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일기'에 해당되는 글 503건

  1. 2020.02.27 80세 2
  2. 2020.01.17 다시 설날 고민
  3. 2019.06.04 예쁘면 뭐든 좋댄다
  4. 2019.05.22 아마도 인생의 전환기 5
  5. 2019.04.08 2019 집앞 벚꽃 2
  6. 2019.04.04 굳이 왜 또... 2
  7. 2018.08.22 마의 2018 여름 4
  8. 2018.07.19 근황 3
  9. 2018.05.07 다시 아까시꽃의 계절 4
  10. 2018.04.24 손목 부실 8

80세

투덜일기 2020. 2. 27. 14:20

10년 전에 엄마 칠순 생일 가족모임을 어떻게 준비하나 고민을 여기 블로그에 적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후딱 10년이 지났고 ㅜㅜ 주말에 왕비마마의 팔순 생신을 맞았다. 작년 생신때는 올해 팔순을 기약하며 아예 동생들도 집에 못오게 했었다. 그때도 병끝이라 엄마 상태가 부실했었기 때문이다.  1년전만 해도 칠순때처럼 팔순 역시 가까운 친척분들은 다 모시고 밥을 먹어야하는 게 아닐까 짐작했지만 1년새 생각이 확 바뀌었다. 다 귀찮아! 준비하는 나의 귀찮음이 가장 크겠지만, 오실 분들도 다 노친네들인데 오라가라 힘드니 안 부르는 게 서로 상책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불과 1달 전만 해도 엄마가 멀쩡히 외식을 하러 나갈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고, 그 말은 조울증세에도 해당된다. 엄마가 심히 아프기 전에 이미 의논했을 때 딴 식구는 절대 부르지 말자고, 우리 삼남매랑 손주들만 모여 평소처럼 조촐하게 밥 먹는 게 좋겠다고 주인공의 동의도 미리 받아놓았었다.

밥먹는 장소도 내 마음대로 정했고 3주전에 예약도 마쳤다. 경치가 밥값의 절반이라는 여의도 사대부집 곳간. 의외의 변수는 코로나19였지만 뭐 차로 이동하고 마스크 쓰고 가면 되겠거니 했다. 9식구 단촐하게 모여 밥먹는 자리라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팔순인데 하나쯤은 뭔가 달라야지 싶어 케이크토퍼를 주문했다. 토퍼까지 아예 세트로 보내주는 화려한 꽃앙금으로 만들어진 떡 케이크를 주문할까 말까도 오래 고민했지만 한식뷔페에 후식으로 떡이 지천일텐데 싶고, 우리 가족들은 몇번 사본 떡 케이크보다 역시 제대로 케이크를 더 좋아하므로 요맘때 제격인 딸기 케이크를 사기로 결정.

케이크토퍼 문구는 대충 샘플에서 이름만 바꾸고 주문했는데 바로 다음날 택배가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대구에서 확진자 폭발하기 직전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요즘엔 뭘 시켜도 빠른 배송이 어려울 만큼 사람들이 생필품까지 배달시키며 사는 듯. 휴...

'팔순축하드립니다' 대신에 '항상 건강하세요'를 넣어야하는 게 아닐까도 좀 고민했었는데 도착한 택배를 보니 이렇게 추가 문구와 하트 두개까지 서비스로 넣어 딱딱한 종이에 단단히 붙여서 보내주더군. 뭘 살 때 잘 모르면 돈을 더주는 게 낫다는 옛사람의 진리를 요번에도 실감했다. ㅎㅎ

토요일 오후, 예약시간보다 넉넉하게 집을 나섰는데 다들 바이러스 공포로 집에 콕 박혀 있을줄 알았더니만 길에 차가 꽤 많았고, 음식점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심지어 바로 옆 연회장에선 결혼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20200222. 2가 무려 5개나 들어가는 엄청난 길일이라 결혼식이 많다는 이야기는 진즉 들었지만 에고.

째뜬 계획했던 대로 조촐하게, 배부르고 뿌듯하게 이른 저녁을 다 먹고는 케이크를 준비해 조용조용 생일축하노래를 불러드린 뒤 엄마에게 소원을 비시라고 했다. 아들놈 하나가 웃으며 '팔십살에도 소원이 있나?'라고 코멘트하기에 속으로 버럭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인간은 죽기 직전까지도 바라는 거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참 내... 


8개의 촛불을 엄마는 네번에 걸쳐 힘겹게 불어 끄셨고, 난 좀 속이 상했다. 원래 케이크 촛불은 거의 한방에 불어끄시는 분이었는데 흠... 사진을 보니 초를 너무 벌려 꽂아놔서 끄기 힘들었던건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로써 우리나이로 80세, 엄마의 팔순 모임이 무사히 지나갔다. 약이 과도해선지 아니면 기억력이 심히 떨어진 때문인지 걱정스러운 수준이 된 건망증도 자극할 겸 열심히 외우게 시킨 영어문장 중 하나. 아임 에이티 이어즈 올드. I'm eighty years old.

헬로우로 시작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동생들에게 퍼돌릴만큼 신나게 읽고 연습하시기에, 이날 손주들 앞에서 뭔가 짧게 영어 스피치도 하시라고 할까 계획했으나 결국 그러진 못했다. 발음도 좋으시고 읽기는 잘 되는데 암기는 어려워. ㅠ.ㅠ  반복 연습을 시키며 내년엔 에이티원이라고 말씀드리니 싫으시단다. 만으로는 에이티잖아. 계속 에이티만 할 거야. 하긴 나도 맘같아선 계속 피프티만 하고 싶다.  

그나저나 나는 팔십세까지 몇년 남은거지? ㅠ.ㅠ 또 10년 뒤면 엄마가 구순이 되시고 난 육십대가 된다는 게 지금으로선 상상도 되질 않는다. 무섭게 흐르는 시간을 이럴 때나 실감하는 듯. 하지만 그냥 하루하루 무심하게 흘려보내며 사는 수밖에 별 뾰족한 수는 없겠다. 가능하면 나이는 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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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설날 고민

투덜일기 2020. 1. 17. 16:56

최대명절 설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또 마음이 무겁다. 아니, 올해는 심히 더 무겁다. 재작년 가족회의를 거쳐서 차례는 연1회, 설날에만 우리집에 모여 올리고 추석땐 성묘를 가서 묘제를 지내는 것으로 결론을 냈었다. 그런데 작년초에 갑자기 내가 아프게 되면서 설날 차례는 결국 못지냈다. 아파서 누웠다가 절뚝절뚝 거리면서 장도 보러 다니고 차례 음식 장만을 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설날과 추석 연휴 모두 이불속에 누워 있거나, 편히 쉬면서 잘 보냈다.

