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에 해당되는 글 233건

  1. 2010.09.08 컴퓨터 20
  2. 2010.09.02 고백 유감 5
  3. 2010.07.12 안전거리 6
  4. 2010.07.06 비겁 3
  5. 2010.02.26 관계. 실망. 단계별 증상
  6. 2010.02.22 드립 커피 13
  7. 2010.02.02 무서운 사람 13
  8. 2010.01.09 섬망증
  9. 2009.12.19 투덜투덜 12
  10. 2009.11.30 책 고르기 20

컴퓨터

투덜일기 2010. 9. 8. 02:11

5년을 넘긴 컴퓨터가 얼마 전부터 슬슬 걱정스러운 양상을 보이더니 오늘은 급기야 그 무서운 '시퍼런' 화면을 수없이 띄웠다. 완전 컴맹이라 안절부절 못하며 몇번이나 전원을 껐다 켰지만 부팅이 되다말고 무시무시한 경고(이런 화면을 처음 보는 거라면 어쩌구 저쩌구.. 그게 아니라면 시스템 인스트럭터에게 연락하라던가 뭐라던가... )가 뜨더니, 안전모드도 실행이 안되는 상황. 더럭 겁이 났다. 지난주부터는 원고 백업도 안해놨는데!!!

컴퓨터가 슬슬 이상을 보이기 시작한 건 꽤 됐다. 되다말다 했던 CD롬이 완전히 고장나 읽히지 않는 건 1년이 다 돼가고(그렇기 때문에 확 밀어버리고 윈도를 새로 깔 수도 없다. 혼자선 할 자신도 없지만 -_-;; CD롬이라도 괜찮으면 동생이든 누구든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않겠나..), 본체에서 갑자기 윙윙 바람부는 소리가 나면서 느려지질 않나, 화면 보호기 작동되다 말고 프로그램 오류 메시지가 뜨질 않나, 과거 경험상으로도 컴퓨터는 수명 5년이 지나면 시한폭탄처럼 저절로 망가지도록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는지 꼭 말썽을 부리곤 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악성 코드랑 바이러스 무서워서 유료 V3도 꼬박꼬박 자동실행하고 있거늘 나 원 참! 하지만 버벅거리긴 해도 또 완전히 고장난 것은 아닌 컴퓨터를 확 바꾸긴 좀 뭣하고,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버티는 것도 괴로운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지던 와중에 드디어 오늘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퍼런 화면'이 등장한 것.
 
컴맹답게 이럴 땐 컴퓨터가 열을 받아서 그럴 지 모른다며 모든 전원을 끄고 플러그 까지 빼서 몇시간 식히는 것이 나의 유일한 처방이다. 근데 이번에도 그게 먹히더라. ㅋ 드디어 안전모드가 실행됐으므로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시스템 복원' 설정으로 컴퓨터를 다시 부팅하는 데 성공했고, 무서워서 얼른 작업해 놓은 원고들을 이메일로 보내놓았다. 외장하드에 백업하다가도 혹시 오류날까 싶어서 ㅠ.ㅠ

늘 마감인생의 덧없음을 하소연하는 나에겐 꿈에도 등장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두 편 있다.
하나는 거의 완성된 번역원고가 컴퓨터 고장으로 홀라당 날아가는 것이다. 마감일은 이미 어겨놓은 상황인데 백업도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수천매 원고가 그야말로 홀라당 날아가는 바람에 펄펄 뛰다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 되는 거다. 요샌 정전으로 컴퓨터가 꺼져도 워드 프로그램에서 자동저장을 해주지만, 십수년 전엔 새벽녘에 갑자기 정전이 되는 바람에 밤새 작업한 원고를 홀라당 날린 적이 있었다. 하기야 지금도 재수가 없으면 컴퓨터가 미쳤는지 덜컥 오류가 났다가 수십매쯤 날아간 문서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낭패감과 억울함은 말할 것도 없다. 두번째로 번역을 하면 속도야 훨씬 붙지만, 어쩐지 전에 번역한 문장보다 못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기분도 영 찜찜하다. 허니 내가 이런 꿈을 꾸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또 하나는 (재수 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잔뜩 맡아놓은 작업을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 사람이 죽었으니 출판사에서도 더는 독촉할 형편이 못되겠지만, 남은 가족들에게 그간 작업한 원고라도 넘겨달라고 하면 어쩌나, 다듬지 않은 초고가 세상에 선보이는 건 정말 싫은데, 계약금만 받아놓고 아직 시작도 못한 추후 작업들은 어찌되는 걸까, 앞으로 받기로 한 원고료는 또 어떻고!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며 괜스레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물론 참 한심하다. 하지만 얼마 전 갑작스레 이윤기 선생이 심장마비로 운명하신 소식을 듣고 보니, 내 상상이 완전히 부질없는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단 말썽 부리는 컴퓨터 강박증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새 컴퓨터를 장만하면 그만인데, 컴맹주제에 워드며 필요한 프로그램 설치하고 다운받는 과정을 생각하면 또 끔찍하다. 2005년도에 이 컴퓨터 샀을 때는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걸!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근다는 말이 정말로 나 같은 인간에겐 딱이다. 당면한 문제 해결보다는 그 이후의 소소한 귀찮음이 더 두렵게 느껴지니 말이다. AS를 부르는 방법도 있다는 건 알지만, 그간의 경험상, 그리고 시청자 불만 프로그램의 고발 내용을 보아도 컴퓨터 AS기사는 십중팔구 사기꾼이던데 어찌 믿는단 말인가. 당장 CD롬부터 새것으로 갈으라고 할 텐데 몇만원 들이느니 새로 사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자니 또 어떤 컴퓨터를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원초적인 고민부터 다시 꼬리를 문다. 우웩~~~ 책상을 넓고 한가롭게 쓰기 위해선 노트북 컴퓨터를 새로 사는 것도 생각해본 적이 있으니(근데 여름엔 노트북 자판 뜨거워져서 싫단 말이닷) 이런 고민은 최소한 몇달간 지속될 것 같다. 시퍼런 화면이 연일 나를 괴롭히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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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유감

