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으로 하하하

놀잇감 2010. 6. 6. 20:37

몇달만에 반차를 낼 터이니 영화도 보고 같이 놀자는 후배의 말에 옳다구나 반색을 했다. 더구나 넷이나 모이면서 안본 영화가 겹쳐 고민할 필요가 없어 예매까지 미리 했다는 말에 웃음도 났다. 유유상종이라더니만...
내 경우는 그냥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하나는 연인이 있어도 취향상 같이 볼만한 영화가 아니어서, 하나는 <하하하>가 워낙 개봉관에서 빨리 사라지는 바람에, 나머지 하나는 그냥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느라 지금껏 못 보고 있던 영화를 모모하우스에 가서 봤다.

평일 오후의 소규모 영화관엔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계속 킥킥거림과 웃음이 터져나와 시끌벅적할 정도였다. 배우들이 다들 낮술 마시면서 찍었다던데 어쩐지 관객도 낮술 마시며 한참 풀어져 봐야할 것 같은 분위기.
너무 찌질하고 속이 빤히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이렇게도 유쾌하게 담아낼 수 있구나 싶어 줄곧 킬킬대다 나왔더니 어찌나 허기가 지던지 허겁지겁 저녁을 먹어야 했다.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 말고는 그간 홍상수 영화에서만 본 터라 투실투실 살집 많아진 그의 모습을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른 역할로 보는 게 적응 안될 지경이다. 친구네 아파트에 산다는 그는 연예인 답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독한 향수와 스킨 냄새 때문에 한참 뒤까지 어지러울 지경으로 빤질빤질하다는데, 내가 본 영화 속 모습으론 향수냄새는커녕 후줄근한 티셔츠에 매캐한 땀냄새만 배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홍상수식 연기를 잘한다는 의미겠지. 
칸에서도 유준상과 예지원 소식만 잔뜩 들리던데, 난 김상경, 문소리 커플 에피소드가 더 좋았다. 어쭙잖은 시인 김강우도 좋았고.

하나같이 무능력한 백수급 남자들의 변명과 다 알면서 모른척 홀딱 넘어가주는 여자들의 밀고 당기기를 보며, 그래, 저래야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는 거구나 싶어서 또 킥킥 웃음이 났다. 정말 제목 하나 잘 붙였다. 하하하 웃다보니 영화도 끝났고 통영의 추억도 끝이 나더라.

통영에 가본 건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라 언덕배기 즈음에 있었던 내가 묵은 모텔이 어느 동네인 줄도 모르겠고 강구안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데 한산섬 가는 유람선이랑 제승당은 눈에 퍼뜩 들어왔다. 컬러임에도 그리 선명하지는 않은 사진으로 남은 그 여행의 기억이 내 머리속에도 그렇게 방점으로 남아 있었나보다. 암튼 나도 통영에 가고 싶어졌다.

(드물게 보는 영화들은 블로그에 기록해야 연말에 베스트 뽑을 수 있을 텐데 올핸 읽은 책도 본 영화도 몹시 저조하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엘 간 게 언제인지 그날 오후 내내 생각해보니 <전우치전>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6월초 현재 영화관엘 가 본 게 겨우 두번인듯. ㅠ.ㅠ  전우치전과 하하하. 집에서 본 영화도 꼬마 니꼴라와 인사동스캔들이 전부다. 책도 안읽고 영화도 안보고 그렇다고 일도 별로 안하고 나 뭐하고 산 거니. 어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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