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78건

  1. 2010.08.21 토이스토리 3 8
  2. 2010.07.25 이끼 7
  3. 2010.07.10 슈렉 포에버 6
  4. 2010.06.06 뒷북으로 하하하 11
  5. 2010.01.02 2009 한해 정리 12
  6. 2009.12.04 닌자 어쌔신 10
  7. 2009.11.27 요새 영화 4
  8. 2009.11.03 굿모닝 프레지던트 10
  9. 2009.09.18 애자 10
  10. 2009.08.23 언노운 우먼 14

토이스토리 3

놀잇감 2010. 8. 21. 03:24


역시 뜸들이고 공들이려고 마음을 먹으면 더 되는 게 없다.
영화 보면서 느낀 찡한 감동과 펑펑 흘린 눈물과 애틋한 마음 때문에 뭔가 그럴싸한 후기를 적어보리라 작심했지만 차일피일 밀린 방학숙제 앞둔 듯한 조바심만 들 뿐이다. 연말 집계용으로 그냥 대충 기록만 남겨야지.

다들 칭찬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고, 애니메이션 영화에 특별히 애정이 많은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품이었다. 감동과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여운으로 모두 남기기가 어디 쉬운가! 1, 2편 모두 극장에서 보며 신나했고 오래도록 후속작을 기다려왔지만 <토이스토리 3>은 시리즈 중 최고다!

이별에도 예의가 있는 법이라는 말 흔히들 하지만, 애정하던 대상과 '잘' 헤어지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예의가 필요하고, 그렇게 하고도 상처는 남는 법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펑펑 울면서, 혼자 꾸역꾸역 십수년쯤 뒤에 예쁘게 자란 보니랑 앤디가 연결되서 장난감들이 반드시 앤디 2세들에게 전달되는 번외편을 상상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 같다. 나는 특히 애니메이션에선 왜 해피엔딩이 아닌 걸 견디질 못하는지 원.

1, 2편에서도 '싹수 있는' 소년이었던 앤디는 참 잘 자라주었고, 그래서 더 뿌듯했던 것 같다. 15년이나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디와 버즈를 비롯한 장난감들 때깔만 봐도 앤디가 얼마나 장난감을 소중히 여기며 갖고 놀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스토리 전개상 그런 거라 해도, 어쨌거나 대학생 될 때까지 간직했던 앤디의 장난감들이 하나같이 말짱하고 성능까지 그대로라는 게 난 그렇게도 뿌듯하고 좋았다.

어린 시절 종이인형과 딱지 정도 이외엔 장난감을 별로 갖고 논 기억이 없다고 줄곧 생각했었는데, 요번 3편에 나온 무시무시한 눈 깜박이는 아기 인형을 보니 나도 그 비슷한 인형이 있었단 사실이 떠올랐다. 금발머리가 곱슬곱슬하게 붙어있고 원피스를 입은 채로 눕히면 눈을 감고 앉히면 눈을 뜨는 딱딱한 플라스틱 아기 인형을 내가 몹시 무서워했었다는 것도! ^^ 낮에는 그럭저럭 업고 돌아다니거나 갖고 놀았지만 밤만 되면 그 인형 눈이 어찌나 무섭게 보이던지 냅다 집어던지곤 했기 때문에 그 인형은 여기저기 흠집이 나 있었다. 영화 보는 내내 새삼 그 옛날 인형한테 어찌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암튼, 그래도 굳이 뭔가 꼬투리를 잡아보자면;;
원래 낀 안경과 그놈의 3D안경까지 두개를 들어올리고 눈물 훔치느라 꽤나 고생했지만, 사실 3D 효과는 별로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고, '데이케어 센터'를 굳이 '탁아소'로 번역한 게 계속 거슬렸다('서니사이드' 번역은 고심한 것 같던데 왜 하필 '탁아소'냐고!! 그냥 '어린이집'이나 '유아원' 정도로 옮겼더라면 거슬리지 않았을 텐데... 나도 안다, 직업병이다 ㅋㅋ). 사실 뭐 그렇더라도 만3천원이 아깝지 않았을 만큼 좋았다! DVD 나오면 꼭 소장할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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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놀잇감 2010. 7. 25. 16:28
* 스포일러는 없음. 그러나 실망할 순 있음 ^^;

