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두기

하나마나 푸념 2009. 7. 17. 01:38

일하기가 싫어서 조금 전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 논란을 다룬 100분토론을 보다 짜증이 밀려와 TV를 껐다. 어쩌면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전문가라는 양반들의 의견은 노상 상반되는지 원!
어쨌거나 나는 대운하 사업과 더불어 죽어가지도 않는 4대강을 굳이 살리겠다는 쓸데없는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특히 2, 3년 안에 그 엄청난 규모의 토목사업을 한꺼번에 벌여 끝내겠다는 얄팍한 발상이 너무도 무섭다.

청계고가를 없애고 청계천을 복원한다고 할 때 나는 크게 기뻐하며 결과물을 기다렸던 사람이다. 한 여름 도심의 온도를 몇도나 낯출 수 있고 주변 부동산 값도 올라가며 시민들에겐 도심속 쉼터를 제공할 것이라는 아름다운 청사진을 처음엔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사가 끝났을 때 보니, 말이 <복원>이지 청계천은 그냥 이름뿐 옛모습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멘트로 물길을 싸바르고 한강물을 억지로 끌어다 놓은 뒤 그럴듯하게 물풀을 좀 심어놓고는 화려하게 조명시설만 갖춰놓은 <죽은> 공간이었다.
대통령 될 욕심에 당시 서울 시장 명바기가 임기내에 공사를 서둘러부친 결과 시멘트로 마구 싸바른 물길 곳곳은 이내 시퍼런 이끼로 뒤덮였고 역한 물비린내가 나서 나는 두번다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시위 때문에 청계광장에 가는 거라면 또 모를까. 하긴 청계광장도 내가 싫어하는 장소다. 순전히 그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돈만 처들여서 세워놓은 (어느 대기업에서 자금을 기부해 외국 조각가에게 사온 거라더라) 플라스틱 소라탑이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놀이공원 한 구석이라면 모를까 어쩌면 시내 한복판에 그렇게 안 어울리는 조형물을 선택해서 세워놓았는지, 관련자들의 저질스러운 안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처음 청계천이 생겼을 때야 사람들이 죄다 구경 삼아 몰려들었고 물 좋아하는 아이들이 섣불리 뛰어들어 놀기도 하더라마는, 장담컨대 그렇게 조악하게 급조해 놓은 청계천은 앞으로 끊임없는 청소비용과 복구비를 잡아먹는 예산 물귀신이 될 테고, 사람들한테도 점점 외면당할 게 뻔하다. 정말로 북한산 어느 물줄기부터 착실히 살려내려와 올챙이며 가재가 되돌아오도록 수십년에 걸쳐 복원하지 않는한 말이다.

청계천의 전례를 익히 보았던 터라 우리 동네 개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나는 약간의 설렘보다는 더럭 불길한 예감이 크게 들었다. 청계천처럼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대강 시멘트로 처발라놓고 예산만 낭비 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몇번이나 연임하고 있는 구청장은 한나라당 패거리가 아니던가.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나날이 달라지는 홍제천의 모습은 기가 막혔다. 하수관을 따로 묻어도 이미 북한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연결되기엔 유량이 턱없이 적어진 홍제천에 가압장을 설치해 한강물을 끌어오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했지만, 이미 자연미와 풍광이 아름답던 안산 주변엔 느닷없이 조악해 빠진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촌스러운 형광조명의 음악분수를 만들더니 급기야 그 예쁜 동산 꼭대기까지 파이프를 끌어올려 폭포를 설치한 것이다. 얼마 전엔 도저히 봐주기에 민망한 황포 돛배까지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띄워 놓았던데, 내눈엔 혐오스럽기만 한 그 시설들이 <무한도전>에까지 소개됐다는 걸 보면 참 사람들 취향은 다양하다고 해야하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자전거 산업 육성책에 발맞추어 홍제천의 자연하천 복원사업은 자전거도로 확충 사업과 연계된 듯했고, 역시나 <자연>하천 <복원>은 순전히 말 뿐 서대문구청에선 하는족족 인공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행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화학성분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샛노란 포장재가 깔린 개천 옆 자전거 도로 옆엔 대체 어디에서 파왔을지 궁금한 큼지막한 바위들이 차곡차곡 벽처럼 쌓여갔고, 하천 양 옆으론 인도네시아에서 수입됐다는 이상한 자재를 쌓고 군데군데 시멘트를 발라 수생식물을 심었으며, 야심차게 조명과 무대처럼 화려한 진입로를 만들어놓은 안산 폭포와 분수 바로 옆엔 큼지막한 디지털 광고판까지 설치되었다. 연일 구내 소식과 정부시책을 광고하는 화면이 나오는.

