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해당되는 글 71건

  1. 2011.04.07 봄비 10
  2. 2011.04.04 제비꽃 6
  3. 2010.05.19 이것저것 19
  4. 2010.04.26 사흘간의 일본 여행 둘쨋날 23
  5. 2010.04.15 벚꽃 5
  6. 2010.04.10 짐을 싼다 9
  7. 2010.03.31 비오는 수요일 14
  8. 2010.03.09 머피의 법칙 3
  9. 2009.05.21 아카시아가 다 졌다 18
  10. 2009.05.04 도서관 18

봄비

투덜일기 2011. 4. 7. 12:01

방사능 성분이 섞였네 마네, 외출을 삼가야 하네 어쩌구 언론에선 호들갑을 떨지만 어쨌든 나는 올해도 봄비가 반갑다. 새벽까지 기다려도 내리지 않더니만 어느새 똑똑 옥상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깼다. 자동차가 가끔씩 젖은 골목길을 지나며 내는 소리는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서 지지직 전이 익어가는 소리 같다. 비가 오면 부침개가 떠오르는 이유가 빗소리와 전부치는 소리의 음역대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하는 이야기를 TV에서 본 것 같다. 그 뒤론 비와 부침개와 술한잔을 연결해 생각하는 조건반사가 더욱 심해졌다.

어쨌거나 해마다 하는 나의 봄비 타령은 곧 꽃 타령이다. 어제 나가보니 개나리 목련은 죄다 피었고 올해도 가지치기를 건너뛴 앵두나무에도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어 우리집 베란다까지 손을 뻗은 이웃집 벚나무에도 꽃눈이 다닥다닥 이제 곧 빵 터트릴 태세를 갖췄다. 지금 두 나무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나뭇가지를 분홍색으로 덧칠해야 할 만큼. 봄꽃은 꼭 그렇게 무심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듯이 갑자기 피어나는 느낌이다. 분명 조금씩 조금씩 꽃눈을 키워왔을 텐데도 눈 뜬 장님이었던 내 탓이긴 하지만, 어쩌면 뚯밖의 횡재처럼 반가운 봄꽃을 보려고 일부러 눈감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며칠만 더 눈 질끈 감고 있으면 튀밥 같고 솜사탕 같은 앵두꽃, 벚꽃이 요것봐라 하면서 짠 피어 있을 거다. 오늘 내린 봄비에 그날이 좀 더 당겨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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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투덜일기 2011. 4. 4. 07:19


평년보다 훨씬 따뜻했던 한식 성묘길 나들이. 공원묘지 여기저기 제비꽃이 피어있었다. 인공적인 색채의 요란한 조화가 유일하게 어울리는 공원묘지에서 땅바닥에 잔뜩 수그려핀 보라색 생화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원래 잡초처럼 무더기로 많이 피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가엔 딱 한송이가 피었다. 무더기로 많았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꺾어서 조카들에게 하나씩 반지를 만들어주었겠지만, 그냥 카메라만 들이댔다. 누렇게 마른 잔디 사이에서 잡초들과 함께 제일 먼저 홀로 피어난 제비꽃. 드디어 완연한 봄이 왔다고 인정하련다. 

십수년 전만 해도 통일동산과 공원묘지뿐, 허허벌판 아무도 없던 곳에 프로방스, 헤이리 마을이 생겨나고 영어마을이 들어서고 이젠 무슨무슨 아울렛까지, 그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 참 정신 시끄럽겠다 싶게 근방까지 자동차행렬이 엄청나 한숨이 다 나왔다. 대식구라 이젠 인근 식당에서 밥먹기도 어려워 성묘 음복이 진짜로 도시락 싸가는 피크닉이 되어버렸으니 우리에겐 다행인 건가, 불행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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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투덜일기 2010. 5. 19. 21:21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아카시아꽃이 다 피었더라. 실로 간만에 엄마 모시고 밤산책 나갔다가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꽃보다 향기를 먼저 느끼고 깜짝 놀랐다. 낮에 외출할 때도 그 아래를 지나쳤는데 왜 몰랐을까. 어쨌든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라도 올해의 아카시아는 예년보다 늦게 피었을 거라고 짐작 중. 작년엔 5월 9일에 피었다고 적어놨던데, 확실히 많이 늦긴 했나 보다.

