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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니고 나무

투덜일기 2018. 2. 21. 22:11


"저는 꽃 아니고 나무거든요!" 그 옛날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쌈닭모드로 돌변해 내가 종종 외쳐대던 말이다.

첫 직장이었던 미국 회사에서 인종차별에 열받아 이직한 한국 회사는 당시 중소기업 분위기가 다 그런 것이었는지 여직원들에게만 임직원 취향에 맞는 투피스 유니폼을 입혀놓고서(여직원회에서 고른 서너벌의 후보작을 실제로 여직원들이 입고 패션쇼 하듯이 임원실을 돌며 최종 낙점을 받았다. 와 지금 생각해도 열받는다;;), <여직원은 사무실의 꽃>이라는 전제 아래 온갖 허드렛일과 잡무를 시키며 꽃처럼, 아니 하녀처럼 묵묵히 지들 시중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92년 즈음의 일이다. 

난감했다. 미국회사에선 그래도 남녀차별은 없었고, 지점장도 커피는 제손으로 타 먹었는데 맙소사. 똥밟았나. 회사를 잘못 선택했나. 고민이 많았다. 그뿐인가, 부서별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기생집에 가서 애첩 끼고 앉듯이 나이 어린 여직원들을 주로 부서장들 옆에 사이사이 끼워 앉히고는 술을 따르게 했다. 술 약한 여직원에게도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들어놓고선 다음 날 킬킬대며 그들의 실수를 농담 삼아 씹어댔다. 

그 옛날엔 회식 때도 2차로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 가는 걸 당연시했고, 여직원들은 부르스를 추자는 놈팽이들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니지 않으면 억지로 끌려나가 '안겨야'했다. 참 폭력적인 조직 문화와 성희롱, 성추행이 '친선도모'라는 핑계로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회사일로도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데다가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회식 자리 불편함까지... 총체적인 불만에 휩싸인 나는 상사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어 가끔 막 들이받았다. 술 핑계로 니들이 함부로 행동한다면 어디 니들도 한번 당해봐라 그러면서 야, 김대리! 이부장! 너 진짜 재수없거든! 여직원들 술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억지로 먹여! 나도 욕할 줄 알아, 씨*! 뭐 이런 식이었다. 쌈닭 레벨 최고치에 달했던 당시 '왕언니'로서, 손버릇 나쁘기로 유명한 놈에게는 한두번 경고하다가 얼굴에 술을 뿌린 적도 있었다. 물론 내가 정신줄을 놓을 만큼 취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몇번 그렇게 의도적인 진상을 부리자, 일단 여직원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나름 꽤 중요한 해외 업무를 홀로 도맡아 하고 있는데, 회사 25년 역사상 '유일한 경력직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계속 물을 먹으며 때려치울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라, 부당한 처사라고 느껴지면 상사에게 종종 대들면서 두렵지도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짤라보시지. 누가 손해인가. 어린 여직원들을 당연히 수족처럼 부리던 놈들에게 나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골칫덩어리였고, 눈엣가시였으나 막상 내가 세게 나가면 비겁한 놈들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여직원은 사무실을 장식하는 꽃도 아니고, 당신들의 하녀는 더더욱 아니라고! 니들 여동생이나 와이프나 애인이 회사 출근해서 이런 대접 받으면 좋겠냐! 

각종 기계 매뉴얼과 계약서, 합작투자계획서 따위를 번역하는 것이 토나오게 싫기도 했지만, 회사생활을 관둬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건 결국 보수적인 조직사회와 내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계속 왕언니로 여직원 대표로 목청 높여 싸워대는 것도 너무나 피곤했다. 내가 꽃 아니고 나무라고 버럭버럭 외치는 사이, 그래도 자기는 '꽃'이 좋다며 바쁜 업무보다 화장에 더 공을 들이는 어린 여직원들도 있었다. 자긴 사내 연애 성공해서 결혼하는 게 목표라면서. 7년만에 난 전반적인 사회생활에 환멸을 느꼈다.  

결국 사표를 냈고, 진짜로 재미난 번역을 해보겠다고 프리랜서 생활을 선택했다. 사방에서 나 같은 인재를 알아봐줄 것이라고 믿었던, 하늘 높이 치솟았던 자만심은 그러나 금방 꺾였다. 호기롭게 이력서를 들이밀었던 몇몇 출판사에선 내게 습작이 더 필요하다고 권했다. ㅎㅎ 암튼 6개월쯤 뒤 드디어 첫 책의 번역을 맡았고, 내 이름을 옮긴이로 단 번역서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그게 95년 12월이었다. 

초창기 몇년간 드문드문 일이 들어왔지만, 작업 속도도 느렸고 당연히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진 못해 과외로 용돈벌이를 해야했다. 번역가로 자리를 잡으려면 출판계에서도 인맥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아 그렇겠구나. 1년에 한두 권 나왔다 사라지는 번역서로 나를 알아봐주긴 역부족이겠구나. '호의적인' 의도로 출판인들을 소개해주겠다는 이가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당시엔 주요 일간지에 '북리뷰'가 실리면 단박에 만부는 휙~ 팔려나가 매출이 오르던 시기였기에, 출판인들이 모이는 자리엔 종종 일간지 도서담당 기자들도 초대되었다. 출판사 사장님들은 그런 기자들에게 준비해 온 돈봉투를 슬며시 쥐여주었다. 신간 나오면 기사 좀 잘 써달라고 미리 관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갖다 바치는 뇌물이었다. 뇌물 공여자리에 불려나온 나는 뭔가. 혹시 기쁨조? 

나처럼 '인맥을 넓히고자' 불려나온 신참 번역가들과 함께 그런 자리에서 밥과 술을 먹으며, 난 왜 여기 나와 앉아 있는가 의아했다. 글도 얼굴이 예뻐야 잘쓰는 거라면서, 책 날개에 실리는 여성작가 프로필 사진에 신경을 쓰라는 둥, 번역가도 약력 뿐만 아니라 사진도 같이 넣으라는 둥, 내 프로필 사진을 예쁘게 찍어줄 사진 기자를 소개해줄 터이니 언제 한번 신문사로 오라는 따위의 이야기가 오갔다. 왁짜지껄 웃으며 옆에 있던 누군가 슬그머니 내 어깨에 팔도 둘렀다. 이전까지 다니던 회사였다면 난 또 상을 들러 엎으며 쌍욕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며 잠자코 버텼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마지막 회식 자리. 2차로 노래를 부르러 함께 가자던 그들의 손아귀를 세차게 뿌리치며, 그 자리에 나를 부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 저 다시는 부르지 마세요. 어지간히 취한 그 사장님은 저 사람들 알아두면 다 좋은데, 앞으로 도움이 될 텐데, 하며 아쉬워했지만 난 인상을 팍 쓰며 돌아섰다. 차라리 내가 과외를 한 탕 더 하고 말지. 더러운 놈들. 96-7년 즈음에 겪은 일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로 시작되어 법조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학계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며, 과연 이 사회의 썪은 부분들 이번엔 뿌리까지 다 도려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슬그머니 잊혀 괴로운 핍박의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염려스럽고 궁금하다.  

