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

놀잇감 2008. 10. 14. 17:54

이어지는 가을타령.
가을이면 해마다 무슨 의식을 거행하는 것도 아닌데 소국을 사들인다.
처음엔 가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소국을 즐기며 살리라 마음먹지만, 돌이켜보면 꽃을 사들이는 건 늘 10월쯤에 한번뿐이었던 것도 같다.
가을을 너무 쓸쓸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이유는 홍옥과 소국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작은 꽃병에 꽂아놓은 한움큼의 소국을 바라보며 새콤달콤한 홍옥의 보드라운 과육을 아삭아삭 통째로 깨물어 먹다가 앙상한 속씨 토막을 던져버리는 일은 내게 아주 큰 행복이다.

며칠 전 밤중 귀가길에 나를 기다렸다는 듯 리어카에 소담하게 꽂혀 있는 색색깔의 소국 가운데 어렵사리 노란 걸 골라 한다발 청했더니 아줌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연보라색 소국 몇 줄기를 함께 싸주셨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삼천원의 행복은 넉넉한 아줌마 인심 덕분에 두 배로 누리게 됐다.

화려하지도 않고 달콤하지도 않은, 어쩐지 누리끼리한 향기가 나는 소국을 나눠 꽂아놓고는
게으름뱅이답지 않게 매일 물을 갈아준다.
이러면 이 작은 행복을 열흘은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하면서.

컴퓨터를 뒤져 꽃사진을 찾아보니, 해마다 사들인 소국을 해마다 사진으로 담아두는 촌스러움을 한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나만의 대단한 가을의식일 뻔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촌스러운 전통을 만들어볼까 싶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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