요즘 어딜 가봐도 길을 파헤쳐놓아 짜증이 복받치던데, 지난번 자전거 타러 나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홍제천변 일부가 폭탄 맞은 꼴로 뒤집혀 있었다. 지방선거용 생색인지, 인계 전에 예산 써버리기 작전인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언제나 공사중이고 누덕누덕 기워대는 서울 꼬락서니는 좀 그만 보고 싶다. 해외도주하다 붙잡힌 군수만큼은 아니지만 이 동네 구청장도 엄청난 뇌물수수로 구속된지 오래라 부구청장 체제로 운영중이란다. 다음 구청장은 부디 쓸데 없는 삽질에 힘쓰지 않는 사람이 뽑히길...

아래층 똥개의 짖기 횡포는 이제 아주 극에 달했고 나의 분노와 앙심도 최대치에 도달하는 중이다. 다른 이웃의 불만도 당연히 고조된 듯 초저녁엔 우리 마당에 면해 있는 바로 옆집 아저씨와 아래층 개주인 사이에 언성이 조금 높아지기까지 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는 내가 섣불리 설득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개 문제를 지적하는 옆집 아저씨에게 변명이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글쎄, 개가 짖으라고 있는 거지 그럼 안짖는 개를 뭐하러 키우냐고 항변하더라. -_-;; 조금 전 산책 마치고 돌아온 모녀에게 미친듯이 짖어대는 놈을 노려보다, 문득 나는 살의를 느끼고 실질적인 방법까지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상한 음식을 먹여서 병나게 만들까, 아니면 어디서든 독약을 구해 몰래 밥에 타먹일까, 아니면 줄을 끊어 멀리 쫓아보낼까... 나란 인간이 이렇게 악독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하지만 나쁜 건 분명 아래층 똥개가 아니라 이런 공간에서 시끄러운 똥개를 키우는 아래층 개주인들이다.

이래저래 이십여년 간 살아온 이 동네에 정이 떨어져서 어디든 살기 좋은 새 동네로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이왕이면 제주도 같은 데로. ㅠ.ㅠ 친구 동생은 제주도가 좋아서 대학원을 제주대학에서 다니고 있다는데, 바보같이 난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집 가까운 학교 생각만 했지, 제주도로 공부하러 갈 생각은 꿈조차 꾼 적 없는 내가 한탄스러웠다. 여러가지 이유로 서울을 떠나선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참 오래 했는데, 이젠 여기를 뜰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더 많은 부추김과 용기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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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때를 연상시키듯 비도 내리고 있겠다, 여행후기나 마저 올려야겠다.

비바람 속에 첫날을 보내느라 제풀에 지친 모녀는 전날 밤 일본 말도 모르면서 TV를 틀어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일기예보를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일본열도 아래쪽은 죄다 우산 그림이었다. 6시부터 울린 모닝콜에 눈을 떠 커튼을 젖혀보니 당연히 주룩주룩 내리는 비. 아침 먹기 전 온천욕 한판의 욕심은 내리는 비와 함께 꼬리를 감추었다. 비오는 날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에서 뒹굴거리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말이다! 고소한 부침개 냄새마저 풍겨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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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투덜일기 2010. 4. 15. 16:12
내가 날을 잘못잡은 탓이 가장 크고, 일본엔 어딜 가나 벚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을 줄 알았던 내 착각도 일조를 했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 사쿠라 구경은 무위로 돌아갔다. 일본 벚꽃명소 100선에 든다는 성에도 가봤지만 벚나무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비에 절반은 꽃이 떨어져 있었으니 내심 얼마나 낙담이 되던지.

그에 반해 일본으로 떠나던 날, 막 따뜻해지기 시작했던 날씨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던 집앞 벚나무(엄밀히 우리 마당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옆집 벚나무)는 돌아와 보니 완전 만개해 있었다. 열심히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 헤매 다니다가 돌아오니 파랑새가 집에 있었음을 깨달은 치르치르와 미치르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벚꽃놀이는 집에서 하는 게 최고라는 얘긴가? ㅎㅎ 꽃샘추위라고는 해도 창밖을 내다보니 벌들이 열심히 꽃가지를 흔들며 바삐 날아다니고 있다. 봄날씨는 원래 변덕스러운 거라지만 4월 중순에 이렇게 반칙 쓰듯 겨울놀이하지 말고, 제대로 봄이 오면 참 좋겠다.