1년 사이 나름 많은 일이 있었다. 남의 집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고부갈등이랄까 '시'자 붙은 사람들과 성 다른 며느리의 시각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사건들이 몇 차례 이어졌고, 내가 아무리 '페미니스트' 시누이로서 중간 역할을 잘한다고 해도 역시나 나도 '시'자가 붙은 당사자이기에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있었다.

암튼 여차저차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기고 남은 결론은 서로 '영원히' 안 보고 사는 것. 두 며느리 중 한 며느리는 없는 셈 치고 살기로 했다. 상황을 정리하기까지 많이 괴로웠지만 사실 나 역시 그 편이 마음이 훨씬 홀가분하다. 명절만 해도 노동의 상당부분을 내가 더 많이 하고 신경도 내가 더 쓰며 배려한다고 살았는데, 이젠 육체적인 노고는 더 많아졌어도 정신적으로는 더 편해졌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머지 한 명의 며느리도 공감했다. 이제 그 사람 눈치 안봐도 되서 마음 놓인다고.

그러나 셋이 나눠 하던 음식 준비중 삼분의 2를 내가 도맡는다고 해도 (녹두전은 이미 공산품으로 나온 걸 여럿 먹어보고 골라서 이미 냉동실에 사다 두었음!), 남자들에게 설거지며 청소 관련 일을 더 시킨다고 해도, 남은 한 명의 며느리 입장에선 그 외 잡다한 명절 노동의 부담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과연 공평한가.

명절 이외에도 우리집엔 두번의 제사가 있다. 조부모님과 우리 아빠. 제사란 것이 음력으로 날짜를 따지다 보니 거의 매번 평일이기 때문에, 멀리 지방 본사로 내려가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아들 하나는 제사 때문에 상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편도 없는데 얼굴도 모르는 시조부모님의 제사를 위해 손주며느리가 음식장만을 해와야 하는 의무는 옳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최선의 결론은 95년과 96년에 차례로 돌아가신 조부모님 제사를 이제 정리하는 것이다. 25,6년이나 정성스레 모셨으니, 울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혼이 정말로 있다면, 이제 그만 되었다, 수고 했으니 그만해라... 라고 하시지 않을까. 여차하면 2007년에 돌아가신 아빠 제사도 그만둘 참이다. 10년 넘겨 지냈으면 할만큼 한 거 아닌가. 그것도 비혼의 딸이 노상 병들어 비실비실하는 엄마를 모시고 우리 집에서 주관하는 차례와 제사는 과연, 집안 모두의 평화를 위해 지속되어야 하는가?

특히나 요번 겨울은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불안정한 환자 케어와 명절 준비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 고난도의 미션 같다. 해서 요번 설날에 다들 모이면 또 한번 가족회의를 열어야겠다. 조부모님 제사는 이제 그만 지내기로 결정하는 것이 1안, 작은아버지가 모셔가서 조촐하게 지내시라고 하는 것이 2안. 몇달 전 심신 멀쩡하실 때 울 엄마가 제안했던 대로 절에다 얼마간의 돈을 내고 제사를 맡기는 것이 3안이다.

추석 차례를 없앨 때, 전통적으로 추석땐 다들 성묘만 한다더라, 집안 여자들의 노동이 너무 고달프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가부장제의 화신이 깃들었는지 큰동생과 작은아버지는, 옛날엔 하루 종일 3끼 다 먹고 헤어졌던 때도 있는데, 식구도 많이 줄었는데 (그땐 아버지의 오촌당숙님네 식구들도 10명씩 몰려와서 세배하고 그랬었다) 뭐가 그리 힘들다고 그러냐고, 일년에 몇번이나 된다고 그러느냐고, 이젠 전날 와서 자는 것도 아니고 음식도 셋이 나눠서 하지 않느냐고 말해서, 내가 열이 뻗쳐 뒷목을 잡았었다.  결국 "1년에 한번이든, 3년에 한번이든 힘든 건 힘든 거지! 내가 이제 늙어서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에야, 아 그럼 그러든지... 억지 동의를 했던 거다.

그러니 요번에도 제사문제를 거론하면 또 어떤 의견과 난항에 부딪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확고한 건 내가 악역을 맡아서 매듭을 지으리라는 결심이다. 엊그제부터 엄마가 징징거리며 반복하는 말이, "착한 딸은 어디 가고 어디서 악독한 년이 와 있다"는 푸념이다. 맞다, 이제 나도 착한 딸 착한 누나 착한 조카 노릇은 그만하련다. 악독한 년, 싸난 년이 되어서 내 앞가림부터 해야지. 그렇지만 회의하자고 해놓고 강압적으로 통보하고 윽박지르는 느낌은 안 들도록, 부디 현명하고 지혜롭게 우아하게 내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통이 허락한 진짜 의무는 생각 않고 이름만 남은 권위만 내세우려는 늙고 젊은 가부장들도 제발 유연한 사고를 품어주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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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뭐든 예쁘면 혹하는 본능을 버릴 수가 없다. 자연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아름다운 대상에 더 끌리는 걸 어쩌란 말이냐. 암튼 예쁘면 다 용서되는 세상이 불만이면서도 나 역시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ㅎㅎ

심지어는 병원과 약국도 예뻐서 다니는 사람이 나였어! ㅋ 

원래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내과를 작년부터 한달에 한번씩 약 타러 다녔었다. 그런데 올초 와병으로 퇴원 후 약을 먹어도 계속 아픈 다리 통증 때문에 징징 울고 있을 때, 주말에 반찬 싸들고 왔던 막내올케가 그냥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다른 병원에라도 다시 가보자고 나를 꾸짖으며;; 주말에도 늦게까지(무려 저녁6시까지)진료하는 옆 동네 병원을 찾아 나를 처음 그곳으로 데려갔었다. 

동네 병원이야 다 똑같지 뭐;; 그런 생각이었는데 첫눈에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밤색 원목 바닥과 싱싱한 화분과 의자들이 언뜻 보면 카페 같은게 아닌가. 화려하게 꾸민 성형외과나 피부과 인테리어랑은 또 좀 다른 느낌. 의사 선생님도 조근조근 세심하고 친절했고, 간호사샘들도 꽤 여러명인데 시끄럽지 않고 다정했다. 내가 소리에 은근 민감해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 특유의 톤 높여 내지르는 목소리가 넘 싫다. 가뜩이나 통증 때문에 짜증 만빵인데 목청 높여서 이리 오시라 저리 오시라 5천원 되시겠다... 뭐 이런 말을 들으면 꽥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었다. 

