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마지막 전시관람은 혜곡 최순우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전인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이었다. 평창동 가나 아트센터에서 2월 5일까지 전시하고, 입장료는 3천원. 1, 2층 전시관이 꽉 차있고(전시 품목이 총 650점이라고;;), 건너편 구석의 작은 방까지 볼 거리가 많아서 가격대비 거의 횡재한 느낌이었다. 실은... 오후팀이었던 나와 달리 오전에 먼저 보러간 친구 하나는 심지어 주차장 입구로 잘못 들어가서 티켓도 안 사고 그냥 공짜로 구경했다고. +_+
언뜻 생각하기론 최순우 선생이 생전에 수집했던 골동품들인가 했더니만, 그건 아니고 한국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조선시대 공예품을 모아놓은 것 같다. 일상 생활소품 위주라서 재미난 것들도 많고, 예뻐서 갖고 싶은 것들, 신기한 물건들이 참 많았다. 옛날 사람들의 미감이란 참... 대단하다. 살림살이 넉넉한 양반들이나 아름다운 공예품을 누리고 살수 있었겠거니 싶은 마음에 괜히 심술이 난 순간도 있었는데, 사진엔 없지만 어느 일꾼이 벌통 나무 둥치에도 멋드러진 조각을 해놓은 걸 보곤 하하 웃음이 나왔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는 본능은 양반이건 평민이건 다를 바 없었겠지.
엄청 추운 날이었고, 전시 보러 들어가기 전에 친구가 휴대폰을 잃어버려 식겁했다가 되찾은 뒤 막 온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에 찬 심경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엄청 감동하며 신나게 감상했다. 전시장을 나오기 아쉬울 만큼.
사진 촬영도 제지하지 않아서 아메바 기억력을 한탄할 필요 없이 원없이 마구 찍어왔기에.. 이 포스팅은 사적인 나의 감흥 기록보다는 사진 스크롤의 압박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 또 어쩔 수가 없고.. ㅠ.ㅠ 그저 나의 기억 상기용일뿐.
희한하게도 전시장에서 제일 먼저 본 것이 '요강'이었다. ㅋㅋㅋㅋㅋ 중년의 우리들은 어린 시절 죄다 요강을 사용해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실제로 집에서 사용한 요강의 재질이 사기였다는 둥, '스뎅'이었다는 둥 킬킬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전시된 요강은 방짜유기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오른쪽 놋 요강과 함께 소음 방지를 위해 여성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종이 요강'!
왼쪽 앞부분의 검은색 단지가 바로 종이를 꼬아 만든 '지끈'으로 엮은 종이 요강이다. 지끈으로 방수되는 요강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말 놀라워라 놀라워... +_+
맨 위쪽 알록달록하고 길쭉한 건 바느질용 '자'이고 그 아래는 바늘통이었던가?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활옷은 꽃무늬가 저게 다 빽빽한 자수다. 한벌 수놓으려면 최소 6개월쯤 걸린다는 것 같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물려 입거나, 온 고을에서 돌아가며 입었다지 아마. 어휴...
왼쪽 아래 인두도 예쁘고(손잡이 정교한 것좀 보소!), 사각형이든 아니든 실패 하나도 예사롭지가 않다. 옛날 우리 할머니가 쓰시던 실패에도 옷칠을 하고 뭔가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기억이 아련히 나는데... 전쟁통 피란 통에 조선시대 물건이었을 리는 없겠지만 문득 그 실패가 막 아깝고 그리워졌다.
흔한 나무쟁반이려니 휙 지나칠 뻔 했던 이 물건들은 반짇고리란다. 한쪽 구석에 달린 작은 나무함에 바늘을 보관했고, 나머지 골무니, 실이니 하는 바느질 도구와 천을 여기 담아 일을 했겠지. 양갓집 규수나 마님이 자수 틀을 세워놓고 수를 놓는 광경이 막 상상되는 것 같았다. 전생에 침방 나인이 틀림없는지 바느질 도구에 특히 침을 질질 흘렸음. ㅋㅋ
둘이 나란히 있던 물건은 아니지만 가로사진이니 그냥 두개 붙여야겠다.
