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78건

  1. 2009.08.20 UP 8
  2. 2009.08.17 해운대 봤다 11
  3. 2009.07.23 세상과 나 6
  4. 2009.03.06 근대 엿보기 10
  5. 2009.03.04 쌍화점 + 워낭소리 14
  6. 2009.03.03 한풀이 16
  7. 2009.01.06 2008년 정리 10
  8. 2008.12.26 크리스마스에 12
  9. 2008.12.24 짜증 22
  10. 2008.10.25 유럽영화제 9

UP

놀잇감 2009. 8. 20. 16:57

과연 이게 초절정 마감모드에 임하는 자세인가 싶게 이번주는 계속 노는 추세다. 발등에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뻔뻔함의 추동력이 놀랍다.
째뜬 개봉한지 꽤 오래라 이미 다 끝난 줄 알았던 <UP>이 아직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란 걸 알고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기대를 많이 했더라도 픽사 애니메이션의 경우엔 별로 실망하는 법이 없다. 섬세한 그림과 황홀한 색채만으로도 그저 행복해지기 때문. 칼과 엘리가 살던 집은 고풍스런 가구며 사소한 소품들까지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다 집어오고 싶었다.  확실히 나는 애니메이션에 훨씬 점수가 후하다. 어쨌거나 영화관을 나서며 나는 단언했다. <해운대>보다 <UP>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디지털로 봤는데도 장면장면 자지러지듯 놀라고 헐떡거렸으니 3D로 봤더라면 나는 간덩이가 남아나질 않았겠더라. ㅋㅋ
어쩌면 고소공포증 때문에 어지러워하다가 끝내 3D안경을 벗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상투적인 드라마 주인공들이 홀부모 슬하에서 자란 걸로 설정되는 이유는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제작비 때문이거나 출생의 비밀을 터뜨리기 위한 방편이라지만, 가족과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확실히 홀부모 가정을 다루는 시각이 의연하다. 아이없이 해로하는 노부부의 사랑과 행복도 그저 아름답기만 할 뿐이고. 아버지나 어머니의 부재를 당연하게 드러내면서 그 대안으로 확대가족을 제안하는 듯한 부분은 동양적인 것 같지만 어디나 아이와 노인은 상통하는 데가 있으니 굳이 동서양을 따질 것도 없을지 모르겠다.

암튼 여름방학 이벤트로 3대가 같이 본 <UP>은 우리 3대를 모두 만족시켰다. 마지막에 자막 함께 올라가던 칼과 러셀의 새로운 모험 앨범처럼 우리도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하게나마 짜릿한 모험을 느끼며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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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봤다

놀잇감 2009. 8. 17. 20:28

괜한 베스트셀러 기피증과 마찬가지로 요란하게 멀티플렉스를 휩쓸며 천만관객 운운하는 영화 보는 거 별로 안좋아하고 재난영화도 즐기지 않는데, 동행이 꼭 보고싶은 영화라고 해서 그냥 봤다. 얼마나 잘 만들었길래 그러나 궁금하기도 했고.
소문처럼 스토리도 괜찮고 만듦새도 그만하면 짱짱하더라. 너무 티나서 눈물겨운 CG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검게 넘실거려 무서운 바다 장면들은 조지 클루니가 나왔던 <퍼펙트스톰> 연상될 정도로 훌륭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거나 가보고 싶어하는 장소이자 TV 뉴스에서도 여름 피서지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운대를 배경으로 삼은 건 참 영리한 선택이었다. 나 역시 몇년 전 놀러가 묵었던 동백섬 근처의 콘도 주변과 광안대교, 달맞이 언덕, 유람선 선착장앞 횟집, 방파제를 보며 반색하게 되더라.  

간간이 손발 오그라드는 부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 마지막 부분은 어째 좀 너무 성의없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감탄스러운 장면들이 꽤 됐고, 배우들의 연기도 대체로 좋았다.
난 정말 하지원 이쁜 줄을 모르겠다가 드라마 <황진이> 보면서 탤런트가 아니라 배우로구나 싶었는데, 이 영화에서 새삼 예쁘게 보이더라. 부산 사투리 때문인가? +_+ 부산 언니들의 <오빠야~> 한 마디에 남자들이 녹아버린다더니만, 하지원은 잘하면 나도 녹이겠다.
개인적인 악연들 때문에 경상도 사투리 쓰는 남자들 무작정 별로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설경구라는 배우도 싫어하는데, 여기서는 설경구도 그리 밉상이 아니었고 이민기는 완전 새로운 발견이었다. <굳세어라 금순아>랑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이미 귀여움은 발견했어도 연기력이 좀 딸린다 생각했건만 짜식 마이~ 늘었구나 싶어 괜스레 흐뭇했다.  

