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조각들

삶꾸러미 2007. 4. 9. 01:26

화창한 일요일, 간만의 외출.
출퇴근 하며 집앞 앵두꽃과 옆집 벚꽃, 목련,  온동네 개나리가 다 핀 건 알았지만
정작 온 거리가 꽃밭이라는 데 조금 놀라며
꽃처럼 화사한 사람들 틈에서 내가 좀 우중충하다는 느낌에 움츠러들었다.
찬란한 햇살 속에 혼자서만 우중충하다는 자의식은 순전히 4개월째 방치한 대책없는 머리칼 탓이렸다. 어서 손봐줘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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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화제 영화를 드디어 한 편 봤다.
행복의 적들. Enemies of Happiness.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역시 인간의 삶은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는 걸 실감한다.
총탄이 난무하는 남성중심사회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치에 뛰어든 젊은 여성의 삶이야 오죽하랴.
1시간만의 짧은 영화에서 참으로 치열한 삶의 진정성을 본 듯하다.
몇년 째 암살의 위협을 받으며 최초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고, 여전히 국회 안에서도 민주주의와 여권 보호를 위해 압제와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는 그녀는 이제 겨우 29살이라고 했다.
게다가 상영이 끝나고 뜻하지 않게 다큐멘터리 주인공 말랄라이 조야(www.malalaijoya.com)와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허울좋은 친미정권은 민주화를 표방하지만 정권을 쥔 자들은 여전히 범죄자 집단과 군벌이고
아직도 어린 소녀들에 대한 강간과 학대가 자행되고 있으며
말랄라이 조야에 대한 죽음의 위협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단다.
자기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민중의 행복을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박수가 절로 나왔고, 조야의 신변보호와 정치활동을 위한 기금모금을 한다는 말에 당연스레 지갑이 열렸다.
저 위 사이트로 들어가면 달리 기부 방법이 있다고 하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참여바람 ^^

 아참.. 벨로와도 심히 공감했지만, 자원봉사자인지 고용된 통역사인지 모를 사람이 어찌나 우리말도, 영어도 핵심을 짚어가며 잘 정리를 해주는지 완전 감동이었다.
이상한(?) 색깔이 대비된 튀는 짧은 스커트를 입고서 앉음새도 민망한 바람에 속으로 대뜸 못마땅해하고 있었는데, 알게 모르게 늘 겉모습/외모 지상주의에 편승하는 내가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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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아트레온 앞을 오가며 올해도 느낀 건
영화제 전용 티켓박스가 있는 곳 앞의 쉼터에 유독 흡연 여성들이 많다는 것.
(다른 땐 주로 쌍쌍이 닭살을 떠는 연인들이 터를 잡고 앉아있는 곳이다)
그리고 행사장엔 늠름한 장정 같은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리땁고 우아한 행사요원들도 많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흡연을 하고 성별 차이에 대한 반발을 겉모습으로 하는 이들이 여성주의 문화를 대변하는 건 아닌가 좀 걱정스러웠다.
그건 내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에도 그랬기 때문...
이젠 좀 더 자연스러워져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아 물론, 구태의연한 내 편견의 잣대로 그렇게 보인 것뿐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나 역시 늘 경험에서 비롯된 불만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반항적 여성주의에서 탈피해 좀 더 견고한 사고체계와 대안을 내세울 수 있는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은' 하는데 늘 생각에만 그치는 게 문제다.
행동하지 않는 자는 불만을 품을 자격도 없다고 했거늘...

아무려나 영화제가 끝나기 전에 몇 편 더 볼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기를 빌고 있다.
언제나 즐거운 벨로와의 데이트에 겸해서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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