그간 꽤 바빠서 블로그질에 매진할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일주일전에 본 영화를 이제야 포스팅할 생각을 했다는 건 그간 영화 본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있을 정도로 별 인상이 남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기야 <인셉션>이 개봉을 했더라면 그날 선택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영화다. 강우석 감독 영화가 난 좀 별로라서... 어쨌든 하도 영화 괜찮다는 말을 들어서 어떤지 확인하고 싶다는 후배의 권유도 있고, 딱히 달리 볼 영화도 없는 데다 박해일이 나온다는 이유가 더해져 심하게 꺼리는 마음 없이 보기는 했다.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라 스토리와 구성이 탄탄하다는 정도로만 사전정보가 있었는데, 역시나 뭔가 좀 기대를 하면 실망을 피하기 어려운 듯하다. 스릴러나 추리물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는 원작을 보지 않았으니 실망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음에도 영화보는 내내 '이 뭥미?' 하는 미진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똑같이 열린 결말이라도 관객에게 나름대로 자기 식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상상의 가능성을 안겨주는 쪽이 있는가 하면, '뭐야? 그래서 어떻다는 거야?'라는 푸념만 남기는 어리둥절하고 짜증스러운 결말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영화는 내게 후자쪽이었다.
한쪽 방향으로 잘 끌고 가다가(사실 한방향으로 '잘' 끌고가는 것인지도 의심쩍다) 막판 반전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하는 식인데, 그러기엔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아보자면 ^^
박해일의 묘한 눈빛은 여기서도 어울리는 역할이었고,
유준상의 깐족거림도 적당했고,
스토리와 별개로 나무로 지은 영화속 세트장 집들이 예뻤다. 영화 보다 말고, 나도 모르게 일행과 저 집 이쁘다, 저 계단 마음에 든다, 저런 집에 살고 싶다, 따위의 수다를 떨고 있더라. ㅋ

<타짜>, <식객>에 이어 원작 만화를 보지 않고 영화만 본 작품이 이걸로 세번째인 것 같은데, 앞의 두 영화가 원작만화를 굳이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영화로서 충분히 잘 짜여지고 각색된 느낌이었다면, <이끼>는 대체 어떤 요소들이 빠졌길래 이렇게 스토리가 헐렁하고 엉성한가 원작이 궁금해졌다. 아 물론, 찾아보진 않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래서 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누군가 묻는다면 시간과 돈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니 굳이 본다는 걸 말리진 않겠으나 크게 기대하진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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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 포에버

놀잇감 2010. 7. 10. 18:08

나도 매주 씨네프랑스 같은 거 보러다니고 싶은 '로망'이 있지만 현실이 따라주질 못하니 뭐 어쩌겠나. 이나마도 별러야 짬을 낼 수 있으니 그저 소소한 것에 감사하자.

미처 몰랐는데 <슈렉>이 처음 나온게 무려 10년 전이란다. 슈렉이 처음 나왔을 때 어찌나 통쾌하고 즐겁고 재미있었는지 그 여운이 참 오래갔다. 그에 비해 슈렉2는 그저 그랬고, 이후 나온 속편들은 봤는지 안봤는지도 잘 기억나질 않을 정도다. 하지만 10년만에 나온 슈렉 완결편은 어쩐지 보고싶었다. 처음 슈렉이 나왔을 때 나는 "딱 내 이상형이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었다. 배나오고 못생기고 좀 어리석으면 어떠랴, 삐딱하고 용감하고 정의롭고 착하고 여자 말 잘 들는데... ㅎㅎ

모든 행복이 '가정'으로 귀결되는 할리우드식 결말이야 뭐 좀 식상하다 할 수 있지만 <슈렉 포에버>는 완결편으로 똑 떨어지는 느낌이면서도, 그간 슈렉 시리즈를 자아비판하듯 패러디로 또 다른 웃음을 선사한다.
게다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까지 패러디해 비트는 데는 어찌나 웃기던지!

선택의 여지 없이 무조건 3D 디지털만 상영하는 바람에 거금 만3천원을 내야하는 건 억울했고, 안경 위에 또 다시 어설픈 3D안경을 덧쓰느라 걸핏하면 초점 안맞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조준하는 게 좀 성가스러웠지만, 슈렉이라 다 용서하기로 했다. 내가 안경을 낀 탓인지 3D 효과는 뭐 그리 감동스러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안타깝게도 달리 비교할 게 없다. <아바타>도 안봤으니 뭐...