투덜일기 2010. 9. 2. 15:40

초등학교 앞 문방구의 최고 인기품목이 하나에 이천원짜리 커플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나는 줄곧 어여쁜 조카 공주의 로맨스를 기다려왔다. (어쩌면 약간은 두려워하면서... 아니 왜? -_-;;)  헌데 유치원 시절에 몇몇 남자아이들의 이름을 대며 좋아한다고, 나중에 결혼할 거라는 결심을 토로했다가 금세 마음을 바꾼 시시한 해프닝 이후로 지금껏 6, 7년째 공주는 남자애들에게 관심이 없다. 은근히 유도심문을 해봐도 전교생 중에 썩 괜찮은 남자애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건 이성에 큰 관심이 없다는 뜻이겠지? 눈도 높고 어려서부터 워낙 도도한 편이라 그건 그러려니 할 수 있겠는데, 내가 보기엔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모 특유의 콩깍지 모드임은 나도 안다) 공주를 어째서 남자애들이 그냥 두는 것인지 그건 좀 이상했다.

물론 1학년 때부터 공주에 대한 순정을 6년째 이어오고 있다는 '땅꼬마' 남자애가 하나 있다는 건 알지만(현재 이 남자애는 공주와 다른 반이다), 제 친구들이 벌써 몇 번이나 커플이 되었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별다른 연애사건이 없으니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좀 아쉽다. 하다못해 심히 연애인자가 부족한 나조차도 국민학교 다닐 때 몇번이나 스캔들이 있었는데 말이지!

그러던 차에 얼마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컵스카우트인가 뭔가에서 공주는 요번 방학동안 중국엘 다녀왔는데 그때 같이 갔던 5학년짜리 남자애가 5박6일의 여행에서 돌아온 뒤 공주에게 문자를 보냈단다. '우리 사귀자'고!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 공주에게 물었더니 그냥 문자를 씹었단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나보다. ㅋ 헌데 생각할수록 그녀석이 괘씸하다. 제 아무리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유행이라지만, 5학년 땅꼬마 주제에(공주 키가 부쩍 자라는 바람에 남자애들은 동급생들도 거의 내려다본단다) 6학년 누나를 마음에 품었으면 사귀자고 달려들기 전에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부터 해야하는 거 아닌가?!

돌이켜보니 주변인들의 요즘 연애담을 들어봐도 다 비슷하다. 가물가물 기억도 잘 나지는 않지만 과거 추억을 들춰보면 분명 누군가 먼저 좋아하는 마음을 품거나 거의 동시에 마음이 통해서 사랑을 고백하고 망설이거나 적극 응수하는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새는 일단 서로 '조건'과 '스펙'을 맞춰보고 '느낌'이 괜찮은 것 같으면, 혹은 별로 마음에 안들더라도 싱글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단순한 목적만으로도 '일단 사귀고 보는' 식이다. 애틋한 마음을 고백하거나 어떻게든 감정을 전하는 노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 촌스러운 감정 소모를 대신하여 고가의 선물이나 커플링이 오간다. 예로부터 중매 시장에서 남녀가 조건에 맞춰 서로를 재본 다음, 세번만에 옳다구나 결혼을 결심했던 전례가 어느새 연애 분야에도 물든 모양이다.

매사에 이기심이 늘어난 요즘 사람들은 혹시라도 감정이 상할 것을 염려하여 섣불리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지는 않으면서 은근슬쩍 얍삽하게 '어장관리'만 한다는 이야기도 익히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 이제 나는 연애하기 정말 글렀구나, 하는 사실이다. 내가 너무 구식이라서 (물론 하도 오래 돼서 연애인자가 메말라버린 건 인정한다) 좋아하는 마음도 없이 '일단 사귀고 보자'는 시도 정도에는 도저히 넘어가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귀자'는 말에 이미 '네가 마음에 든다. 좋아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올시다다. 오히려 그 말에는 '일단 사귀어 보긴 하겠는데 아님 말고' 하는 심보가 들어있을 뿐이다. 어린 친구들은 그 편이 더 속편하다고 말한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쿨하게' 관계 정리가 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름지기 고백이라 함은 애틋한 감정 토로가 먼저여야 할 것 같다. 그 마음을 전하기까지 자기 감정을 곱씹고 돌이키며 망설이는 단계를 거치고 제대로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연애'이고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5, 6학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진짜 '연애 사건'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뭐든 어른들 따라하는 게 당연해진 요즘 사랑조차 가볍고 소모적인 유희로 변질되면 어쩌나 걱정이다. 구닥다리 고모의 마음으로는, 1학년 때부터 줄곧 우리 공주를 좋아했던 녀석이 갑자기 훌쩍 키도 자라고 멋있게 변해서 (공주 말로는 걔가 아토피가 심해서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지만 ㅠ.ㅠ) 순애보를 성공시키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 같다. 그 녀석이 아니더라도, 제발이지 무작정 '사귀자'고 달려드는 놈들 대신 우리 공주에게 '난 네가 좋다'고 제대로 고백하며 접근하는 첫사랑이 다가오면 좋겠다. 고모로서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게... 엇, 열세살이면 너무 빠른가? 그럼 으음, 지금 당장은 말고 몇년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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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거리

