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해당되는 글 136건

  1. 2015.09.07 욕심은 끝이 없다 10
  2. 2015.08.23 머리칼 12
  3. 2015.08.07 인형놀이 2
  4. 2015.08.03 슬픔이 6
  5. 2015.07.28 접시 자랑 3
  6. 2015.07.25 조선의 왕비와 후궁 6
  7. 2015.06.02 석파정 그리고... 2
  8. 2015.04.06 냉이 7
  9. 2015.03.31 이번엔 청치마 재활용 11
  10. 2015.03.25 전도 7

다음주면 궁궐에서 정식으로 봉사를 시작한지 만 2년이 된다.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올해 들어선 정말 회의가 많았고 고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시간 빼앗기고 몸 축내면서 나는 봉사랍시고 과연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면 도무지 명쾌한 답이 안나오니 원... (장점과 단점 목록을 만든지 오래 됐다. -_-;) 

암튼 계속 툴툴거리면서도 왜 '옷 욕심'은 끝이 없는지... ㅋㅋ 화려한 전통한복을 떨쳐입을 순 없지만 이왕이면 그럴싸한, 나름 예쁜 생할한복이라도 입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속으론 버럭~ 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런 데 쓸데없는(?) 돈을 써야하지? 한달에 두번 자원봉사 하려고 수십만원 들여서 따로 옷을 사야하다니 이 무슨... +_+

째뜬 그래서 계절별로 돌려막기하듯 번갈아 입었던 생활한복과 내가 고쳐입은 한복으로 버티며,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곧 그만둘지 모르니 한복에는 더 이상 투자하지 말자, 생각했으나 또 인간이 간사해서 금방 다른 마음이 들었다. 아니 왜... 추석이랑 설날에 활용해서 입으면 되잖아? ㅎㅎ (잘해봤자 한정식집 사장님 같겠지만 ㅠ.ㅠ) 물론 거기에는 일본처럼 평소에도 종종 길거리에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괜한 소망도 한 자락 거들었다. 결혼식장이나 칠순잔치에만 입는 옷이 아니라, 도나기를 아십니까 접근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입었던 머슴 한복 말고, 좀 예쁘고 화사한 평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세상이 오면 좀 좋은가 말이다.

지난 여름엔 특히 일도 밀려 바쁜 데다 집안일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다. 좀 멀리 겉에서 볼 땐 멀쩡해도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드러나는 인간들의 단점도 환멸스럽고 나 역시 까칠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독설을 퍼붓게 되고... ㅋㅋ 

그러다가 또 왜 마음을 다잡았는지는 기억도 잘 나질 않는데, 암튼 몇몇 선생님들한테 미안한 마음(아니 왜?)이 들면서, 3년은 버텨보자, 뭐 이런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좀 더 견뎌보자 결정하자마자 내가 한 짓이라는 게 덜컥 옷부터 새로 사는 거였다. 관두기 아깝게... ㅋ



그러나 새로 산 생활한복의 단점은 아무래도 한복스러워서 궁궐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는 것. ㅠ.ㅠ (난 사람들이 시선 집중이 무섭다. 일종의 무대공포증?) 싸들고 다니면서 갈아입는 한복 말고, 그냥 평소에도 입어보겠다고 장만했지만 저러고 집을 나서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ㅎ

째뜬 그래서 그걸 핑계로 난 또 집에 있는 평상복을 활용해 입을 수 있는(이미 랩스커트와 마 블라우스는 활용중이므로) 아이디어에 골몰했고, 원피스에다가 한복 조끼를 걸쳐입겠다는 결론에 도달, 미친듯이 검색에 나섰다. 하지만 생활한복 파는데를 아무리 뒤져봐도 내 마음에 꼭 드는 디자인과 색깔은 없어! 내 원피스가 연한 팥죽색이라서 더더욱 색깔 맞추기도 어려웠고, 기성복을 사면 한참 길이를 자르고 품도 많이 줄여야했는데 그나마도 비슷한 질감까지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또 다시 나의 결론은? 까짓것 내가만들어 입지 뭐. 

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덜컥 하게 되었는지 원. 아마도 중고등학생 시절 가사시간에 만들어본 한복의 경험과 마고자를 한복 저고리로 고쳐입었던 경험이 쓸데없이 무한한 자신감을 주었던 것 같다. 게다가 유튜브를 뒤져보면 한복 바느질 영상이 종종 보이기도! (깃 바느질은 정말로 그 영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분께 감사~) 

해서 상상으로 어울릴거라 정한 초콜릿 색으로 옷감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뒤, 마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잉여짓은 바쁠 때 해야 제격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너무 난감한 상황이라... 