물론 새로이 인공적으로 가꾸어진 분수와 폭포 앞에서 많은 이들은 기뻐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음악분수가 가동되는 시간엔 자전거를 타고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구경나온 사람들이 많으니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같은 패거리인 구청장 일당은 <참 잘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러나 내가 홍제천변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송하며 사진까지 올렸던 바로 그 안산 계곡을 지날 때마다 유달리 서늘하게 여름밤의 더위를 식혀주었던 냉기와 바람은 요상한 복원사업 이후 더는 느낄 수가 없다. 그대로 두어도 철철이 바꿔 피는 꽃과 나무들이 바위와 어우러졌던 동산을 흉측한 파이프가 휘감고 있는 생각을 하면 정말 부아가 치민다. 그 앞 음악분수는 또 어떻고! 나 역시 그 유명한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를 좋아하며, 하다못해 예술의 전당 앞 음악분수만 봐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음악분수라도 있어야할 곳이 따로 있지 않은가! 번쩍이는 광고판 같은 대형 디지털 화면을 배경으로 한물 간 가요에 맞춰 개천 한가운데서 물을 뿜는 음악분수는 홍제천에서 황포돛배 다음 가는 흉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이 계속해서 변해가는 홍제천에 산책을 나가 보면 터무니없이 바뀐 모습과 공원화 사업 때문에 집값 오르겠다며, 또는 그저 애들 데리고 놀러 나올 곳이 생겨서 희희낙락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쓸데없이 어마어마한 예산을(사업비가 무려 200억이란다!) 처들여 <자연하천 복원>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게 과도하게 겉치장에만 힘쓰는 꼬락서니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한여름 장마때면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고 몇년 전엔 사람도 떠내려갔던 판국에 하천 양옆에 왜 굳이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꽃은 심어놓았는지, 군데군데 왜 쓸데없이 나무나 벽돌로 바닥에 멋을 부려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지각있는 사람들의 염려는 언제나 들어맞는 법. 요번 집중호우때 홍제천 산책로는 그간 엄청나게 쏟아부은 예산이 무색할 정도로 엉망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하천 주변을 정리한답시고 심어놓은 식물들은 대거 뽑혀나가, 개천 중간 음악분수 시설에 죄다 걸려 있었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분수 주변엔 엄청난 토사가 밀려내려와 높은 언덕을 이루어놓았으며, 서대문의 새로운 명물이라던 황토돛배는 떠내려가다가 하천 기둥에 부딛혀 산산조각이 났단다. 한 마디로 쓸데없이 <돈지랄>을 해놓은 새로운 바닥들도 패이고 주저앉고 엉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새로 놓은 다리 난간마저 중간이 뚝 잘려 나갔을 정도니 오죽하랴.
비가 많이 오면 한강 둔치도 물에 잠겨 한참을 청소하고 복구해야하는 형편이니 집중호우때나 장마때 홍제천 산책로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정도를 설마 전문 사업자들이 예상 못했을 리는 없지 않나? +_+ 나처럼 비전문가도 빤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데 설마!
어쨌거나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홍제천 산책로엔 오늘도 운동 나온 사람들이 북적였고, 난간이 떨어져 나간 다리 아래에선 동네 주민들이 노심초사 안부를 빌었던 오리 가족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내가 바랐던 자연 하천 복원은 오래 전 내가 국민학교때 소풍을 가서 가재를 잡고 놀았던 부암동 백사실처럼 작고 자연스럽고 고요한 하천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청와대 주변이어서 오래도록 통행을 금지했던 터라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심 속 계곡의 모습, 내가 기억하고 있던 바로 그 <백사실> 계곡이 화면에 비추던데, 한 십년쯤 걸리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정말로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망치지 않으면서 깨끗한 하천을 복원하면 왜 안되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손길이 과도하게 닿으면 자연은 분명 망가질 수밖에 없음을 그렇게 겪고도 왜 사람들은 깨닫지 못할까.
설령 정말로 온 나라의 강에 문제가 있어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해도, 한번에 한군데씩 여러모로 살피고 조사하고 재보면서 혹시라도 망쳐버렸을 때의 엄청난 결과를 최소로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지 않고, 왜 한꺼번에 백여군데의 강줄기에 수십조나 되는 <빌린> 예산을 투자해 실제로 치수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를 걱정스러운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인지 아무리 양보해서 이해해보려고 해도 납득이 안된다.

청계천 정도의 무모한 삽질이라면 수십년 후에 누군가 환경지향적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행정가가 나타나 되돌릴 수나 있겠지만, 금수강산 곳곳을 파헤쳐놓고 물길을 망가뜨리면 백년이 지나도 제대로 <복원>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지금 이 나라 자연에 필요한 건 억지로 갖다 붙인 <살리기>가 아니라 분명 <그냥 두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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