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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28 대림미술관 Color Your Life 4
  2. 2016.03.25 윤동주 문학관 4
  3. 2016.03.13 모르는 일 9
  4. 2016.03.07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2
  5. 2016.03.01 캐롤 5
  6. 2016.02.29 어제 눈 풍경 6
  7. 2016.02.17 창경궁을 보듬다 2
  8. 2016.02.15 옛그림을 보는 법 1
  9. 2016.02.12 어떤 시어머니 10
  10. 2016.01.29 전화 여론조사 6

후배가 대림미술관 전시 초대권이 있다고 해서,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가자 가자 날을 잡았다. 봄맞이도 할 겸, 전시를 보고나선 서촌을 거닐다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 둘레길도 걷자고 했다. 문제는 여럿이 시간을 조율한 날짜가 '일요일'이었다는 것.

유명한 대규모 기획전시도 아니고 뭐 어떻겠어 막연히 짐작했으나 그건 우리의 오산. ㅠ.ㅠ 일요일 오후 대림미술관은 초대권교환부터 입장까지 구비구비 줄을 서서 3, 40분 기다렸다 들어가야했다. 전시장 내부도 당연히 사람들로 바글바글... 앞사람과 간격 유지하며 관람해달라고 진행요원들이 간간이 막 채근하는 분위기였다. 아이고...

째뜬 공짜란 말에 무슨 전시인줄도 모르고 무작정 보러간 거 치고는 몹시 뿌듯한 관람이었다. 5천원 내고(회원할인 받으면 3천원) 보라고 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 같았다.

올해의 '컬러'가 '로즈쿼츠'(Rose Quartz)와 '세레니티'(Serenity)라는 요상한 이름의 분홍색과 하늘색이란 걸 혹시들 아시는지? 해마다 패션계와 디자인계에서 유행할(?) 색깔을 미리 지정하는 건지 어쩐지 암튼 매년 연초가 되면 그해의 색깔이 발표되고, 여러 브랜드와 디자인 업체들은 또 색깔로 열심히 상품을 만들어 선을 보인다. 과연 얼마나 팔리는지는 내 알바가 아니고... ^^ 

위 사진 맨 위에 적힌 '팬톤'이라는 회사가 바로 해마다 색을 정하는 곳인데, 색과 관련된 디자인과 패션계에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색상을 관장(?? 맞는 말인가 모르겠다;;)한다. 미묘한 톤과 채도와 명도가 다른 색깔에 대해서 서로 설명하고 전달할 때 기준이 되는 셈.

소싯적 나의 첫 회사가 미국 의류회사였던 관계로 사무실에 팬톤 컬러북이 있었고, 뉴욕에서도 디자이너가 샘플을 의뢰한다든지 나염, 염색 색깔을 지시할 때 '페덱스 상자'에 고이고이 담아 '오리지널 컬러'라며 보내오던 우표만한 컬러칩이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또 색깔 이름은 얼마나 영롱하고 기발한지 ㅋㅋ 심심할 땐 컬러북 넘겨보며 괜히 시간을 때우기도 했었다.

암튼... 그 추억의 팬톤 컬러북 선망은 아직도 종종 수십만원, 백수십만원에 이르는 팬톤 컬러북 시리즈를 '쓸데없이'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일으키는 바.... 가끔 팬톤 코리아 홈페이지에 가서 괜히 이것저것 펼쳐보는 신세다 내가.

아 근데!

대림 미술관에 갔더니만 뙇~~!! 마침 팬톤 컬러와 연계된 색채와 디자인 전시가 아닌가!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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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관

놀잇감 2016. 3. 25. 13:59

영화 <동주>를 보고나서 윤동주 문학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함께 써야지... 그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영화를 보러가게 될 것 같지 않다. ㅜ.ㅜ 나중에 기회되면 집에서 찾아보든지...

부암동엘 여러번 돌아다녔지만 윤동주 문학관은 매번 못갔었다. 하필 월요일이었다거나, 다른 약속이 있어서 문학관 해설사로 일하시는 '아는' 선생님의 설명을 나만 못듣고 먼저 간 일도 있었다. 듣자하니 문학관은 '코딱지만' 해도 건축과 전시 형태가 인상적이라고들 했다. 선유도처럼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그대로 활용했다면서... 

해서 아직은 쌀쌀했지만 햇볕 화창했던 3월 15일에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 아는 해설사 선생님 근무일이 맞춰서. 자하문 고개, 창의문(자하문이 바로 이 창의문의 별칭이라는 걸 아시는지! ㅋ) 바로 건너편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 주변엔 '시인의 언덕'이라고 해서 윤동주 시비도 세워놓고, 겸재 정선의 그림 속 인왕산 그림도 세워놓고, 성곽길 따라서 청운동 공원과 산책로도 제법 쓸만하게 만들어놓았다. 좋은 계절에 한번씩 둘러보기에 좋음.


얼른 문학관 문 열고 들어갔을 땐 보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다 돌아보고 나와서 난간에 매달려 햇볕을 쪼이고 있으려니 그제야 벽면에 뚫린 자잘한 구멍이 그냥 장식이 아니고 윤동주 시인의 사진을 작품으로 만든 것임을 깨달았다. 가까이선 볼 수 없고, 멀리 떨어져야만 보이는 것은 숲만이 아니었군.