아직도
기막히게도... 감히 겁도 없이...
술은 장모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라고 말하거나
음양의 조화를 위해 우리더러 지들 사이사이에 끼어 앉으라든지
당연히 노래방 도우미 취급하려든다거나 (그래서 음주 후엔 아예 노래방에 안 간지 오래)
유머랍시고 성적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해대는 이른바 ’어르신들’ ‘선배님들’이 아직도 내 주변에 있다. 
직장 상사들이라면야 사표와 술을 얼굴에 뿌리며 대들고 따지겠지만 (다신 안볼 거니까) 공론화하여 사회적 매장을 시도할지도 모르지만, 대단히 관계가 애매한 친목성 조직의 구성원이라 아직은 정색하고 따지며 반발하고 경고하는 수준에서 대체 앞으로 어디까지 예의를 차려야 하는지 지켜 보는 중이다.  

사회생활 회식 자리에서..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에서
성추행 성희롱 한번 안 당하고 이 나라에서 살아온 성인 여성은 단 한명도 없을 거라는데 내 아픈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다. 본인도 모르게 체화된 더러운 습관이 죄악인 줄도 모르는 괴물들과,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동조하고 그저 쉬쉬해서 덮으려고만 한다거나 오히려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파렴치한 이 땅의 시스템은 뿌리가 너무도 깊고 튼튼해서 여간해선 뒤엎기 어려울 것을 안다. 조직의 위상과 명예에 흠이 간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했던가. 

작년이었나...
어느 선배님의 습관적인 성희롱 유머 발언에 발끈해 뛰쳐나가 씩씩대는 나에게 또 다른 선배님이 위로랍시고 말했다. 에이 소녀도 아니고.. 새삼 뭘 그런 거 같고 그렇게 반응하냐고.

소녀가 아니니까요! 어렸을 땐 불편해도 대응법을 몰라 그저 얼굴 붉히며 참아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무서울 게 없는 쌈닭 아줌마거든요! 

법조계, 문학계, 연극계, 학계, 예술계... 연이어 터져나오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아도 (공무원 사회에서 아직 조용한 건 결국 조직을 떠나겠다는 극한 결정을 해야 성폭력 경험을 증언할 수 있는 폐쇄된 분야라는 뜻이라고 본다) 결국 속속들이 썩어문드러졌다는 의미다. 문단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땐 워낙 거대한 이슈였던 촛불에 묻혔던 것 같은데, 이번 움직임이 부디 세계적인 행사인 올림픽 때문에 묻혀버리진 않기를 빈다. 

연극계 괴물이 버젓이 뻔뻔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미 법적으로는 단죄의 방법이 없다는 교활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175년이던가, 죽어서도 다 못 치를 징역형이 내려진 미 체조계 성범죄자 의사의 경우와 어쩌면 이토록 법이 다른가. 시위할 때마다 맨날 성조기까지 펄럭이며 미국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왜 법규 제정은 미국 따라가자는 말을 안하는 건지 원. 이참에 성폭력 관련 법규들이 제대로 범죄자를 단죄할 수 있도록 국회차원에서 현실적인 법안들이 마련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수사방법과 제도에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와 사회적 고립이 무서워서라도 다시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더러운 욕망과 손길을 휘두르는 놈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리우드 미투운동 때처럼 우리나라도 돈 많은 사람들이 턱턱 거액을 기부해 피해자와 실천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가난한 프리랜서인 게 웬수다. 젠장. 일단 국내 최대최강 로펌 중에서 보란듯이 이번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적 대리인으로 나서 변호하며 성범죄 괴물들을 감방에 보내거나 거액의 피해보상금을 빼앗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중등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유도 모른 채 인터넷에 만연한 여혐 분위기와 비뚤어진 성의식에 물든 아이들을 구제하려면 참으로 갈 길이 멀다. 중학교 교실에서 내가 장애, 인종, 성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했던 날, 대뜸 누가 물었다. 선생님도 메갈이에요? +_+ 메갈이 뭔지 나도 모르겠고, 그런 사이트는 사라진지 오래건만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차별에 대한 사고부터 바뀌는 게 시급하다. 아직도 성별 자체가 힘인 경우가 너무도 많으니, 실제로 권력을 쥔 괴물들의 성범죄 수준이 더욱 뻔뻔해지는 게 아닐까. 

작년에 실제로 후배들 채용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블라인드 채용에서 마지막 면접에 오른 10명 중 여:남 비율이 8:2였을 때, 남자애들 둘이 면접도 보기 전에 서로 얼굴 보며 씩 웃었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네들은 둘 다 뽑혔다 싶었다나. (실제로 최종 합격한 그 둘 중 하나가 나의 후배였으니 바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도 역차별이니 뭐니 하고들 앉아 있으니 원. 어느 조직이든 최고권력자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들은 그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를 줄 알며 성폭력도 그 권력의 범위 안에 있다고 당당하게 믿는다. 드물게 여성들 중에도 최고 권력자에 올랐던 박씨와 최씨가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하긴 그들이 꼭두각시였으니 정치인들이 다 알고도 마음대로 하려고 대통령에 앉혀놨을 거다. 이용해먹기 얼마나 좋았을까. 

