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해당되는 글 136건

  1. 2018.01.14 건초염 4
  2. 2018.01.02 2017년 Best - 한해 마무리 4
  3. 2017.07.23 석달 늦은 여행후기 ^^ 4월 23일 8
  4. 2017.05.25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2
  5. 2017.04.10 2017 벚꽃일기 4
  6. 2017.03.27 글쎄... 8
  7. 2017.03.15 열쇠 10
  8. 2017.03.07 너의 이름은 & 라라랜드 5
  9. 2017.02.04 성수동 대림창고 4
  10. 2017.01.18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 @ 가나 아트센터 7

건초염

투덜일기 2018. 1. 14. 14:11

처음 아팠던 게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설날이었던가 어느해 명절에 힘든 노동을 다 견디고 난 다음날, 스트레스 풀러 약속을 잡았는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일이 갑자기 고통스러웠다. 발을 디딜 때 아픈 게 아니고, 다리를 접을 때 무릎 부분에 통증이 느껴졌던 거다. 그날 하루 종일 절뚝이며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명절에 너무 오래 서 있어서 그랬나보다 막연히 생각했었다. 푹 자면 낫겠지.

당시에도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통증이 반복되기를 여러 달. 문득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겁을 내다 결국 정형외과에 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관절도 연골도 이상은 없다면서, 의사는 다리 근육강화 운동을 좀 열심히 하라고 했다. 소염진통제를 한 이틀 받아왔던가. 언제 그랬었나 싶게 무릎은 곧 멀쩡해졌다. 스트레스성 상상통이었나 싶을 정도로. ㅎㅎ

그러고는 또 몇년. 그 사이 나는 놀랍게도 '등산인'이 되었다. ^^; 2016, 17년엔 하루 20km가까이 걷는 것도 예사인 서울 둘레길도 걸어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니 등산만 했을 때는 무릎 통증이 재발되지 않았었는데, 아스팔트 걷는 길도 많은 둘레길이 문제였던가? ㅠ.ㅠ 암튼 작년부턴 등산을 3시간 이상 하면 꼭 내려올 때 무릎이 아팠다. 왼쪽 다리가 아플 때도 있고 오른쪽 무릎이 아플 때도 있어 통증이 왔다리갔다리 했었는데, 12월부턴 계속 오른쪽 무릎만 아팠다. 그리 많이 걷지도 않는 날이었는데, 산에 올랐다가 간식 먹으며 좀 쉬다보면 일어날 때부터 다리가 뻣뻣하고 무릎을 접을 때마다 아팠다. 젠장..

1월 첫 등산인 북한산 백운대를 갔던 날도 내려오면서 퍽 고생을 했다. 많이 아파서 오른쪽 무릎을 세게 짚을 수가 없으니 왼쪽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갔고, 결국 다음날엔 양쪽 다리가 모두 아팠다. 왼쪽은 근육통, 오른쪽은 원인 모를 통증. 하루 푹 자고 나면 증상이 사라지곤 했는데, 이젠 며칠 지나야 멀쩡해졌다.

올해 결심 중 하나는 등산을 다시 열심히 다니는 거여서, 엊그제 다시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사실은 오른쪽 손목도 아픈지 꽤 된 상황이었다. 영화 번역 작업을 하면 장면 시간 맞춰 일일이 자막을 넣어 자막 파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마우스를 엄청 많이 써야 하고 그런 날은 당연히 손목에 무리가 갔었다. 멀쩡한 것 같다가도 병뚜껑을 열어야 할 때 손에 힘이 안 들어간다든지, 손목을 아래로 꺾으면 아픈 정도. 직업병이려니 하면서도 째뜬 이참에 다 물어보았고, 다시 엑스레이를 찍은 뒤 건초염 진단을 받았다.

관절과 연골엔 여전히 이상이 없고 힘줄에 염증이 생긴 거란다. 무릎과 손목이 아파서 왔다는 내 말에, 의사는 통증 부위에 무리가 가는 일을 했느냐는 질문보다도 먼저 평소 몇시에 자느냐고 물었다. ㅠ.ㅠ 어... 좀 늦게 자는데요. 주로 밤에 일을 해야 해서...  불면증도 좀 있고... 대번에 그게 원인이란다. ㅎㅎㅎ 잠을 제때 안 자면 호르몬에 변화가 생기고 그래서 염증이 쉬 발생한다고. 에고. 

바닥에 양반다리하고 앉지 말것, 관절을 심하게 꺽는 자세는 피할 것, 가능하면 일찍 잘 것, 내리막길은 피할 것.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잘 낫지 않는 병이라며 소염진통제 처방과 물리치료를 병행하자는데, 내가 다시 물었다. 실은 내일 등산을 가거든요. 가면 안되나요. ㅠ.ㅠ 의사는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등산은 관절을 희생해서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어느 기관을 튼튼하게 할지는 본인이 선택해야겠죠. 건초염에 안 좋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셨네요. 잠도 제때 안자고, 등산 다니고... 헐. 

나는 숲에 가야 불면증이 낫는다고 변명했고, 의사는 정 좋으면 어쩔 수 없다면서 등산을 가야겠거든 스틱을 꼭 쓰라고 조언했다. 고주파 치료, 자기장 치료, 찜질 등등의 물리치료를 받고 났더니 신기하게도 다리가 말짱해졌다. 아싸... 좀 불안했지만 소염진통제도 먹었겠다 다음날인 어제 아침 압박밴드로 오른 무릎을 단단히 감싼 채 괜찮겠거니 싶어 꾸역꾸역 등산을 따라갔다.

올라갈 때는 정말로 아픈 줄도 모르겠고 멀쩡했는데 2시간이 넘어가고 하산길이 이어지자 점점 무릎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절룩거리는 나를 보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어우 씨 짜증나고 창피해서 원. 신년산행이고 이후 행사가 있어서 7km정도로 산행이 짧아 다행이지 더 높고 긴 산행이었으면 큰고생했을 것 같다. 통증은 내 문제이지만, 단체 산행에서 홀로 행동이 느려지는 건 남들에게도 민폐가 되는 짓이라 앞으로도 걱정이다. 과연 완전히 다 나아서 산에 계속 열심히 다닐 수 있을까? 

어제 송송송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산에 오르는 기분 정말 좋았는데 ㅠ.ㅠ 벌써 포기하고 싶진 않다. 이런 내 마음이 무식한 고집일까 아닐까,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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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행기를 연말안에 끝내겠다는 목표를 겨우겨우 달성한 뒤엔 곧이어 2017 베스트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감기몸살로 계속 빌빌댔다. 그나마 다행히 A형 독감은 아니어서 열은 오르지 않았고, 그냥 팔다리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쑤시고 아프고 눈과 코에서 뜨거운 바람이 슝슝 나오더니 콧물이 쏟아졌다. 사나흘 앓고 일어나 이제 좀 살만 한데, 아직은 머리가 멍해서 책도 안 읽히고 그래서 일도 못하겠고 꼼지락 꼼지락 쓸데없는 바느질을 좀 하다가 블로그 정리나 하자 싶어졌다.

일단 2017년 정리 포스팅을 다 해야, 나의 모든 유희와 여행 기록을 메모해 놓은 탁상 달력을 내다버릴 수 있다규~ ㅋㅋ




2017년에 본 공연

1. 콜드플레이 내한공연(4/16)

2. 뮤지컬 나폴레옹(9/20) - 임태경, 정선아, 김수용, 박송권 

콜드플레이 공연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았고.. ㅠ.ㅠ <나폴레옹>은 왕비마마 모시고 가려고 여름부터 예약했다가 위약금까지 물고 취소하기를 2번이나 반복한 뒤에 겨우 관람성공해 감개무량했다. 아직은 와병중이라 위태위태했고, 아니나 다를까 공연에 집중 못하고 자꾸 나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움찔거려 옆자리 관객이 중간 쉬는 기간에 언짢은 불평을 했다. 에효... 보는 내내 엄마 때문에 긴장해서 뮤지컬에 대한 인상이나 감상보다 그날 조마조마했던 마음과 안도감이 더 떠오른다. 