집앞 벚꽃 - 나가기 귀찮아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을 줌으로 당겼더니 이렇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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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싼다

투덜일기 2010. 4. 10. 02:03

사흘간의 탈출. 최초의 모녀 여행. 최초의 일본 여행. 온천료칸 체험. 짐을 싼다.
왕비마마 칠순기념으로 흐드러진 벚꽃구경을 목표로 했으되 마감 눈치보느라 어물쩡거리며 자꾸 예약날짜 바꾸는 사이 좋은 날짜 다 놓치고, 3박4일 로망대신 2박3일로 줄어든 일정으로, 과연 벚꽃이 남아있을지 어쩔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계절에 암튼 간다.

전통료칸에서 무조건 편하게 쉬면서 맛난 거 먹고, 쏘다니는 관광은 최소한인 조용한 상품을 찾다보니 이름하여 <명탕순례 미각기행> ㅋㅋ. 지리에 워낙 약해 도쿄 오사카 큐슈 홋카이도 정도만 알고 있는 나에겐 난생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 돗토리현 요나고. 일왕도 묵어갔다는 료칸이라는데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며 덜컥 정해놓고는, 필요이상으로 들떠 흥분한 왕비마마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며 드디어 짐을 싸고 있다. 나 같은 역마살 인생한테야 여행이란 늘 감당할 만큼의 흥분과 설렘을 주는 놀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특히 노인들에겐 말 설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렘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모험이란다. 여행 뒤끝엔 늘 마음병이 도져 돌아온 울 엄마가 바로 그 케이스. 당신이 가고싶다던 일본 온천 여행이니 과연 이번엔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인가.

돌아보니 여행 직전까지 밀린 일에 휘둘리는 건 늘 반복되는 습관이다. 제주도 갔을 때는 아예 일감을 싸가지고 갔었고,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도 캘리포니아로 날아가는 동안 병든 닭처럼 계속 꾸벅꾸벅 졸며 모자란 잠을 보충했었지 아마. 이번에도 가서 쉬면 된다면서, 공항가기 몇시간 전 새벽까지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왜 이렇게 살게 됐는지 원. 

아무튼 이번엔 일감은커녕 책 한권도 안 가져갈 거고 순전히 늘어져서 먹고 쉬다 올 테다. 헌데 현지 날씨를 확인해보니 계속 비가 온다네 젠장. 바람에 휘날리며 지는 벚꽃비를 기대했더니, 참 운도 좋다. 나 혼자라면야 비오는 일본 시골 도시도 고즈넉한게 좋기만 하겠지만, 부디 꽃구경 좋아하는 우리 왕비마마를 위해서 단 하루라도 축축한 비대신 꽃비가 내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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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수요일

투덜일기 2010. 3. 31. 13:10

요즘 거의 라디오를 안 들어서 알 수 없지만, 아직도 비오는 수요일엔 다섯손가락이 부르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이란 노래가 자주 나오는지 궁금하다. 내가 대학생 시절에 이미 해체된 그룹이니 내 또래가 아니고선 <다섯손가락>이란 이름조차 낯설듯한데, 동방신기가 부른 <풍선>인가 하는 노래도 원래는 다섯손가락이 부른 노래였다. 유난히 수요일에만 비가 자주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었던 그 노래 덕분에 비오는 수요일엔 종종 빨간 장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도 했다. 그 세뇌작용이 얼마나 강렬한지 오늘처럼 비오는 수요일엔 아직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 노래가 생각나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빨간 장미 한송이를 사볼까 하는 생각이 뒤따른다. 천편일률적으로 한송이씩 셀로판지에 둘둘 말아 리본 묶어 놓은 거 말고, 이왕이면 튼튼한 대를 길게 잘라 아무 포장 없이 그냥 들고 올 수 있게 하는 꽃집에서.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내일이면 4월이다. 예전엔 4월이 열리면 이런 저런 만우절 에피소드와 함께 어김없이 April come she will~로 시작되는 사이먼&가펑클의 <4월> 노래를 이방송 저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혹시 요즘도 그럴까? 혹시나 틀어줄지 내일은 온종일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보고픈 마음도 든다. 음악이 듣고 싶으면 찾아서 들으면 될 것을 라디오를 먼저 떠올리는 것도 내가 구식이고 옛날 사람이라는 증거겠지.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한 이유는 단단한 죽은 땅을 뚫고 솟아나는 봄의 생명력 때문이라는데도, 다른 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4월은 봄꽃의 달이라 꽃의 향연 속에서 팍팍한 일상에 찌들어야 하는 상황을 잔인하다고 여겨 툴툴댔던 것 같고, 올해도 역시나 나의 4월은 잔인한 스케줄을 품고 있다. 학교에 다닐 땐 하필 제일 날씨 좋고 봄꽃 아름다울 때 중간고사 기간이라 잔인하다기보다는 억울한 4월이라고 생각했다고 쳐도, 다들 굳이 다른 달보다 4월을 더 힘겨워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게 느끼는 걸 보면 분명 주입식 교육의 잔재다. T. S. 엘리엇. 황무지.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무운시. 그러니까 4월은 무조건 잔인한 달. -_-;