문학관 전시실 내부는 워낙 좁기도 하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이 한장도 없다. 시인의 육필원고와 각종기록사진들이 올망졸망하게 전시되어 있고, 전시장 한 가운데는 시인의 고향인 길림성 명동촌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나무 우물 몸체가 떡하니 놓여있다.

8, 90년대 윤동주의 묘비 찾기작업이 벌어질 무렵에도 명동촌에 옛날 마을 흔적이 하나도 안남았다던데 대체 어디서 가져온 우물일까 수상쩍었지만 ^^; 왜 그 낡은 우물을 거기 전시했는지 의도는 알겠다. <자화상>에도 등장하는 '우물'은 윤동주 문학관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암튼 글씨체마저도 '아티스트'라고 느껴진 원고와 사진에 대한 설명을 차례차례 듣고 나면 제2전시실로 나가게 된다. 이른 바 '열린 우물'

​최대한 벽 끝에 붙어서 폰카에 담아본 광경은 이렇다. 윤동주 문학관 건출을 의뢰받은 건축가가 주변을 허물다 바로 옆에 그대로 남아있던 물탱크를 그대로 살리듯 개조해서 위를 뻥 뚫어 '열린 우물' 느낌으로 만들어놓았단다. 누렇게 낀 물때도 그대로 남아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왼쪽편 사다리 출입구 쪽은 또 다른 작은 우물의 입구 같기도 하고... 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또 한 편의 작품 같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ㅋㅋ

​또 하나의 물탱크는 제3전시실 '닫힌 우물'로 만들어져, 그곳에서 윤동주의 생애에 관한 10여분짜리 동영상을 보여준다. 으스스한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마치 감옥같은 느낌인데, 천장에 작게 뚫린 구멍이 없었더라면 난 아마 폐소공포증에 뛰쳐나가고 싶었을 것도 같다. 예전에는 그 구멍에 자동문을 달아서 동영상을 상영할 때는 완전히 닫기도 했다는데 고장이 났다나 뭐라나... 일부러 열어뒀다나 암튼.... 독방 감옥 맨 꼭대기 벽에 작게 뚫린 창문 같기도 하고, 시인이 수감되었던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는 어땠을까 떠오르기도 하고... 

[아래 사진] 캄캄한 공간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이런 느낌이다. 점점이 찍힌 건 사다리 자국.

캄캄한 우물에 갇혀 좁은 구멍으로 올려다본 느낌이 위 사진이라면, 다시 열린 우물 공간으로 나와 올려다본 새파란 하늘과 그 옆으로 드리워진 나뭇가지가 참...  아름다웠다. 


광복이후 꾸준히 출간되었던 윤동주의 시집 표지들도 한쪽 벽에 매달려 있는데, 재미있었던 건 윤동주의 다양한사인들만 만 따로 오려 앙증맞게 진열해놓은 것이었다. 영화 <동주>의 포스터 제목 글씨도 알고보니 윤동주의 친필체를 그대로 살린 거였다. 영화를 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윤동주가 일제강점기 연희전문학교를 다닐 때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도 우리말로 시를 썼던 건 사실이더라도 송몽규처럼 '항일애국투사'는 아니지 않나? 학창시절 국어교사들이 죄다 '저항시'로 가르쳐서 그렇게 외우기는 했었지만, 이제 새삼 읽어보면 그저 시대와 현실을 고민한 문학청년의 깊은 고뇌 정도로 읽힌다. 그래서 더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고...

예고편과 몇컷의 스틸사진을 본 게 다이긴 하지만 째뜬 영화에서 강하늘이 윤동주 역할을 한 건 느낌이 참 잘 맞는 것 같다. 유약하면서도 강단있고 고민도 많은 얼굴? <귀향>과 더불어 무조건 봐주어야하는 영화라는 분위기 덕분에 의외의 선전을 했다니 나 한 사람쯤은 안 봐주어도 되지 않을까 핑계를 삼고 있다. 이기적이게도 마음 불편한 영화는 여간해선 보기가 어렵다. ㅠ.ㅠ 


아참, 윤동주 문학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이고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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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일

투덜일기 2016. 3. 13. 17:20


며칠 전에 만난 친구 S(라고 쓰고 '지인'이라 읽는다)에게 최근들어 가장 충격적인 조언을 들었다. 대학 동창인 S는 오래전에도 내게 눈두덩 지방질 제거+쌍꺼풀 수술을 '꼭' 하라고 (그것도 지 남편네 병원에서) 자꾸만 닥달을 해서 짜증나게 만든 인물인데 ㅋㅋ 잊을만 하면 한번씩 아주 심상한 얼굴로 이것저것 조언을 하며 나를 놀래킨다. 


물론 <제발 쌍꺼풀 수술 좀 해라> 드립은 내가 들은 척도 안하니깐 (내 미모가 어때서!?로 맞섰더니 기가 막혔는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나보다 ㅠ.ㅠ 물론 S는 30년전에도 지금도 자타가 인정하는 아주 빼어난 미인이다)포기한 거 같더니 몇년 전부터는 또 <라섹수술>을 하라며 들들 볶는다. 나는 1) 일단 무서워서 못한다. 2) 갖고 있는 안경들 아까워서 못한다. 게다가 안경이 내 얼굴에 햇살이다. 3) 돈 아깝다. 이 세 가지 이유로 반박중인데 S는 1) 자기가 해봐서 아는데 하나도 안 아프고 안 무섭다. 요즘 기계와 기술 좋아졌다. 2) 안경을 아예 쓰지 말라는 게 아니고, 돗수 없는 알로 바꿔 끼면 된다. 3) 수술비 싸졌다. 밤에 자다가 눈떠도 다 보이면 얼마나 편한지 아니... 라며 나를 설득하려 애쓴다. 어휴...


