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투덜일기 2007. 6. 18. 22:01
날씨는 폭염이지만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금방 안심하고 돌아서면 5분도 채 못돼서 아버지의 상태가 나빠졌으니
중환자실 밖에서 대기하란 연락이 온다.

매일 아침 나는
햇살이 너무도 찬란하니까,
하늘에 구름 한 점도 없으니까,
까치가 유독 반가운 목소리로 창밖에서 울어대니까,
아버지가 키우시던 화분에 새로이 꽃이 돋아나고 있으니까,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신호등을 한번도 안 걸리고 통과했으니까...
별의별 이유를 들어 희망을 품으며
오늘은 꼭 아버지가 의식을 되찾고 눈을 뜨셨을 거란 기대로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우리 가족과 친지들의 간절한 바람은 계속 찬서리를 맞고
복잡한 기계와 호스에 둘러싸여 누워 있는 아버지는 아직도 좀체 깨어날 기미를 안보이신다.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조바심을 버리려고 애는 써보지만
두려운 마음엔 덜컥덜컥 성급함이 밀려든다.

오래도록 병상의 아버지를 지키려면
이제 조금은 일상으로 돌아가 일도 해야 한다고 스스로도 되뇌기는 하는데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다.
놀란 엄마를 혼자 두는 게 안쓰러워 컴퓨터 앞에 앉는 것도 죄스러운 지경이라
대부분 두 모녀가 나란히 손을 잡고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다.

편히 잠드는 것도 꾸역꾸역 밥을 먹는 것도 구차하고 허망한데
보호자인 우리가 튼튼해야 아버지를 잘 지킬 수 있다는 원칙에 매달려 그래도 잘 버티고는
있는 것 같다.

오늘도 폭염속에 살얼음을 한 뼘 또 건넜나 보다.
누구보다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계실 아버지가 잘 견뎌주시길 빌뿐이다.
올해는 우리 가족 모두 가장 덥고도 추운 여름을 보내게 되는 듯...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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