2017에 본 드라마 & 예능

1. 셜록 시즌4

2. (여전히) 도깨비

3. 비밀의 숲

4. 이번 생은 처음이라 

5. 윤식당

6. 효리네 민박

<셜록>은 그토록 고대했던 것에 비하면 좀 실망스러웠고... 꼬박 1년 전이라 정말로 아스라하다. 그치만 또 언제 나올지 모를 시즌5를 기다리겠지. <도깨비> 역시 1월에 끝이 난 드라마라 2016년 베스트에 넣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없던 건 아니지만, 영상미며 스토리며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에 반해 <비밀의 숲>은 그야말로 최고의 드라마! 한참 바쁠 때 본방중이라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며 아껴뒀다가 한편씩 두편씩 어쩔 땐 세편 내리 꼬박 밤새며 봤다. 으아.. 정말 대단한 흡입력과 완성도!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중간에 몇편 보다가 결혼제도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와 대사들이 맘에 들어서 나중에 다시 몰아봤다. 중성적인 여자 이름을 좋아하는데 이 드라마엔 여주인공 이름이 지호, 남주인공 이름이 세희다. ^^; 뭔가 이런 미묘한 설정부터 좋아! 세희 역할의 이민기 배우를 새삼 다시 보게 됐고, 여주인공의 친구들 이야기도 각각 소홀하지 않게 잘 다루어져 좋았다. 

<윤식당>은 오래오래 집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살고 싶다는 로망을 잠재우느라 헬렐레 즐거이 보았고(난 식당 종업원들 아니고 거기 나오는 외국인들에 감정이입해서 보는 재미가 좋았다), 이효리와 아이유를 다시 보게 되었던 <효리네 민박>도 제주도 로망과 함께 보고보고 또 보고 재방도 보고 그랬다.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서라면 게스트하우스에 취직할까, 감귤농장에 취직을 할까, 뭐 그런 꿈을 아직도 못 버렸다. ^^;  


2017년에 떠난 여행&답사

1. 미서부와 캐나다 빅토리아섬 (4월)  --- 8개월만에 여행기를 마쳤으니 더 설명 않겠다. ^^

2. 서울 북촌 (6월)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1

북촌 한옥마을 여러번 가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다가 오잉~ 하며 놀랐다. 종로구와 서울시에서 꽤나 많은 곳들을 새로 가꿔놓았더라. 엄청 예뻤다. 


3. 양주 회암사지 & 장욱진 미술관 & 권율장군 묘 (6월 & 9월) 

양주에서 문화해설사 하시는 지인분 덕분에 속속들이 구경하며 신이 났었다. 폐사지(유구만 남은 절터) 구경을 별로 많이 안해본 터라, 회암사지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박물관에도 볼거리가 많아 신기했다. +_+

거의 왕궁터 같았던 회암사지...


건축상도 받았다는 장욱진 미술관 구석구석 예쁘다장욱진 미술관 옆 권율장군 묘에서 내려다보며이는 예쁜 한옥

4. 안면도(6월)

5. 곤지암 화담숲(7월)

6. 속초 동명항(8월)


6. 강화도(9월)

7. 외산 무량사 & 보령 성주사지 & 오천항 수영성(11월)
흐렸어도 무량사의 가을은 눈부셨다나폴리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오천항

같은 날 오전과 오후 날씨가 이토록 다르다 ^^;


8. 수원 화성 행궁(12월)

행궁과 화성 성곽을 1바퀴 다 돌았는데.. 우와.. 너무 좋아서 봄날에 날씨 좋으면 한번 더 가고싶다는 얘기를 했다. <화성성역의궤>에 실린 그림과 설명이 너무도 정확해서 그대로 복원해 놓은 화성은 조선시대 건축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터키에서 못 타본 열기구 선망 때문인지 제자리에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전부인 저 열기구(18,000원)라도 좀 타보고 싶었다. ㅋㅋ



9. 서울 둘레길 - 관광객의 눈으로 서울 살기 프로젝트 2

빠진 날이 많아서 함께했던 팀들의 공식 둘레길 순례는 끝났는데 난 미처 못 끝냈다. ㅠ.ㅠ 총 28개 스탬프 중 아직 7개를 더 찍어야함. 옛날 우체통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스탬프 보관소에서 각기 다른 모양의 스탬프를 찍는 재미가 ㅎㅎㅎ 은근 쏠쏠하다. 스탬프 상관없이 서울 둘레길을 이미 몇바퀴나 돌았다고 큰소리치시던 선배님들도 막상 스탬프북 없으면 말짱 꽝이라고 하자, 별것 아닌데 욕심난다며 결국 157km를 완주하고 완주증서를 받아내시던데... 난 뭐냐.  뭐든 시작은 잘해도 금방 싫증내고, 그렇다고 또 완전 포기도, 깔끔한 마무리도 잘 못하는 나의 미련떠는 성격이 여기도 반영된 것 같다. 남은 스탬프를 2018년 상반기에 다 찍고 완주기념 배지를 꼭 받으리! (새해 결심 중 하나다 ^^;) 

2017년 등산

도봉산, 소백산, 예봉산, 수락산, 관악산, 용마산, 괴산 갈모봉, 내변산 관음봉, 안산 자락길, 북한산 향로봉

하반기엔 거의 등산을 못다녀서 다시 등산 초보자의 폐활량과 몸이 되었음을 12월 북한산에서 실감했다. 몸이 어찌나 무겁던지! 2018년부터는 매달 두번씩 안빠지고 좀 다시 산에 다녀볼 작정이다.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자꾸 무릎이 아파서 등산도 앞으로 몇년이나 하겠나 싶은 심정. ㅠ.ㅠ 


2017년 전시

1. 훈데르트 바서 - 세종문화회관 (포스팅도 했으니 생략)

2. 르누아르의 여인 - 덕수궁 미술관 (그저 그랬음)

3.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상설 전시 & 마티스와 디벤콘 특별전

4. 장욱진 미술관 탄생 100주년 특별전 (6월과 9월에 각기 다른 특별전을 두번이나 봤다) 

5. 고궁박물관 창덕궁 희정당 벽화 - 지금도 전시중이고, 희정당에서 떼어 복원한 금강산 그림이 진짜로 볼만하다. 금강산 관광을 대체 왜 가나 싶었는데, 남북관계 복원돼 관광루트가 다시 뚫린다면 가보고싶어졌을 정도다.  


2017년 기억될 사건

1.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

아무래도 출판과 번역은 사양길이고... 뭔가 더 재미난 일 없을까, 새로운 길을 모색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중학교 1학년들 자유학기제 수업을 한 학기 맡았다. 밤 새가며 수업자료 PPT 만들 때마다, ^^; 형편없이 적은 강사료를 받으며 다들 이짓을 왜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생기발랄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한편 기대되고 즐거웠다. 중2병이 중1로 내려왔다고 해서 엄청 떨었는데, 그냥 귀여운 애들이었어! 물론 말 안듣고 떠들고 쿨쿨 자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애들의 그 팔딱팔딱한 기운을 전달받는 느낌이 짜릿했다. 다만.. 연기된 수능 일정에 밀려 방학날 오전까지 마지막 수업을 하고선 콜록거리는 애들한테 옮아온 감기로 연말연초를 빌빌대며 보내야했지만 말이다. 처음 한두 주 수업때만 해도, 내 다시는 이 짓 안한다! (물론 번역일의 소중함과 귀함을 새삼 깨달았다 ㅎㅎ) 라고 별렀지만, 한 학기를 다 지내고 난 뒤의 마음은 또 잘 모르겠다. ^__^

2. 후배 인터뷰 & 취업 특강 ㅠ.ㅠ

동아리 후배의 부탁에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해줬는데 그게 일파만파 일이 커져서 결국엔 번역에 관심있는 후배들을 위해 취업특강도 하게 됐다. 어우... 번역 하고 싶은 애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7년도 남지 않은 2024년에 AI가 번역가를 대체할 거라는 옥스포드 대학교 보고서도 알려주고, 암울한 출판 전망도 들려주고... 번역은 영어 실력이 주가 아니란 얘기를 해주고 돌아왔다. 근데 뭐;; 어차피 힘든 대학생들의 취업... 번역가로 진입하는 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  

3. 이별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이게 뭔가, 사귀는 건가, 썸인가, 아닌가 지지부진 고민하고, 아니 고민 자체를 거부하고 괜한 두려움에 대화와 감정을 회피하고.. 그러면서 어느 결엔가 뽀르르 달려가 만나고 그러면서 1년 넘게 이어져왔던 관계가 크리스마스에 끝났다. 서로 지향하는 미래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나름 배려했으나 결국 상처 없는 이별은 없다. 따져보니 무려 20년 만이라서 내가 서툰 탓도 있었겠고, 뭔가 되게 두렵고 어려웠다. 사랑과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다는데, 호감이 결국 사랑으로 이어질까봐, 혹은 사랑이 아닐까봐 겁이 났었다. 째뜬 끝까지 차마 묻지 못한 질문과 미련을 덮어 놓자니, 내상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굳이 2017년을 정리하는 공간에 이 이야기를 적어두는 것은 혹시나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의 우유부단함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 왜 지나고 나서야 감정의 실체를 깨닫는 건지 모르겠다. 혹은 추억의 미화를 위해 과장하는 걸 수도 있겠지. 한숨. 몇번의 고비 이후,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 없게 엄청 잘해주겠노라고 말해놓고, 결국엔 그러지 못했다. 그치만 아무리 잘해주었더라도, 끝이 난 마당에 후회 없는 관계는 없겠지. 행복하라고 그에게 말했지만 행복하면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일단 나는 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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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2017년은 참 많이 놀러다녔고, 출간이 미뤄져서 그렇지 번역 일도 꾸준히 꽤 많이 했다. 블로그질 할 시간과 정신 여유가 없었을 만도 하다. 나와는 상관 없는데도 충격으로 다가온 사람들의 죽음과 친구의 난치병 같은 것들 때문에 괜히 조바심이 나서 더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소소한 낙과 순간의 기쁨보다는 자꾸 더 '쎄고 확실한' 행복을 바랄수록 불행해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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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여행후기를 빨리 마쳐야할텐데... 생각하고 보니 으아.. 오늘 날짜로 쓰는 이날의 후기는 딱 석달 늦은 셈이다. 기억 다 사라지기 전에 어서 마무리를 지어야한다는 압박감이 스멀스멀...