하나마나 푸념 2010. 7. 12. 02:42

얼마전 인천대교 부근에서 난 버스 교통사고 뉴스를 보며 너무 참혹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가끔 고속도로에 나가는 일이 있어도 나 역시 안전거리따위는 무시하고 다들 그러듯 앞차에 바짝 따라붙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간혹 미적미적 느리게 가면서 차간 간격을 쓸데없이 넓게 둔 차를 만나면 신경질을 확 부리면서 차선을 바꿔 앞지르기 일쑤고...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초보때도 시내운전보다 고속도로 운전이 훨씬 쉽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초보시절 고속도로에 감히 진출하기까지 시일이 꽤 걸렸다. 처음 한달은 올림픽대로에서 고집스레 시속 60km로 달리며 사방에서 빵빵거리는 차들의 욕을 먹기도 했으니, 시속 100km까지 밟을 자신은 정말로 없었던 거다. 당시엔 수동 자동차를 운전했는데, 기어를 4단까지만 넣겠다고 다짐하고 다녔었다. 5단은 고속도로 용이야 이러면서;; 시내에서야 기껏 사고가 나도 경미한 접촉사고겠지만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어느틈에 나는 꽤 난폭한 운전자가 되어 있었고 초보운전 딱지를 뗀지 1년쯤 뒤엔 경인고속도로에서 나를 무시하고 욕설을 해대는 대형 트럭과 추월해서 브레이크 밟기 싸움을 할 정도로 무모해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철이 좀 들었는지 운전 방식은 퍽 얌전해지고 있어도 안전거리만은 잘 못지켰던 게 사실이다. 원칙대로 100미터쯤 안전거리를 두고 달리면 수시로 끼어드는 옆차선의 차들을 못견디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차간 거리를 너무 띄우면 오히려 함부로 끼어드는 차들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핑계를 대면서...

그래도 뭔가 큰 사고가 났을 때만 반짝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는 성격답게 간만에 오늘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정말로 안전거리를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시속 100km일 땐 안전거리 100미터가 원칙이라지 않은가. 100미터가 얼만큼인지는 몰라도 시내에서 달릴 때처럼 바짝 따라가는 짓거리는 최대한 삼가며 안전운전에 힘써보았는데, 역시나 사람들은 변함이 없었다. 다른 차선 자동차들에 비해 내가 좀 넓은 간격을 유지하는 걸 보아넘기질 못하고 다들 추월해가질 않나, 마구 끼어들질 않나, 카레이스하듯 미친듯이 달리는 자동차들이 요리조리 옮겨다니는 통로로 이용되기 일쑤였다.

이런 사고가 날때마나 지겹게 나오는 말이 '안전 불감증'이라는 짜증스러운 표현인데, 이 나라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은 안전 불감증이 아니라 아예 안전과 담 쌓고 사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트렁크에 삼각대랑 사고났을 때 표시할 하얀 페인트는 있어도 필수품이라는 휴대용 소화기는 없으니 하는 말이다. 아마 나 또한 기억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또 안전거리에 신경쓰고 다닐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버릇이 도져 앞차와의 거리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운전할 게 뻔하다. 어쩌면 안전거리는 운전대와 나의 거리를 최대한 띄울 때나 확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애먼 사람들한테까지 피해를 입히는 사고뭉치는 되지 말아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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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

하나마나 푸념 2010. 7. 6. 02:22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비겁함이랬는데, 내 꼴이 딱 그짝이다.
이 동네 재건축 문제는 어떻게든 진행이 되고 있는 모양인지, 얼마 전 구청에서 재건축 정비계획 안내문이 등기로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재건축 찬성파와 반대파의 우편물도 빗발쳤다. 찬성파는 이 동네 재건축 사업이 엄청 축소되기는 했지만 30년씩 노후한 주택을 새로 지어 재산의 가치를 높일 절호의 기회이므로, 일부 '이기적인' 반대파의 논리에 휩쓸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반대파는 '재건축은 곧 자살행위'이며 멀쩡히 살고 있던 집을 빼앗기고 길바닥으로 쫓겨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촉구했다.

양쪽 다 너무도 거부감이 드는 어투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태도를 보니, 왕비마마와 나의 입장은 더욱 모호해졌다. 전국 방방곡곡이 똑같이 흉물스러운 아파트촌으로 변해가는 것은 분명 싫은 일이고,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부동산이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행위가 싫기 때문에 나도 무분별한 재개발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은 지 30년도 넘은 우리 집을 비롯해 주변 여러 집들이 조만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만큼 노후한 건 사실이고, 갈수록 거동이 어려워진 병든 왕비마마를 위해선 싫지만 계단 많은 이 집을 떠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실행에 옮기는 게 두려워 미적거리고 있는 나로서는 마냥 재건축을 반대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이다. 해서 또 다시 우리 모녀의 생각은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재건축 반대파가 득세해서 재개발이 물건너 가면 그냥 좀 조용해 진 다음에 다른 데로 이사를 가든지 하고, 찬성파가 득세해서 정말로 재건축이 이루어진다면 또 그 상황에 맞춰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부담금은 얼마인지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결정하면 되겠다고 간단히 생각한 것이다.

헌데 현실은 우리를 그런 회색분자로 내버려두질 않았다. 결사항쟁을 촉구하던 반대파 주민들이 반대의견서를 받으러 우리집에도 찾아온 것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요번 재건축 지역에 해당되는 세대가 350여 가구 정도이며, 그 가운데 반대 의견서를 150장만 채우면 재건축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고 했다. (왜 과반수가 아닌지? 그건 모르겠다 -_-;;) 현재 반대파가 130여 세대이므로 20장만 의견서를 더 채워 제출하면 되니 우리도 동참하라는 것이 그들의 요지였는데, 그들의 얘기를 듣다가 나는 그만 빈정이 상해버렸다.

