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꽃 아니고 나무거든요!" 그 옛날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쌈닭모드로 돌변해 내가 종종 외쳐대던 말이다.
첫 직장이었던 미국 회사에서 인종차별에 열받아 이직한 한국 회사는 당시 중소기업 분위기가 다 그런 것이었는지 여직원들에게만 임직원 취향에 맞는 투피스 유니폼을 입혀놓고서(여직원회에서 고른 서너벌의 후보작을 실제로 여직원들이 입고 패션쇼 하듯이 임원실을 돌며 최종 낙점을 받았다. 와 지금 생각해도 열받는다;;), <여직원은 사무실의 꽃>이라는 전제 아래 온갖 허드렛일과 잡무를 시키며 꽃처럼, 아니 하녀처럼 묵묵히 지들 시중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92년 즈음의 일이다.
난감했다. 미국회사에선 그래도 남녀차별은 없었고, 지점장도 커피는 제손으로 타 먹었는데 맙소사. 똥밟았나. 회사를 잘못 선택했나. 고민이 많았다. 그뿐인가, 부서별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기생집에 가서 애첩 끼고 앉듯이 나이 어린 여직원들을 주로 부서장들 옆에 사이사이 끼워 앉히고는 술을 따르게 했다. 술 약한 여직원에게도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들어놓고선 다음 날 킬킬대며 그들의 실수를 농담 삼아 씹어댔다.
그 옛날엔 회식 때도 2차로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 가는 걸 당연시했고, 여직원들은 부르스를 추자는 놈팽이들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니지 않으면 억지로 끌려나가 '안겨야'했다. 참 폭력적인 조직 문화와 성희롱, 성추행이 '친선도모'라는 핑계로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회사일로도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데다가 보수적인 조직문화에 회식 자리 불편함까지... 총체적인 불만에 휩싸인 나는 상사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어 가끔 막 들이받았다. 술 핑계로 니들이 함부로 행동한다면 어디 니들도 한번 당해봐라 그러면서 야, 김대리! 이부장! 너 진짜 재수없거든! 여직원들 술 먹기 싫다는데 왜 자꾸 억지로 먹여! 나도 욕할 줄 알아, 씨*! 뭐 이런 식이었다. 쌈닭 레벨 최고치에 달했던 당시 '왕언니'로서, 손버릇 나쁘기로 유명한 놈에게는 한두번 경고하다가 얼굴에 술을 뿌린 적도 있었다. 물론 내가 정신줄을 놓을 만큼 취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몇번 그렇게 의도적인 진상을 부리자, 일단 여직원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는 사라졌다.
나름 꽤 중요한 해외 업무를 홀로 도맡아 하고 있는데, 회사 25년 역사상 '유일한 경력직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계속 물을 먹으며 때려치울까 말까 고민하던 시기라, 부당한 처사라고 느껴지면 상사에게 종종 대들면서 두렵지도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짤라보시지. 누가 손해인가. 어린 여직원들을 당연히 수족처럼 부리던 놈들에게 나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골칫덩어리였고, 눈엣가시였으나 막상 내가 세게 나가면 비겁한 놈들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여직원은 사무실을 장식하는 꽃도 아니고, 당신들의 하녀는 더더욱 아니라고! 니들 여동생이나 와이프나 애인이 회사 출근해서 이런 대접 받으면 좋겠냐!
각종 기계 매뉴얼과 계약서, 합작투자계획서 따위를 번역하는 것이 토나오게 싫기도 했지만, 회사생활을 관둬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건 결국 보수적인 조직사회와 내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계속 왕언니로 여직원 대표로 목청 높여 싸워대는 것도 너무나 피곤했다. 내가 꽃 아니고 나무라고 버럭버럭 외치는 사이, 그래도 자기는 '꽃'이 좋다며 바쁜 업무보다 화장에 더 공을 들이는 어린 여직원들도 있었다. 자긴 사내 연애 성공해서 결혼하는 게 목표라면서. 7년만에 난 전반적인 사회생활에 환멸을 느꼈다.
결국 사표를 냈고, 진짜로 재미난 번역을 해보겠다고 프리랜서 생활을 선택했다. 사방에서 나 같은 인재를 알아봐줄 것이라고 믿었던, 하늘 높이 치솟았던 자만심은 그러나 금방 꺾였다. 호기롭게 이력서를 들이밀었던 몇몇 출판사에선 내게 습작이 더 필요하다고 권했다. ㅎㅎ 암튼 6개월쯤 뒤 드디어 첫 책의 번역을 맡았고, 내 이름을 옮긴이로 단 번역서가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그게 95년 12월이었다.