여행가서 나름 기록한답시고 작은 수첩을 가져가서 메모를 하긴 했는데 벌써부터 게을러져서 이때부턴 간단히 동선만 적혀 있고 느낌이나 감상은 거의 없다. 심지어 끼니별로 뭐 먹었는지 안 적어놓은 날도 많다. ㅠ.ㅠ 수다떠느라고 그랬을까? 흠.. 사진을 보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수밖에 ㅋ

캐나다에 있는 사흘간은 아쉽게도 계속 날씨가 안좋아 비가 오락가락했다. 햇빛이 찬란했더라면 꽃구경이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라고, 사진도 훨씬 더 예뻤을 것이라고 E언니는 계속 아쉬워했지만, 우산 쓰고 돌아다니는 우중산책도 나름 운치 있고 좋았다. 

호텔에서 조식부페를 먹고 (귀찮아서 이 때쯤엔 조식 사진도 안찍기 시작;; ㅎㅎ) 일단 나름 관광지라는 크레이그더랙 '캐슬'(Craigdarrach Castle) 구경에 나섰다. 영어로 적힌 표지판 보면서 대체 발음 어떻게 하는지 몰라 기념품 가게 직원한테 물어봤다. ㅋㅋ

캐나다 정착민의 역사가 얼마 안되다 보니, 초창기에 유럽에서 건너와 돈 많은 사람들이 빅토리아풍으로 (대충?)지은 이런 집 정도에 막 '캐슬'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유적지 취급을 한다.  하긴 뭐 우리나라도 아파트에 ㄹㄷ캐슬이란 이름 붙이는 국민이니 뭐랄 수는 없지만 암튼 막상 가보곤 애개개.. 그랬다. ^^; 설상가상 일요일이라 집안엔 못들어가게 하고 기념품 가게만 열어놨어! ㅋㅋ 

사기다 사기 그러면서 구경했던 유료 브로셔 ^^

한 10분쯤 후딱 돌아보고 나오는 걸로 족했으나, 재미 있었던 건 이 건물이 약간 언덕지고 깔끔한 고급 주택가에  있어서 주차장 입구 찾느라 주변을 한바퀴 괜히 더 돌아야했다. 그러다가 어느 집 마당에서 너구리를 보았다는 것! 몸집이 제법 큰 귀여운 너구리 한 마리가 도망도 안가고 어슬렁 어슬렁 남의 집 꽃밭을 돌아다니다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또 시큰둥 가던 길을 가는 게 아닌가. 방향이 애매해서 사진은 못찍었지만, 이 캐슬을 보고 나와서 우리의 촌평은... '예쁜 꽃밭에서 귀여운 너구리를 봤으니깐 괜히 여기 들렀던 이유로 충분해!'였다. ㅎㅎ

그러고는 다시 빗길을 달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부처트가든'을 찾았다. 역시나 돈많은 (아마도 귀족출신?) 초창기 이민자가 오래오래 공들여 가꾼 정원이라는 것 같다. 유럽식 정원도 있고 일본식 정원도 있고(일본풍 정원은 세계 어딜 가나 다 있는듯)... 암튼 계절별로 꽃들이 지천이어서 언제 가도 보는 맛이 있다고 브로셔에 써 있었다. 우린 튤립이 만발한 시기를 노리고 간 거였는데, 좀 일러서 만개한 튤립보다는 봉오리를 더 많이 보았고 그래서 E언니가 느므느무 아쉬워했다. 만개하면 튤립이 거의 애들 머리통만하다나 뭐라나... 우린 비교대상이 없으니 그저 이 정도도 예쁘다고 좋아라 했을 뿐이다.

부처트 가든은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속하는 빅토리아 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란다. 비가 부슬부슬오는데도 사람들이 꽤 있어서 의외였고.. 주차장 구석구석 공원 입구에 아무나 쓰다 놓고 가라고 투명비닐우산이 놓여 있었다. 우린 각자 우산이 있는데도 투명한 우산을 쓰는 게 더 구경하기 좋다고 해서 얼른 두 개 집어들었다.

꽃그림 들어간 입장권도 예뻐서 한번 찍어보았음. 캐나다 달러는 미화보다 환율이 약간 더 낮아서 $30이면 3만원이 채 안된다. 제주도에 새로 생긴 식물원이나 곤지암 화담숲 입장료가 이 절반도 안되는데도 비싸다고 버럭 화낸 적이 있다. 확실히 우리나라 물가가 훨씬 싸고, 문화생활비는 더더욱 저렴하다고 느꼈다. 캐나다는 예쁜 정원 구경하는 비용이 막 놀이공원 자유입장권 가격이다. +_+ 

암튼 표를 내고 들어가면 곳곳에 예쁜 건물들이 있고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꽃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튤립은 아직 덜 자랐거나 봉오리 덜 벌어진 게 많았고, 활짝 핀 건 주로 수선화, 히야신스, 아이리스... 그밖에 수많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층층이 촘촘이 꽃을 심어놓아서 막 이런 느낌...? 

 

노란건 모르겠고 분홍색은 금낭화 히야신스 자주색이 정말 예뻤던 튤립과 히야신스

확실히 비를 맞아서 꽃들이 더 촉촉한 느낌으로 말갛게 사진에 담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뜻밖에 신기한 경험은 '성큰?선큰?가든'(Sunken Garden)이었다. 으음... 여기서 또 나의 운명론이 등장하고 마는데... ㅋㅋ 노트북까지 싸들고 가서 번역하던 소설에 스토리상 매우 중요한 장치로 'Sunken Garden'이 등장했다. 나름 구글로 검색해보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았어도 모호하고 막연한 느낌이라 일단 '침상정원'으로 번역하고는 구차하게 역주를 달았었다. 언덕 지형을 활용하여 지표면보다 낮게 어쩌구 저쩌구... 그러고도 딱히 이거다 싶은 느낌이 없었는데, 작품 속에서 여주인공이 만들려는 '선큰 가든' 개념이 뜻밖에 내 눈앞에 뙇~~~!! ㅋㅋ 역시 마감 미뤄두고 놀러간 명분이 바로 이거였어! 라고 막 홀로 끼워맞추기 한판을 하고는 내친 김에 친구에게 또 어거지 운명론을 하나 더 고백했다.  '남자주인공이랑 너랑 생일이 똑같이 만우절이야! 우연의 일치 치고는 뭔가 되게 이상하지 않냐? 아무래도 이 책 영화 개봉되면 대박날 것 같아...' (그러나 몇달 뒤 현실은 내 예상과 빗나간다 ㅋ)

이것이 Sunken Garden

나무로 만든 쓰레기통에도 예쁘게 꽃을 얹어놓은 정원을 구석구석 몇시간이나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아파서 카페에 들어가 좀 노닥거린 뒤 앙증맞고 예쁜 쓰레기(!)들이 지천으로 깔린 기념품 가게에서 한참 이것저것 집어들고 고민하다 계속 염원하던 '플리스 후드티'를 일단 구입해 뿌듯했다. (캐나다라고 적힌 검정색 삼선 지퍼후드를 저렴하게 사서 좋아라했는데 ㅋㅋ 나중에 친구집에서 빨아보니 100% 폴리에스터라 보풀이 장난 아니게 일었다. ㅠ.ㅠ)

