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에 해당되는 글 123건

  1. 2014.05.27 5월엔 3
  2. 2014.03.28 호박이 뭐 어디가 어때서 1
  3. 2014.03.20 광장시장 먹거리 6
  4. 2014.02.25 안동 - 원풀이 2
  5. 2014.02.06 AI야 가라, 닭고기는 맛있어~ 4
  6. 2013.09.23 먹는 게 남는 것 11
  7. 2013.05.04 제니스 브레드_연희동 11
  8. 2013.04.29 달걀을 먹는 방법 17
  9. 2013.03.21 역전야매요리를 따라하면 10
  10. 2013.03.16 신촌 돈텐동식당 2

5월엔

놀잇감 2014. 5. 27. 00:55

온 나라가 참담함에 젖었던 5월엔 유독 이상하게 참 많이도 빨빨거리고 다녔다.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은 통 손에 안잡힌다는 핑계로 작업은 뒷전이고... ㅠ.ㅠ 책도 한권 안 읽고.. ㅠ.ㅠ


일단은 경복궁 옆 고궁박물관에서 하는 <궁중채화전>과 <종묘 특별전>을 봤고

(왼쪽이 비단으로 일일이 꽃과 나비 새 등등을 만들어 장식하는 채화전이고

오른쪽 사진이 종묘 특별전. 그릇이며 술잔이며 되게 신기했음) 



전북 완주 운암산엘 갔었고 (밧줄 잡고 암벽을 오르는 짓거리를 몇번이나 한 끝에 정상에도 올랐다 ㅠ.ㅠ 나 이러다 등산인으로 거듭나는 거 아닐까 몰라... ㅋㅋㅋ)

 


정상에서 찍은 사진은 아니고

매번 내가 정상으로 착각했던 어느 능선에서 대아댐과 대아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 헉헉대며 손이 덜덜 떨려서 정사각형 모드로 찍고 있는 줄도 몰랐다.














경북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엘 다녀왔고 (드디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을 알현! 감격했다)

부석사 안양루소수서원 직방재부석사 무량수전




부암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도 올랐었고 (마침 월요일이라 윤동주 문학관은 문 닫았더라)

소나무 아래 보이는 것이 윤동주의 서시가 적혀있던 시비, 그리고 엄청 크게 자라 앵두가 다닥다닥 매달려 익어가고 있던 그 주변의 앵두나무. 



용산 중앙박물관에서 하는 오르세전도 보러 갔었고







또 옛날식 함박스테이크를 판다는 삼청동 그릴데미그라스에도 갔었고

이날 뒷북으로 영화 <역린>도 보았음. 귀찮아서 포스터 퍼오기 생략. 영화보다 난생처음 좌우에서 쌍코골이(왼쪽은 내 일행이고 오른쪽은 남의 일행이었는데 양쪽에서 동시에 졸며 코까지 골다뉘 ㅠ.ㅠ)를 경험한 것으로 감상을 대체해도 될 듯. ㅋㅋ 


그러고는 마감중에 또다시 완주에 내려가 종남산 송광사, 위봉사, 화암사 답사를... 

  

송광사 십자종루 화암사 우화루위봉사 보광명전



이러고 놀았으니 일을 제대로 끝냈을 턱이 있나. 연일 전화벨소리에 덜덜 떨고 있다. ㅠ.ㅠ

그래서 양심상 세세한 본격 후기는 다 안쓰게 될 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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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볼 때 지구를 위해선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이른바 '로컬 푸드'라는 걸 골라야 한다는 건 알지만 실천에 옮기기란 쉽지가 않다. 일단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걸 어쩌라고! 그냥 '국내산'이라고만 적혀있지 정확한 재배지까지 표기된 채소도 많지 않지만, 포항초, 제주 무, 제주 당근, 제주 감자... 같은 건 먼데서 왔어도 사고봐야 되는 걸 뭐. 한단 천원짜리 시금치와 그 세배 가격인 포항초 시금치는 맛이 워낙 달라서 비싸도 포항초나 섬초를 사먹게 된다. 게다가 난 또 시커먼 제주 흙이 묻어 있는 당근이나 감자를 보면 또 엄청 맛있을 것 같아서, 혹시 '파주'나 '강원도' 꼬리표를 단 다른 제품이 있더라도 제주도 먹거리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왔을 텐데... 하는 생각에 좀 찔려하면서도.

 

단호박도 마찬가지다. 제철음식만 먹고 산다면, 굳이 태평양 건너 날아온 뉴질랜드산 단호박을 사지 않아야 하는데 단호박을 워낙 좋아한 나머지 통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요리랄 것도 없이 쪄서 치즈랑 아몬드만 얹어 먹어도 얼마나 훌륭한 맛이 나는데 ㅠ.ㅠ (물론 쪄서 그냥 먹어도 좋다.) 게다가 단호박을 찌기 전에 긁어낸 호박씨도 좀 말렸다가 까먹으면 얼마나 맛있다규!  일일이 껍질을 까기가 좀 귀찮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앞니로 호박씨를 오독오독 까먹는 재주를 익혀둔 덕분에 크게 성가실 것도 없다. 씨가 좀 덜 여물었을 땐 아쉬워하면서 그냥 버리지만, 단호박을 딱 쪼갰는데 튼실한 씨앗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으면 말렸다가 밤참으로 까먹을 생각에 흐흐흐 므흣해진다.

 

혹 어려서 부르던 이런 노래를 기억하는가? (심지어 학교에서 배웠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호박 같은 내 얼굴 미웁기도 하지요, 눈도 삐뚤 코도 삐뚤 입도 삐뚤삐뚤'

'오이 같은 내얼굴  길기도 하지요, 눈도 길쭉 코도 길쭉 입도 길쭉길쭉'

(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이런 노래는 완전히 사라졌기를 빈다 -_-; 하긴 조카들이 부르는 거 통 못들어봤으니 다행)

그런데 나는 이 노래를 배우면서도 호박이 삐뚤삐둘 못생겼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눈엔 호박 예쁜데? 게다가 호박꽃도 못생긴 꽃의 대명사로 통하는데, 내 눈엔 샛노랗고 통통한 것이 이쁘기만 한 걸! 대체 왜? 비슷하게 생긴 나리꽃이나 수선화보다 못할 게 뭔가!

 

할아버지댁에 살 때 마당에서 애호박과 늙은 호박, 화초 호박을 종류별로 키웠기 때문에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탐스러운 샛노란 꽃이 피었다가 꽃이 시들면서 그 끝에 콩알만하게 열매가 맺혀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노끈을 매달아 덩굴손이 뻗어나가 자라도록 기른 애호박은 적당히 크면 뚝 따서 된장찌개도 끓이고, 새우젓 넣고 볶아도 먹고, 송송 썰어 칼국수나 수제비도 해먹었는데, 요즘 마트에서 보는 인큐베이터 애호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단맛이 났었다. 늙은 호박은 어린 내가 들 수도 없을 만큼 크게 자란 걸 광에 쌓아두었다가 '한 놈씩 잡아서' 호박죽도 쑤고, 호박고지로 만들어 시루떡에도 넣고... 또 뭘 해먹었더라.

 

하여간 할머니가 늙은호박에서 긁어낸 굵은 호박씨도 잔뜩 말려놓았다가 간식으로 오독오독 까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땐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생긴 이유도 하도 맛있어서 몰래 먹는다는 의미로 이해될 정도였다. 진짜로, 이 속담의 유래는 뭘까나. 내숭떨고 앞뒤가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텐데 왜 하필 호박씨? 앞니로도 까기가 어려운데, 뒷구멍으로? ㅋㅋㅋ

 

하여간 오늘 저녁에도 단호박을 쪘는데 호박 자체는 단단하고 맛이 있었느나 안타깝게도 씨가 덜 여물어 그냥 긁어버려야했다. 눌러보니 죄다 쭉정이. 단단하고 맛있는 단호박을 고르는 눈은 이제 얼추 익혔는데, 아직도 겉으로 봐서 씨앗의 여물기까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색이 진하게 잘 익었어도 씨앗이 덜 큰 이유는 뭐람. 그나마도 바다건너 오느라 탄소마일리지 팍팍 늘렸을 뉴질랜드 단호박은 다른 수입 농산물에 비해 거부감이 덜하다. 나라에 청정지역이 많다고 그곳 농부들이 농장에서 키우는 수출용 호박에 농약이니 비료니 안 쳤을 리 없지만 그냥 나의 편견. 뉴질랜드 농부들은 어쩐지 먹거리에 심한 장난까지 치지는 않겠지...