작은 동네 의원엘 가보면 간호사를 많이 두지 않는데, 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함이란 걸 안다. 그러니 수납하랴 환자 안내하랴 바쁘고 어수선하고 간혹 불친절하거나 퉁명스러울 때가 있다. 근데 여긴 나이대가 골고루 분포한 간호사+직원들이 꽤 여럿이고, 환자마다 근처 약국을 안내하는 똑같은 멘트를 수십번 반복하면서도 다들 사근사근했다. 직원 복지가 괜찮은 모양이라고, 쓸데없는 생각까지 했다. 박봉에 시달리면 당연히 표정부터 찌들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작년부터 정형외과 외과 영상의학과 종류별로 동네 병원을 다니면서 나름 파악한 결론이다. 

하여간에 그 병원에서 다시 처방받은 진통소염제가 원인미상의 내 통증에 또 별 소용이 없었다면, 병원 인테리어와 친절함이 마음에 들었든 말았든 다시 갈 생각을 안했을 텐데, 우왕... 그날은 약을 먹고 그나마 몇 시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고 드디어 혜자로운 의사쌤과 약을 만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게다가 토요일 늦은 오후에 진료하는 병원과 세트로 늦게까지 여는 근처 약국은 주택가 2층집의 1층을 개조해 쓰고 있었는데, 약국 또한 예쁜 게 아닌가! 병원 의사샘과 약국 의사샘이 아마도 부부가 아닐까? 올케랑 속닥속닥 추측하며 약을 지어나왔었다. 처음 몇번은 그냥 주택을 개조한 약국 외관이 정겨운가보다 했었는데 내부에도 내 취향의 장식품이 있더라는;; 

설리랑 마이크 브릭이 있다니! ^^ (인스타그램에도 올린 적 있는 옛날 ㅂ약국 내부) 

암튼 그래서 별로 가깝진 않지만 나름 옆 동네에 있는 이 내과병원과 약국에 꼬박 2달간 다니며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먹었고 결국 통증에서 차츰 해방되었다. 당연히 이젠 감기약도, 혈압약도 이곳으로 타러 다녔는데 우잉.. 3월 말 병원과 약국은 나란히 500미터쯤 떨어진 건물로 이사를 갔다. (함께 이사한 것만 봐도 분명 둘은 부부 관계이거나 인척이 틀림없다! ㅎㅎ). 

2달 만에 처음 이사한 병원과 약국엘 가봤는데, 약국엔 아쉽게도 브릭 장식품들이 다 사라져 아쉬웠다. 2층 주택의 낮은 천장과 벽을 활용한 인테리어여서 일반 건물엔 어울리지 않았거나 놓을 곳이 없었겠지. 그래도 여전히 베이지색 원목 장식장을 둘러 주인장의 담백함과 깔끔함이 반영된 약국 인테리어였던 것 같다. 

병원도 분위기가 전과 달라져, 훨씬 더 환하고 눈부신 느낌이었다. 흰 벽때문이겠지? 키다리 의자 놓인 벽에 작은 그림 붙여 놓고 화분 올려둔 건 마음에 들고 여전히 예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병원 인테리어. ^^ 뭐 물론 의사쌤과 간호사쌤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병원을 나서며 기분이 좋았다. 동굴로 드나드는 느낌이 드는 계단 벽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나? ㅎㅎ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는 걸 뿌듯하게 생각하며 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제발로 걸어서 병원엘 잘도 찾아간다. 아직도 좀 버티기 증상이 있지만 저번에도 요번에도 감기를 앓아보니, 예전처럼 그냥 며칠 버텨서는 그냥 지나가지도 않고 증상이 종합세트로 나타나 너무 힘들었다. 이 또한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어쩌겠나. 이왕 갈 병원, 예쁘고 마음에 드는 곳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 여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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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이 흔들리지 않는 나이이긴 개뿔, 지금 돌아보면 전과 변함없이 유치하고 철없이 살았던 것 같다. 다만 인간 나이 마흔쯤 되면 이루어놓았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들이 하나도 없어서 민망하고 위축되었을 뿐. 그렇게 또 어영부영 사십대를 보내고 나니 왜 옛날 사람들이 인생을 10년 주기로 달리 표현하고 전환점을 삼았는지 알 것도 같다.

인간에게 오십이란 나이는 확실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 시기다. 물론 삼십대 때도, 사십대 때도 밤샘 작업을 했다거나 몸을 많이 쓸 일이 있었을 때, 피로도가 전과 달라서, 아이고 몸이 하루가 달라...라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신체의 쇠락이 막연한 서글픔과 약간의 피로감이었다면, 오십을 넘어서 느끼는 신체 변화는 어찌나 극적인지 '노화는 결국 질병이었구나' 깨닫는다. 

갱년기는 남녀 모두 겪는다고 하지만 특히 여성들은 차츰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다 폐경(혹은 완경)에 이르면 너무도 낯선 심신의 변화를 겪는 것 같다. 가끔 자긴 갱년기를 모르고 지나갔노라고, 안면홍조증이나 열감도 전혀 없었다고 자신하는 이들이 있어 안심했었는데 '지랄총량의 법칙'처럼 그런 증상 또한 평생에 한번은 꼭 겪어야하는 건지, 60대에 이르러 새삼 갱년기 증상으로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사십대 후반과 오십대 초반에 다른 더 무서운 질병의 형태로 발목을 잡히는 걸 목격한다.

작년, 재작년부터 지인들 가운데 암환자가 부쩍 늘었다. 한 친구는 사십대에 조기폐경을 하고도 아무런 갱년기 증상이 없었다. 귀찮은 생리에서 자유로워지니 정말 세상 편하다고 한두 살 어린 우리들에게 어서 편한 어른들의 세계로 넘어오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작년에 췌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중이다. 두살 어린 친구도 얼마 전 자궁과 난소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다섯살 어린 후배 역시 조기폐경인가 싶어 검진을 받았더니 위암이었고 복막에도 전이가 되어 아직 수술도 하지 못하고 항암중이다. 두 살 많은 선배 한 사람도 최근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다. 어휴. 