요번에 친구들이랑 다 같이 만난 자리에서도 또 노안수술 겸 라섹 하라고 잔소리를 해주시길래 그냥 씩 웃고 말았다. 속으로만 싫어! 그러면서. 물론 나를 진심 염려하고 생각해서 (몇년 더 있다 맘 바뀌어서 수술하려고 들면 이미 늦는다나;;) 하는 조언이라는 건 알겠는데 사람 취향도 있는 거지, 제멋에 살다 말게 냅두지 왜 저렇게 열심인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최근에 라섹/라식 수술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하다는 친구가 한 명 더 있어서 일순간 나는 완전 촌스러운 겁쟁이로 공격을 당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ㅠ.ㅠ 그래도 다들 내 똥고집을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다시 잘 생각해봐라 정도로 마무리가 지어졌는데...


그 다음 화제는 하필 폐경(완경?)과 갱년기였다. 아직 멀쩡하다는 친구도 있고 몇년 전부터 여러 증상을 느끼는 친구도 있고 벌써 아예 페경이 된 친구도 있고 아직은 폐경 전이지만 가족력 때문에 걱정을 하는 이도 있어서 동병상련을 한참 토로했는데, 이미 폐경이 됐으나 아무런 어려움 없이 갱년기를 넘긴 것 같아 행복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S가 다시 내게 화살을 돌렸다.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니깐 나더러 폐경 되기 전에 난자를 냉동시켜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 


헉. 처음엔 말문이 막혔다. 무슨 근거로 내가 다 늙어서라도 꼭 아이를 낳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헛웃음도 나왔고, S의 상상 속 내 아이가 엄청 불쌍했다. S는 남편 필요없는 건 알겠는데 너 자식은 하나 있어야한다, 50살에 늦둥이 낳는 사람들 흔하다, 허수경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인 것 같다... 앞일은 모르는 거다, 너 나중에 마음 바뀌면 후회스러워서 어쩔래... 아주 진지한 얼굴로 설득에 나섰다. 또 한 번 어휴...


가만 있으면 가마니인줄 알고 앞으로도 계속 밟을 것 같아서, 아이는 예쁘지만 나 혼자도 벅찬데 양육의 책임과 의무를 떠안을 자신도 없고 늙은 엄마 밑에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그건 못할 짓이고, 난자 냉동하려면 난임부부 시험관 아기 시술 때처럼 얼마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하는지 제대로 아느냐고 따져서 말문을 막아버렸다. 제발 나좀 냅둬줄래!! 가 내가 하고픈 말이었지만 차마 그렇게는 말 못하고...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거라고 하는 말 나도 잘 안다. 등산만 해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에 다니게 될 줄은 나를 포함해 아무도 몰랐다. 고양이 싫어하던 사람이 고양이 집사가 되어 몇마리씩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개 무서워하던 내가 조카네 개 한테는 손바닥에 고기랑 사과도 놓아먹이게 되었으니 앞으로 또 내가 어떤 변덕을 부릴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근본적인 성향과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그리 쉽게 변하나? 흠... 후회를 하든 말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 정도의 어마어마한 결정과 고민은 이미 젊을 때 다 하고 살아왔다는 걸 S는 잘 모르는 건지, 인정을 안하는 건지. 하여간에 너무 놀라워서 기록해둘 일이라고 여겨졌다. ^^ 째뜬 어디 한 번 그저 두고보는 수밖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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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겨우) 올 2번째 완독 책이다. -_-;;

스콧 스토셀/홍한별 옮김/반비/2015


​<애틀랜틱>지의 에디터이자 여러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 스콧 스토셀이 30년에 걸친 자신의 불안증 병력을 눈물겹도록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불안'을 속속들이 해부한 책이다. 작가 본인은 '불안에 대한 문화와 지식의 역사'를 집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던데 그 말이 딱 맞다. 

인류가 탄생한 후부터 불안이라는 감정이 없었을 때는 없었을 테고, 그렇다면 인간의 여러 감정 중에 불안이 언제부터 주목을 받고 병적인 기질로 받아들였는지,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기원전 사상가들의 저서, 성경을 거쳐 최근 심리학자, 정신과의사들의 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었는지 총망라 되어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책 한권을 끝내는 데 엄청 오래 걸린 것도 다 그럴 만하다. ㅋㅋ 저자 본인의 에피소드와 가족력 부분은 아무래도 재미나게 읽히다가 온갖 이론과 약물과 학계 이야기가 나오면 마구 머리가 복잡해져서리...

