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꽤 오래 전부터 나는 빗질을 하지 않는다. 곰곰이 돌이켜 보아도 대체 언제 시작된 습관인지 모르겠다. 머리를 보글보글 볶고 나서부터인가?(파마를 하고 나서는 '컬'이 망가지지 않도록 '도끼빗'이라고 하여 빗살이 아주 성긴 거대한 빗을 사용해야 한다고 들었고, 과거 그런 도끼빗이 우리집에도 있었다.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하지만 요샌 줄곧 생머리인데. 암튼 내방엔 아예 납작한 빗(일명 comb)이 없다. 대신에 헤어드라이 할 때 쓰는 둥근 롤브러시와, 일반 브러시가 하나씩 있기는 하다. 그나마 머리를 말릴 때 롤브러시를 앞머리와 옆머리에 대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쓱쓱 빗어내리기는 하므로, '빗질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받을 수는 있겠으나 어쨌든 그 행위는 내게 '빗질'로 여겨지지 않는다. 빗질이라 함은 납작한 빗이든 브러시든 손에 들고서 머리칼 전체를 쓱쓱 빗어내려야하는 거 아닌가? 난 그런 거 안한지 정말 오래됐단 말이지.
차르르 윤기나는 머릿결을 위해서는 열심히 빗질을 해주어야 한다는데, 오래도록 빗질을 생략하고 대충 털어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쓱쓱 정돈한 다음 헤어드라이어로 말릴 때도 롤브러시 대신 손가락으로 말거나 빗는 것이 나는 더 편하다. 물론 그 때문인지 머릿결도 엉망이다. 가뜩이나 숱도 적고 얇은 머리칼엔 점점 히마리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나이들면서 죄다 보글보글 아줌마 파마들을 해대는 이유도 생머리로 버틸만큼 숱과 결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이든 친구들이 귀띔을 해준다. 너도 얼마 안 남았어, 얘. 원래도 숱이 적어 속알머리가 들여다보이던 머리칼은 더욱 부실해졌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머리칼이 빠져서 브러시에 마구 끼어있는 걸 빼내는 것도 고역이다.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도, 브러시에 끼어 엉킨 머리칼도 나는 잘 못보겠다. 좀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머리 길이가 계속 짧은 편이었던 것이 원인일 수도 있겠으나(실제로 30대의 대부분은 숏커트로 살았던듯) 최소 10년은 넘게 '제대로' 빗질을 안하고 지냈음을 새삼 깨닫고 보니 스스로도 퍽 신기하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까? 게으른 나만 그런가? 빗질 안하기를 처음 내게 조언했던 건 분명 미용실이었다. 젖은 머리를 빗으로 빗으면 상하니깐 빗지 말고 수건으로 탁탁 털어 말린 후 손가락으로 슥슥 어루만지며 말리라고 말이다. 그러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미용실에서 그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지 않을까? 물론 나처럼 그말을 십수년째 별 생각 없이 고수하란 법은 없겠지만.
하여간에 머리 길이와 상관없이 빗질 안하는 습관이 뿌리깊게 박힌 나머지, 요즘처럼 머리칼을 마구 방치하여 꽤나 길어지고 나면 이놈의 머리칼이 마구 엉킬 때가 있다. 특히 머리감고 나서 잘 안말린 채 비비고 잠을 잔 뒤엔 어김이 없다. 대개는 빗 대신 손가락으로 슥슥 빗어 넘기면 걸리는 것이 전혀 없는데, 가끔 뒷머리가 쇠수세미 뭉치처럼 바글바글 엉켜있는 거다. -_-; 그러면 또 행여나 소중한 머리칼 빠질세라 끊어질 세라 한올한올 엉킨 실 풀듯 손으로 풀어주어야 한다. 오늘도 한참 엉킨 머리칼을 풀고 앉았다가 킬킬 웃었다. 애당초 머리를 참하게 빗어놓았더라면 엉킬 일도 없었을 텐데 참 나. 성격도 이상하여라.