드디어 원고를 넘기고 나서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시체놀이하듯 잠을 몰아잔 뒤, 몇주 전에 날아온 옷감을 자르고 오리고... 얼추 상상 속의 그 <당의 조끼>가 완성되었다. ^__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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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

투덜일기 2015. 8. 23. 23:45

3주쯤 전에 머리를 확 잘랐다. 점점 짧은 단발이 되어가다보니 아예 묶이지도 않고 어째 더 더운 것 같아서 30대 초반에 하던 경쾌한 커트 머리를 다시 시도해보기로 한 거였다. 가벼운 느낌의 갈색으로 염색까진 할수없겠지만 그래도 얼추 봐줄만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연예인이 한 예쁜 머리 사진을 가져가면 "손님, 이건 고데기예요"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모델들의 예쁜 커트머리 사진 대신 당당하게 커트머리를 한 나의 옛날 사진을 찍어갔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해주세요... 미용사는 이건 단발 아니고 완전 커트인데요, 라면서 나의 결심을 되물었다. 네. 시원하게 잘라주세요.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치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숱이 많아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기에 별 일 없을 줄 알았다. 15년의 세월로 얼굴은 좀 늙었지만 옛날 느낌은 비슷하게 나지 않을까 예상도 했다. 

서걱서걱 생각보다 많은 머리털이 숭덩숭덩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경을 벗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설마, 샘플 사진도 있는데 완전 망치기야 하랴 싶었다. 드디어 커트가 끝나고 드라이도 마무리되고, 미용사는 안경과 함께 거울을 손에 쥐어주며 회전의자를 돌렸다. 허걱... 뒷머리를 거의 정수리까지 죄다 쳐놨다. 납작한 내 뒤통수 어쩔!! 

<시원하게> 자른 건 맞는데, 머리가 너무 짧아서 숱이 많아보이기는커녕 비맞은 생쥐꼴로 머리칼이 머리통에 착 붙었다. 게다가 가뜩이나 정수리부분 훤해져서 속상한데 왜 전체적으로 숱을 그리도 쳐놨을까나... 어휴... 미용실과 음식점에서 미용사와 요리사에게 밉보이는 게 제일 어리석은 짓이라고들 하던데... 미용사는 1) 훨씬 어려보이고 2) 얼굴도 작아보이고 3) 완전 시원한 느낌으로 잘 어울린다고 호들갑을 떨며 자화자찬을 하는데 거기다 뭐라 그럴 수도 없고 돌연 소심 모드 발동하여, 속을 끓이며 그냥 나왔다. 으엉...하나도 안 예쁜데... 흑흑.. 그래도 최소한 머리 감을 땐 아주 간편하겠군, 샴푸 절약되겠다, 그러면서.

가족의 반응은 처절했다. 집안에 자꾸 안보던 남자가 돌아다녀서 깜짝깜짝 놀란다는 것이 엄마의 총평이니 말 다했지. ㅋㅋㅋ 앞머린 또 왜 이렇게 짧아! 내가 머리칼에 별로 연연해하지 않기는 하지만 흠흠... 도무지 드라이로도 감당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네모난 두상을 감출수가 없잖아. ㅠ.ㅠ 몇몇 친구들도 깜짝 놀라며 솔직히 비난을 날렸다. 왜 이렇게 짧게 잘랐어! 니가 오드리 헵번인 줄 아냐! (아닌 줄 알거든요...) 

머리를 자른 나를 본 사람들은 종종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 왜 사람들이 머리칼을 확 자르면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요새도 여자애들이 실연하거나 인생에 큰 실패나 중대 결정을 앞두면 머리칼을 확 자르고 그러나? 남자들은 종종 삭발을 하는 것도 같지만 그건 다 두상 예쁜 사람들이 누리는 패션의 특권이던데. 하여간 "아무 일 없고 너무 더워서 잘랐다"는 나의 대답을 그들은 잘 믿어주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얼굴도 좀 안됐고 (위경련에 시달리면서 마감도 했거든요!) 표정도 안좋고... (당신들 꼴보기 싫어서 그래요!) 

째뜬 갑자기 괜한 관심 끌려고 머리칼 못살게 구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서 민망했다. 3주나 지났는데도 아직 보는 사람마다 깜짝 놀랄 정도니 처음엔 대체 얼마나 짧았던 걸까 실실 웃음도 좀 나고... 집안에 남자가 돌아다녀 흠칫 놀란다는 엄마 얘기도 수긍이 간다. 뒷머리를 하도 쳐놔서 어느 새 밑에 꼬리만 너무 보기 싫게 자랐길래 엊그제는 욕실에 가위 들고 들어가 손수 다듬기를 시도했다. (흥! 그 미용실 다시는 안갈 작정이기 때문에)  더 망칠 수도 없을 거라 여기며 문방구 가위로 싹둑싹둑 아랫머리를 다듬었더니 우와... 뒤통수가 훨씬 덜 납작해보인다! ㅎㅎ