암튼 속편에서 세쌍둥이 낳아 키우는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변모하는 바람에 매력이 뚝 떨어졌던 피오나를 여전사로 다시 그려낸 건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뻔한 트렌드라고 하더라도 흐뭇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묘사된 재미없는 결혼생활도 나름 현실적이고...
동화가 다 그렇듯 결론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는, 어리석게도 다들 행복은 부재를 통해서만 깨닫는다는 것이긴 하지만, 내게 동화의 매력은 역시나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해피엔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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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으로 하하하

놀잇감 2010. 6. 6. 20:37

몇달만에 반차를 낼 터이니 영화도 보고 같이 놀자는 후배의 말에 옳다구나 반색을 했다. 더구나 넷이나 모이면서 안본 영화가 겹쳐 고민할 필요가 없어 예매까지 미리 했다는 말에 웃음도 났다. 유유상종이라더니만...
내 경우는 그냥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하나는 연인이 있어도 취향상 같이 볼만한 영화가 아니어서, 하나는 <하하하>가 워낙 개봉관에서 빨리 사라지는 바람에, 나머지 하나는 그냥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느라 지금껏 못 보고 있던 영화를 모모하우스에 가서 봤다.

평일 오후의 소규모 영화관엔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계속 킥킥거림과 웃음이 터져나와 시끌벅적할 정도였다. 배우들이 다들 낮술 마시면서 찍었다던데 어쩐지 관객도 낮술 마시며 한참 풀어져 봐야할 것 같은 분위기.
너무 찌질하고 속이 빤히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이렇게도 유쾌하게 담아낼 수 있구나 싶어 줄곧 킬킬대다 나왔더니 어찌나 허기가 지던지 허겁지겁 저녁을 먹어야 했다.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 말고는 그간 홍상수 영화에서만 본 터라 투실투실 살집 많아진 그의 모습을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른 역할로 보는 게 적응 안될 지경이다. 친구네 아파트에 산다는 그는 연예인 답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독한 향수와 스킨 냄새 때문에 한참 뒤까지 어지러울 지경으로 빤질빤질하다는데, 내가 본 영화 속 모습으론 향수냄새는커녕 후줄근한 티셔츠에 매캐한 땀냄새만 배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홍상수식 연기를 잘한다는 의미겠지. 
칸에서도 유준상과 예지원 소식만 잔뜩 들리던데, 난 김상경, 문소리 커플 에피소드가 더 좋았다. 어쭙잖은 시인 김강우도 좋았고.

하나같이 무능력한 백수급 남자들의 변명과 다 알면서 모른척 홀딱 넘어가주는 여자들의 밀고 당기기를 보며, 그래, 저래야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는 거구나 싶어서 또 킥킥 웃음이 났다. 정말 제목 하나 잘 붙였다. 하하하 웃다보니 영화도 끝났고 통영의 추억도 끝이 나더라.

통영에 가본 건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라 언덕배기 즈음에 있었던 내가 묵은 모텔이 어느 동네인 줄도 모르겠고 강구안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한산섬 가는 유람선이랑 제승당은 눈에 퍼뜩 들어왔다. 컬러임에도 그리 선명하지는 않은 사진으로 남은 그 여행의 기억이 내 머리속에도 그렇게 방점으로 남아 있었나보다. 암튼 나도 통영에 가고 싶어졌다.

(드물게 보는 영화들은 블로그에 기록해야 연말에 베스트 뽑을 수 있을 텐데 올핸 읽은 책도 본 영화도 몹시 저조하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엘 간 게 언제인지 그날 오후 내내 생각해보니 <전우치전>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6월초 현재 영화관엘 가 본 게 겨우 두번인듯. ㅠ.ㅠ  전우치전과 하하하. 집에서 본 영화도 꼬마 니꼴라와 인사동스캔들이 전부다. 책도 안읽고 영화도 안보고 그렇다고 일도 별로 안하고 나 뭐하고 산 거니.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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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한해 정리

