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과 영화

책보따리 2007. 12. 28. 15:59
이제는 무너져버린 원칙이 되고 말았지만
과거에 나는 원작을 먼저 읽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는 고집이 있었다.
거의 무한한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된 시간과 화면 속에 틀어넣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으니
기껏해야 본전이고 대부분은 실망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를 보고나서 느낌이 괜찮으면 원작을 찾아보는 짓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영화보다 못한 책이 어디 있으랴.. 하는 일종의 편견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편견은 지금도 여전하여, 원작보다 영화가 나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웬만해선 떠오르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은 작품은 공포영화를 안본다는 나의 금기를 드물게 깨고 본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였는데, 영화에 굳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원작은 제국주의자의 시각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의 발현에 지나지 않은데 비해 영화는 게리 올드먼과 위노나 라이더, 키아누 리브스의 열연으로 훌륭한 러브 스토리로 재탄생했었다^^)
물론 아메바스러운 나의 기억력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읽다가 무섭고 소름끼쳐서 몇번이나 책을 떨어뜨릴 정도로 심취해서 보았던 <쥐라기 공원>도 그랬고
<반지의 제왕>, <브리짓 존스의 일기>, <향수> 같은 영화는 당연히 원작이 훨씬 좋았다.
취향에 따라 영화가 더 좋았다는 이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내 경우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영화가 좋아서 원작을 굳이 찾아보았던 작품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딱히 떠오르는 건 <냉정과 열정사이> 정도.

책이 인기가 높거나 베스트셀러가 되면 곧장 영화로 판권이 팔리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또 베스트셀러라고 널리 읽히게 되면 공연히 배알이 뒤틀려 안 읽으려는 고약한 심보를 갖추고 있다.
(<다빈치 코드>도 그래서 안 읽고 나중에 영화만 봤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 핑계 저 구실로 책을 잘 안 읽는다는 게 맞다. ㅋㅋ)

그런데 우리나라 도서 시장을 보면 영화나 드라마 원작에 대한 시장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영화가 좋으면 원작도 찾아 읽으려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인데, 원작을 한번 읽어볼까 생각은 해도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건 영판 드문 나로서는 그런 경향이 꽤나 신기하다.
(에단 호크가 원작/각본/감독을 모두 맡았던 영화 <이토록 뜨거운 순간>을 보고 나와 로비 매점에서 파는 책을 잠시 들여다보며 호기심을 느끼기는 했지만 역시 덥석 사서 읽고 싶지는 않았더랬다^^)
특히 소설의 경우, 할리우드에 영화 판권이 팔렸다는 사실은 한국 출판사와의 계약 여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단 출간해서 팔다가 영화가 소개되어 인기가 높으면 다시 책도 덩달아 대박(!)을 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출판이 늘 도박이듯 ^^ 원작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어 인기를 얻을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 또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결국엔 모든 걸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몇년 전에 내 이름을 옮긴이로 달고 번역 출간했다가 우리나라 출판사에선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던 소설이 하나 있었다.
영미권에선 대단한 베스트셀러였고 할리우드에 영화 판권도 팔렸다고 해서 약간 기대를 했지만
내가 보기엔 출판사에서 별로 영업을 잘하지 못했던 탓도 있고 ^^
꽤나 눈물겹고 감동적인 부분도 있기는 하되 국내 소설 독자층에 어필하기엔 좀 생뚱맞은 이야기(그런데 놀랍게도 작가가 우리나라 모 영화를 보고 쓴 게 아닌가 싶게 비슷한 내용의 영화는 있었다!)였던 것도 같았기에, 책의 판매실적과 나의 수입은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마냥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줄곧 잊고 있었는데 지난 주 영화관에서 그 소설 원작의 영화 예고편을 볼 수 있었다. +_+
역시나 내 상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이 역할을 맡아서 킥킥 웃고 말았는데
소설처럼 영화도 죽을 쑬지 어쩔지 그 결과는 은근히 궁금하다. ㅎㅎ

