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적고보니 뜬금없이 노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폭포가 '나이야가라'라는 관광버스 유머가 생각났다. -_-; 암튼 인간의 탐욕 때문에 좁고 더럽고 스트레스 심한 환경에서 사육된 조류들의 질병이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세상이 좀 바뀌면 좋겠다. 읽혀 먹으면 닭고기 오리고기는 아무 문제없다고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마트나 시장에서 일단 닭과 오리를 사기가 힘들어진 것 같고 (특별 할인 스티커를 붙이고 있지 않으면, 아예 매장에서 제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 AI가 수도권까지 퍼졌으니 죄다 살처분하고 나면 당분간 닭고기 오리고기 값은 고공행진일듯. 이런 악순환은 좀 어떻게 안되겠니!

 

먹거리 포스팅이 뜸하다는 나무샘의 요청에 힘입어, 그리고 AI가 수그러들기를 바라는 닭고기 애호가의 마음으로 그간 먹어댄 닭고기 음식 사진을 모아보았다. 닭고기는 정말이지 어떻게 요리해도 맛없기가 어려운 재료가 아닐지. 내가 다 애정하는 집들인데, AI 때문에 닭수급에 어려움이나 심히 겪지 않기를 바란다.

 

1. 동대문 원조 닭한마리 칼국수

 

내가 동대문 시장 뒷골목에 자리잡은 양푼 닭한마리 칼국수를 처음 접한 건 90년대 초. 같이 졸업한 학교 선배가 동대문 근방 청계천변에 헌책방을 인수했고, 개업 축하 비슷하게 친구들과 몰려갔던 날 선배가 닭고기의 신천지를 소개했다. ^^;

등에 감자를 꽂은 닭 한마리가 통째로 냄비도 아니고 커다란 양푼에 담겨 나오는데, 시커먼 가위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어설프게 가위질을 할라치면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어우... 근데 겨자와 간장 식초 따위를 넣은 양념장에 찍어먹는 닭고기 맛이 그야말로 신세계! 인근 시장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술집 정도로 알고 있었기에, 자주 갈 기회도 없었는데 회사 생활 때려치우고 번역을 한답시고 준백수처럼 대낮엔 학원다니고 나이 어린 친구들과 몰려다니게 되자,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닭한마리 칼국수를 먹으러 가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선생들이 이런 험악한 음식을 더 좋아할줄이야! (국물까지 싹싹 저 양푼을 바닥까지 비우고는 뿌듯해하며 여럿이 양푼 쳐들고 찍은 엽기 관광객 모드 사진도 어딘가 있다) ㅎㅎ 암튼 동대문에 밀리오레, 두타 같은 패션타운이 생겨나면서 야시장 구경을 수시로 다녔던 시기까지 겹쳐, 30대 중반까지 참 많이도 먹으러 다녔다. 그러나 그 뒤로 너무 유명해지고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점점 외국 관광객들을 포함해 찾는 사람들도 많아져 줄을 오래 서야하는 게 싫어 이젠 아주 많이 별러야 가는 정도. 정 먹고 싶으면 집에서도 비슷하게 흉내내서 끓여먹기도 하는데, 맛을 똑같이 낼 순 없다. 그러니 노상 그렇게 사람들이 많겠지. 90년대에도 이미 주인 할머니는 여름 내내 하와이 별장에 가서 쉰다는 둥, 빌딩이 수십채라는 둥 갑부설이 나돌았었다. ^^; 저 사진을 찍어온 날은 울 엄니까지 대동하고서 추위를 뚫고 동생네랑 갔었는데, 노인 동반 대가족 프리미엄 덕분에 줄 서 기다리는 남들보다 금방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이고, 그러고 보니 20년 넘게 다녔다는 얘기다. 중간에 가게에 불도 나고 아들이 분점 내면서 맛이 변했네 어쨌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째뜬 20년 넘게 안 없어지고 건재하는 게 고맙다. 시장통 골목 음식점이라 위생이니 친절이니 꼼꼼하게 따질 순 없지만 묘한 중독성을 지닌 맛인 걸 어쩌겠나. 추릅.... 올 겨울 가기 전에 한번 더 가봐야지. 