그래도 대체로 재미나고 유익한 독서였다. 아마도 50년 넘게 우울증을 친구처럼 달고 계신 환자를 보필하고 있는 관계로, 왕비마마가 과거에 드셨던 약과 현재 드시고 있는 온갖 약이름이 다 언급되고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뭐 물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유전적으로 내가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높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서도) 계단 공포증이라든지 설치류 공포증,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이런 것들이 다 불안증 환자의 자질이라는 사실도 깊이 실감했다. ㅎㅎㅎ 내가 어딜 가든 길을 잃을 것에 대비해 운전하면서도 미리 표지판을 살펴두고, 산에 갈 때 꼭 나침반 챙겨가고 ^^; 매사에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경우의 수를 미리 꼽아보는 등등... 아이고 참... 그러면서도 이 정도 살면 이 책의 지은이에 비하면 훌륭한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ㅋ


지은이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턴가 구토공포증 때문에 학교 가기가 무서웠고, 비행기도 무서워하고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도 무섭고... 중요한 순간이 닥칠 때마다 그 스트레스로 무너져내렸단다. 결혼식 때도 당연히. 암튼 그래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5, 6세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온갖 약물과 술과 상담으로 불안에 맞서 버텨나가는 중이다. ㅠ.ㅠ 안타깝게도 불안증은 지은이의 어머니와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저자의 어린 딸에게도 이어진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연구한 결과 어릴 때 아주 잠깐 스트레스에 노출되어도 뇌에서 세로토닌과 도파민 시스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병적인 불안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영장류 동물을 지켜보니 그 영향이 손자녀대에까지 미친단다. 으악, 그럼 나의 조카들도 혹시?? ㅠ.ㅠ

아주 오래전 첫조카 ㅈㅁ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가족을 그리고 그 밑에 특징을 써내는 수업을 했는지 나중에 공책을 가져왔는데 딴 사람은 다 까먹었어도 울 엄니 아부지에 대한 묘사는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 돈을 잘 준다 
할머니: 걱정이 많다
ㅠㅠ

인간의 22번 염색체에 있는 COMT 유전자에 데이비드 골드먼이라는 사람이 "걱정꾼-싸움꾼 유전자"라는 이름을 붙였다는데, 그러니깐 지구상 인구 가운데 25퍼센트(울 엄마랑 나 포함!)가 걱정꾼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지은이가 불안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혹시 그 놀라운 방법이라도 읽게 되기를 몹시 바라며 책장을 넘겼지만, 당연히 그런 건 없다. 이 책을 쓰느라고 또 여러 종류의 불안에 휩싸여 전전긍긍했던 이야기가 더 나올 뿐... 책 제목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서 이미 해답은 없다는 걸 직감했어야 했나? ㅎㅎ 원제는 My Age of Anxiety. 

낙담하는 독자(와 지은이 스스로)를 위한 마지막 위로는 많은 경우 "불안이 예술적, 창의적 재능과 같이 나타난다"(414쪽)는 주장이다. 찰스 다윈, 프로이트, 에밀리 디킨슨, 헨리 제임스, T.S. 엘리엇, 카프카, 프루스트... 우디 앨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휴 그랜트...  병적으로 불안에 시달렸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들의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타인들의 감정과 사회적인 분위기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살피기 때문에 직업적인 성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고... 

어쩌면  "불안은 타인지향적 인간의 숙명이자 천형이다."라고 적은 옮긴이의 말 한 줄에 모든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
옮긴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어휴... 교재나 학술서 말고, 인문교양서 치고 주석이 이토록 빽빽하고 양 많은 책은 보다보다 처음이어서 동종업계 사람으로서 번역하느라 얼마나 빡세게 고생을 했을지 웃음이 나다가 안쓰럽다가 괜히 화도 막 나고 그랬다. (어떻게 이런 책을 인세로!!!!) 




암튼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나의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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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놀잇감 2016. 3. 1. 17:06

내리기 전에 빨랑 보러가야지, 아카데미라도 타고나면 괜한 대세거부증이 돋을까봐 게으름뱅이치고는 꽤나 서둘러서 영화를 보러갔다. (근데 결과적으로 오스카는 하나도 받질 못했다! 으이..) 일부러 사전 정보를 하나도 안 찾아보고 갔기 때문에, 배경이 현대가 아니란 것도 몰랐네그려. (스포일러 있음)

 


한줄 평을 쓴다면...
먹먹하게 아름답고 우아한 영화였다. 

벨로가 후기에 적기를.. 영화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처음부터 보고싶은 영화라고 했던가. 그 마음이 뭔지 나도 알겠다. 눈빛 하나, 클로즈업된 표정 하나까지 장면장면 뭔가 자세히 보고싶은데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그럴 여력이 없었다. 

클래식한 올드모빌이 돌아다니는 1950년대 뉴욕 거리, 담배연기마저도 향기로울 것 같은 우아함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캐롤, 자존감도 낮고 우유부단의 극치로만 보였으나 캐롤과 만나면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확실히 깨닫는 듯한 풋풋한 테레즈.

캐롤(케이트 블란쳇)이 입고 나오는 코트들(모피 코트와 빨간색 숄칼라 롱코트)이야 워낙 인상적이었지만, 그 밖엔 어떤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테레즈(루니 마라)의 체크무늬 빵모자가 처음엔 촌스러웠는데 나중엔 예뻐보였다는 정도?