카페와 기념품 가게 카운터에도, 테이블에도 도무지 생화 같아보이지 않는 꽃화분과 화병이 놓여 있었는데.. 설마 조화겠거니 만져보면 다 생화였다! 조화파는 가게에서 종종 너무 과장됐다고, 색깔이며 모양이 좀 웃기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꽃들이 진짜로 다 실화였음을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ㅎㅎㅎ

맨 오른쪽 사진은 대표로 방명록에 한마디 쓰라고 언니들이 시켜서 비와서 아쉽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적는 중이다. 여행기라고 막 인물사진 대방출 ㅠ.ㅠ 등산복 입고 관광하는 한국인들 유럽에선 흉본다지만 흥! 캐나다엔 나처럼 우산 안쓰고 바람막이에 달린 모자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엄청 많이 봤고, 어쨌거나 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죄다 얇은 옷과 반팔만 가져가서 저 겨울용 바람막이가 얼마나 요긴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날 점심은 뭘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부처트 가든 카페에서 머핀으로 때운 듯. 그러나 차에서 계속 간식을 먹었기 때문에(무려 구운 쥐포와 문어다리가 지퍼백 가득 들어있었고, +_+ 주유소 들를 때마다 젤리며 과자를 꼭 사가지고 차에 올랐다 ㅎㅎ) 열흘 내내 배가 고팠던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출출해질 새도 없이 노상 뭘 입에 집어넣고 있었음.

부처트 가든을 나와 차로 또 한참을 이동하다, 캐나다 과일도 좀 맛을 보자며 유기농 마켓에 들렀다. 과일값은 그래도 한국이랑 비슷하군.. 했던 것 같다. 홍옥처럼 반질반질 윤기나는 작은 사과랑 방울토마토랑 블루베리를 샀던가... ㅠ.ㅠ 암튼 호텔이 있는 항구쪽으로 이동하자 점점 날이 개었다. 그렇다면 또 부두 구경을 좀 해볼까나...

관광객인지 주변에 사는 주민인지 우리처럼 부두를 괜히 어슬렁거리는 가족과 어린이를 만나 슬며시 도촬. ^^; 부두에 정박해있는 배들은 하나같이 새로 칠한 듯 깨끗했고, 고기잡이배가 분명한 파란색 어선들도 어찌나 깔끔한지 약간 놀랐다. 비린내도 안나고, 부두와 선창 주변 물도 바로 뛰어들어도 될만큼 맑았다. 

아직 배는 안꺼졌지만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가왔다. 내비에 주소를 찍고 찾아갔는데도 도무지 음식점이 눈에 띄질 않아 일단 길에 주차부터 하고 (일요일이라 무료!) 이쪽 저쪽 건물마다 기웃거리고 다녀야했다. 분명 주소로는 근처인데... 그러면서. 

 

별점 후기를 참고로 선택한 음식점을 찾아 헤매느라 뜻밖에 골목골목 들어가본 것도 괜히 재미나고 신났다. 저녁을 먹기에 너무 이른 시간인지 인적 드문 이런 골목으로 쭉 들어가보면 안쪽 모퉁이에 예쁜 음식점들이 콕콕 박혀있고, 이른 저녁을 먹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그저 인구가 적어서 대체로 한가로운 분위기인가?

 

암튼 구글맵을 켜고 거의 부두 바로 앞까지 한참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에라이, 포기하고는 차로 돌아가 다시 내비를 찍어보자 그랬는데 ㅋㅋ 주차해놓은 도로 바로 위쪽에 음식점이 있었다. 간판이 작아서 못보고 지나친 뒤 계속 아래쪽 거리만 뒤졌으니 나올 리가 있나...

여행을 가서는 길을 좀 잃고 헤매는 것도 다 추억거리라며, 그래서 배 좀 더 꺼졌으니 저녁밥 많이 먹자! 언니들이 하하 웃으며 우릴 위로했는데, 아이고 위로하실 필요 없어요... 전 그냥 막 돌아다니는 게 좋다니깐요.

샐러드는 요리로 칠 수 없다면서 우리가 메뉴판을 차마 안 내려놓고 뭘 하나 더 시킬까 고민하고 있었더니 웨이터가 음식 갯수 니네 넷이 먹기 충분하다고, 막 말렸다. ^^; 감자튀김 그릇을 보고서야 우리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 맥주랑 같이 신나게 먹었으나.. 저 바삭한 감자튀김을 결국 다 못먹고 남기고 왔다. 테이블은 엄청 좁고 그릇은 어찌나 큰지... ㅎㅎ

봉골레 파스타와 해산물 리조토, 프라이드 치킨을 시켰던 것 같다. 근데 또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양이 많지 않아 보이는데? ㅋ 하지만 밥이 산처럼 쌓였던 리조토는 우리나라 음식점 양의 거의 세배쯤? 느끼함에 강한 나는 대체로 냠냠 맛있게 먹었는데 봉골레 파스타에 치즈를 많이 넣어서 느끼하다며 친구는 김치먹고 싶다고 막 괴로워했다. S는 은행에서 퇴근해 집에 들어갔는데 밥 하기 귀찮으면 김치만 한 그릇 퍼먹고 잘 때도 있다는 기인이다. *_*

암튼 우린 부른 배를 두들기며, 저녁식사 후엔 미리 웨이터에게 물어본 '캔디 가게'를 찾아갔다. 단풍국엘 왔으니 메이플시럽은 사가야하지 않겠냐는 것. 헤맬 것도 없이 메인스트리트 정 가운데 떡하니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메이플시럽과 단풍잎 모양 과자 따위를 샀다. 

날이 흐려서 벌써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E언니와 S자매는 치안 위험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이라 미쿡이든 캐나다든 밤중에 돌아다니면 큰일나는 줄 아는 분위기여서 어두워진 뒤론 거의 호텔에서 꼼짝도 안했다. 이날 처음으로 가로등 켜진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제 겨우 나같은 올빼미의 시간이 시작되는 거라고 아쉬워했다. ^^;  그러나 일요일 저녁 캐나다 거리엔 간간이 술집과 마트 빼곤 가게가 다 문을 닫았다! ㅎㅎ

동그랗게 다듬은 가로수를 보라! 다스베이더의 투구 같기도 하고.. 단발머리를 형상화한 건가 싶기도 하고... 도로쪽은 큰차에 닿지 않게 하려는 건지 일부러 더 파놓았다. 여기가 메인 스트리트인데 길도 별로 안 넓고 이렇게나 한산하다. ^^; 횡단보도 건너면서 후다닥 찍은 사진이다.

캐나다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니, 낮에 캐나다 유기농 마켓에서 선 과일을 안주 삼아 맥주라도 한잔 하자고 다시 호텔 근처 마켓에 들렀지만 ㅎㅎㅎ 결국 마시는 요구르트, 우유, S가 자긴 아침으로 꼭 먹어야겠다면서 고른사발면만 사가지고 나왔다. 배불러서 뱃속에 맥주를 더 우겨넣을 여유도 없을 것 같고... 요즘 또 나는 맥주 한두잔에 후딱 취해버리고... 아쉽지만 그렇게 캐나다 과일을 술 없이 먹으며 빅토리아 섬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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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달도 더 지난 공연 후기를 쓰려니 민망하지만... 연말 집계할 때 보나마나 최고의 공연으로 꼽고 링크해두려면 포스팅을 해야하느니라.. 속으로 계속 되뇌고 있었다. 그날의 감동은 이미 다 식어 아련하지만, 휴대폰에 든 사진과 동영상을 가끔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해서 미소가 벌벌 흐른다. 내 평생 드디어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았구나...​

작년에 현대카드에서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소식을 알렸을 때, 부리나케 현대카드를 신청했으나 발급을 거절당하고 (나홀로 프리랜서는 수입 있는 남편이 보증서주면 카드 발급되는 가정주부보다도 못하다는 걸 또 한번 알게 되었다), 그럼 사학연금 수령자인 울 엄니는 어떤가 신청해보았더니 떡 하니 카드가 날아왔다. 비참처참민망x1. 

엄마카드라도 어디냐 감지덕지... 하지만 4월 15일 공연은 사전예매도, 본 예매도 모두 결과는 실패. ㅠ.ㅠ 비참처참민망x2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4월 16일 추가공연이 잡힌 뒤 또 다시 예매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역시나 카드 소지자와 예매자 이름이 달라서 그런 건지 나는 결제에러로 실패... 비참처참민망x3. 다행히 벨로와 지다님이 여분으로 예매한 표를 넘겨받아 드디어 역사적인 공연 구경에 나서게 되었던 것. 