놀잇감 2010. 1. 2. 01:39

글 하나에 2009년을 정리해 담는 행위는 퍽 뿌듯하기도 하고 심란하기도 하다. 이른바 삶의 <낙>이라고 하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을 수도 있고, 요것밖에 없었나 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실한 기억력으로도 요것밖에 없었나 허망한 느낌이 들 것이라는 데 심증이 가지만, 하여튼 꼽아보자. 나의 2009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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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어쌔신

놀잇감 2009. 12. 4. 18:24

가기 전부터 마음을 단단히 잡았다. 매 장면 피가 분수처럼 솟는다더라, 사지가 퍽퍽 잘려나감은 물론 뎅강뎅강 목도 잘려나간다더라, 특히 처음 5분이 충격적이라더라는 얘기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며 적응력을 키워보려 노력했다. 절반 이상 눈가리고 괴로워할 건 뻔했지만 그래도 좀 궁금하긴 했다.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었던 영화 <매트릭스>가 워낙 탄탄했었기 때문에 전혀 형편없이 살육만 저지르지는 않으리란 기대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선 퍼뜩 두 가지가 떠올랐다.
"장하다, 정지훈!"
"이런 영화 너무 싫어!"
볼거리만 잔뜩 모아놓은 액션영화와 터무니없는 조폭 영화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확실히 좋아할 수 없는 영화였고, 역시나 제일 인상적인 부분은 어린 라이조의 풋풋한 로맨스였다. 그나마도 충격적으로 마무리 되는 바람에 눈을 감아야 했지만.
하도 피칠갑을 해대는 터라 싸우는 장면은 거의 못봤지만(근데 싸우는 장면이 거의 다라서 ^^ 감상을 언급하는 것조차 민망하긴 하다), 마지막에 스승과 대결할 때 불티 휘날리는 건물 안에 서 두 남자가 팽팽히 맞서는 장면은 꽤 아름답기도 했다.

서양사람들은 일본, 사무라이, 닌자에 대해서 낭만에 가까운 특이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리고 이 영화에 그 환상을 있는 대로 풀어놓다보니, 닌자는 거의 신격화된다. 정지훈 만세!
부들부들 넌덜머리가 나는 잔혹한 장면의 연속에 2시간 가까이 내내 자지러지게 놀라거나 치를 떨긴 했지만, 2편을 감안한 엔딩을 보며 할리우드에서 어느 정도 성공해 꼭 속편 제작이 이루어지길 비는 마음이 든 이유는 순전히 비/정지훈 때문이었다.
동양인 닌자의 특징을 극대화하느라 길게 기른 머리는 촌스러웠고 전체적인 외모도 전혀 멋지지 않았지만, 그의 영어 목소리는 생각보다 매력적이었고 우려했던 연기도 그 옛날 <람보> 따위를 떠올리면 괜찮은 편이다. 맞다, 라이조의 아역을 비가 키우는 아이돌그룹 엠블랙 멤버 중 하나가 연기했다는데, 빡빡 머리를 밀고 나온 그 녀석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비의 광팬에게 그 녀석도 혹시나 교포출신이냐고 물었더니 비처럼 순 토종이란다. 그 역할 오디션에 수백명 이상 달려들었을 텐데... 놀랍다. 물론 팔이 안으로 굽는 식으로 배우 정지훈을 응원하는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 ^^
아무튼 나로선 절대로 다시 볼 수 없는 영화이고 2편이 나온대도 또 같이 보러가자는 지인의 설득에 넘어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젠 꿈에 나올까 무서워서 영화를 떠올리기 싫었을 정도. 이런 분야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좀 더 짜임새 있게 설득력을 갖췄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독한 노력과 트레이닝으로 따낸 할리우드 영화 단독 주연인데 단순히 몸을 볼거리로 제공하고 말기는 아깝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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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영화