1, 2권으로 나눠 출간하면서도 분량이 너무 많아 쳐진다면서
한글 출간본에는 후반부의 퍽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완전히 들어내기도 했었는데
영화에선 그 부분을 살렸을지 어떨지 그것도 궁금하고
혹시나 영화를 보고 흥미가 동해 원작을 찾아볼 가상의 독자가 왜 영화와 책 내용이 다른지
따지면 어쩌나(물론 대부분의 영화는 원작과 많이 동떨어지지만) 쓸데없는 걱정도 든다.
그리고 가장 염려되는 건 영화 번역을 누가 했을 것인지 하는 점.
내가 싫어하는 이미*만 아니면 좋으련만 그것까지 간섭할 수야 없는 일이고
째뜬 귀추를 주목해봐야겠다.
한국에서 인기 높은 배우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원...
영화도 일주일 만에 개봉관에서 내려오는 거나 아닌가 몰라... ^^;;
Posted by 입때
,

식객

놀잇감 2007. 12. 3. 01:57
사실 나는 식객보다 똑같은 글잣수에 발음도 비슷한 <색, 계>를 보고싶었지만
주지스님 추천작이라며 <식객>이라는 영화가 있느냐고 보름 남짓 은근슬쩍 압력을 넣고 있었던
왕비마마 덕분에 왕비와 무수리 모녀는 날씨 우중충한 일요일 오후 극장을 찾았다.
개봉한지 한참 된 터라 영화관이 한가할 줄 알았더니 날궂은 일요일 한낮에 자리가 절반 이상 차는 걸 보면
아직도 인기는 꽤 괜찮은 모양.
타짜 때도 그랬듯 허영만의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던 터라 잘은 모르겠지만
순진한 희망에 가깝게 그려진 한일관계와 신파스러운 애국심이라는 고명이 역시나 약간 거북하긴 했어도,
입맛에 안맞는 고명은 걷어내고 먹으면 되듯
나에겐 꽤나 맛깔스러운 영화였다.

식탐녀답게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는 무조건 좋아하는 편이라 점수는 대체로 후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남들의 감상 포인트와 상관없이 나는 뜻하지 않은 복병 같은 몇 장면에서 흑흑 흐느끼고 말았는데
그래서 감상에 방해가 되기도 했고 동시에 어쩐지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데 없이 나를 울게 만든 것들은
접시 무늬가 보일 만큼 얇게 깔린 복어회 접시, 몇 개의 영정 사진, 하얀 보자기에 쌓인 유골함. 국화꽃으로 장식한 제단, 그리고 육개장.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영화 시작 후 거의 5분 뒤부터 줄곧 울다 퉁퉁 부은 눈으로 영화관을 나섰던
<집으로...>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식객> 또한 나에겐 눈물로 기억될 영화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입때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굳이 일본어 포스터를 올리는 건
일어에 익숙하신 이웃 블로거에게 진짜 영화 제목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인지 묻기 위해서다.
영어제목은 <Memories of Matsuko>인데 마츠코 앞에 또 다른 한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수식어가 있는 모양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말 '혐오스런'인지 궁금했다.
(헐....  찾아보니 혐(嫌)자는 맞다. 혹시 한국 배급사에서 관객 끌기용으로 붙인 건 아닐까 분노했는데 원래부터 있던 제목인가 보다. -_-;;)

암튼 영화 속에서 마츠코를 '혐오스럽다'고 평가하는 건 말년의 극히 일부만을 본
극히 일부의 의견일 뿐이기 때문이다.
혐오스럽다기 보다는... 암담하다.

영화는 유치찬란한 색감과 70년대 미국 뮤지컬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과 노래,
파란만장 신파의 형태를 띄고 있어서 영화보는 내내 저도모르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유발하는데, 묘하게도 계속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어쩜 이 감독은 여자의 일생을 저렇게도 처절하게 망가뜨려놓고도 그걸 가족주의와 사랑로 포장하려든단 말인가!

