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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8.19 다크나이트 8
  5. 2008.08.18 누들 9
  6. 2008.07.19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18
  7. 2008.04.29 1995-2008 내가 뽑은 최고의 영화 10 21
  8. 2008.04.13 가족의 굴레 - 천일의 스캔들 4
  9. 2008.02.26 추격자 19
  10. 2008.01.08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

기분전환

놀잇감 2008. 10. 23. 21:54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기분전환에 효과적인 나만의 방법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쉬운 건 무작정 외출해서 아무 카페나 들어가 맛있는 커피 마시기.
작업실이 있을 땐 도망치듯 차를 몰고 그곳으로 숨어들어 싸늘하거나 푹푹찌는 매캐하고 낯선 공기와 정적 속에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시간이 참 소중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공간이 없어졌으니 뭐...
제아무리 브리카 모카포트와 내 솜씨가 뛰어나다고 해도, 집에서 마시는 커피가 허락하는 행복과 여유에는 어딘가 한계가 있다. 집이 아니라는 공간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신선함도 있거니와, 더욱이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준 수고가 덧붙여진다고 생각하면 커피가 더욱 그윽할 수밖에.
문제는 작업실로  도망칠 땐 무릎 나온 추리닝에 사흘째 안감은 머리나 눈꼽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스카프로 칭칭 동여매면 그만이지만, 카페를 찾아 나갈 땐 아무래도 씻고 치장(?)하는 번거로움이 필수인데 몹시 귀찮아 자주 할 짓이 못돼서 그렇지 오히려 기분전환의 효과는 더 크다.
책한권 들고 나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리필해달래서 더 마시는 동안 몇 페이지라도 읽고 들어오면 마치 대단한 약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겉치레 탐서가인 척 하는 것도 큰 묘미.

그런데, 기분전환이 필요한 순간이 하필 충동적인 외출이 여의치 못한 오밤중이라면?
그럴 땐 여지없이 인터넷쇼핑이 묘약. ^^
즐겨찾기에 들어 있는 몇몇 사이트(주로 문방구 사이트)에 들어가서 위시리스트에 물건을 마구 담았다가 장바구니까지 담은 뒤 진지한 고민을 거쳐 조용히 로그아웃 하고 나올 때가 더 많지만 ^^
그렇게 위시리스트에 담아둔 기간이 오래된 <완소> 물품들은 배송비무료 금액에 도달할 때까지 마냥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사들이며 희열을 느낀다.
요번엔, 뼈다귀모양 포스트잇(포스트잇은 종류별로 사들여도 왜 끊임없이 욕심이 나는 걸까 -_-;;), 뼈다귀모양 이어폰줄 정리기(정민공주 주려고), 재생신문지로만든 연필, 연필깎이, 포스트잇처럼 쓸 수 있는 마스킹 테이프, 옷감전용 마커세트(!), 실험용 민무늬티셔츠를 장만했다.
오밤중에 쇼핑하고 나서 잠든지 얼마 안된 아침, 이내 택배배송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을 때의 미묘한 쾌감은 아는 사람만 알리라.
웬만해선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다른 물건들(그야말로 '질러댄' 가방이나 옷)은 나중에 괜히 죄책감도 들고 없어도 될 물건이라는 생각에 떳떳하게 자랑하지 못하는 데 반해 문방구류는 상자 가득 쟁여놓고 있어도 죄책감은커녕 더욱 욕심만 늘어가니 참, 나의 문방구류 열망은 고질병이다.  