무서운 말이기는 하지만 '강간'이라는 말보다 범위가 모호하고 순화된 성폭력이라는 말이 공적으로 사용된 이유가 뭘까 궁금한 적이 많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의 구분도 가만 보면 가해자들이 빠져나가기 더 쉬운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강간문화에 대한 미화가 아니고서야 대체 왜? 성폭력 범죄자 주제에 사회적인 비난 앞에서 사과하는 척 하다가 뒤로는 명예훼손 소송으로 겁박하는 뻔뻔한 유형도 기막힐 노릇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피해자들이 범죄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는데 왜 그게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썩어빠진 세상.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는 건 맞지만 사회에 만연된 성폭력 문제에 관한한 좀 더 급격한 변혁이 필요하다. 파렴치한 괴물들은 다 처단하고, 예비 괴물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성문화 밑바탕부터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우선 남녀는 꽃과 나비가 아니라... 그냥 다 같은 인간이고 나무라고 가르치는 세상이어야 할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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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는데;;

투덜일기 2018. 1. 31. 22:26


어제 꽤 많은 눈이 내렸다. 처음엔 정말로 재가 날리나 싶었던 가는 눈발은 어느틈에 함박눈으로 변했고 두어시간 사이 수북하게 싸였다. 해저문 저녁 왕비마마 등쌀에 또 내려가 아픈 손목으로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었다. 이젠 정말 이 건물에 눈 쓰는 사람이 나 아니면 울엄마뿐이다. 아래층 101호 아저씨는 늘 한밤중에 귀가해 오전내내 자는 것 같고 (그래서 종종 밥때를 놓쳐 마당에 묶인 개가 한밤중에 쇠사슬을 쩔그럭거리며 빈 밥그릇을 발로 차는 게 아닐까) 새로 102호 이사온 사람은 얼굴도 본 적 없고 가끔 밤에 불이 켜진 것만 보았는데... 어제 보니 마당 눈을 밟고 망설임없이 집으로 들어갔더라. 하긴 나라도 이런 집에 세들어 살면서 마당 쓸기 의무를 느꼈을 거 같진 않다. ㅋㅋ 그러나 또 착한 나와 엄마는 맨날 아래 두 집 현관 앞과 계단까지 눈을 쓸어준다. 야박하게 계단에서 우리집 현관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만 내는 건 또 좀 아니다 싶어서... 다행히 어제 눈은 별로 수분이 없어 무겁지 않았고 금방 쓸렸다. 다행히도.

째뜬 아마 무릎이 아프지 않았으면 오늘 신이 나서 눈 밟으러 동네 앞산에 올라갔을 텐데 ㅠ.ㅠ 나중을 기약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미끄러운 눈길에 발목과 무릎에 힘주어 걷다보면 멀쩡한 다리도 퍽퍽한데, 괜히 넘어지기나 하면 큰 낭패. 못 간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바닥 울퉁불퉁 안 미끄러운 패딩 부츠 신고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 나무에 쌓인 눈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투덜투덜 커피나 마시자 생각하며 휴대폰에 든 설경 사진을 되돌아보는데, 어랏 맞다, 적년 겨울엔 앞산에 눈 구경 가서 동영상도 찍었었지! 하는 깨달음. 그리고 마침 어제 여기 동영상을 직접 올리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겠다, 곧바로 활용해야지.

휴대폰 스피커로 듣는 바람 소리랑 컴퓨터 스피커 바람소리는 확실히 다르다. 그간 계속 욕만 했는데 ㅋㅋ 새삼 쓸만한 티스토리.

그치만 동영상 초보라 가만히 못 들고 있고 이리저리 휘둘러대서 좀 어지럽다고 미리 고백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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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초염

투덜일기 2018. 1. 14. 14:11

처음 아팠던 게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설날이었던가 어느해 명절에 힘든 노동을 다 견디고 난 다음날, 스트레스 풀러 약속을 잡았는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일이 갑자기 고통스러웠다. 발을 디딜 때 아픈 게 아니고, 다리를 접을 때 무릎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던 거다. 그날 하루 종일 절뚝이며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명절에 너무 오래 서 있어서 그랬나보다 막연히 생각했었다. 푹 자면 낫겠지.

당시에도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통증이 반복되기를 여러 달. 문득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겁을 내다 결국 정형외과에 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관절도 연골도 이상은 없다면서, 의사는 다리 근육강화 운동을 좀 열심히 하라고 했다. 소염진통제를 한 이틀 받아왔던가. 언제 그랬었나 싶게 무릎은 곧 멀쩡해졌다. 스트레스성 상상통이었나 싶을 정도로. ㅎㅎ

그러고는 또 몇년. 그 사이 나는 놀랍게도 '등산인'이 되었다. ^^; 2016, 17년엔 하루 20km가까이 걷는 것도 예사인 서울 둘레길도 걸어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만 했을 때는 무릎 통증이 재발되지 않았었는데, 아스팔트 걷는 길도 많은 둘레길이 문제였던가? ㅠ.ㅠ 암튼 작년부턴 등산을 3시간 이상 하면 꼭 내려올 때 무릎이 아팠다. 왼쪽 다리가 아플 때도 있고 오른쪽 무릎이 아플 때도 있어 통증이 왔다리갔다리 했었는데, 12월부턴 계속 오른쪽 무릎만 아팠다. 그리 많이 걷지도 않는 날이었는데, 산에 올랐다가 간식 먹으며 좀 쉬다보면 일어날 때부터 다리가 뻣뻣하고 무릎을 접을 때마다 아팠다. 젠장..

1월 첫 등산인 북한산 백운대를 갔던 날도 내려오면서 퍽 고생을 했다. 많이 아파서 오른쪽 무릎을 세게 짚을 수가 없으니 왼쪽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고, 결국 다음날엔 양쪽 다리가 모두 아팠다. 왼쪽은 근육통, 오른쪽은 원인 모를 통증. 하루 푹 자고 나면 증상이 사라지곤 했는데, 이젠 며칠 지나야 멀쩡해졌다.

올해 결심 중 하나는 등산을 다시 열심히 다니는 거여서, 엊그제 다시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사실은 오른쪽 손목도 아픈지 꽤 된 상황이었다. 영화 번역 작업을 하면 장면 시간 맞춰 일일이 자막을 넣어 자막 파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마우스를 엄청 많이 써야 하고 그런 날은 당연히 손목에 무리가 갔었다. 멀쩡한 것 같다가도 병뚜껑을 열어야 할 때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든지, 손목을 아래로 꺾으면 아픈 정도. 직업병이려니 하면서도 째뜬 이참에 다 물어보았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은 뒤 건초염 진단을 받았다.

관절과 연골엔 여전히 이상이 없고 힘줄에 염증이 생긴 거란다. 무릎과 손목이 아파서 왔다는 내 말에, 의사는 통증 부위에 무리가 가는 일을 했느냐는 질문보다도 먼저 평소 몇시에 자느냐고 물었다. ㅠ.ㅠ 어... 좀 늦게 자는데요. 주로 밤에 일을 해야 해서...  불면증도 좀 있고... 대번에 그게 원인이란다. ㅎㅎㅎ 잠을 제때 안 자면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고 그래서 염증이 쉬 발생한다고. 에고. 