유머와 감동을 다 잡아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너무 무겁지 않게 간간이 웃겨줘서 좋았고, 진부한 영웅놀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눈물이 찔끔찔끔 나는 걸 보니 현실이 그렇다고 나도 인정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재난 앞에선 늘 둘째가라면 서운하다는 듯 열악하고 무식한 대처법으로 일관하며 아깝게 수많은 목숨을 잃고 나서 <예견된 人災>였다고 욕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암튼 천만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이 영화에 나도 관객 숫자를 올렸다고 생각하니 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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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나

하나마나 푸념 2009. 7. 23. 22:00

석탄공사 사장님이 제발이지 광부들의 애환이 서린 <막장>이라는 말을 함부로 비하의 뜻을 담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말이 화제가 됐음을 잘 알고 있지만,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정말 <막장이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 나온다. 아니, 막장이라는 말도 아까워서 더 심하게 부패하고 냄새나고 끝간데 없이 타락한 곳을 지칭하는 말을 떠올리고 싶은데 어휘력이 모자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어쩜 이 나라 정치하는 놈들의 수준은 점점 그 모양일까. 최소한 4년간은 희망을 꿈꾸지 말아야함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열불이 나는 속을 어찌 달래야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구렁텅이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방법은 귀막고 눈 가린 채 세상을 외면하는 것뿐인가.

<반지의 제왕>은 책도 영화도 빠져들게 좋았지만 이상스레 <해리포터> 시리즈는 정이 가질 않았다. 출판사의 돈 벌 욕심 때문이겠지만 너무 잘게 쪼개 나온 번역본도 싫었고 그렇다고 언제 끝날 지 모를 시리즈 원서를 읽을만한 열의도 생기지 않았다. 전 지구적인 해리포터 열기가 나로선 뜨악하고 의아할 뿐이었달까. 당연히 영화도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해리포터를 만나게 되면 호기심에 지켜보아도 역시나 채 5분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뜬금없이 몇번째 시리즈인지도 모를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를 영화관에서 보고 돌아왔다.
판타지 소설을 리뷰하거나 번역하는데 참고하려고 약간 책을 들춰보았을 뿐이라 바로 전 시리즈에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모르는 와중에 영화를 봐야한다니 황당하기까지 했는데, 사전지식이 없어도 생각보다는 영화보기가 어렵지 않았다.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한지는 척 봐도 알 수 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 꼬라지가 하도 가관이다 보니, 영화 속의 런던 상황이 지금 이 세상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둠의 마왕이 세상을 휘저어 악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어, 여기도 해리포터 같은 <선택받은> 마법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내용 전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골목마다 폐허처럼 문을 닫은 상점들과 암울한 거리가 딱 죽어가는 이 나라의 소상인들과 서민들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소설 시리즈는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영화의 다음 내용이 궁금하면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선이 악을 이겨 해피엔딩일 게 뻔한 데(혹시 아닌가?)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의 세계로 위안을 받겠다는 순진한 희망을 품기엔 나 같은 삐딱이에게  너무 무리다. 

세상이 엉망으로 돌아가든 말든 나몰라라 맛난 거 먹고 재미나게 수다떨고 영화보고 시시덕거리고 나니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린 기분이다. 효력은 얼마 안 가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잠깐씩 세상을 잊으며 살다보면 악몽같은 세월이 흐르긴 하겠지. 가끔 황당하게 정의로운 마법사의 출현을 꿈꾸기도 하면 더욱 힘이 나려나. 문득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토록 전폭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가 혹시 전지구적으로 팍팍하고 암담한 현실 때문이었나, 의문이 들었다. 마법이 아니고선 도저히 현실을 희망으로 되돌릴 방법이 안보이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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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엿보기

놀잇감 2009. 3. 6. 15:52

덕수궁 입장료 단돈 천원으로 한국근대미술 걸작전을 볼 수 있다는 낭보를 접한지 한달만이었나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제 오후 정동으로 향했다. 궂은 날씨가 얄밉기도 했지만, 동시에 비가 오니 미술관이 한적하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좀 춥긴했어도 비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고궁 뜨락을 거니는 맛 또한 감격스러웠다. 드물게 석조전 동관까지 개방해 전시를 할 만큼 작품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음에도, 전시는 입이 헤 벌어질 정도로 대규모라 운수라곤 통 없는 내가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느낌이었다. 


미술관 서관과 동관 입구에서 각각 나눠주는 무료 티켓도 어찌나 앙증맞고 예쁘던지 책갈피로 쓰거나 간직해두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소중히 가져와 스캔했다.
표에 인쇄된 건 아시다시피 박수근과 천경자의 그림.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를 눈앞에 마주한 순간 나도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혹 상고머리를 하고 저렇게 아이를 들쳐업은 울 엄마의 사진을 언젠가 본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전시된 2백3십 몇점들의 작품은 겨우 삼분의 일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고 나머지는 다 빌려온 것들이란다. 클림트의 작품을 대거 만나보는 건 금세기에 또 없을 거라는 광고에 힘입어 예전 미술관이 매일 문전성시라던데, 우리나라 근대화가들을 이렇게 대거 모아놓은 전시 또한 금세기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바빴다. 티켓엔 본인이 몇번째 관객인지 알아볼 수 있게 숫자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본관은 12만명이 넘은 반면 동관은 인원이 그 절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보아 다들 시간이 빠듯했나보다 싶었다. 하기야 도슨트의 설명 1시간을 포함하여 우리도 양쪽 미술관을 관람하는데 꼬박 3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번 더 가야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이인성, 김기창, 김환기, 장욱진, 구본웅, 박래현, 천경자... 이름을 대기에도 벅찬 유명화가들이 무려 105명이나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오죽하랴!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학교 다니던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익히 보았던 작품들도 알현 가능했고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보았던 작품들도 더러 있어서 더욱 반가웠는데, 월북한 화가라 최근에야 비로소 해금되었다는 이쾌대 화백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비롯한 낯선 작품들은 역시나 눈길을 끌었다. 자유연애의 열풍이 불었다는 근대의 그 시기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다는 미래의 부인 유갑봉 여사에게 보낸 절절한 연서도 함께 공개되어 있었으니, 비오는 봄날의 정서와 어찌나 잘 어우러지던지.
해방전후의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서 당시를 상상하려니 얼마 전 읽은 책 <서울은 깊다>와 많은 부분들이 겹쳐지는 듯했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변모하는 사람들의 모습, 지난한 역사 속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지식인들,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그 시절 이 나라의 면면들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모습을 엿보는 기분은 퍽 묘했다. 너무 가난해서 처자식을 일본으로 보낸 뒤 담뱃갑 은박지 뒤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이 있는가 하면, 당시 집 한채 값도 넘는 800원이라는 외상값을 갚으려고 유학비를 타 외상값을 청산하고 유유히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종우의 그림도 있었다. 내노라하는 당대 거부의 자식이었기에 서양 화구와 서양화를 접할 수 있었을 수많은 화가들의 친일여부를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 같았다.  정치적인 향방과 상관없이 예술은 예술이니까. 그래도 아는 게 병이라고, 조각을 그림보다 덜 좋아하긴 하지만 친일 문제를 거론할 때 제일 먼저 손꼽히는 김경승의 조각품을 보는 시각은 확실히 심드렁해서 휙 지나치게 되더군. 