나는 이 동네 재건축을 반대하는 이들이 세입자를 중심으로 분담금 부담이 당연히 어려운 서민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은 그저 비교적 최근에 지은 빌라나 아파트에서 4, 50평씩 공간을 누리며 넓고 편하게 살던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내민 반대 의견서에는 그런 정서가 담겨 있었다. '현재 주거지에서 생활하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재건축을 할 이유가 없어서 결사 반대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서명하라고 내민 구청 제출 의견서의 맺음말이었다. 물론 나라도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재건축을 반대했을 것이다. 지은 지 얼마 안되는 새집을 대체 왜 허물고 다시 짓는단 말인가. 하지만 오르 내리기 힘든 계단과 겨울엔 추워서 달달 떨어야 하는 낡은 목욕탕, 원래가 좁아서 이층 두 집을 터서 살고 있는 등 분명히 '살기 불편한' 주거 문제를 알고 있는 나에게 무조건 그들과 똑같은 의견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하며 핏대를 높이는 태도는 나의 삐딱성을 일깨우고 말았다. 아, 우리는 불편하다니까!

결국엔 재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찬성하는 사람들도 각자의 이기심을 실현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고, 나 역시 좀 더 편히 살겠다는 이기심을 버리고 옳은 명분을 위해 희생하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었던 거다. 비겁한 나의 결론은 역시나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겠다는 데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다. 이 동네 재건축에 관한 한은 어느쪽이 옳은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재건축 재개발 지역에선 원주민의 비율이 늘 30%밖에 안된다는데, 정말로 여기서도 그렇게 될지, 아니면 정말로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 가질 기회를 반기는 원주민들이 많은지... 확실한 건 이미 이웃들이 니편 내편 양쪽으로 갈라져 서로 반목하고 있다는 것뿐이고, 그래서 주변에 도둑 한번 든 적 없었고 새벽이면 온갖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는 이 동네에 새삼 정이 뚝 떨어졌다. 과연... 이 동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어느 쪽이든 걱정스러워서 미리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나는 진정 비겁자다. 하루 생각해볼 시간을 주겠다며, 도장 찍은 반대 의견서 받으러 내일 또 온다고 했는데 아 어쩌나. 현재의 미봉책은 왕비마마와 나 중에 한 사람만 반대의견서를 써주는 것인데 (찬성도 일리 있고 반대도 일리 있으니까) 실로 회색분자 다운 꼼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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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실망하거나 실패를 느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제각각일 것이다. 주변에서 맺고 끊기를 잘 못해서 쓸데없이 방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당연하겠지만 여전히 가끔씩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전전긍긍하는 일이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에 어떤 이유로든 금이 가는 상황은 그리 쉽게 넘길 수가 없다. 서로 안보면 그만인 관계에서도 그간의 역사와 추억이 남긴 흔적 때문에 괜한 배신감에 허덕이게 되니, 아예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관계에서라면 그 뒷감당이 더욱 어려워진다.

살아보니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그 최선이 모든 이들에게 다 좋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어떤 이들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으며 상처나 오해를 낳기도 한다는 건 깨달은지 오래다. 그런데 그걸 잘 알면서도 막상 나의 의도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뜻밖의 상대로부터 맞닥뜨렸을 때, 나는 바보처럼 충격에 사로잡힌다. 세상 누구에게나 착하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 따위는 없는 까칠한 인간임에도 그렇다.

서로 꽤 오래 공을 들인 관계에서 오는 실망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대개 자기비하와 자책이다. 다 내 탓이다. 내가 잘못한 거지. 결국엔 내가 죽일년이지. 동기가 선했다고 모든 결과가 용서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변해야 해. 선선히 잘못을 인정하고 바꿔나가야 해... 이러면서 제 발등을 찍고 또 찍으며 반성한다. 며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고민하느라 불면에 시달리는 건 예사다. 그러면서 온갖 과거의 사건들을 재현하고 되짚어보고 기억을 환기한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두번째 반응기가 시작된다. 버럭 화가 나는 거다. 내가 뭘 또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 측근이라면서 잘해보자고 한 행동을 그렇게도 몰라주나? 소통부족으로 인한 오해는 어차피 쌍방과실 아닌가? 이렇게 상대에게 분노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간 우정이나 애정의 이름으로 최대한 눈감아주었거나 덮어두었던 상대의 단점과 그간 마음에 안들었던 부분들이 열 배쯤 과장되어 떠오른다. 심지어 장점으로 여겼던 부분까지 눈에 거슬리는 지경에 이른다. 자신을 비하하며 자책하던 부분들은 서서히 흐려져 생각도 나질 않는다. 이성 따위는 원래 없었던 양, 감정의 과잉 속에서 허덕댄다.

세번째 반응은 미움이다. 모든 게 상대방 잘못 같고, 혹시나 운 없이 이 시기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렇게 꼴보기 싫을 수가 없다. 관계의 환멸을 느껴 두번다시 안봐도 되는 인물이라면 이 단계에서 깨끗이 정리돼 나의 인간관계망에서 삭제되므로 더 문제될 게 없다. 돌아보면 왜 그런 소모적인 관계를 이어왔나 한심할 정도라서, 금세 잊는 것도 가능하다. 쓸데없는 인간관계가 하나 더 정리 됐으므로 심지어 기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계속해서 마주쳐야 하는 운명의 인물이거나, 내 생각에 여전히 회복할 가치가 있는 관계로 여겨지는 경우다. 볼 때마다 미움에 휩싸이면서 앞으로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생각하기란 거의 고문이다. 나처럼 성격 더러우면서 마음을 정할 땐 우유부단하고 인간관계에 휘둘리는 사람에겐 더더욱.

