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해당되는 글 71건

  1. 2009.04.14 또 낙서질 27
  2. 2009.04.09 덥더라 16
  3. 2009.04.02 4월인데 8
  4. 2008.10.14 가을꽃 12
  5. 2008.07.11 뒹굴뒹굴 어슬렁 10
  6. 2008.05.07 5월 6일 14
  7. 2008.04.11 꽃구경 10
  8. 2008.04.02 어느새 11
  9. 2008.03.11 꽃을 사다 16
  10. 2007.05.15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7

또 낙서질

놀잇감 2009. 4. 14. 00:09

어젯밤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또 낙서질을 했다. 당연히 낙서질 하면서는 기분이 좋았고 행복해져 자랑용 사진까지 찍었는데 지금은 벌써 그 효과가 확 떨어져 입이 댓발이나 나왔다. 종일 왕비마마와 냉전중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화가 나면 나는 아예 말을 하기가 싫고 누구와도 상종하기 싫어 혼자 있어야 침묵 속에 서서히 화가 풀린다. 화 났을 때 말을 하면 어떤 폭언을 하게 될지 나 자신도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자꾸만 말을 시키면 더욱 화가 치민다는 사실을 왕비마마는 도대체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집안에 겨우 둘 뿐인데 말 안하는 게 제일 싫으시다나. 그러면 나는 갑자기 좀머씨가 된 것 같다. "그냥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이야!!"
암튼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을 어떻게든 되살려볼 요량으로, 시방 낙서질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별로 기분이 나아진 것 같진 않다. 마지막 방편은 이렇게 속좁음을 여기에라도 고백하고 민망한 자랑질을 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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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더라

삶꾸러미 2009. 4. 9. 16:04

한여름에도 긴팔은 물론 시커먼색 재킷까지 겹쳐 입고도 땀 한방울 안 흘리던 나의 20대는 그저 아득한 과거일 뿐이다. 삼복중에 낳은 아이를 뉘면 움푹 들어갈 만큼 푹신한 솜이불에 싸서 키웠다는 전설과 함께 유난스럽게 추위를 타는 반면 더위엔 끄덕 없던 나의 체질이 슬슬 바뀌기 시작한 건 아무래도 30대에 들어서부터인 것 같은데, 최근 들어선 아예 몸에 열이 많아졌다.
요며칠 낮기온이 꽤나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종일 집에서 뒹굴거릴 땐 몰랐다가 어제 오늘 밖에 나가보곤 깜짝놀랐다. 봄은 어디로 간 건지, 벌써 덥더라.
뙤약볕에 세워놓은 차가 후텁지근한 걸 감안하더라도, 어제 오늘 한낮엔 창문을 활짝 열고 다니다 시끄러움에 못이겨 결국 에어컨을 켜야할 정도였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올해의 첫 아이스커피를 만들어마셨다. +_+
어제 미리 얼음을 얼려두었기에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얼음커피 마시고 싶어서 몇시간 환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벌써 벚꽃과 앵두꽃은 흐드러지게 눈발처럼 휘날리고, 성급히 피었던 목련들은 벌써 시체처럼 검게 변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내겐 가장 아름다운 계절 봄이 이렇게 빨랑빨랑 가버리는 게 아쉬워서 막 조바심이 나는데, 바짓가랑이 붙든다고 머물러줄 것도 아니고 괜히 싱숭생숭 마음만 펄럭댄다.
오늘은 왕비마마가 꼬드기면 못이기는 척 뒷동산에 밤벚꽃놀이라도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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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인데

투덜일기 2009. 4. 2. 17:42

어제보니 앵두꽃이 활짝 피었더라. 벚꽃보다 앵두꽃이 먼저 피는 거였는지 몰랐다.
그 역시 망할 내 기억력 때문이겠지만.
벚꽃도 며칠 안에 피겠던데...
많이 잘라내 성긴 가지에 핀 앵두꽃을 보며 새삼 멍했다.
봄꽃 피면 왜 꼭 다 팽개치고 꽃놀이 가야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요번엔 책 잘 만들 욕심(잘 팔 욕심?)과 욕 안 먹고 싶은 마음이 옮긴이나 만든이나 똑같아 다행이기도 하고 그래서 피곤하기도 하다. 난생처음 같은 책의 두번째 역자교정을 하며 눈알 빠지게 골치가 아프다. 어제 받은 원고 오늘 퀵으로 보냈어야 하는 일정이었는데 또 여전히 붙들고 낑낑대는 중이다. 카페인 힘을 빌어 잠을 안잤더니 마음이 바쁜데도 계속 멍하다. 머리가 맑아도 시원찮은 판국에!