내 인생은 나 혼자만의 운으로는 도무지 잘 풀리질 않는 건가 싶은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결국 나의 불운은 해가 바뀌어 실제 공연날에도 또 한번 입증된다. ㅋ 그건 뒤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오프닝 공연에서 괜히 힘빼지 말자며 느긋하게 저녁먹고 커피마시고 노닥거리다 본 공연 시작 직전에 공연장으로 들어가선, 전날 공연을 본 파피 따라 맥주 사들고 인증샷부터 찍었다. 화장실 문제가 살짝 고민되었지만 공연장에서 술마시는 거 신났다! 까마득한 옛날 헐리웃볼에서 공연을 보며 와인을 마셨던 생각도 나고... 야구장에서 치맥하던 생각도 나고... 암튼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그러나 첫곡 A head full of dreams가 흐르면서, 입장 때 나누어준 손목밴드가 자동으로 작동이 시작되어 잠실주경기장 전체가 신기한 불빛으로 물들어가는데 하필 내 건 불량이었다. 흑흑흑... 불이 안 들어와! 불운한 인간은 어디서든 티가 나는구나.. 에효.  비참처참민망x4

지나던 진행요원에게 하소연하니 간혹 불량품이 있다며 직접 입구로 내려가 바꿔와야 한단다. 아...그냥 포기하고 공연에만 집중해야하나 우유부단하게 마구 고민하고 있는데 내 오른쪽 옆옆 사람도 마침 불량이라, 자기 친구는 바꾸러 내려갔다며 내 바로 옆에 앉은 이십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 관객이 그래도 바꾸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조언을 해주었다. 그래 공연 내내 속상해하느니, 한곡은 귀로만 듣자 싶어 얼른 뛰어내려갔다. 다행히 출구와 통로에서 멀지 않은 자리라 두번째 곡이 끝나기 전에 후다닥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길 잘했지...

자이로밴드?라나 뭐라나 이렇게 조명따라 음악따라 색깔이 변하는 신박한 물건을 나도 함께 누리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싶다. A sky full of Stars 노래 나올 때 잠실주경기장이 온통 영롱한 별빛으로 뒤덮인 듯한 광경이 펼쳐진 순간 너무 좋아서 살짝 눈물이 솟았었다. 가사처럼 Such a heavenly view 가 아니고 뭔가! ㅠ.ㅠ


예매를 하고보니 4월 16일이 마침 세월호 참사 3주기라 신나게 방방 뜨며 놀긴 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는데 노래 제목도 공교로운 <Yellow>가 흐르다말고 공연사고인듯 음악이 뚝 끊기더니 노란 리본이 화면에 떠올랐다. 아 이 짜식들... 뭘 좀 아는구나. 화면엔 세월호 노란 리본, 관객석엔 노란불빛들... 다시 광화문 촛불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나름 셋트리스트 찾아 미리 예습한다고했는데도 처음 듣는 듯한 노래도 있어서 난 아직 멀었구나 했었고, 나라마다 크리스 마틴이 따로 작곡해 불러준다는 노래는 너무 아마추어스러워서 별로였다. ^^; 그치만 1, 2, 3집에 들어 있는 어쿠스틱한 노래들도 꽤 많이 불러주어 어찌나 기쁘던지... <Fix you>도 <In My Place>도 라이브로 듣다니.. ㅠ.ㅠ 기념으로 소장할라고 <In my place>는 쬐끔 동영상도 촬영했다. ㅎㅎ  

점점 더 상업적인 음악만 추구하고 대형공연장에 적합한 빵빵 울리는 EDM 쪽으로 가는 게 영 마뜩찮지만 막상 들어보면 중독성이 정말 엄청나다. 처음 음반 나오면, 에이 별로야 그러다가 어느새 중독되서 흥얼흥얼 따라부르고 찾아듣게 되는 묘미?가 있는 듯. 그러니깐 이틀간의 공연에 팬들이 이토록 열광하고 매진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닐까.  요즘 애들이 듣기엔 당연히 더 최근 음반들이 더 매력있을 거 같다.

게다가 대형공연장 공연 노하우가 쌓이고 쌓였을테니 볼거리도 풍부하겠다, 팬서비스 훌륭하겠다(스탠딩석 한가운데 런웨이같은 무대말고도 갑자기 중앙 조명탑 아래쪽에서 나타나 노래불러주는 거 완전 좋더라. 물론 나는 맨눈으로 얼굴 확인하기 어려운 2층 좌석이었지만;; 거리는 가까워질수록 좋은법!), 크리스 마틴 가창력이 예전만 못하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뛰어다니며 노래하는데도 헐떡거림 없이 그 정도면 진짜 훌륭하다 싶었고, 형광봉 역할 대신하는 자이로밴드 활용도 좋았지만 조명도 예쁘고, 중간에 공굴리기? 같은 퍼포먼스도 즐겁고 맨 마지막 불꽃놀이ㅠ.ㅠ로 마무리하는 것도 다 좋았다. 사진에 실제 색감이 잘 안나타나는데도 ​이 정도로 예쁘니 뭐;; 

크리스 마틴이 17년만에 와서 미안하다며 또 오겠다고 하던데, 과연 언제나 오려는지? 지정석에서 간간히 일어나 열광하기에도 힘든 나이인지라 이왕이면 빨리 오너라..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 과연 재공연이 잡히면 난 또 미련없이 예매전쟁에 뛰어들것인지 그건 또 모를 일이다. 표만 구할 수 있다면야 이번엔 혼자 앉는 자리도 감지덕지였으나, 다음에 또 혼자 뚝 떨어져 앉아 관람하라면 싫을 것 같다. 영화든 공연이든 감흥을 즉각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 더 즐거운데 말이지... 

소음 민원문제라는 듯, 공연이 매몰차고 냉정하게 앵콜곡 하나 없이 끝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셋트리스트 마지막인 <Up & Up)이 흐르자 아쉬운 마음에 또 동영상을 잠깐 촬영하고는 마음을 달랬다. 아 근데 내게 자이로밴드 바꿔오라고 조언했던 여자애들 둘은 마지막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후다닥 공연장을 빠져나가더라. +_+ 공연 내내 미친듯이 춤을 추어대더니만 니들은 편한 귀가가 더 중요했구나 싶어 좀 놀랐음.

마지막 인사와 함께 관객석에 조명이 들어오고... 아쉽지만 빠이~

주경기장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밀리듯 지하철역으로 걸어가 집으로 돌아오며 계속 다시 콜드플레이 음악을 복습하는데 어찌나 흐뭇하던지. ㅎㅎㅎ 이날 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곧장 다음날 LA로 날아가기 위해 짐을 싸야했다. 약간은 미친짓이라고 여기면서도 내 생전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은 또 없으리 짐작하며 그래서 더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콜드플레이는 미국으로 향하는 11시간 비행 동안에도 중간중간 나를 위로해주었다. 아 글쎄, vod에 콜드플레이 공연실황도 있더라니깐! ㅎㅎㅎ   


티스토리에도 동영상 곧장 올리기가 있는줄 몰랐다 ^^; 알게 된 기념으로 하나 자랑;; 마지막곡 Up&Up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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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벚꽃일기

투덜일기 2017. 4. 10. 12:40

벚꽃타령을 거의 해마다 빠지지 않고 하고 있는 건 매번 고백하지만 올해로 벌써 10주기가 되는 아버지에 대한 부채감 때문일 테고, 어쨌거나 올해도 집앞에 벚꽃이 만발했다. 동네 안산 벚꽃길도 지난 주말이 축제기간이었는데,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가 개화일 예측이 어긋나 망해버렸듯이, 이 동네도 엊그제 주말엔 꽃봉오리만 분홍색으로 열렸을뿐 3분의 1도 피지 않았다고 한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서도 주말에 잠깐 엄마 모시고 작년처럼 앞산으로 봄소풍 갈까 했었는데 날도 흐려지고 꽃도 없다니 일단 패스~. 그치만 엄마도 나도 하루하루 팝콘처럼 터져가는 집앞 살구나무와 벚나무 꽃을 매일 베란다에 나가 사진에 담으며 좋아라했다. 꽃놀이가 따로 있니, 이런게 꽃놀이지, 밖에 나가면 시끄럽고 정신만 사납다, 라고 엄마가 말해주어 일단 안심했다.

블로그에 자랑할 만개일을 며칠로 해야하나 분홍분홍하게 꽃눈이 올라올 때부터 관찰하고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늘 그래왔듯 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봄비가 한번 내렸다. 요즘 미세먼지가 좀 독한가. 혹시 올해 벚꽃은 누렇게 미세먼지에 뒤덮여 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으나 결국 그건 기우였다.