 

나무샘 블로그에서 강요배의 호박꽃 그림을 본 순간 포스팅 거리가 생각나서 시작은 했는데 결론은 나의 식탐으로 끝나누만. 째뜬 오늘 밤참은 찐 단호박이고, 호박과 호박꽃은 언제 봐도 예쁘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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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먹거리

놀잇감 2014. 3. 20. 13:38

두어달 쯤 됐다. 대비마마가 육회타령을 하신 것이. 지난 가을엔가 큰동생네가 데려갔던 고깃집에서 먹었던 육회 한 접시가 참 그렇게 맛있었다고 돌이키기도 했고, 홍두깨살 잡채용으로 썰어달라고 해 갖고 와서 불고기 양념하듯 대충 무쳐도 맛있을 거라고도 했지만 나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

 

누구 못지 않은 식탐을 지녔지만 내가 즐기지 않는 음식이 몇 있는데 육회도 그에 포함된다. 생선회는 어째저째 해서 먹는 맛을 익히게 되었지만 '시뻘건 날고기'를 그냥 먹는 건 쫌! 육회를 즐기는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난 '육회'와 '생간, 천엽' 따위를 보면 곧장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된다. ㅠ.ㅠ 그렇다고 해본 적도 없고 잘 먹지도 않는 음식을 재료 사다 만들어 드릴 생각은 나지 않았다. 배 송송, 계란 노른자 탁, 흥! 말은 쉽지!  

 

그런데 온갖 종류의 육고기 반찬을 해대도 도무지 대비마마의 육회타령 빈도수가 잦아들지를 않았고, 결국 그래 그럼 먹으러 가자, 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난 번 가본 그 집은 아무래도 육회가 사이드 메뉴이고 본격적으로 부위별 쇠고기를 구워먹는 집이다보니 탈락. 직화구이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모녀의 건강을 위해 상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떠오른 곳이 바로 광장시장. <VJ특공대>였나, <다큐멘터리 3일>이었나 얼마전 TV에 나온 걸 보며 "평생 서울 살면서도 시내에 안가본 데가 아직도 많다"고 은근 노친네의 압력을 받은 적도 있었으니.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한 대로 광장시장 육회집을 찾아갔다. 우정약국과 우리약국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육회골목이라더니 버스정류장 바로 코앞! 그러나 평일 5시 반쯤이면 줄 안서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건 나의 착각. 벌써 번호표 뽑고 1, 2호점 앞에 바글바글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 사람들.... ㅋㅋㅋ  우리 순번대기표가 423번인데 입장 번호는 378번. 얼마나 기다려야할지 알순 없지만 번호표만 뽑고 그냥 가는 사람도 많으니 기다려보라고 덕지덕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좁아터진 골목에 서 있을 데도 없어서 일단 광장시장 안으로 진입해 먹거리 골목을 한바퀴 돌았다. 대비마마는 육회와 육회 덮밥을 시켜드리고 나는 한치 덮밥을 먹어야지(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메뉴판을 보고 급방긋했었다. 육회 못먹는 사람을 위한 메뉴도 있군!) 기대했는데, 그새 한치 메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끼니거리를 챙겨야하지 않겠나.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광장시장 먹거리 3종 세트는 자매육회와 순희네 빈대떡, 그리고 마약김밥. ^^; 육회는 못 먹어도 나머지 두 개는 어디 얼마나 맛있나 두고보자는 심정이었는데, 그 곳 역시 줄 선 사람들로 바글바글. 어휴... 역시나 줄을 서서 마약김밥(2500원)과 빈대떡(4000원)을 하나씩 포장해달래갖고는 가까스로 대기석 동그란 의자를 차지한 육회집 앞에서 기다리며 맛을 보았다. 마약김밥이야 원래도 내용물이 단무지와 당근 뿐이라 별 맛 없다고, 그런데 자꾸 생각나서 마약김밥이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도대체가 뭐가 맛있다는 건지? 겨자간장 안찍어도 어우 짜...  김밥은 원래 짠맛에 먹는다지만 에이 실망. 그나마 빈대떡은 두툼하고 바삭바삭, 역시나 양파 간장 안찍어도 간간하니 맛있었다. 하기야 그렇게 기름에 들들 튀기다시피 굽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포장 주문을 하면 집에 가서 먹을 건지, 당장 먹을 건지 묻는다. 멀리 가는 거면 초벌구이(?)를 해놓은 저 빈대떡을 그냥 싸주고, 바로 옆 좌판에 앉아 먹거나 금세 먹을 거라고 하면 한번 더 노릇노릇하게 구워 4등분을 해주더만.

막걸리와 함께 앉아 먹는 사람도, 포장해 가는 사람도 죄다 줄을 서시오 줄을 서.. 분위기.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다고, 양반(?)은 올 데가 못된다는 것이 울 엄니의 촌평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약김밥집은 사진도 없다. '원조'라고 써 있던데 맞는지 어쩐지, 정말로 별맛 없는데 두고두고 생각날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3, 40분쯤 기다렸다가 드디어 입성한 육회자매집은 하도 장사가 잘 돼 바로 옆에 2호점을 낸 것도 모자라 큰길가에 3호점을 냈다고. 집에 가면서 보니 3호점이 좀 더 깔끔하고 깨끗한 외관이던데 왜 사람들은 시장통으로만 몰려드는걸까. 대비마마 말씀으론 가격은 저렴하되 맛은 뭐 그럭저럭이라고. 지난번 고깃집 육회가 더 맛있단다. 그래서 다음엔 어쩔 수 없이 거기로 모시기로.. ㅠ.ㅠ

맨 오른쪽은 노른자 터뜨려 비비기 전에 찍었어야 하는데 ㅋㅋ 타이밍을 놓쳐 울 엄니 먼저 한 입 드시고 난 후 사진. 200그램에 12,000원이면 싸긴 하다. 그러나 한번이면 됐지 다시 가고 싶진 않;;; 

 

외부음식 반입 불가라고 적혀 있어서 다 못 먹은 김밥과 빈대떡을 가방에 쑤셔넣고 대신에 깡 맥주를 혼자 한병 다 마셨더니 술기운에 집에 와서 푹 쓰러져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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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 원풀이

놀잇감 2014. 2. 25. 16:59

2012년 가을에 안동 갔을 때 못 가고 못 보고 못 먹어 아쉬웠던 것들에 대한 원풀이를 얼추 다 하고 돌아왔다. 탱자탱자 놀러다닐 상황은 아니지만 일행의 생일 선물로 다녀온 여행, 마음의 여유가 없어도 노는 건 좋더라. 길고 자세한 여행후기는 생략하고, 그냥 1박2일간 움직인 동선대로 원풀이 목록을 적어볼 생각.

 

1. 일직식당 간고등어 조림

 

아침 9시에 서울을 출발했더니 딱 점심시간에 안동에 도착했다. 먹거리 1순위로 일행과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고등어조림의 위용이다. 익히 맛있단 얘기를 듣고 기대가 높았음에도 정말 맛있었다. 둘 다 밥 한 그릇 뚝딱.

곁다리 반찬도 깔끔하고 맛있는 편이었고, 아주 작은 종지만한 그릇에 주는 식혜도 심히 달지 않고 맛났다.