놀잇감 2009. 11. 27. 15:27

워낙에도 게을러서 영화를 그리 많이 보러다니는 편이 아닌지라 내 쪽에서 먼저 작정하고 영화 약속을 잡는 유형으론 살아본 적 없는 것 같다. 해서 영화를 볼 때도 홀로 관람이 아닌 한 대부분은 상대의 의견을 좇는 편이다. 공포영화는 절대로 볼 수 없고, 간혹 기분에 따라서 보기 싫은 영화가 있으면 소심하게 의견을 내놓는 정도.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내쪽에서 재미있을 것 같다거나 관심 가는 영화는 죄다 흘려보낸다.
키드님이 내내 울다 나오셨다는 <여행자>도 그렇고 파피, 미아와 보러가려고 작당했다 파토난 <파주>도 그렇고, 책과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시간여행자의 아내>도 그렇다. <파주>는 아직 씨네큐브랑 모모하우스에서 하고 있으니 굳게 마음 먹으면 볼 수도 있을 텐데 한번 떨치고 나서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곰탱이 동면모드가 시작된 때문이라고 핑계대기엔 요즘 날씨도 많이 따뜻해, 한심한 한숨만 흘러나온다.
<솔로이스트>도 개봉했던데 영화관에서 내리기 전에 보러갈 수 있을까. 찾아보면 작은 영화관에서 좀 지난 영화도 하고 있을 때가 많으니, 딱히 못할 것도 없는 일을 요샌 엄청난 어려움으로 느끼고 움츠러든다. 다 11월 탓이라고 하고 싶다. 11월은 일년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달. 겨울이 오는 건 11월 탓이 아닌데도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싫은 11월이 이제 겨우 3일 남았다. 어서 가버려라.
 
영화 얘기하다말고 또 딴소리 하고 앉았다.
암튼 영화 선정권을 지인에게 미룬 덕분에 본 이달의 영화 <청담보살>은 개봉 담날 봤다고 말하기 창피한 정도였다. 11월의 묘한 음울함을 떨치기 위한 유쾌함이 필요해 선택된 영화임을 알지만, 시간과 돈과 배우가 아깝더라.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임창정에 대한 호감을 한껏 높여놓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심한 욕과 불평을 해대며 입술을 일그러뜨렸을 거다.
역시나 개봉 다음날인 오늘 볼 뻔했던 <닌자 어쌔신>도 나에게 영화를 정하라면 선뜻 보자고 말하지 못할 영화다. 얼마나 피칠갑을 하며 잔혹하게 싸워댈지 안봐도 비디오 아닌가. 하지만 비/정지훈/Rain의 광팬인 친구는 11월 26일에 <닌자 어쌔신 번개>를 칠 것임을 익히 공고했었고 우리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거의 절반 이상 눈을 감고 얼굴을 가려야 하겠지만, 나 또한 광팬은 아니어도 비/정지훈의 첫 단독 주연 할리우드 영화를 광팬 친구와 함께 봐주고 함께 수다를 떨어줄 용의는 있단 얘기다.
솔로 데뷔 직전 녹음실에서 박진영한테 작살나게 혼구멍이 나며 노래를 되풀이해 부르던 키 껑충한 청년을 미처 못 알아보는 바람에 싸인을 못 받아둔 건 지금도 한스럽다. 발음 부정확하다고 혼나며 한소절을 수십번씩 되풀이해 부르던 신인가수가 이렇게 월드스타로 클 줄 누가 알았어야지! 그날 g.o.d.와 박진영한테 받은 싸인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에겐 데뷔를 앞둔 신인가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당연히 그에 대해 박진영이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기야, 비의 연기자 데뷔를 반대했던 박진영도 비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을 거다.
솔직히 춤은 몰라도 가수로서 가창력은 딸린다고 생각하지만, 드라마에서 본 연기력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물론 할리우드 진출작인 <스피드 레이서>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래도 비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짜식, 잘 컸어.. 싶은 느낌과 함께.
<닌자 어쌔신> 역시 봤다고 자랑하기 민망한 영화일 것은 뻔한데, 보기도 전에 먼저 기대감을 토로하고 있는 걸 보면 이번 영화는 옆구리 찔려 동행하게 되는 걸 기꺼워하는 모양이다. 참 줏대없는 인간의 영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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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가 멀다는 핑계로 동대문에 오면 한번 가볼까 했던 유럽영화제는 결국 포기했다. 그 복잡한 동대문에 나간다는 게 꺼려진다는 핑계를 내세웠지만, 그저 다 귀찮았다는 게 본심이었다. 해서 유럽영화제까지 다녀와서 <10월에 본 영화> 따위의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려 했던 원래 계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잊기 전에 적어는 놓아야지 싶다.
한달에 한번씩 평일 오찬과 영화보기를 약속한 지인이 있다. 우유부단해서 좀체 뭐든 결정하기 어려워하는 나와 달리 만날 시간과 음식점, 보고픈 영화까지 콕 찍어주는 분이라 나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 무척 흐뭇하기는 한데, 가끔 영화취향이 나와 맞질 않으면 어쩌나 염려되는 경우가 있다. 
10월의 영화는 원래 <내사랑 내곁에>가 될 뻔했는데, 공교롭게도 만날 약속을 잡은 날 바로 전날에 끝이 나면서 다시 물망에 오른 <호우시절>과 <굿모닝 프레지던트> 가운데 선택된 영화는 후자였다. <호우시절> 쪽을 내심 바라고 있던 나는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지인이 정우성보다는 장동건을 더 예뻐하나보다 여기며 그러마고 했다.
사실 둘 다 꼭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동건은 얼굴이 연기를 깎아먹는 배우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태극기 휘날리며> 말고 난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이왕 잘생긴 남녀 얼굴 보는 재미를 따질 거라면, 장동건이 1/3만 나오는 이 영화보다는 정우성이 계속 말간 얼굴을 보여줄 <호우시절>이 낫겠다 싶었던 거다. 사실 <대통령>이라는 소재도 낯간지러웠으나, 그래도 장진 감독을 믿어보기로 하곤 마음을 비웠다.