예전에 엄마가 뜨개질 고수였던 시절, 술술 뽑아쓰기 좋게 하느라 털실을 미리 풀어 바구니 같은데 담아놓았는데 동생들이 뒤집어 엎는 바람에 실이 엉키면 엄만 엉킨 실을 푸는 임무를 내게 맡겼다. 아주 드물게는 도저히 풀리지 않아 끊고 다시 실을 이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대개는 내가 기필코 엉킨 실을 다 풀어내고야 말았고 그 성취감을 퍽이나 즐겼던 것 같다. 오늘도 엉킨 머리칼을 한올한올 잡아당겨 죄다 풀어 다시 매끈하게 만들어놓고는 별난인간도 다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번쯤은 잘못될 것을 알면서도 즐기는 짜릿한 모험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그렇다고 새삼 내일부터 열심히 빗질을 시작할 위인도 아니고 이 게으름의 끝은 어디일지 그게 나도 궁금하다.
게으름 뒷설거지 하느라 연말연시는 늘 쫓기듯 바쁘지만 그래도 노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한해 정리 포스팅을 하려면 못할 것도 없었는데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우유부단한 속성 탓에 좀체 항목별로 셋을 뽑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_-; 마음에 꼭 드는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도, 베스트 사유를 쓰는 것도 은근히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라 스스로 찔리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런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또 이렇게 얼렁뚱땅 하고만다. 2011 베스트 포스팅. ㅋㅋ
1. 2011 베스트 책
책 목록에서 인상 깊었던 걸로만 색을 달리해두고도 꽤나 뽑기 어려웠다. 결국 독서노트를 뒤져 가장 인용문을 많이 적어둔 책을 보니 얼추 세권의 윤곽이 드러났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의외로 남들이 다 읽은 책을 하도 안 읽은 게 많아, 이 책 또한 안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주인공 모모가 낯익은 건 순전히 <모모>와 동명이인이기 때문일 거라고. 그런데 중간쯤 하밀 할아버지와 로자 아줌마가 결국 어떻게 어떻게 될 것인지, 모모의 반전 비밀이 뭔지 다 기억이 났다. 아마도 대학 다닐 때 쯤 읽었던가. 그런데도 폭풍 감동에 눈물을 훔치며 읽었다.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수많은 구절을 적어놓아 대체 뭘 인용할까 또 고민스럽다. 그래도 대강 골라 적자면...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 p95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p113-114
" <식스펜스 하우스>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
킥킥대고 책을 읽고 나서 감동후기를 올릴까 하다가, 블루고비가 옮긴 책이라 또 다시 팔이 안으로 굽는 주례사후기(?)로 오인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뒀었다. 특유의 유머와 집요함, 박식함이 넘치지 않게 어우러진 폴 콜린스의 글쓰기 묘미에 나도 빠져든 것 같은 데다, '책들의 종착지'라는 헌책 마을 웨일스 헤이온와이에 무작정 살려고 갔던 지은이의 좌충우돌 체험기라 소재부터 흥미진진했다. 헤이온와이를 책마을로 만든 장본인인 리처드 부스 할아버지가 작년 무슨 도서전에 한국에도 왔던데 구경갈까 하다 관뒀을 정도. 책의 가치에 대해서, 어쩌면 운명이 비슷한 인생에 대해서 소소한 생각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을 썼다는 사실에는 참 희한하고도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점이 있다. 책은 읽히기도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이 질겨서 대개의 경우 작가보다 오래 남는다." - p168.