건강한 줄 알고 지내다가 갑자기 암환자로 전락한 지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들 안면홍조라든가 겨울에도 갑자기 더워져서 얼음물을 들이키고 선풍기를 틀어야한다는 열감 같은 갱년기 증상이 없었다. 그냥 오십이란 나이를 수월하게 맞이하거나 지나가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나와 9살 차이나는 막내고모도 흔히 호소하는 갱년기 증상은 없었으되 면역력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원인불명의 자가면역질환으로 오십대 중후반 몇년간 혹독하게 아팠다. 나 역시 2, 3년 전부터 수족냉증을 차츰 떨쳐버릴 만큼 체온이 좀 올라간 듯하고 더운 걸 못참게 되기는 했지만 얼굴이 확 달아오르거나 후끈후끈 열감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작년에 드디어 완경을 선언하며 이 정도면 나 역시 불편한 월경에서 자유로워진 걸 완전 기뻐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올초에 갑자기 허벅지 통증으로 2달쯤 심하게 고생을 했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결국엔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온갖 값비싼 검사로 병원비만 날렸을 뿐이다. 단일신경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나 그건 검사로도 알아낼 수 없다나. 투덜대는 내게 아는 의사쌤이 농담처럼 말했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심각한 중병은 이제 거의 다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소소한 질병의 대부분은 원인조차 모르는 게 태반이라 진단만 제대로 내리면 치료의 절반은 된 셈이라고. 대학병원 의사가 내게 통증에 효력이 있는 소염진통제를 찾은 게 어디냐고, 감사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여간 다행이도 이젠 다리도, 소염진통제 때문에 뒤집어졌던 위도 거의 멀쩡해졌다. 통점이 완전 사라진 건 아니어서 살짝 무리를 하면 저기 아래쯤에서 스멀스멀 그날의 느낌이 되살아나지만, 성난 짐승 달래는 요령이 생기듯 나 역시 얼른 자세를 바꾸고 휴식을 취하고 염증에 좋다는 온갖 건강보조제를 삼키며 심신을 다스리고 있다. ㅠ.ㅠ 비전문가로서 내가 짐작하는 건 확실히 오십대에 접어들며 호르몬 변화 때문이든, 인체의 장기가 원시시대부터 입력된 DNA대로 수명을 다한 것이든, 모든 면역력이 확~~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다는 암세포는 체온이 내려갔을 때, 그러니깐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활동성이 높아지므로, 갱년기에 유독 몸에 열이 많이 나서 밤마다 땀흘리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각한 질병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흔한 신체 변화를 겪으며 이 시기를 지나간다는 건 차라리 건강하다는 반증? 

호르몬이 급격하게 변했는데 신체증상이 없으면 반길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을 해야하는지도 모른다. 발열반응을 보여야하는 건강한 세포들이 어딘가 다른 데 몰려가서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는 나쁜 세포들과 싸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나처럼 이유없는 염증이 생기고, 누군가는 암세포가 몸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건강을 자신했던 주변 지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중병 환자가 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임을 안다해도 어떻게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산단 말인가! 

2년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해보면, 체중과 근육량 때문에 성분검사에서 신체나이만 젊게 나올뿐 ㅠ.ㅠ 여기저기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표재성 위염도, 약간의 빈혈도, 그밖에 몇 가지 증상들도 흔하게 다들 갖고 사는 거라지만, 막상 몇년 전 실비보험을  들으려 하니 퇴짜를 맞았다. 와, 나 겉포장만 멀쩡해보일 뿐 이제 보험도 못드는 몸이 되었네! 라는 생각에 어찌나 씁쓸하던지. 

건강염려증 환자로 살고 싶진 않으면서도 일단 한번 호되게 아프고 나니 자신감이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서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에 좋다는 어성초도 먹고, 새싹보리도 먹고, 비타민도 챙겨먹고, 가능한 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으로 바꿔보려 노력중이다. 일단 금세 피곤해져서 무리를 할 수도 없고!  ㅋ 인간은 결국 모든 나이를 처음 경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현재 나이에 적응이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한 목표같다. 달라진 심신에 적응할라치면 또 훌쩍 늙어버리는 걸 어쩌라고. 죽는 건 겁나지 않아, 죽도록 아플까봐 그게 겁나지. 내가 감히 깝죽대며 늘 입에 올리던 말인데 이젠 더 나이드는 것부터 겁이 난다. 인생의 전환점을 꼴까닥 넘긴 지금...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짧을 것은 확실한데,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심신을 괴롭히는 복병들이 나타날까.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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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집앞 벚꽃

투덜일기 2019. 4. 8. 11:52

작년엔 블로그에 벚꽃일기 포스팅을 안했더군. SNS에만 자랑했던 모양이다. 암튼 작년엔 4월 4일에 만개했다고 선언을 했었는데..

올해는 오늘 날짜로 만개했다고 봐야하나 내일로 봐야하나 고민중이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사이에 너무 추웠던인지 가지끝엔 아직 꽃들이 덜 피었는데도 마당 한 가득 꽃잎이 떨어지는 중이다. ㅠㅠ 벚꽃의 탐스러움도 작년만 못한 것 같고...​

​하지만 뭐;; 며칠 전에 석촌호수 벚꽃축제 시작날 가서 본 벚꽃보다 우리집 베란다에서 보는 두 그루 벚나무가 훨씬 아름답다. 

살구꽃(꽃자루가 없어 가지에 딱 붙어 핀다)



벚나무보다 일주일쯤 먼저 피기 시작한 살구꽃은 이제 막 꽃송이째 떨어져내리는 중인데;; 올해는 살구가 확실히 해걸이를 할 모양이다. 나무가 죽어가는지 아예 꽃이 피지 않은 가지도 많고 꽃도 성글성글... 그래도 이렇게 봄날이 아쉽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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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또...

투덜일기 2019. 4. 4. 17:11

4월을 맞아 '진짜로' 열심히 일에 매진해야겠다고 결심한 주제에 난 굳이 왜 또 거의 휴면중인 블로그를 기웃대고 있을까나. 

휴대폰 중독자란 걸 인정한다.  IOS 업데이트 이후로 일주일마다 평균 내가 휴대폰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전주 대비 얼마나 시간이 늘고 줄었는지 통계가 턱 나오는데 그때마다 찔린다. 와.. 진짜 하루에 휴대폰을 너무 많이 들여다보는 거 아니니. 민망해서 차마 그 시간까지 고백은 못하겠다.