만우절이 생일인 그리운 친구도 있고,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 때문에라도 4월의 첫날엔 뭔가 끼적이고 싶었는데 허둥지둥하느라 친구에게 전화 한통 못하고 멍청하게 보냈다. 시차 확인을 해보니 지금 LA는 밤 12시 40분이란다. 너무 늦었다. 서머타임이 시작됐는지 그것도 모르겠고. 이메일조차 없어 편지와 전화 아니면 아예 닿지 않는 아날로그형 옛 친구는 이럴때 야속하다. 다 내 게으름 탓이지만.

어쨌거나 멍하게 무너진 비루한 일상. 그것이 4월의 시작이다.
뭐 그렇다고.
순전히 잠깨기 용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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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

놀잇감 2008. 10. 14. 17:54

이어지는 가을타령.
가을이면 해마다 무슨 의식을 거행하는 것도 아닌데 소국을 사들인다.
처음엔 가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소국을 즐기며 살리라 마음먹지만, 돌이켜보면 꽃을 사들이는 건 늘 10월쯤에 한번뿐이었던 것도 같다.
가을을 너무 쓸쓸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이유는 홍옥과 소국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작은 꽃병에 꽂아놓은 한움큼의 소국을 바라보며 새콤달콤한 홍옥의 보드라운 과육을 아삭아삭 통째로 깨물어 먹다가 앙상한 속씨 토막을 던져버리는 일은 내게 아주 큰 행복이다.

며칠 전 밤중 귀가길에 나를 기다렸다는 듯 리어카에 소담하게 꽂혀 있는 색색깔의 소국 가운데 어렵사리 노란 걸 골라 한다발 청했더니 아줌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연보라색 소국 몇 줄기를 함께 싸주셨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삼천원의 행복은 넉넉한 아줌마 인심 덕분에 두 배로 누리게 됐다.

화려하지도 않고 달콤하지도 않은, 어쩐지 누리끼리한 향기가 나는 소국을 나눠 꽂아놓고는
게으름뱅이답지 않게 매일 물을 갈아준다.
이러면 이 작은 행복을 열흘은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하면서.

컴퓨터를 뒤져 꽃사진을 찾아보니, 해마다 사들인 소국을 해마다 사진으로 담아두는 촌스러움을 한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나만의 대단한 가을의식일 뻔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촌스러운 전통을 만들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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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짜리 회복 프로젝트 풀가동중.
어제의 목표는 무작정 <뒹굴뒹굴하기>였다.
열대야 때문에 모자랐던 잠도 보충할 겸 오후 내내 뒹굴뒹굴 낮잠도 자다가 책도 보다가 TV 리모컨 놀이도 하다가 보니, 컴퓨터 앞엔 잘 앉지도 않게 되고 시끄러운 세상과는 담을 쌓는 기분이었다.
밤중에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다 맥주선전에 시선이 팍 꽂혀선, 냉장고에 몇달동안 방치되어 있던 코로나도 한 병 마셔주었다. 마실땐 시원하고 좋았는데, 음주를 너무 멀리했던 탓인지 30분 뒤부턴 두통에 시달렸지만... 지끈거리는 두통도 기꺼이 즐겨줄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이 기특하게도 너그러워졌음을 느꼈다.
휘휘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한 여름 더위를 식힐 책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니
한옥 구경만한 게 없더라.
나의 한옥열망을 오롯이 담고 있는 소중한 책 세권. <한옥에 살어리랏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옥>, <한옥이 돌아왔다>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마치 한옥 대청마루에 누워있는 양 최면을 걸며 사진을 들여다보며 차게 식힌 수박을 먹는 기분을 어디에다 비할까!
아아아.. 한옥에 살고파라. ㅠ.ㅠ