어쨌거나 촉촉한 비가 내리는 수요일이라 몰랑몰랑해진 감성은 음악을 멀리하고 살아도 아무렇지 않은 인간에게까지 감상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비와 함께 연상되는 음악, 커피, 추억 같은 것들도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세대만 품고 있는 주입식 기억의 흔적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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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투덜일기 2010. 3. 9. 20:38
머피의 법칙은 순전히 심리적인 인상이라던데, 나에겐 아닌 것 같다. 몇달 별러 미루다 세차하면 꼭 다음날 비가 오는 건 날씨를 미리 살피지 않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거나 기상청의 오보라고 쳐도 내가 유례없이 뭘 미리 준비하면 곧이어 비웃을 일이 생긴다.

게으름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이라 늘 계절이 한참 지난 뒤에야 옷가지를 정리하는 편이고 심지어 겨울코트를 5월이 돼서야 세탁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번엔 웬일인지 부지런을 떨어 겨울옷과 부츠를 죄다 치웠더니 날씨 좀 봐라. 몇년 전 3월 1일에도 눈이 온 적 있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첫주가 무사히 지나는 걸 보고 정리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아니었던 거다.

그나마 겨우내 염화칼슘에 쩔은 차는 빨리 세차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계속 세차할만 생각만 들면 날씨가 나빠지길래 아직까지 알거지 몰골로 다니고 있긴 하다. 세차에 관해서는 머피의 법칙 피하려다 다 녹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려나 코트는 하나쯤 다시 꺼내 후둘러 입다가 세탁해도 되겠지만 일일이 종이 구겨넣어 상자에 담아둔 부츠는 다시 꺼내 신을까말까 고민된다. 나흘째 폭설이 내리고 있다는 강원도 주민에 비하면야 요 정도는 고민도 아니겠지만 어쨌든 신기한 머피의 법칙. 난 올해 왜 유난스레 빨리 겨울옷을 치워버렸을까나. 어쩌면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그냥 내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도.

아까 낮에 반짝 해가 났을 때는 옆집 담장 너머로 늘어진 벚나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눈이 새하얗게 벌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와서 곧 흐드러지게 봄꽃 피겠구나 싶어 마음이 다 푸근했었는데, 매서운 꽃샘추위를 준비하고 있던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다면 코웃음을 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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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마지막 봄꽃이라 여겨지는 아카시아 향기 이야기를 매년 빠뜨리지 않고 블로그에 적어 그 시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확인하겠다는 작심을 작년에 했는데, 올해는 아카시아 향기가 한창일 때 기회를 놓치고 말았고 그러다 결국엔 누렇게 말라 떨어진 꽃잎이 골목마다 흩어져 있는 지금에야 적어둘 생각을 했다.
서울지역의 공식적인 아카시아 개화 시기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올해 아카시아 향기를 처음 느낀 날은 알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른 해도 아카시아가 막 피기 시작할 땐 대개 모르다가 동네를 지나며 갑자기 확 끼쳐오는 향긋한 꽃냄새에 아, 아카시아가 피었구나 느꼈으니 올해라고 별다를 건 없다. 다만 안타까운 건 아카시아가 피자마자 계속 비가 내리는 바람에 낮이든 밤이든 창문을 활짝 열면 언제나 집안으로 가득 스며들던 달큰한 향기를 올해는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올봄 처음 아카시아가 핀 걸 깨달은 건 5월 9일, 자전거 모임 때문에 월드컵공원과 홍제천을 달리던 날이었는데, 갈 때는 마음이 바빠 향기를 느껴볼 겨를도 없이 열심히 페달을 밟았던 모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아카시아꽃의 존재를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았었다. 해마다 5월 십몇일쯤 피었던 것 같은데 5월 초에 미친듯이 여름 같은 날이 계속되면서 올핸 조금 꽃이 빨리 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날씨가 변덕을 부려 서늘해졌다가 다시 더워졌다가 간간이 비가 오다가 다시 더워져 이제 아카시아 꽃은 누런 종이꽃처럼 매달렸거나 바닥에서 먼지처럼 풀풀 굴러다니고 있다. 시커멓게 썩어가는 시체처럼 떨어지는 목련만큼 흉측하진 않다고, 지면서도 예쁜 꽃이 어디 흔하냐고 괜히 혼자 아카시아꽃을 두둔하다가도 봄이 벌써 다 가버렸다는 생각에 영 개운치가 않다.
내일은 또 비가 내린다니 이번 아카시아꽃은 참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련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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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투덜일기 2009. 5. 4. 16:52