이제부턴 스포일러 염려가 있으니 영화 볼 사람은 클릭하지 마시길 ^^

Posted by 입때
,

밤참 먹고 난 식곤증에 시달리다 졸음 쫒기의 일환으로 적어본다. -_-;;
(다 쓰고 나면 부디 잠이 깨길..)
이제는 끝나버린 제9회 여성 영화제에서 본 마지막 영화 두 편.
<스파이더 릴리>와 <스무살이 되기까지>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남은 표와 시간 분배와 보고 싶은 영화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영화를 고르다 보니 두 영화를 고르게 되었는데
영화의 느낌은 전혀 달랐지만 내눈엔 비슷한 코드가 감지되었다.
제목에도 적었듯이 나를 둘러싼 가족과 성장, 그리고 첫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것.

이번엔 놓쳤더라도 나중에 개봉할 때 찾아보거나 (<스파이더 릴리>는 5월쯤 개봉한다는 후문^^) 어둠의 경로로 찾아볼 분들을 위해 이제부턴 more 기능으로 해야할 듯.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해보겠지만, 모든 영화 리뷰는 스포일러 요인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므로 알아서들 보시라. ㅋㅋ





참참참...
<스파이더 릴리>를 볼 때도 거의 빈좌석이 없었는데
<스무살이 되기까지>는 완전 매진이었다면서 주최측에서 깜짝 이벤트로 선물을 나눠주었다.
물론 재수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내가 대여섯 명 뽑아 주는 이벤트에 당첨될 리 없었지만
9회째인 여성영화제가 그토록 성황리에 매진을 기록하는 걸 보니 주최측이 아님에도 몹시 뿌듯했다.
내년엔 바야흐로 10주년째. 올해는 겨우 3편으로 마감했지만 내년엔 좀 더 미리미리 계획적으로 영화를 골라 좀 더 많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다짐해 본다.
Posted by 입때
,

오랜만에 혼자

삶꾸러미 2007. 4. 11. 23:57

오랜만에 혼자 한 게 두 가지나 되는 날이었다.
그 하나는 <음식점에 가서 혼자 식사하기> ^^;
혼자서 밥을 먹는 일은 흔하지만, 작업실에서 도시락을 먹거나 배달되는 밥을 시켜먹거나
하는 일 말고 부러 나가서 음식점을 찾아가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은 그리 잦지 않다.
혼자서 영화보기는 종종 해온 일인데, 그땐 먼저 끼니를 해결하고 가거나
밖에서 먹더라도 패스트푸드 점에서 후다닥 햄버거 따위를 먹게 되기 일쑤다.
그나마 패스트푸드 점엔 혼자 먹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 마련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패스트'푸드이니 빠르게 먹어치우고 일어나기 쉬운 것도 큰 매력이기 때문. 패스트푸드 점도 엄연히 음식점이라 할 수 있지만, 내 기준으로는 혼자 카페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음식점 홀로 식사' 범주엔 들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은 우여곡절 끝에 혼자서 여성영화제 영화를 두 편 볼 작정이었고
중간에 1시간 반 정도 틈이 생기는데다 비는 시간은 마침 저녁 끼니 시간이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끼니인 저녁을 패스트푸드 따위로 대충 때울 수야 없는법 ^^;
그래서 정식으로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챙겨먹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혼자서
음식점을 찾아가 먹고 싶은 걸 사먹은 게 거의 1년만인 듯했다.
얼마 전 엄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병원 식당에 내려가 쫓기듯 홀로 밥을 사먹은 경험은
여기서 제외다. ^^;
모름지기 제대로 사먹는 밥이란 스스로 쟁반들고 왔다갔다 할 필요 없이
테이블 차지하고 앉아 우아하게(랄 것까지는 없지만;;) 종업원의 접대와 봉사를  누리며
밥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드라마였더라... 명세빈이 기자로 나왔던 드라마에서 문득 스테이크가 먹고싶어진
주인공은 맛있는 스테이크집엘 가서 홀로 칼질을 하는데, 그걸 이상한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명세빈은 꿋꿋하게 고기를 씹으며 ^^
혼자서도 스테이크를 먹으러 다니는 게 남들의 시선을 끌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어서 마련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 드라마가 방영된 게 벌써 몇년 전이라서 그런가, 내가 간 쌀국수집엔 나 말고도 홀로 저녁을 먹는 사람이 또 있었고, '혼자세요?'라고 묻는 종업원도, '네'라고 대답하는 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물론 남들도 전혀 관심없었고.. ㅎㅎ
간혹 이것저것 먹고싶어지는 게 많은 식탐녀로서 간혹 같이 갈 사람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시간 맞추기 힘들어 포기하느니, 앞으로도 종종 홀로 밥사먹으러 다니기 프로젝트를 실천해봐야겠다.
물론 좋은 친구와 맛있는 거 먹으며 수다떠는 즐거움은 홀로 맛있는 거 먹으며 음미하는 즐거움에 비할 수가 없지만 말이다.