나무 심으라고 하늘에서 일부러 비를 내린 건지,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던 4월5일 식목일에 담은 살구꽃과 벚꽃이다. 한 10분의 1쯤 피었다고 해야하나. 

4월5일 살구꽃4월 5일 벚꽃


비가 내리고 나서 미세먼지가 물러가 새파란 하늘이 드러났던 4월 7일 금요일. (사진을 매일 찍은 게 아니었나보다. 켁..) 살구꽃은 이미 꽃잎이 막 떨어지기 시작했다. ​​

4월 7일 살구꽃 

이 살구꽃 사진 찍어 놓고 들여다 보며 혼자 우와 이거 고흐의 아몬드꽃 필 나는데! 라며 혼자 좋아했었는데 이제보니 하나도 안 그렇다. ㅠ.ㅠ ​

햇살이 찬란해서 오히려 벚꽃이 잘 안나오는 것 같이 필터를 사용했더니만 또 너무 밝다. 

4월 7일 금요일

이미 난 이날로 벚꽃 만개선언을 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벌도 엄청 날아들어서 베란다 나가기 좀 무섭고... 살구꽃은 꿀이 많은지 이상하게 생긴 새들이 날아와서 막 꽃을 쪼아먹기도 했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우왕 어제와는 확실히 다르게 꽃이 더 풍성해졌다. 드디어 다 피었군 싶은 느낌. 탐스러웠다. 

4월 8일 역시나 필터 사용

​필터 없이 그냥 좀 당겨서 찍었더니 이런 색감이 나왔다. 흠.. 이것도 예쁘다. 근데 나 참 사진 못찍는다. ㅋㅋㅋ ​

4월 8일 토요일

그리고는 드디어 오늘... 살구꽃은 절반 이상 다 떨어져 마당에 나뒹굴고, 벚꽃도 한잎 두잎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앞산 벚꽃길엔 아직 절반도 다 안피었다는데... 우리집도 언덕이건만, 산밑이라 공기가 더 차가운 건지 높이 몇십미터 차이로 같은 동네라도 개화시기가 그렇게 다르다.  

햇살도 예쁘고, 미세먼지 없는 하늘도 파랗고 예쁘다. 

4월 10일

하여... 올해 벚꽃 만개일은 4월 10일인걸로! ㅎㅎ 이것으로 2017 벚꽃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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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투덜일기 2017. 3. 27. 23:31

인생이 특히나 무의미한 나이대를 지나가고 있기 때문인지, 여전히 희망을 찾기가 힘들어 보이는 사회와 시국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들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는 듯 주변에서 자주 묻는다. 넌 요즘 무슨 낙으로 사니? 

누구나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서 혼자 있을 때와 다른 이들이 있을 때는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게 되지 않나? 정말 친한 친구에겐 혼자 있을 때와 똑같은 맨 얼굴을 드러낼 때도 있고 또 못 그럴 때도 있고, 특정한 사람들 앞에선 아주 두툼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도무지 사는 낙이 없는 것 같다는 친구들 눈에 그래도 나는 뭔가 되게 분주하고 희희낙락 꽤나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넌 그래도 신나게 살잖아, 그런다. 아차 싶었다. 내가 행복한 가면을 너무 들이대고 살았던가? SNS가 종종 나 이렇게 바쁘고 행복하게 잘 산다는 과시와 자랑의 장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나름 조심한다고는 하나, 솔직히 가끔은 그런 의도적인 과시가 오히려 암울한 현실을 잠시 잊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길가에 피어난 봄꽃, 어쩌다 맛있게 만들어진 국수, 간만에 기분 전환이 되었던 외식 사진을 자랑질하는 이유는 그 순간 느꼈던 소소한 기쁨을 나만 누릴 게 아니라 막연한 공간 어딘가에 박제시켜 두고 호응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관음증 환자처럼 다른 사람들의 그런 순간들 역시 자꾸만 구경다니면 그들의 행복에 나도 전염되는 느낌이 든다. 아주 찰나적인 순간일지라도 말이다.  

하여간에 친구의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카톡 창을 이리저리 괜히 두드리다 과도하게 씩 웃는 이모티콘을 먼저 쏘아보내고는, "글쎄... 나도 사실 사는 낙이 별로 없어. 요즘들어 특히 삶이 엄청 구차하다."라는 솔직한 대답은 차마 적지 못하고 (우울한 친구의 기분을 북돋우려는 쪽이었는지, 또 다시 가면 증후군이 도졌는지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꼴 같잖은 잘난 척을 좀 했다.

나야 요새 포켓몬 잡는 재미로 살지! 은둔형 인간이 맨날 포켓몬 잡느라고 괜히 막 나가서 걸어다닌다. 훌륭한 게임이야! (사실은 두달이 넘어가면서 포켓몬 수집욕도 좀 시들해졌다 ㅠ.ㅠ) 음.. 또 5분 스케치도 하잖아... 그림이 안 늘어서 좌절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나름 재밌어!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낙은 여행이 아닐까...?

친구는 약간 한심스러운 듯 (그냥 내 자격지심일수도;;) 계속 'ㅋㅋ'라는 반응을 보이다 여행 이야기에 그제야 맞다고, 이제 궁극의 낙은 여행 하나 남은 것 같다고, 근데 그걸 자주 떠나지 못하니 더 암울하다고 대꾸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삶의 낙이면서 로망이어서, 떠나지 못하는 현실을 버티게 만드는 한줄기 희망이자 고문 같은 게 아닐까나? 여행 가고 싶단 생각 들 때마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휴가 한달 신나게 놀려고 1년 꼬박 직장 다닌다는 선진국 국민이 아니고서야 원...

게다가 걱정대마왕이자 불안증환자로서 나는 어디서든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상상하기 때문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그만큼 사전준비도 쉽지가 않다. 말로는 훌쩍~ 이라고 하면서도 대체로 여행지부터 예산까지 미리 한참 고민고민하다 떠나는 편이다. ^^ 그나마 아버지가 계실 땐 그래도 기회 봐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후다닥 계획을 세우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나, 이젠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도 떠나는 날 직전까지 과연 이 여행이 가능한가 너무도 불안하다. 이래서 가족은 울타리면서 동시에 역시나 멍에였어! 라며 짜증부리게 되는 거다. 물론 요즘 가족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사정이지만. ㅠ.ㅠ (버는 것도 변변찮은 니가 지금 여행이나 다닐 때냐!)

암튼... 사는 낙도 없고 애들 뒷바라지도 지겹고 밥먹는 것도 구차하고 억울해서 식욕이 없다는 친구의 하소연에 나까지 한숨이 나면서 맥이 빠졌다. 천고마비의 계절도 아닌데 막 식욕이 돋아서 먹고 싶은 거 생각날 때마다 꾸역꾸역 찾아 먹어대는 내가 식충이 같기도 하고 부끄러운 느낌. *_* 

카르페 디엠, 하쿠나마타타, YOLO...이렇게 맥빠질 땐 별별 주문을 다 외워도 소용이 없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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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투덜일기 2017. 3. 15. 14:56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요즘에도, 수십년간 꿋꿋하게 오래된 다가구 '주택'을 벗어나지 못하고 눌러앉아 살고 있는 우리는 여러모로 옛날 사람이란 걸 사방에 자랑하고 다닌다. 그 중 첫째가 묵직한 쇠로 된 '열쇠'가 아닌가 싶은데, 그나마도 자물쇠 하나가 고장나서 하나만 들고 다닌 건 최근 몇년이고 옛날엔 위아래 열쇠 두 개를 열쇠고리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었다. 난 자동차 열쇠까지 열쇠 3개를 매달고 다니며 무거워서 투털투덜하던 적도 있다.

오래된 철제 현관문의 자물쇠는 당연하게도 몇년에 한번씩 고장이 나 말썽을 부렸고, 십년쯤 전부터는 자물쇠를 교체해야할 때마다 우리도 편하게 번호키 좀 달자고 내가 아무리 징징거려도 엄마가 단칼에 '싫다'고 하셨더랬다. 이유도 다양했다.

첫째, 몇만원이면 되는 일반 자물쇠에 비해 번호키는 너무 비싸다. 헌 집에 비싼 거 뭐하러 다냐. (수십년 째 우리는 집이 팔려 이사가는 상상을 늘 하고 산다. ㅠ.ㅠ)

둘째, 손떨려서 번호 잘못 누르면 어쩌냐. 계속 잘못 누르면 아예 잠겨 버려 못 들어온다더라. ㅠ.ㅠ

셋째, 안그래도 깜박깜박하는데 비밀번호 까먹으면 어떡하냐. ㅠ.ㅠ

핑계없는 무덤 없다지만, 엄마가 무조건 싫다고 하시는 건 '변화'를 괜히 두려워하고 겁내는 노인 특유의 고집 때문이란 걸 잘 안다. 그래서 나도 독단적으로 마구 우길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 정신 건강이 안 좋아질 때마다 손도 괜히 더 떨리고 불안해지고 익숙하지 않은 걸 불편해하는 심정을 왜 모르겠나. 