워낙 게으른데다 어쩐지 큰 낭비 같은 느낌이라, 카페 외출만큼 자주 할 수는 없지만 미용실 외출도 기분전환엔 아주 그만이다. 예전엔 워낙 소심하기도 했고(더러운 머리를 남에게 맡길 순 없다;;고 생각했음) 최대한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미용사를 만나야 나한테 어울리는 머리모양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괜한 노파심이 작용해서 벼르고 별러 머리 손질을 하러 갈 때도 일부러 미리 머리를 감고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요샌 오래 별렀든 충동적으로 결심했든 미용실에 갈 땐 그냥 꾀죄죄한 모습으로 더럽고 엉킨 머리칼이 정 민망하면 모자를 질끈 눌러쓰고 갈 수 있게 됐다.
그러고는 퍼머를 하든 그냥 머리끝만 살짝 다듬든, 샴푸실에서 느긋하게 기대앉아 다른 사람이 감겨주는 손길에 머리칼을 맡기고 있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거다.
사실 나는 빠져 있는 상태의 머리칼(머리에 붙어 있는 머리칼은 상관없다^^)에 대해 약간 우스운 공포감 같은 게 있어서 봄가을 환절기에 특히 머리를 감을 때 한꺼번에 와장창 빠져나온 본인의 머리칼을 보고도 섬뜩해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난 절대로 온종일 남의 머리를 감겨주며 손가락에 마구 엉겨붙는 머리칼을 견뎌야하는 미용실 보조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특히 수채구멍에 모여있을 빠진 머리카락들을 생각하면 정말 무섭다 ㅠ.ㅠ) 그들에게 매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머리 감겨주기>에 대한 나의 아련한 로망은 아마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 야영지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고풍스러운 주전자에 물을 담아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뒤로 젖혀 머리를 감겨주는데 그 장면이 어찌나 로맨틱한지... @.@
(물론 가끔 엄마 머리를 감겨드리면서도 빠진 머리칼 때문에 섬뜩하고 오싹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내쪽에서 <로맨틱한 머리 감겨주기>는 불가능하다!ㅋㅋ)
그 영화를 보았을 즈음에만 해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게 그리 조심스럽거나 정성스럽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즐긴다기 보다는 그저 송구한 마음에 주먹을 움켜쥐고 견뎌내야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용실의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좋아지면서 머리만 감겨주는 게 아니라 나중엔 시원하게 두피마사지도 해주니,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을 때 괜히 머리를 다듬으러 가서 남의 손에 샴푸를 맡기는 게 나로선 가끔 누리는 사치이자 기분전환의 기회가 되었다.
어떤 일본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순전히 기분전환으로 머리만 감으러 미용실에 가는 내용이 있어서 몹시 공감하며 우리나라에도 가벼운 두피마사지랑 머리만 감겨주는 서비스가 도입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_+

마지막 기분전환 비법은 뭔가 꼼지락꼼지락 만들고 리폼하기.
지난번 바느질로 쿠션을 만들어 본 이후로 수건을 썩썩 잘라 숭덩숭덩 꿰매서 솜을 넣고 뭔가를 만드는 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바람에 그간 마우스 손목받침대를 두개나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하나는 반달 모양으로 대충 꿰매 내가 쓰고 있고(책상 사진 어딘가에 선을 보였을 법도 한데;;), 하나는 곰돌이 모양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정민공주에게 주었는데 점점 뭔가 더 복잡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나 고민하고 있다.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퀼트 같은 거에 심취하면 번역은 완전 뒷전으로 나몰라라 하고 만날 바느질만 하고 앉아 있을 공산이 크기 때문에 애써 피하는 중이지만, 뭔가를 조물조물 오리고 꿰매 만드는 행위가 퍽 즐거움을 느낀다.
<수면의 과학>을 특히 좋아하며 봤던 이유도 끊임없이 예쁜 소품을 만드는 스테파니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스테판에게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전체에 나오는 아날로그풍의 기발한 소품들도 당연히 사랑스러웠고. 
역시 지난번에 심심하기도 하고 자전거 티셔츠도 입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손수 시도해보았으나 무식하게 네임펜과 유성매직으로 그리는 바람에 죄다 번지거나 지워지기는 했지만, 티셔츠 낙서질에 맛을 들인 나는 <패브릭전용 마커>를 오래 눈독들여왔고 얼마전 문방구쇼핑 때 전격 장만하여 앞으로 끝없는 티셔츠 낙서질에 탐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미 두번째 장난질은 성공(?)을 거두었고, 아직 빨아보진 않았지만 다림질 후엔 절대 안지워진다는 제품을 믿어보기로 했다. 
원래 티셔츠 한 장은 실험용으로 시도해보고 괜찮으면 한 장 더 그려서 선물하려고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으며, 나름대로 도안도 고민하고 실패를 교훈삼아 얇은 티셔츠가 펜과 함께 늘어나지 않도록 천 안쪽에 테이프를 붙여 그리는 묘안도 생각해내는 등 흥미진진한 과정이었으니, 낙서질을 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희희낙락 즐거워했을지는 실토하지 않아도 뻔한 일.
그러나 결과적으로 낙서질 티셔츠는 두장 다 내가 입기로 했다. ^^
두번째로 그린 자전거 티셔츠는 많이 미흡하지만 정말로 선물하려고 했는데 포장하려고 보니, 티셔츠 봉제 자체가 불량이라 소매 연결부위에 구멍이 있는 것이다! 젠장. 그림 그리기 전에 봤어야 교환을 해달라고 하지, 실컷 낙서하고 났으니 교환도 못하고 그냥 내가 꿰매서 입는 수밖에.