오늘의 목표는 <어슬렁거리기>.
밀린 숙제 하듯 서점도 둘러봤고, 지인과 함께 맛있는 점심도 먹었고, 오래오래 별렀던 머리도 잘랐다!
꿈의 미용실을 찾아 헤매는 나의 탐색은 아직도 진행중이기에 오늘은 불쑥 생각난 곳을 찾아갔었는데
머리 손질이며, 서비스와 퍼머약의 질은 마음에 들지만, 값이 너무 비쌌다. -_-;;
그리고 헤어디자이너와 조수가 건물 입구까지(미용실은 3층인데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내려와 배웅을 해주는 엄청 부담스러운 광경을 연출하는 바람에 마지막에 점수가 몹시 깎였다. 혹시 팁을 달라는 것인가 고민스러웠지만 퍼머값이 너무 비싸서 지갑을 다시 꺼내야할 것인가 말것인가 30초쯤 고민하다 그냥 얼굴에 철판 깔고 버텼다. ㅜ.ㅡ;;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인간에게, 가끔가다 맞닥뜨리는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곤혹스럽다. 그래서 내가 더 미용실 가기를 꺼려하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커트+영양+퍼머+트리트먼트>를 모두 해주는 여름 이벤트가 있다고 꼬드기길래, 거의 10개월간 버려둔 채 내가 손수 앞머리만 가위질했던 내 머리칼에 대한 보상과 예우의 차원에서 그러마고 동의는 했지만, 아마도 역사상 가장 비싼 머리손질비용이 되지 않겠나 싶다.
과연 거길 또 가게 될지... 그건 샴푸 후 내가 손질한 뒤의 머리 꼬라지에 달려있을 듯.

아 참,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길거리 가게를 기웃거리다,  길거리 화원에서 꽃도 한 다발 샀다.
언제부터 꽃 사기가 나에게 그리 큰 호사가 되었는지 원, 서글프기 짝이 없지만 가끔 길바닥 양동이에 꽂힌 아이들을 한다발 달래서 들고 들어오는 기분은, 열 달 만에 머리 손질해서 만끽한 기쁨과 견주어 조금도 쳐지지 않는다. 비용대비 효과로 따지면 무려 50배가 넘는데!!
그렇다면 꽃이 일주일 간다는 전제 하에, 머리 한번 할 돈이면 오늘 사온 꽃다발 정도의 소박한 꽃을 일년 내내 꽂을 수 있다는 얘기다. +_+
게을러서 머리 손질도 잘 안하러 다니고, 그렇다고 꽃도 잘 안 사다 꽂는 인간이 되어버린 나는 뭐냐. 으휴.

역시 노는 건 즐겁다.
스스로를 호되게 혹사시키고 난 뒤끝의 휴식이라 더욱 뿌듯해서, 다음주부턴 다시 슬슬 워밍업을 해야한다고 마음 먹었는데 자꾸 일주일만 더 놀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_*
이러다 또 다음 일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 거라니깐!
하여간 이번주엔 의도적으로 절대로 단 한자도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자꾸만 전화가 오고 책들이 날아오고 있다. -_-;;
작년에 게으름 좀 덜 부렸으면 푹푹 찌는 여름 한 달 완전히 땡땡땡 놀 여유도 있었을 텐데, 양치기 소녀 노릇도 유분수이니 배째라 나동그라질 수도 없는 일이고 담달에 헐떡거리지 않을 정도만 쉬엄쉬엄 일해야지.

에효.. 회복주간이 이제 겨우 이틀 남았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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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투덜일기 2008. 5. 7. 00:27
사흘만에 집밖을 나섰다가, 연휴 마지막에 추워진 날씨 때문에 방심하고 있던 사이 온 동네가 아카시아 꽃향기로 점령당한 걸 뒤늦게 깨달았다. 토요일은 여름 같더니만 다음날부터 내리 추워서 창문도 꼭꼭 걸어닫고 있는 바람에 아카시아 꽃이 피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가 완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카시아 꽃 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향기로운 꽃냄새를 실컷 맡으며 외출하긴 했지만 어쩐지 하루쯤 손해본 것 같아 속상하다.
며칠 지나면 또 말라 떨어진 꽃잎이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 텐데...

외출 장소는 간만에 홍대앞.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와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바람에 일부러 골목골목 구경을 다녔다. 운이 좋아 일찍 나온 바나나빵 장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랐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날씨가 더워져서 바나나빵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주차장길엔 노점상이 하나도 없어서 아쉬웠다. 다만 새로이 생겨나고 바뀐 가게들이 어찌나 많은지 관광객처럼 두리번두리번 기웃기웃 실컷 구경하며 실실 웃어댔다.
이젠 너무 방대하고 요란해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홍대앞 골목골목엔 뭔지 모를 묘한 매력이 아직 살아넘친다. 나중에 가보고 싶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마음껏 찜해두었더니 전혀 돈 될 거리가 아닌 짓임에도 통장에 저축해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ㅋㅋ