후기를 좀 잘 써보고 싶다는 욕심에 오히려 시간만 질질 끌다가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말았다. 이젠 어느 장면에서 울컥했었는지도 잘 떠오르질 않으니... ㅠ.ㅠ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포스터 문구로도 적혀 있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맨 처음 테레즈가 백화점에서 캐롤을 봤을 때, 주변 배경이 흐릿하게 지워지면서 캐롤의 모습만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보면서, 아 맞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찍이 군중 속에서도 한눈에 확 파고들듯 찾아내는 순간이 이런 거였지, 그러면서 덩달아 따라서 설렜던 것 같다. 아름다운 사람에게 매혹된다는 게 어떤 건지, 테레즈한테 마구 감정이입이 된 시선으로 케이트 블란쳇(캐롤)을 바라봤던건 내가 좋아하는 배우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케이트 블란쳇이 캐롤이란 인물을 그만큼 잘 살려낸 게 아닐까. 목소리와 말투도 섹시하기 그지없었는데 나중에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 케이트 블란쳇한테 사투리(?) 가르친 사람들도 나오더군. 뉴요커나 동부 특유의 말투를 배웠던 걸까. 언어학자에게 물어보고 싶었음.  

찌질한 남자들이 등장해서 짜증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래도 추하게 망가져가기 직전에 마무리짓는 이야기여서 좋았고 그 성숙한 결정의 주체가 캐롤이어서 더 좋았다. 덩치 큰 캐롤 남편이 사랑을 빌미로 매달리며 취해서 큰소리 칠 때 혹시 폭력이라도 쓰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오히려 캐롤한테 뿌리침 당해서 혼자 넘어지는 거 보고 통쾌했고 안심했다. 아... 참 이건 한국 막장 드라마가 아니지.

대상에 대한 사랑이 담겨야 멋진 사진이 나온다고들 하는데, 테레즈가 찍은 캐롤의 사진들이 정말 멋져서 나까지 흐뭇했고, 비록 뉴욕타임스에 들어가서도 회의하는 남자들 옆에 메모지 들고 서 있는 직책이라고 하더라도 테레즈가 자기 꿈을 계속 좇는 것도 좋았다. 군더더기 없이 딱 둘의 재회 장면으로 끝낸 구성도 마음에 들었고.

워낙 섬세한 영화라 자막번역을 누가 했는지도 궁금했는데(아마도 <캐롤> 책 번역자가 역자후기에서 '남사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써서 물의를 빚었단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겠지;;) 내가 싫어하는 이모, 홍모 씨와 달리 괜히 튀지 않고 분위기를 잘 잡아낸 것 같아 이름을 눈여겨봤더니 황석희라고. 영화를 하도 안 보러 다녀서 나로선 처음 보는 이름인 거 같은데, 으음 출판 번역계에서 날리는 김석희 선생이 떠오르면서 '석희'라는 이름이 번역을 잘하는 운명인가 택도 없는 일반화 가설에 잠시 빠졌었다. ^^; 그러고보니 '손석희' 앵커도 있네. 남자이름으로 석희는 글과 말로 먹고 사는 이름일까? 표본 겨우 셋 가지고 참 놔;; 

나중에 원작소설을 읽고 나면 어떤 차이가 있을지 비교하는 재미를 또 누려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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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눈 풍경

투덜일기 2016. 2. 29. 13:22

3월이 코앞인데 어젠 어쩜 그리도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지. 창밖을 내다보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으로 실컷 보는 눈일 거란 생각에 충동적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고 다 저녁때 집을 나섰다.
눈덮인 숲길을 자박자박 걷고 싶어!

산길은 생각보다 미끄러워서 한시간 남짓 걷다가 돌아서야했지만 뿌듯한 산책이었다. 오늘도 듬성듬성 눈발이 날리고는 있지만 맑고 쨍한 추위에, 어제 눈속을 헤집고 돌아다닌 기억이 거의 꿈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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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을 보듬다

놀잇감 2016. 2. 17. 17:43

​또 고궁박물관 전시다. ^^; 게다가 2월 14일까지로 이미 끝나버려서 후기 올리기도 좀 민망하지만.... 감상하던 당시의 놀라움과 기쁨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지 말아야지 했다. 


<궁 프로젝트 - 창덕궁을 보듬다>는 문화재청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는 기획전시인 모양이다. 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라는 대학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우왕... +_+ 

'전통미술공예학과'의 4학년 학생들 작품이라는데 완전 깜놀했다. 어쩜 그리도 솜씨가 뛰어나고 작품들이 정교한지... 과거 도화서 화원들의 환생이구나 싶었다. 상상력과 아이디어도 뛰어나고, 완성도도 높고...

벌써 세번째라서 내년엔 '경복궁'을 주제로 삼는다는데 기대가 크다. 

창경궁을 주제로 삼은 이번 전시엔, 일제강점기에 '창경원'으로 놀이터가 되어버린 창경궁의 비운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작품부터, 동궐도 창경궁 부분에 사람들을 그려넣어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 타버린 철종 어진을 모사 복원해 놓은 작품까지 볼거리가 쏠쏠했다.

문화재 복원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고등학생 딸을 둔 지인과 함께 봤는데, 이 학교 들어가기가 엄청 힘들단다. 왜 안 그렇겠나! 미술적 재능에 역사적인 지식과 관심까지 두루두루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이 문화재 복원이 아닐까나. 째뜬 작품을 둘러보며 내가 막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문화재 복원사업 한답시고 기성세대들은 종종 목재 팔아먹고 뇌물 받으며 턱턱 비리에 연루되지 않으면 생색내기용 졸속 복원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지만, 몹시 열악한 지원상황에도 파릇파릇한 젊은 세대가 꿈을 키우며 버텨주고 있구나 싶은 것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친절하게 작품제목까지 다 찍어왔어야 했는데... ㅠ.ㅠ (사진은 클릭하면 적당히^^ 커짐)

맨 왼쪽 작품은 창경궁 뜰에서 비명을 달리한 사도세자의 뒤주를, 가운데는 박쥐문양을 비롯한 벽사의 상징을 담은 단청을, 맨 오른쪽은 놀이동산으로 변한 창경궁의 모습을 유리정원과 동물 모습까지 겹겹의 동심원 안에 빼곡하게 담아냈다. 아이디어도 좋지...  