올라가기 전 점심으로 한번 더 먹고 갈까... 그런 생각을 품기도 했으나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안동역 바로 옆에 있는 일직식당 주소는 안동시 운흥동 176-20. 건물 바로 뒤에 유료주차장에 주차하고 식사 후 도장 찍어가면 무료. 나중 재방문을 대비한 기록차원의 포스팅이다. ㅋㅋ

 

 

2. 퇴계종택

 

도산서원 앞에 도착해보니 주차장이 전방 몇백미터에 또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덜 걷겠다는 욕심에 도산서원 입구가 어딘지 찾아보지도 않고 괜히 길을 따라 더 올라갔다가 고개를 넘어 엉뚱하게 먼저 가게 된 곳이다. ㅋㅋㅋ

 

표지판을 자세히 읽지 않아 벌써 홀딱 까먹었지만 1900년대 초에 퇴계의 후손이 지은 집이라는 것 같다. 대청마루에 유리를 낀 문을 단 것으로 보아 근대 한옥건축이 틀림없지 않을까... 짐작만 했다.

 

 

 

 

 

 

 

3. 도산서원

 

두둑한 배를 두들기며 도산서원을 먼저 찾은 이유는 숙소가 도산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안동 시내에서 차로 30-40분쯤 걸리는 거리. 산속으로 꼬불꼬불한 길을 꽤 많이 들어가야 나타난다. 성수기 때는 주차료도 따로 받는 모양이던데, 비수기라서 입장료 1500원만 내고 들어갔다.

 

걸어들어가는 입구부터 어찌나 아름다운지, 저 아래 흐르는 낙동강의 물소리며 주변을 아늑하게 둘러싼 산까지 진짜 명당이로군, 했다. 서원이라지만 한옥의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고, 고색 창연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아기자기했다.

 

하지만 선비문화원인가 뭔가 하는 교육(혹은 수료식?)이 진행중이라 서생 복장을 한 젊은 남녀가 대청마루에 줄지어 앉아있고 도포자락 휘날리는 사부님도 보여서 중심건물은 속속들이 제대로 구경할 순 없었다. 어쨌거나 오래된 툇마루에 앉아 있으려니 마음 뿌듯.

 

왼쪽 사진은 <시사대>였던가.. 정조가 퇴계를 기려 특별 과거시험인 별시를 연 곳을 기념해 세운 전각이라는 것 같다.

오른쪽은 아마도 서고? 초록색 단청을 칠한 덧문이 진짜 오래된 느낌... 

 

 

4. 농암 종택 

 

언젠가 신문에 크게 난 기사를 보고 일행이 찜해 예약해둔 숙소는 농암 종택. 농암 이현보의 후손이 현재 위치로 옮겨다 지었다는데 규모가 대단하다. 드넓은 대지에 집을 띄엄띄엄 앉혀놓아 엄청나게 툭 트인 느낌. 

솟을대문 앞에서 사당쪽으로 바라본 종택 입구 사랑채 왼쪽에 붙어 있는 맨 구석방이 우리 숙소

 

겨울이라 창문에 다 뾱뾱이를 붙여놓아 열수가 없었지만 여름이나 봄가을에 창문을 열면 건너편 기암절벽과 산이 보여 풍광이 대단할 것 같다. 방도 곳곳에 엄청 많고!

 

평일이라 아마 투숙객은 우리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건 완전 야무진 착각이었고, 버스까지 대절해 온 단체손님이 있었다. ㅋㅋ

그래서 밤에 큰방에 모여 노는지 좀 시끄럽긴 했지만, 기특하게도 12시 전에는 행사를 마무리해주더군. 1인당 7천원을 내면 종부가 차려주는 아침밥상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우리도 부탁을 했는데, 단체손님 덕에 밥상을 받는 대신 졸지에 뷔페식으로 먹어야했지만 홈페이지에서 본 반찬보다 훨씬 더 많은 가짓수의 반찬이 나온 것 또한 단체손님 덕분이었던 것 같다. 인간지사는 역시 새옹지마! ㅎㅎㅎ 

8시 반 되자마자 눈꼽도 안 떼고 제일 먼저 밥먹으러 가서 얼른 후다닥 찍어서 흔들렸는데, 맨 마지막에 구워온 간고등어까지 반찬이 무려 15가지! 장아찌 몇 종류는 아예 건너뛰고 한입거리씩만 접시에 담았는데도 저 정도... 담백하고 맛있었다! (누룽밥까지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운 일행은 점심때도 배가 고프지 않다며 정식 끼니를 거부했다. ㅠ.ㅠ 안동 한우 갈비 먹으러 갈 차례였는데! 전날 저녁도 찜닭 먹으러 나갈까 말까 하다가, 귀찮아서 읍내 하나로마트에서 사온 맥주와 안주와 컵라면으로 떼웠으므로... 이번 안동 여행에서도 토속 먹거리-헛제삿밥, 한우갈비, 찜닭-모두 맛보기는 원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가 묵은 방엔 '다실'이 딸려 있었는데 발시리고 추워서 겨울엔 엄두도 나지 않겠지만 여름엔 앞뒷문 다 열어놓고 풍류를 즐기며 차 마시는 게 가능하겠다. 모든 방에 TV는 없지만, 냉장고와 무선주전자와 다기세트가 구비되어 있다고. 도배상태며 침구류도 깨끗했고, 우리가 묵은 '내실'은 4명이 자기에도 넉넉한 크기. 다만 심야전기를 이용한다는 난방은 7시반부터 따뜻해진다고 하여 좀 추운 편. 비교적 따뜻한 날씨였는데도 공기를 덥히려 전기난로를 돌려야했음. 물론 밤중엔 뜨끈뜨끈해졌다. 세탁기가 떡하니 놓여있는 드넓은 화장실도 추워서 겨울엔 샤워하기 무리. 한참 틀어놓으면 뜨거운 물이 나오긴 했지만 다음날 머리도 안감고 모자로 버텼다. ㅋㅋ 아 참, 수건도 가져가야하고(달라면 주긴 한다;;) 헤어드라이어 같은 것도 없다. 한옥고택 체험은 아무래도 겨울엔 무리일지도. 치암고택이나 학인당은 어쩐지 겨울에도 화장실까지 따뜻할 것 같은데...  그야 모를 일.

주소는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을미재 612번지. 054-843-1202

 

 

5. 하회마을

안동시내를 중심으로 동과 서로 뚝 떨어져 있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우리 숙소에서도 하회마을까지는 1시간 30분 가까이 가야했다. 안동 관광은 욕심 내서 많이 보려면 기동력이 필수인듯.

왼쪽은 아마도 충효당? 오른쪽은 마을 중심에 있는 삼신당의 삼신목. 수령 600년치고는 둘레가 너무 어마어마하게 커서 의아할 정도인데 벌어지며 자라서 그런 듯. 암튼 일행은 삼신목에 열심히 고개를 조아리며 무언가를 빌었다. 무얼 빌었을까...

 

암튼 요번엔 나의 원풀이를 제대로 해주려고 하늘이 도왔는지(?) 지난번에 나룻배만 묶여있던 백사장 나루터에 연신 배가 오가며 부용대 쪽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데 30초나 걸리려나... 째뜬 '나름' 낙동강을 건너는 왕복 뱃삯 3천원.  

그렇다고 우리가 부용대 꼭대기까지 올라갈 인물들은 절대 아니고 강 건너편에 있는 옥연정사인가 하는 곳만 둘러보고 나왔다. 오른쪽 사진이 고택체험 숙소로도 묵을 수 있는 옥연정사. 하여간 그래도 뱃놀이까지 했다는 뿌듯함에 막 시(?)도 읊어주고 ㅋㅋㅋ

 

 

 

첫날은 날이 약간 흐렸는데, 다음날은 완전 쾌청화창. 두툼한 겨울 외투가 민망할 정도로 따뜻한 날씨였다.