바닥에 양반다리하고 앉지 말것, 관절을 심하게 꺽는 자세는 피할 것, 가능하면 일찍 잘 것, 내리막길은 피할 것.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잘 낫지 않는 병이라며 소염진통제 처방과 물리치료를 병행하자는데, 내가 다시 물었다. 실은 내일 등산을 가거든요. 가면 안되나요. ㅠ.ㅠ 의사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등산은 관절을 희생해서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어느 기관을 튼튼하게 할지는 본인이 선택해야겠죠. 건초염에 안 좋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셨네요. 잠도 제때 안자고, 등산 다니고... 헐. 

나는 숲에 가야 불면증이 낫는다고 변명했고, 의사는 정 좋으면 어쩔 수 없다면서 등산을 가야겠거든 스틱을 꼭 쓰라고 조언했다. 고주파 치료, 자기장 치료, 찜질 등등의 물리치료를 받고 났더니 신기하게도 다리가 말짱해졌다. 아싸... 좀 불안했지만 소염진통제도 먹었겠다 다음날인 어제 아침 압박밴드로 오른 무릎을 단단히 감싼 채 괜찮겠거니 싶어 꾸역꾸역 등산을 따라갔다.

올라갈 때는 정말로 아픈 줄도 모르겠고 멀쩡했는데 2시간이 넘어가고 하산길이 이어지자 점점 무릎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절룩거리는 나를 보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어우 씨 짜증나고 창피해서 원. 신년산행이고 이후 행사가 있어서 7km정도로 산행이 짧아 다행이지 더 높고 긴 산행이었으면 큰고생했을 것 같다. 통증은 내 문제이지만, 단체 산행에서 홀로 행동이 느려지는 건 남들에게도 민폐가 되는 짓이라 앞으로도 걱정이다. 과연 완전히 다 나아서 산에 계속 열심히 다닐 수 있을까? 

어제 송송송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산에 오르는 기분 정말 좋았는데 ㅠ.ㅠ 벌써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런 내 마음이 무식한 고집일까 아닐까,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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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여동생

투덜일기 2018. 1. 12. 21:17

벨로의 반려묘 귄이와 여동생 고양이 쥬비의 소식과 사진을 간간이 접하며 나도 모르게 슬몃 미소를 짓는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다. 고양이는 쳐다보는 것도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귄이 등을 쓰다듬었던 그 감촉도 생생하다. 생각보다 털이 꽤나 빳빳한 느낌이라 의외였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유일한 파랑이의)개털이랑 확실히 달라!

암튼.. 큰동생네 개 파랑이에게도 얼마전 여동생이 생겼다. 이름은 라거. 보리 빛깔이라서 맥주가 연상되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단다. 귀여운 암컷 강아지에겐 좀 안어울리는 듯도 하지만, 뭐 내가 인간도 중성적인 이름을 좋아하듯 남성적인 이름을 지닌 암컷 골든리트리버를 누군가는 멋지다고 해주기를. ^^ 어마어마하게 덩치가 커지는 개를 아파트에서 키우기로 한 동생네의 결정에 일단 우려를 금치 못했지만 뭐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저질러진 일이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 저래라 뒷말을 하겠나. 다만 중성화 수술을 했으되 수술 직전에 딱 한번 짝짓기의 맛(?)을 본 터라 가끔 수컷의 본능인지 인형에게 수상쩍인 부비적거리기를 시전하는 파랑이는 어쩌라고 여동생 강아지를 들여왔나, 파랑이가 좀 불쌍하긴 했다.

다행스럽고 기쁜 건 귀여운 새 반려견이 들어오면서 온 가족이 똘똘뭉쳐 파랑이와 라거를 같이 챙기며 마구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애견 펜션엘 갔다질 않나, 파랑이와 라거를 조카 둘이 서로 자기 새끼라며 각각 데리고 잔다질 않나, 새로운 강아지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는 엄마의 편애를 아이들이 나름 알아서 보완해주는 모양이다. 기특한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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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필적 고의

투덜일기 2017. 10. 26. 04:02

엄마네 집 아래층 101호 아저씨가 우리한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뒷마당에 시커먼 래브라도리트리버를 기른지 1년이 넘었다. 이사 오던날 '맹인 안내견'이라고 울 엄마한테 이야기했다는데, 알고보니 그건 진짜로 그 개가 맹인안내견 역할을 한다는 게 아니고, '맹인 안내견으로 쓰이는 품종'이라는 말이었던 듯, 그 개는 늘 뒷마당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처음 적응기에 동네 길냥이들과 밥그릇 다툼을 하면서 밤중에 컹컹 울어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녀석은 조용히 있는듯 없는듯 시끄러운 소음을 내진 않았다. 그렇다고 존재감이 없느냐! 그건 물론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덩치로 넓지도 않은 마당 한 귀퉁이에 묶여 노상 오줌을 갈겨대니 그 악취가 ㅠ.ㅠ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바로 옆102호 세입자와 싸움이 나기도 했다. 101호 세입자가 자기네 집 앞쪽도 아니고 왜 남의 집 안방 창문 딱 열면 보이는 뒷마당에 그 큰 개를 묶어놓았느냐고, 악취 때문에 여름에 문도 못 열어놓는다고... 경찰에 신고도 하고 구청에 민원도 넣어 공무원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런 경우 딱히 무슨 제제 방법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암튼 102호 살던 세입자는 얼마 전 이사를 나갔고, 그집엔 다시 갓난아기와 반려견 한 마리를 키우는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다. 주로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아주 가끔 새벽에 응애응애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릴 뿐, 온 동네 개판 느낌의 소음으로 나를 괴롭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월요일 저녁, 왕비마마와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늘 뒷마당에서 고개만 삐죽 내밀고 오가는 우리를 쳐다보던 녀석이(이번 개는 이름도 모른다. 아래층 아저씨가 안 가르쳐줬다;;) 앞마당 계단까지 내려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주차를 하는 사이 먼저 내려 계단을 오르시며, 개를 무서워하는 왕비마마는 저리가라고... 할머니는 개 싫어해! 그런 얘기를 녀석에게 중얼거렸다.