왼쪽은 내가 아래 어진 전시에서도 언급했던 철종의 군복 어진을 실물크기로 모사해 타버렸던 왼쪽을 완전 복원한 그림이다. 딱 내가 보고싶었던 완성작! 전시장 디지털 화면엔 학생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들을 찍은 사진들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서양화처럼 이젤을 세워두고 그리는 게 아니라 정말 옛날 방식대로 바닥에 큰 화폭을 깔아두고 그 위에서 엎드리다시피 쭈그려 작품활동을 하는 어린 예술가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오른쪽 그림은 창경궁 유리식물원. 곳곳에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있는데 숨은 그림찾기 하듯 한 사람씩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 초록색이 너무 예쁘다! 


마지막으로 찍어온 그림은... <동궐도>의 부분부분에 사람들을 그려넣어 기록화처럼 만든 작품 시리즈. 윗줄 맨 오른쪽 그림을 보면 무슨 잔치 준비중에 궁녀 한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혼이 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사연인지 정녕 궁금...  아랫줄 맨 오른쪽엔 정조가 혜경궁홍씨 회갑연을 화성에서 마치고 돌아와 궁궐 문앞에서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게 했던 장면을 표현한 거라는 듯. 이런 작품을 그리면서 예술가는 특히나 뿌듯하고 막 행복해했을 것 같다. 부러워라... (물론 섬세한 선그리기 반복작업 때문에 괴롭고 좌절하는 순간들도 많았겠지만!) 

​앞으로도 이어질 궁 프로젝트도 열렬히 응원하겠고, 이 학생들에게 부디 빛나는 미래가 펼쳐지길 빌겠다. 그림쟁이의 어려움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쭉~ 이어질 숙명인듯 해서 특히 짠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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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실시 이후, 와우북 페스티벌이나 여러 도서전엘 가도 직거래로 책값을 할인받아 살 수 없다는 건 괜한 '장서욕' 충만한 나 같은 사람들에겐 좀 억울한 일이다. 도서정가제를 실시해야 거대공룡 같은 온오프라인 서점의 횡포에서 벗어나 출판계도 살아나고 작은 출판사들도 기를 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지... 듣기로는 책이 죄다 안 팔려서 아주 더 죽을 맛이라는 듯. 


하여간에 도서전 할인찬스를 쓸 수 없게 된 마당에 난망해하다가 건너건너 알게 된 '지인 할인 찬스'로 작년에 돌베개 출판사의 책들을 대거 장만했었다. <한국의 초상화>, <책의 탄생> 같은 비싼 책도 큰맘먹고 질렀고, 늘 탐내기만 하던 <열하일기> 시리즈도 입수했다. 그러고는 또 차일피일 쌓아두다가 이것저것 돌아가며 건드리기만... ㅋㅋ 그 가운데서 그래도 제일 만만하게 완독해 끝낸 첫 책이 <옛그림을 보는 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우리 옛그림 구경은 특히나 뭘 좀 알아야 왜 저렇게 그렸을까 이해가 가능한데,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풍월이 아무리 많아도 한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나가는 듯, 반복학습을 해도해도 별 소용이 없다.


이 책도 열심히 읽고 베껴적어두긴 했으나 과연... 그림을 척 보자마자 내 나름으로 잘 해석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통 모르겠다. 무슨놈의 상징과 의미가 그리도 많은지!! ㅋㅋ


산수화 속 나무 하나 풀포기 하나에도 화가의 주관적인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고, 화면에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은 고사를 바탕으로 한다니... 1:1 상징 대입법도 간신히 알아먹은 나로선 앞으로도 도무지 옛그림 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저 옛 선비들의 풍류와 박식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


재미있었던 건 옛날 그림들은 주로 족자 형태인데, 멋진 그림을 보란듯이 노상 걸어두고 자랑하는 건 군자의 미덕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엔 둘둘 말아두었다가 보고 싶을 때만 펴서 감상하고 간혹 그럴 때 벗들을 청해서 감상회 겸 시를 짓고 술자리를 즐겼단다. 일종의 집단 풍류. 


그림 선물을 할 때도 받는 사람의 상황에 맞게 그림의 주제를 정하고 행운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단다. 닭 그림은 벼슬 때문에 출세를 상징한다지만, 잉어, 쏘가리, 메기, 게, 원숭이, 백로... 다 입신출세의 의미가 있더라. ^^


악귀를 쫓는 벽사의 의미가 담긴 상징과 그림들도 엄청 많은데, 우리집 쌀뒤주에도 매달려 있는 물고기 모양 자물쇠(책표지 왼쪽 맨 아래 그림)는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도둑을 막아 재물을 지켜주는 능력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실용적인 면에서는 주제별로 찾아보고 참고하기 좋은 책이긴 한데, 읽기에 즐거웠느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어서 (어쩐지 언젠가 있을 시험 앞두고 참고서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ㅎㅎ) 막상 별점주기에선 평가가 박했더라.