마지막 단계는 이성이 슬글슬금 제자리를 잡으며 두 방향으로 나뉘는 것 같다. 회복할 가치가 없는 관계임에도 계속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면 마음의 문을 닫고 겉으로는 태연한 척 호의의 가면을 쓰되 최대한 무관심하게 (실제로는 계속 미워하고 경멸하면서) 살아가기로 결정을 하거나, 어찌되었든 다시 이어가야할 관계라면 또 다시 마음 다칠 가능성을 예비하고라도 대화를 시도하여 더 나은 관계를 추구하는 방법. 물론 후자의 시도가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것도 아니라, 단단한 돌벽 같은 이를 만나 나만 더 만신창이가 되는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2단계로 돌아가 벌컥벌컥 화를 내며 증오심에 휩싸이다 나홀로 정리 단계로 맺음하는 수밖에.

맺고 끊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다치면서 왜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지 의문을 품겠지만, 나에겐 어쩌다보니 그런 관계가 더러 있다. 내쪽에선 말끔히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놀라운 이유로 내 관계망에 들어와 박힌 사람들. 따지고 보면 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그런 애증의 관계가 아닌가? 어느 한 쪽이 죽거나 매몰차게 의절을 해야만 끝이 나는 관계. 하기야 다른 관계도 아닌 가족 안에서 인간적인 실망감과 환멸을 느낀다면 후유증은 가장 클것이다. 어쨌거나 내쪽에서 전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없는 관계의 불안한 지속은 참 어렵다.

최근들어 극저조한 기분의 원인을 이렇게라도 배설하면 좀 시원해질까 싶었는데, 아직은 3단계에 머물러 있는 터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 수 있을까나. 이놈의 펄럭거리는 감정 좀 쉽게 다잡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흔들리니 않는 나이가 불혹이라는 건 다 개뿔, 거짓말이다. 불행히도 난 아마 평생 이렇게 파르르 화르륵 펄럭펄럭 씨근대며 살아갈 것만 같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초연함인데, 지금 내게 있는 건 조바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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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 커피

놀잇감 2010. 2. 22. 18:44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주전자 하나로 카페 놀이 하듯 솜씨를 부려 연일 커피 메뉴를 달리해 마셨던 초심은 버얼써 사라졌고 최근엔 마시는 커피 메뉴가 거의 일정했다. 그냥 커피 아니면 카페 라떼, 딱 두가지. 거품기가 고장나 카푸치노는 꿈도 꿀 수가 없고, 추워서 아포가토는 땡기질 않는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그냥 커피라고 말한 이유는 에스프레소 자체를 즐길 정도는 못되어도 점점 진한 맛의 커피가 더 개운하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에 예전보다 물을 섞는 양이 훨씬 줄었으므로 아메리카노라고 말하기 싫었다. 어쨌거나 하루 한잔씩 즐기는 커피는 꽤나 만족스러웠는데도 공연히 심심해진 나는 오래 전부터 눈여겨보던 1인용 드리퍼를 사들였다.

요즘 카페에선 대부분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어주지만 간혹 드립 커피임을 자랑하는 곳을 만날 수가 있는데 향이 좋으면서도 맛이 깔끔한 드립 커피를 까짓것 집에서도 만들어 보자 싶었던 거다. 저렴한 플라스틱 드리퍼 가운데 나는 그나마 진하게 추출되기를 바라며 구멍 하나짜리 멜리타 드리퍼를 선택했고 (구멍 세개 짜리는 칼리타 드리퍼란다) 드디어 오늘 시음에 돌입했다. (택배 온 지 며칠 됐는데 귀찮아서 비닐도 안뜯고 구경만 했었다).

브리카 때도 처음부터 단박에 성공하지는 않았으니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일단은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원두를 다 먹어가고 있으니 신선도에서 문제가 있기는 하겠고, 다른 도구 없이 그냥 일반 주전자로 서툴게 물을 내린 얼치기 바리스타 탓이 크겠지만, 에스프레소로 추출한 커피보다 향도 별로고 맛도 그리 개운한 줄 모르겠다. 나름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대로 했는데 왜 실패했을까나. 드립 커피는 처음엔 물을 약간 부어 원두를 적신 뒤 빵처럼 부풀어오르게 살살 내려 3분 안에 추출해 먹되 맨 마지막 추출액이 떨어지기 전에 드리퍼를 치워야 잡스러운 맛이 없는 개운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단다.

곧 도착할 갓 볶은 원두를 갈아서 다시 시도는 해보겠지만 어설픈 솜씨로는 카페에서 진짜 바리스타가 내려준 드립 커피 맛을 내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에 공연히 어깨가 쳐졌다. 드립 전용 주전자까지 사긴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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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사람

투덜일기 2010. 2. 2. 22:02

아버지가 생전에 늘 그러셨다. "나는 제일 무서운 사람이 쟤(나를 가리키며)"라고. 엄마도 그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며, 내가 제일 무섭고 눈치 보인단다. 대외적으로는 소심하지만 가족에게는 해야할 말이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내 성격 때문일 것도 같고, 또 연로하신 부모님과 동거하는 비혼 자식의 흔한 상관관계 때문일 듯도 하다. 하기야 가끔은 고모님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듣고 살았다. "나는 라니가 제일 무서워!" 병약하고 연로한 울 왕비마마 대신 집안 대소사에 얽힌 의견조율과 결정을 내가 도맡으면서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만큼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기도 한데, 한 몇년 쯤 어디론가 멀리 사라졌다 오면 모를까 어느덧 <집안의 최고어른>이 되어버린 왕비마마를 모시고 사는 한은 권한대행 격으로 휘두르는 칼자루를 놓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작은아버지들도 장손인 동생놈과 의논하는 것보다 아직은 형수님 계신 우리집과 먼저 상의하는 게 옳다고 느끼시는 모양이라, 톡 잘라서 손떼겠다는 말이 안나온다. 어쩌면 내심 무서운 사람으로서의 권력을 즐기는 건 아닌지.