집주변에 장서량이 훌륭하고 시설도 좋은 도서관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몹시 부럽다.
그나마도 근방에 도서관이 아예 없는 이들도 있겠지만, 원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니까.
원래 빌리고 빌려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욱이 빌린 책은 괜스레 남는 게 더 없는 느낌이라 읽기 전부터 허기가 든다. 이미 뇌조직이 느슨해진 것인지 뭐든 읽고 나면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아스라이 잊혀지는 마당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책등에 적힌 제목이라도 가끔 보면 아하 저런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지,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만 빌려 읽고 난 책은 흔적도 없으니 도무지 내것이라 챙겨 놓을 방도가 없다. 꼼꼼히 다이어리나 독서노트, 독서후기 따위를 쓰는 기록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아직도 예전에 사놓고 안읽은 책들엔 먼지만 쌓이는데 새로운 책을 사고싶은 마음이 들어 또 몇권 사들이고도 얇은 귀를 팔랑이며 누가 인상깊게 읽었다고 하는 책은 또 욕심이 나니 하는 수 없이 이젠 도서관에서 좀 더 많이 책을 빌려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아서 읽고 싶은 책 말고 일 때문에 필요한 자료 책들은 예전부터 빌려보았기 때문에 대출카드도 만들어둔 지 오래다. 그래도 여전히 빌려 읽는 책들은 새책이어야 읽을 마음이 생긴다. 대체 어떤 인간들이 만졌을지 모를 흔적들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게 남아 있는 책에 내 손길을 보태기가 영 꺼려지기 때문이다. 공부 때문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엔 짜증스럽게 줄까지 쳐 있어도 그다지 더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좀 이상한 강박증이다. 그땐 저작권 문제에 아무 거리낌 없이 복사나 제본을 해서 봤기 때문일까? 그냥 읽어보기만 한 책도 더러 있었는데... 아무튼 헌책방에서 구한 오래된 책은 이제 내것이란 소유의 심리 때문인지 누렇게 변했어도 꺼림칙한 생각이 들지 않으면서 도서관 책은 좀체 적응하기가 어렵다. 뭐든 새것만 추구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텐데, 난 아직도 멀었다는 얘기다.
반성은 반성이고 아무래도 찜찜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던 차에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아직 도서관에 들어오지 않은 책을 신청하는 것! 그러면 책이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빌려가라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책에 바코드를 붙이고 도장을 찍은 도서관 직원들 말고는 아직 그 책을 주물럭거린 사람들이 드물다는 얘기니까 거의 새책이다. 문자 메시지가 오면 이틀 안에 찾으러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이기는 것이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꽤나 큰 도전(?)인데 그래도 도서관 책이면서 내가 처음 책장들을 펼친다는 착각에 훨씬 마음이 놓인다. 어쩌면 빌린 책으로도 구멍 뚫린 두뇌에 좀 더 깊은 인상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겼다.

오늘은 그렇게 빌렸던 책을 반납해야 하는 날이라고 또 문자메시지가 오는 바람에 도서관엘 갔는데 2주 전 비오는 날엔 초록 잎도 제대로 눈에 안들어 왔던 등나무에 연보랏빛 꽃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그 등나무꽃 아래엔 흡연자들을 위한 벤치 한두 개밖에 없었지만, 옛날 학교의 등나무 아래 벤치가 떠오르며 그리움으로 가슴이 잔뜩 부풀었다. 바야흐로 5월, 축제의 계절이겠구나 싶어서.
시설은 노후했고 책도 별로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네 산기슭에 자리잡은 터라 위치는 좋은 편이니 다음엔 아카시아 꽃 향기 그윽할 무렵 또 도서관엘 가봐야겠다. 아직 도서관에 들여놓지 않은 주옥같은 책이 뭐가 있을까 열심히 찾아 신청도 해놓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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