iReadItNow 앱에 표시된 별점은 ★★◐☆☆ (두개 반 ㅋㅋ 반개짜리 별을 못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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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어머니

투덜일기 2016. 2. 12. 01:28

가끔 궁금하다.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빤하고 악독한 시어머니들 에피소드는 작가가 어디선가 듣거나 경험한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걸까, 순전히 상상의 결과일까, 아니면 작가들 끼리끼리 눈감아주는 양심없는 베끼기(비슷한 내용이 하도 많아서;;)일까? 혹시나 아침드라마부터 시작해서 노상 그 나물에 그밥인 일일극과 주말극을 보는 시어머니들이 막장 드라마를 보고 배워서 맘에 안드는 며느리에게 드라마처럼 못된 시집살이를 따라하는 건 아닐까? 주시청자가 노년층인 드라마에서 며느리 잡는 무서운 시어머니가 반드시 나오는 이유는 거의 평생 숨죽이고 살아온 그들의 스트레스를 대리 해소해주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리던데..


아무튼 현실의 인생보다 더 드라마틱한 건 없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도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는 상황도 어디선가는 벌어지고 있을 것도 같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굶기고 심지어 때려죽이는 세상이니 뭐...


하여간에 내 주변에서 가장 놀라운 부류로 꼽을 수 있는 시어머니가 한분 계신데, 이분은 세월이 갈수록 기력이 쇠하는 게 아니라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핍박받는 며느리 위로를 한답시고 노친네 욕을 한바가지 하다가도 그 노친네의 패악이 문득 두려워진다.  


벌써 10년 넘게 끊임없이 구박받는 며느리 입장을 전해듣고 위로하고 함께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괜스레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이젠 폭발할 지경이다. 내 막판 조언은 거의 매번 "차라리 옛날처럼 인연 끊고 맘 편히 살아!"인데... ㅠ.ㅠ 다들 알다시피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기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라는 존재가 중간에 끼어 있으니, 사실 내 조언은 조언이 아니라 그냥 막말이다. 그런데도 그냥 답답해서 내지르는 것.


J는 초등학교 동창생과 결혼했다. J는 초혼인데 반해 남자는 이혼남이었다. 아이는 없었지만 그런데도 오히려 남자네 집에서 결혼을 결사반대했다. 특히 시어머니가 문제였다. J랑 남자의 궁합을 봤는데, J의 팔자가 사나워 남편과 집안을 말아먹을 재수 없는 여자라고 했다나. +_+ 생긴 것도 불여시 같이 못나게 생긴 게 멀쩡한 자기 아들 홀렸다며 J에게 온갖 욕과 험담을 퍼붓고 헤어짐을 강요했다. 


결국 남자는 부모와 의절하고 집을 나와 J와 혼인신고 후 결혼식은 생략했다. 알콩달콩 둘이 행복하게 잘 살다가 3년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낳으면 며느리로 인정해줄 것이라 기대를 한 건지 J네 부부는 본가에 손자가 생겼음을 알렸다. 아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알려주고 싶다면서. 그러자 손자 귀한 건 알아가지고... 시어머니는 손자와 아들만 보겠다고 했었다. 며느리 노릇은 꿈도 꾸지 말라고.


그래도 착해빠진 J는 성심성의껏 도리를 다했고(주말마다 시댁에 남편과 아들을 들여보내고, 지는 집앞 카페에서 죽치고 온종일 기다렸단다, 차라리 따라가지를 말지!) 결국엔 돌잔치 무렵 며느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폭언과 간섭과 무시는 변함없었다. 내 손자의 어미이니 할 수 없이 그냥 얼굴만 봐준다는 정도였다. 명절에 J가 해간 음식들은 맛이 이상하다며 몽땅 다 쏟아버렸다고 했다. 상을 차리면, 보고 배운 게 없어서 티가 난다고 타박하는 건 부지기수. (몰상식하게 끔찍한 말만 쏟아내는 사람은 바로 그 시어머니인데!!)


암튼 매일매일 전화를 걸어서 손자 아침, 점심, 저녁 메뉴와 반찬 점검하고 영양가 없는 거 먹였다고 잔소리하고... 자기 아들 건강 안챙긴다고 혼내고, 머리를 묶고 가면 볼품없게 묶었다고 타박, 길게 풀고 가면 귀신바가지 같다고 타박... 암튼 그냥 이유없는 꼬투리 잡기가 취미인 양반이었다.


나 같으면 벌써 이혼을 하든, 시댁과 의절하든 시부모를 안보고 살것 같은데 놀랍게도 J는 온갖 핍박을 다 받아내느라 남편과도 수시로 싸우고 피가 마르면서도 계속 감내하자는 주의였다. 아 대체 왜???


암튼 두어달에 한번씩은 J가 전화로 통곡하며 내게 하소연할만한 푸닥거리를 한판씩 해주시는 J의 시어머니가 나도 정말 밉다. 그런데 작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칫하면 그 막가파 시어머니와 살림을 합쳐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왔다는 거다. J에게 너 피말라 죽는다고,  절대 안된다고 거부하라고 조언을 해주었으나, 대세는 이미 기운 듯...


그런데 여기서 더 기막힌 사실이 하나 있다. 시어머니가 같이 사는 조건으로 J에게 성형수술을 강요했다는 것! 어디 가서 며느리라고 소개하기에 볼품없고 창피한 외모라면서, 자기가 수술비용을 댈 터이니 눈과 코를 고치라고 했다나 ㅠ.ㅠ 와.. 기가 막혀서 정말.