두번째 영화를 보고 꽤 늦은 시간에 밖으로 나오니 뜻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TV 뉴스도 신문도 들여다보지 않은 터라 비가 올줄은 생각도 못했으니 우산을 챙겨갔을 리 만무했는데도, 전혀 당혹스럽지 않았다.
너무 대책없이 자란 머리칼 때문에 요즘 거의 매일 질끈 하나로 묶고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니던 터라 간만에 비좀 맞아볼까.. 하는 생각이 곧장 들었던 것.
그러니까 오랜만에 내가 혼자 한 두번째 일은 바로, <의연하게 비 맞고 돌아다니기>였다. ^^
신문이나 팸플릿 따위로 머리를 가리지도 않고
조금이나마 비를 피해보겠다고 뛰어다니지도 않고
다른 때처럼 마지못한 듯 새로이 우산을 장만하지도 않고
그냥 보통 걸음걸이로 초연한 사람처럼 빗속을 걷는 기분을 느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아득했다.
꽤 굵은 빗줄기엔 아직도 약간 먼지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았지만
얼룩덜룩 옷이 다 젖는데도 기분이 그럴듯했다.

첫 영화(스파이더 릴리)를 보면서는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왔고
두번째 영화(스무살이 되기까지)를 보면서는 수시로 깔깔 웃다 두어번 눈물을 닦았는데
그렇게 펄럭거린 내 감정의 기복과도 잘 어울린 비맞기 경험이었다.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여행을 가든, 영화를 보든
뭐든 뭉쳐서 떼거리로 어울려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편할 때가 차츰 많아진다.
어울림과 소통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이야 물론 여전하지만,  
때로 대화와 소통의 피곤함을 잊어도 되고 번잡할 필요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보배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안 그래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인간인데, 점점 자폐성향이 짙어지는 것도 같아
한편으론 슬몃 걱정도 들지만, 혼자라서 참 좋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나름대로의 행복이라 여기련다.

행복 뭐 별 거 있어? ^^;;
(나는 늘 불행과 행복 사이를 촐싹거리며 오가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행복한 마음을 오래 연장하는 의미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좀 뜸들였다 써야쥐!
ㅋㅋ
Posted by 입때
,

생각 조각들

삶꾸러미 2007. 4. 9. 01:26

화창한 일요일, 간만의 외출.
출퇴근 하며 집앞 앵두꽃과 옆집 벚꽃, 목련,  온동네 개나리가 다 핀 건 알았지만
정작 온 거리가 꽃밭이라는 데 조금 놀라며
꽃처럼 화사한 사람들 틈에서 내가 좀 우중충하다는 느낌에 움츠러들었다.
찬란한 햇살 속에 혼자서만 우중충하다는 자의식은 순전히 4개월째 방치한 대책없는 머리칼 탓이렸다. 어서 손봐줘야 할 터인데!