한달쯤 더 길러서 또 다시 꿈의 미용실을 찾아 헤매다 15년전 사진을 들고 이 머리 해주세요.. 그래볼 작정인데 과연... 그땐 성공을 할까. 하기야 머리칼이 그때처럼 힘도 없고 숱도 더 적어졌으니 헛된 꿈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불끈. 어쨌거나 단발의 시대는 가고 당분간 다시 커트의 시대에 진입했다. 찰랑찰랑 긴 생머리나 사자갈기 같은 긴 파마머리는 내 생애 두번다시 없을 테고 앞으로 과연 나는 또 어떤 종류의 머리칼을 하고 다닐지 궁금하다. 할머니가 되어도 정녕코 할머니 뼈다귀 파마는 안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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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놀이

놀잇감 2015. 8. 7. 00:53

이번엔 그럼 또 기분전환 용 포스팅이나 한번 해볼까나. ㅎㅎ 

플레이모빌 사들이기도, 레고 미니 피규어 시리즈별로 사들이는 것도 주춤했다. 좁아터진 집에 더는 수용할 데도 없고... 조카 넷 중에 고딩 하나 빼고, 초딩 셋이 다 나랑 장난감 갖고 놀기를 즐기던 것도 벌써 과거의 일. 올해 들어 중1, 초6이 된 머리 굵은 녀석들은 아직도 장난감 놀이를 하는 고모를 좀 유치하다고 비웃기 시작했다. ㅠ.ㅠ 그나마 열살짜리 막내가 아직도 어린이날과 생일에 레고 시리즈를 다 갖고 싶어서 몸살을 내는 지경이라, 간간이 둘만 몰래몰래(?) 지퍼백에 담아 치워놓았던 레고 피규어와 플레이모빌을 꺼내서 논다. 

그런데 두둥... 블로그 이웃 나무샘께서 인형놀이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심지어 인형 옷을 만들어 판매까지 하셨다고... ㅋㅋ 그러더니 씐나게도 내게도 선물이 날아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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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투덜일기 2015. 8. 3. 23:45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감동적으로 봤다. 영화가 끝나고서... 짬나면 내리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아오.. 다들 그랬겠지만 빙봉 때문에 막판에 울었다. ㅠ.ㅠ 눈물의 가치와 슬픔의 역할을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울 일이 많지 않다. 대놓고 널 울게 만들겠어 장담하듯이 빤하게 슬픈 영화나 현실은 어쩐지 피하고 싶고... 



캐릭터들이 다 사랑스럽지만 역시나 주인공은 슬픔이.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 터틀넥 스웨터... 패션부터 좀 슬프다. 겨울엔 내가 즐겨 입고 또 좋아하는 차림이라 더 감정이입이 돼서 슬펐나? ㅎㅎ


계속 스트레스 상황이기는 하지만 주말엔 그 정도가 극에 달했고 급기야 위경련이 일어났다. 앉아도, 누워도, 엎드려도... 어떤 자세로 있어도 뭉친 속이 괴롭고 아파서 몇시간을 식은땀 흘리며 낑낑대다가 응급실엘 가야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고생을 했다. 하지만 위경련 때문에 응급실 간 사람 따라갔던 경험에 의하면 일단 엑스레이 찍어보고서 진통제였던가 근육 이완제라던가 주사 한 대 놔주고서 의사는 스트레스 상황을 없애야 근본적으로 낫는다고 하나마나 한 소리를 했던 듯. 그래서 그냥 오후부터 무식하게 참다가... 밤중이 되어도 낫질 않으니 자꾸만 병원가자고 다그치는 엄마한테 싫다고, 아파서 말하기도 힘든데 왜 자꾸 말 시키냐고 빽 소리를 지르고는 엉엉 울었다. 어느 순간 아픈데 왜 참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던가...


엄마도 스트레스 요인을 아는 지라, 그래 실컷 울어라 쯧쯧쯧 그러고는 자리를 비켜주셨다. 한참을 꺼이꺼이 울다보면 원래 좀 스스로 웃긴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울다가 웃다가 또 다시 아파서 울다가... 그러고 났더니 꽉 뭉쳐서 꼬여있던 위가 놀랐는지 좀 풀리는 게 느껴졌고 서서히 아픔도 잦아들었다. 휴우... 뻘개진 얼굴 식히느라  찬물로 어푸어푸 세수를 하다가, 슬픔이가 나를 살렸네,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머릿속에서 기쁨이랑 슬픔이랑 서로 껴안고 있을 것 같은 느낌? ㅎㅎㅎ 아직도 밥만 먹으면 위가 뭉치는 느낌이라 좀 두렵지만, 슬픔이를 중심으로 애들이 다 알아서 잘 달래주겠지.. 그러는 중이다. 그리하여 결론은 디즈니 픽사의 위대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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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자랑

놀잇감 2015. 7. 28. 22:45

친구가 도자기 공방하는 친구에게 특별 주문해서 만든 스누피 접시를 선물했다 ^^
아까워서 전시해놓고 구경해야겠다고 했더니 매일 사용하는 막접시로 만들어 달랬다며 당장 쓰라고 종용. 사용 인증샷도 보내라고... 
해서 받아온 날로 당장 샐러드를 담아 먹었고 진짜로 거의 매일 써먹으며 친구에게 보고용 사진을 찍었다 ㅎㅎ

포스팅을 위한 삶을 인증하는 것 같아 좀 민망하니 사진은 접어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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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에서 8월 30일까지 <조선의 왕비와 후궁>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너무 더워서 경복궁이 뜨끈뜨끈 했던 자원봉사 날, 여전히 메르스 여파로 외국 관람객은 드물고 내국인 관람객 역시 해설엔 관심을 안 보이길래  무더위도 피할 겸 고궁박물관으로 '피서'를 가 전시 설명을 들었다. 