부채 섹션에서 '옛날 사람'인 우리가 또 반색했던 물건이다. 어린 시절 소풍 가면 꼭 이런 모양의 종이 부채를 하나씩 사오지 않았던가 말이다! 한바퀴 휙 둘러서 펼쳤다가 몇번 부치면 다 찢어지고 말았지만, 소풍 갈 때마다 괜히 사고싶어했으며, 여름이면 종이를 빽빽하게 앞뒤로 접었다가 절반 꺾어 풀로 붙여서 친구들이랑 만들기도 했던 부채가 그 옛날 조선시대부터 사용했던 휴대용 부채였다니 ㅎㅎㅎ
올 여름엔 빳빳한 종이 사다가 한번 다시 만들어봐? 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시장에서 딱 하나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면 나는 이 소반 중에 하나를 골라 갖겠다!고 생각하며 정말 심혈을 기울여 하나를 고르고 또 골랐는데 하나같이 정말 반질반질 탐이 나는 작품이었다. 막연하게 '개다리 소반'이라고만 알고 있던 이 앙증맞은 1인용 밥상, 찻상들은 원래 이름이 '호족반'이란다. 개다리가 아니고 호랑이 다리였어! '개다리 소반'도 없는 건 아니어서, 오른족 사진 중 왼쪽에서 두번째, 한쪽으로만 굽은 모양의 밥상 다리가 바로 주인공이다.
양반집에서도 군자의 미덕을 실천하고자 평소엔 반찬 서너가지에 장, 밥과 국을 올려 먹었기에 요 작아보이는 소반으로도 충분했다는 것 같다. 하긴 궁궐 연회나 잔칫집에서도 1인용 소반으로 각자 대접받았으니 내용물이 달라졌으면 몰라도 왕족이 아니고서야 혼자 커다란 상에 앉아 밥 먹은 사람은 없었겠다.
몇년 전 H백화점에서 밥상, 소반 특별전 할 때 제일 싼 게 4-50만원하는 걸 보고 흐엑~ 놀라 뒤돌아섰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은 더 비싸졌겠구나 싶다. 일단 전통 기법으로 소반 만드는 장인 분들의 맥이나 안끊기면 다행이지 ㅠ.ㅠ
여기다 배추와 무를 다듬어 담았다가 김치를 버무리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그러다가 박박 설거지 하기 참 힘들었겠지, 무거워서 어떻게 다루었을까 온갖 쓸데없는 걱정과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마루 한 구석에 놓고 겨울에 과일을 담아놓고 집어다 먹으면 좋을 것도 같고.. 에효.
이건 다식판과 떡살.
다식판은 십수년 전 별별 걸 다 집에서 장만하고 싶어했던 왕비마마 덕분에 우리집에도 하나 있기 때문에 그리 신기할 게 없었는데, 저 동그란 떡살은 엄청 탐났다. 스탬프가 따로 없어! 물고기 모양의 떡이라니... 아 먹어보고 싶다. ㅠ.ㅠ
혹시 이게 국화빵, 붕어빵의 원조가 아닐까? ㅎㅎ
등불 가운데 신가했던 건 가운데 놓인 동그란 것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쓰는 등불이여? 궁금했는데 일종의 손전등 역할이라고 보면 되겠다. 들어보면 아랫부분이 뚫려 있는 모양새. 야경꾼 같은 사람들이 손잡이를 잡고 안에 등불을 붙여 옆으로 들어서 비추는 방식이다. 돌이켜보니 사극에서 저런 등불 들고 가는 장면을 본 것도 같다. 촛대도 예쁘고, 등잔 장식도 정교하고... 호롱불도 우아하고..
오른쪽 사진은 대문장식이다. 울 외할머니댁엔 최근까지도 나무대문이 있어서 빗장을 열고 닫는 걸 해봤는데, 물론 저렇게 정교한 물고기 모양 장식은 아니고 그냥 둥글둥글하고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외할머니댁을 차지한 외삼촌이 과연 그 나무대문을 어찌하고 살고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그 동네도 재개발은 물 건너간 거 같던데 흥!
마지막에 하마터면 못보고 나올 뻔하다가 사람들 따라서 골목을 이리저리 건너가 본 작은 전시실엔 도자기류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약간 찌그러진 것도 같은 이 달 항아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뒤쪽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스며든 오후의 햇살이 푸르스름한 배경을 이루고 그 앞으로 따뜻한 조명을 받고 있는 동그란 항아리를 보면서, 아 이걸 왜 달 항아리라고 불렀는지 새삼 실감이 들었달까.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오려고 이런저런 사진앱을 죄다 동원했는데 그나마 이게 가장 비슷한 느낌으로 남은 듯.
일상에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름다운 물건들을 쓰고 살았을 사람들이 마냥 부럽다가, 막상 그들이 이런 사치와 우아함을 누리도록 밑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렸겠나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것만은 아니지 싶다가, 어차피 문화라는 것이 대체로 가진 자들이 향유하는 것이지만 못 가졌더라도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것이야 뭐 다 마찬가지려니 했다. 그래서 나 또한 허세 같아 민망하면서도 이런 거 구경다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