하회마을 골목길을 돌아나오며 아쉬움에 사진 한 장 더.

 

 

 

 

 

 

 

 

 

 

 

 

 

 

 

 

 

 

 

 

 

6. 병산서원

 

주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병산서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 같다. 하회마을에서 걸어서도 접근이 가능하다지만, 왕복하려면 2시간 반은 잡아야한다고. 차로 찾아가도 꼬불꼬불 비포장도로를 꽤 가야 나온다. 요번에 본 한옥들은 하나같이 다 배산임수,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캬... 어쩜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곳을 콕콕 집어 집을 짓고 공부를 했을까나. 이런 데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더 잘될까 어쩔까 뭐 그건 시답잖은 생각이 들었다.

 

서원 건축의 '백미'라는 병산서원은 건물의 수가 도산서원보다 훨씬 적은데도 규모가 큰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 만대루 때문일 듯... 길쭉하고 장엄한 누각이라 어디에서도 한 컷에 안잡힌다. ㅠ.ㅠ 

 

 

 

 

 

7. 맘모스 제과

안동여행 마지막 코스는 대망의 맘모스 제과!

병산서원을 다 돌아보고 났을 무렵 나는 허기가 져서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는데 ㅠ.ㅠ 간고등어도 싫고 헛제삿밥도 싫고 그저 맘모스 제과 빵으로 달콤하고 행복한 요기를 하겠다는 일행의 '빵심' 덕분에 견과류로 대충 배를 채운 뒤 다시 안동 시내로 달려갔다. 문제는 내가 검색을 대충하는 바람에 주소는 정확했으되 빵집이 대로변에 있지 않다는 걸 몰랐다는 게 함정. "목적지 부근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주변 도로를 두번이나 돌다가  '차로는 못 들어가는 골목'이라는 주민의 설명을 듣고서야 찾아들어갔다. ^^;

오후라서 빵이 많이 남았을라나 모르겠다는 주차요원 아저씨의 말씀에 불안했더니만, 헐.. 역시나 '맘모스 빵'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그나마 좀 남은 치즈브레드와 애플또띠야, 유자파운드를 고른 뒤 커피와 함께 폭풍흡입...  

미슐랭 별점을 받은 빵집이라더니만 커피도 맛있네그려! 배를 채우고 나서야 빵사진을 찍을 생각이 들었는데, 빵집을 나오며 선반을 보니 그나마 있던 빵도 거의 다 떨어졌다. 왼쪽이 생크림치즈가 듬뿍 든 치즈브레드. 냉장고에 넣었다가 담날 먹어도 맛있었다! 안동 사과를 넣어 만든다는 애플 또띠야는 그냥 또띠야 반장에 사과절임을 넣어 삼각형으로 말아놓은 건데 아삭아삭 씹히는 사과와 바삭 담백한 또띠야가 꽤 잘 어우러졌다. 다음날 먹어본 거라 맛이 좀 덜했을 수도 있겠으나 암튼 별로 달지 않아 내 입맛엔 합격. 유자 파운드는 유자청이 콕콕 박혀 있긴 한데 겉에 설탕을 입혀놓아 너무 달았고 크기도 작았다. 가격대비 별로. 그나저나 맘모스 빵을 결국 못 먹어본 건 아쉽다. 또 가야하나... ㅋㅋ

맘모스 제과 앞길은 보행자만 다니는 쇼핑가인 듯. 주소는 안동시 남부동 164번지 

주차는 주변 남부시장 공용주차장에 하고 빵을 만원어치 이상 사면 1시간 무료라는 것 같은데, 그냥 도로변 공용주차장에 대도 완전 저렴하다. 주차비 700원 나왔음! ^^;  

 

이로써 1박2일간 왕복 690킬로미터쯤 되는 안동여행을 신나고 맛나고 뿌듯하게 마쳤다. 간단히 쓴다더니 엄청 길기도 하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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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적고보니 뜬금없이 노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폭포가 '나이야가라'라는 관광버스 유머가 생각났다. -_-; 암튼 인간의 탐욕 때문에 좁고 더럽고 스트레스 심한 환경에서 사육된 조류들의 질병이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세상이 좀 바뀌면 좋겠다. 읽혀 먹으면 닭고기 오리고기는 아무 문제없다고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마트나 시장에서 일단 닭과 오리를 사기가 힘들어진 것 같고 (특별 할인 스티커를 붙이고 있지 않으면, 아예 매장에서 제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 AI가 수도권까지 퍼졌으니 죄다 살처분하고 나면 당분간 닭고기 오리고기 값은 고공행진일듯. 이런 악순환은 좀 어떻게 안되겠니!

 

먹거리 포스팅이 뜸하다는 나무샘의 요청에 힘입어, 그리고 AI가 수그러들기를 바라는 닭고기 애호가의 마음으로 그간 먹어댄 닭고기 음식 사진을 모아보았다. 닭고기는 정말이지 어떻게 요리해도 맛없기가 어려운 재료가 아닐지. 내가 다 애정하는 집들인데, AI 때문에 닭수급에 어려움이나 심히 겪지 않기를 바란다.

 

1. 동대문 원조 닭한마리 칼국수

 

내가 동대문 시장 뒷골목에 자리잡은 양푼 닭한마리 칼국수를 처음 접한 건 90년대 초. 같이 졸업한 학교 선배가 동대문 근방 청계천변에 헌책방을 인수했고, 개업 축하 비슷하게 친구들과 몰려갔던 날 선배가 닭고기의 신천지를 소개했다. ^^;

등에 감자를 꽂은 닭 한마리가 통째로 냄비도 아니고 커다란 양푼에 담겨 나오는데, 시커먼 가위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어설프게 가위질을 할라치면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어우... 근데 겨자와 간장 식초 따위를 넣은 양념장에 찍어먹는 닭고기 맛이 그야말로 신세계! 인근 시장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술집 정도로 알고 있었기에, 자주 갈 기회도 없었는데 회사 생활 때려치우고 번역을 한답시고 준백수처럼 대낮엔 학원다니고 나이 어린 친구들과 몰려다니게 되자,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닭한마리 칼국수를 먹으러 가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선생들이 이런 험악한 음식을 더 좋아할줄이야! (국물까지 싹싹 저 양푼을 바닥까지 비우고는 뿌듯해하며 여럿이 양푼 쳐들고 찍은 엽기 관광객 모드 사진도 어딘가 있다) ㅎㅎ 암튼 동대문에 밀리오레, 두타 같은 패션타운이 생겨나면서 야시장 구경을 수시로 다녔던 시기까지 겹쳐, 30대 중반까지 참 많이도 먹으러 다녔다. 그러나 그 뒤로 너무 유명해지고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점점 외국 관광객들을 포함해 찾는 사람들도 많아져 줄을 오래 서야하는 게 싫어 이젠 아주 많이 별러야 가는 정도. 정 먹고 싶으면 집에서도 비슷하게 흉내내서 끓여먹기도 하는데, 맛을 똑같이 낼 순 없다. 그러니 노상 그렇게 사람들이 많겠지. 90년대에도 이미 주인 할머니는 여름 내내 하와이 별장에 가서 쉰다는 둥, 빌딩이 수십채라는 둥 갑부설이 나돌았었다. ^^; 저 사진을 찍어온 날은 울 엄니까지 대동하고서 추위를 뚫고 동생네랑 갔었는데, 노인 동반 대가족 프리미엄 덕분에 줄 서 기다리는 남들보다 금방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이고, 그러고 보니 20년 넘게 다녔다는 얘기다. 중간에 가게에 불도 나고 아들이 분점 내면서 맛이 변했네 어쨌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째뜬 20년 넘게 안 없어지고 건재하는 게 고맙다. 시장통 골목 음식점이라 위생이니 친절이니 꼼꼼하게 따질 순 없지만 묘한 중독성을 지닌 맛인 걸 어쩌겠나. 추릅.... 올 겨울 가기 전에 한번 더 가봐야지. 

