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라이스를 먹는 방법이 어디 두가지 뿐이겠냐마는 대략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밥과 카레를 한꺼번에 다 비벼놓고 균일한 맛을 즐기며 먹는 방법과 카레를 끼얹은 밥을 조금씩 먹을 만큼만 비벼먹는 방법이다. 원래는 빙수를 먹는 두 가지 방법으로 제목을 정하려다 너무 계절과 동떨어진 것 같아서 참았다. 사실은 빙수 먹는 방법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카레라이스야 혼자 먹지만 빙수는 대개 둘이 같이 먹으니 먹는 방법이 다르면 그야말로 '대략난감'이다! 올여름 빙수값이 거의 만원에 육박한 걸 보며 미쳤구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대개 둘이 나눠먹으니 다른 음료값과 비교하면 그럴만도 하다고 애써 이해하는 태도를 취했었다. 한 그릇 놓고 퍼먹으려면 친하지 않은 사람과는 아예 먹을 엄두도 낼 수 없는 빙수야말로 같이 먹는 사람의 취향이 중요하다.

나는 카레라이스도 그렇고 빙수도 그렇고 처음부터 섞어먹는 걸 싫어한다. 카레라이스 뿐만 아니라 각종 덮밥은 한꺼번에 비벼놓으면 어쩐지 개밥스러운 것이 먹을 확 맛이 사라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비벼파'의 주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짜장면과 비빔밥을 처음부터 다 비벼야 양념맛이 고르게 배듯 덮밥류도 처음부터 죄다 골고루 비벼놓아야 시종일관 일정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나도 인정한다. 짜장면과 비빔밥은 나도 처음부터 열심히 비벼서 먹는다. 짜장면은 그냥 두면 면이 불어 떡처럼 엉기니 어쩔 수 없이 비벼야하는 것이고, 비빔밥은 이름부터 비비는 행위가 근본임을 밝혀둔 음식인데다 가닥가닥 엉킨 나물과 고추장 양념은 한 숟가락에 따로따로 골라 담기가 어려운 재료다. 하지만 나머지 덥밥은 이미 다른 양념이 다 섞여 있으니 밥에 얹어서 입안에 넣고 음미하면서 얼마든지 씹어서 섞을 수 있다. 오히려 다 비벼놓으면 나중엔 양념수분이 밥알에 다 배어들어 대단히 뻑뻑하고 맛없어 보이는 단계로 변한다. 더욱이 요즘 유행하는 일본식 카레는 어찌나 짠지 처음부터 대뜸 비볐다간 못먹기 십상이다. 혹 양념이 모자라 나중에 맨밥을 먹는 한이 있어도 나는야 '조금씩 비벼파'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빙수는 각종 과일과 연유 단팥, 아이스크림을 죄다 섞어 곤죽을 만들어놓으면 내눈엔 순식간에 시궁창(!)으로 변한 것만 같다. ㅠ.ㅠ 그냥 한쪽 구석에서 야금야금 조금씩 뒤섞어 파먹으면 끝까지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거늘... 해서 취향이 다른 친구와 빙수를 같이 먹게 되면 처음에 몇번 숟가락질을 하다 이내 숟가락을 놓고 만다. 서로 배려하느라 절반씩 남기거나 섞는 노력을 기울여도 어쨌거나 얼음은 녹기 마련이니까. 지난 여름 몇번 팥빙수를 시도했다가 번번이 취향차로 속상한 일을 겪고는 2인용이라며 마구 가격을 올려버린 제과및 음료업체를 원망했다. 옛날처럼 작은 그릇에 1인분씩 저렴하게 팔면 좀 좋으냐고! 
 
실은 오늘 카레라이스를 해먹었는데 '처음부터 비벼파'이신 엄마와 '조금씩 비벼파'인 나는 서로의 카레라이스 먹는 방법을 매번 못마땅해한다. 엄마는 내가 카레라이스를 깨작거리며 먹는다고 생각하고, 나는 엄마가 비벼놓은 카레라이스가 영 맛없어보인다고 여긴다. 수십년 넘은 습관이니 그러려니 할만도 하건만, 못마땅한 건 못마땅한 거다. ^^; 가끔 밖에 나가 중식집에서 요리 하나에 잡채밥이라도 시켜 같이 먹게 되면 엄마가 얼른 다 뒤적여놓기 전에 잡채밥 접시에 금이라도 긋고 싶어진다! ㅋ 조금 전 식탁에서도 카레를 따로 그릇에 담아 놓았더니 엄마가 설거지 거리만 많아지게 뭐하러 그랬냐고 잔소리를 했다(아 설거지는 내가 하는구만!). 결국 나는 보기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까칠한 외모지상주의자로 또 한번 결론이 났고, 엄마는 겉모양보다 맛이 더 중요한, 무던한 실용주의자였다. 하이얀 얼음과 과일, 연유의 모양새를 최대한 지켜가며 빙수를 먹으려드는 내 모습을 보면(아무리 노력해도 곤죽이 되는 순간은 있다! 다만 비비지 않으면 완전 회색물로 변하지는 않는다;; -_-;) 웃길 수도 있겠으나 어쩌겠나. 취향이 이렇게 고정되어 버린 것을. 그래도 내 주변엔 나처럼 까칠한 사람 많을 거라고 항변하는 의미로 끼적여봤다. 저 말고도 카레라이스랑 빙수 안 비벼서 드시는 분 많죠? 그쵸? ㅎ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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