흠...
물론 그밖에도 당연히 친구들 만나 수다떨기, 조카들이랑 신나게 놀기, 전시회 가기, 여행, 고궁 거닐기... 등의 기분전환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굳이 위의 방법들을 거론한 건 미리 계획하지 않아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인데 이렇게 시시콜콜 적다보니 역시 가장 쉽고 친근한 기분전환은 블로그질임을 깨달았다.
비록 그 효력이 이젠 찰나에 사그라드는 것 같긴 하지만, 찰나가 모여 영겁이 되듯 계속되는 블로그질로 내 기분은 두둥실 떠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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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

놀잇감 2008. 9. 28. 18:11

꼭 보고싶다고 생각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주말 2시 결혼식과 6시 약속 사이의 공백을 홀로 메워야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불편한 구두를 신고 최대한 시간을 잘 보낼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생각 난 것이 영화였고 상영표를 보며 <맘마미아>를 한번 더 볼까 하는 마음과 그래도 새 영화를 보자는 마음이 교차하던 끝에 선택된 것이 바로 하정우, 전도연의 <멋진 하루>.
헤어진 애인에게 1년뒤 다짜고짜 찾아가 "돈갚아!"라고 외치며 시작된다는 정도만 알고서(예고편을 어디서 봤더라;;) 보기 시작한 영화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두 사람의 하루 일정을 따라가는 내용이기에 템포가 느리고 흐름이 잔잔할 것임은 당연할 터.
등장인물도, 사건도 퍽 단출한데 두 배우의 내공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인지 따지고 보면 별것도 없는 이야기에 퍽이나 힘이 실린다.


진한 감동도, 극적인 반전도, 흥미진진한 줄거리도 없이 그냥 조근조근, 누군가 우연히 헤어진 옛애인을 만나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거나, 어색하게 차 한잔 마셨다는 이야기를 조금 자세하게 듣는 느낌의 영화다.
그런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따분하겠고, 모든 인간관계의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는 사람(약간 늘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대부분 눈을 빛내거나 킬킬거렸다)에겐 재미있을지도 모를.

어제 본 영화를 따끈하게 소개하려니 군말이 많아졌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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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

놀잇감 2008. 9. 25. 21:32


영화본지 일주일이 지나 그 감동이 이미 가물가물해지려고 하고 있으니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어서 끼적여야겠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본 적이 없다. 아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추억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그 뮤지컬이 몹시 보고싶으면서 동시에 어쩐지 꺼려지는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섣불리 뮤지컬을 보러갈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집에 전축은 없고, 카세트플레이어와 라디오로만 음악을 듣던 내가 중학교 때 처음 아버지가 장만하신 워크맨으로 이른바 <스테레오> 음악을 처음 영접한 충격적인 경험을 한 순간 내 귀에 울려퍼졌던 노래가 바로 아바의 주옥같은 명곡들이었다.
왼쪽 귀에서 시작해서 오른쪽 귀로 뇌를 통해 연결되는 듯한 오묘하고 강렬한 스테레오 사운드를 헤드폰으로 들으며 아버지를 비롯해 우리 삼남매는 앞다투어 서로 음악을 듣겠다고 줄을 서다시피했다.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폴모리아 악단의 다른 영화음악들은 비교적 따분하게 생각되던 반면, 아바의 음악들은 열세살 짜리 계집애가 들어도 마냥 좋고 신이 났다.

그런데 그 소중한 아바의 명곡들로 만든 뮤지컬이라니... 뮤지컬 배우들이 과연 그 아름다운 <오리지널> 음악들을 제대로 소화나 할 것인가, 겁이 날 정도였고 성량 떨어지는 배우들이 노래들을 망치면 막 화가 날 것 같았다. 더욱이 스무살 된 딸을 결혼시키는 중년의 주인공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들었고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배우들이 줄줄이 출연하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팀의 공연이 왔을 때도 나는 줄곧 외면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지들이 어떻게 아바의 노래를 제대로 표현하겠어, 라며. ^^;
물론 내심으론 뮤지컬 맘마미아에 대한 혼자만의 상상과 기대를 마음껏 펼치고 있었다. 배우들은 입만 벙긋거려 립싱크를 하고, 아바의 노래들이 흘러나오는 식으로.