 

2. 춘천 우성 닭갈비

 

작년 가을 남이섬에 갔을 때 선착장 근처에서 도저히 닭갈비라고 부르기에 화나는 수준의 닭갈비를 먹고는 춘천 원조 닭갈비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그 다음 달에 다녀왔다. ㅋㅋ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명동 닭갈비 골목 말고 춘천 시민들이 간다는 바로 그 우성 닭갈비! (파피야 고맙다 ^^;)

삽처럼 커다란 뒤집개가 아주 인상적이지 않은가? ㅎㅎㅎ

원래 닭갈비는 숯불에 구워먹는 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닭갈비는 저렇게 철판에 볶아먹어야 제맛인 것 같다. 방산 시장 가서 저런 철판을 사다가 한번 해먹어보면 비슷한 맛이 나려나 늘 궁금한데, 그런 수고를 들이느니 그냥 춘천으로 먹으러 다니는 게 낫지, 그러며 참는다. 알싸하고 시원한 동치미까지 곁들여 먹으려면 암.. 가서 먹어야하고 말고.

이날 꽤 아침 일찍 서둘러 갔기에 내 생각 같아선 소양댐도 올라가고 청평사도 가고 그럴까 싶었으나, 동행의 반대로 소소하게 공지천 산책길만 둘러보고 춘천MBC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고는 휭하니 올라와 좀 아쉬웠다. 순전히 닭갈비 먹으려고 춘천 가는 여자다 나. ㅋㅋ 

 

 

3. 부암동 계열사 치킨

 

부암동 치킨집이 서울 3대 치킨에 든다는 말을 들은 터라, 김환기 미술관 구경갔던 날 꽤나 벼르고 기대해서 찾아간 곳.

요즘 추세처럼 튀김옷에 온갖 양념과 자극적인 맛을 첨가하는 게 아니라 옛날 방식으로 담백하게 튀겨낸 치킨이었다. 치맥은 진리~ 라며 생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먹으니 맛은 있었지만, 진짜로 이게 서울 3대 치킨이라고? 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음. 물론 치킨과 같이 나오는 큼지막한 감자튀김이 흡족했고 둘이서 배가 터지도록 바구니를 싹 비웠지만, 소문처럼 그렇게 몇시간씩 줄 서서 사먹을 만한 맛인줄은 잘 모르겠다. 다행히 이 날은 춥기도 했고 평일 저녁이라 줄을 서야하는 문제 따윈 없었으나, 우리가 나올 무렵엔 거의 자리가 없었다. 듣자하니 맥주를 제외한 안주메뉴는 추가주문이 안된다고. 골뱅이 세트도 있는데 그런 건 앉자마자 시켜야한다는 뜻. 켁.. 하여간 저 한바구니에 2만원이다.

나중에 부암동 주민께 물어보니, 원주민들은 이집보다 되레 그 골목 안쪽에 있는 다른 치킨 집 맛을 더 쳐준다고... 나중엔 그 집에 가서 한번 먹어보고 비교해야지.

 

 

4. 백숙

 

 

사실 닭고기는 집에서도 일주일에 한두번 이상 해먹는 것 같다. 백숙과 안동찜닭을 번갈아 해먹는 중간중간 닭안심을 사다 얼려두고는 스파게티에도 넣으니까. 하지만 토종닭 백숙은 뭐 딱히 요리랄 것도 없어서 사진을 찍어둘 생각도 하지 않는데,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서식 안내서를 들고 낑낑대는 동생들을 불쌍히 여겨 언젠가 찍어둔 사진이 생각났다. ^^;

우리집은 제기 설거지를 최대한 피하고 얼른 우리가 상 차려 먹을 수 있도록 기름기 있는 음식은 죄다 접시에 올려 제기로 받치기만 한다는 사실~!

그러고 보니 요번 설날 차례 때는 단감을 사과 왼쪽에 둔 것 같은데 쩝;;; ㅋㅋㅋ 

하여간 차례나 제사때는 어쩔 수 없이 저렇게 껍질째 통닭을 삶지만, 평소 먹을 땐 끓이기 전에 껍질과 꼬리, 온갖 지방을 완전히 제거한 뒤에 담백하게 삶는다. 차례와 제사 때도 통대파와 통마늘 듬뿍 넣고 푹푹 삶아 건져버림. 순전히 산자들이 맛있게 먹기 위한 음식이라규~ 

 

 

5. 단호박 치킨 파스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마지막 닭안심을 녹여서 바로 어제 해먹었다. 사진 찍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쁘게 담았어야 하는데, 가지런히 담았던 엄마 접시는 이미 시식중이셨고, 마침 모짜렐라 치즈 얹은 파스타 해먹는다는 자랑에 친구가 사진 보내보라고 해서 찍은 거라 민망타. 

냉장고에 있는 채소랑 마늘, 닭고기 대충 볶다가 우유 붓는 걸로 화이트소스 끝. 

닭고기는 정말 어디에 넣어도 어울리는 재료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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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준비로 명절 며칠 전부터 꽉꽉 채워놓았던 냉장고 두대가 드디어 거의 다 비었다. 그간 남은 명절음식으로 꽤나 편하게 먹고 지냈는데, 어젠 드디어 먹을 게 없어서 새로이 된장찌개를 끓여야 했다.  빨랑 장을 봐다가 뭐라도 밑반찬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끼니 때마다 까칠녀의 짜증이 폭발할 위험이 있다. 하늘은 왜 내게 오만가지 식탐만 내리고, 김치나 반찬 한 개만 놓고도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착한 식성은 주지 않았는지.... 젠장. 거기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을 세트로 껴안고 계신 대비마마까지. (왕비마마에서 대비마마로 호칭을 바꿔볼 요량이다. 그럼 내 신분도 올라갈 수 있을지도 ㅋ) 

 

그나마 냉동실에 얼려두고 쓰던 표고버섯이며 닭고기도 동났고, 굴비도 추석때 끝을 보았다. 주기적으로 텅텅 비는 냉동실과 냉장고를 보면서 스스로 꽤나 알뜰하게 살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냉동실에 정체모를 검정비닐과 하얀비닐 덩어리가 그득하게 들어있는 거, 난 너무 싫다. 그렇다고 냉장고 CF에 나오는 것처럼 훌륭히 정리된 건 아니지만, 째뜬 평소에 냉동실은 절반 이상 비어있어야 뿌듯하다. 그래야 냉커피 탈 때 얼음에서 이상한 냄새도 안나고 말이지...

 

어제부턴 냉장고와 냉동실을 아무리 열었다 닫았다 해도 딱히 뭘 해먹을 게 없어서 항상 면식을 추구하는 점심 끼니도 이틀 내리 소면을 삶아 나박김치에 말아먹었다. 파스타도 알리올리오는 가능하겠지만, 같이 먹을 채소거리가 없어서 안되겠다. ㅠ.ㅠ 4분의 1쯤 남은 무토막과 당근 자투리만 나뒹구는 냉장고를 보며 이상스레 먹고싶은 건 많은데, 장보러 나가긴 싫으니 참;; 

 

째뜬 명절 노동의 강도로 깡그리 사라져버린 요리 본능과 의욕을 되살려보고자 그간 찍어놓은 음식 사진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없다. 아마 요리할 땐 주로 심술을 부리고 있어서 사진찍고 어쩌고 할 마음이 안들기 때문이리라. 요리에 병원놀이까지, 현대판 장금이가  따로없다고 자화자찬에 킥킥거리면서도 막상 현실에선 표독스런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으니... 헛헛.