이요님과 해리님 블로그에서 알게된 리&키키봉에도 가봤다. 너무 잔뜩 기대를 했던 탓인지 막상 들어가선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앉고 싶은 자리를 찾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 ^^;; 내가 선호하는 구석자리는 너무 구석이라 창고 같고, 아늑해 보이는 다락 같은 방석 좌석은 신발벗기 귀찮고...
동행에 따라서 어떤 날은 퍼질러 방바닥에 앉는 자리를 선호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신발 벗는 게 귀찮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신발 벗는 게 번거로운 날이었고, 내가 앉은 쪽에서 빤히 들여다보이는 천장 낮은 방석자리에 앉은 남녀가 계속 별로 아름답지 않은 영화를 찍어대는 바람에 불편하고 민망했다. -_-;;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커피랑 카모마일 차는 맛있었고, 화장실 벽장식 타일이 예뻐서 그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동행과 입을 모았다. 다른 의자도 다 그런지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의자가 푹신하질 않아서 꼬리뼈가 조금 아팠던 것도 마음 쓰였는데,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가지런히 접혀 있던 무지개 담요를 깔고 앉아야지.

외출해서 말을 많이 하고 듣다가 돌아오면 공연히 허허로운 날이 있고 속 시원하고 뿌듯한 날이 있는데 오늘은 후자쪽이다. 침묵이든 대화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만남은 확실히 영혼의 자양분인 듯.
문화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간만에 머릿속이 채워진 것 같아서 이렇게 일기로 남겨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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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

삶꾸러미 2008. 4. 11. 20:13
날씨마저 암울한 것이 전조가 좋지 못했던 총선날 투표 마치고 결국 동네 벚꽃길에 구경갔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바람에 금세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딸이랑 꼭 꽃구경을 해야한다는 엄마 원을 풀어드려서 조금 속이 후련.

그날 비가 내려 꽃이 다 떨어지겠다 걱정했더니 빗줄기가 그리 세지 않았는지 본격적인 벚꽃 축제는 오늘부터라면서 엄마는 또 과일 싸들고 동네 아줌마들이랑 다녀왔다는데, 청사초롱에 불 들어오고 현란한 조명이 켜지는 밤에 더 볼것이 있다면서 여전히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본다. -_-

생각해보건대, 예로부터 봄이면 아줌마들이 관광버스 대절해서 버스 뒤집히도록 춤을 추어대면서
꽃구경을 다녔던 이유는 지난한 삶에서 약간의 일탈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월과 계절의 변화에 그만큼 민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역시 계절 중에선 언제나 봄이 제일 좋았고 봄꽃 피면 싱숭생숭 놀러나갈 궁리를 하기는 했으며 꽃을 유독 좋아하기는 하지만 계절따라 바뀌어 피는 꽃 하나하나에 진지한 의미를 두고 관찰하게 된 건 삼십대 이후였던 것 같다.

울 부모님이 사십대이셨을 때는 부부동반으로 근교 산에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셨는데
다른 때는 몰라도 산에 진달래가 피면 진달래 능선이 있는 북한산인가 도봉산인가, 암튼 기억도 잘 안나는 산에 우리 삼남매를 데려가 꼭 구경시켜주고 싶어 하셨다.
꽃이 얼마나 예쁜지 니들도 꼭 봐야 한다면서...
그때 중학생이었나 고등학생이었던 막내는 맥가이버 봐야하는데 등산 때문에 늦어 못본다면서 볼이 퉁퉁 부은 얼굴로 따라다니다 결국 시무룩한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동생녀석 뒤에 아련하게 피어 있는 진달래가 참 예쁘긴 하다.

사실 그때는 부모님을 <한번 봐드린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등산엘 따라나섰는데
그런 경험이 아니었다면 걷기조차 싫어하는 내가 진달래 핀 봄산의 아름다움을 어찌 알았겠나 싶다.  

엄마는 이제 등산은 상상도 못하고 그저 멋진 등산화를 신고 동네 앞뒷산을 조금 오르다 마는 것이 전부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봄꽃이 피면 꼭 그걸 나한테 못 보여줘서 안달이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 얼마나 예쁜 줄 아니. 사람들이 다 와서 보고 좋다고 난리더라. 그러니까 너도 봐야지."