---

여성 영화제 영화를 드디어 한 편 봤다.
행복의 적들. Enemies of Happiness.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역시 인간의 삶은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는 걸 실감한다.
총탄이 난무하는 남성중심사회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치에 뛰어든 젊은 여성의 삶이야 오죽하랴.
1시간만의 짧은 영화에서 참으로 치열한 삶의 진정성을 본 듯하다.
몇년 째 암살의 위협을 받으며 최초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고, 여전히 국회 안에서도 민주주의와 여권 보호를 위해 압제와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는 그녀는 이제 겨우 29살이라고 했다.
게다가 상영이 끝나고 뜻하지 않게 다큐멘터리 주인공 말랄라이 조야(www.malalaijoya.com)와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허울좋은 친미정권은 민주화를 표방하지만 정권을 쥔 자들은 여전히 범죄자 집단과 군벌이고
아직도 어린 소녀들에 대한 강간과 학대가 자행되고 있으며
말랄라이 조야에 대한 죽음의 위협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단다.
자기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민중의 행복을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박수가 절로 나왔고, 조야의 신변보호와 정치활동을 위한 기금모금을 한다는 말에 당연스레 지갑이 열렸다.
저 위 사이트로 들어가면 달리 기부 방법이 있다고 하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참여바람 ^^

 아참.. 벨로와도 심히 공감했지만, 자원봉사자인지 고용된 통역사인지 모를 사람이 어찌나 우리말도, 영어도 핵심을 짚어가며 잘 정리를 해주는지 완전 감동이었다.
이상한(?) 색깔이 대비된 튀는 짧은 스커트를 입고서 앉음새도 민망한 바람에 속으로 대뜸 못마땅해하고 있었는데, 알게 모르게 늘 겉모습/외모 지상주의에 편승하는 내가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

여성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아트레온 앞을 오가며 올해도 느낀 건
영화제 전용 티켓박스가 있는 곳 앞의 쉼터에 유독 흡연 여성들이 많다는 것.
(다른 땐 주로 쌍쌍이 닭살을 떠는 연인들이 터를 잡고 앉아있는 곳이다)
그리고 행사장엔 늠름한 장정 같은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리땁고 우아한 행사요원들도 많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흡연을 하고 성별 차이에 대한 반발을 겉모습으로 하는 이들이 여성주의 문화를 대변하는 건 아닌가 좀 걱정스러웠다.
그건 내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에도 그랬기 때문...
이젠 좀 더 자연스러워져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아 물론, 구태의연한 내 편견의 잣대로 그렇게 보인 것뿐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나 역시 늘 경험에서 비롯된 불만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반항적 여성주의에서 탈피해 좀 더 견고한 사고체계와 대안을 내세울 수 있는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은' 하는데 늘 생각에만 그치는 게 문제다.
행동하지 않는 자는 불만을 품을 자격도 없다고 했거늘...

아무려나 영화제가 끝나기 전에 몇 편 더 볼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기를 빌고 있다.
언제나 즐거운 벨로와의 데이트에 겸해서 ^^

Posted by 입때
,

수면의 과학

놀잇감 2006. 12. 31. 17:14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입때
,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러 가며 귀여운 정지훈과 임수정을 만나러 간다는 기대와 더불어 과연 처절한 인간의 복수심을 다뤄온 감독이 그려내는 로맨틱 코미디란 게 어떤 걸까 호기심이 동했지만, '정신병원'이라는 배경에 대해서는 우려가 컸었다.

