 고기류, 탕국, 나머지 반찬을 담당한다)

해서 우리도 설날과 추석엔 힘들게 전도 부치지 말자고 올케들과 의논을 했으나, 전마저 없으면 반찬으로 먹을 게 너무 없으니 차례상에 올리든 말든 일단 음식 장만은 하던대로 하겠다는 것이 두 올케들의 의지였다. 그럼 양이라도 딱 한 접시 나올 만큼 줄이든지... 

근데 요번 설날을 앞두고 막내올케가 전격 독감에 걸려 집에 격리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말이 A형 독감이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신종플루라며 호들갑 떨던 그 독감 아닌가! 사촌동생네 돌쟁이도 올텐데 우리집에 바이러스를 옮겨놓으면 안될 것 같아 잠복기 보균자일지도 모를 막내동생 식구들 모두 오지 말라고 했다. 아파서 끙끙 앓는다는데 전이고 나발이고 잘 됐다, 그냥 쉬거라. 

작년 추석을 지내며, 사촌동생들은 시댁에서 아침먹고 곧장 친정 격인 우리집으로 달려오는데, 막상 울 올케들은 그들 점심까지 챙겨먹이느라 오후 늦게나 친정으로 갈 수 있었던 상황이 얼마나 불합리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던 나는 좀 늦었지만 왕비마마와 상의해 동생들에게 전격 선언을 했었다. 설날과 추석 중 한번은 우리집에 오지 말고 친정에 가서 차례를 지내든지 여행을 가든지 하라고. 물론 명절 땐 아침 먹고 무조건 친정에 가게 하겠다고.

명절에 먹여야 할 입 줄어들면 나야 부담 적어져서 신나고 좋다! 근데 변화의 바람에 대한 저항은 의외의 곳에서 닥쳤다. 명절 노동이 힘들어봐야 1년에 몇번이나 된다고 그러냐며 옛날엔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던 것에 비하면 훨 나아졌구만, 뭘 그리 불평이냐고 동생놈들이 아내의 권리 주장에 반발했던 것. 아 놔;; 1년에 한번 아니라 3년에 한번이라도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면 힘든 거지!

하여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내 맘대로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던 바, 요번 설엔 나박김치도 안 담그고, 수정과도 안 끓이고, AI 핑계로 토종닭도 안 삶고, 굴비도 안 굽고, 막내올케 담당이었던 전 3가지도 싹 빠뜨리니 드디어 차롓상에 떡국과 밥 6쌍을 한꺼번에 올릴 공간이 생겨났다. ^^;

차례는 그야말로 조상신에게 1년 잘 살겠다는 의미로 세배하는 거니깐 수저 꽂고 그런 거 안해도 된다고 누누이 일렀건만 갑자기 달라진 순서에 작은아버지도 큰동생도 몹시 당황해서 나에게 자꾸 짜증을 부렸지만 암튼 여러번 술잔 올리고, 떡국과 밥 갈아 다시 놓고 어쩌고 하는 순서 없이 한번에 짠~ 일동 세배하기로 끝냈더니 거의 1시간은 절약된 것 같았다. 아싸~

그 옛날에도 차례와 제사를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합리적으로 모셨고, 주로 친정 옆에서 살던 딸도 당연히 제 몫을 다했다는데 왜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 관습이 이상하게 왜곡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증조부모님이야 뭐 명목상 같이 챙긴다고 쳐도, 손녀딸인 나로선 할아버지 할머니의 예쁨 받으며 자랐으니 그분들을 위해 차례든, 제삿상이든 준비하고 특히 좋아하셨던 음식 챙겨 놓는 것이 마냥 괴롭고 싫지만은 않다. 물론 그런 고루한 생각이 문제라 내 몸을 혹사시킨다는 건 알지만 암튼 최소한 나는 얼굴도 모르고 명절에 불려다니며 노동을 착취당해야하는 며느리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생각으론 엄마 계시는 동안, 그리고 내가 체력이 허락하는 동안엔 '꼭 사라져야할 악습'인 명절 차례와 제사를 가능한 한 간소하게 하는 방향으로 지속하되, 내 대에서 반드시 끝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명절 연휴때 해외든 국내든 여행 다니는 사람들 너무도 부럽지만, 나 같은 소심이는 아마 여행을 떠나서도 마음 편히 놀지 못할 게 뻔하니깐 ㅠ.ㅠ 올케들 눈치를 최대한 덜 봐도 되는 방향으로 계속 변화를 시도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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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투덜일기 2016. 12. 30. 16:53

친구들이랑 택시를 탔다. 난 앞좌석에, 둘은 뒷자리에. 남은 커피를 챙겨나오는 거에 집중하느라 하마터면 가방을 카페 의자에 버리고 올 뻔했던 내가 정신없음을 자책하자 친구가 택시 안에서 위로담을 건넸다. 겉옷 주머니가 얕아서 며칠 전 핸드폰을 언니 차에 떨어뜨리고 내려 되찾아오느라고 광주행 고속도로를 탔던 차를 되돌려 세워야했다나. 이제 우리가 그런 나이인 거지! 각별히 조심해야 해..라고. 