자연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뼈저리게 알 수 있는 마음은 확실히 나이와 비례하는지
나는 아직도 엄마만큼 봄꽃구경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후회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엄마랑 많은 걸 함께 누려야한다는 조바심은 확실히 생겼다. 이렇게 나도 나이를 먹다가... 해마다 꽃구경을 빠뜨리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때가 오겠지 싶어서 마음이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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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삶꾸러미 2008. 4. 2. 17:29

4월이 열린 건 알았지만 어느새 목련과 개나리가 다 피었다는 걸 오늘에야 깨달았다!

집구석에 틀어박혀 지낸지 꽤 되긴 했지만 간간이 잠깐씩 나갈 일은 있었음에도
관심이 없었거나 관찰력이 부족해 꽃눈이 나온 것도 모르고 지났는데
오늘 보니 몽롱하게 지내는 내 머리통에 알밤을 쥐어박듯이
황사비를 맞고서도 우아하게 새하얀 꽃을 벌린 목련과 다닥다닥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 개나리가
집주변에 가득했다.

심지어 좁은 마당에 서 있는 앵두나무도 곧 꽃망울을 터뜨릴 기세다.
나는 아직도 털 달린 겨울옷을 못 벗어났건만...

헐레벌떡 성급히 꽃을 피웠다가 금세 후두둑 꽃잎을 떨어뜨리는 봄꽃을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 공연히 숨이 가쁘다.
올해는 꼭 조금 멀리 꽃구경 가서 상춘곡이라도 부르려고 했는데 이러다 망연히 5월을 맞을까봐
가슴이 두근구근.

해마다 4월은 잔인했노라고 징징거렸지만
부디 올 4월은 퍽 보람있었다고 회상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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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다

삶꾸러미 2008. 3. 11. 20:00
3월 1일에 꽃다발을 살 일이 있었다.
정민공주의 뮤지컬 공연을 보러가야 하던 터라, 부탁 받은 것까지 꽃다발을 2개나 사러 다녔는데
제 아무리 졸업, 입학 시즌이라고는 해도 엄청난 꽃값 때문에 거의 나는 기절할 뻔했다.

분홍 장미와 낯선 분홍 프리지아에 다른 꽃 약간과 안개꽃을 섞어놓은 꽃다발이 무려 3만원.
겨울에 흔한 노란 프리지아 약간에 안개꽃을 둘러놓은 꽃다발도 역시나 3만원이라고 했다!
내 기억에 프리지아라고 하면 한다발에 기껏해야 3천원에서 5천원쯤으로 꽃호사를 누릴 수 있는 소박한 꽃이었는데 기가 막혔다.
그나마도 꽃의 갯수가 현저히 떨어져 히마리가 없어보이는 꽃다발은 깎고 깎아서 2만원.

내가 꽃다발을 2개 사야하니 좀 깎아보려고 흥정을 붙이자
꽃집 주인은 꽃에도 A, B, C 급이 나뉜다면서 나를 물정도 모르는 무식쟁이 취급을 하며
아예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_-;;
꽃집에서도 냉장고 안에 고이 간직하고 파는 대가 굵고 길고 튼튼한 꽃들과 입구 양동이에 아무렇게나 담가놓고 팔거나, 심지어 리어카에서 물에 담그지도 않은 채 옆으로 뉘어놓고 파는 꽃들의 질과 값이 다른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꽃집 주인은 극구 최고급 A급 꽃으로 만든 것이라 장담했지만 그리 크지도 않은 꽃다발 속의 장미는
분명 대가 가늘가늘하고 송이도 작아, 아무리 잘 봐줘도 B급 정도밖엔 되지 않는 듯했다.
남대문이나 양재 꽃시장엘 다녀왔다면 같은 값에 엄청나게 탐스럽고 호화로운 꽃다발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시간도 얼마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비싼 꽃다발을 살 수밖에 없었는데
꽃집 주인 얘기로는 꽃값이 엄청나게 비싸진 이유가 비싼 기름값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비닐 하우스 난방을 해서 꽃을 재배해야 하는데 수지가 맞질 않아 많은 이들이 꽃 재배를 포기했고
그래서 품귀 현상이 벌어져 꽃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
게다가 꽃다발을 만든 플로리스트의 인건비가 있는데 꽃값만 따져서 꽃다발을 사려는 나의 얄팍한 생각을 나무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꽃다발의 과잉 장식도 싫고 주렁주렁 달린 리본이며 너덜거리는 포장도 싫은 사람인 걸 어쩌랴.
게다가 플로리스트의 감각과 재치가 돋보이는 색다른 꽃다발이었으면 또 모를까(요새 여러 종류의 꽃들을 교묘하게 섞어 화려하고 상큼한 느낌을 주는 꽃의 배열이 유행이며, 그렇게 어울리기 힘들 것 같은 꽃들을 선택해 적절히 어울리게 하는 꽃꽂이가 전적으로 플로리스트의 역량에 달렸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저 평범한 수준의 꽃다발이었기에(물론 졸업시즌에 아줌마 아저씨들이 너무도 추악하게 꽃을 '싸서' 파는 꽃다발의 수준은 아니었다) 내 불만은 쉽사리 잠재우기 어려웠다.