그러다 영화 맘마미아의 소식이 들려왔다. 주인공이 메릴 스트립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나는 드디어 맘마미아를 볼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캐스팅엔 심히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영원한 나의 미스터 다아시 콜린 퍼스까지 나온다는데 더 망설일 것도 없었다. ^^;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했던 대로 피어스 브로스넌의 노래솜씨는 아슬아슬했지만,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자연스레 어우러진 소중한 아바의 노래들은 전혀 훼손된 느낌이 없었다. 어쩌면 그간 뮤지컬 맘마미아를 멀리 했던 내 편견이 전혀 근거없는 아집이었을 것이다.
스무살 소피는 매우 사랑스럽고 예쁜데다 가창력도 뛰어났으며, 메릴 스트립은 연기로든 노래로든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며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했다. (아.. 나도 메릴 스트립처럼 아름답고 멋지게 늙어야 할 텐데!)
아참, 콜린 퍼스의 노래 솜씨는 세 미중년 가운데 단연 돋보일 정도였고, 뱃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리드하는 장면은 남들에겐 몰라도 나에겐 그저 흐뭇한 백미였다. 
게다가 그리스와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은 또 어떻고!! +_+
영화관을 나서던 나는 입으로는 Thank you for the music을 흥얼거리며, 머릿속으로는 어서 지중해를 가봐야해, 그리스를 가봐야해... 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아바의 추억 때문에 더욱 점수를 많이 땄을 수도 있지만, 내겐 정말 좋았던 영화.
DVD가 나오면 당장 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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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놀잇감 2008. 8. 19. 20:31
드디어 봤다.
어제 <누들>을 보면서도 손에 땀을 쥐었던 나는 간이 덜렁덜렁거리는 걸 느끼며 순간순간 자지러지다 몇번은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선악의 양면성에 대해서 깊은 사색을 이끄는 설정도 그렇거니와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만든 놀라운 장면들은 정말이지 '폼'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커 포스터를 퍼오려고 했는데 문득 무서워졌다. -_-;


크리스천 베일, 히스 레저, 게리 올드만, 모건 프리먼, 마이클 케인, 아론 에크하트까지 멋지고 연기 잘하는 남자들 모둠 세트 같은 배역진이라니! (슈렉2에 나온 잘난척 대장 왕자의 완벽 재현으로 느껴진 지방검사 하비 덴트 역할의 아론 에크하트는 처음부터 좀 느끼해서 별로였지만, 연기력은 인정해줘야할 듯)

늘 희화되었던 잭 니콜슨의 보라색 악동 조커를 히스 레저는 어쩜 그렇게 섬뜩하게 변모해 놓았는지, 그가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우울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는 설에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들을 별로 탐탁지않게 여기는 편이면서도 배트맨 시리즈는 늘 예외로 치며 좋아라하는데(유치함의 극치로 손꼽히는 배트맨&로빈도 나는 낄낄거리며 재미있게 봤다 ㅋㅋ), 그간 본 배트맨 시리즈 중에서 이렇게 물리적으로 환하면서 강렬한 어둠의 포스를 뿜은 영화가 있었던가. 언제나 범죄가 들끓는 고담시는 내 기억 속에서 늘 어둡고 음험하여 배경은 거의 밤이었는데(내 착각일 수도 있겠으나;;), 여기선 환한 대낮 장면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불안한 어둠을 더욱 강조하는 듯.

사상 최고, 최강이라는 영화홍보를 어지간한 과장으로 여겼는데, 아... 군말없이 박수를 쳐주고 싶다.
섬뜩하면서도 멋진, 대단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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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들

놀잇감 2008. 8. 18. 23:36
블로그 이웃이신 키드님의 영화 소개글에 혹해서 씨네큐브에 가서 봐야지 마음 먹고는 어슬렁 씨네큐브 홈피에 가서 상영시간표를 확인해보니 아 글쎄 오늘까지밖에 상영시간표가 없지 않은가!
단순무식한 인간답게 씨네큐브에선 오늘까지밖에 상영을 안하나보다, 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선 후다닥 씻고 4시 40분 영화를 보기 위해 광화문으로 달려나갔다. -_-;; (지금 생각해보니 개봉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종영할 리는 없고 홈피 개편 따위의 기술적인 문제일 것도 같아서 스스로 좀 바보같다. ㅋ)

영화 욕심에 무수리의 본분을 잊을 수야 없는 법이니, 귀가시간이 어중간해질 것 같아 왕비마마께도 혹시 영화 보시겠냐고 했더니 두말 않고 따라나서셨다. 점심도 밥먹기 귀찮아서 찐고구마와 포도 두 송이로 떼웠는데, 아싸~ 저녁도 외식으로 해결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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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가 너무 귀여워서 앞서 이 영화를 보신 키드님은 끙끙 똥 마려운(?) 소리를 내셨다는데;;
주변 그 누구의 조카라고 소개받아도 당연할 것처럼 생긴 꼬맹이는 딱 사랑스러운 우리 조카들 또래라 더 예쁘고 귀여워서 감정이입이 막 됐던 것 같다.

중국인 엄마는 사라지고
말은 안통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만 우글거리는 낯선 집에 홀로 남겨지다니...