인상적인 그림들이 하도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든데, 그래도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있기 마련이다. 동관 전시실에 아담한 화실을 옮겨다 재현해 놓아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던 유쾌하고 귀여운 느낌의 장욱진 선생의 그림들도 좋았고,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들은 말하면 잔소리고, 이응노 화백의 그림을 볼 수 있어 기뻤다. 특히 <취야>는 비도 오겠다 술한잔 해야할 것 같은 흥겨운 느낌을 풀풀 풍겨 그림을 보다 말고 마구 목이 말라졌다. ^^

이응노 [취야]

장욱진 [수하樹下]



그리고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했던 그림은 박래현의 <노점A>.
중3때였던가 고1때였던가, 학교 미술시간에 판화를 할 때, 나는 하필 미술책에 있던 이 그림을 판화로 시도하겠다고 결심했었다. 박래현이 김기창화백의 부인이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큐비즘을 시도하여 이 작품으로 국전 대상을 탔다는 뒷이야기는 알지도 못할 때였고, 그냥 시장 좌판의 여인들을 단색의 판화로 모사해도 멋있을 것 같았다. 미술선생님은 굳이 어려운 걸 파겠다고 애쓰는 나를 보며 혀를 끌끌찼지만 완성된 작품은 꽤나 뿌듯하게 나왔고, 특히 리어카에 앉아 팔을 괴고 있는 아줌마의 표정과 머리에 인 광주리에 담긴 생선이 원작보다 생동감 있다는 과장 섞인 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미술책 속 사진과 소싯적 내 판화의 밑그림으로만 알던 이 그림은 실제로 보니 꽤나 크기가 큰 대작이었는데, 건너편 벽에 걸린 김기창 화백의 예쁜 여인들 그림과 함께 번갈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전시는 3월 22일까지.
평일 전시는 6시까지, 금토일엔 8시반까지 연장 운영된다. 얼마 남진 않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고, 나 역시 한번 더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 무료 관람에다 전시작품이 많아 복권 당첨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마지막에 뜻밖의 근대 엿보기 경험을 하나 더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번 있는 것도 아니고 딱 하루라는데, 하필 우리가 간 날 무성영화를 상영하다니. 여러모로 공교로웠다.
제목도 익히 들어본 바 있었던 <검사와 여선생>.
현존하는 마지막 변사 신출 할아버지의 설명으로  1948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를 난생처음 덕수궁 미술관 로비에 앉아 보고 있으려니, 정말로 난생처음 영화를 접했을지도 모를 옛날 사람들의 설렘과 내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든이 넘으셨다는 신출 할아버지는 결코 손수건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귀띔으로 영화 설명을 시작했지만, 음향과 발음의 문제로 삼분의 일은 못알아들으면서 우린 계속 웃음을 터뜨렸다. 조악한 초기 영화 기술도 그렇거니와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표정은 정말로 요즘도 코미디에서 모사하는 상투적인 표현의 전형이었는데 그게 어찌나 귀엽던지!
혹시나 관객이 졸까봐 그러시는 것인지 중간중간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이름을 불러대시는 변사 할아버지의 말소리도 재미났고, 당시에 자막의 맞춤법까지 손볼 여유가 없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그땐 그렇게 맞춤법을 소리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썼던 것인지 가끔씩 출몰하는 자막의 <이튼ㅅ날> <며칠을 굴멋니?> <엇째서 그러니> <내>(네) 같은 글씨들을 볼 때마다 관객들은 와글와글 웃어댔다. 