오래도록 사극에서 하도 왜곡된 모습만 부각되어 조선 왕궁의 여인들이라고 하면 으레 왕 한 사람을 놓고 궁중암투나 벌이고 세도정치와 당파싸움에 희생되고 마는 좀 한심한 존재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연히 그렇지만도 않았고 의외의 재미난 모습들이 많다. 뭐니뭐니해도 왕에 버금가는 최고의 존재였으니 말이다. 왕이 지존이라 품계가 없듯, 왕비도 품계가 없단다. 내명부 품계는 후궁부터 1품, 2품... 단계별로 희빈, 소의, 숙의 같은 명칭이 주어진다고. 

왕의 대례복인 구장복에 온갖 복잡한 뜻이 담겨있듯, 왕비의 대례복과 장식에도 별별 의미가 다 많아! (벌써 다 까먹었음 ㅋㅋ) 암튼 실제 영친왕비가 입었던 옷도 있고, 복원된 왕비의 복장도 있고... 볼 거리 읽을 거리가 쏠쏠한 전시다. ​

​꽤 크게 제작한 이 전시포스터를 원하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해서 좋아라 받아내선 고이고이 집까지 모셔왔는데 아오... 좁아터진 우리집에 붙이기엔 포스터가 워낙 크고, 이렇게 두 장 연결해서 나란히 붙일만한 벽이 없다. ㅠ.ㅠ 따로 붙이면 느낌이 안사는데 잉.. 하는 수 없이 이층 올라오는 계단 벽에 붙여야하나... 그러는중. 에효


아래 사진은 왕비가 가례(혼례식) 때 입었던 대례복 '적의'(翟衣)를 마네킹에 입혀놓은 거다. 아래 깔린 멍석도 실제 유물인데 끝부분이 짤렸더라. 옷에 들어간 꿩무늬가 글쎄 그 옛날에도 자수를 놓은 게 아니고 죄다 직조한 거라고! +_+ 대한제국 들어 고종이 황제를 칭한 뒤 황복을 입었듯이 황후는 저 꿩무늬가 12줄인데.. 영친왕비는 급이 좀 아래라서 9줄 들어간 걸 입었다네. (원래 왕비의 적의는 그러니깐 모두 꿩이 9줄) 머리장식이 하도 거대하여 저러고 하루종일 있으면 담 걸리는 건 피할 수 없겠다. 보석들이 거짓말 좀 보태서 주먹만하다.. ㅋㅋ

이옷들은 원삼인데.. 품계에 따라 색깔 구분이 있다고 들었으나 벌써 깜깜. 빨간색이 왕비였던가... 노란색이 왕비였던가. 황색이 왕을 뜻하니 노란색이 왕비 옷이었을 것도 같고... ㅎ 곤룡포가 빨간색이니 빨간색이 왕비였을 것도 같고... 으음.. 황색 곤룡포는 고종이 황제를 칭하고 나서나 입었으니 저 노랑색은 순정효황후 때나 입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요 장면 설명할 때 사진 찍느라고 제대로 해설을 못 들었다. ㅠ.ㅠ 기억나는 건 '원삼'의 깃 부분이 겹치지 않고 둥글게 마주치도록 되어 있어서 원삼이라는 듯. 웬만한 저고리는 다 깃이 겹쳐지지만 예복 중에선 저렇게 깃이 안 겹쳐지고 둥글게 맞섶으로 처리된 게 많다는 것 같음. 하여간 원삼은 앞 자락이 짧고 뒷자락이 길다! ^^

그밖에 왕비가 출산을 할 때 이부자리를 어떻게 겹겹이 깔고 배치했는지 (딸인지 아들인지 모르지만 일단 원자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어나자마자  '군자남면-군자는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나라를 다스린다'의 원칙에 맞도록 왕비는 남쪽에 머리를 두고 누웠다.. ㅋㅋ) 출산 후 태는 어떻게 보관하는지, 산후 구완은 어떻게 하는지 별별 게 다 기록으로 남아있고 궁중문학이랄지 왕실 여인들의 호방하거나 애틋한 필체와 글씨도 볼 수 있다. 혜경궁 홍씨와 명성황후 글씨에 새삼 깜놀. 명필이더라... 

