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투덜일기 2010. 2. 10. 15:46
서른을 넘기고부터인가 기억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고 신빙성 떨어지는 두뇌작용인지 점점 더 뼈저리게 깨닫고는 있지만, 그래도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르게 인식된 기억의 파편을 딴 사람과 맞추다 보면 힘이 쭉 빠질 때가 있다.

맞아, 기억이란 원래 자기검열을 거쳐 제 입맞에 맞게 저장되는 거야, 라고 위로해 보아도 주인공이 내가 아닌지라 나름으론 최대한 객관적으로 저장해두었다고 생각한 기억을 꺼내놓았는데 완강한 부정의 반응이 나오면 마치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한 것마냥 억울함이 느껴져 쓸모없는 짓인 줄을 알면서도 상대에게 내 기억을 강요하고 싶어진다.

심지어 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아련한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하기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걸 알고 났을 땐 가슴이 아프다. 어느쪽이 왜곡되었든 기억을 다른 방향으로 교정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방금 전에 놓아두었는데 까먹은 열쇠의 위치도 기억이고 십수년 전 인식된 충격도 기억이기에, 말랑하든 딱딱하든 내 두뇌에 새겨진 흔적이란 별로 미덥지 않은 약속 같은 거라고 자꾸 최면을 걸면서도 제딴엔 소중히 넣어두었던 기억인지라 누가 아니라고 하면 자꾸 마음을 다친다. 

머리가 나빠서 기억보다 망각의 양이 워낙 엄청나 얼마 안 남은 기억에 이리도 미련을 갖는 것인가. 원래 인간은 기억보다 망각의 동물이라던데. 그리고 이왕 남은 기억은 될수 있는 대로 곱게 포장이 된다던데, 늘 그렇듯 예외는 있나보다.

서로 머리속을 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으니 제3자, 제4자까지 끌어들여 합동대면을 하지 않고서야 어느 게 맞는지 확인하기 힘겨운 기억의 왜곡. 그냥 각자의 기억대로 덮어두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여기면서도 저 너머에 있을 진실을 캐고 싶은 욕망에 자꾸 머리털을 쥐어 뜯는다. 이렇게 내가 집착하는 인간이었구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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