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에 해당되는 글 123건

  1. 2007.01.14 스트레스 해소법 3
  2. 2007.01.06 밤참은 나의 힘 7
  3. 2006.12.03 김치 부침개 5
어제 친구들이 불쑥 물었다.
"넌 요새 스트레스를 뭘로 푸니?"

요즘 사는 낙이 없어... 라는 맥빠진 생각을 많이 하고 있던 터라 3초쯤 망설이던 내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주로 먹는 걸로 풀고... 사람들 만나고, 수다떨고... 쇼핑도 하고,  여유 되면 여행 가고..."

친구는
"다른 건 뭐 누구나 다 하는 거고, 그나마 니가 살이 안찌는 체질이라 다행이다 야"라고 했다.

처음 나온 대답이 먹는다는 얘기인 걸 보면
내가 식탐으로 해소하는 스트레스가 제일 많다는 얘긴데
어젠 문득 식탐녀를 지나쳐 식충이가 된 기분이었다.
대화가 오간 때가 마침, 자동차 뒷좌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거북스러울 만큼 와구와구 배불리 저녁을 먹고난 다음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스트레스 해소법이란 게 알량하게 겨우 먹는 거라니.. 스스로 대답해놓고도 겸연쩍었다.

요 며칠 여기저기 푸념을 하고 돌아다닌 생각이기도 하지만
정말로 언제부턴가는
호들갑을 떨며 맛있는 걸 찾아 먹어도, 편한 이와 걸판진 수다를 떨어봐도,
몹시 달고 맛있는 케이크와 카페인을 탐닉해도,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봐도, 찔찔 눈물을 흘려봐도,
쇼핑을 해도, 잠시 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고 돌아와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근원적인 답답함 같은 것이 마음 저 밑바닥에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숨쉬기조차 힘든 막막함이 밀려들기도 한다.

누군들 인생이 힘겹지 않겠나.. 자위하지만
그래도 뭔가 나만의 낙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든다.
예전엔 저 위에 적은 것들로도 충분히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단박에 행복해졌는데
지금은 왜 안되는 걸까나.

단순히 맛있는 걸 먹고 배만 불러도 느낄 수 있던 뿌듯한 포만감과 행복을
이젠 골똘히 찾아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내 경우,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점점 더 까다롭고 까칠해지고 불만투성이 인간이 되어간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깊이는 깊어질 생각을 않고 쓸데없이 생각의 겹만 많아져
파삭파삭 부서지는 파이처럼 메마른 뇌가 와사삭 사그라져버릴 것만 같다.
이러다 식충이에 무뇌충까지 되면 어쩌나. ㅜ.ㅜ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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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이 지나쳐 혐오스러울 지경인 벨로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마구 광분하긴 했지만
나 역시 식탐은 누구 못지 않은 인간이다.
간식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끼니를 충실히 먹어주어야 하고
때를 놓쳐 배가 심히 고프거나 먹다가 음식이 모자라면 난폭해지기까지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식구들은 내가 아침을 먹지 않고 하루 두끼만 먹고 산다고 늘 걱정을 입에 달지만
사실 올빼미족인 나는 엄연히 세 끼를 다 먹고 산다는 게 맞다.
남들에겐 점심일 시간에 먹는 하루의 첫번째 끼니는 정확히 말해 나의 아침이고
저녁은 점심, 밤참은 저녁끼니인 셈이다.
원고마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해야 할 정도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는 한
나는 또 끼니때마다 제대로 다 갖추어 놓고 먹어야지
반찬 한 두개만 달랑 꺼내놓고 대강 때우는 건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혼자서 밥을 먹을 때도 반드시 국이나 찌개를 데우고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모두 꺼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가끔 반찬이 부족하다 여겨지면 계란말이나 계란찜, 돼지고기 김치찌개 따위를 후다닥 만들어서 먹어주곤 한다 ^^;;
요리의 '대가'는 아니어도, 먹어본 음식은 대강 얼추 비슷하게 맛을 낼 수 있는 솜씨를 갖게 된 데는 수시로 편찮으셨던 울 엄마와 내 질긴 식탐이 반반씩 기여했을 거라고 여겨진다.

암튼...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양또한 만만칠 않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공기밥 정도는 당연히 한 그릇 다 먹는다.
그래서 과거에 나를 잘 모르던 시절, 양 적은 측근들이 셋이서 음식을 두 종류만 시키는 행태를 보이면 나는 버럭 화를 내를 냈었다. 나는 분식점의 경우 셋이서도 늘 네다섯 개는 시켜놓고 먹어야 뿌듯한 유형이었기 때문이다. ^^;;

나보다 체중이 두배나 더 나가는 동창녀석은 늘 자기보다 밥을 많이 먹는 내 위대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치만 내가 보기엔 나보다 훨씬 덜 먹으면서 그 체중을 유지하는 그 녀석이 더 신기하다. =_=;;

아무려나 밤참도 나에겐 엄연한 한 끼니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먹는 법이 없는데
오늘은 오밤중의 식탐이 극에 달했는지...
백설기 한쪽과 우유 한 잔을 데우고 단감 하나와 귤 세 개를 챙겨 방으로 오려니
냉장고에 든 밤에 눈길이 꽂혔다.
문득 군밤을 해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ㅋㅋㅋ 그래서
칼집을 넣어 몇달 전 홈쇼핑에서 오밤중에 고구마와 함께 충동구매했던 직화 냄비에
구워 시방 냠냠 먹고 있으려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는 듯하다.
나란 인간은 먹는 것 앞에선 어쩜 이리도 단순한지 원...