왕실잔치를 그린 병풍 그림도 미국에서 원본을 빌려와 전시하고 있는데 아오 섬세하여라... 흐릿하게 사진으로만 뽑아가지고 구경하다가 실물을 알현하니 한참을 감탄하며 봤다. 대충 휘리릭 둘러본 거라 한번 더 꼼꼼히 봐야지 싶으나 과연... 고궁박물관은 무료전시 치고 매번 훌륭한 기획을 하는 듯! 10주년 기념전시라 좀 더 신경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3만8천원인가 하는 전시도록도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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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그리고...

놀잇감 2015. 6. 2. 21:49

이런저런 집안일로 한숨도 못자고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오래전부터 해놓은 약속이라 젖은 솜 같은 묵직한 팔다리를 움직여 일찌감치 아침부터 부암동으로 나갔다. 부암동 주민께 직접 설명 듣는 석파정 답사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알려진 석파정은 몇년 전 자하문 터널 바로 앞에 서울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미술관 입장료를 내면 덤으로 후원 구경이 가능하다. 개관전 때부터 눈여겨 보았지만 노상 버스 타고 오가는 길에 있는데도 이상하게 구경하게 되진 않았는데, 아는 분 따라가면 입장료 안내고 석파정 구경을 할 수 있다는 얘길 들은 뒤부턴 더 내 돈 주고 구경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계절 좋을 때 제발 한 번 데려가주세요... 그러면서 비벼대고만 있었던 것. 

재작년 가을 부암동 답사 땐 시간이 부족했던가 미리 이야기를 해놓지 않아서 석파정만 쏙 빼놓고 구경을 다녔었는데 요번엔 석파정이 '메인'이었고, 구한말 최초의 요정 가운데 하나였다는 '오진암'을 옮겨다 놓은 예쁜 한옥집'무계원'과 '윤웅렬 대감 별서'는 다시보기 같은 부록이었다. 그래서 사진도 석파정이 대부분...

뜬금없는 화장품 면세점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으로 득시글거리는 서울미술관 입구를 피해서 우리는 <삼계동>이라는 현판이 달린 옆문으로 입장을 했는데, 그런 어마어마한 특혜는 석파정 후원을 공유하다시피 바로 윗집에서 살고 계신 이날의 주인공 덕분이었다. 부암동과 윤동주 문학관 해설도 하고 계신 C선생님의 모습은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다. TV에 부암동 해설하시는 장면도 방송된 나름 유명인사시라 슬며시 이런 데 공개해도 되지 않을가 싶은데... 고민되면 나중에 삭제할지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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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투덜일기 2015. 4. 6. 11:15

냉이로 된장찌개를 끓였다. 요즘 냉이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거라 향이 옛날 같지 않다, 는 것이 엄마의 총평. 까다로운 노친네가 트집을 잡거나 말거나, 나는 식탁에 앉아 된장찌개 한 입 떠먹은 순간 입안으로 확 퍼지는 냉이 향기에 나도 모르게 아, 봄맛이네....그랬다. 음식의 '맛'이란게 대부분 기억의 총합이고 추억이라더니만, 봄마다 먹어온 냉이 된장찌개가 내 두뇌에 그렇게 새겨놓은 탓일 거다. 냉이를 먹으면 봄이다, 이런식으로.  


잔털에 붙은 흙이며 지저분한 잎사귀 떼어내고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냉이는 봄이 되어도 내가 즐겨 사는 재료가 아니다. 그런데도 봄에 냉이로 국이든 찌개든 나물이든 한번쯤은 해먹어 줘야 봄을 봄답게 맞는 것 같은 마음 역시 오랜 세월 세뇌된 머리가 짜내는 계절성 습관이겠지? 마트에 나온 냉이를 조금 째려보다가 (아 손질하기 귀찮아;;) 기어코 카트에 한 팩 넣었으니 하는 말이다. 


어렸을 땐 봄에 꼭 엄마가 끓여주는 쑥국, 냉잇국이 싫었다. 쑥국은 너무 쓰고, 냉잇국에선 흙냄새가 난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카 ㅈㅎ이가 '걸레냄새가 난다'며 모든 버섯을 치떨리게 싫어하고 못먹는 것과 비슷한 듯하다. 조카들은 싫은 음식은 죽어도 안먹고 버텨도 되지만, 그 옛날 어린 나는 싫은 음식도 꾸역꾸역 참고 먹어야했다. 편식은 안 돼! 음식 귀한 줄 알아야지. 음식 남겨서 버리면 죄받는다. 지옥에 가서 평생 버린 음식 다 먹어야 된대. 몸에 좋은 거야. 무조건 먹어... 밥상에서 이런 말로 잔소리를 했던 건 주로 할아버지와 엄마였다. 때로는 꼴깍꼴깍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느라고 눈물이 핑 돌면서도 (검정색 수건처럼 생긴 천엽이라든지, 금방이라도 피가 줄줄 흐를 것 같은 생간, 살코기보다 허연 비계와 껍데기가 더 많은 돼지고기 수육!) 난 또 '솔선수범' 착한 누나 역할에 힘쓰느라 씹지도 않고 대충 꿀꺽 삼키고는 칭찬을 듣는 쪽을 택했다. (완강하게 싫다고 왜 말을 못했니... 응?) +_+ 