째뜬 그렇게 꽃값 비싸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귀 아프게 듣고 꽃다발을 샀던 터라
봄도 왔으니 집에 프리지아나 튤립 한 다발 꽃아야겠다는 생각은 쏙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런데!
어제 혜화동에 갈 일이 있어 나가보니, 전철역 안 간이 꽃집에서 아 글쎄 프리지아를 한 다발에 무려 <천원>에 팔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한 다발이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가느다란 줄기 10개를 묶은 것이긴 했지만
천원짜리 두 묶음이면 열흘도 되기 전에 내가 샀던 프리지아 꽃다발에 버금갈 정도의 양이었다!
열흘도 되기 전에 꽃값이 열배 이상 차이가 나다니 이 무슨 조화일까... -_-;
입학시즌이 끝나버려서 갑자기 꽃값이 내렸다고 해도
그간 비닐하우스에서 기름 때가며 재배한 원가가 있다면 그토록 엄청난 값의 폭락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경제 개념이나 시장 원리에 대해선 일자무식이긴 해도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결론은 3월 1일에 내가 그냥 바가지를 썼다고 간단히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날 일산에서 꽃다발을 샀던 막내네도 3만원짜리 꽃다발 값에 기막혀 했기 때문에 나만 멍청히 바가지를 썼다는 추론에는 무리가 있었다.

사실 꽃값이 제일 싼 오뉴월에도 유독 꽃이 싱싱하고 예쁜 꽃집에 가보면
유리로 된 냉장 진열장 안에 우아하게 꽂혀 한 송이에 3천원짜리 장미가 있는가 하면,
길거리 리어카에서 한 다발에 3천원 하는 장미도 있으니 꽃값의 실체 따위를 파악하는 것은 내게
꿈도 못 꿀 일이다.
다만 도매가와 소매가의 차이가 있고, 유통과정의 정성에 따라 싱싱한 꽃과 금세 시들 꽃의 차이가 있고
원가가 비싼 꽃과 원가가 싼 꽃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어쨌든 꽃이 내게 주는 기쁨은 같다. ^^;;
소박한 값으로 꽃을 장만할 수 있었다면 더욱 뿌듯하긴 하지만, 꽃을 꽂은 순간 그게 얼마짜리였는지
포장이 얼마나 거대하고 촌스러웠는지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곧 잊혀진다.
3천원의 행복인지, 5천원의 행복인지 따지는 꽃자랑은 사실 블로그나 미니홈피 같은데 기록하기 위함일
뿐이고, 그저 간만에 꽃을 꽂아놓고 감상하는 소박한 사치를 누린다는 것만으로 족한 듯하다.

아줌마가 주섬주섬 셀로판지에 담아주는대로 흔쾌히 사들고 온 노란 프리지아는 확실히
내가 악착같이 깎으려고 했던 열흘 전의 꽃다발보다 세배 쯤 풍성하고 훨씬 싱싱하다.
비록 C급 꽃이라 해도 한 일주일 내 눈과 코는 행복한 호사를 누릴 터이니 그저 흐뭇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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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토박이지만 내가 어렸을 땐 아카시아꽃을 한송이씩 따서 먹고 놀았다. -_-;;
하얀 꽃잎을 하나씩 입에 집어넣으면 달콤한 꿀맛이 입안으로 퍼졌는데
성급한 남자애들은 포도송이처럼 달린 꽃을 몽땅 입에 넣고 주르륵 줄기를 잡아당기기도 했더랬다.
그 추억 때문인지 나는 아카시아꽃이 참 좋아서
5월만 되면 이제나 저제나 아카시아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이제 공해 때문에 더는 꽃을 따먹을 순 없지만
온 동네를 휘감는 달콤한 꽃향기는 옛날과 다르지 않다.
어젯밤 처음으로 깨달은 아카시아꽃 향기 때문에 우리 동네 공기가 새삼 맑아진 것도 같다. ^^;
며칠 또 밤마다 온 창문 다 열어놓고 꽃잔치 기분 내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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