그래도 나는 꾸준히 번호키의 편리함을 설파했다. 요즘 번호키 많이 싸졌다. 비밀번호 까먹어도 카드 키만 슥 대면 문 열리는데 무슨 걱정이냐. 설사 카드 키 없이 번호 까먹어도 나한테 전화 걸어서 물어보면 되고, 아니면 수첩 어디에 적어가지고 다니면 되지! 스마트폰 놀이에 심취하면서 손떨림은 이제 거의 없어진 것 같던데! 열쇠 깜빡 잊고 나간 엄마를 위해, 외출하며 열쇠는 우유 주머니에 넣어뒀다고 문자 보내놓고 혹시나 불안해할 이유도 없고 좀 좋냐고요!

그러던 차에 요번에 또 현관 자물쇠가 고장났다. 안에선 고리를 돌리면 잠기는데, 밖에선 열쇠로 암만 돌려봐도 꿈쩍도 하질 않는다. 내부 스프링이나 부품이 또 고장났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번엔 손잡이도 고장나서 보조 자물쇠와 손잡이 모두 바꿔야하는 상황.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데 웬일로 엄마가 먼저 이번엔 우리도 번호키를 달까? 물으셨다. 오예~!

어제 엄마 마음 바뀌기 전에 현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 번호로 득달같이 전화를 걸었더니, 30분 안에 온다던 양반이 10분만에 오토바이타고 나타나심. ㅋㅋ 드드륵드르륵 드릴로 현관 자물쇠를 교체하고 금세 뚝딱 번호키가 달렸다. 우리 현관문에도 드디어 '띠리릭' 경쾌한 디지털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스마트한 세상이 열렸도다! 무거운 쇳덩어리 열쇠는 얼른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가장 쉽게 익숙한 번호 네자리로 비밀번호를 설정한 뒤, 엄마 손에 카드 키를 쥐여주곤 연습을 하러 내려갔다. 역시나.. 익숙한 번호 네 자리와 별표시는 아무 무리 없이 한번에 성공! 그래도 번호 누르는 거 귀찮아서 카드키를 들고 다니시겠다고. ㅋㅋㅋ

오늘 아침 일찍 한방진료실에 가느라 외출에서 돌아오신 왕비마마가 띠리릭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와선 한 말씀하신다. 어두울 땐 열쇠 구멍 잘 안보여서 찔러넣기도 힘들었는데, 이렇게 편한 걸 진작 바꿀 걸 그랬다고. 아이고 오마니... 편한게 좋은 거라니까요. 여러가지 면에서 아날로그 방식을 좋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렇게 하나하나 취향이 무너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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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바쁘면 늘 도지는 지병 탓에 일하기 싫어져 뒤늦은 영화 후기를 써야겠다. ㅎㅎ

* 스포일러는 당연히 있겠지요? 


일단 영화 본 순서대로 <너의 이름은>

장면 장면이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는 맛은 있었으나 뭔가 초현실적인 이유로 남녀가 서로 몸이 바뀌는 설정은 익히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도, 영화 <체인지>에서도 겪었던 터라 약간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기야 이제는 타임슬립도 그렇고 몸이 바뀌는 것도 그렇고 어느것도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없는 듯.

게다가 소녀와 소년의 몸이 바뀔 때마다 쓸데없이 반복해서 가슴을 만져대며(!) 신기해하는 장면은 심히 불편했다. 소녀는 남자가 된 자신의 아랫도리를 부끄러워하며 확인하는데, 소년은 왜 그렇게 함부로 주물러대는지?! 남자는 다 그래.. 라는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째뜬 과도하게 반복되는 것 같아 거북했음. +_+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보고 또 보는 재관람 관객이 그렇게도 많았다지만 난 굳이 또 보고 싶은 생각은 안들던데... 만나야할 사람은 결국 만나고야 만다는 운명론과 해피엔딩엔 애니메이션이 그렇지 뭐 하며 그러려니 흡족하면서도 감동의 도가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사라져가는 일본 시골 마을의 전통에 대한 접근과 그리움은 마음에 들었고, 어쩜... 번역이 그리도 시적인지. 감탄하며 봤다. 그래서 나의 별점은 다섯개 만점에 셋. ㅎㅎ ★★★☆☆

이 영화를 보고 돌아오니 마침 올레모바일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죄다 올려주어 옳다구나 다 챙겨봤다. <초속 5센티미터>, <시간을 달리는 소녀>, <언어의 정원>까지.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 그나마 내용이 기억날 뿐, 나머지 2개는 벌써 어떤 내용이었는지 완전 깜깜 서로 헷갈린다. +_+ 영상미로 보나 스토리로 보나 셋 다 확실히 <너의 이름은>만 못했다. 


<라라랜드>

'이 영화는 마법이다'라는 카피를 하도 많이 보기도 했고, 작년부터 그렇게들 재미있다고 주변에서 난리여서 정말 궁금했다. 나도 감동하며 볼 수 있을까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나면 어쩐지 시큰둥해지거나 괜히 시의에 편승하는 느낌이 들어 무조건 외면하는 못된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전에 봐야겠다 싶어 얼른 보러 갔었다. 어린 시절 주말마다 밤늦게 TV에서 보던 할리우드의 온갖 뮤지컬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든지 <사랑은 비를 타고>,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같은--는 참으로 미국적이라 거부감이 들면서도 묘하게 매력이 있었다.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떼거지로 탭댄스나 왈츠를 추거나 군무를 추는 장면에서 크핫 오글거리면서 뭔가 신나는 느낌?

<라라랜드>는 그래서 내겐 '마법'이 아니라 '추억'이었던 것 같다. 단칸방 시절부터 나중에 따로 공부방이 생기고 나서도, 주말에는 TV 영화 핑계로 늦도록 자지 않고 온 가족이 함께 이불 속에 누워 영화를 보다 잠들던, 정겨운 느낌과 참으로 미쿡스러웠던 영화의 이질감이 낳은 묘한 기분을 환기시키는 영화였던 것.

특히나 어려서도 나는 탭댄스 추는 배우들 모습이 그렇게 우스꽝스러웠는데... 그들의 발재간이 아무리 훌륭해도 내눈엔 이상해! <라라랜드>에서도 피아노 치는 라이언 고슬링의 멋진 목소리엔 홀딱 반하겠던데 에이, 탭댄스는 추지 말지 그랬어. ㅠ.ㅠ 왈츠 추다가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도 난 두 사람 몸에 피아노 줄 매달았겠지.. 그런 상상이나 하고 앉았고 말이지. ㅋ

어쨌거나 LA 사는 친구 덕분에 아마도 두 주인공이 아침 노을을 내려다보는 언덕에서 나도 야경을 내려다본 적이 있는 것 같다. 밤하늘 색깔이 확실히 한국과는 다르구나 생각했을 뿐, 그땐 그리 예뻐보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는데, 새삼 다시 가면 또 감흥이 다르려나? 

현실적인 관계와 엔딩도 그렇고, 만약에... 그러면서 상상한 장면들까지 누군가는 폭풍 눈물을 흘렸다던데 메마른 난 그냥 그러려니 하며 봤던 것 같다. 다만 중독성 있는 영화음악은 한참 뒤까지도 흥얼흥얼...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아 저음으로 부르는 라이언 고슬링 목소리 참 좋다. 게다가 그 피아노 치는 장면도 직접 다 연습해서 한 거라고! 

남녀 주인공이 사랑스럽고 특히나 LA 친구가 제발 놀러오라고 하루가 멀다하고 부추기는 상황이 더해져서 별점은 역시나 셋. ★★★☆☆ 트럼프는 꼴보기 싫지만.. LALA LAND에 나도 다시 가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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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대림창고

놀잇감 2017. 2. 4. 21:49

대학시절 학교와 가까웠던 성수동은 내게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멀어도 꼭 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고집을 부리다 어쩔 수 없이 지각할 것 같은날만 가끔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꼭 내가 뛰어가서 갈아탄 지하철은 순환선인데도 이상하게도 꼭 성수역에서 멈췄다. 지하철 탄 보람도 없이!