내겐 <러브 액추얼리>의 형편없는 짝퉁 같은 느낌이었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화에서 다룬 정신병동이 얼마나 터무니 없었던가.
혈기왕성한 젊은 남녀 환자를 2인실에 나란히 눕혀놓질 않나, 거기다 홀딱 벗은 남자 환자를 여자 환자가 씻겨 주질 않나 ㅡ.ㅡ;; 심지어 결국엔 병실 침대에서 정사까지 벌어지고!
어쩌면 그렇게 말도 안되는 설정을 영화적 상상력이랍시고 당당하게 들이대는지 너무도 화가 나서 몹시 불쾌했었는데,
이번 영화는 아예 정신병원이 주된 배경이고
주인공들도 아예 환자들이니 과연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지.. 또 얼마나 어처구니 없게 과장되어 리얼리티를 손상시킬지 염려됐던 거다.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을 거의 평생 앓고 계신 엄마를 둔 덕분에
나는 유독 정신병과 정신병원에 대한 사람들과 세상의 편견과 오해가 참 많이 속상한데
영화든 드라마든,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영상물에 드러난 정신병원은 대개 기가 막힌 수준이다.
물론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선
어느 정도 과장이 필수라는 걸 나도 인정하지만, 정신병 환자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말도 안되는 인간유형으로 그려져 있는지.. 그리고 또 그 치료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우스꽝스럽기만 한지.. 짜증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전문가들의 자문을 충분히 받았을 테고
이번 영화도 장소협찬 뿐만 아니라 진짜 정신과 의사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버젓이
마지막 크레딧에 적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충무로 영화들이 정신병원과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왜곡과 과장을 조장한다는 심증을 버릴 수가 없다.

똑같이 정신분열증을 다뤘더라도 할리우드 영화에선 <뷰티풀 마인드> 같은 영화들이
드물게라도 나와서 정신이 심하게 병든 사람들의 애환과 슬픔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게도 나는 아직 정신병을 소재로 삼은 한국 영화에서 그런 감동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섹스 앤 더 시티> 시즌6이었던가. 캐리의 첫사랑으로 나온 데이빗 듀코브니도 혼란한 마음을 정리하겠다며 제 발로 정신 요양원을 찾은 것으로 나왔는데, 우리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정신병 전문 요양병원이 있는데도 한국 영화에선 그런 모습을 절대로 찾아볼 수가 없다. 대부분 독방에 갇혀 고문 같은 전기충격요법이나 받는 모습일 뿐..

<올드보이>에서도 실제 정신과 치료에 쓰이는 약 이름이 거론되며 약효를 읊조리는 대사가 나오는 걸 보면 박찬욱도 나름대로 정신병에 대해서 연구를 하긴 한 모양이고,
<싸이보그>는 아예 정신병원을 무대로 하고 있으니, 감독 스스로 관심이 많은 분야임은 분명한데, 왜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까?

<싸이보그>가 제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는 껍데기를 썼다지만
귀여운 정지훈과 임수정이 온 몸을 던져가며 환자 연기를 했음에도
주조연 배우를 모두 통틀어 이래저래 희화되고 과장된 환자들의 모습은 진정한 아픔으로 전해지지 못했다.  
그들이 정신을 놓아버리기까지 다들 얼마나 큰 아픔과 괴로움을 겪었을지, 또 앞으로로 평생 어떤 난관을 겪어가야 할지, 낄낄거리게 만든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까르르 웃으며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과연 마음 한구석으로나마 그걸  알고는 있을까?

우울증으로 이은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몹쓸 '정신병'으로 손가락질 받지 않으면, 사소한 감정의 엄살 쯤으로 치부되던 우울증이 새삼스레 세간의 관심을 받았고, 드디어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마음의 감기' 정도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을 때, 나는 이은주의 죽음이 이 세상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남긴 영향력에 고마워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용서와 이해가 되는 정신병은 우울증 정도에 불과한 듯
나머지는 계속해서 우스꽝스럽게 포장해 저 멀리 격리시켜 버리는 다수의 편견이 화나고 불쾌하고 안타깝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