 
영화를 볼 땐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날이 하필 개봉일이었대고 첫날부터 장동건 효과에 힘입어 꽤나 관객이 많이 들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개봉일 관람의 열혈관객에 나 또한 수를 보탰다니 킥킥 웃음이 났고, 이런 영화에 관객이 몰린다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져 좀 씁쓸하기도 했다.
어디선가 이 영화를 <판타지>라고 부르는 걸 봤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세 사람의 대통령 모습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상황이나 대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누구도 동일시할 만한 인물은 현실에 없다. 너무도 이상화된 대통령의 모습이랄까. 그래서 더욱 더 나는 오금이 저릴만큼 낯간지러움을 느꼈고 간간이 장진식 유머에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2시간을 넘기는 상영시간이 지루했다.
청와대 주방이라는 공간의 활용과 주방장의 내레이션은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 같은데, 역시 내가 즐기기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소재의 거부감이 너무 큰듯.
게다가 아무리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설정이라지만, 요즘 신장이식 수술하는데 주사로 마취하는 병원이 어디 있나! 쳇...

어쨌거나 뜻밖에 박해일이 <살인의 추억> 같은 느낌으로 등장했다가 장동건을 곤경에 빠뜨리는 에피소드는 반가웠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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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

놀잇감 2009. 9. 18. 23:49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최단기간 100만부를 돌파해 기념파티를 했다지만 나는 그 소설을 읽고 싶지가 않다. 내심 궁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나에겐 초대형 베스트셀러 기피증 말고도 엄마를 소재로한 소설이라는 점이 더 큰 요인이다. 거의 매일 24시간 이렇게 붙어지내는 모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울 엄마를 생각하면서 나는 괜스레 저 책을 안 읽기로 마음 먹었다.
영화 <애자>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철부지 딸과 병들어 죽어가는 엄마의 눈물겨운 신파극. 최강희는 세상의 딸들이 엄마랑 손잡고 가서 보기를 권했다지만, 나는 엄마와 둘인 절대로 싫었고 따로도 보기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질질 울기 싫어서 보기 좀 그렇다는 나의 말에, 그렇게 신파조로 슬프지 않고 밝게 그려졌다니 볼만할 거라고 지인이 설득을 했다. 그분에게도 병들어 누워계신 엄마가 없었다면 아마 난 끝까지 안보겠다고 우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만나면 서로의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는 사이인지라 믿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따라나섰다. 