게다가 또 여주인공 미리는 왜 이렇게 예쁜 거냐. *.*

킥킥 웃다가 콩닥콩닥 마음 조리다가 눈물 핑돌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참 이야기를 잘도 버무려낸 영화다. 뭐 상은 괜히 탄 게 아니겠지만, 몬트리올영화제 대상을 탔대서가 아니라 머리와 심장의 괴리 및 나의 개인적인 무지를 바탕으로 한 편견을 보기좋게 깨주었다는 점에서도 나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왜 나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편승해 팔레스타인인을 괴롭히고 예루살렘에 높은 담장이나 쌓아올려 자치지구를 격리하질 않나 걸핏하면 보복 폭격을 일삼아 민간인을 살상하는 장면만 생각나는지(반면에 팔레스타인 측의 자살테러는 마치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투척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말이다 -_-;;).
어쨌든 이스라엘 사람들도 전쟁으로 군인들이 죽어가고 유족이 생겨나는 아픔을 겪는다는 걸 왜 난 이 영화를 보면서야 깨달았는지...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이스라엘인 희생자들에겐 같은 뉴스를 보면서도 그간 크게 연민이 들지 않았다니,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미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 맞나?)

무식한 나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영화는 전쟁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을 단 한 장면도 비추지 않고 그저 누들(국수 먹기 신공을 보여주는 6살 꼬마의 별명이다)과 미리의 짧은 대화로 짚고 넘어가며 긴 여운과 고민을 안겨준다는 데 미덕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편견은 중국에 관한 것.
홍콩과 하이난을 제외하고 나는 중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통 들지 않는다. 순전히 측근들이 중국여행에서 겪은 관광지 중국인들의 무섭고 무례한 태도 때문인데, 심지어 우리 왕비마마께서는 그 경치 좋다는 장가계 원가계 여행에서 중국 상인들한테 돈 빼앗기고 맞을까봐(막무가내로 물건 들이대며 돈 달라고 울 엄마 가방을 막 열더란다), 그리고 걷기 힘든 곳에서 타는 가마를 그들이 내팽개칠까봐(울 엄마의 피해망상이었을 확률이 높은데 팁을 적게 주면 일부러 막 흔들기도 하기 때문에 미리 돈을 더 집어주기도 한단다) 겁을 내다가 결국 병이 나서 귀국했었다. ^^;
다른 지인들도 중국은 <예상대로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곳>이라는 애매한 말로 중국에 대한 나의 편견을 키웠던 것 같다. 섣불리 믿었다간 큰 코를 다치거나 손해를 보기 일쑤라나 뭐라나.

겨우 영화 한편을 보고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내 편견이 싸그리 사라졌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중국엔 3, 4살 때부터 소림무술을 익히느라 기숙학교에서 피나는 연습을 하는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라
누들처럼 천진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수두룩빽빽하게 살고 있으며, 어설픈 주소 하나를 내밀어도 아무 대가없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사방에 전화질을 해 외국인을 데려다주는(다소 미화되었으리라고 짐작은 가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13억의 인구를 이루었으리라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보며 새삼스레 떠올렸다는 얘기다.

이렇게 따지면 영화는 결코 <겨우 영화 한편>이라고 말하면 안될 것 같다.
뭐든 재미있으면 그냥 <재미있다>고 여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목조목 분석하고 따지고 파악하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데, 구구절절 이렇게도 쓸데없이 길게도 끼적이고 있다니 스스로도 좀 놀랍다.
공연히 사견을 길게 적는 바람에 마치 이 영화가 여러가지로 깊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르겠는데, 전혀 그런 영화는 아니다! 어디든 그저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는 느낌을 소소하고 일상적인 시선으로 담아내면서 은근히 감동을 준다고나 할까.

좌우간 결론은 이 영화 재미있다는 것!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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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기간 중 영화를 보고싶다는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 지지난주부터 볼만한 영화를 눈씻고 찾아봐도 없기에
이 영화가 개봉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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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것도 기대하진 않았었다.
얼토당토 않게 한국형 웨스턴무비라니? -_-;;
차라리 엄청 돈을 쏟아붓고도 얼마나 유치하고 허술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지 똑똑히 봐주마, 하는 심정에다 요즘 아저씨스러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큰 화면에서 보면 약간은 가슴이 설레는 정우성을 보는 <맛>에 2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을 참아주리라 마음 먹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기대가 적으면 실망도 적은 법이라는 공식을 애써 적용하려던 안타까운 마음도 슬쩍 작용하긴 했었는데, 그런 사전의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내 경우는 역시나 실망스러웠다.

조금 더 짜임새 있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스토리를 왜 고 정도밖에 못 끌어냈을까.
어린시절 TV에서 봤던 <내이름은 튜니티>가 자꾸 생각나는 장면들은 또 뭐냐.
김지운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마카로니 웨스턴에 심취했었나?
만주벌판을 휘젓는 마적들 헤어스타일이 레게파마가 없나, 닭벼슬 머리 모자가 없나...
이병헌의 거무스름한 눈화장은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조니 뎁을 따라한 것 같잖아?(물론 그렇게 시커먼 스모키 메이컵은 아니다^^;;)
.....