잠깐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인데, 들고 돌아온 팸플릿과 티켓을 보면 확실히 현실이라 오늘까지도 느낌이 더욱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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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상열지사-스캔들>로 사극영화에 대한 내 눈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이후 사극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웠고 딱히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쌍화점>도 나만의 게으름 수준으론 호기심이 일기는 했으나 결국 놓쳐버리기 쉬웠을 영화였다. 하지만 조인성과 주진모의 아리따움을 꼭 나와 함께 보고 싶다는 지인의 부지런한 검색 덕분에 개봉관에선 이미 내린 이 영화를 씨네큐브의 이대 분관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미술감독 기획전의 일환으로 예매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날밤, 공교롭게 주진모가 백상 연기상을 타는 바람에 조인성의 엉덩이와 별도로 주진모의 연기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증폭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김기철 미술감독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보니, 내눈엔 어째 몹시 거슬리는 중국풍의 인테리어와 의상들도 그러려니 용납할 수 있었다. 어차피 원의 부마국 지위인 고려 궁궐에 중국풍의 소품들이 가득 차있는 걸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고, 어차피 고증에 참고할 자료들도 거의 없는 마당이니 나머지 여백은 상상력으로 채워도 무방했단 말이 맞다. 이야기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역줄거리가 연상되는 레이스 같은 옷깃들은 좀 과했다 싶었다. 
어쨌든, 나에게 <쌍화점>은 충격이었다. 내가 한국영화 자주 안 본 사이에 노출 수위가 그렇게 높아졌었나 싶게 놀라운 장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거슬렸다기 보다는, 작품성보다 마케팅에 우선적으로 이용되었을 영화의 선정성이 어쩌면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 감상을 방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죽여가며 본 주진모, 조인성, 송지효의 연기는 예상외로 모두 좋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막으로는 조인성이 제일 먼저 나오던데 연기로는 역시 주진모가 상을 탈만하다 싶었고, 그의 눈빛과 눈물에 제일 마음 아팠다. 영화에 삽입된 가시리와 쌍화점 노래가 멋지단 얘기를 원래부터도 듣고 갔지만, 예상보다도 더 좋더라. 고려가요를 다시 공부해보고 싶어질 만큼.
하지만 지나친 피칠갑 장면들은...
유하 감독의 영화를 내가 잘 못보는 건 역시나 그 처절한 격투 장면 때문이다. 조폭도 싫고 싸움도 싫어서 <비열한 거리> 같은 영화는 아예 볼 생각도 하질 않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도 보게 된다면 잔혹한 싸움질 장면마다 피 튀기는 걸 못 견디겠어서 눈을 감고도 또 손으로 눈을 가리는 건 내 버릇이다. 앞으로도 이 감독의 영화를 또 보는 기회가 생기면 미리 마음 좀 더 다잡고 가야겠다.
아무려나... 턱없는 제작비에 맞추느라 왕의 공간으로 세트를 꾸며 일주일 찍은 다음에 다시 뜯어서 다시 왕비의 공간 세트를 만들어 또 일주일 찍는 재활용을 감행해야 했으며, 칼 하나도 우리나라에서 쇠로 제대로 만들면 2백만원인데 중국에서 만들어오면 40만원에 불과하니 5백자루쯤 되는 칼은 물론이고 의상도 대부분 중국에서 제작해 들여와야 했다는 후일담을 들으니 뒤늦게라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준게 잘했다 싶었다. 

<워낭소리>가 관객 2백만을 돌파할 거라는 뉴스가 나온 바로 그 주말에 나도 일조를 했다.
원래 떼거리로 우르르 휩쓸리는 걸 싫어해서 베스트셀러도 잘 안 읽고 너무 잘 나가는 영화는 보기 싫은 심술이 작용하는 바람에 처음엔 보고싶었다가 최근 들어서는 그냥 건너뛰려고 했었는데, 왕비마마가 보고싶다는 한 마디에 그냥 못이기는 척 넘어갔다. 몇년 째 씨네큐브에 다녀봐도 객석이 절반 이상 차는 걸 거의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놀랍게도 울 엄마 같은 어르신들이 부부동반으로, 가족동반으로 엄청 몰려들더라. 이 추세라면 3백만 돌파도 어렵지 않겠구나 싶어서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심술이 동했다. 
나 역시 여러 번 눈물을 쏟았고 감동스러운 장면들이 많기는 했지만, 작품성으로 따져볼 때나 이야기 면에서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의 최고 걸작도 아니고 힘겨운 독립영화 제작 현실에서 어떤 기준이 되어서도 안될 작품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흥행 때문에 이 영화가 단순한 인간들의 탁상공론에서 본보기 같은 것으로 자리잡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듯 싶다. <워낭소리>의 감동을 이어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계속 보라는 마케팅에 힘쓰고는 있던데 과연...
<워낭소리>에서 내가 제일 눈물을 쏟았던 장면은 비틀비틀 어렵사리 걸음을 옮기는 누렁소의 다리와 나란히 옆에서 움직이던 할아버지의 가느다란 다리가 비춰졌던 순간, 그리고 수의사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합니다"라고 말했던 순간인 것 같다. 누구의 죽음이든 절대로 마음의 준비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의사나 수의사는 알고나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이제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집스러운 노동에서 좀 벗어나 편한 삶을 누리고 계시면 좋겠다. 영화배경이 된 봉화와 그 마을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겠다는 정신나간 인간들의 들쑤심에서 부디 온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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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풀이