그간 우리 모녀는 아래층 101호 아저씨를 꽤나 욕했다. 아니 개를 키우려거든 맨날 운동도 시키고, 목욕도 자주 시키고 냄새나는 오줌도 잘 처리해야지 맨날 묶어만 놓고 뭐하는 짓이냐고, 개 키울 자격이 없다고... 말이다. 주인이 혹 사료 주는 걸 잊은 날인지, 한밤중에 스텐 밥그릇을 발로 차 소리를 내며 배고픔의 시위를 벌이는 적도 간혹 있었기 때문에(조카네 개 파랑이가 밥그릇과 물그릇이 비면, 발로 땅~ 차서 소리를 내는 걸 봐서 같은 행동으로 짐작했음;;), 게으른 아저씨가 밥도 잘 안챙겨준다고 우린 굳게 믿고 있었다.  

앞마당에 나와 있는 녀석을 본 순간, 어라 우리가 오해했나? 저녁마다 운동 시키는 시간인가? 아니면 대변을 보게 풀어주는 시간인가? 데리고 나가려고 일부러 풀어준 건가? 주인은 잠깐 집에 들어갔고? 뭐 이런 생각이 차례로 뇌리를 스쳤다.

실제로 맨날 깜깜하게 불이 꺼져있던 아래층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좀 불안했다. 주인이 개를 풀어준 게 아니고, 그냥 끈이 풀려서 녀석이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면 어쩌지? 개끈 풀렸다고 아래층 사람한테 이야기를 해줘야하나? 아니지, 괜한 오지랖이면 민망하잖아! 

시커먼 그림자 같은 녀석은 계속해서 앞마당과 화단을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귀찮아. 나는 아래층 현관을 두들겨 말을 해줄까 말까 약 15초쯤 망설이다, 대인기피증이 도져 그냥 2층으로 올라와버렸다. 

맹인 안내견을 할 만큼 똘똘한 녀석이면 끈이 풀렸더라도 뭐 어딜 가진 않겠지. 가면 또 어때! 맨날 묶여서 제 자리에 똥오줌만 싸고 있느니 자유롭게 떠나서 새 주인 만나는 것도 좋을지도 몰라! 그럼 드디어 우리도 지독한 개오줌 냄새에서 해방될 거야... 금세 내 머릿속에선 이런 고약한 상상까지 펼쳐졌다.

그러고는 오늘 수요일. 외출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검정 개가 정말로 안보인다고 개 끈 풀렸던 그날 도망간건가? 아니면 주인이 그날 어디 딴 데로 데려다준 건가... 개 끈 풀렸다고 101호에 얘기해줄 걸 그랬나... 중얼중얼했다.

으음. 아마도 이런 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유기? 뭐라고 불러야하지? 내가 주인도 아닌데 유기는 아닌 것 같고? 방치? 아래층 아저씨는 개가 없어진 걸 알고나 있을까, '개를 찾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도 붙이지 않았다는데,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는 건가, 진짜로 없어진 게 아니고 딴 데다 데려다준 걸지도 모르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일말의 책임감과 죄책감이 든다.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간 강아지는 며칠 안에 주인 못 만나면... 으으. 찜찜하다. 가뜩이나 이웃집 개에 물린 뒤 패혈증으로 숨진 사건으로 모든 반려견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못한 요즘, 진짜로 끈이 풀려 도망 나간 거라면 덩치도 큰 놈이 홀로 돌아니며 위협적으로 보일텐데 싶기도 하고. 아무튼 진실을 모르니 결론은 나지 않는 혼자만의 고민이다.  

그나저나 글도 잘 안올리는 블로근데 여기 조회수 왜 이러지? 티스토리에서 뭔가 야로를 부리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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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갈비 김치찜

투덜일기 2017. 10. 24. 23:05

10월도 다 지나가는데 아직도 4월 여행기를 마무리 못했다니. ㅠ.ㅠ 이러다 쌘이처럼 그냥 방치하다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들어 짬내서 비공개로 이어쓰기를 시도하고는 있으나,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 이어지니 그 또한 끝내기가 쉽지 않다. 

괜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니지만 여행기 마무리 전엔 또 다른 포스팅을 줄줄이 이어쓰기도 기분이 찜찜했다. 예전처럼 블로그 포스팅을 자주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생각해서 끼적이는 게 왜 이리 어렵지?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부담감과 거리감을 없애보겠다고 여행기를 열심히 쓰자 결심했었구나. 암튼... 여기저기 sns에 찔끔찔끔 뭐하는 짓인가 싶다. 암튼 원래는 아까 저녁 준비하며 인스타 용으로 희희낙락 사진을 찍었으나 결론적으로는 '분노의' 험담을 길고 길게 달것 같아 결국 블로그로 옮겨왔다.

여행기는 뭐 생각나면 다시 쓰든지... 말든지... ㅋㅋ


아래는 오늘 내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저녁 메뉴로 요리한 '등갈비 김치찜'의 자태다. 그럭저럭 먹어줄만 하게 생기지 않았느냐고!!!! ㅠ.ㅠ 

그 어디도 찾아보지 않고 그냥 내 머릿속으로 상상 혹은 기억을 더듬어 만들었으므로 누구에게도 맛을 장담할 순 없으나 내 입맛엔 흡족했던..<간단 레시피>를 적어보면 이러하다.

1. 큰 냄비에 물을 끓이다가 돼지 등갈비(씻으면서 잠시 핏물 빼놨음)를 덩어리째 넣어 살짝 데친다. (돼지 갈비의 누린내와 핏물을 더 빼내는 거라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

2. 절반쯤 익은 등갈비의 뼈 사이사이를 가위로 쓱쓱 잘라준다.

3. 자른 등갈비를 찬물에 후딱 헹군다.

4. 등갈비를 포기 김치 윗동을 잘라낸 배춧잎으로 하나하나 돌돌 말아 새 찜냄비에 앉힌다.

5. 다시마, 표고버섯, (냉동실에 들어 있던) 저민 생강 몇 조각, 국물용 멸치 3-4마리 투척 후 김치에 만 등갈비가 확실히 잠길 정도로 찬물을 붓고 40분간 끓인다. 처음엔 센불로.. 나중엔 약불로. 

6. 중간쯤에 생강과 멸치를 건져버린 뒤, 설탕 1티스푼 추가 (대충 요리의 달인? 답게 어느 시점이었는지 까먹음).

7. 개인 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나 소금을 더 넣어도 좋겠으나 매운 거 싫어하는 고혈압환자 고객님 입맛에 맛추어 아무것도 더 넣지 않았음.​


물론 그릇에 담으면서 아 먹기 불편하겠다 싶긴 했다. 이거 원 사진촬영용이지 막상 먹으려면 김치에 가위질을 해야하지 않겠나 말이다. 처음부터 잘라서 할 걸 에라이...