암튼 일하기 싫어서, 심심해서, 아님 그냥 습관적으로 SNS를 종류별로 순례하고 뉴스를 읽고 음악을 고르고... 그러면서 간간이 들어온 쪽일은 뒷전이라 컴퓨터 앞에 오래 진득이 잘 앉지 않았다. 영화 일은 아무래도 짧은 기간 '빡세게' 몰아붙여야하는 작업이고 거의 매번 시간이 쫓겨 일주일 넘게 컴퓨터 앞에 앉더라도 딴짓을 할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갑자기 원인 모를 다리 통증으로 고생한 이후로는 한 자세로 두어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통점이 여실히 느껴지므로 불안해서 얼른 일어나 다른 짓을 하기도 했다.  그 다른 짓이란 물론 벌렁 매트리스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또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그러다 정신차리고 보니 올해도 1/4분기가 다 지나버렸다. 어머나! 언제!? 2019년을 병원에서 맞았고 1, 2월은 거의 내리 누워있던 관계로 올해는 이상하게 시간감각이 잘 탑재되질 않는다. 대체 언제 3월이 왔던 거고, 어느 틈에 지나간 거지? 게다가 4월인데 날씨는 또 왜 아직 이리 춥냐고! 겨울 코트를 자랑스럽게 입어도 추운 건 정말 반칙인데, 그래도 집앞 살구나무는 엊그제 다 피어버렸고, 벚나무도 10분의 1쯤 꽃을 피우며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 그걸 보며 4월도 눈깜짝할 새 후딱 다 지나가버릴까 싶어 조바심이 나는데... 번역해야 할 원서에 챕터별로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하루 일할 분량까지 다 나눠 놓았는데... ㅋ 가속도 붙일 생각은 안 하고 요번엔 초인적 작업력을 주실 '그분'이 언제 강림하시나 그 기대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블로그나 되살리고 말이지... 으휴. 시답잖은 블로그 포스팅 하나 할래도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이짓에 뛰어든 걸 보면, 그나마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도 다시 통증이 나타날까봐 전전긍긍 두려워하는 시기가 지났기 때문일 거라고 위안을 삼기로 했다.  어쩌면 하도 게을리 해서 바닥 수준으로 떨어져버린 우리말 어휘력과 문장력을 미리 블로그로 슬슬 더 닦아 보려는 술수일 수도 있겠고. ^^; 해서 작년에 비공개로 야금야금 사진 위주로 올렸던 포스팅도 정리해 공개로 돌렸다. 앞으론 슬슬 심심해질 때마다 휴대폰과 씨름하는 대신 블로그에 허튼 글이라도 좀 쌓아볼까 하고. 하도 게을러서 나도 나를 못믿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로' 뭔가 결심을 적어두면 말과 글의 힘에 기대에 뭐든 좀 지키려는 노력을 하게 되더라.  휴대폰으로 요즘 뉴스와 댓글 보며 분노 폭발하는 것보단 낫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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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2018 여름

투덜일기 2018. 8. 22. 17:57

111년만의 폭염이라는 올 여름의 살인적인 더위도 더위지만... 그밖에 개인적으로도 올 여름은 한마디로 '마가 끼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뒷마당에 허락없이 대형견 2마리를 키우던 아래층 101호 세입자가 드디어 이사를 나가고, 10년도 넘게 계속 전월세로 세를 놓고 살던 주인 내외가 이사를 들어온다더니만... 집이 비자마자 작은방 천장이 샌다고 우리더러 당장 누수공사를 하라고 난리였다. 으어...

101호 내외가 '잘 아는' 업자를 불러다가 기계로 누수 지점을 찾아보았지만 보일러 배관과 상수도는 멀쩡해서 누수탐지기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딘가 하수도관 접합부 같은 데서 아주 미세하게 샌다는 의미라나. 결국 7월말 사흘에 걸쳐서 엄마네 집 화장실 바닥 공사를 했고, 어마어마한 소음과 상상을 초월한 흙먼지에 시달리며 '쌩돈'을 처들였다.

하필 그 무렵 영화 번역 마감과 겹쳐서 첫 업자가 하라는대로, 달라는 대로, 거액의 공사비를 내고 보니.... 바가지였다. 웬만한 업자는 그 금액이면 화장실에 샤워부스까지 설치하고 천장 벽까지 몽땅 리노베이션 하는 가격이라는데 우린 것도 모른 채 꼴랑 바닥 타일과 세면기, 변기만 교체했으니. ㅠ.ㅠ 내가 미쳐.

그뿐인가. 화장실 공사가 끝나고 아래층 천장과 벽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작은방 천장 보수와 도배비까지 물어줘야했다. 누수 범위인 '일부' 도배비라고 견적을 받긴 했지만, 결국 금액으로 볼 때 101호에서 우리한테 다 씌웠다는 '심증'이 있다. 물론 열받아서 나도 다른 도배업자를 불러 견적을 뽑아보았지만, 101호 내외와 작업범위 협의하다가 도저히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냥 가버렸다. 부부 사기단이냐! 결국 며칠 뒤 그들이 데려온 도배업자에게 일을 맡겼다. 계속 속을 끓이는 내게 지인들이 조언했다. 작정하고 속이려는 사람들을 니가 무슨 수로 막겠냐. 그냥 잘 먹고 잘 살아라, 드러워서 피한다, 하는 마음으로 속편하게 손해를 보라고 했다. 그게 나의 건강에도 이롭다고... 맞는 말이었다. 연일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 것 같은 심정으로 부들부들 떠느니, 그냥 다 당해주리라 포기하고 마음먹으니 엄마도 나도 차라리 속이 편했다.

암튼 그래서 8월 6일엔 아래층 작은방 천장 석고 보드 공사를 해주었고

8월 7일엔 이참에 집 좀 단장하자며 네 집이 분담해 앞마당 시멘트 공사를 다시 해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었고

8월 10일엔 아래층 도배가 끝났다. (나중에 보니 집 전체를 거의 다 새로 도배했는데, 방 하나 값은 자기네가 분담했다고 우기지만 가격으로 보아 거짓말 같다.) 

그렇게 드디어 일단락 되나 싶었더니만.. 빌어먹을 이 낡은 집!