투덜일기 2009. 3. 3. 14:11

설날 이후론 계속 마음이 바빴다. 막다른 벼랑끝에 몰리듯 원고독촉을 받는 상황인데도 내 정신상태는 초절정마감모드로의 전환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속 잘 지키는 번역가의 평판은 이미 3년전부터 흐지부지 무너져버렸으니 배째라는 고약한 심보가 더 발동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양심은 남아 있어서 지인들이 만남을 청하면 <어차피 밥은 먹어야하니까...>라는 핑계로 아무 때나 짬을 내 외출을 시도하는 일을 마구 저지를 순 없었다. 이런저런 집안 행사로 이미 미루고 또 미뤄줬던 나의 친교생활은 결국 원고마감과 함께 한풀이를 하듯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개강, 개학이 맞물려 있으니 그 전에 만남과 놀이를 <해치워야>한다는 의무감도 불타올랐다. 신학기의 시작인 3월엔 아무래도 다들 학업이든 작업이든 초심을 잡아야한다는 새해결심 비슷한 다짐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말이다(물론 나는 빼고;;) 

결국 지난주는 월요일부터 꼬박 일주일을 넘겨 다시 월요일까지 단 하루도 집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은 무려 점심과 저녁으로 나누어 약속을 두탕(!)씩 뛰어야 했다. 연일 집에 틀어박혀 붙박이처럼 지냈던 저질 체력으론 당연히 무리가 왔다. 여드레 동안, 10명의 친구를 거의 각각 만났고(한 친구는 두번이나!) 조카 입학전에 가기로 약속했던 그림책 전시를 봤고, <워낭소리>와 끝났다고 포기했던 영화 <쌍화점>을 봤고, 그 가운데 생일 모임은 네번이나 되었다. 서대문, 서초동, 강남역, 압구정동, 신촌, 홍대앞, 이태원, 일산, 파주, 광화문, 오이도, 다시 홍대앞까지 마치 홍길동이라도 된 양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녔던 터라 매일 외출에서 돌아오면 당연히 다리허리가 아팠고 연일 기름진 음식을 과식하여 토실토실 살이 올랐다.

그렇게 매일 거의 대중교통수단으로 돌아다녔으니 억지로라도 운동이 되었을 법도 한데, 어제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오이도에 갔던 게 주효했는지 10시간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눈이 붙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아참... 오이도엔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조개구이는 역시 을왕리가 훨씬 낫더라. 가격은 비슷해도(새우+조개구이+칼국수 세트 중간크키 = 7만원) 조개와 새우의 양도 작고 일단 양념맛도, 곁다리 반찬도 형편없었다. 고현정과 천정명이 드라마를 찍었다는 원조뚝방집이 그 모양이니 다른 집은 오죽할까 -_-;; 늘 가던 을왕리 조개구이집에선 조개도 막 더 갖다주고, 공짜로 주는 떡볶이랑 파전도, 조개 찍어먹는 양념도 엄청 맛있었는데 속상했다. 바다냄새라도 맡겠다는 원래 목적에도 을왕리쪽이 훨씬 더 낫다. 오이도는 갯벌위로 솟은 둑방길에서 철조망 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밖엔 없지만, 을왕리는 그래뵈도 해수욕장이니 찰랑거리는 바닷물도 직접 신발에 묻힐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아무리 노는 게 좋아서 광분했더라도 마감폭풍후의 한풀이는 이쯤에서 한 이틀 맥을 끊어야겠다. 
에구구 삭신이야.
봄맞이 체력강화에 힘쓰려면 어서 자전거에 바람부터 넣어야하는데 에구구 고되다.
간간이 놀아주며 슬슬 다시 초반 작업모드를 가동해야 할 때이지만 지금 생각 같아선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고 싶다. 에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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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리

놀잇감 2009. 1. 6. 21:38

토룡마을 주민들이 대거 보이코트할 양상을 보여 2008 베스트 포스팅 릴레이가 존폐위기에 놓였다니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나라도 동참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을 이런 식으로나마 정리해두는 건 나 같은 비기록형 인간에게 퍽 훌륭한 갈무리방법이므로, 옆구리 찔려서라도 적어두면 십년쯤 후에 차곡차곡 돌아볼 때 굉장히 흥미로울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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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삶꾸러미 2008. 12. 26. 09:13

크리스마스에 일을 하면 안될 것 같은 편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스크루지 영감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날은 몰라도 크리스마스 이브엔 뛰쳐나가 놀아야하는 한국인의 전통이 생겨난 것은 일년에 유일하게 그날만 통행금지가 없었던 유신시대의 영향이 가장 크지만, 어린 시절 나 역시 크리스마스 이브엔 메뉴판 가격을 두배로 갈아붙이고도 조금 오래 앉아 있을라 치면 눈치 줘서 내쫓기 일쑤였던 종로통의 못된 찻집과 술집에 분노하면서도(요즘엔 다행히 그러진 않는 듯;;) 무조건 나가 놀아야하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는 북적이는 인파에 휩쓸리는 것도 싫고, 쌍쌍 데이트가 아니라 싱글 친구들 끼리 떼로 몰려 노는 걸 불쌍하게 보는 시선도 싫었다. 특히 울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꽃단장하고 친구들 만나러 나가는 내 뒷모습에 대고 혀를 끌끌 차셨다. "애인도 아닌 것들(!)을 만나러 가면서 뭐가 저리 좋다고..."
하지만 그건 유일하게 통금 없는 날을 기념하여 손잡고 걸어 다니며 털장갑 같은 소박한 선물 주고받고도 그저 좋았던 우리 부모님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지, 내 경험으론 크리스마스 이브엔 남자친구랑 심심하게 노는 것보다 친구와 떼로 몰려 노는 게 확실히 더 재미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재미있게 노는 날을 굳이 복잡하고 정신사나운 크리스마스 이브로 잡는 게 무의미하게 여겨졌다는 것이고, 남들이야 불쌍히 여기거나 말거나 크리스마스 이브엔 조용히 집에서 뒹굴거리는 게 최고다.