그치만 또 등갈비 한대랑 김치 한줄기랑 비율 맞춰 먹으라는 깊은 뜻이 있겠거니... 개인접시를 식탁에 놓았다. 요리 중 국물맛을 보았을 때 나는 이미 요리 완성도에 자신도 있고 흡족했다. 오.. 깊은 맛이 나! 오.. 돼지 냄새도 거의 안나! 간도 슴슴하니 딱 맞아! 이런 자뻑모드에 돌입했던 것.

그러나 왕비마마가 또 누구신가. 입에 발린 말이라곤 절대 할 줄 모르고, 오로지 '진실과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걸 자랑으로 여기시는 분.

그걸 잘 알기에 맛있다고 칭찬해줄 것을 기대하진 않았으나.... 요번에도 왕비마마의 첫 마디는 "왜 이렇게 매워!"였다. 어윽... 그러더니 내가 일회용 장갑 양손에 끼고 일일이 돌돌 말았던(대체 나 왜 그랬던거니!!) 김치를 단숨에 풀어버리고 알맹이 등갈비만 쏙쏙 뽑아 냠냠 '맛있게' 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갈비라도 맛있다고 여겨주셨으니 감사할 따름이어야 하는 건데 왜 난 분노했을까... 에효. 


그간 나의 요리에 대한 왕비마마의 촌철살인 순위 1, 2, 3위를 이참에 공개한다. ㅋㅋ

1. 요리하는 냄새는 맛있는 것 같던데 막상 먹어보니 별 맛 없구나

2. 생김새만 그럴듯하지(내가 비주얼에 치중한다는 뜻) 먹을 건 별로 없네

3. 엄마 입엔 짜다(혹은 맵다)! 

그러니깐 요번엔 3번 당첨이다... 


거짓을 꾸며낸 게 아니고 있는 그대로'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청구가 가능한 것처럼... 정말로 맵거나, 별맛 없거나, 맵고 짠 게 '사실'이더라도 낑낑대며 요리한 사람의 정성을 봐서라도 그런 생각은 좀 속으로 하시거나 나중에 시간 좀 흐른 다음에 넌지시 얘기해달라고, 까칠한 딸에겐 그런 촌철살인 코멘트가 다 괜한 상처로 남는다고(밥순이 노릇 하기 싫어진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만족시키긴 또 얼마나 까다롭고 어려운 고객님이신지 원. 그러면서 밖에 나가서 사먹자고 그러면 니가 만든 게 더 낫다는 말이나 하시질 말든지! ㅠ.ㅠ

암튼 오늘도 까칠한 딸년은 밥상머리에서 첫술부터 푸르르푸르르 분노에 떨며 저녁을 먹고는 속병이 나 위가 아프다. 이건 아마도 마감 스트레스겠거니, 아니 한달 넘게 이어진 간병 스트레스겠거니.. 그러면서 부디 대나무숲 같은 이곳에 떠벌인 것으로 좀 나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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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석달만에 미용실엘 다녀왔다. 3월중순인가 말에 갔었으니 꼬박 석달만이다. 머리가 단발을 훌쩍 넘어, 요즘 같은 더운 날엔 질끈 묶지 않고는 목덜미에 치렁치렁 간질간질 아주 괴로웠다.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못 견디고 달려나가야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 그런 순간을 조금만 견디면, 아니 그럴 때 앞머리만 내손으로 살짝 잘라주기만 해도 또 한두달은 너끈히 참고 버틴다. 미용실에서 멍하니 몇시간씩 기다려야하는 게 너무도 힘겹고 시간도 아깝기 때문인데... 그런 힘겨운 시간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건 친하지도 않은데 어색하게 이어가야 하는 대화와 더불어 요즘 미용실에서만 쓰이는 듯한 특별한 언어습관 때문인 것 같다.

맨날 뭘 그렇게 도와드리겠다는 거냐!

주로 보조역할을 하는 직원들이 쓰는 말인데... 자기가 행동 주체인데도 계속 도와주겠다고 말을 한다. ㅠ.ㅠ 

자리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가운 착용 도와드리겠습니다.

샴푸실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대 (착용이라고 그랬던가? 샴푸하는 동안 눈에 작은 수건 같은 걸 얹어주겠단 얘기다) 어쩌구... 도와드리겠습니다. 

마사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샴푸 마무리 도와드리겠습니다. 

타월 드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다시) 자리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20분 뒤에 컬러 체크 도와드리겠습니다.... 으악! 그만 좀 하라고! 도와주긴 뭘 도와줘! 그냥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되잖아!...라며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내 담당인 원장님은 카리스마 덕분인지 저런 언어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엔 머리에 시술하는 모든 내용과 절차를 소비자에게 통보하는 게 상도의인지 그냥 처음에 설명했으면 그대로 묵묵히 순서대로 하면 좋겠구만, 두피 상태를 확인하겠다(소형 특수 카메라로 찍어서 막 보여준다. ㅠ.ㅠ) 스켈링을 하겠다, 세럼을 바르겠다....계속 과정을 설명한다. 때때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네. 네 그럴 때가 많다. 대답 안하면 또 한번 더 말해주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고.. ㅠ.ㅠ  

언젠가 포스팅에도 커트 잘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괜한 말 안 시키는 미용실이 내겐 꿈의 미용실이라고 했었는데... 그런 곳을 찾는다는 건 이제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런데 찾아다니겠다고 마루타 실험하듯 싸지도 않은 커트 비용 들여가며 메뚜기처럼 미용실 순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원. 째뜬 이 미용실 다니고부터 머리숱 많아졌다, 머리결 좋아졌다.. 그런 소리를 많이 듣고보니 딴데로 바꿀 엄두도 나지 않는다. 머리칼이 갈수록 가늘어져 히마리가 하나도 없는데 숱 많아보이면 장땡이지.

암튼 너무 오래간만에 간 탓에 그간 엉망이 되어버린 머릿결 복구와 멋내기 염색(꿈의 카키색으로! ㅋㅋ)을 한꺼번에 하느라 장시간 주리를 틀듯 괴로웠는데, 거기다 직업병 있는 사람 고문하듯 자꾸만 말도 안되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거의 5분, 10분 간격으로 들으려니 미치는 줄. 