내가 사는 쪽인 아래층 202호에도 목욕탕 천장에 물이 맺힌다며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아주 미친다. 이번엔 내가 엄선해서 동네 누수탐지업자를 불렀고.. 역시나 이쪽 집도 보일러와 상수도엔 이상이 없어 누수탐지기로 파악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화장실 변기와 하수구 방수가 주요인인 경우가 많다며, 무작정 화장실 바닥을 다 뜯지 말고 조치해보자고 했다. 반나절 공사로 끝났을 뿐더러 당연히 엄마네 화장실 방수 비용의 6분의 1 가격이 들었다. 우와 진짜...

내가 보기에도 엄마네 화장실 타일이 삐뚤빼뚤 바닥 수평도 엉망이고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 누수탐지 업체 사장님이 최근에 공사했다는 저쪽 화장실구경 한번 해도 되겠냐고 하더니 정말로 실소를 머금었다. 타일 배워서 처음 붙인 초짜 솜씨라며 사장님이 직접 했다는 걸 믿지 못하겠단다. 같은 업계고 이 동네서 서로 뻔히 아는데 혹시나 친한 사이면 어쩌나 걱정스러워 처음엔 업체 상호도 안 알려줬다가 에라 모르겠다 일러바쳤다. 소비자 등쳐먹는 업자라고 이 동네 누수공사 업계에서 나쁜 소문이라도 나랏! 흥! 

202호 누수공사를 한 것이 8월 14일 월요일.

시련은 다 끝인가 싶어... 바로 다음날 별렀던 내과병원을 찾았다. 요번학기에도 신체검사서를 내야하는데 아무래도 혈압이 문제일 것 같아서(그간 스트레스가 좀 많았나! 집에서 재보니 엄청나게 높아!) 혈압약을 처방받기로 했던 거다. 약 먹고 혈압 정상으로 만든 다음에 신체검사 받으려던 계획이었다. ㅜ.ㅡ

아 근데 혈압약 처방에 웬 심전도와 엑스레이가 필요하담? 얼결에 엑스레이를 찍고 심전도 검사를 한 건 그렇다 치고... 그러느라 목걸이를 빼서 가방 주머니에 핸드폰, 이어폰과 함께 넣어두었었는데;;;;; 

밤에 샤워하다가 거울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어라 내 목걸이! ㅠ.ㅠ

그 목걸이로 말할 것 같으면... 몇년 전 귀금속을 업으로 삼은 후배의 설득으로 그간 내가 잡다하게 갖고 있던 14k, 18k, 24k 반지와 팔지, 귀걸이 따위를 모두모두 모아 팔아서 장만한 거였다. 아니 돈을 벌어도 시원찮은 판국에 목걸이까지! 병원에서 나와 약국에 들렀고 약을 지어 나온 뒤엔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걸어왔었다. 핸드폰에 묻어서든, 이어폰 줄에 묻어서든 바닥에 흘린 게 틀림 없었다.

징징 울며 목걸이 분실을 토로하는 내게 후배는 혹시 모르니깐 당장 랜던 켜들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보라고 했다. 얇은 목걸이라서 눈에 잘 안띄어 남아있을 수도 있다면서...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휴대폰후레시와 랜턴을 둘 다 켜들고 되돌아가본 길에 목걸이 따위는 없었다. 낮엔 분명 플라타너스 낙엽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는데 부지런한 미화원분들이 어찌나 깨끗하게 길을 쓸어놓았던지. 어흑. 돌아오며 생각했다. 그 물건과 나의 인연이 그 정도였던 거지. 속 쓰리지만 어쩌겠나. (하지만 속상해! 엉엉)

그날 밤 이번 여름 손재수가 정말 끝장이로구나 생각하며 빨리 가을이 오기를 빌었던 것 같다. 


...


그러나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개학 후 첫 수업일이었던 8월 16일. 집앞 골목에서 주차하다 앞차 범퍼를 살짝 긁었다. 아 놔 정말!! 나 왜 이러니. ㅠ.ㅠ 아마도 그날 애들 수업이 아니었더라면.. 그리고 집앞에 세워둔 이웃 차가 아니었더라면 모르는 척 뺑소니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양심이 자꾸 나를 괴롭혔고.. 결국엔 사고를 실토하는 메모와 연락처를 차유리에 꽂아놓았다. 살펴보고 수리해야 하면 사고처리는 보험으로 하겠다고.

아 근데 그날 저녁에도, 다음날 아침에도, 오후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이거 뭐지? 휴가라도 갔나 싶어 다시 문제의 차를 살폈다. 전날엔 당황에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차주의 전화번호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고, 사고 부분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허거걱... 근데 번호가 낯이 좀 익네? 차주가 바로 102호 세입자 아가씨였던 것. 그래도 긁힌 범퍼 이외에 전혀 엉뚱한 데까지 죄다 수리하며 옴팡 비용을 덮어씌우진 않겠구나 싶었다. 두어번 얼굴 본 사이고 그쪽 명함도 받아두었는데 101호 사기꾼 부부처럼 의뭉스러운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암튼 평일엔 차를 쓰지 않는다더니만 주말에야 겨우 서비스센터에 다녀왔는지 오늘 비로소 견적서와 함께 수리 관련 연락이 왔고, 그래서 나도 정식으로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했고, 완전 마무리는 되지 않았지만 나름의 마음고생이 끝났다.

설마..  이 여름에 나 또 뭔 일 내는 거 아니겠지? 부디 이걸로 끝이기를 비는 마음으로 이렇게 창피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적고 있다. 계속 무사고 운전자라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맨날 주차하던 골목에서 수백번 반복하던 동작인데 왜 정신을 어디다 빠뜨리고 실수를 한 건지 자괴감이 자꾸만 치밀어오르지만... 결국 다 내탓이다. 그러니 올 여름 너무 더워도 집도 나도 미쳐서 정신줄을 놓았던 셈치고 이제 그만 좀 하자.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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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투덜일기 2018. 7. 19. 18:33

최근 3-4개월간 정말로 일이 '하나도' 없어 팽팽 놀았다. 이른바 '입질'이라고 하는 번역 스케줄 문의조차 없는 걸 보며 번역가로서의 내 경력은 이제 휴지 조각이 되려나보다 비감에 젖었다. 그뿐인가. 최근 출간된 책엔 이런저런 사연으로 '옮긴이의 말'을 빼고 책이 나왔다. 표지 디자인과 제목 가지고 해외 저작권사에서 트집을 잡다가 결국엔 뭐라도 꼬투리를 빌미로 '양보와 협상'을 하는 의미에서 내 역자후기가 희생을 당한 거다. 와... 진짜... ㅠ.ㅠ

출간일정 빠듯하고 바쁘대서 날개에 인용된 일부 역자후기 영역도 내가 해줬었는데, 그걸 문제 삼아 책 내용과 분위기가 맞는지 봐야겠으니 역자후기 전체 원고를 번역해보내라는 연락이 왔다고 들었을 때 느낀 '빡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갑질은 세계 어디서나 있는 건가 싶고... 번역가 나부랭이는 갑도 을도 아니고 병이나 정.. 그 이하의 존재였던 거지. 속상한 건 결국 '옮긴이의 말에서 인용'이라는 글귀만 뺐을 뿐, 어차피 날개에도 언론 홍보자료에도 역자후기 내용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역시나 빠듯한 인쇄 일정을 감안하여 내가 '허락'한 결과다. 표지 디자인 다시 잡을 시간 없다는데 그럼 안된다고 하나!? 젠장..