애자도 예쁘고 작가지망생의 저 방도 마음에 든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애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원래부터 최강희는 내가 퍽 선호하는 배우이고 김영애 아줌마의 연기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나머지 조연들도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다. 이름도 하필 <동팔>이어서 돌팔이 의사라고 놀림받는 최일화도, <찬란한 유산>에선 별로 매력을 못살렸지만 <바람의 화원> 정조 역할로 나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배수빈도, 낭랑한 목소리 때문에 좋은 장영남 편집장도,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김C도!
요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유독 많은 것 같은데, 외지인인 내가 보기엔 어색한지 안한지 잘은 몰라도 가끔 <몬 알아듣는> 대사가 있어서 좀 답답하긴 했다. 해운대 볼 때는 최소한 열마디에 하나쯤 못알아 들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도 강하고 세고 독하기까지 한 두 모녀의 캐릭터엔 아마도 경상도 사투리가 필수적이었을 것 같다. 
우려했던 대로 꽤 따라울 수밖에 없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 지끈거릴 만큼 피곤하게 울리는 영화가 아니어서 좋았고 툭툭 던지는 퉁명스러운 모녀의 대사하며, 구석구석 세심한 부분까지 정성을 들였다는 느낌이 좋았고, 특히 죽음과 병을 다루는 방식이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신파 극심한 영화처럼 병든 엄마가 끔찍하게 아파하며 관객을 고문하는 장면이나 뒤늦게 철든 딸의 한스러운 통곡 장면이 너무 길면 어쩌나 몹시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만에 하나 죽기 전에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아마도 그건 울 엄마 얘기 일 거라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는데, 어쩌면 세상의 모든 딸 마음 속엔 애자가 하나씩 들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영화관을 나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간만에 유리알 가득 미세한 눈물방울이 흩뿌려져 있어서 하...하... 뜨거운 입김을 불어 안경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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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우먼

놀잇감 2009. 8. 23. 16:39

일주일간 영화를 세편이나 봤다. 영화제 기간도 아니고서 이러는 일은 꽤나 드문 사건인데 한편으로 참 한심하기도 하다. 이럴 시기가 아니란 말이지...
그래도 적어두지 않으면 머릿속의 지우개가 싹싹 지워버릴 게 뻔하니 한심해도 기록은 해두자.
씨네큐브 운영에서 백두대간이 손을 뗀다는 소식에 망연하여 <마지막> 의식을 치르듯 모여본 이 영화는 앞으로 반쪽짜리로라도 이어지길 바라는 씨네큐브라는 극장 자체에 대한 우리들만의 예우에 걸맞게 여러모로 참 의미심장했다.


포스터에 제목만큼이나 강조된 <시네마 천국> 두 거장이 다시 만든 영화라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시네마 천국>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내 인생의 영화> 목록을 뽑을 때 누구나 다섯 손가락 안에 그 영화를 손꼽지 않을까. 토토와 알프레도의 감동적인 우정 말고도 영화가 우리 인생에 안겨주는 행복의 의미를 그보다 더 잘 담아낸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시네마 천국>이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를 본 기억은 전혀 없거나 있었더라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인데, <언노운 우먼>을 보고나선 역시 거장은 거장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배경음악만으로도 불안초조해서 덜덜 떨리게 만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씩 깔아놓은 조각퍼즐로 시종일관 긴장과 궁금증을 멈출 수 없게 만들어 진이 다 빠져버릴 때쯤 활짝 펼쳐놓는 분노의 진실에 나는 정말이지 간이 오그라붙는 것 같았다.

번역 일을 하다보면 약간 기묘한 인연이랄까,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것이 들 때가 있다. 전혀 상관없는 두 작품에서 똑같은 음악이나 책이나 인물이 인용된다든지 해서 나만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공통점을 발견한다든지, 어쩐지 비슷한 장면을 상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든지 하는 거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에도 상처뿐인 과거로 괴로워하는 여자가 주인공인데, 배경도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자기 아이를 빼앗기고 그리워하는 점이나 주류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소외계층의 여성이 자기 방어를 위해 남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점이 똑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집에 두고온 밀린 원고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영화를 보면서도 일을 나몰라라 미뤄둔 게으름을 추궁받는 느낌이었으니, 나에겐 더욱 의미가 남달랐달까. 비록 영화 주인공 이레나는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소설 주인공 콘수엘라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지만서도.

암튼 충격적인 사실들이 하나하나 펼쳐지며 줄곧 자지러지게 놀라고 안쓰럽고 분노하던 감정을 마지막엔 감동의 눈물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감독의 배려가 고마웠다. 이레나의 과거 상처는 결코 잊혀질 수도 쉽사리 치유될 수도 없겠지만 이레나의 진심이 통한 상대가 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남아 있다는 게 왜 그리 위안이 되던지. 생각할 것도 너무 많고 가슴이 먹먹해서 쉽게 뭔가를 꼬집어 적어두기에도 쉽진 않은 영화였지만, <시네마 천국>과는 다른 성격으로 오래도록 여운을 남길 작품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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