초창기 몇년간 드문드문 일이 들어왔지만, 작업 속도도 느렸고 당연히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진 못해 과외로 용돈벌이를 해야했다. 번역가로 자리를 잡으려면 출판계에서도 인맥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아 그렇겠구나. 1년에 한두 권 나왔다 사라지는 번역서로 나를 알아봐주긴 역부족이겠구나. '호의적인' 의도로 출판인들을 소개해주겠다는 이가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당시엔 주요 일간지에 '북리뷰'가 실리면 단박에 만부는 휙~ 팔려나가 매출이 오르던 시기였기에, 출판인들이 모이는 자리엔 종종 일간지 도서담당 기자들도 초대되었다. 출판사 사장님들은 그런 기자들에게 준비해 온 돈봉투를 슬며시 쥐여주었다. 신간 나오면 기사 좀 잘 써달라고 미리 관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갖다 바치는 뇌물이었다. 뇌물 공여자리에 불려나온 나는 뭔가. 혹시 기쁨조?
나처럼 '인맥을 넓히고자' 불려나온 신참 번역가들과 함께 그런 자리에서 밥과 술을 먹으며, 난 왜 여기 나와 앉아 있는가 의아했다. 글도 얼굴이 예뻐야 잘쓰는 거라면서, 책 날개에 실리는 여성작가 프로필 사진에 신경을 쓰라는 둥, 번역가도 약력 뿐만 아니라 사진도 같이 넣으라는 둥, 내 프로필 사진을 예쁘게 찍어줄 사진 기자를 소개해줄 터이니 언제 한번 신문사로 오라는 따위의 이야기가 오갔다. 왁짜지껄 웃으며 옆에 있던 누군가 슬그머니 내 어깨에 팔도 둘렀다. 이전까지 다니던 회사였다면 난 또 상을 들러 엎으며 쌍욕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진정시키며 잠자코 버텼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마지막 회식 자리. 2차로 노래를 부르러 함께 가자던 그들의 손아귀를 세차게 뿌리치며, 그 자리에 나를 부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 저 다시는 부르지 마세요. 어지간히 취한 그 사장님은 저 사람들 알아두면 다 좋은데, 앞으로 도움이 될 텐데, 하며 아쉬워했지만 난 인상을 팍 쓰며 돌아섰다. 차라리 내가 과외를 한 탕 더 하고 말지. 더러운 놈들. 96-7년 즈음에 겪은 일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로 시작되어 법조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학계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폭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 보며, 과연 이 사회의 썪은 부분들 이번엔 뿌리까지 다 도려낼 수 있을까, 아니면 또 슬그머니 잊혀 괴로운 핍박의 역사가 반복될 것인가 염려스럽고 궁금하다.
아직도
기막히게도... 감히 겁도 없이...
술은 장모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지.. 라고 말하거나
음양의 조화를 위해 우리더러 지들 사이사이에 끼어 앉으라든지
당연히 노래방 도우미 취급하려든다거나 (그래서 음주 후엔 아예 노래방에 안 간지 오래)
유머랍시고 성적인 농담을 스스럼없이 해대는 이른바 ’어르신들’ ‘선배님들’이 아직도 내 주변에 있다.
직장 상사들이라면야 사표와 술을 얼굴에 뿌리며 대들고 따지겠지만 (다신 안볼 거니까) 공론화하여 사회적 매장을 시도할지도 모르지만, 대단히 관계가 애매한 친목성 조직의 구성원이라 아직은 정색하고 따지며 반발하고 경고하는 수준에서 대체 앞으로 어디까지 예의를 차려야 하는지 지켜 보는 중이다.
사회생활 회식 자리에서..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에서
성추행 성희롱 한번 안 당하고 이 나라에서 살아온 성인 여성은 단 한명도 없을 거라는데 내 아픈 손모가지를 걸 수도 있다. 본인도 모르게 체화된 더러운 습관이 죄악인 줄도 모르는 괴물들과, 그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동조하고 그저 쉬쉬해서 덮으려고만 한다거나 오히려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파렴치한 이 땅의 시스템은 뿌리가 너무도 깊고 튼튼해서 여간해선 뒤엎기 어려울 것을 안다. 조직의 위상과 명예에 흠이 간다는 핑계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의 침묵을 강요했던가.
작년이었나...
어느 선배님의 습관적인 성희롱 유머 발언에 발끈해 뛰쳐나가 씩씩대는 나에게 또 다른 선배님이 위로랍시고 말했다. 에이 소녀도 아니고.. 새삼 뭘 그런 거 같고 그렇게 반응하냐고.