으휴...
눈에 거슬렸던 부분을 꼽으라면 아직 135가지는 더 찝어낼 수 있을 거다.
그에 비하면 이병헌이 입고 나오는 새끈한 검정 수트와 눈부시게 하얀 셔츠는 그저 폼생폼사 하려는 <예쁜 발악>으로 느껴질 정도.
전체적으로 영화가 길기도 했지만,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추격씬에서 나는 그만 거듭 시간을 보며 언제 끝나나 하품을 해대야 했고, 딸딸이 오토바이를 뒤쫓는 늘씬한 말들의 속도전이 하도 억지스러워서(구식 오토바이가 제 아무리 굉음을 뿜으며 달려도 키 큰 말한테는 상대도 안되는데 그걸 아닌척 찍으려니, 내 마음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ㅠ.ㅠ) 킥킥 웃음이 났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금요일 오후 객석을 거의 채운 관객들 수에 놀라며,  개봉 이틀째라지만 대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보는 걸까 이상하다고 구시렁대기는 했지만, 내심 뿌듯하고 흐뭇한 부분은 분명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짜임새도 허술하고, 의상이며 설정이며 배경이며 죄다 개연성과는 거리가 먼 황당함이 물씬물씬 풍기는데다 잔혹한 살인과 폭력과 유혈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얼굴을 가리고 부르르 떨어야 하는 때도 많았다.
그러나!
영화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도 않고, 좋은놈이라면서 그리 좋은놈도 아니며 발음이 부정확해 자주 대사를 씹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늘씬한 정우성이 늘씬한 말을 타고 총알 떨어지는 일 절대 없이 '악당'들을 용감하게 무찌를 때는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미소를 실실 흘리게 되는 걸 어쩌랴. ^^
게다가 나에겐 워낙 싫어하는 남자배우 부류에 드는 이병헌마저도 여기선 뭔가 묘한 매력을 풍긴다. 아마도 서비스차원에서 잠깐 보여주는 듯한 근육질의 상반신은 솔직히 짜증스러웠지만(울퉁불퉁 근육남 싫어!), 부하들이 두툼하게 누빈 군용 깔깔이 외투 같은 걸 걸치고 다니는 반면 혼자서만 얇디 얇은 줄무늬 검정색 수트에 눈부시게 하얀 셔츠를 받쳐입고 눈빛을 묘하게 번득이는 순간 나는 속으로 '뭐야, 정우성보다 이병헌이 더 멋지잖아!'라고 외치며 낭패감에 젖었었다.  
이상한놈 송강호의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다. 터무니없는 스토리와 구성으로 제 아무리 돈을 쏟아부었다고 해도 송강호의 연기가 없었더라면 아마 이 영화는 분명 <죽 쒀서 개 주는> 형국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을 듯.

