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과 영화

책보따리 2007. 12. 28. 15:59
이제는 무너져버린 원칙이 되고 말았지만
과거에 나는 원작을 먼저 읽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는 고집이 있었다.
거의 무한한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된 시간과 화면 속에 틀어넣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으니
기껏해야 본전이고 대부분은 실망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를 보고나서 느낌이 괜찮으면 원작을 찾아보는 짓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영화보다 못한 책이 어디 있으랴.. 하는 일종의 편견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편견은 지금도 여전하여, 원작보다 영화가 나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웬만해선 떠오르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은 작품은 공포영화를 안본다는 나의 금기를 드물게 깨고 본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였는데, 영화에 굳이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원작은 제국주의자의 시각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의 발현에 지나지 않은데 비해 영화는 게리 올드먼과 위노나 라이더, 키아누 리브스의 열연으로 훌륭한 러브 스토리로 재탄생했었다^^)
물론 아메바스러운 나의 기억력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읽다가 무섭고 소름끼쳐서 몇번이나 책을 떨어뜨릴 정도로 심취해서 보았던 <쥐라기 공원>도 그랬고
<반지의 제왕>, <브리짓 존스의 일기>, <향수> 같은 영화는 당연히 원작이 훨씬 좋았다.
취향에 따라 영화가 더 좋았다는 이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내 경우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영화가 좋아서 원작을 굳이 찾아보았던 작품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딱히 떠오르는 건 <냉정과 열정사이> 정도.

책이 인기가 높거나 베스트셀러가 되면 곧장 영화로 판권이 팔리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또 베스트셀러라고 널리 읽히게 되면 공연히 배알이 뒤틀려 안 읽으려는 고약한 심보를 갖추고 있다.
(<다빈치 코드>도 그래서 안 읽고 나중에 영화만 봤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 핑계 저 구실로 책을 잘 안 읽는다는 게 맞다. ㅋㅋ)

그런데 우리나라 도서 시장을 보면 영화나 드라마 원작에 대한 시장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영화가 좋으면 원작도 찾아 읽으려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인데, 원작을 한번 읽어볼까 생각은 해도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건 영판 드문 나로서는 그런 경향이 꽤나 신기하다.
(에단 호크가 원작/각본/감독을 모두 맡았던 영화 <이토록 뜨거운 순간>을 보고 나와 로비 매점에서 파는 책을 잠시 들여다보며 호기심을 느끼기는 했지만 역시 덥석 사서 읽고 싶지는 않았더랬다^^)
특히 소설의 경우, 할리우드에 영화 판권이 팔렸다는 사실은 한국 출판사와의 계약 여부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단 출간해서 팔다가 영화가 소개되어 인기가 높으면 다시 책도 덩달아 대박(!)을 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출판이 늘 도박이듯 ^^ 원작을 바탕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에 수입되어 인기를 얻을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 또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결국엔 모든 걸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몇년 전에 내 이름을 옮긴이로 달고 번역 출간했다가 우리나라 출판사에선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던 소설이 하나 있었다.
영미권에선 대단한 베스트셀러였고 할리우드에 영화 판권도 팔렸다고 해서 약간 기대를 했지만
내가 보기엔 출판사에서 별로 영업을 잘하지 못했던 탓도 있고 ^^
꽤나 눈물겹고 감동적인 부분도 있기는 하되 국내 소설 독자층에 어필하기엔 좀 생뚱맞은 이야기(그런데 놀랍게도 작가가 우리나라 모 영화를 보고 쓴 게 아닌가 싶게 비슷한 내용의 영화는 있었다!)였던 것도 같았기에, 책의 판매실적과 나의 수입은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마냥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줄곧 잊고 있었는데 지난 주 영화관에서 그 소설 원작의 영화 예고편을 볼 수 있었다. +_+
역시나 내 상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배우들이 역할을 맡아서 킥킥 웃고 말았는데
소설처럼 영화도 죽을 쑬지 어쩔지 그 결과는 은근히 궁금하다. ㅎㅎ

1, 2권으로 나눠 출간하면서도 분량이 너무 많아 쳐진다면서
한글 출간본에는 후반부의 퍽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완전히 들어내기도 했었는데
영화에선 그 부분을 살렸을지 어떨지 그것도 궁금하고
혹시나 영화를 보고 흥미가 동해 원작을 찾아볼 가상의 독자가 왜 영화와 책 내용이 다른지
따지면 어쩌나(물론 대부분의 영화는 원작과 많이 동떨어지지만) 쓸데없는 걱정도 든다.
그리고 가장 염려되는 건 영화 번역을 누가 했을 것인지 하는 점.
내가 싫어하는 이미*만 아니면 좋으련만 그것까지 간섭할 수야 없는 일이고
째뜬 귀추를 주목해봐야겠다.
한국에서 인기 높은 배우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원...
영화도 일주일 만에 개봉관에서 내려오는 거나 아닌가 몰라...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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