미용실에서 2시간 넘게 버티는 거 진짜로 싫어하는데... 다음엔 지레 저놈의 이상한 도와드림 화법 스트레스로 더 미용실 가기가 꺼려질 것 같다. 그나마 5만원이십니다.. 따위의 이상한 말투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던데 제발, 도와드림 화법도 사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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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다

투덜일기 2017. 5. 6. 15:17

가슴 벅찼던 콜드플레이 공연후기부터 써야 블로그에 대한 예의(?)일 것 같은데 요즘 같아선 뭐든 후기를 잘 못쓰겠다. 알량했던 1/4분기 독서후기도 그렇고, 영화 얘기도 그렇고... 두뇌가 수시로 딱 먹추는 느낌이랄까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건 확실한듯.

암튼 그러는 가운데 또 정신없이 짧은 기간 동안 시간을 거슬러갔다가(거슬러 간 게 맞나? 질러간 건가?) 왔더니만 가서도 계속 빌빌, 와서도 빌빌 도무지 '적응'이라는 게 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게 속일 수 없는 내 나이 탓이려니 단념해야 하나? 심지어 어제는 동네에서 지하철을 반대방향으로 타고 두 정거장이나 가다 내려 바꿔타야했고, 결국엔 집에 오는 길에 현금 5천원과 후불교통카드가 든 카드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어쩌면 이건 정말로 시차 부적응 탓이 아니라 그냥 중년건망증이 심해진 걸지도. 

아무튼 주변에 무엇하나 마음 편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괴로운 집안사는 집안사대로, 밀린 일은 일대로, 인간관계는 또 그대로... 근데 왜 또 무리까지 해서 여행은 떠났는지. 참 내. 물론 오래 망설였지만 확 저질러서 좋았고 조마조마하던 몇달을 거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해서 좋았고, 2주간은 그야말로 꿈결처럼 행복했다. 어제 트위터에서 <호텔>이야말로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라는 말을 보았다. 아침밥 주지, 청소해주지, 매일 보송한시트 갈아주지, 전화하면 새 타월 갖다주지... 거기다 침구류는 또 최고급아닌가. 친구네 집을 베이스로 주변을 돌아다닌 게 아니라, 아예 계속 차로 도시를 바꿔가며 10박11일을.. 그것도 친구 언니가 회원인 덕분에'메리엇 호텔'로만 돌아다니다 내 여행 인생에서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싶다.   

패키지 여행 못지 않게, 잘 곳, 볼 곳, 놀 곳, 먹을 곳... 거의 모든 걸 다 결정해놓았거나 알아서 결정해주는 주동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안심되고 째지게 편하든지! 친구 언니가 세운 계획에 맞춰 친구와 나는 그냥 녜녜, 좋습니다, 좋아요,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덕분에 3킬로그램쯤 늘어 얼굴 주름이 다 펴지도록 빵빵한 풍선이 되어 돌아왔지만, 그마저도 좋다고 생각됐다. 그래 난 원래 호빵같은 얼굴이 캐릭터니깐 뭐...

그럼에도 일은 놓지 못하고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 처음 며칠은 밤중에 홀로 청승을 떨었고, 차로 움직이는 이동시간이 길 때는 데이터 로밍을 해갔어도 틈틈이 잘 터지지도 않는 인터넷을 찾아헤매며 국내 뉴스와 SNS를 기웃거렸다. 내가 겨우 이럴라고 촛불 들고 그 추위에 떤 게 아닌데 싶은 실망감에서 오는 불안과 조바심? 그래도 지난 대선에선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했지만--물론 그렇다고 ㅂㄱㅎ가 대통령 되는 걸 막진 못했었지--이번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투표할 여건이 된다는 것을 기뻐하기로 했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운 점이 많은 대선후보였지만 와.. 아무리 표가 급해도 반대할 게 따로있지.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사람일세. 싫다싫다하니깐 ㅁㅈㅇ, ㅇㅊㅅ 둘 다 이젠 표정도 싫고 목소리도 말투도 다 싫다! 대선 토론에서든, 공약에서든, sns 홍보전에서도 역시 심블리 상정언니가 쵝오~! 두자리수 꼭 넘겨서 반드시 선거비용 보전시켜드리리. 

수시로 졸리고 잠들었다가 엉뚱한 시간에 깨어나기를 닷새째 하고 있는데, 머리가 멍해서 일도 독서도 불가능하고 그저 최대치로 늘어난 위장에 먹을 거 채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오늘은 그래도 새벽 5시에 잠이 깨 빈둥대다 배고픈 걸 참고 참다 계란찜과 두부부침으로 나름 거하게 아침상을 차려 엄마와 함께 먹었다. 보름간 냉장고에 붙여두고 간 국과 밑반찬 계획표에 따라 성실히 살았노라고 자랑하시는 왕비마마 보필은 오히려 돌아와서 빌빌대느라 더 못했다. 내일 어버이날 디너 먹는 걸로 퉁치기엔 좀 그러니 또 당일엔 장봐다가 무슨 요릴 해드려야 고객님이 흡족해 하실까나. 

어느새 5월이 이렇게 막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아카시야향이 그윽한데 빌어먹을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도 못열고 이래저래 제기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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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벚꽃일기

투덜일기 2017. 4. 10. 12:40

벚꽃타령을 거의 해마다 빠지지 않고 하고 있는 건 매번 고백하지만 올해로 벌써 10주기가 되는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 때문일 테고, 어쨌거나 올해도 집앞에 벚꽃이 만발했다. 동네 안산 벚꽃길도 지난 주말이 축제기간이었는데,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가 개화일 예측이 어긋나 망해버렸듯이, 이 동네도 엊그제 주말엔 꽃봉오리만 분홍색으로 열렸을뿐 3분의 1도 피지 않았다고 한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주말에 잠깐 엄마 모시고 작년처럼 앞산으로 봄소풍 갈까 했었는데 날도 흐려지고 꽃도 없다니 일단 패스~. 그치만 엄마도 나도 하루하루 팝콘처럼 터져가는 집앞 살구나무와 벚나무 꽃을 매일 베란다에 나가 사진에 담으며 좋아라했다. 꽃놀이가 따로 있니, 이런게 꽃놀이지, 밖에 나가면 시끄럽고 정신만 사납다, 라고 엄마가 말해주어 일단 안심했다.

블로그에 자랑할 만개일을 며칠로 해야하나 분홍분홍하게 꽃눈이 올라올 때부터 관찰하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늘 그래왔듯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봄비가 한번 내렸다. 요즘 미세먼지가 좀 독한가. 혹시 올해 벚꽃은 누렇게 미세먼지에 뒤덮여 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으나 결국 그건 기우였다.