그러니까 나의 결론은?
<한국형 웨스턴무비>라는 꼬리표에서 예상되는 온갖 결점과 허무맹랑함을 극복할 수 있다면
정우성과 이병헌 때문에라도 눈요기감으로는 꽤 쓸만하다는 것. ㅋㅋ
대신에 절대로 큰 기대를 안고 가지는 말 것. 꼬투리 잡을 생각을 미리 접는다 해도 도무지 이해해줄 수 없는 장면들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주말 예매율이며 현재 추세로는 관객동원에 성공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과연 이 영화 관객이 얼마나 들까 나도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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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나쁘고 기록해두는 습관도 없어서 체계적으로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엔 워낙 젬병이지만 일하기 싫다는 핑계로 덩달아 찾아보기로 했다. 씨네21이 창간되었다는 1995년은 내 인생에서도 분기점을 이루는 해다. 어설프지만 번역가로 첫발을 디딘 해이기 때문.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많이 하여 얄팍하게나마 견문을 넓히려고 생각했으므로 영화도 꽤 자주 본 것 같은데, 내 머리는 13년의 세월을 갈무리해두기엔 용량이 너무 작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게 확실하다. -_-;;
언뜻 떠오른 <시네마 천국> <가위손> <조이럭 클럽> <길버트 그레이프> <파니핑크> 같은 영화들은 검색해보니 그보다도 훨씬 이전에 본 영화였다. 제목은 그럴듯하게 <최고의 영화>라고 붙였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내 기억에 남았으니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들이다. 영화가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영화를 보던 때의 에피소드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영화를 보고 나서 중고 비디오를 사 소장하거나 나중에 dvd로 갖고 있기도 한 영화가 꽤 되는 걸 보면 퍽 좋아한 영화들이라는 게 맞다. 리스트를 뽑고 나서 나도 조금 놀랐는데 ㅎㅎㅎ 하나같이 말랑말랑하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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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끌려는 관계자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국에서 최근 개봉하는 외화 제목들은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어 제목을 그대로 한글로 읽어 쓰는 추세도 비위에 거슬리고, 아예 엉뚱한 제목으로 낚시질을 하려는 제목도 심심찮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천일의 스캔들>은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 할 수 있겠으나 원제가 <the other Boleyn girl>임에도 굳이 <천일의 앤>과 연결지으려는 속셈을 보이면서 <스캔들>이라는 자극적인 낱말까지 넣은 것은 못마땅했다.
게다가 영화는 절대로 단순히 앤 불린의 <천일동안>권세를 다룬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앤 불린과 헨리 8세를 다룬 영화 가운데 내 기억에 또렷이 남은 작품은 이번 영화까지 딱 세 편이다.
첫번째는 뭐니뭐니해도 아주 옛날에 본 <천일의 앤 Anne of the Thousand days>.
찾아보니 1969년 작품이란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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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TV로 본 것 같은데, 방송국에서 몇번이나 재탕을 한 듯 지금도 배우들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다. imdb에서 찾아보니 헨리8세로 나온 리처드 버튼은 그렇다쳐도 앤 역할의 제느비브 뷔졸드(?)라는 배우는 이름도 낯선데 코끝이 약간 들려 귀여우면서도 오만해 보이던 인상이 나의 어린 뇌에 워낙 깊이 각인됐던 모양이다.
그때의 느낌은 뚱뚱한 바람둥이 왕 헨리8세가 뭐 그리 좋다고 야망을 키우다 죽고 마는지 앤이 마냥 가엾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 옛날 영화도 고증에 충실했던 듯, 옷이며 머리장식, 목걸이까지 이번 영화와 거의 비슷하다. <천일의 스캔들>이 이 영화를 교과서 삼았을 수도 있겠다.
 





두번째로 기억하는 영화는 2부작 TV 미니시리즈 <헨리8세>.
2003년에 제작된 건데, EBS에선 세계명작드라마로 2005년에 방영했다. 게으른 내가 일요일 낮에 방영되는 걸 2주 연속 찾아서 보았을 리는 없고^^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자막 번역을 했기 때문. 그 시기엔 책 작업하는 사이사이 일부러 짬을 내서라도 EBS 영화를 꽤 열심히 번역할 때였는데, 워낙 들이는 품에 비해 부가가치가 책 번역보다도 낮은 터라 요샌 부탁을 받아도 튕기게 된다. -_-;;
암튼... 헨리8세가 주인공이니 당연히 그의 여성편력에 더하여 당시의 세계 정세와 국내 정치 상황, 인간적인 번민 같은 것도 그려졌기 때문에, 아내를 선택하는 것(첫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이 형수였음에도 스페인과의 외교관계 때문에 결혼을 감행한 것은 주지의 사실)도, 자식을 낳는 것도 사사건건 참견을 받고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 나라의 왕이 문란한 여자관계에서나마 돌파구를 찾으려 했을지 모른다고 미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내 아메마스러운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뇌리에 새겨졌던 건 순전히 앤 불린으로 나온 헬레나 본햄 카터 때문이었다. 강렬한 눈빛과 약간 쇠를 가는 듯한 목소리로 헨리8세를 좌우하다 마지막에 처형장에서 기도를 올리던 모습까지 그야말로 카리스마가 절절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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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는 레이 윈스턴이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크게 인상적이었던 건 없고, 흔히 헨리 8세의 이미지로 남은 뚱뚱하고 배나온 탐욕스러운 왕의 모습에 충실했다. 아마도 홀바인의 그림이라고 생각되는 세밀화 속의 헨리8세는 언제나 빵떡모자에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담비 모피 외투를 걸친 비대하고 노회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싸이에 올린 글을 보니 그림 사진도 있어서 퍼왔는데 어우... 정식 부인만 6명이나 두었고 애인들은 셀 수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전부인들을 참수한 <천하잡놈>이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멋있게 봐줄 수가 없다. 그것이 제 아무리 국내외 정세와 관련된 일이라 하더라도!


본격적인 <천일의 스캔들>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숨겨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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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놀잇감 2008. 2. 26. 01:17

무슨 영화를 보는 줄도 모르고 눈길을 달려가선(사전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자는 얘기가 오갔었다) 영화 시작시간에 가까스로 입장을 했던 터라 정말 어떨결에 보게 된 영화였다.
화장실에 들르느라 표를 따로 받아들고서야 내가 보려는 영화가 <추격자>라는 걸 깨닫고는 약간 난감했다.
내가 싫어하고 절대 못보는 <괴기/공포영화> 범주에 드는 건 아니지만 워낙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몹시 떨렸다. 이런 건 미리 마음의 준비를 좀 단단히 해두고 봐야하는 건데.