올해도 밀린 일은 많지만 그렇다고 수십년간 놀아온 전통(?)이 있는데 억울해서라도 꼬박 일을 할 수야 없는 법이고 뭘하며 놀 것인가 생각해보니 영화보기가 최고일 듯했다.
더욱이 올해는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조촐하게 dvd 두편을 주문하지 않았던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라도 갖고 싶은 걸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사들이는 행태는 일년에 수시로 저지르는 편인 내가 크리스마스 같은 좋은 기회를 내가 놓칠 리 없다. 작년에도 분명 <거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에게 준 것 같은데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민망해서 여기 적어두지 못한 기억은 있는데, 그게 뭔지.. -_-;;
기억도 못하는 선물이라니 참 민망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올해는 가을에 워낙 크게 <지른> 것들이 있어놔서 또 나에게 큰 선물을 하기가 민망하던 차에, 내년 생일선물 목록으로 챙겨두었던 dvd 두개를 가뿐하게 선택했다. 얼마전 출시된 <맘마미아>와 아주 오래 된 <이웃집 토토로> ^^;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맘마미아>를 보려니 괜히 눈물겨울 것 같았다. 얼마 전 알게 된 건 데, 그룹 네 사람의 이니셜을 따서 붙이기도 했지만 Abba가 원래 히브리어로 '아버지'라는 뜻이란다.
나에게 아바와 아버지는 애초부터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인듯.
암튼 그래서 대신 선택한 것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보기 딱인 <러브 액추얼리>.
해리님 홈피를 보니 방송에서도 해준 듯 한데, 나는 그냥 홀로 dvd로 보며 실실 웃었고 노래도 따라불렀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라고 손가락질하며 꼬마 소녀 나탈리가 노래 부르는 장면에선 나도 화면을 가리키며.. :)

청승맞다고 놀리든 말든 나로선 잘 보낸 크리스마스.
1박2일간 너무 빈둥빈둥 놀며 실컷 잤더니 잠들 시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 아예 잠이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직 세번이나 남은 연말모임에서 흥청망청하다가 새해를 맞을 모양이라 크리스마스라도 얌전히 보내서 몹시 다행이다. 내년에도 크리스마스엔 반드시 집구석을 고수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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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투덜일기 2008. 12. 24. 20:17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무조건 기분좋게 보낼 수야 없는 일이고 사실 나와는 별 무관한 날이니깐
그냥 평소 까칠한 성격대로 혼자 구시렁거리며 털어버려야겠다.

소소한 짜증의 원인이야 누구에게나 늘 있으며 얼마간 마음 끓이다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요 몇주일 증폭되는 짜증의 원인은 결국 내가 뿌린 씨앗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단기간에 끝날 것도 아니어서 더욱 속이 곯는다.

첫번째는 지난번에도 자아비판이랄까 제발등 찍기랄까 민망한 고백을 한 적이 있었던 번역건.
4권짜리 시리즈물을 두 권 번역한 뒤 세번째 책의 계약을 앞두고 있었을 때 담당자들이 바뀌면서 트집을 잡혀 이후 계약이 무산되었던 일이 있다. 그  사람들이 제 아무리 예의나 출판개념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소하든 말든 내가 빌미를 제공하여 일이 불거졌으니 다 내 잘못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들과는 두번다시 상종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앞으론 바쁜 마감에 시달리더라도 번역에 좀 더 신경쓰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였으니까.
그것으로 그냥 덮어두고 잊을 수 있으면 좋겠으나 상황이 또 여의치가 않다.
처음 상하 두권으로 냈던 소설을 단권으로 재출간하고 내가 번역한 두번째 시리즈가 출간된 뒤,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으며 출판사에선 영화개봉과 더불어 특별판을 제작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작년 말에도 몇년 전 내가 우리말로 옮겨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워낙 흥행이 안되는 바람에 곧장 극장에서 내려와 주변에서 아무도 알은체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할리우드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꽤나 흥행에 성공한 모양이다. 비수기인 요즘 관객수 백만을 넘어섰다나 어떻다나, 뉴스에서도 다뤄지는 상황이니 뭐.
설상가상, 영화나 드라마가 뜨면 원작도 덩달아 팔리는 법이어서 책도 엄청나게 팔리고 있는 눈치다.
그걸 배 아파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인세계약도 아닌 책이 수십만 부(실제로 수십만 부가 팔렸을 거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팔린들 나한테 더 돌아오는 금전적 이득은 없으니까.
아 그런데, 속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만 인사랍시고 그 책과 영화에 대해서 알은체를 하며 축하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짜증스럽다는 얘기다!
별 문제 없었던 책이라면, 그런 연락을 받더라도 후후 낮게 웃으며 "많이 팔리고 장사 잘 되도 저랑은 상관 없는 거 아시잖아요"라고 한 마디 대꾸하면 그뿐이겠는데 이번 책은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잖아!
더욱이 고약한 출판사에서는 재출간된 첫권과 나중에 출간된 2권의 증정본도 보내주지 않았다. 2권의 경우 계약철회 통보와 출간일정이 얽히면서 역자교정도 없었고 심지어 역자후기도 싣지 않은 채 출간된 상태.
당시에 기가 막히고 열이 받쳤지만, 내 의무는 다하려고 역자후기와 교정 문제를 문의했지만 저들은 내 이메일에 아무런 회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예의없는 인간들과 더는 상종하고 싶지가 않아서 나중에 서점에 나온 책을 보고도 증정본을 요구하는 대신 나는 씁쓸하게 한권씩 주문을 해서 책꽂이에 꽂아두었으며, 완전히 마음을 비웠다는 의미로 책과 함께 받은 휴대폰 액정클리너도 달고 다녔었다.
그런데, 이번주 내내 몇번이나 영화흥행과 더불어 예약판매까지 하고 있는 세번째 시리즈(다른 사람이 번역한!) 출간 때문에 덩달아 나한테 공연히 축하전화 비슷한 것이 걸려오니 그야말로 짜증스럽다. 출판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책 잘 팔린다고 옮긴이가 떼돈 버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는 걸 잘 알 텐데 왜들 그러는지 원!!
(제목 언급을 교묘히 회피하긴 했지만 이쯤하면 내 정체가 다 드러난 걸까? 아닐까? 에라 모르겠다.)