"원래 작가라는 일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 p254
<연민>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이온화 옮김/지식의숲
다른 주민들의 책 베스트에도 많이 보이는 책을 나도 꼽았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이라는 부제에 모든 단서가 담겨있다. 나 역시 <광기와 우연의 역사> 밖엔 읽은 적이 없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이 이토록 맛깔스러울 줄 짐작도 못했다. ^^; 다른 책도 찾아 올해 '몰아읽기' 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그저 어린아이가 우표를 수집하듯 열심히 친구를 모으고, 모은 표본(친구)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거리낌이라곤 없는 사람에 속했다." - p9
"반만 행한 일과 반만 내뱉은 암시는 언제나 악의 원인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어중간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 p123
"사람은 아무리 나쁜 규율일지라도 그것이 옆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면 곧바로 가볍게 느끼기 때문이다. 정의는 신비롭게도 폭력에도 적용된다." -p404
흐이구... 책 읽자마자 리뷰를 올렸으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을 것을... 아주 베스트 뽑으며 리뷰 올릴 기세다. +_+
적어둔 인용문이 거의 길어서 짧은 것 중에 골라 옮겨 적으려니 안타깝다.
2. 2011 베스트 영화 비기너스
천국의 속삭임
주노
이탈리아 영화 <천국의 속삭임>(역시나 애들이 주인공인 영화 좋다! 게다가 음향감독의 실화라니 더욱 감동;;)은 연초에 봤는데도 기억에 오래 남아 단연 베스트 후보였고 연말에 본 <비기너스>(시작하는 연인들, 유안 맥그리거와 멜라니 로랑의 만남도 좋았지만, 일흔다섯 병든 아버지의 설레는 사랑 또한 눈물겹게 흐뭇했다. 소소한 소품과 배경도 딱 내 취향)또한 보자마자 베스트 후보임을 실감했다. 나머지 하나를 뽑는데 살짝 고민을 하긴 했으나, 역시 뒷북으로 본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주노>(개성 넘치는 주인공 주노의 선택과 식상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주노 새엄마는 <웨스트 윙>의 CJ였어! ㅎ 좋아하는 캐릭터였는데;; <If you're in, I'm still in>이라고 주노가 광고지에 적어준 쪽지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는 마지막 장면까지 흡족~) 가운데 유쾌한 영화를 골랐다. <파니 핑크>를 만들기도 한 도리스 되리 감독을 좋아하지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슬퍼서 또 보려면 가슴 아플 듯.
3. 2011 베스트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최고의 사랑
공주의 남자
압도적인 1위이자 군말없는 올 최고의 드라마였던 <뿌리깊은 나무>를 억지로 꼽은 나머지 둘과 같이 올릴 수야 없지. ㅋ
3회였나, 4회부터 보다가 완전 빠져들어 앞부분 재방송 찾아본 뒤엔 거의 본방사수 하려고 노력했다.
별로 닮지 않았음에도 송중기에서 한석규로 이어지는 이도 세종역할의 전환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니! 송중기도 다시 봤고 한석규한테는 정말 감탄했다. 극의 짜임새며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파는 대본이며, 주조연의 연기(진정 충신 무휼과 조말생 대감까지!)며... 피칠갑을 했던 마지막회가 좀 보기 힘들었던 것만 빼면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가놈의 마지막 반전까지 숨겨놓은 작가들 정말 존경스럽다. +_+
"임금의 마음이 지옥이지 않은 태평성대가 어디 있더냐"고 했던가, 가슴을 쿡쿡 후비는 감탄스러운 대사가 매회 툭툭 쏟아졌는데 그때그때 적어놓지 않아 다 까먹었다. 밀본 정기준과의 마지막 대면에서 세종이 "백성은 속아도 되고 지더라도 괜찮다. 또 싸우면 된다"고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사극 보면서 어쩜 그리도 요즘 정치 세태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사가 많던지. 드라마 보다 말고, 그래, 속아서 대통령 뽑은 사람들도 대선 총선에서 또 싸워주면 된다고 중얼거리고 앉았었다. 참 놀라운 드라마 아닌가!?
