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시장 먹거리

놀잇감 2014. 3. 20. 13:38

두어달 쯤 됐다. 대비마마가 육회타령을 하신 것이. 지난 가을엔가 큰동생네가 데려갔던 고깃집에서 먹었던 육회 한 접시가 참 그렇게 맛있었다고 돌이키기도 했고, 홍두깨살 잡채용으로 썰어달라고 해 갖고 와서 불고기 양념하듯 대충 무쳐도 맛있을 거라고도 했지만 나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

 

누구 못지 않은 식탐을 지녔지만 내가 즐기지 않는 음식이 몇 있는데 육회도 그에 포함된다. 생선회는 어째저째 해서 먹는 맛을 익히게 되었지만 '시뻘건 날고기'를 그냥 먹는 건 쫌! 육회를 즐기는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난 '육회'와 '생간, 천엽' 따위를 보면 곧장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된다. ㅠ.ㅠ 그렇다고 해본 적도 없고 잘 먹지도 않는 음식을 재료 사다 만들어 드릴 생각은 나지 않았다. 배 송송, 계란 노른자 탁, 흥! 말은 쉽지!  

 

그런데 온갖 종류의 육고기 반찬을 해대도 도무지 대비마마의 육회타령 빈도수가 잦아들지를 않았고, 결국 그래 그럼 먹으러 가자, 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난 번 가본 그 집은 아무래도 육회가 사이드 메뉴이고 본격적으로 부위별 쇠고기를 구워먹는 집이다보니 탈락. 직화구이는 최대한 피하는 것이 모녀의 건강을 위해 상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떠오른 곳이 바로 광장시장. <VJ특공대>였나, <다큐멘터리 3일>이었나 얼마전 TV에 나온 걸 보며 "평생 서울 살면서도 시내에 안가본 데가 아직도 많다"고 은근 노친네의 압력을 받은 적도 있었으니.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한 대로 광장시장 육회집을 찾아갔다. 우정약국과 우리약국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육회골목이라더니 버스정류장 바로 코앞! 그러나 평일 5시 반쯤이면 줄 안서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건 나의 착각. 벌써 번호표 뽑고 1, 2호점 앞에 바글바글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 사람들.... ㅋㅋㅋ  우리 순번대기표가 423번인데 입장 번호는 378번. 얼마나 기다려야할지 알순 없지만 번호표만 뽑고 그냥 가는 사람도 많으니 기다려보라고 덕지덕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좁아터진 골목에 서 있을 데도 없어서 일단 광장시장 안으로 진입해 먹거리 골목을 한바퀴 돌았다. 대비마마는 육회와 육회 덮밥을 시켜드리고 나는 한치 덮밥을 먹어야지(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메뉴판을 보고 급방긋했었다. 육회 못먹는 사람을 위한 메뉴도 있군!) 기대했는데, 그새 한치 메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끼니거리를 챙겨야하지 않겠나.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광장시장 먹거리 3종 세트는 자매육회와 순희네 빈대떡, 그리고 마약김밥. ^^; 육회는 못 먹어도 나머지 두 개는 어디 얼마나 맛있나 두고보자는 심정이었는데, 그 곳 역시 줄 선 사람들로 바글바글. 어휴... 역시나 줄을 서서 마약김밥(2500원)과 빈대떡(4000원)을 하나씩 포장해달래갖고는 가까스로 대기석 동그란 의자를 차지한 육회집 앞에서 기다리며 맛을 보았다. 마약김밥이야 원래도 내용물이 단무지와 당근 뿐이라 별 맛 없다고, 그런데 자꾸 생각나서 마약김밥이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도대체가 뭐가 맛있다는 건지? 겨자간장 안찍어도 어우 짜...  김밥은 원래 짠맛에 먹는다지만 에이 실망. 그나마 빈대떡은 두툼하고 바삭바삭, 역시나 양파 간장 안찍어도 간간하니 맛있었다. 하기야 그렇게 기름에 들들 튀기다시피 굽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포장 주문을 하면 집에 가서 먹을 건지, 당장 먹을 건지 묻는다. 멀리 가는 거면 초벌구이(?)를 해놓은 저 빈대떡을 그냥 싸주고, 바로 옆 좌판에 앉아 먹거나 금세 먹을 거라고 하면 한번 더 노릇노릇하게 구워 4등분을 해주더만.

막걸리와 함께 앉아 먹는 사람도, 포장해 가는 사람도 죄다 줄을 서시오 줄을 서.. 분위기.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다고, 양반(?)은 올 데가 못된다는 것이 울 엄니의 촌평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약김밥집은 사진도 없다. '원조'라고 써 있던데 맞는지 어쩐지, 정말로 별맛 없는데 두고두고 생각날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3, 40분쯤 기다렸다가 드디어 입성한 육회자매집은 하도 장사가 잘 돼 바로 옆에 2호점을 낸 것도 모자라 큰길가에 3호점을 냈다고. 집에 가면서 보니 3호점이 좀 더 깔끔하고 깨끗한 외관이던데 왜 사람들은 시장통으로만 몰려드는걸까. 대비마마 말씀으론 가격은 저렴하되 맛은 뭐 그럭저럭이라고. 지난번 고깃집 육회가 더 맛있단다. 그래서 다음엔 어쩔 수 없이 거기로 모시기로.. ㅠ.ㅠ

맨 오른쪽은 노른자 터뜨려 비비기 전에 찍었어야 하는데 ㅋㅋ 타이밍을 놓쳐 울 엄니 먼저 한 입 드시고 난 후 사진. 200그램에 12,000원이면 싸긴 하다. 그러나 한번이면 됐지 다시 가고 싶진 않;;; 

 

외부음식 반입 불가라고 적혀 있어서 다 못 먹은 김밥과 빈대떡을 가방에 쑤셔넣고 대신에 깡 맥주를 혼자 한병 다 마셨더니 술기운에 집에 와서 푹 쓰러져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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