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일본어 포스터를 올리는 건 일어에 익숙하신 이웃 블로거에게 진짜 영화 제목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인지 묻기 위해서다. 영어제목은 <Memories of Matsuko>인데 마츠코 앞에 또 다른 한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수식어가 있는 모양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말 '혐오스런'인지 궁금했다. (헐.... 찾아보니 혐(嫌)자는 맞다. 혹시 한국 배급사에서 관객 끌기용으로 붙인 건 아닐까 분노했는데 원래부터 있던 제목인가 보다. -_-;;)
암튼 영화 속에서 마츠코를 '혐오스럽다'고 평가하는 건 말년의 극히 일부만을 본 극히 일부의 의견일 뿐이기 때문이다. 혐오스럽다기 보다는... 암담하다.
영화는 유치찬란한 색감과 70년대 미국 뮤지컬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과 노래, 파란만장 신파의 형태를 띄고 있어서 영화보는 내내 저도모르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유발하는데, 묘하게도 계속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어쩜 이 감독은 여자의 일생을 저렇게도 처절하게 망가뜨려놓고도 그걸 가족주의와 사랑로 포장하려든단 말인가!
이제부턴 스포일러 염려가 있으니 영화 볼 사람은 클릭하지 마시길 ^^
마츠코의 인생이 끊임없이 파국으로 치닫도록 휘말리게 된 이유는 언제나 남자다.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하나같이 쓰레기 같은 기둥서방들... 놈들에게 두들겨 맞아 눈탱이 시커멓게 되어 코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도 언제나 마츠코는 되뇌인다. "그래도 혼자인 것 보다는 나아"라고... 마츠코를 등쳐먹던 수많은 놈팽이들 가운데 그나마 진실한 사랑이랍시고 하나 나오는 놈마저도 이건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여자를 또 불행하게 만들 것이 두려워서 기껏 선택하는 길이 교도소 앞에서 출소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장미꽃 받쳐들고 나온 여자에게 주먹질을 하는 거란 말인가?? 아이 참 욕이 나와서 원... 제아무리 감옥에서 참회를 했다고 해도 18년뒤의 참회는 너무 늦다.
물론 어린시절의 애정결핍과 불행이 많은 이들의 이후 인생을 좌우한다지만 그것 때문에 아름답고 총명한 마츠코가, 생의 바닥까지 떨어져 노숙자처럼 혐오스러운 뚱녀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과정의 수많은 선택들은 그녀에게 내리는 감독의 악의적인 처벌 같았다.
마츠코의 억울한 삶을 결국 존재도 몰랐던 가족의 일원인 조카 '쇼'가 이해해주는 방식이지만(그나마 쇼를 맡은 일본 배우가 몹시 귀엽다^^;;) 자기를 완전히 내몰고 버리고 외면하고 거부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고향과 똑 닮은 강가에서 늘 눈물을 흘리며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대신 마츠코는 왜 더 악착같이 살아내지 못했을까.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는 용기와 가족보다 진한 정을 나누었던 감방동기 친구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마지막 환상 속에서라도 가족과 화해를 하고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기는 하지만 뒤이은 죽음 만큼이나 그 깨달음은 허무하고 너무 뒤늦었다. 그래서 신파의 극치에서 흘린 내 눈물은 슬픔보다 짜증스러움에 더 무게가 실렸고, 리얼리티를 살린 비극적 결말이라기엔 허겁지겁 모든 균열을 가족과 사랑의 이름으로 풀칠해 마감하려는 것 같아서 괘씸했다.
차라리 친구 구미코와 손잡고 놈팽이 같은 기둥서방 족속들에게 멋지게 복수하고 사랑 그 까짓것.. 하면서 코웃음 치다 장렬하게 죽은 거라면 기쁘게 눈물 흘리며 박수 쳐주련만 아쒸... 혹시 오래 된 영화라 시대에 뒤떨어진 스토리가 된 건 아닌가 눈이 빠지도록 맨 마지막 크레딧까지 확인했더니 웬걸.. 2006년 작품이었다. *_*
하여간... 오래도록 혼자인 여자들 넷이 하늘공원에서 팍팍해진 다리를 주무르며 2시간도 넘게(상영시간이 무려 129분!) 영화관에서 대부분 깔깔대다 나온 뒤끝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우린, 놈들의 잘못을 모두 여자한테 뒤집어 씌워 단죄시키는 영화 딱 질색이란 말이지! 뭐 그래도 볼만은 했지만... ㅎㅎㅎ
<여자의 일생>이나 <테스> 같은 작품 보며 불끈불끈 분개하고 화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라고 해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