일감이 끊긴 건 어차피 결국 다 자업자득일 거다. 내가 신용을 잃었든, 내게 주는 번역료가 부담이 되었든, 원고가 마음에 안들었든...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래도 20년 넘게 불안감 속에서도 막연한 희망으로 어찌어찌 나름 '잘' 꾸려온 인생에 비해 최근 3년은 정말 참담했다고밖엔 할 말이 없다. 개인적인(가족의 무게 탓이다) 삶의 스트레스에 더하여 그 일 때문에도 며칠 내리 극한 짜증 상황에 몰리고 보니 혈압이 널을 뛰었는지 이명과 함께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에 이르렀다. 

진화를 거듭해온 인류가 아무리 용을 써봤자 DNA에 새겨진 인체와 모든 장기의 수명은 50살이 한계점이라는 내용을 어느 과학 책에서 보았다. 그 이후로도 무려 50년을 더 산다고 하는 '100세시대'는 그러니까, 타고난 인체의 수명 때문이 아니고 원시시대 인류보다 너무도 월등해진 영양과 의술의 발달 덕분이란다. 작년 올해 들어 나도 여기저기 아프고 병원 찾을 일도 많아진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뜬금없이 젊은 후배나 친구들의 중병 소식이나 부음을 들으며 이젠 정말 자다가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돌입했구나 싶다.

째뜬 우울한 이야기는 이쯤해두고... 여차저차해서 영화 자막 번역 일이 하나 들어왔다. 그간 계속 열받게 재방송만 내보내더니만! 올들어 통 일도 안하는데 자막에서 이름 발견했다고 종종 인사 받는거 그간 진짜 민망했다. ㅠ.ㅠ 단기간 백수 모면했구나 기뻐하며 드디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ㅎㅎㅎ 컴퓨터 켜지도 않고 지낸 몇달간은 핸드폰으로 sns만 들여다본 듯. 막상 컴퓨터를 켜니 일은 뒷전이고 블로그 구경다니고 있네그려. 

그 또한 민망하지만 '주옥같은' 자막을 만들기 위해서 뭔가 좀 더 긴 호흡의 글은 끼적이는 연습이 필요했던 모양이라고 핑계를 대야겠다. 8월부턴 또 백수신세지만 일이 있는 짧은 기간 행복하게 신나게 일해야지... 라고 결심하면 뭘하나. 시험공부 앞두고 책상 정리하던 버릇 못 버리고 포스팅감이나 또 없나 찾고 있다. ㅎㅎ그러니 어쩌면 7월 내내 포스팅이 잦아질 확률이 높다는 근황 보고가 오늘의 포스팅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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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꽃과 나무 전문가샘들께 들으니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가 맞단다. 서양이름 아카시아는 열대 원산지인 다른나무라는 듯. 아무튼.. 어느새 갖가지 나무의 연둣빛 이파리 색이 점점 진해가는 가운데 달콤한 향기가 동네를 진동하는 계절이 왔고... 외출하려고 언덕길을 내려가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꽃송이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해 휴대폰을 꺼냈다. 작년에도 아까시꽃 개화기록을 블로그에 했던가 안했던가. +_+a 아까시꿀 따는 거 딱 하나 용도 이외엔 토양에도 숲의 식생에도 죄다 도움 안되는 '나쁜' 나무라고 하지만 그래도 예쁘고 향기로워 나는 좋아할란다. 동네 축대 위, 시멘트 길 옆에서도 안죽고 씩씩하게 자라면 제 몫은 다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잎줄기 하나 따들고 가위바위보 하면서 누가누가 많이 따나 내기할 친구가 바로 곁에 없는 것이 다만 섭섭할 따름이다.


나름 정사각형으로 자른다고 잘랐는데 똑같이 못 잘랐구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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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부실

투덜일기 2018. 4. 24. 00:00

어렸을 때부터 평생 한번도 키큰 축에 들어 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들어갔을 땐 아마 전교에서 제일 작았다는 것도 같다. 암튼 체구는 늘 작아도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물리적인 힘이 약하고 체력이 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겠지만, 덩치 큰 남자애들이 괜히 힘으로 괴롭히려 들면 울먹거리면서도 입싸움으로 맞서며 지지 않으려고 했다. 남동생들만 둘 있어도 꽤 오래도록 내가 녀석들을 보호(?)하거나 챙겨주는 입장이었지, 내가 보살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집에 바퀴벌레나 돈벌레가 나타나도 두놈은 서로 니가 잡으라고 떠밀기만 할 뿐 재빠르게 행동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꽥~ 비명을 지르며 내가 살생에 나서는 식이었다. 또 벌레가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그냥 두고는 마음을 놓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으니 어쩌겠나. 

힘이 없어 보여서, 혹은 내가 여자라서 '열외'되는 특권도 때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려해주는 척 하고는 뭔가 다른 걸 요구하기 십상이란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하던 시절, 커피 심부름을 하느니 나는 차라리 생수통을 낑낑대며 들어 꽂는다든지, 복사용지 박스 옮기는 쪽을 택했다. 힘 쓰는 일은 우리가 하잖아, 그러니깐 커피 정도는 타줄 수 있지 않겠냐, 책상에 걸레질 좀 죄다 해줘라는 놈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 사전에 '연약한 척'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음료수병이나 캔을 못 따서 남자들에게 내밀며 "오빠, 이것 좀 따주세요" 따위의 말을 하는 여자들까지 은근히 째려보며 싫어했다. 우웩, 웬 내숭이냐! 쌀자루도 번쩍번쩍 들 수 있게 생겨가지고...