미술관이 있는 평창동에서 택시를 내려 건물로 올라가려는데 친구가 비명을 질렀다. "내 핸드폰!" 방금 전에 얘기했던 대로 주머니에서 또 휴대폰을 빠뜨린 거다. ㅠㅠ 친구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진동' 모드로 뒷좌석에 떨어뜨린 휴대폰을 택시기사님이 받을 리 만무했다. 손님이 뒷좌석에 타고 발견한다면 모를까...

다행이었던 건 내가 택시요금을 티머니 후불신용카드로 결제했다는 것. 혹시나해서 카드사로 전화를 걸었다. 방금 결제한 택시 회사나 연락처를 알 수있겠느냐고...  급히 알아보고서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주겠다는 상담원의 긍정적인 대답. 연락처 수배에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고 했다.

일단 우린 예약한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막연하게나마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지만, 요즘 스마트폰 택시에 두고 내리면 중국쪽에 2-30만원 받고 팔아버려서 찾기 어렵거나 기사에게 사례금을 엄청 내고 돌려받아야 한다더라는 난감한 이야기가 오갔다.

드디어 카드사에서 문자가 띠리링 날아오더니 문자 확인할 새도 없이 곧장 상담원이 전화를 했다. 개인택시 단말기라 기사님 전화번호를 보냈다고!! 오옷 문자를 보니 차량번호와 휴대폰 번호가 나란히 찍혀 있었다!! 아 진짜 좋은(어쩌면 무서운?) 세상이로구나!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고, 택시 기사님과 통화가 되었다. 뒷좌석에 휴대폰 떨어진 게 있느냐 물으니, 다행히 있단다. 기사님은 당연히 몰랐고 곧이어 탄 손님도 모르고 깔고 앉아 있던 걸 발견한 거란다. 야호! 일단 손님을 압구정에 내려주어야한다고 해서, 당연히 그러시라고... 압구정에서 미터기 작동시키고 다시 평창동으로 와주시라고... 그렇게 부탁하고는 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물론 사례금을 얼마나 드려야하나 친구는 고민을 했다. 당연히 택시비는 드려야하지만, 개인택시의 차량번호와 휴대폰 번호까지 우리가 다 갖고 있는 마당에, 요즘 속설대로 수십만원의 사례비를 요구하진 않을 거다...라고 짐작했다. 한 친구는 그냥 압구정에서 평창동까지 택시비만 줘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근데 그건 아니지 않나? 온갖 사진과 (친구는 휴대폰 사진도 작품 수준으로 찍는 사람이다;;) 연락처와 추억과 신용카드까지 한 장 들어 있는 휴대폰을 무사히 찾았는데! 

친구는 갖고 있는 현금이 5만원밖에 없다면서 그냥 5만원을 드리겠다고 했다. 내 생각에도 합리적인 것 같았다. 드디어 3, 40분 뒤 택시 기사님의 전화가 내 휴대폰으로 걸려오고, 우린 밥을 먹다말고 (사실 길 막히고 다른 영업도 하신다면 1시간 이상 걸려서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 뛰쳐내려갔다. 

기사님께 거듭 감사인사를 하고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손을 흔들어드렸다. 기사님은 영수증도 안 받아갔으면서 자기 휴대폰은 어떻게 알았는느냐고 놀랐다고 하셨다. 택시요금은 만오천원쯤 나왔던데, 친구가 가진 현금이 5만원 뿐이라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드리자 기사님도 좋아라하시는 눈치였다. 최근 누가 휴대폰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경우는 처음 목격한 거다. 택시든 길바닥이든 버스든... 두번 다시 못 찾았다던데 우와... 정말 다행이었다.

요번에 깨달은 게 많다. 

1. 택시 요금 결제는 무조건 카드로! 택시를 거의 타지 않지만 어쩐지 짧은 거리를 타고 가면 수수료 어쩌고 하는 게 미안해서 카드보다는 현금으로 지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론 무조건 카드로 결제할 테닷!!! 