어쨌든 쑥국 싫어! 냉잇국 맛없어! 엄마한테 투정을 부려도 아예 안 먹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닌가? 그냥 내가 괜히 잘난척 하느라고 먹으라는 대로 다 따라 먹었을 수도 있겠다. 편식 심한 막내동생은 막 울면서 끝까지 버텼을텐데! 닭백숙은 좋아라 먹었어도, 누런 기름이 둥둥 뜬 백숙 국물은 아버지 빼곤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엄마는 어떻게든 그걸 우리한테 다 먹이려들었었다. 하지만 막내는 차라리 맨밥을 빡빡 빨아먹으면 먹었지 절대로 안 먹고 도리도리... 어떻게든 '영양가 많은' 닭국물을 먹이겠다는 일념하에 엄만 라면 좋아하는 막내를 위해, 백숙국물로 라면을 끓여바쳤지만 한 입 딱 먹어본 막내는 그 좋아하는 라면도 외면했다는 일화를 아직도 가끔 들려주신다. 막내동생의 막내아들 ㅈㅇ가 편식 심한 건 다 지 애비 닮아서 그런 거라며...


씁쓸한 맛이 나는 음식 맛을 즐기게 되면 그게 다 컸다는 증거라던가. 하지만 씁쓸한 쑥국과 흙냄새 풀풀나는 냉이를 언제부터 거부감 없이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데 참, 냉이 향을 흙냄새로 느끼는 건 나뿐일까? 하긴 뭐, 익힌 당근에서 나는 특유의 향을 나는 어려서부터 석유 냄새로 인식했고, 익힌 당근을 억지로 먹으면 버스멀미 하는 느낌에 시달렸다. 그래서 지금도 별로 즐기진 않음.  암튼 쑥이나 냉이를 딱히 즐긴다기보다는 그냥 계절맞이 절차로 참아넘기다 보니 먹을만하게 되었다가, 오랜 습관이 쌓이면서 조건반사처럼 계절에 따라 내가 먼저 찾게 된 거다. 제철 음식, 제철 과일은 어떤 영양제보다 몸에 좋다는 이야기에 심히 혹했을 수도 있다. 워낙 먹는 거에 탐닉하는 인간이라서... ㅎㅎ 


모전녀전이라고 어제 성묘가며 들른 떡집 앞에서 엄마는 차창을 내리고 내게 소리를 질렀다. '쑥개떡'도 있으면 사오라고... ㅎㅎ 그렇지, 봄은 또 쑥개떡의 계절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이른 탓인지 아쉽게도 쑥개떡은 보이지 않았다. 쌀가루보다 쑥이 더 많이 들어가 떡인지 쑥뭉침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 그 옛날 엄마표 쑥개떡 역시 난 별로 안좋아했다. 이름도 마음에 안들어.. 개떡이 뭐냐 개떡이... 오죽하면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있을라고. 떡이라면 모름지기 맛있는 소가 들어간 바람떡이나 송편, 고소한 콩가루를 입힌 인절미, 달콤한 백설기 정도는 돼야지 말이야. 어려서는 바람떡이나 송편, 절편을 먹을 때도 꼭 '하얀색'만 골라먹었고, 쑥색은 절대 피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쑥떡 쪽에 먼저 손이 간다.게다가 단 음식들이 싫어지면서는 제일 먼저 손이 가는 떡이 쑥절편... ^^; 


그렇다고 제철음식 먹으러 주꾸미 축제니, 새우축제니 하는 데 굳이 찾아갈 만큼의 부지런함은 없다. 일단 '축제'라고 이름붙은 공간의 번잡함과 시끄러움이 싫어! 특별히 더 싸게 파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동네 횟집에도 '봄 도다리', '주꾸미 입하'라고 적혀 있지만 그건 별로 땡기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억지로든 즐겨서든 많이 먹어본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내심 그래서 다행이다. 밥순이의 삶이 꽤 오래 되어도 아직 어류를 맨손으로 손질하는 거 영 마뜩찮다. 봄마다 도다리 쑥국 이런 거 끓여먹고 싶어진다면 얼마나 귀찮겠나! 어우 비린내 생각만해도.. ㅠ.ㅠ 그나마 냉이가 낫지. 올봄 추억의 제철음식은 어제 먹은 쑥절편이랑 냉이 된장찌개로 만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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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서랍장을 정리해 옷을 또 한 보따리 내놓으며, 청치마가 눈에 띄였다. 청바지와 달리, 십대소녀가 발랄하게 입는 미니스커트가 아닌 다음에야 도무지 어떻게 입어도 멋내기 어려운 옷이 청치마가 아닐까 하는 게 나의 생각. (근데 그땐 왜 샀니;;) +_+ 수지 정도나 된다면 모를까. 암튼 그치만 또 아까워서 도저히 못 버리고(진짜로 몇번 안 입어서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다 ㅋㅋ) 10년도 넘게 서랍장에 모셔뒀던 걸, 재활용함에 내던지지 않기로 새삼 결정한 이유는 에코백으로 리폼해야겠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지난번 청바지로도 한번 만들어봤으니, 치마로는 완전 식은죽 먹기 아닐까나.  