소녀가 아니니까요! 어렸을 땐 불편해도 대응법을 몰라 그저 얼굴 붉히며 참아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무서울 게 없는 쌈닭 아줌마거든요!
법조계, 문학계, 연극계, 학계, 예술계... 연이어 터져나오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아도 (공무원 사회에서 아직 조용한 건 결국 조직을 떠나겠다는 극한 결정을 해야 성폭력 경험을 증언할 수 있는 폐쇄된 분야라는 뜻이라고 본다) 결국 속속들이 썩어문드러졌다는 의미다. 문단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땐 워낙 거대한 이슈였던 촛불에 묻혔던 것 같은데, 이번 움직임이 부디 세계적인 행사인 올림픽 때문에 묻혀버리진 않기를 빈다.
연극계 괴물이 버젓이 뻔뻔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이미 법적으로는 단죄의 방법이 없다는 교활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175년이던가, 죽어서도 다 못 치를 징역형이 내려진 미 체조계 성범죄자 의사의 경우와 어쩌면 이토록 법이 다른가. 시위할 때마다 맨날 성조기까지 펄럭이며 미국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왜 법규 제정은 미국 따라가자는 말을 안하는 건지 원. 이참에 성폭력 관련 법규들이 제대로 범죄자를 단죄할 수 있도록 국회차원에서 현실적인 법안들이 마련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수사방법과 제도에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와 사회적 고립이 무서워서라도 다시는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더러운 욕망과 손길을 휘두르는 놈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할리우드 미투운동 때처럼 우리나라도 돈 많은 사람들이 턱턱 거액을 기부해 피해자와 실천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가난한 프리랜서인 게 웬수다. 젠장. 일단 국내 최대최강 로펌 중에서 보란듯이 이번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적 대리인으로 나서 변호하며 성범죄 괴물들을 감방에 보내거나 거액의 피해보상금을 빼앗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중등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유도 모른 채 인터넷에 만연한 여혐 분위기와 비뚤어진 성의식에 물든 아이들을 구제하려면 참으로 갈 길이 멀다. 중학교 교실에서 내가 장애, 인종, 성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했던 날, 대뜸 누가 물었다. 선생님도 메갈이에요? +_+ 메갈이 뭔지 나도 모르겠고, 그런 사이트는 사라진지 오래건만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차별에 대한 사고부터 바뀌는 게 시급하다. 아직도 성별 자체가 힘인 경우가 너무도 많으니, 실제로 권력을 쥔 괴물들의 성범죄 수준이 더욱 뻔뻔해지는 게 아닐까.
작년에 실제로 후배들 채용관련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블라인드 채용에서 마지막 면접에 오른 10명 중 여:남 비율이 8:2였을 때, 남자애들 둘이 면접도 보기 전에 서로 얼굴 보며 씩 웃었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네들은 둘 다 뽑혔다 싶었다나. (실제로 최종 합격한 그 둘 중 하나가 나의 후배였으니 바로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도 역차별이니 뭐니 하고들 앉아 있으니 원. 어느 조직이든 최고권력자는 대부분 남자이고 그들은 그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를 줄 알며 성폭력도 그 권력의 범위 안에 있다고 당당하게 믿는다. 드물게 여성들 중에도 최고 권력자에 올랐던 박씨와 최씨가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하긴 그들이 꼭두각시였으니 정치인들이 다 알고도 마음대로 하려고 대통령에 앉혀놨을 거다. 이용해먹기 얼마나 좋았을까.
무서운 말이기는 하지만 '강간'이라는 말보다 범위가 모호하고 순화된 성폭력이라는 말이 공적으로 사용된 이유가 뭘까 궁금한 적이 많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의 구분도 가만 보면 가해자들이 빠져나가기 더 쉬운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강간문화에 대한 미화가 아니고서야 대체 왜? 성폭력 범죄자 주제에 사회적인 비난 앞에서 사과하는 척 하다가 뒤로는 명예훼손 소송으로 겁박하는 뻔뻔한 유형도 기막힐 노릇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피해자들이 범죄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는데 왜 그게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썩어빠진 세상.
서서히 변화가 오고 있는 건 맞지만 사회에 만연된 성폭력 문제에 관한한 좀 더 급격한 변혁이 필요하다. 파렴치한 괴물들은 다 처단하고, 예비 괴물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성문화 밑바탕부터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우선 남녀는 꽃과 나비가 아니라... 그냥 다 같은 인간이고 나무라고 가르치는 세상이어야 할텐데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