2. 카드회사에서 걸려오는 상담원 전화를 친절히 받아야겠다. ㅠ.ㅠ 가끔 카드론 해준다고, 아니면 보험상품 나왔다고 전화오는 게 대부분이라 엄청 쌀쌀맞게 끊어버리곤 했는데, 우왕... 카드 결제 택시 단말기 확인하면 정보가 그렇게 다 뜨는 건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암튼 득달같이 택시 번호판과 기사님 휴대폰 번호까지 다 알려줘서 순식간에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으니, 이번 사건의 최대 공헌자는 삼성카드 상담원 김지연님이시다. 좀 전에 고객 응답 설문 메일에서 이름 확인! 카드 회사 게시판에 찾아가 감사의 인사라도 올려야겠다. ;-p 

3. 깜빡깜빡하는 아줌마형 건망증이 아주 극에 달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휴대폰이며 가방이며 어따 잃어버리고 징징거릴지 모르겠다. 그날 친구는 버스에서 내리며 장갑 한짝을 또 좌석에 흘리고 내렸었다. ㅠ.ㅠ 모두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서글펐다.  

4. 택시에 휴대폰 두고 내리면 10중 8,9는 중국에 팔려간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과장된 것 같다. 이렇게 정보가 다 뜨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지? 택시기사님들도 괜히 억울하지 않을까? 택시를 타려거든 회사택시 말고 개인택시만 골라타라는 이야기는 옛날부터 있었는데... 이번 경우에도 해당되는 걸까 아닐까 그건 좀 궁금하다. 

겨우 한 가지 사건으로 막 일반화하는 경향은 좀 우습지만, 암튼 친구가 휴대폰과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가 무사히 되찾은 사건 하나로 우린 또 이 세상이 아직은 좀 살만한 곳이라는 결론을 '함부로' 내렸다. 새해엔 짤려야할 인간 확실히 짤리고 더 나은 세상이 되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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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실패 꿈

투덜일기 2016. 12. 21. 15:37

오늘 아침 퍼뜩 꿈에서 깨어나며, 이건 불길한 꿈일까, 아니면 꿈이 현실과 반대라는 속설의 증명이 될까 궁금했다. 오늘 낮12시, 콜드플레이 추가공연 선예매 시간을 앞두고 어제 몇번이나 알람을 맞춰놓고도 뭔가 좀 불안했던 마음이 반영된 꿈이겠지. 어쨌든 꿈속에서 나는 뜬금없이 신화의 두 멤버(김동완과 앤디... +_+ 아 왜 에릭이 아니고! 난 어차피 신화 팬도 아닌데;;;)와 한 방에 앉아서 각자 노트북 아니면 핸드폰으로 콜드플레이 공연을 예매하고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12시를 기다렸으나, 예매 창에서 계속 쭉쭉 남은 자리가 빠져나가 순식간에 좌석수가 0으로 변해 으악 비명을 지르며 셋다 멘붕에 휩싸였다. 나는 괜히 신화의 두 멤버를 째려봤던 것 같다. 정신 시끄럽게 한 니들 때문이야! 라면서...

깨어나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화 팬도 아니고 멤버 이름도 잘 몰라서 꿈속에선 김동완을 김동욱, 앤디는 앤서니라고 불렀다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방금 전에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와 진짜 웃긴다. 생전 생각도 없던 연예인이 왜 콜드플레이 예매 꿈에 나왔을까. 

암튼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예스24와 인터파크 중에서 어느 사이트가 더 잘 견딜까 고민하다 (1차 예매때 예스24가 성공율 높았다고 해서;;) 포인트도 쌓을 겸 예스24로 로그인했는데 제기랄! 서너번의 좌석점유 실패 후 안전하게 뒷자리로 선점한 것까진 좋았는데 계속 결제창 에러... 열번도 넘게 취소 후 재도전...그러다가 가까스로 카드번호 입력하고 진행이 되는 것 같더니 또 에러.. 와.. 진짜 인내심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시간은 12시 반이 막 넘어가고... ㅠ.ㅠ 마지막엔 드디어 결제용 비밀번호까지 잘 입력했다 싶었는데 계속 돌아가기만... 띠리링 휴대폰으로 승인확인 문자가 날아오길 얼마나 염원하며 기다렸는지. ㅠ.ㅠ 엄마 명의로 간신히 발급받은 카드라서 동짓날 절에 가시는 엄마한테 일부러 휴대폰도 두고 가시라고 했구만!!!

1시간 반이 넘도록 결제창은 그저 돌아가고만 있고... 30분 지나면 결제 취소된다는 벨로의 말을 듣고도 도무지 포기가 안됐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건 남은 티켓 한장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 공연을 아주 못보는 건 아니다. 으허허헉.. 기쁘기도 하면서 속도 상하고 아주 미묘한 기분이다. 꿈땜이냐 뭐냐... 스팅 공연 땐 매번 성공율 높았었는데, 아쒸, 콜드플레이의 벽이 참 높다.