하지만 재봉틀 없이 또 손바느질을 해야한다는 난항과 게으름과 건망증이 겹쳐 그간 시도를 안하고 있었는데, 뭐든 잉여짓은 괜히 더 바쁠때 하게 되는 묘한 심리가 또 발동했다. 마침 고속터미널 상가에서 안감으로 쓸만한 천도 발견했겠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바느질을 시작했다. ^^; 


청치마는 밑단을 조금 잘라서 끈으로 쓸 천을 확보하고 그냥 아래를 꿰매면 일단 몸통 완성! 앞뒤로 주머니가 있으니 안감에 굳이 주머니를 달 필요도 없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의외로 가방끈 부분... 데님 천을 접어서 두겹으로 꿰매는 거 힘들고 천도 모자랄 것 같아 덧붙일 용도로 체크무늬 원단을 따로 사왔는데 천조각 아낄 욕심에 재단 방향을 아무케나 했더니 막 늘어나는 게 아닌가... ㅋㅋ 다림질 귀찮아서 손으로 꽉꽉 접어 자국 만든 뒤 꽉 쥐고 하느라 손가락에 쥐날뻔...


ㅋㅋㅋ 끈 달기 전 나름 과정샷이다. 


시접이 겹쳐진 데님천에 바늘 꽂느라고 진짜 손이 부들부들... 재봉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웬간한 재봉틀로는 저 두꺼운 가방끈을 박을 수 없을 거라고 자체 결론을 내렸다.


다음으론 안감 넣기~ 

듬성듬성 대충 꿰맨 안감을 뒤집어서 가방 안쪽에 씌워놓은 상태로 아직 겉천과 연결 전..

작년여름 방학때 ㅈㅎ이랑 같이 바느질 놀이 하며(?) 오래 된 수건으로 만든 고래 쿠션이 바늘쌈지 노릇하느라 찬조출연했다. 왼쪽에 시커먼 천이 가방끈 안쪽에 덧댄 원단이다. 


커피잔 패턴이 귀여운 안감 위쪽을 안으로 접어넣고 공그르기나 감침질로 마무리하면 끝!

가방의 실제 색감은 오른쪽에 가깝다. 검은색에 가까운 진청원단이어서... 

두번째라서 확실히 완성도가 첫번째 만든 것보다 훌륭하다고 자화자찬! 노상 들고다니던 검정색 천가방을 조카에게 빼앗기고나니 만만하게 들고다닐 가방이 없어서 가방을 하나 새로 사야하나 고민중이었는데, 당분간 가방 쇼핑욕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ㅎㅎㅎ 한땀한땀 장인정신이 깃든 명품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ㅋㅋㅋ 완전 마음에 든다.


손끝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도 계속 폭발하는 생산성을 주체하지 못해 심지어 머리띠도 만들었다. ^^; 

손뜨개로 떠서 안에 솜까지 넣어 여기저기 브로치로 달고 다니던 은색꽃을 그냥 목공풀로 검정머리띠에 붙였다. 요새 머리모양이 맘에 안들고 속알머리가 자꾸 훤히 들여다보여서 머리띠를 애용중이다보니괜스레 머리띠 욕심 만땅.. ㅠ.ㅠ 


하지만 머리띠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 싶어도, 테 모양이 조금씩 달라서 '윗머리가 네모난' 내 두상에 잘 맞고 한참 하고 댕겨도 옆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 편한 머리띠를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헐렁하면 또 머리숱도 없어서 막 흘러내리기도... 

거기다 안경까지 써야하니 까다롭게 고를 수밖에 없다. 


해서 좀 잘 맞는다 싶은 머리띠는 장식이 떨어지거나 망가져도 안버리고 재활용.. ^^; 그런 덕분에 이 또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공예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ㅋㅋㅋ 안쪽 어딘가 '핸드메이드'라고 라벨이라도 붙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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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투덜일기 2015. 3. 25. 17:55

대화든 글이든 종교는 웬만해선 피해야할 주제임을 알지만 생각난 김에 일단 적어봐야겠다.

 

교인이 아니어도 어렸을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가본 경험들은 '누구나' 다 있으려나? 하여간에 서울 장안엔 요새도 그 옛날에도 교회는 동네마다 서너개씩 교파도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내 친구 중엔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지식과 정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어린 친구들이 기독교 신자가 되고나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으니, 그건 바로 '열혈 전도' 심리였던 것 같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친구가 지옥불에 떨어진다는데, 어리고 순진한 마음에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겠나. 그렇다고 무작정 교회로 끌고 갈 순 없는 일이고 (더욱이 우리집에 놀러 와 보면 대문과 안방에 부적도 붙어 있는데!), 적당한 기회를 보다가 불쌍한 친구를 자기네 교회로 데려가는 날을 만들곤 했다. 각종 과자와 사탕으로 온 동네 아이들을 다 유혹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은 더할 나위 없는 전도 주간이었고, 그 밖에도 '부흥회'라나 해서 자기가 연극을 하니 보러 오라고, 맛있는 것도 준대, 라며 내 손을 이끌기도 했다.