암튼 친지들은 내가 제일 무서운 사람이라는데, 나는 조카들이 제일 무섭다. 특히 섣불리 한 약속을 절대 안 까먹고 들이대는 조카들의 새카만 눈망울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 얼마 전엔 공주한테 이런 말도 들었다. "약속 안지키는 어른들 정말 짜증나! 고모도 똑같아!" 주로 놀러 가겠다거나, 장난감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해놓고서 기한을 못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방학엔 은근히 공허한 약속을 남발했다가 덜컥 개학을 맞고 말았다. 게으름 탓에 언제나 마감에 쫓기는 마감인생 고모가 특히 월말월초에 바쁘다는 걸 조카들에게 핑계대기엔 스스로도 민망하지만, 결국 이번 방학 약속은 봄방학으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부디 봄방학 동안에는 고모의 신용을 좀 회복할 수 있으려나. 조카들이 조금 더 크고 나면 "고모 놀자!" 소리도 하지 않게 될 거라고, 그 때가 올까봐 벌써부터 속상한 마음은 분명 있는데, 동시에 "고모 놀자!"는 말이 무섭기도 하다. 체력 딸리고 아이디어 딸려서 예전처럼 뛰노는 놀이는 쉬 지치는 데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안기기라도 하면 허리가 휘청~ 자빠질까 겁난다. 마음 한 켠으론 내게 무서운 사람으로서의 짜릿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 녀석들이 그만 자랐으면 좋겠다가도, 팔팔하던 예전보다 고모 노릇을 제대로 못할까봐 겁이 나는 모양이다. 에구구. 그나저나 봄방학도 열흘밖에 안남았다. 원고 독촉보다 더 무서운 조카들과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더욱 매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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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망증

아픈 손가락 2010. 1. 9. 02:43
윙윙거리는 정적 속에 가끔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소리만 툭탁거리는 새벽, 안방에서 자고 있던 엄마가 난데없이 작업실 방문을 열고 말했다. 자다가 생각하니 암만해도 이상해서 일어났다. 니네 아빠 참 이상하다. 어딜 가서 며칠 째 집에 안 들어오는 거니? 밤마다 신경안정제 기운으로 간신히 잠드는 엄마는 가끔 벌떡 일어나 엉뚱한 잠꼬대를 현실처럼 하는 바람에 사람을 놀래키지만, 그날은 나도 당황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멍하니 바라보다 드디어 내가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해 봐, 엄마. 아빠 어디 갔는지 기억 안나?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던 엄마는 그제야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다. 맞다, 니네 아빠 돌아갔구나. 그걸 어떻게 까먹었을까. 엄마 어쩌면 좋으니...  잠깐동안 더럭 겁이 났던 딸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엄마를 데리고 안방에 가 이불을 덮어드리고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벽녘 잠결에 벌어진 그 같은 해프닝을 다음날에 엄마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한 사람과 쌓은 50년의 추억과 습관이 단 2년만에 지워질 리 없다고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보지만, 우울증이 심해져 가끔 섬망증까지 보이면 더럭 겁이 난다. 이건 분명 약 탓일 거야.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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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투덜