나같으면 잘 됐다, 성형수술도 싫고 살림 합치기도 싫으니 계속 따로 살면 되겠네.. 그럴 것 같은데... 어휴.. J는 어차피 모시고 살아야할 상황이라면, 내 돈 들이는 거 아니니까 다 늙어서라도 예뻐지는 게 뭐 나쁘냐.. 수술 당장 할란다. 뭐 그러고 있다. 으허!! 


노상 매를 맞으면서도 남편을 못 떠나고 같이 살아가는 여자들의 심정과 혹시나 시어머니의 구박에 휘둘리고만 있는 J의 심리가 유사한 건 아닌가 염려스럽고, 마음에 안드는 며느리의 얼굴을 바꿔서라도 꼭 같이 살겠다는 J의 시어머니가 나는 너무 무섭다. 그런데도 나의 극단적인 의견과 조언은 도무지 들어먹히질 않으니 힘이 빠진다. 내 역할은 그저 J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상황을 하소연하며 J도 내게 미안하단다. 하지만 달리 어디 속시원히 털어놓을 데도 없다고. (친정엄마한텐 자존심도 상하고 노친네 속상하실까봐 곧이곧대로 말도 못하는 인물) 아 답답해 답답해...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 며느리 외모 싫어서 성형수술 시키는 시어머니가 혹시 등장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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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여론조사

투덜일기 2016. 1. 29. 17:09

일주일에 한두번 울릴까말까 한 내 방 유선전화. 주로 텔레마케팅 아니면 보이스피싱, 그도 아니면 여론조사 전화인 걸 알기에 잘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화는 왜 안 없애는지... 인터넷이랑 결합돼서 해지는 안되는 걸거라고 확인도 없이 생각만 할 뿐이다. 아주 가끔 미국 친구가 전화를 걸기도 하니깐... 그게 핑계라면 핑계.


암튼 오늘은 오후에 걸려온 전화를 그냥 받았다. 벨소리가 시끄러워서... 총선을 앞두고, 종종 엄마네 집 전화로도 여론조사 협조요청 전화가 오는데 엄마도 나도 매번 그냥 끊곤 했다. 시간 없어요, 관심 없어요...  (일일이 질문에 대답해줄 만큼 정치에 흥미도 없고 답도 없어요..가 정답 아닐까)


암튼 그런데 오늘은 수화기 저쪽의 여론조사 요원 목소리가 너무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도 직업일텐데 참 힘들겠다. 텔레마케터가 감정노동 스트레스 1위라지..) 매몰차게 끊질 못했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화 여론조사에 따박따박 대답해주는 사람들은 노년층밖에 없어서 여론조사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둥, 죄다 보수의견밖에 안나온다는둥 하는 이야기도 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연령대별로 표본집단 수를 정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사 대상 비율을 맞추지 않을까?)

그래, 그렇다면 삐딱한 40대 여론을 대변해주마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 (만으론 아직 40대라규~ ㅋ)


첫번째 질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 당연히 '매우 못하고 있다'고 대답해줬다. 이 동네 국회의원 후보의 정당별 선호도도 묻고, 지지하는 정당도 묻고, 이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가장 시급한 부분을 뭐라고 생각하느냐고도 묻고... 예전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이면 새누리당 야당이면 야당 설문조사를 의뢰한 주체가 너무도 티나게 편향적인 질문이 많던데 이번엔 어느 쪽에서 의뢰를 한 건지 질문만으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불편했던 건 마지막으로 캐묻는 개인신상!! 최종학력, 직업, 부모님 출신지 묻는 것부터 슬슬 짜증이 났는데, 이 사회에서 본인이 속한 계층을 고르라질 않나, 한달 수입 액수 범위를 고르라질 않나... 애당초 대체 내가 왜 이런 여론조사에 응하고 있는지 버럭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 건 왜 캐묻는거냐고 따지자, 불편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_-;;


작년엔가 인구표본조사에 걸린 후배가 며칠 동안 메모를 붙여놓고 찾아오는 조사원과 씨름을 한 끝에 결국 대면조사에 응하다가 너무 시시콜콜 개인신상을 파헤치길래 중간에 중단하고 내쫓아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랬더니 국가시책사업 협조에 불응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나. 그래서 더 열받아 어디 한 번 법적으로 해보라고 싸웠다더니만... 


그래, 댁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그런 여론조사 항목을 만든 이들이 잘못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최대한 협조적으로 전화통화를 마쳤다. 개인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따위 전혀 믿지 않는다고 생각은 하지만, 박그네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무조건 지지할 30%의 보수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사실이라고 본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무사히 넘어가는 나라이니 말이다. 그러니깐 여론조사를 안 믿는 것도 아니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나의 통화가 유의미했던 거라고 믿고 싶지만 또 딱히 그래보이지도 않는다. (아 결론이 뭐냐. ㅜ.ㅜ) 


으음 그러니깐 총선을 앞두고 술렁이는 정치판이 영 마음에 안들고, 이 나라는 지옥이고 돌파구는 안보이고 한심스럽고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난한 소시민과 텔레마케터가 불쌍하다는 것 정도? 본인이 생각할 때 경제적으로 이 사회에서 상/중상/중/중하/하 가운데 고르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돌고 있다. 게으른 번역가는 수입으로 본다면 당연히 '하'다 '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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