 

거절 잘 못하는 병은 그때부터 익히 발현되어 있었으니, 불교신자인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도 (가정환경조사서 종교 항목에도 매년 버젓이 '불교'라고 적기도 했었다) 나는 '딱 한번만' 와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마다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나 크리스마스 발표회는 주로 저녁 시간이어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영악하게도 나는 '숙제'와 '일기' 핑계를 댔던 것 같다. 선생님이 다녀와서 일기 쓰랬어, 라고 하면 무사 통과되는 식.

 

목청 높여 고래고래 소리치는 목사님의 설교는 좀 무서웠지만 멋진 옷을 맞춰 입은 합창단의 노래는 좋았던 것 같고, 과자와 사탕을 봉지에 담아 일일이 나눠주는 것도 신났다. 하지만 친구 소개 순서에 일어나서 이름을 말하는 시간이 오면 심장이 막 쿵쾅거렸다. 과자 욕심에 자기소개 시키고 돌아가며 교인들이 막 친한척하는 것만 없으면 그런 초대에 자주 응할 텐데, 하는 마음도 있었던 듯...


암튼 문제는 그렇게 부흥회나 성탄절 특별 예배에 쫓아가고 나면, 이후에도 일요일 아침마다 친구가 찾아와 같이 교회에 가자고 졸라댄다는 사실! 아 놔;;; OTL  엄마가 딱히 교회를 못다니게 했던 것 같진 않은데 (학창시절 울 엄마도 불교신자 외할머니에 대한 괜한 반발심에 교회 다닌 적 있단다 ^^;) 친구따라 '주일학교'에 따라갈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아침잠이 많다는 것. 생각해보니 일요일 아침에도 어쩔 수 없이 몇번 교회엘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곧바로 못할 짓이다, 라고 느꼈던 듯하다. 너무 피곤해... 그리고 따로 남겨 성경공부 시키는 것도 싫고... 


한번은 니가 교회엘 안다녀서 천당에 못가고 지옥에 갈까봐 걱정되서 자기 전에 맨날 기도까지 한다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자기는 '모태신앙'이라고 하도 진지하게 말을 해서, 나는 그말이 엄청 심각하고 무서운 낙인처럼 느껴졌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모태신앙이면, 일요일에도 절대 늦잠 못자고 교회에 가야하고 뭐든 먹을 거 앞에서 손부터 나가는 나와 달리 중얼중얼 기도부터 올려야하는 구나... 나는 모태신앙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뭐 그런 생각?


심지어 대학생 시절에도,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끔 친구따라 교회 가기는 몇년에 한번씩 연중행사로 이어졌다. 은근히 나를 전도하고 말겠다는 친구들의 고집과 인내심 덕분이었을까? 거절을 제대로 못하기도 했지만, 당시엔 그저 재미 삼아서, 친구가 맘에 품은 '교회 오빠'의 얼굴을 확인하러 한번 가주마,혹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 새 신자 동원 잔치에 할당 머릿수를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친구를 돕는다는 의미도 있었다. ^^; 어느새 집사님이 되신 친구가 새로 지은 교회에서 특별 예배를 올리는 날엔 선물 준다고 꼬드기며, 와서 제발 자리 좀 채워줘... 그러기도 했고. 그러면 다른 교회엘 다니는 친구도, 성당엘 다니는 친구도, 무소속(?)인 나도 무료 장소 제공 받고 모임 하는 셈치자 하며 참석을 해줬던 거다.


하지만 교인 친구들도 내가 '전도'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30년지기 친구 하나가 새삼스레 자기네 교회에 한번 오라고 옆구리를 찔러대고 있다. 특별히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그러니깐 그냥 한번 가주는 걸로 끝이 아니란 얘기!), 순전히 내가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아서 마음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 내가 그간 너무 징징거렸던 탓일까? 카톡으로 몇번 그런 얘기를 하길래, 종교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그냥 두라고 킥킥 거렸는데  요번엔 아예 자기네 교회 안내 팜플렛까지 가지고 와서 (영어 예배를 보는 교회란다) 열혈 전도를 하시네. 돌연 스트레쑤~! 


하여간 그래서인지 어제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개천변 공원에서 미스코리아 띠처럼 어깨에 'OOO구 제7교구'라고 적힌 노란 띠를 두른 교인들이 '차 한잔 드시고 가세요~!' 외치며 행인들의 팔을 잡는 걸 보며 반사적으로 얼른 멀리 도망쳤다. 만인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기꺼운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나... 싫은 사람은 그냥 좀 내버려두었으면. 나 이만하면 그럭저럭 행복하단 말이오.. ㅠ.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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