그런데 이제야 드디어 편협했던 나의 태도와 편견을 반성하고 있다. 음료수 병, 커피캔, 맥주캔을 힘 없어서 못 따겠다며 남자들 힘을 빌리던 여자들 중엔 정말로 손가락이나 손에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그 비율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니 자긴 손톱이 잘 부러진다면서 커피 캔 따는 걸 꼭 날 시키던 친구도 사실 있었다. 하기야 약한 척 내숭이 아니라, 힘자랑을 칭찬 받고 싶어 안달하는 단순한 남자들에게 옛다 일감을 안겨주는 현명한 처사였을 수도 있겠다. 힘에 부쳐도 난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야! 그러면서 끙끙 얼굴 시뻘게져가며 병뚜껑 돌려따는 내가 어쩌면 더 편협한 인간이었을 수도 있으려나.

하여간에 요즘 나는 병뚜껑 열기 분야에서 자신감과 독립심이 아주 바닥이다. 의사의 권고대로 요샌 한달 넘게 정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이런저런 호르몬과 염증수치가 정상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영 효과가 더딘 모양이다. 걸핏하면 손목과 팔이 아파서 ㅠ.ㅠ 무거운 걸 들기도, 양념병을 열기도 힘에 부친다. 바삐 끼니 준비할 때, 무겁고 뜨거운 큰 냄비도 막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들던 순간의 괴력은... 더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에효.

가장 난적은 쨈병과 각종 소스 병이다. 진공상태가 되었거나 냉장고에 들어 있다가 나온 놈들은 특히 더! 다리 사이에 병을 끼우고 온 힘을 다해 낑낑대다가 결국엔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돌려야 병이 열린다. 후다닥후다닥 바쁘게 요리하다 말고 양손에 고무장갑 끼려면... 아오 짜증나.

나름 꽃무늬;;라고 오려보았다 ㅋ


마침 고무장갑 한쪽이 구멍났길래 묘안이다 싶어 손목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두었다. 작년에 캐나다에 갔을 때였나, 기념품숍에서 병뚜껑 열기 전용 실리콘 덮개를 본 적이 있었다. 꽃무늬가 예쁘게 들어간 녀석이었는데 가격보다는 너무 두꺼워서 사오지 않았다. 쨈병, 소스병 여는데는 쓸모가 있지만 작은 주스병, 소주병 뚜껑을 덮어 열기엔 너무 두툼했기 때문이다. 근데 주방용 고무장갑 두께면 완전 딱이지 않겠나. 요리하다 말고 귀찮게 손 닦고 말려 고무장갑 낄 필요도 없고. ㅎㅎ

이렇게 손바닥만하게 나름 꽃모양으로 오린 고무장갑 조각을 싱크대 걸이 한 구석에 걸쳐놓고 꽤나 요긴하게 써먹었다. 우리집에서 한달 지내다 간 (주로 설거지를 담당한) 친구에게 자랑도 했다. "내 아이디어 죽이지 않냐? 미국이랑 캐나다에선 얼핏 여러 가게에서 본 거 같은데, 한국에선 이런 거 안파나봐. 본 적 없어.." 라고.  

재수없게도 엄청 알뜰하고 지혜로운 주부인 척 했던 거다. 헌데 출국 전 다이소에서 온갖 편리한 살림도구를 장만해가겠다고 나선 친구가 주방도구 코너에서 예리한 눈썰미로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다!



정확한 이름은 까먹었는데;; 병뚜껑 따개 도우미였던가... ㅋㅋㅋ 당연히 마데인차이나인 이 물건은 단돈 1000원에 이런 게 3장이나 들어있었다.

친구가 고무장갑 오린 거 얼른 버리고 이거 사쓰라며 쇼핑 카트에 넣어주었는데;;; 물론 나는 저 고무장갑 오린 것도 못 버리고 병뚜껑 열 일이 있을 때마다 두 개를 비교해가며 사용한다. ^___^

하긴 뭐 구멍뚤린 고무장갑 손목부분 얅게 잘라서 고무밴드 대신 사용하라는 살림 꿀팁도 본 적 있다. 노란 고무줄보다 튼튼해서 훨씬 요긴하다면서. 

다이소표 병뚜껑 도우미 3장과 저 분홍 고무장갑 조각을 함께 쓰면 앞으로 10년은 쓰지 않을까 싶은데;; 웬 궁색을 떠나 싶어 확 버릴까 하다가도 왠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놔두고 있다. 뭐든 잘 못 버리는 나의 지병 탓도 있겠고.

아무려나 병뚜껑을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매번 아메바스럽게 부실한 손목 상태를 까먹고 일단 무심히 힘을 써보고는 아야! 윽! 통증에 놀란 다음에야 비로소 이 고마운 고무재질 물건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떻게 손이 아프단 걸 매번 까먹을 수가 있는지 원. ㅠ.ㅠ 아마도 나 말고 집안에 힘쓸 사람이 더 있다면 나도 당연히 얼른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예전에 냉장고에 넣어둔 장아찌나 피클 병을 열 때..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온힘을 다 주어도 잘 안 열려 끙끙대고 있거나, 도움을 청하면 아버지가 다가와 이그... 진작에 아빠를 시키지 그랬니. 하셨더랬다. 당신도 손이 작은 편이라 단숨에는 해결 못하고 힘깨나 쓰신 후에 병이 열리면, 별 것 아닌 일에도 퍽 으쓱으쓱 아버지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그게 웃겨서 나도 일부러 거들었었다. 어이구, 울 아빠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몰라... 

집안에 큰 힘 써줄 남자가 없어도, 손목이 부질해져서 소주병 돌려따는 것도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지경이 되었어도 물론 모녀는 잘 살고 있다. 어떻게든 상황이 닥치면 다 살게 마련이다. 날이 궂은 날에는 팔꿈치까지 저릿저릿해서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도 마우스를 클릭해대는 것도 아예 힘겨운 날이 있다. 으음 그럼 손목받침대랑... 뭔가 또 다른 해결 방법이 있겠지? ㅠ.ㅠ

몸도 총체적으로 부실한데;; 밥벌이를 하지 않고도 남은 일생을 편히 사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벼락을 맞는 것 = 복권 당첨밖에 없는 것 같아서 얼마 전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본 복권 5장은 천원짜리 1장 빼고 모두 꽝이었다. 그럼 그렇지 싶으면서도 또 사볼까 하는 마음이 팔랑팔랑 자꾸 드는 건 변덕스런 봄날씨 탓일까. 에잇, 이래저래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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