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러 가며 귀여운 정지훈과 임수정을 만나러 간다는 기대와 더불어 과연 처절한 인간의 복수심을 다뤄온 감독이 그려내는 로맨틱 코미디란 게 어떤 걸까 호기심이 동했지만, '정신병원'이라는 배경에 대해서는 우려가 컸었다.

내겐 <러브 액추얼리>의 형편없는 짝퉁 같은 느낌이었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화에서 다룬 정신병동이 얼마나 터무니 없었던가.
혈기왕성한 젊은 남녀 환자를 2인실에 나란히 눕혀놓질 않나, 거기다 홀딱 벗은 남자 환자를 여자 환자가 씻겨 주질 않나 ㅡ.ㅡ;; 심지어 결국엔 병실 침대에서 정사까지 벌어지고!
어쩌면 그렇게 말도 안되는 설정을 영화적 상상력이랍시고 당당하게 들이대는지 너무도 화가 나서 몹시 불쾌했었는데,
이번 영화는 아예 정신병원이 주된 배경이고
주인공들도 아예 환자들이니 과연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지.. 또 얼마나 어처구니 없게 과장되어 리얼리티를 손상시킬지 염려됐던 거다.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을 거의 평생 앓고 계신 엄마를 둔 덕분에
나는 유독 정신병과 정신병원에 대한 사람들과 세상의 편견과 오해가 참 많이 속상한데
영화든 드라마든,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영상물에 드러난 정신병원은 대개 기가 막힌 수준이다.
물론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선
어느 정도 과장이 필수라는 걸 나도 인정하지만, 정신병 환자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말도 안되는 인간유형으로 그려져 있는지.. 그리고 또 그 치료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위적이고 우스꽝스럽기만 한지.. 짜증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전문가들의 자문을 충분히 받았을 테고
이번 영화도 장소협찬 뿐만 아니라 진짜 정신과 의사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버젓이
마지막 크레딧에 적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충무로 영화들이 정신병원과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왜곡과 과장을 조장한다는 심증을 버릴 수가 없다.

똑같이 정신분열증을 다뤘더라도 할리우드 영화에선 <뷰티풀 마인드> 같은 영화들이
드물게라도 나와서 정신이 심하게 병든 사람들의 애환과 슬픔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게도 나는 아직 정신병을 소재로 삼은 한국 영화에서 그런 감동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섹스 앤 더 시티> 시즌6이었던가. 캐리의 첫사랑으로 나온 데이빗 듀코브니도 혼란한 마음을 정리하겠다며 제 발로 정신 요양원을 찾은 것으로 나왔는데, 우리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정신병 전문 요양병원이 있는데도 한국 영화에선 그런 모습을 절대로 찾아볼 수가 없다. 대부분 독방에 갇혀 고문 같은 전기충격요법이나 받는 모습일 뿐..

<올드보이>에서도 실제 정신과 치료에 쓰이는 약 이름이 거론되며 약효를 읊조리는 대사가 나오는 걸 보면 박찬욱도 나름대로 정신병에 대해서 연구를 하긴 한 모양이고,
<싸이보그>는 아예 정신병원을 무대로 하고 있으니, 감독 스스로 관심이 많은 분야임은 분명한데, 왜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까?

<싸이보그>가 제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는 껍데기를 썼다지만
귀여운 정지훈과 임수정이 온 몸을 던져가며 환자 연기를 했음에도
주조연 배우를 모두 통틀어 이래저래 희화되고 과장된 환자들의 모습은 진정한 아픔으로 전해지지 못했다.  
그들이 정신을 놓아버리기까지 다들 얼마나 큰 아픔과 괴로움을 겪었을지, 또 앞으로로 평생 어떤 난관을 겪어가야 할지, 낄낄거리게 만든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까르르 웃으며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과연 마음 한구석으로나마 그걸  알고는 있을까?

우울증으로 이은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몹쓸 '정신병'으로 손가락질 받지 않으면, 사소한 감정의 엄살 쯤으로 치부되던 우울증이 새삼스레 세간의 관심을 받았고, 드디어 누구나 앓을 수 있는 '마음의 감기' 정도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을 때, 나는 이은주의 죽음이 이 세상 수많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남긴 영향력에 고마워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용서와 이해가 되는 정신병은 우울증 정도에 불과한 듯
나머지는 계속해서 우스꽝스럽게 포장해 저 멀리 격리시켜 버리는 다수의 편견이 화나고 불쾌하고 안타깝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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