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가 멀다는 핑계로 동대문에 오면 한번 가볼까 했던 유럽영화제는 결국 포기했다. 그 복잡한 동대문에 나간다는 게 꺼려진다는 핑계를 내세웠지만, 그저 다 귀찮았다는 게 본심이었다. 해서 유럽영화제까지 다녀와서 <10월에 본 영화> 따위의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려 했던 원래 계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잊기 전에 적어는 놓아야지 싶다.
한달에 한번씩 평일 오찬과 영화보기를 약속한 지인이 있다. 우유부단해서 좀체 뭐든 결정하기 어려워하는 나와 달리 만날 시간과 음식점, 보고픈 영화까지 콕 찍어주는 분이라 나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 무척 흐뭇하기는 한데, 가끔 영화취향이 나와 맞질 않으면 어쩌나 염려되는 경우가 있다. 
10월의 영화는 원래 <내사랑 내곁에>가 될 뻔했는데, 공교롭게도 만날 약속을 잡은 날 바로 전날에 끝이 나면서 다시 물망에 오른 <호우시절>과 <굿모닝 프레지던트> 가운데 선택된 영화는 후자였다. <호우시절> 쪽을 내심 바라고 있던 나는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지인이 정우성보다는 장동건을 더 예뻐하나보다 여기며 그러마고 했다.
사실 둘 다 꼭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동건은 얼굴이 연기를 깎아먹는 배우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태극기 휘날리며> 말고 난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이왕 잘생긴 남녀 얼굴 보는 재미를 따질 거라면, 장동건이 1/3만 나오는 이 영화보다는 정우성이 계속 말간 얼굴을 보여줄 <호우시절>이 낫겠다 싶었던 거다. 사실 <대통령>이라는 소재도 낯간지러웠으나, 그래도 장진 감독을 믿어보기로 하곤 마음을 비웠다.

 
영화를 볼 땐 몰랐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날이 하필 개봉일이었대고 첫날부터 장동건 효과에 힘입어 꽤나 관객이 많이 들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개봉일 관람의 열혈관객에 나 또한 수를 보탰다니 킥킥 웃음이 났고, 이런 영화에 관객이 몰린다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져 좀 씁쓸하기도 했다.
어디선가 이 영화를 <판타지>라고 부르는 걸 봤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세 사람의 대통령 모습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상황이나 대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누구도 동일시할 만한 인물은 현실에 없다. 너무도 이상화된 대통령의 모습이랄까. 그래서 더욱 더 나는 오금이 저릴만큼 낯간지러움을 느꼈고 간간이 장진식 유머에 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2시간을 넘기는 상영시간이 지루했다.
청와대 주방이라는 공간의 활용과 주방장의 내레이션은 좋은 아이디어였던 것 같은데, 역시 내가 즐기기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소재의 거부감이 너무 큰듯.
게다가 아무리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설정이라지만, 요즘 신장이식 수술하는데 주사로 마취하는 병원이 어디 있나! 쳇...

어쨌거나 뜻밖에 박해일이 <살인의 추억> 같은 느낌으로 등장했다가 장동건을 곤경에 빠뜨리는 에피소드는 반가웠음.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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