 

2. 춘천 우성 닭갈비

 

작년 가을 남이섬에 갔을 때 선착장 근처에서 도저히 닭갈비라고 부르기에 화나는 수준의 닭갈비를 먹고는 춘천 원조 닭갈비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그 다음 달에 다녀왔다. ㅋㅋ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명동 닭갈비 골목 말고 춘천 시민들이 간다는 바로 그 우성 닭갈비! (파피야 고맙다 ^^;)

삽처럼 커다란 뒤집개가 아주 인상적이지 않은가? ㅎㅎㅎ

원래 닭갈비는 숯불에 구워먹는 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닭갈비는 저렇게 철판에 볶아먹어야 제맛인 것 같다. 방산 시장 가서 저런 철판을 사다가 한번 해먹어보면 비슷한 맛이 나려나 늘 궁금한데, 그런 수고를 들이느니 그냥 춘천으로 먹으러 다니는 게 낫지, 그러며 참는다. 알싸하고 시원한 동치미까지 곁들여 먹으려면 암.. 가서 먹어야하고 말고.

이날 꽤 아침 일찍 서둘러 갔기에 내 생각 같아선 소양댐도 올라가고 청평사도 가고 그럴까 싶었으나, 동행의 반대로 소소하게 공지천 산책길만 둘러보고 춘천MBC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고는 휭하니 올라와 좀 아쉬웠다. 순전히 닭갈비 먹으려고 춘천 가는 여자다 나. ㅋㅋ 

 

 

3. 부암동 계열사 치킨

 

부암동 치킨집이 서울 3대 치킨에 든다는 말을 들은 터라, 김환기 미술관 구경갔던 날 꽤나 벼르고 기대해서 찾아간 곳.

요즘 추세처럼 튀김옷에 온갖 양념과 자극적인 맛을 첨가하는 게 아니라 옛날 방식으로 담백하게 튀겨낸 치킨이었다. 치맥은 진리~ 라며 생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먹으니 맛은 있었지만, 진짜로 이게 서울 3대 치킨이라고? 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음. 물론 치킨과 같이 나오는 큼지막한 감자튀김이 흡족했고 둘이서 배가 터지도록 바구니를 싹 비웠지만, 소문처럼 그렇게 몇시간씩 줄 서서 사먹을 만한 맛인줄은 잘 모르겠다. 다행히 이 날은 춥기도 했고 평일 저녁이라 줄을 서야하는 문제 따윈 없었으나, 우리가 나올 무렵엔 거의 자리가 없었다. 듣자하니 맥주를 제외한 안주메뉴는 추가주문이 안된다고. 골뱅이 세트도 있는데 그런 건 앉자마자 시켜야한다는 뜻. 켁.. 하여간 저 한바구니에 2만원이다.

나중에 부암동 주민께 물어보니, 원주민들은 이집보다 되레 그 골목 안쪽에 있는 다른 치킨 집 맛을 더 쳐준다고... 나중엔 그 집에 가서 한번 먹어보고 비교해야지.

 

 

4. 백숙

 

 

사실 닭고기는 집에서도 일주일에 한두번 이상 해먹는 것 같다. 백숙과 안동찜닭을 번갈아 해먹는 중간중간 닭안심을 사다 얼려두고는 스파게티에도 넣으니까. 하지만 토종닭 백숙은 뭐 딱히 요리랄 것도 없어서 사진을 찍어둘 생각도 하지 않는데,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서식 안내서를 들고 낑낑대는 동생들을 불쌍히 여겨 언젠가 찍어둔 사진이 생각났다. ^^;

우리집은 제기 설거지를 최대한 피하고 얼른 우리가 상 차려 먹을 수 있도록 기름기 있는 음식은 죄다 접시에 올려 제기로 받치기만 한다는 사실~!

그러고 보니 요번 설날 차례 때는 단감을 사과 왼쪽에 둔 것 같은데 쩝;;; ㅋㅋㅋ 

하여간 차례나 제사때는 어쩔 수 없이 저렇게 껍질째 통닭을 삶지만, 평소 먹을 땐 끓이기 전에 껍질과 꼬리, 온갖 지방을 완전히 제거한 뒤에 담백하게 삶는다. 차례와 제사 때도 통대파와 통마늘 듬뿍 넣고 푹푹 삶아 건져버림. 순전히 산자들이 맛있게 먹기 위한 음식이라규~ 

 

 

5. 단호박 치킨 파스타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마지막 닭안심을 녹여서 바로 어제 해먹었다. 사진 찍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예쁘게 담았어야 하는데, 가지런히 담았던 엄마 접시는 이미 시식중이셨고, 마침 모짜렐라 치즈 얹은 파스타 해먹는다는 자랑에 친구가 사진 보내보라고 해서 찍은 거라 민망타. 

냉장고에 있는 채소랑 마늘, 닭고기 대충 볶다가 우유 붓는 걸로 화이트소스 끝. 

닭고기는 정말 어디에 넣어도 어울리는 재료라니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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