국내외 흥행에 힘입어 이미 할리우드에선 2번째 시리즈 영화 제작을 결정했다고 하니, 돌아가는 꼬락서니로 봐서는 다음 영화개봉 때도 나 역시 덩달아 일부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또 있다. 단권으로 출간된 1, 2권 원고를 아무래도 출판사측에서 나의 동의 없이 문장에 손을 댄 모양인데, 대체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번역문장이 훼손되었을 확률이 더 높고 그에 대한 욕도 내가 먹어야한다는 사실이다.
출판사에서 애당초 문장 스타일로 꼬투리를 잡아 옮긴이를 <잘랐>으니 지들이 고쳐놓은 문장에 대한 비난 역시 내 탓으로 돌릴 거라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분노가 치민다. 으으으.

두번째 짜증의 원인 역시 일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중견 출판사들과 일을 하지만 초창기엔 나도 당연히 작은 출판사에서 번역을 시작했고 경력 없는 번역자를 키워주다시피한 곳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지금도 그대로다. 오랜 출판불황을 겪으며 안타깝게도 그 출판사는 몇년 전 부도를 맞았고 사업등록은 유지하고 있지만 사장님 혼자 고군분투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 회사에서 알게 된 편집자며 기획자, 번역자들은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로 남아 있기 때문에 가끔 모이면 그 회사와 사장님 걱정을 잊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조금씩 일을 거들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시간이 되는 대로 번역이든 편집이든 디자인이든 도와드리자는 식으로.
그러다 나는 정말로 몇년 전 운좋게 작업스케줄이 비는 틈에 그 출판사를 위해 얇은 책 한권을 번역해주었다. 언제 출간될지 기약도 없는 일이었고, 원고료는 혹시 책이 대박나면 주세요, 라고 흔쾌히 제안할 정도로 처음엔 순수하고 기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난 지금 새삼 그 일의 뒤치다꺼리를 짬짬이 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니 왜 이리 짜증이 날까. 그때도 긴급하게 출간일정을 잡겠다 하여 몇날몇일밤을 홀딱 지새워 번역을 마치고, 힘겹게 역자후기까지 써서 보냈는데 몇년이나 소식이 없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인지, 더욱 미적지근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몇년 새 간사하게 변해버린 내 마음도 부끄럽고 잔뜩 밀린 다른 일은 어떻게 하나 한숨이 나오면서 과연 얼마나 걸릴지 모를 <공짜 일>의 순서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갈피가 안잡히고,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짜증스럽기만 하다. 

이달들어 걸핏하면 "나 요즘 슬럼프인가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좋아하는 일이고 재미있게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어서 선택했는데 왜 요샌 만사가 다 시큰둥하고 열정이 일지 않을까.
결국 가장 큰 짜증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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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영화제

놀잇감 2008. 10. 25. 23:05

마음 같아선 서너 편 더 챙겨보고 싶었지만, 우리집에서 코엑스는 너무 멀고 내 처지도 그런 호사와 부지런을 떨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두편이라도 챙겨본 게 어딘가 고맙게 여길란다.
본격 상영이 시작된 23일부터 일요일까지 기간중에 하필이면 땡기는 영화가 가장 적은 금요일 대낮에 찾아간 코엑스몰은 여전히 변함없이 복잡했고 메가박스는 나처럼 짧은 다리로 주파하기엔 참으로 먼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점심도 햄버거로 대충 때우고 본 영화 두편은 아름답고 긴 여운을 남겼다.
비고 모르텐슨과 난무하는 폭력이 싫어서 <이스턴 프러미스>는 보지 않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동행이 있어서 사실 무슨 영화를 보게될지 표를 끊기 직전까지 몰랐었는데, 공교롭게도 선택된 영화 두 편은 스승과 제자의 사랑을 다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별것도 아닌 것에 의미 붙이기를 좋아하는 나는, 두 영화를 연속해서 보게 된 것에도 어떤 운명의 힘이 작용했을지 모른다는 억지를 품기도 했다. 