두번째는 <최고의 사랑>인데 가나다순으로 사진이 밀렸;;다. ㅋ 후반부로 가면서 재미와 관심도 점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구애정과 독고진, 띵똥 보는 재미에 끝까지 의리를 지키며 봤던 드라마다. 공효진을 원래 좋아했지만 연기에도 묻어나는 듯한 매력이 궁금해서 책(공효진의 <공책>)까지 사봤으니 뭐 말 다했지. 책 편집과 만듦새는 참 엉망이라는 걸 알고 봤음에도 공효진이 전하려는 환경 메시지와 생각은 마음에 들었다. 공효진의 다음 작품 기대중.
<공주의 남자>는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한정적인 얼개 탓인지 중반 이후에는 거의 재방송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의 반복이라 차츰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특별히 베스트에 넣어주었다. 세령 역의 문채원의 연기력이 좋아지는 과정을 응원하며 보던 생각도 나고(한복이 참 잘 어울렸던 <바람의 화원> 때부터 팬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선 마음에 안드는 한복이 너무 많았음! 특히 그네탈 때 입었던 것.. 으으), 김종서와 수양대군을 연기한 중장년배우(이순재/김영철)도 좋았다. 울먹이며 "우리 삼촌이 맞습니까?" 묻던 아강이 역할의 김유빈은 최고였고! <뿌리깊은 나무> 마지막회에서 한가놈의 정체가 드러난 뒤 성삼문, 박팽년과 스쳐지나는 장면을 보며, 먼저 방영한 이 드라마에서 본 사육신 참살 과정이 떠올랐던 것도 베스트 선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
그러고 보니 사극 잘 안보는데 베스트에 둘이나 뽑혔고, 외국 드라마는 아예 없다. BBC <셜록>을 기대했는데 아예 제작이 무산되어 안타까웠다. 올해는 설마 제작되겠지.
전시도 둘만 선정했다. 둘 다 후기 올렸으니 링크 참조.
훈데르트 바서 전시회를 갔더라면 셋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만 잔뜩.
올해는 가고픈 전시를 안 빼먹고 다 갈 수 있으려나.
6. 2011 베스트 발견
엄마의 건강
정유정
Snoopy's Street Fair
게임중독자의 자질
내가 번역한 책 한권의 힘이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년 한해 엄마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체중은 7kg정도 줄었고 10분도 채 못걷던 분이라는 걸 믿기 어려울 만큼 걸음도 경쾌해졌으며, 심리적으로도 대단히 안정적이다. 우울증 약도 꽤 줄였는데 정신적인 안정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모습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도 잘 본 적이 없었다. 일년에 열달은 울증, 한달은 조증, 나머지 한달만 말짱하다고 내가 농담삼아 툴툴거렸던 게 거짓말 같다. 이젠 나더러 운동 안한다고 잔소리를 하실 정도고, 최근엔 심지어 잠든 나를 그냥 내버려두고 혼자 버스타고 대학병원엘 다녀오셨다. 동네 의원은 몰라도, 복잡하고 진료과도 많은 대학병원은 아버지 계실 적에도 반드시 내가 운전해 모시고 다녔었는데... 아마도 엄마가 혼자 대학병원엘 가서 진료받고 약 타온 건 근 10년만에 처음이 아닐지. 암튼 과거의 엄마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살았다는데, 요즘 엄마는 '열심히 살려고' 사신단다. 합창단 연습도 여전히 열심히 참여중. 매우 고무적이고 감동이다.
정유정은 <7년의 밤> 읽고 반해 국내작가 중 유일하게 전작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읽고 나니 군더더기랄까 좀 과하다 싶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던 <7년의 밤>보다 <내 심장을 쏴라>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에 읽은 청소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가 제일 좋아 두세번은 본 것 같다. 책표지가 기묘하게도 지우 그림과 많이 비슷해서였을까(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전무함에도!), 이상스레 정이 가는 작품. 어쨌거나 주류 문학계에선 정유정을 완전 무시하고 있대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 지켜볼 작정이다. 흥!
