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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11.19 요가 2주 11
  3. 2009.11.09 어루만짐 15

배가 불렀구나

투덜일기 2009. 11. 20. 16:14

혹시나 물기가 남아 있으려나 싶어 빨래를 쥐어짜듯 머리를 혹사시켜 어렵사리 번역원고를 마감하고 나서 특히 이번엔 슬럼프가 깊었다. 시기적으로 공연히 맥빠지고 무기력한 늦가을이기도 했고, 내년이면 벌써 만 15년을 넘기는 이 직업과 나의 역량에 대해서도 새삼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일 하나 끝낼 때마다 슬럼프 타령을 한건 벌써 작년부터인 것 같다.
예전엔 책 한권을 마치고 났을 때의 성취감이 다음 작업시작을 부추길 만큼 커서, 마감 후유증이라며 한 일주일이나 열흘쯤 널브러져 있다간 얼른 새 일감의 책장을 넘기곤 했다. 그런데 이젠 꼬리에 꼬리를 물듯,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 반복되는 과정이 어쩐지 한심하고 짜증스럽게 느껴져 작업 중간에도 돌연 맥이 빠지는 바람에 몇달씩 배째라는 식으로 마감일을 넘기기도 했고, 새로 다시 일을 시작하려면 마음을 추스리는데 한달씩 걸리기도 하는 지경이다.
몇달씩 끙끙거린 작업의 결과물이 따끈한 책의 형태로 주어져도 예전 같은 벅찬 감격은 느껴지지 않는다. 책이 나오면 신간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책구경을 하느라 일부러 서점엘 나가보던 정성 따위는 벌써 10년 전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수없이 쏟아진 책들 사이에 파묻혔다가 소리없이 사라질 그 책의 운명이 눈에 환히 보이는 듯해 차마 보기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얼마 전 오랜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내가 털어놓았다. "나 요새 일하기가 싫다."
십수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 친구도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며 맞장구를 쳤다. 헌데 주변에 그런 얘기를 털어놓았더니 단박에 "너 배가 불렀구나"하는 반응을 보이더란다. 요즘 일 없어서, 짤려서, 망해서, 팽팽 놀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이 있으면 감사한 줄 알라고 했다나.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건 한편 동의하지만, 동시에 배알이 뒤틀리기도 한다.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내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애써왔는지 저들이 뭘 안다고!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선택한 직업인데 끊임없이 문제만 풀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다는 친구와 달리 나는 정말로 내가 선택한 일 자체에 멀미가 나고 회의가 드니 문제다. 분명 평생 하고픈 일을 찾았다고 여기며 들어선 길이었는데, 이 길이 아니면 어쩌나 싶은 느낌.
회사 다니던 시절 성취감이나 뿌듯함은 눈곱만큼일 뿐이고 대부분은 조직사회의 중압감과 심리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괴로웠던 마음에 비하면야 여전히 훌륭한 선택이라 생각되지만, 그 정도 위로만으로는 밤샘을 밥먹듯하면서도 책장을 넘기며 흥을 냈던 열정이 되살아나질 않는다.

친구는 "아마 우리 나이가 그런 나이인가보다."는 결론으로 잘 넘겨볼 것을 권했지만, 이 맥빠짐이 정말로 단순한 나이 탓인지 잘못된 길 탓인지 배부른 투정인지 나로선 잘 모르겠다. 어쩌면 괜한 욕심 부리다 겪는 배고픔이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겠고. 어쨌거나 궁금한 건 해마다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출판계의 역사 갈아치우기가 내년에도 되풀이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올해도 읽은 책보다 사들인 책이 더 많건만, 대한민국 출판계는 왜 노상 불황인지 원. 혹시라도 내년엔 출판계 호황에 힙입어 불끈 번역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길 빌어봐야겠다. 여러모로 따져봐도 배가 불러서 하는 푸념은 확실히 아니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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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2주

투덜일기 2009. 11. 19. 16:23

뻣뻣녀의 요가수업이 어제로 2주를 넘겼다. 일주일에 세번이니깐 겨우 7번 강습받았다는 의미다.
겨우 2주만에 요가의 참맛을 알았다거나 별안간 몸이 유연해졌을 리는 결코 없다. 여전히 나는 30명 가까이 되는 강습생들 가운데 제일 뻣뻣하고 자세가 어정쩡하여 간간이 너무 터무니없는 몸부림에 스스로 킥킥 웃음이 날 지경인 최악의 몸치로 애쓰는 중이다.
강습이 없는 날에도 집에서 한 가지 동작만이라도 연습을 해보라는 강사의 권유가 있었지만 나는 꿋꿋하고 철저하게 강습 있는 날에만 몸을 못살게 굴 뿐이다. 많은 이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핫 요가를 한다는데, 곰탱이 동면모드에 접어들고픈 욕망이 강해진 나는 밤일도 거의 안하면서 이미 뿌리깊은 습관이 되고 만 밤참먹기를 계속하여 밤참으로 인한 식곤증에 기대 곧장 잠드는 나날을 거듭하면서 오히려 체중이 약간 불어나고 있다. 원래 여름보다 겨울에 체지방이 많아야 추위를 잘 견딜 수 있으므로 해마다 겨울맞이 체중 증가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나는 혹시나 요가 덕을 좀 보려나 궁금했는데, 일주일에 세 번의 요가로는 큰 에너지 소모가 없음을 깨닫게 됐다.

