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망증

아픈 손가락 2010. 1. 9. 02:43
윙윙거리는 정적 속에 가끔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소리만 툭탁거리는 새벽, 안방에서 자고 있던 엄마가 난데없이 작업실 방문을 열고 말했다. 자다가 생각하니 암만해도 이상해서 일어났다. 니네 아빠 참 이상하다. 어딜 가서 며칠 째 집에 안 들어오는 거니? 밤마다 신경안정제 기운으로 간신히 잠드는 엄마는 가끔 벌떡 일어나 엉뚱한 잠꼬대를 현실처럼 하는 바람에 사람을 놀래키지만, 그날은 나도 당황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멍하니 바라보다 드디어 내가 입을 열었다. 잘 생각해 봐, 엄마. 아빠 어디 갔는지 기억 안나?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던 엄마는 그제야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다. 맞다, 니네 아빠 돌아갔구나. 그걸 어떻게 까먹었을까. 엄마 어쩌면 좋으니...  잠깐동안 더럭 겁이 났던 딸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엄마를 데리고 안방에 가 이불을 덮어드리고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벽녘 잠결에 벌어진 그 같은 해프닝을 다음날에 엄마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한 사람과 쌓은 50년의 추억과 습관이 단 2년만에 지워질 리 없다고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보지만, 우울증이 심해져 가끔 섬망증까지 보이면 더럭 겁이 난다. 이건 분명 약 탓일 거야. 암. 그렇고 말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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