콜드플레이 내한한다고 주변에 알려봤으나 다들 시큰둥 아니면 그게 뭔데? 라고 묻는 친구들 지인들이 대부분이라 (처음부터 벨로네 한테 데려가달라고 할걸! 선예매 후파트너 수배를 꿈꾸었지 뭔가) 무조건 2장 예매하고 억지로라도 누굴 끌고가려 그랬는데 그것도 그들에겐 못할 노릇이어서 뭔가 '우주의 힘'이 예매실패를 이끌었나싶기도 하고 ㅋㅋ

빙글빙글 속절없이 돌아가는 결제창을 보며 무슨 마법사처럼 온 몸의 기운을 모아 양손을 뿌리쳐 얍! 기합을 넣어보기도 하고 징징징 우는 소리로 제발제발 성공해라 주문도 외워보았으니 죄다 효험은 없었다. ㅎㅎ 당연하겠지. 하긴 내가 무신론자라고 뻥뻥 큰소리치면서 그게 될 턱이 있나.  

혹시 취소표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해 틈틈히 예스24와 인터파크에 들어가보니, 미친 인터파크는 스탠딩좌석이 33석이나 남았다고 나오질 않나, 예스24도 한두자리씩 자리가 떴다가 금세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다. ㅠ.ㅠ 혼자서라도 콘서트 보러가게 됐으니 좋은데 왜 미련을 못버리니... 에효. 내일 마감이라규~!!! 미련 좀 그만 떨어야한다는 다짐으로 꿈 얘기와 함께 포스팅으로 마무리하련다. 그만하면 됐다, 고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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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 모자란다

투덜일기 2016. 10. 31. 13:53

반려견을 키우는 개엄마, 개아빠들이 주변에 많다. 당연히 '개'와 관련된 욕을 들으면 펄펄 뛰며 화를 낸다. 개가 얼마나 충성도 높고 성실하고 영리한데 어떻게 '개 같다'느니 '개만도 못하다'느니 하는 것이 욕이냐, 오히려 칭찬이면 칭찬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조카네 개를 가끔 보아도 맞는 말이다. '개새끼'나 '개자식'은 이제 더는 욕이 아니고 많은 인간들에게 칭찬이다. 충직한 개 정도만 살아도 훌륭한 인간이므로, 앞으로는 점점 더 개와 관련된 새로운 표현이 탄생하지 않을까. 

근데 내가 가끔 입이 거칠어지는 인간이어서 욕을 아예 끊고 살 순 없어, 종종 하는 말이 '미친X, 미친O'이었다. 특히 4년 전부터 그 욕을 가장 많이 들어온 인간이 하나 있었는데... 요즘 하나하나 드러나는 추한 진실을 들여다보면 '미친O'이라는 욕도 오히려 칭찬이다. 어쩔 수 없이 정신건강에 이상이 생긴 환자에 대한 폄하 발언이므로 미쳤다는 말 역시 옳바른 용어가 아니다. 제정신으로 살기엔 이미 무리인 이 나라에서 미치는 게 뭐 어때서?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인간은 그저 사악하고 또 사악하고 무지하고 이기적이고 생각이라곤 아예 할 줄 모르는 존재다. '--충'이라는 욕 또한 널리 쓰이고 있지만 그 인간에겐 곤충이라 욕하기도 벌레들이 아깝다. 촌충, 십이지장충 같은 기생충 정도라면 모를까.

그 인간 지지율이 17%니 14%니 하는데, 아직도 그만큼이나 지지하는 무뇌 인간들이 남아있다는 게 더 절망스러운 것 같다. 하긴 여론조사의 정확성도 믿을 수 없으니 훨씬 더 낮은 수치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마감 핑계로 지난 토요일에 촛불집회에 못나가고는 계속 찜찜하다. 과연 모든 진실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까, 손석희와 JTBC를 믿고 기다려봐야지 싶다가도 검찰 하는 꼬라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 나라는 정말 어디까지 얼마나 속속들이 썩은 걸까.

통째로 썩어빠져 무기력한 검찰과 나라꼴과는 달리 저들은 벌써 무섭게 상황을 은폐할 준비를 마친 것 같다. 전직 대통령도 데려다가 모욕적인 검찰조사로 자살로 몰아넣은 인간들이 공항에서 곧장 긴급체포도 모자랄 범죄자는 충분히 쉬며 거짓말 짜맞출 시간까지 배려해 모셔가는 상황은 정말 무섭다. 그들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로 읍소한 뒤 모르쇠로 버티는 작전을 시전하기로 한 모양이다. 어휴, 파렴치한들. 제발이지 다들 빨랑 잊지 말고 이 분노의 불길이 계속 타올라 끝장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래전 6월에도 그랬고, 결국 이 나라에서 믿을 건 그래도 국민들이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그때보다 윗대가리들이 더 철저하게 썩고 부패시스템이 견고해졌다는 것이겠지. 순siri가 빼돌린 돈만 국고에 환수해도 많은 분야에서 뿌리 깊은 불황이 얼마나 해소될까, 뭐 그런 핑크빛 전망과 이상이나 떠올리고 있는 내가 돌연 한심스럽지만 암튼... 불끈 주먹쥐고 지켜보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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