그러다 졸업후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말이 미국 의류회사 서울사무소 직원이지, 버젓이 MD 명함을 들고 다녔으되 그냥 본사 디자이너며 검사원들 '따까리'였다. 그래서 샘플 개발이니, 생산 지시니 해서 버젓한 사무실 상담만큼이나 원단공장, 봉제공장, 나염공장을 돌아다녔다. 성수동엔 주요 거래처였던 나염공장이 있어서 한달에도 몇번씩 외근을 나갔던 것 같다. 

주로 벽돌을 쌓아올리거나 철제펜스를 치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흉한 모양새에다 겨울엔 무지 춥고 여름엔 한증막이던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샘플 패턴을 한아름 안고 홀로 택시에서 내리면 공단 특유의 기름 냄새 같은 것에 섞여 가죽 냄새, 찌개 끓이는 냄새 따위가 느껴졌던 것 같다.

내가 먹은 나이 만큼이나 오랜 세월이 흘러서.. ㅠ.ㅠ 성수동은 이제 또 다른 문화가 존재하는 공간이 되었단다. 가죽으로 유명한 거리엔 수제화 골목이 생겨나기도 하고, 텅빈 공장 건물에 젊은 작가들이 공방을 차리기도 하고, 갤러리를 열기도 하고... 커피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인들이 모여드니 당연히 카페와 음식점도 속속 생겨났대고.

해서 친구들과 이름하여 '성수동 프로젝트' 날을 잡았다. 말이 거창해 프로젝트지 그냥 서울 경기 곳곳에 흩어져 사는 대학 친구들이 성수동에 모여 '힙'하다는 밥집, 찻집, 갤러리, 공방 따위를 구경하자는 거였다. 근데 또 하필 그날은 영하 9도였던가... 칼바람에 귓불이 꽁꽁 얼어 동상입기 직전인 날씨였고, 서로 잘 알아보고 왔겠거니 기대하는 바람에 괜히 헤매다가 제대로 공방과 갤러리 순례는 하지 못했다.

그나마 추위 핑계로 오래 머물렀던 대림창고를 다들 인상적으로 여겨주어 다행.​

​대림창고 외관은 이렇게 생겼다. 벽에 매달려 있던 옛날 간판을 떼지 않고 그대로 둔데다 '컬럼'이라고 적힌 금속제 새 간판은 눈에 잘 안띄어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휙 지나치기 쉽다. 친구들도 문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뭐 잘못 알고 온 거 아니냐고 나를 의심했을 정도다. ^^;;


​꽤 높은 나무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면 이런 내부가 나오고

넓은 창고형 공간이 툭 트여있는데... 눈앞에 키네틱아트(?) 작품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 뭔가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

 

​넓은 공간은 다시 가운데 벽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뉘어 좀 더 어둠컴컴한 카페와 안쪽에 좀 더 환한 느낌의 레스토랑이 있다. 입구 왼쪽 갤러리 위엔 다락방처럼 생긴 2층도 있는 듯.​

사진은 비슷하게 나왔는데 오른쪽 카페가 훨씬 어둡다. 카페 오른쪽 카운터에서 모든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받은 다음 죄다 셀프로 받아다 먹어야하고 나중에 빈그릇도 각자 반납해야 한다. 가격대도 싸지 않은데 이왕이면 서빙도 좀 해주지... 모델처럼 생신 청년들이 돌아다니며 테이블 정리도 하고 그러던데 좀 더 인건비에 투자를 하시지... 심지어 주말엔 입장료도 만원 받는다고 함!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뜻이려나?

​나중에 찾아보니 대림창고 운영자도 조각가였던가... 예술가이고, 곳곳에 예술작품이 소품처럼 전시되어 있다. 주말 입장료도 받는 만큼 정기적으로 작품이 바뀐다는 것 같다. 암튼 추운 겨울에 찾아간 우리는 엄청나게 튼튼해보이고 화력도 좋은 무쇠난로에 홀딱 반해가지고, 저기다 고구마도 구워팔면 좋겠다... 그런 소박한 상상을 했다. ㅋ 여기서 파는 서양 음식들과 안 어울리려나?


아침도 굶었던 터라 배고파배고파 노래를 부르면서 점심 메뉴를 골라 시켰다. 대체로 간도 슴슴하고 원재료에 충실한 싱그러운 맛? 버섯이 잔뜩 올라 있던 피자도 길쭉하게 생겨서 괜히 정겹고 담백한 맛이라 짠 음식 질색하는 친구들 모두 흡족해했다. 파스타도 괜찮다는 평을 받았는데 만오천원 쯤 하는 가격이면 당연히 맛있어야 하지 않나? ;-P 스테이크 종류는 디너 메뉴라며 점심땐 아예 팔지도 않던데 4만원 가까이 했던 듯... 

왼쪽은 샐러드까지 4가지를 시켜서 합이 7만 8천원 나왔던 그날의 오찬 사진이다. 4명이 먹기에 적당했는데 그 중 1명은 워낙 소식하는 사람이라 나 같은 대식가만 모이면 모자랄 지도 모르겠다. ^^; 암튼 스테이크 샐러드는 확실히 맛있었음! 

오른쪽 사진은 옆 테이블에서 시켜놓고 먹길래 모양도 하도 예쁘고 맛도 궁금하여 한참 수다로 배를 꺼뜨린 뒤에 다시 주문했던 디저트 메뉴 '화가의 낮잠'이다. ㅎㅎㅎ 동그란 그릇엔 초콜릿 무스가 담겨 있고 몽키 바나나를 절반 갈라 구운 듯 그 위에 설탕 시럽을 뿌려 굳혔다. 모종삽에 든 흙처럼 생긴 건 과자와 초콜릿 부스러기.. 구운 마시멜로 두 덩어리도 뒹굴고 있는데, 암튼 맛보다도 유화 캔버스를 활용한 플레이팅이 참신하고 너무 예쁘다며 반색했더니... 언젠가 무슨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써먹었던 콘셉트라는 것 같다. 째뜬 뭐 눈요기로 훌륭하고 행복했으니 되었다. 커피는 맛있었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소호나 브룩클린에 온 것 같아!라며 들떠서 꽤나 즐겁게 수다를 이어갔던 것 같다. 나중에 가죽 거리를 헤매고 헤매다 가오픈했다는 작은 소품숍을 만나서 그나마 한 건 했다고 안심하고는 얼른 또 차 마시러 다른 카페로 들어갔었다.

동네 유명해지고 사람들 몰려들면 결국 또 분위기 이상해지면서 거대자본과 대기업이 밀려들어와 제 모습을 잃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걸 본다. 홍대도 그랬고 합정, 상수, 연남동, 가로수길, 북촌, 서촌, 이태원, 망원동까지... 과연 성수동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블로그에 이렇게 자랑과 허세 쩌는 포스팅 하면 나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에 한몫 가담하는 것임을 알면서 째뜬 또 지난 일기랍시고 세태에 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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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마지막 전시관람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인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이었다. 평창동 가나 아트센터에서 2월 5일까지 전시하고, 입장료는 3천원. 1, 2층 전시관이 꽉 차있고(전시 품목이 총 650점이라고;;), 건너편 구석의 작은 방까지 볼 거리가 많아서 가격대비 거의 횡재한 느낌이었다. 실은... 오후팀이었던 나와 달리 오전에 먼저 보러간 친구 하나는 심지어 주차장 입구로 잘못 들어가서 티켓도 안 사고 그냥 공짜로 구경했다고. +_+ 

언뜻 생각하기론 최순우 선생이 생전에 수집했던 골동품들인가 했더니만, 그건 아니고 한국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공예품을 모아놓은 것 같다. 일상 생활소품 위주라서 재미난 것들도 많고, 예뻐서 갖고 싶은 것들, 신기한 물건들이 참 많았다. 옛날 사람들의 미감이란 참... 대단하다. 살림살이 넉넉한 양반들이나 아름다운 공예품을 누리고 살수 있었겠거니 싶은 마음에 괜히 심술이 난 순간도 있었는데, 사진엔 없지만 어느 일꾼이 벌통 나무 둥치에도 멋드러진 조각을 해놓은 걸 보곤 하하 웃음이 나왔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본능은 양반이건 평민이건 다를 바 없었겠지. 

엄청 추운 날이었고, 전시 보러 들어가기 전에 친구가 휴대폰을 잃어버려 식겁했다가 되찾은 뒤 막 온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에 찬 심경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청 감동하며 신나게 감상했다. 전시장을 나오기 아쉬울 만큼.

사진 촬영도 제지하지 않아서 아메바 기억력을 한탄할 필요 없이 원없이 마구 찍어왔기에.. 이 포스팅은 사적인 나의 감흥 기록보다는 사진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 또 어쩔 수가 없고.. ㅠ.ㅠ 그저 나의 기억 상기용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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