 

어쨌거나 날도 더운데 이리도 잘 해먹고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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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샌드위치랑 초콜릿 스콘이 맛있어서, 자주 가진 못하지만 속으로 혼자 팬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홍대 제니스 브레드가 작년 6월엔가 문을 닫았었다. 여기다 수제 햄버거랑 비교 포스팅까지 했었는데 두 집 다 문을 닫다니, 내가 입방정을 떨어서 사달이 났나 싶기도 한 것이 좀 허망했다. 제니스 카페엘 가면 점심때는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쉬 가게 되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홍대 나가본지 백만년은 된 느낌. +_+

 

아무튼 뭐 그냥 잊고 살고 있었는데, 요번에 가정의 달을 맞아 밥 먹으러 어디로 가야하나 연희동 맛집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사실! 제니스 브레드가 최근 연희동에 오픈을 했다는 게 아닌가! 오호라... 낭보로다. 홍대근처 번화가가 합정동, 상수동까지 확대되다가 급기야 행정구역을 달리해 연남동까지 넘어온지 오래다. 하기야 연남동엔 옛날부터 맛있는 기사식당 골목이 유명했고, 화교들이 많이 사는 연희동엔 중국음식집을 중심으로 온갖 종류의 음식점들이 성업중이었다. 그러더니 요샌 골목골목 보세옷집이며 예쁜 카페, 커피 볶는 집까지 연희동마저 약간 홍대'삘'이 나면서 대단치도 않다. 좁아터진 이면도로와 일방통행 골목길이 점심시간이면 자동차로 가득 차 오가기도 어려울 정도.

 

제니스 브레드도 그런 연희동엘 입성한 거다. 나야 그저 고마울 따름. ^^;  위치는 사러가 쇼핑 옆골목이며, 1층엔 빵만 팔고 2층엔 음식점이라는 정보만 알고 스콘 사러 갔다가 지난주말엔 일방통행 골목을 헤매다 '제니스'라는 영어 간판을 발견하고 엉뚱한 커피 집엘 먼저 들러서 빵 내놓으라고 했었다. 바로 뒷골목 비슷한 위치에 '제니스 커피하우스'가 있는 걸 내 어찌 알았겠나. ㅎㅎㅎ 난 서로 관련 있는 줄 알고 제니스  브레드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민망하게도 모른단다.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안다고. 켁. 작년만 해도 개인 주택이었던 곳이 죄다 음식점, 카페로 변하는 것도 서교동, 상수동 운명이랑 비슷하다. 연희동 밥집에 밥먹으러 가면서 주변에 마당 넓은 양옥집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쩝... 제니스 그 집도 커피 향기가 엄청 그윽하고 유혹적이었다.

 

아무려나, 구운 가지 넣은 샌드위치와 초콜릿 스콘이 눈에 밟혀(저녁이라 스콘은 다 떨어지고 없었다) 결국 일주일만에 다시 가게 됐다. 샌드위치 런치세트도 먹고 초콜릿 스콘도 사왔으니 원풀이를 다 한 셈인데, 좀 아쉽다. 요즘 워낙 파스타가 대세라서 그런지 파스타는 종류가 많은데, 샌드위치 메뉴는 서너가지로 확 줄었다. 특히나 내가 아끼던 '멜라자네'가 더는 없었다. ㅠ.ㅠ 버섯 샌드위치도 없고... 흑... 애당초 제니스 카페테리아의 시작이 샌드위치였어도, 유행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요즘 사람들 파스타는 한 끼니로 먹는 사람 많지만, 같은 가격에 샌드위치나 수제햄버거를 사먹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 동생네 햄버거집도 그래서 망한 거 아니겠나. -_-;;  해서 나도 아예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는데, 나름 절반의 성공이었던 것 같다.

 

고민 끝에 내가 시킨 샌드위치는 이름도 모르겠고, 왕비마마가 드신 건 쇠고기 샌드위치. 

오늘의 수프는 양송이 수프였는데, 우리 모녀 입맛에 약간 짰다는 점을 제외하면 '엄청' 맛있었다. 아웅... 치즈가루랑 바삭한 그루통의 위용을 보라!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서 시원하게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맛있었다. 내가 시킨 건 구운 호밀빵 사이에 토마토랑 치즈, 루꼴라가 들어가 담백한 맛. 다만 틀니파 왕비마마는 빵이 딱딱해서 입천장 까지겠다며 하나만 맛보셨음. 오른쪽 불고기 샌드위치는 맛은 괜찮았는데 역시나 고기양념이 우리 입맛에 심히 짰다. 집에 와서 물 엄청 마셔댔음. 멜라자네 샌드위치가 없다는 것 때문에 심술이 좀 났는지, 오늘은 웨지 감자도 덜 바삭했다고 생각;; ㅋ

 

제니스 브레드와 제니스 카페가 같이 있는 셈이라, 파스타 메뉴가 훨씬 다양하니 다음엔 파스타엘 도전해봐야겠다. 2층 양옥을 개조한 구조라서 마당에 차도 석대쯤 주차가능하고, 1층 가운데는 악세사리를 파는 가게인듯?, 카페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은 오른쪽에 있다.  2층 전체를 다 사용하니까 시야가 툭 트여 굉장히 넓은 느낌이 들고 쾌적하다. 지난번 제니스 브레드는 천장이 유독 낮아서 아늑하긴 해도 좀 답답한 느낌이었다면, 여긴 테라스 좌석도 있고 테이블이 꽤 많다.

 

배고파서 얼른 들어갈 욕심에 계단 올라가며 대충 난사한 전경사진과, 배불리 먹고 나와서 또 빵집에 들러 역시나 민망해 하며 후딱 한장만 찍은 빵사진은 그나마 잘 나왔는데 여러번 눌러댄 실내 사진은 죄다 흔들렸다. ㅋㅋㅋ 그나마 샌드위치 사진이 흡족하게 나와 다행.

 

초콜릿 스콘은 예전과 달리 진열장 안 쟁반에 있어서 촬영 포기. 네 개 남은 거 다 싸달라고 해서 잘 모셔놨다. 내일 조카들이랑 디저트로 먹어야쥐;; 갓 구워나온 빵들 보니깐 배 부른데도 욕심이 나서 크랜베리랑 견과류 들어간 바게트 빵이랑 치즈 들어간 치아바타랑 또 뭘 샀더라... 암튼 대체로 여기 빵은 내가 좋아하는 거칠고 찝질한 맛의 빵이다! ㅋ 달콤한 건 초콜릿 스콘밖에 없을지도 모름. 주택가에 들어선 때문인지 처음 빵 나오는 시간이 무려 아침 7시 반이라고 적혀 있었다. 걸어가는 거리에 이런 빵집이 있어서 아침에 따끈한 빵 사다가 먹으면 좋겠다는 로망을 잠시.. 품었음(퍽도 니가 빵 사먹을라고 아침 일찍 일어나겠다 야... 쳇;;). 에효. 

 

저녁 7시 이후엔 빵집은 문을 닫지만 일부 빵은 2층 카페에서 살 수 있단다. 매일 11시 반부터 4시까지(맞겠지? 전에도 그랬으니깐;;)는 샌드위치와 파스타 가격에 런치세트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 아닐지. 평일에만 런치세트 파는 집이 대부분이다보니...  또, 전에는 커피랑 녹차, 청량음료만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늘 보니 오렌지주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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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먹는 방법