몇년전엔가 친구 하나가 살사댄스를 독하게 배우며 스스로 운동신경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악착같이 몸을 찢어대니까 결국 다리가 180도로 벌어지게 되더란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다른 젊은 친구 하나도 매일매일 다리를 벽에 대고 조금씩 찢(?)으면 1도씩 벌어져 1년 안에 180도로 벌어지지 않겠느냐고 호기롭게 장담을 했는데, 그간 온갖 종류의 댄스를 섭렵하고 지금은 발레까지 배우고 있다는 걸 보면 인간(의지력이 뛰어난 인간에 한해서;;)의 몸이 얼마나 적응력이 뛰어난지 감탄스럽다.
하지만 나같은 운동치에다 의지력박약인은 경우가 다르다. 지금은 없어졌다지만 그 옛날엔 체력장 반영점수 20점을 따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반마다 두어명 정도는 있지 않은가. 매달리기는 초시계를 누르자 마자 떨어지고, 100미터 달리기는 20초를 초과하고, 오래달리기를 하고 나면 쓰러져 양호실에 실려가는 부류... 바로 내가 그런 인간이었다. 대학에 가서도 교양필수로 체육과목을 들어야했고 배구와 탁구 따위 실기 때문에 C-학점을 받고 나서 내가 느낀 비감을 그 누가 알까.  

헌데 요즘 요가원에서도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느꼈던 비참함을 자꾸 느낀다. 가령 엎드렸다가 한쪽 다리를 접어 반대편 팔로 잡고 최대한 위로 들어올리는 동작을 하라는데, 팔다리가 짧은 나는 아예 발을 잡는 것조차 어려우니 어떻게 들어올린단 말인가. 그 상태로 옆으로 몸을 굴리라고 하면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서 뒤집어진 한마리 바퀴벌레처럼 버둥거리고 있다. -_-; 예전에도 김연아의 스케이트 연기를 보면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지만, 나는 요가매트에 엎드려서 한쪽 발을 당겨 잡는 것도 못하는 판국에 스케이트 날로 서서 빙글빙글 돌며 고무줄처럼 팔과 다리를 나란히 등뒤로 접어 올린 동작을 보노라니 입이 더욱 딱 벌어졌다. 감히 내 몸뚱이를 여신의 몸에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어떻게 같은 인간의 몸이 그렇게 유연할 수 있는지!

요가원에서 강사들이 엄마도 아닌 고모가 조카를 데리고 다니는 걸 몹시 의아해 하며 자꾸 묻길래 하는 수 없이 영문을 털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뻣뻣조카가 자기보다 더 요가를 못하는 최악뻣뻣고모와 다니고 싶어 했다고. 공주의 엄마는 이미 요가 베테랑이라 비교되기 싫었던 모양이라고. 그나마 요가원이 어둑어둑해서 강습중엔 민망함을 덜 느낄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그 어떤 동작을 해도 어설프고 나도 모르게 숨을 헐떡대고 있으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안쓰던 근육들이 놀라 삭신이 쑤시던 증상은 이제 거의 사라졌음에 기뻐하고는 있지만, 과연 몇달이나 힘써야 몸매도 동작도 어여쁜 강사들의 자세를 절반쯤이라도 따라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그 몇달까지 계속 버티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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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루만짐

투덜일기 2009. 11. 9. 15:23

"나이 들수록 사람은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되는 법이다. 늙음은 심신의 쇠약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아내나 남편, 정인이 살아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들은 대개 섹스를 포기함과 동시에 어루만짐까지 포기하고 만다. 어루만짐이 외로움을 치료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루만짐은 더 나아가, 때로는 죽음으로 이르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몸이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어떤 접촉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이 탓이든 다른 이유로든 외로움을 타는 사람에게 어루만짐은 최고의 약손이다." (235쪽)
                                                        -- 고종석, <어루만지다>, 마음산책, 2009

 
책을 읽을 때도 확실히 당시의 관심사나 고민거리에 따라 눈을 파고드는 구절이 다르다. 여름부터 읽다 던져두기를 반복한 책을 어제 드디어 끝냈는데, 대체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사랑의 언어와 단상들 가운데 저 부분이 유독 가슴을 울렸다.
나무토막처럼 무뚝뚝한 나의 기질에 굳이 유전인자를 따져본다면 분명 엄마한테 물려받은 것이다. 눈 나쁘고, 키작고, 팔다리 짧고, 머리숱 없는 것까지 죄다 아버지를 닮았으면서 다정다감하고 잘 <어루만지는> 성품은 왜 안 닮았나 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소심하고 무뚝뚝한 성격을 물려받으려거든 덩달아 눈 좋고 키 크고 롱다리에다 머리숱도 많은 유전인자를 같이 타고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쨌거나 무뚝뚝 모녀는 결코 먼저 손을 내밀어 부비적거리는 성품은 아니되 다정한 가장 덕분에 평생 넉넉한 어루만짐 속에 살아왔는데, 이젠 그 뚜렷한 부재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딸이지 남편이 아니야!>라고 왕비마마에게 소리쳐보지만, 그래도 엄마가 내게 원하는 건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도 조물락조물락 손을 어루만져주고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고 아프다고 하면 안쓰러워서 꼭 안아주던 남편처럼 다정히 굴진 못하더라도 가끔 외로움을 어루만져줄 따뜻한 <약손>이 틀림없는 것 같다.
하루하루 덩치 큰 아기가 되어가는 듯한 엄마와 어떻게든 악착같이 철부지 딸노릇을 하고 싶은 나의 갈등은 결국 내가 힘겨루기를 포기하고 제대로 어루만지는 역할을 수행할 때 풀릴 것이다. 하지만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도 왜 자꾸 억울함이 고개를 드는지(가령,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팔순 가까운 노모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고 집안일은 한톨도 안하며 사는 진정 캥거루족 지인을 부러워하며 -_-;), 내 마음속의 철부지를 자꾸 달래보아도 잘 모르겠다. 자식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일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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