<엘레지-Elegy>
이자벨 코이셋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 벤 킹슬리 주연
스페인 감독이 만들어 유럽영화제 작품으로 소개된 듯한데, 배경은 뉴욕이다.
저명한 교수이자 문화계 인사인 데이빗(벤 킹슬리)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나는 곧 그의 시각에 동화되어 여주인공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의 아름다움을 흠모하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났고,
진지한 약속과 속박을 전제로 하는 관계를 두려워하는 데이빗의 심정과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 앞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늙고 나약한 마음이 백분 이해됐다.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관계맺기의 속박을 평생 거부해온 사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열정적인 사랑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잖아! ㅠ.ㅠ

하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자들을 볼 때 그 외면의 황홀함에 눈이 멀어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명제를 뒤엎기 위하여 데이빗이 콘수엘라가 지닌 내면의 아름다움과 열정적인 사랑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에 콘수엘라의 아름다운 육신을 희생시키는 건 아닌가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제 아무리 존경스러운 스승이며 나이에 비해 제법 훌륭한 몸과 정신을 지니고 있긴 해도 늙은 교수에겐 콘수엘라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지만, 서로 사랑한다는데야 어쩌겠나.
카메라는 기계에 불과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손과 시각을 거칠 때 특히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진의 미학을 또 한번 보여준 장면들도 좋았다. 그 아름다운 흑백사진들은 당연히 다른 유명 사진작가가 찍었겠지만 어쨌든 콘수엘라에 대한 데이빗의 사랑을 나는 어두운 암실에서 드러나던 사진 속에서 제일 강하게 실감했다.
서른살 이상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속상하게 둘이 은근히 잘 어울린다, 쳇. 
그리고 피아노 치는 남자에게 홀딱 반하는 건 나만의 약점이 아닌듯, 콘수엘라도 대뜸 이 남자에게 피아노 연주를 부탁하는데 대머리에 털복숭이인 노교수 데이빗이 그녀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할 땐 강마에까지 떠오르며 나도 황홀해졌다.
클래식 문외한인 내 귀에도 영화에 삽입된 바흐와 베토벤의 곡들이 무척이나 감미롭게 들린 걸 보면 드라마의 영향이 실로 크다.


<아름다운 연인들-The Beautiful Person>
크리스토프 오노레 감독
루이 가렐, 레아 세이두 주연
프랑스 영화.
막간에 햄버거를 10분만에 해치우는 데 성공을 거둔 뒤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카푸치노 한 잔 사가지고 상영관에 들어가려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바람에 처음 3분 정도는 영화를 놓치고 말았는데, 속상한 마음을 달랠 겨를도 없이 나는 곧 화면에 빠져들었다. 프랑스 영화를 볼 때마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치는 것이야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 같은 조건반사 작용이라 쳐도, 영화 제목처럼 나오는 이들이 어찌나 다 예쁘고 아름다운지.

네무르와 주니

프랑스 원제가 아마도 <La Belle>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여주인공 주니를 뜻하는 것일 게다.
일주일 전에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전학온 여고생 주니 역할의 레아 세이두는 그야말로 처음부터 시선을 확 끈다. 무심한 듯한 표정은 샬롯 갱스부르를 닮은 듯도 한데 크고 동그란 눈과 백옥같은 투명한 피부는 이자벨 아자니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아무튼 최소한 한달은 빗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와 똑같은 옷차림에도 영혼의 깊이가 느껴지는 표정이 참 매혹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헝클어진 머리에 새하얀 피부, 훤칠한 키로 누구든 척 보자마자 바람둥이임을 알 수 있는 네무르 선생(루이 가렐)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니, 폭발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십대들의 면면도 하나같이 귀엽고 아름다워서 영화를 보는 내내, 아, 내가 늙어버린 건가, 하는 회한이 저절로 들었다.  
<엘레지>의 데이빗처럼 공교롭게도 네무르 역시 동료 교사와 제자를 가리지 않고 얕은 관계를 섭렵해왔건만 전학생 주니를 보자마자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쉽사리 잠자리를 같이 했던 동료 여교사와 제자에게 동시에 결별을 선언하고도 선뜻 주니에게는 다가가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그의 사랑을 예민한 주니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괴로워한다. 그의 곁엔 이미 순진하고 헌신적이며 착하디착한 남자친구 오토가 있기 때문.

주니와 오토


심장이 비틀리고 배가 욱신거리는 듯한 '진지한 사랑'을 하필 어린 제자에게 느끼게 된 네무르의 괴로움과
그 사랑을 직감하고 자기도 이끌리면서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생각에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주니의 망설임이 너무도 절절하게 가슴을 후벼팠다.

돌아보니 나의 10대는 너무도 무미건조하였는데 (네무르 같은 매력남 선생도 물론 없었다!)
바삭바삭한 건조함은 이제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듯.












아 참,
숨쉬기 운동 이외에 전혀 몸을 쓰지 않았다가 간만에 머나먼 여정의 외출을 시도하였더니, 두 영화가 남긴 길고 애틋한 여운과는 별도로 부실한 육신은 장렬한 피로와 근육통(그러길래 높은 구두는 왜 신었더냐!)에 허덕였고 서둘러 저녁식사 준비를 마친 뒤로는 세시간이나 소파에 널브러져 시체놀이를 해야했다. 
맥빠지는 가을타령은 관두고 어서 자전거라도 타야겠다고 결심했으나, 춥고 젖은 날씨는 나를 조롱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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