투덜일기 2009. 12. 19. 18:15

옛날에 고모들이 할머니한테 옷을 선물하면 늘 마음에 안들어하셨다. 색깔이 어떻고 소매 길이가 어떻고 <갑삭해야>하는데 너무 무거워서 틀렸다는 둥, 요란해서 이런 걸 어떻게 입냐는 둥... 교환이 가능한 경우면 몇번이나 바꿔오기 일쑤였고, 그게 아니면 할머니가 손수 리폼을 하시거나 그냥 옷장에 처박히기 십상이었다. 고모들은 할머니가 너무 까다롭게 군다면서 웬만해선 옷 선물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울 엄마가 사드리는 옷은 할머니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 골랐으므로 고모들의 안목보다는 성공률이 높았지만, 할머니가 나한테만은 못마땅한 부분을 털어놓을 때가 더러 있었다. "니네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면서...
외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남자 한복을 맞춰입고 사셨던 외할머니의 외투 선택은 더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엄마나 이모가 심혈을 기울여 코트를 사거나 심지어 제일 좋은 양모 털실을 수십만원어치 사다가 뜨개질로 떠드려도 결국 그옷은 다른 사람 차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서 친할머니, 외할머니 공히 최고의 선물은 <현금>으로 굳어지고 말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십수년간 두분 할머니께 선물할 스카프나 목도리, 장갑 따위의 선물을 애써 고르기도 했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하셔서 애용했던 선물은 손에 꼽힐 정도다. 무난하게 가자고 산 내복마저도 색이나 레이스가 요란하다 (내 눈엔 정말 수수한 건데도!)는 이유로 슬쩍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었음을 안 뒤론, 나 역시 철저하게 <현금> 선물을 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들의 까다로움을 겪어보았으면서 난 또 새삼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실 나는 작년부터 왕비마마에게 <털신>을 사드리려고 계속 살피는 중이었다. 왕비마마가 최근 1년 넘게 애용하는 신발은 딱 하나. 바닥이 푹신해 다리 당김이 덜 느껴지는 마사이슈즈다. 그것 말고 다른 신발을 신고 외출했다간 금세 발바닥과 다리가 아파져 고생을 하는 걸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발이 편하면서 가볍고 신기벗기도 편리한 (끈을 조여야 하는 마사이슈즈는 신고 벗기가 불편한 게 탈이다)  따뜻한 신발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온라인에서 발견한 복슬복슬 부츠형 털신 하나는 방수가 안된다는 이유로 겨울 내내, 그리고 올해 다시 왕비마마의 실내화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ABC마트 같은 데 가서도 이런저런 신발을 만져보고 신어보다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있던 차에, ㅌㄹ마을에 새로운 유행 신발이라는 <사눅> 사진을 보고 옳다구나 싶었다. 나 또한 매장에서 유념해 보았던 그 신발이 아니던가! 주
민들이 신어보고 그렇게도 편하다니, 왕비마마의 겨울용 <털신>으로 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게다가 엠티에서 실물을 두 켤레나 보고나선 마음을 굳혔다. 그 정도면 바닥도 푹신하고 털 때문에 포근해 올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데 적합해 보여 이왕이면 왕비마마도 한 켤레 사드리고 나도 사 신자고.
해서 얼른 40%나 세일을 하고 있는 마을 추천 사이트에 두 켤레를 주문하고 흐뭇하게 사눅 신발을 기다렸다.
헌데 드디어 오늘 신발이 도착해 엄마에게 보여주니 표정이 좋지 않다. 방수도 안되는 신발을 겨울에 어떻게 신고 다니느냐.. 쭈글쭈글해서 신고벗기 불편하다.. 왼쪽은 크고 오른쪽은 꽉 낀다(좌우 발 크기는 누구나 다르지 않나??)... -_-;;
결국 나는 신기 싫으면 관두시라고, 왕비마마 껀 반품시키면 된다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어휴... 나는 맨발로 신어도 감촉이 좋아서 마음에 들던데 웬 타박이신지 원...
그제서야 옛날 우리 할머니들의 까탈스러움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되면 원래 저렇게 까다로워지는 것인지... 나가서 같이 고르자고 하면 또 싫다고 할 거면서! 죽을 날 머지 않았으니 새옷 새신발 사들이는 거 관두겠다고 하는 것까지 그 옛날 할머니들의 레퍼토리랑 아주 똑같다. 으휴... 
그나저나 비회원으로 구입한 신발인데 한켤레만 반품이 되나 어쩌나 그것도 모르겠고 골치아파 죽겠다. 젠장..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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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르기

책보따리 2009. 11. 30. 06:12
책을 읽고 나서 꼼꼼한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책으로 밥 벌어 먹고 살면서 민망하게도 그리 책을 많이 읽지도 않지만, 그나마 드물게 읽는 책의 경우도 내가 좀체 후기를 쓰지 못하는 건 직업병과도 관련이 있다.

전에도 푸념을 한 적이 있지만 번역을 맡아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분은 <책 검토와 검토서 작성>이다. 순수한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 좋다 싫다 별로다 괜찮다 정도로 뭉뚱그려 판단할 수도 있고 중간에 집어던졌다가 맘 내킬 때 다시 읽거나, 아예 끝내 포기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책의 재미와 가치 여부는 물론이고 상업성은 있겠는지, 독자층은 어떤지, 기존의 책들과는 어떻게 차별화되거나 유사한지, 내용 요약과 책을 조목조목 분석해서 판단하는 의견까지 내놓으라는 출판사의 요구를 받노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책멀미를 느낀다. 논리와 분석력이 떨어지는 인간에게 책 한권을 읽고 객관적인 검토 소견을 제시하는 일이란 몹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해서 바쁜 일정을 핑계삼아 책 검토는 애써 사양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는 법이라,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야 할 때면 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냥 독자로서 책을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거다. 다행히 재미있게 책장이 넘어가면 호감어린 검토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작도 전에 느꼈던 책멀미가 계속 이어진다면 비판적으로 헐뜯는 의견을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두려운 건 독자로서 나의 객관성이 얼마나 합리적일까 하는 점이다. 단순히 독서할 책을 추천하는 것이라면야 누군가 읽고나서 투덜대며 별로였다고 던져버려도 상관없지만, 원서에 지불해야하는 저작권 로열티부터 제작비까지 큰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들 <가치>가 있는 책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한다. 