놀잇감 2013. 4. 29. 01:54

먹방계의 빛나는 샛별 윤후(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모르시는 분은 패스~ ㅋㅋ) 덕분에 삶은달걀과 달걀 프라이의 진가를 새삼 알았다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걸로 안다. 집집마다 냉장고에 달걀 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도, 그간 달걀은 나쁜 콜레스테롤의 주범 정도로나 인식되다가 다시 오명을 벗고 맛난 간식거리로 재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체질상 콜레스테롤 높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에 달걀 노른자를 비롯해 기름진 육류, 오징어, 갑각류 따위를 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달걀을 사랑하며 종종 밤참으로도 애용한다. 달걀이 지금처럼 흔하고 싸지기 전, 퍽이나 고가의 먹거리였던 시절을 내가 아주 잘 아는 세대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어쨌거나 내게 '달걀 프라이'의 이미지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이렇다. 방학 때 놀러간 외할머니 댁. 방바닥에서 만화책 읽으며 오후 내내 뒹굴거리던 막내 외삼촌이 배가 출출하다며 부엌에 얼굴을 들이민다. 계란 부쳐줄까? 이름이 '언년이'였던 식모 언니가 달걀 한두 개를 얼른 들기름에 부치고 소금을 살짝 뿌려 접시에 담아 삼촌에게 안긴다. 젓가락으로 후루룩 쩝쩝쩝 맛있게 달걀 프라이를 먹던 외삼촌은 선심쓰듯 달걀 흰자 한 귀퉁이를 잘라 내 입에도 한번 넣어준다. 그러고는 접시를 마실 듯 나머지 달걀을 통째로 폭풍 흡입. 집에서도 엄마가 밥 반찬으로 부쳐주는 달걀 프라이를 안먹어본 게 아닌데도, 그때 한 입밖에 못 얻어먹은 달걀 프라이의 고소함과 아쉬움이 어찌나 컸던지 어린 마음에 집에 가면 제일 먼저 엄마한테 달걀 프라이 해달라고 해야지 결심했던 것 같다.

 

물론 나중에 집에 가서 간식으로 먹어본 달걀 프라이는 그날처럼 기막히게 맛있지 않았다. 다른 날인가는, 외할머니가 야박하게 외삼촌만 달걀을 부쳐줬다고 식모언니를 나무라며 내 달걀도 새로 하나 부쳐주라고 하셨지만, 당당히 내 접시에 담긴 달걀 프라이를 먹으면서 왜 그날과 맛이 다를까 의아했었다. 따끈하고 고소하고 엄청 맛이 있긴 한데 외삼촌이 한 입 선심썼을 때보다는 맛이 덜한 느낌. 당연히 결핍과 선망 때문이었겠지. ㅎㅎㅎ

 

내가 좋아하는 달걀 프라이는 앞뒤로 다 뒤집어서 익히되 노른자가 살짝 덜익은 느낌이 남아있는 반숙 상태다. 노른자가 다 익으면 뻣뻣해서 맛이 없고, 그렇다고 노른자 전체가 다 안익어 출렁거리면 비린내 나는 것 같다. 영어로 '오버 이지(over easy)'와 '오버 하드(over hard)'의 중간이라고나 할까. 이런 달걀 프라이는 '오버 미디엄(over medium). 가리는 것 없이 탐식하는 편이면서도, 난 참 웃기게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그러니 스스로 인생을 볶아댄다고 할밖에. 누가 요리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해먹고 살아야하면서 따지는 게 많으니 원! 만약에 영어권 외국 식당에 가서 내 취향대로 달걀 프라이를 시키려면? I'd like my fried eggs 'over medium'. 정도로 이야기하면 될 듯. 앞뒤 잘라먹고 FRIED EGG OVER MEDIUM, PLEASE! 이라고 외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 (여행 나가보면 영어 좀 한답시고 긴 문장 만드느라 우물쭈물 하는 나 같은 사람보다 핵심 단어만 팍팍 외쳐주시는 분들이 더 잘 먹고 대접받고 다닌다. 예절보단 생존이 더 중요한 거니까...)


 '오버 이지'니 '오버 하드', '오버 미디엄'이니 하는 말이 나온 김에 달걀 먹는 방법이나 총망라해볼까나. 소싯적 10년간 거의 영어는 글로만 배웠고 전공수업때도 외국인 교수 수업은 필수만 수강했던 내가 달달 외운 자기소개와 버벅거리는 인터뷰로 미국회사 서울사무소에 덜컥 들어가게 될 줄이야. 암튼 실수연발의 신입 생활 중 뉴욕 출장까지 가서 배운 서바이벌 잉글리시는 참 오래도록 유용했었다. 특히나 주말에 자기 집에 데려가 재워주고 먹여주며, 에그프라이는 '서니사이드 업'만 있는 줄 알았던 내게, '오버 이지'부터 '오버 하드'까지 실전에서 가르쳐준 지미아저씨에게 축복을... ㅋㅋ

(달걀프라이의 익힌 방법과 정도에 따라 왼쪽부터 sunny side up, over easy, over hard의 순이다. ^^;)

 

 

사실 내가 밤참으로 주로 챙겨먹는 달걀요리는 삶은달걀이다. 오죽하면 내가 일전에 달걀 삶는 법에 대한 포스팅도 했을라고. -_-;; 삶은 달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간식, 소풍 먹거리, 기차여행 먹거리겠지만 나에겐 약간의 문화적, 언어적 충격 비슷한 것과 엮인 또 다른 추억이 있다.  

 

직장 시절 마지막 해, 이미 번역으로 이직을 결심하고 사표까지 던진 마당에 여차저차해서 영국 출장을 가게 됐다. 그것도 전무님 이하 상관 몇명을 '수행'하는 임무. 본인도 버벅거리면서 영어라고는 굿모닝 정도인 사람들을 데리고 참 뭘 하겠다고 거기까지 갔었는지, 나도 참 불쌍한 신세였는데 그 한탄까지 할 건 없고 암튼 4, 50대 아저씨들 셋을 대동하고 다니며 끼니 때마다 메뉴 설명에 요리 대리 주문에 반주로 마실 술 고르기까지, 늘 머리가 지끈거렸다. 온갖 생선 종류를 비롯해 음식 재료 영어는 특히 어려웠다! ㅠ.ㅠ

 

이른바 '브리티시 브렉퍼스트' - 버섯은 없었지만 대체로 이와 비슷했고 대신 달걀프라이가 두개였음

작은 호텔이라 차려진 조식뷔페는 없고, '브리티시 브렉퍼스트'와 '컨티넨털 브렉퍼스트'를 주문할 수 있었는데 한국 아저씨들이야 당연히 묵직한 브리티시 브랙퍼스트 통일. 문제는 둘쨋날인가 아침에 발생했다. 베이컨 기름에 쩔은 '프라이드에그 서니 사이드 업'도 '스크램블드 에그'도  느끼해서 부담스러웠던 터에,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영국 할아버지가 앞두고 있는 달걀의 모습을 발견한 거다. 어라, 어떻게 달걀이 서 있지? 홀로 신문을 읽으며 천천히 토스트에 쨈과 버터를 발라 한입 깨물고 난 영국 할아버지는 나이프를 들어 달걀 머리를 후려쳤다. 후려친 부분의 달걀 껍질을 벗겨내고나서 후추와 소금을 뿌려 티스푼으로 달걀 속살을 맛나게 떠먹는 영국인 할아버지...

 

당장 전무는 우리 일행도 달걀을 '저렇게' 주문하라고 요구했다. 아... 난생 처음 보는 저건 또 뭔가. ㅠ.ㅠ 난 좀 당황했지만 언제나 "땡큐 베리 머치 인디드"라고 말끝마다 방점을 찍는 친절한 웨이트리스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우리도 그 난생 처음보는 달걀요리를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 다시 말해 달걀프라이 대신 따끈하게 삶은 달걀(boild egg)을 먹게 된 것인데,  그게 어찌나 신기했었는지. ㅋㅋ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하드 보일드 소설이 바로 완숙달걀을 뜻하는 '하드 보일드 에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고는 아오... 외국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내가 번역을 한답시고 뛰어들어도 되나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날 우리가 얼핏 보기에 달걀이 어떻게 홀로 서 있나 의아했던 이유는 '에그 컵' 때문이었는데, 대체로 오른쪽 사진처럼 생겼다. 우리가 갔던 영국 남부의 그 작은 도시 해변 호텔의 에그컵은 거의 소주잔 반만 한 크기에 하얀색이라 더 분간이 안됐던 것. 그날부터 출장기간 내내 아침 식사 때마다 우린 베이컨과 소시지 외에도 삶은 반숙 계란을 두개씩 깨서 퍼먹는 즐거움에 탐닉했었다. 같은 삶은계란이라도 껍질 까는 거 귀찮아서 마누라가 까줘야 겨우 먹는다는 아저씨들이 집에 가서도 전파해야겠다고 막 흥분해주시고... ㅎㅎㅎ

 

아무튼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밤참으로 달걀을 삶으면 에그 컵을 어디선가 장만해야하는데 하며 조금 아쉽다. (뜨거운 달걀 쥐고 퍼먹으려면 만만치가 않다규~). 나중에 우리나라 호텔에서도 어디선가 조식 뷔페에서 본 것 같긴 한데, 일반 그릇 파는데서 에그 컵을 파는 걸  발견하진 못했다. 열심히 안 찾아본 탓도 있겠지만...