그치만 배가 고프면 절대로 잠조차 잘 수 없는 올빼미 식탐녀에게
오밤중 밤참은 분명 엄청난 힘의 근원이고 행복이다. ^____^


p.s. '야식'은 일본말에서 유래된 잘못된 표현이란다.
순우리말로는 '밤참'이 맞다고... 나도 앞으로는
'밤참'으로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그간 썼던 '야식'이란 말을 죄다 바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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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부침개

식탐보고서 2006. 12. 3. 01:37
원래는 뜬금없이 만두가 먹고 싶었다.
집에서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다진 김장김치와 두부, 숙주, 갈은 돼지고기를 넉넉하게 넣고빚은 엄마표 김치왕만두 말이다.
그렇지만 돌이켜보건대, 우리 집에서 만두를 빚어본 게 최소한 10년은 넘은 것 같다.
큰 동생이 올해로 결혼 10주년인데, 올케들은 단 한 번도 그 맛을 보지 못했으니까...

우리 삼남매에게 맛있는 영양간식을 해주기로 온 동네 소문난  솜씨 아줌마였던
우리 엄마는 특히 긴긴 겨울에 만두며 맛탕, 떡볶이, 김치부침개, 감자고로께(크로켓이 맞는 표현이지만 느낌이 안 살아서 과거형으로~), 야채빵 따위를 만들어주셨다.

다른 간식과 달리 만두는 삼남매가 모두 달려들어 거들어야 했으므로
처음엔 재미나서 신을 냈지만 나중엔 몹시 지겨워했던 것 같다.
동생들의 어마무시한 식성을 당해내려면 큼지막한 만두를 최소 100개는 만들어야 했는데
만들면서 동시에 옆에서 삶아 건져먹으면서
'나 만두 10개 먹었다. 20개 먹었다'고 자랑하는 묘미는 참으로 뛰어났지만 ㅡ.ㅡ;;
요령피우며 달아나는 남동생들 대신 나 혼자 손목 아프게 만두를 빚어대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엄마가 밀대로 쓱쓱 동그랗게 밀어 내미는 만두피 속도를 미처 내가 맞추지 못하면 엄마가 다시 만두를 빚곤 했는데, 그러면 또 엄마가 대충대충 만든 만두 모양이 안 예뻐 내가 만든 것과 차이가 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놈의 잘난척은 암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던 듯.

하여간 추어진 날씨와 함께 뜬금없이 만두 생각이 간절하긴 했지만
지난 10년 이상 단 한번도 내가 손수 시도해본 적이 없다는 건 그만큼 자신도 없고
몹시 귀찮다는 반증이었으므로, 그나마 간편한 김치부침개를 시도했던 것.

김치를 송송 잘라 미리 설탕과 참기름으로 양념을 하는 것까지
엄마의 비법대로 따라해보지만 늘 맛이 5퍼센트쯤 부족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정말로 맛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부침개를 먹을 때 나는 노릇노릇 바삭바삭하게 부쳐진 가장자리를
뱅둘러 맨 먼저 뜯어 먹고나서 가운데를 먹는다.
본데 있는 집안은 부침개를 넓게 부치면 가지런하게 잘라 상에 올린다지만
부침개란 그저 큼지막하게 부쳐 접시에서 직접 찢어먹어야 맛있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ㅋㅋ

암튼 그래서 넓다랗게 부친 김치부침개 2장을 저녁밥과 함께 해치웠더니
오늘은 나의 평소 밤참 시간인 새벽 1시를 넘기고도 배가 고프질 않다.
하지만 마루에 나갈 때마다 온집안에 진동한 기름냄새 때문에
아.. 오늘 김치부침개를 부쳐 먹었지...
그리고 아직도 부침개 2장이 식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아무래도 아침이 오기 전에 홀라당 남은 2장을 다 먹어치우지 않을까 싶다.

그저.. 낙이라곤 먹어대는 낙밖에 없다고 주절댔었는데
11월 내내 그 낙마저 시큰둥, 식탐녀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태를 보이더니
깨갱 꼬리를 내리고 오는 겨울을 인정하였더니만
식도락도 다시 제자리를 잡나보다.
다행(정신건강을 위해)인지 불행(체중과 상관없이 늘어나는 뱃살을 위해)인지 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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