[#M_비슷하다고 우기기;; |접기|
아직도 안드로이드 마켓엔 없고 아이튠즈에만 있다는 스누피 마을 게임. 정말 지난 연말부터 삶의 낙이다. ㅠ.ㅠ
눈내린 겨울배경 업그레이드 버전도 좋지만 어서 봄이 와 초록 잔디 깔린 마을을 구경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벌써 22단계. 마지막 26단계가 머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를 이루고도 그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리세트 하고 처음부터 다시 마을을 가꿀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쪽이 나을지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다. 무료 앱이라 깔아놓고, 결국엔 10불짜리 기프트 카드까지 사서 캐릭터를 사모았다. +_+ 처음엔 하루에도 몇시간씩 끊임없이 붙들고 있었는데 그래도 요샌 틈틈이 실행해서 동전만 벌어들이는 쪽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ㅋㅋ 어제였나 연속 27일째라며,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 주는 동전 10만개를 또 받았다. 이러니 매일 접속을 안할 수가 없다니깐! ㅠ.ㅠ
산타 스누피 기념 캡쳐
200점 증거 사진 -_-;
네번째는 베스트가 아니라 워스트 발견이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우겨서 이 항목에 넣으련다. 스스로 중독자 기질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서... 작년에 이웃에 불었던 타일깨기 게임 열풍 때도 혼자 뒷북으로 열올라선, 다들 시들해 관뒀다는데도 홀로 악착같이(?) 중독자 답게 매달리더니(하도 시간낭비가 심해 즐겨찾기에서 지웠는데도 매번 구글 검색으로 찾아내 하고 있는 나를 발견;;;) 끝내 <200점>을 달성하고야 말았다. 그제야 관심에서 멀어져 더는 타일을 깨지 않고 있다. 대신 아이폰으로 스누피 게임에 매달리는 중. ㅠ.ㅠ 그러나 중독자임을 자각하여 자제하려고 노력한다는 데 의의를 두련다. ㅋ
7. 2011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멍하니 살았다.
적고 보니 두 마디로군.
아무리 돌이켜봐도 베스트나 워스트로 뽑을 만한 기억도 없고, 뭘 딱히 지른 것도 없는 것 같고(기껏해야 연말에 산 거위털 이불 정도?), 인상 깊은 사건도 없이 그저 소소한 아쉬움 뿐이다.
그래서 베스트 항목을 더 뽑으려야 뽑을 수도 없었다. 참 재미없게도 살았구나 싶은 느낌. 그래서 2011년을 보내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차라리 빨리 가버려서 속 시원.
8. 2011년 번역작업 달랑 3권이 출간됐다. 그중 하나는 두권짜리라며 위안을 해보지만, 8월 이후 하반기 출간된 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마도 출판 불황과 나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합작품일 듯.
작업한 책은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벌려놓은 수만 잔뜩이다. 스스로 채찍질이 필요. 그래서 일부러 적어놓았다. 정신 차리라고 쫌!
9. 2012년의 계획이라면 1. 일과 관련해서 좀 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될 것
2. 조금 긴 여행 (홀로 두고갈 엄마 걱정도 덜었겠다, 여행비 모을 욕심에 더욱 열심히 일하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3. 기타든 그림이든 뭘 좀 배우러 다니고 싶단 소망을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을 발휘할 것
4. 큰 마음 먹고 이사 (과연;; ㅎㄷㄷ)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인데도 택배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었는지 모르겠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좀체 나가고 싶지 않은 게르음뱅이로 살다가 그런 나날이 보름이상 이어지면 또 압력솥 꼭지를 틀어 증기를 배출하듯 콧바람을 쐬어 팽팽해진 무료함을 달래주어야 할 것 같은 삶의 연속인데, 그렇게 간만의 외출을 하더라도 쇼핑은 온전한 출타목적에서 제외된다. 지나는 길에 눈에 띈 물건을 얼른 사는 건 또 몰라도 말이다.