그러곤 예상대로 영화를 보며 내내 가슴을 졸이며 덜덜 떨었다.
폭력과 유혈을 피할 순 없는 소재이니 눈감고 얼굴 가리며 못본 장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온몸에 쥐가 난 듯 뻐근한 몸을 차마 일으키지 못한 채
"이거 만든 감독이 누구라고?" 되물었다.
"처음 들어보는 감독인데 각본까지 직접 썼다고?"

워낙 유명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으니 뻔할 것 같은 데 전혀 뻔하지 않게 참 잘도 만들었다.
게다가 공인된 배우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는 놀라울만큼 몰입을 이끈다.
숨가쁘게 달리는 그들과 함께 헉헉 대다가 토할 것처럼 괴로운 목구멍의 갈증을 나도 모르게
실감할 정도.

설명할 수도 없고 이유도 없는 인간 본연의 악을 그렸다고 했던가.
늦은밤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이 쌓인 언덕길을 비추는 주황색 가로등이 어쩐지 섬뜩해서
인적 없는 골목을 허겁지겁 달려야 했다.

꽤 무섭긴 해도 <살인의 추억>을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담력이라면 충분히 볼 수 있을 거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이 정도로 짜임새 있고 군더더기 없는 영화를 무섭다는 핑계로 포기했더라면 손해봤을 것 같다.
하지만 차마 다시 볼 수는 없을 듯. -_-'

회상하는 게 무서워서 후기를 쓸까말까 하다가
차라리 쓰고 넘겨버리자는 결론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젠 잊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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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넓은 후배를 둔 덕분에 어쩌다 2008년 첫 영화로 보게 된 것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내가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여배우가 둘(김정은, 문소리)이나 나오기 때문에 공짜 시사회가 아니었다면
몸소 시간과 돈 들여 보러가기엔 좀처럼 어려웠을 영화였는데 ^^;;
"그 영화 의외로 괜찮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을 어디선가 듣기도 했지만 예상보다는 좋았다.

개인적으로 내가 김정은과 문소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의 연기가 도대체 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온몸으로 하는 장애인 연기를 놀랍도록 해낸 이후,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해도 죄다 그 역할이 그 역할 같아서 상투적인 아줌마 전담 배우라는 나만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_*
김정은의 경우엔 부자연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는 것자체가 나에겐 고역이기 때문에(초창기에 머리 빡빡 깎고 나온 메디컬 드라마에서는 나도 김정은을 유일하게 귀여워한 적 있었다!) 제 아무리 유명하고 재미 있다는 드라마라고 해도 보지 않는데, 그나마 이번 영화에선 귀여운 척, 예쁜 척, 터프한 척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진짜 터프하고' 진지한 캐릭터라 참아줄 수 있었던 듯하다. ^^

배우들은 3개월간 죽어라 운동하고 연습을 했다고 방송마다 인터뷰마다 나와서 너스레를 떨지만
내가 보기엔 진짜 핸드볼 선수들에 비해 그들(특히 문소리와 김정은)의 드리블과 패스는 어설퍼서 민망할 정도였다. *_*
같이 본 후배는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평가했을 정도이니 내 욕심이 너무 큰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가끔 몸을 달려 슛을 한 후 덤블링으로 떨어지거나 바닥에 엎어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기는 해도 배우들이 벌이는 경기장면의 리얼리티는 약간 얼굴 간지러운 수준. 더욱이 덴마크 선수들을 직접 초빙해온 터라 상대 선수들이 펄펄 나는 모습과는 더욱 비교된다. ㅎㅎ

사실 영화 스토리는 뻔하니까 스포일러로 밝힐 여지도 별로 없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했던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투혼을 소재로 삼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모든 허술한 부분과 신파스러움을 덮어 눈물 핑도는 감동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이다.

엄태웅의 연기를 면밀히 본 적이 없어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땠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색한 듯하면서 약간 뻣뻣한 연기가 그럭저럭 좋았다.
골키퍼 오수희로 나와 수시로 자잘한 웃음을 선사한 조은지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니 그렇다 치고
되도 않는 사투리 연기로 가끔 짜증스러웠던 김지영의 아줌마 역할도 심히 튀지는 않았으니
단체 스포츠인 핸드볼 경기를 조율하듯 수많은 배우와 실화라는 소재와 신파 요소를 골고루 버무려낸
공은 역시 임순례 감독에게 있다고 해야하나.

어쨌거나 공연히 이 영화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밤중 시사회를 나왔다.
4년전 올림픽에서 투혼을 불태웠던 핸드볼 선수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도 하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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