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영화

놀잇감 2009. 11. 27. 15:27

워낙에도 게을러서 영화를 그리 많이 보러다니는 편이 아닌지라 내 쪽에서 먼저 작정하고 영화 약속을 잡는 유형으론 살아본 적 없는 것 같다. 해서 영화를 볼 때도 홀로 관람이 아닌 한 대부분은 상대의 의견을 좇는 편이다. 공포영화는 절대로 볼 수 없고, 간혹 기분에 따라서 보기 싫은 영화가 있으면 소심하게 의견을 내놓는 정도.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내쪽에서 재미있을 것 같다거나 관심 가는 영화는 죄다 흘려보낸다.
키드님이 내내 울다 나오셨다는 <여행자>도 그렇고 파피, 미아와 보러가려고 작당했다 파토난 <파주>도 그렇고, 책과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시간여행자의 아내>도 그렇다. <파주>는 아직 씨네큐브랑 모모하우스에서 하고 있으니 굳게 마음 먹으면 볼 수도 있을 텐데 한번 떨치고 나서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곰탱이 동면모드가 시작된 때문이라고 핑계대기엔 요즘 날씨도 많이 따뜻해, 한심한 한숨만 흘러나온다.
<솔로이스트>도 개봉했던데 영화관에서 내리기 전에 보러갈 수 있을까. 찾아보면 작은 영화관에서 좀 지난 영화도 하고 있을 때가 많으니, 딱히 못할 것도 없는 일을 요샌 엄청난 어려움으로 느끼고 움츠러든다. 다 11월 탓이라고 하고 싶다. 11월은 일년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달. 겨울이 오는 건 11월 탓이 아닌데도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싫은 11월이 이제 겨우 3일 남았다. 어서 가버려라.
 
영화 얘기하다말고 또 딴소리 하고 앉았다.
암튼 영화 선정권을 지인에게 미룬 덕분에 본 이달의 영화 <청담보살>은 개봉 담날 봤다고 말하기 창피한 정도였다. 11월의 묘한 음울함을 떨치기 위한 유쾌함이 필요해 선택된 영화임을 알지만, 시간과 돈과 배우가 아깝더라.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임창정에 대한 호감을 한껏 높여놓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심한 욕과 불평을 해대며 입술을 일그러뜨렸을 거다.
역시나 개봉 다음날인 오늘 볼 뻔했던 <닌자 어쌔신>도 나에게 영화를 정하라면 선뜻 보자고 말하지 못할 영화다. 얼마나 피칠갑을 하며 잔혹하게 싸워댈지 안봐도 비디오 아닌가. 하지만 비/정지훈/Rain의 광팬인 친구는 11월 26일에 <닌자 어쌔신 번개>를 칠 것임을 익히 공고했었고 우리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거의 절반 이상 눈을 감고 얼굴을 가려야 하겠지만, 나 또한 광팬은 아니어도 비/정지훈의 첫 단독 주연 할리우드 영화를 광팬 친구와 함께 봐주고 함께 수다를 떨어줄 용의는 있단 얘기다.
솔로 데뷔 직전 녹음실에서 박진영한테 작살나게 혼구멍이 나며 노래를 되풀이해 부르던 키 껑충한 청년을 미처 못 알아보는 바람에 싸인을 못 받아둔 건 지금도 한스럽다. 발음 부정확하다고 혼나며 한소절을 수십번씩 되풀이해 부르던 신인가수가 이렇게 월드스타로 클 줄 누가 알았어야지! 그날 g.o.d.와 박진영한테 받은 싸인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에겐 데뷔를 앞둔 신인가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당연히 그에 대해 박진영이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기야, 비의 연기자 데뷔를 반대했던 박진영도 비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을 거다.
솔직히 춤은 몰라도 가수로서 가창력은 딸린다고 생각하지만, 드라마에서 본 연기력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물론 할리우드 진출작인 <스피드 레이서>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래도 비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짜식, 잘 컸어.. 싶은 느낌과 함께.
<닌자 어쌔신> 역시 봤다고 자랑하기 민망한 영화일 것은 뻔한데, 보기도 전에 먼저 기대감을 토로하고 있는 걸 보면 이번 영화는 옆구리 찔려 동행하게 되는 걸 기꺼워하는 모양이다. 참 줏대없는 인간의 영화 생활.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