나무 심으라고 하늘에서 일부러 비를 내린 건지,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던 4월5일 식목일에 담은 살구꽃과 벚꽃이다. 한 10분의 1쯤 피었다고 해야하나. 

4월5일 살구꽃4월 5일 벚꽃


비가 내리고 나서 미세먼지가 물러가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던 4월 7일 금요일. (사진을 매일 찍은 게 아니었나보다. 켁..) 살구꽃은 이미 꽃잎이 막 떨어지기 시작했다. ​​

4월 7일 살구꽃 

이 살구꽃 사진 찍어 놓고 들여다 보며 혼자 우와 이거 고흐의 아몬드꽃 필 나는데! 라며 혼자 좋아했었는데 이제보니 하나도 안 그렇다. ㅠ.ㅠ ​

햇살이 찬란해서 오히려 벚꽃이 잘 안나오는 것 같이 필터를 사용했더니만 또 너무 밝다. 

4월 7일 금요일

이미 난 이날로 벚꽃 만개선언을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벌도 엄청 날아들어서 베란다 나가기 좀 무섭고... 살구꽃은 꿀이 많은지 이상하게 생긴 새들이 날아와서 막 꽃을 쪼아먹기도 했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우왕 어제와는 확실히 다르게 꽃이 더 풍성해졌다. 드디어 다 피었군 싶은 느낌. 탐스러웠다. 

4월 8일 역시나 필터 사용

​필터 없이 그냥 좀 당겨서 찍었더니 이런 색감이 나왔다. 흠.. 이것도 예쁘다. 근데 나 참 사진 못찍는다. ㅋㅋㅋ ​

4월 8일 토요일

그리고는 드디어 오늘... 살구꽃은 절반 이상 다 떨어져 마당에 나뒹굴고, 벚꽃도 한잎 두잎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앞산 벚꽃길엔 아직 절반도 다 안피었다는데... 우리집도 언덕이건만, 산밑이라 공기가 더 차가운 건지 높이 몇십미터 차이로 같은 동네라도 개화시기가 그렇게 다르다.  

햇살도 예쁘고, 미세먼지 없는 하늘도 파랗고 예쁘다. 

4월 10일

하여... 올해 벚꽃 만개일은 4월 10일인걸로! ㅎㅎ 이것으로 2017 벚꽃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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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투덜일기 2017. 3. 27. 23:31

인생이 특히나 무의미한 나이대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여전히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 사회와 시국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들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듯 주변에서 자주 묻는다. 넌 요즘 무슨 낙으로 사니?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서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이들이 있을 때는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게 되지 않나? 정말 친한 친구에겐 혼자 있을 때와 똑같은 맨 얼굴을 드러낼 때도 있고 또 못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사람들 앞에선 아주 두툼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도무지 사는 낙이 없는 것 같다는 친구들 눈에 그래도 나는 뭔가 되게 분주하고 희희낙락 꽤나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넌 그래도 신나게 살잖아, 그런다. 아차 싶었다. 내가 행복한 가면을 너무 들이대고 살았던가? SNS가 종종 나 이렇게 바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과시와 자랑의 장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나름 조심한다고는 하나, 솔직히 가끔은 그런 의도적인 과시가 오히려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길가에 피어난 봄꽃, 어쩌다 맛있게 만들어진 국수, 간만에 기분 전환이 되었던 외식 사진을 자랑질하는 이유는 그 순간 느꼈던 소소한 기쁨을 나만 누릴 게 아니라 막연한 공간 어딘가에 박제시켜 두고 호응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관음증 환자처럼 다른 사람들의 그런 순간들 역시 자꾸만 구경다니면 그들의 행복에 나도 전염되는 느낌이 든다. 아주 찰나적인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하여간에 친구의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카톡 창을 이리저리 괜히 두드리다 과도하게 씩 웃는 이모티콘을 먼저 쏘아보내고는, "글쎄... 나도 사실 사는 낙이 별로 없어. 요즘들어 특히 삶이 엄청 구차하다."라는 솔직한 대답은 차마 적지 못하고 (우울한 친구의 기분을 북돋우려는 쪽이었는지, 또 다시 가면 증후군이 도졌는지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꼴 같잖은 잘난 척을 좀 했다.

나야 요새 포켓몬 잡는 재미로 살지! 은둔형 인간이 맨날 포켓몬 잡느라고 괜히 막 나가서 걸어다닌다. 훌륭한 게임이야! (사실은 두달이 넘어가면서 포켓몬 수집욕도 좀 시들해졌다 ㅠ.ㅠ) 음.. 또 5분 스케치도 하잖아... 그림이 안 늘어서 좌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어!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낙은 여행이 아닐까...?

친구는 약간 한심스러운 듯 (그냥 내 자격지심일수도;;) 계속 'ㅋㅋ'라는 반응을 보이다 여행 이야기에 그제야 맞다고, 이제 궁극의 낙은 여행 하나 남은 것 같다고, 근데 그걸 자주 떠나지 못하니 더 암울하다고 대꾸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의 낙이면서 로망이어서,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버티게 만드는 한줄기 희망이자 고문 같은 게 아닐까나? 여행 가고 싶단 생각 들 때마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휴가 한달 신나게 놀려고 1년 꼬박 직장 다닌다는 선진국 국민이 아니고서야 원...

게다가 걱정대마왕이자 불안증환자로서 나는 어디서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그만큼 사전준비도 쉽지가 않다. 말로는 훌쩍~ 이라고 하면서도 대체로 여행지부터 예산까지 미리 한참 고민고민하다 떠나는 편이다. ^^ 그나마 아버지가 계실 땐 그래도 기회 봐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후다닥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젠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도 떠나는 날 직전까지 과연 이 여행이 가능한가 너무도 불안하다. 이래서 가족은 울타리면서 동시에 역시나 멍에였어! 라며 짜증부리게 되는 거다. 물론 요즘 가족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사정이지만. ㅠ.ㅠ (버는 것도 변변찮은 니가 지금 여행이나 다닐 때냐!)

암튼... 사는 낙도 없고 애들 뒷바라지도 지겹고 밥먹는 것도 구차하고 억울해서 식욕이 없다는 친구의 하소연에 나까지 한숨이 나면서 맥이 빠졌다. 천고마비의 계절도 아닌데 막 식욕이 돋아서 먹고 싶은 거 생각날 때마다 꾸역꾸역 찾아 먹어대는 내가 식충이 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느낌. *_* 

카르페 디엠, 하쿠나마타타, YOLO...이렇게 맥빠질 땐 별별 주문을 다 외워도 소용이 없다.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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