번역만으로는 당연히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번역 초창기 시절 나는 월급을 받으며 비상근으로 어느 출판사의 기획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말이 그럴듯해 출판 기획이지, 내가 하는 일은 저작권 중개 사무소를 돌아다니며 책을 추천받고 꼼꼼히 검토해 <대박>날 책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경제경영서 같은 무지한 분야의 책들을 고르는 건 괴로운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온갖 종류의 책을 접하고 읽는 게 좋아서 처음엔 꿩먹고 알먹는 일이라고 기뻐했었다. 요것조것 책을 골라 읽으면서 정기적인 수입도 생겼으니까.
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출판 경력도 전혀 없는 내가 어떻게 개인적인 취향이나 재미 여부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잘 팔릴> 책을 골라낸단 말인가! 출판사에서 원하는 건 <베스트셀러>가 될 책 90% + <출판인으로서 의미 있는 책> 10% 정도의 비율이었으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책은 얼마든지 추천 가능해도 <잘 팔릴 책>을 찝어내는 건 로또 번호 찍기처럼 막연하기만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저작권 중개사무소에서 소개받은 <유망한> 책들을 다 읽고 검토서를 만들어 기획회의를 거쳐 높으신 분들이 결정하도록 책임을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놓친 고기는 늘 커보이는 법이라고, 내가 보기에 괜찮은 책 같아서 열심히 추천하다가 막판에 꼬리를 내려 출간을 포기했는데 그 책이 다른 출판사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 난 곧 지탄을 받았다. 워낙 좋으신 분들이라 심한 얘긴 하지 않았지만, 그때 내가 좀 더 강력하게 출간을 주장했으면 안 놓쳤을 거라며 안타까워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내가 완전 별로라며 소개만 하는 수준에서 그쳤던 원서가 그럴싸한 포장으로 날개돋친듯 팔려나갈 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베스트셀러가 다 좋은 책은 아니란 건 누구나 알지만, 아무리 문화산업의 자긍심을 품은 출판사라고 해도 우선은 매출이 높아 돈을 많이 벌어야 그 여력으로 <많이 팔리진 않더라도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최종 결정은 다 같이 했더라도, 비싼 저작권료 지불해가며 공들여 출간한 책이 맥을 못추고 안팔려도 애당초 맨 처음 그 책을 집어왔던 장본인인 나는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대체 출판이 도박과 다른 점은 뭐란 말인가!

책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도 좋았고 책 자체를 읽는 재미는 충분했지만 나는 3년만에 결국 <책 고르기>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아예 외서 기획일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내게 그 일을 맡겼던 출판사 사장님의 깊은 뜻은 번역가로서 책 고르는 안목을 높여 주어지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책을 선정하고 기획해 출판을 주도하는 역할까지 하라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런 재목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지금도 가끔 아마존이나 뉴욕타임스 북리뷰 같은 사이트에서 좋은 책을 찾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출판인들이 계시지만,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적이는 수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게을러서 그럴 시간이 잘 없네요..."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블로그 이웃 가운데 동종업계에서 번역에 힘쓰고 계신 두 분은 놀랍게도 번역과 함께 그 어려운 <책 고르기>를 병행하고 계신다. 재미 있으면서 가치도 있는 책을 골라 어렵사리 출간을 권유하고, 또 번역을 맡아 그 책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땐 성취감과 뿌듯함이 몇배는 더 클 것이다. 더욱이 그 책이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어 <잘 팔리는 책>으로까지 인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막연히 그걸 짐작하면서도 겁쟁이에 게으름뱅이이자 소심증 환자인 나는 의식 있는 번역가의 책무라고 하는 그 길을 갈 수가 없다. <책 골라 권하기>는 고사하고 출판사에서 골라준 원서 읽고 검토서 하나 만들라고 하는데도 어깨가 무거워 한숨을 쉬는 위인임에야 어쩌겠는가.

마뜩찮게 도맡은 책 검토를 할 때도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번역작업을 맡을 욕심에 재미없는 책을 재미있다고 의견을 내거나 가치없는 책을 가치 있다고 추켜세운 적은 없다는 점이다. 사실 사적으로 싫은 분야가 아닌 한 웬만한 책은 소소하게 읽는 재미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이미 다른 언어로 세상에 선을 보인 책은 누군가 출간할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이므로, 그 분위기에 얼렁뚱땅 편승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또 다시 수천만원 이상의 돈과 노력을 들여 나무 없애가며 다시 우리말로 책을 펴낼 의미가 있을지 곱씹어보자면 나는 웬만하면 회의적인 태도로 기울게 된다. 어쩌면 출간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술수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책이 안팔려도 최초 검토자로서 덜 민망하도록. 물론 검토자에게 추후 책 판매 여부의 책임을 묻는 출판사는 없다. 검토자가 아무리 칭찬을 하거나 혹평을 해도, 결국 최종 결정은 출판 기획자의 몫이니 말이다.

번역서든 창작서든 이 땅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하나같이 여러 사람의 고민과 염려와 손길을 거쳐 탄생한다. 얼마 전 본 기사엔 3만개도 넘는 국내 출판사 가운데 작년에 한 권 이상 책을 낸 곳이 10%에 불과하며, 나머지 90%는 단 한 권도 책을 펴내지 못했을 정도로 출판시장이 열악했다고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지천으로 깔려있고 쌓여있고 꽂혀 있는 게 신간이던데, 그게 겨우 10%였다니.

올해 상황은 어떠했을지 지나봐야 알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먹고 사는 형편이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한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책 산업이 돌연 호황을 누릴 리 만무하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어렵디 어려운 <책 고르기>와 <책 만들기>에 종사하는 수많은 출판인들이 보람을 느끼려면 그래도 누군가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골치아프게 만들어 내놓는 입장보다야 선뜻 집어 읽는 입장은 얼마나 더 수월한가. 확실히 나는 독자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막상 읽기를 소홀히 하는 걸 보면 책으로 밥 벌어먹을 자격이 부족한 것도 같다. 2009년 정리할 때 덜 부끄럽도록 마지막 남은 한달 동안 몇권이나 더 읽을 수 있으려나 마음이 조급하다. 검토서 멀미증의 영향으로 독자로서 읽은 책의 후기를 쓰는 것 또한 못할 노릇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웃 애서가들에게 자극을 받아 올해는 읽은 책을 기록하는 독서노트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정리에 젬병인 위인에겐 큰 발전인데, 이러다 보면 시답잖은 감상이라도 언젠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꼬박꼬박 독서후기를 쓸 날도 오게 되려나 어쩌려나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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