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럽 한 컵을 훌러덩 마시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오늘 처음 해보았다. 뜬금없는 제목의 사연은 이렇다. 홍대앞 롯데시네마 건물에 있는 타코집엘 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동산에서 걸핏하면 우리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그 건물에 점포 하나 분양받으면 땡잡는 거라고 꼬드겼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었다. 건물 완공된뒤 몇년째 영화관말고는 완전 폐가처럼 을씨년스럽게 칸막이를 쳐놓았더구만 무슨. 그런데 간만에 갔더니 그새 그 큰 건물에 점포가 다 찼더라!(어쩐지 최근 몇달은 그런 전화가 안 걸려오더라니;)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막 들어오고... 내 말을 들은 동행은 그러게 기획부동산 말대로 그때 점포 하나 분양받아놓지 그랬느냐고 킥킥댔다. 거기가 요새 유니클로/북스리브로와 함께 새로이 뜨고 있는 홍대앞의 랜드마크라나 뭐라나.

하여간에 후식으로 스노우마운틴 아이스크림까지 먹을 계산을 하고 간단히 요기할 생각에 타코집에 들어가 부리또를 시켰다. 종업원은 초록색 컵과 함께 물이 담긴 투명한 플라스틱 통을 가져다주었다. 목이 말랐던 나는 얼른 컵에 물을 따랐는데 따르면서도 어째 물의 점도가 좀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긴 했다. 뭔가 좀 진하고 걸쭉한 듯... 그러나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멕시코식당이니깐 뭔가 물에 '조치'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싶었던 것. 얼음물에 레몬 띄워주는 것처럼 말이다.

컵에 가득 채운 물을 들어 한모금 벌컥 마셨던 나는 곧이어 입안 전체에 퍼지는 단맛에 경악했다. 이미 한모금 넘기고도 한가득 입에 머금고 있던 시럽은 도저히 넘길 수가 없어 뱉을 곳을 찾아 벌떡 일어났다. 냅킨을 수십장 집어왔지만 결국 나는 동행이 권하는 대로 컵에 다시 시럽을 뱉었다. 종업원이 실수로 얼음물대신 시럽이 담긴 통을 준 거였다! 미안하다며 곧이어 다시 얼음물통과 새컵을 가져다주었지만... 마비된 내 혀는 그게 물맛임을 알아차리는데도 한참 걸릴 정도로 충격은 쉬 가시지 않았다. 아보카도를 넣은 부리또는 꽤나 맛있었지만 달디단 시럽을 삼킨 후유증은 너무도 커서, 우린 아이스크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으으으 몸서리쳐지는 단맛의 기억! 

언젠가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물인줄 알고 가져다준 세척제를 마셔서 탈이 난 뉴스가 떠올랐다. 그땐 어떻게 물이랑 세척제 맛을 구분 못할까 싶은 생각도 했었는제, 겪어보니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래서 비눗물도, 독약도 마실 수 있는 거구나... 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맛을 느끼기도 전에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구나... 

겨우 시럽 한모금씩을 삼킨 것뿐인데 나중에 커피와 맥주로 뱃속을 꽤나 희석(?)했음에도 아직까지 메슥거리는 속이 좀체 진정되질 않고 있다. 그래서 과학적인 분석과 상관없이 그냥 시럽 한컵이 내겐 치사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타코집에서 대체 그 시럽을 어떤 용도로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두 컵을 다 따라버려서 그 통에 든 시럽은 바닥 났었다. 아이스커피용 시럽일까?) 앞으로는 부디 물통과 다른 그릇에 담아두기를 빈다. 그게 시럽이 아니라 강력 세척제였다면 우린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았을까? -_-;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니 좀 더 강력하게 불만을 표출해서 할인이라도 받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지네. ㅋ 물론 당시엔 별말 않고 고분고분 계산하고 나왔다. 내가 그렇지 뭐. 어쨌거나 앞으로도 어딜 가나 시럽은 내게 엄청 무서운 액체일 듯!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