 

 

 

 

 

에고 밤참으로 달걀 삶아먹어야지 생각하며 시작한 포스팅이 사진 찾고 어쩌고 하다가 너무 길어졌다. 힝, 오늘은 두개 삶아 먹어야지! 뚜껑 깨먹는 삶은 달걀은 보들보들해서 소금 칠 필요도 없고, 껍질 잘 안까질까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으니 귀차니스트에겐 금상첨화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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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휴재중이라 토요일마다 작은 재미 하나가 사라졌지만, <역전 야매요리>는 내가 열심히 찾아보던 네이버 웹툰이다. 거친 솜씨로 뚝딱 그럴듯한(그러나 맛은 보장할 수 없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면 정말 유쾌하다. 다른 건 따라해보고싶다는 생각이 거의 안드는 편이었는데, 오븐도 없이 전기밥솥이나 전자레인지로 '베이킹'을 시도하는 걸 보면 한번 나도 해봐?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 이눔의 식탐 때문... 그리고 왜 한달에 한번 그 시기가 도래하면 단거 안 좋아하는 나도 달달한 게 땡기는지 원...

그러다 어젯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오늘 새벽 2시쯤 나의 뇌에서 갑자기 '케이크'를 섭취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핫케이크 가루도 있겠다, 굴러다니는 딸기도 있겠다, 빵에 발라먹던 휘핑크림도 있겠다... 당장 실천에 들어갔다. 전기압력밥솥 설명서에 들어있는 생크림 케이크 요리법도 참고하여, 역전 야매요리 크리스마스 케이크 편도 다시 찾아 읽었다.

베이킹은 계량이 생명이라는데 남은 양으로 대충대충, 에라 모르겠다 마구 거품을 내고 뒤섞어 밥솥에 뙇! 넣고 기다렸는데 ㅋㅋㅋ 양이 너무 많았는지 만능찜 40분으로 다 되기는커녕, 20분+25분을 더하여 총 1시간 25분만에 떡같은 빵판이 완성되었다. 그 다음엔 빵칼을 휘둘러 층을 낸 뒤 쨈과 생크림을 바르고 견과류와 저민 딸기를 올리고... 마지막에 다시 생크림으로 뒤덮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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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한참 식힌 다음에 생크림을 발랐어야 하는데 성질 급하고 배고파서(밤참 먹는 시간 지났다규~!) 뜨거울 때 막 발랐더니 금방 크림이 다 꺼져서 막 질척해지고....  ㅋㅋㅋㅋ  다음에 또 한밤중에 케이크가 먹고싶으면 꾹 참았다가 사다먹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오늘 왕비마마께 볼품없는 꼬락서니의 케이크 한 조각을 바치니 "케이크장사 다 망하겠다"는 촌평을 해주시었다.
재미삼아 아래는 비교샷

출처: 역전 야매요리

당연히 역전야매요리, YOU WIN!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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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 엉덩이 오래 붙이고 앉기' 연습은 역시 블로그질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노는 맛에 길들여져 작업능률 바닥인 것이야 어쩔 수 없다쳐도, 다시 추워진 날씨에 따뜻한 구들장이 손짓하는 유혹을 꾹 참고 견뎌내야 하느니라...

 

밤참도 최대한 오래 걸리는 걸로 후루룩첩첩첩 해먹고 나서도 뭔가 좀 부족한 느낌에 먹거리 포스팅이나 마무리해볼까 하며 궁둥이를 눌러 앉혔다. 2월에 놀고먹고한 것들은 건수도 사진도 많으니까 뒤로 돌리고 일단 또 튀김(!) 이야기. 그러고 보니 살이 붙으려나 요새 튀김을 많이도 먹고 다녔구나야. ㅋㅋ

 

신촌엔 딱히 부담없고 맛있게 뭘 먹으러 갈 데가 별로 없다는 불만을 잠시나마 잠재울만한 작은 음식점을 얼마 전 하나 발견했다.

 

클로리스 카페 있는 뒷골목(그러니까 신촌 형제갈비 있는 명물거리에서도 다시 창천동쪽으로 한번 더 들어가는 뒷골목)에 맛집 꽤 생겼다던데... 라는 말만 믿고 무작정 들어서 보았더니 정말로 못보던 음식점들이 꽤 생겨났다. 어린이 입맛을 지닌 후배가 제일 먼저 마음에 들어한 곳은 골목 초입의 새우튀김을 파는 곳이었으나, 6시부터 저녁 영업시작이라며 문을 닫아 건 주인장의 배짱에 다음을 기약하고, 신촌 로터리 방향으로 골목을 좀 더 내려가다 얼결에 발견한 데가 이 식당.

 

프랜차이즈 돈부리와 우동 전문이라 별 기대도 않고 만만하겠다 싶어 들어가보니 모든 메뉴가 6천원이라는 실로 놀랍고도 착한 가격! 점심 때 굳이 또 우동을 끓여먹고 나간 나는 저녁만이라도 밥을 먹어야한다는 일념에 가키아게돈을 시켰고 다른 이들은 가츠돈, 가키아게 우동과 돈까스로 다양하게... 

그러고 보니 먹느라 바빠서 가츠돈과 돈까스 사진은 없다. ㅋ 둘 다 고기 두툼하고 바삭하니 맛있었는데...

암튼 덮밥이든 우동이든 모듬튀김이 엄청난 크기로 나온다. 다른 메뉴 먹으면서 튀김을 추가로 시키면 단돈 3천원(배고픔에 흥분해서 메뉴판을 잘 읽지 못했지만, 돈까스 추가메뉴도 3천원이었던 거 같다;;). 거대한 튀김이 한 화면에 잡히질 않아서 맨 오른쪽 사진은 다시 찍은 건데도 결국 짤렸다. ^^;

 

굳이 흠을 잡는다면 덮밥에 딸려나왔던 저 국물이 무진장 짜서 나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는 점. 우동 용으로 낸 국물을 똑같이 떠주어 그런 것 같다. 옆에서 시킨 우동 국물을 먹어보니 간이 맞는 걸로 보아 내 짐작이 맞는 듯. 아무리 제대로 맛을 낸 가쓰오부시 국물이라도 까짓것 안먹으면 그만이고, 암튼 신선한 재료를 바삭바삭 좋은 기름에 튀겨낸 맛이 틀림없는 저 거대한 튀김과 밥을 싹싹 바닥까지 비우고 나왔다.

 

수다를 떠느라 우리가 다 먹고나서도 한참을 마냥 노닥거리며 앉아있었는데, 계산하고 밖에 나와보니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 줄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 집이었군! 다른 동네에서도 똑같은 이름의 식당을 본 적 있지만 줄 서서 먹는 걸 본 적은 없다. 똑같은 프랜차이즈 식당이라도 회전율이나 주방장 솜씨에 따라 지점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은 진리. 암튼 그런데도 종업원들이 우리한테 눈치를 주거나 쫓아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흐뭇해서 점수가 더 올라갔다. 이젠 튀김 먹고 싶어지면 고민 좀 생기겠다. 신촌으로 갈 것이냐, 혜화동으로 갈 것이냐. ㅎ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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