얼마전 홍대 와우북페스티벌에 가서 책을 고르며 사람에 치이기도 했지만 돌아와서 죽도록 피곤했던 이유는 눈요기로만 하는 것이든 실제 물건을 사는 것이든 하도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져 이제는 직접 발품 팔아 하는 쇼핑이 드물어졌기 때문인 듯하다. 뭐니뭐니해도 옷과 신발은 직접 가서 걸쳐보고 사야한다고 아직도 믿지만, '무료반품' 혜택까지 있는 경우엔 겁없이 덜컥덜컥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에도 뭔가를 지를때 한참 고민하는 성격이라 신중히 머리를 하도 굴리다보니 실패율은 그리 높지 않다. 최근 몇해동안을 따져봐도 반품한 횟수는 두어번 정도?
아무튼 이달 들어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택배가 왔다. 주변에 부는 운동화 열풍에 따라 검색하다 엉뚱하게 고른 밤색 옥스포드화, 옷을 사줄 땐 함께 가서 고르기로 한 원칙을 깨고, 반품할 각오를 하고 산 엄마 옷(다행히 마담사이즈라 익숙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브랜드라 성공했다), 두피관리에 좋다는 샴푸(벌써 두번째 구매), 검정콩 미숫가루(역시나 두번째 구매), 늘 쓰는 수분크림과 핸드크림, 장난감과 문방구(요맘때 정기세일을 하는 텐바이텐에서 또 사줘야 제맛이지), TV볼 때 쓸 목베개, 커피원두, 책, 내가 주문한 건 아니지만 외삼촌이 보내신 고구마까지. 어떤 날은 택배가 두 건이나 오는 날도 있었는데, 골목에 지나가는 차만 봐도 미친듯이 짖어대는 아래층 똥개 때문에 택배 오는 것도 나름 스트레스다. 놈이 좀 요란하게 짖어대야지!
다른 데서 쇼핑했는데 택배회사가 같아 이틀 내리 같은 분께 택배상자를 받게 되면 슬며시 민망하다. 이 사람은 뭘 이렇게 연일 사들이나 짜증낼 것 같아서(우리집 골목이 협소하여 운전에 미숙하거나 너무 큰 택배 트럭은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와 배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랫집들의 경우를 보아도 며칠에 한번은 택배가 오는 것으로 보아 (똥개가 워낙 크게 짖어대는 데다가 택배 아저씨들이 계단 아래부터 받는 이의 이름을 크게 외치므로 내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ㅋㅋ) 홈쇼핑에 탐닉하는 것 나뿐이 아닌 모양이다. 온라인 쇼핑 없을 땐 다들 어떻게 살았대그래!
오늘 도착한 플레이모빌(이건 세일도 안하는데 조카한테 상으로 하나 사주기로 한 김에 내것까지 또 구매)을 조립해 선반에 올려놓고, 종류별로 골라 산 '우표' 스티커를 문방구 상자에 넣어두며(거의 쓰지도 않고 보기만 할 거면서!) 어찌나 뿌듯한지 웃음이 실실 났다. 앞으로 누가 물으면 인터넷 쇼핑과 택배상자 받기가 취미라고 할까보다.
준백수처럼 종일 집에서 빈둥대거나 복닥거리는 날이 이어지다 보면 요일감각, 날짜감각이 사라진다. 그래서 굳이 날짜며 요일을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많지만 주말과 월요일은 그래도 비교적 확실히 안다고 자부했다가 어제 아주 바보짓을 했다.
새벽에 인터넷을 실행시키며 분명 한글날 기념임이 분명한, 구글의 한글 로고를 보았으면서도 이상하게 난 어제가 10일, 월요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말까지는 꼭 보내달라고 부탁받은 꼭지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주말까지 해달라는 말을 나는 월요일 출근 전까지 보내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침까지 눈에 불을 켜고 일을 마쳐 메일로 쏘아주고는 드디어 노곤한 몸을 눕혔다.
훤히 밝은 날과 소음(아래층 개자식!) 때문에 여러번 뒤척거리다 겨우 잠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퍼뜩 눈을 떠보니 이미 오후였다. 원래 월요일은 조카네 가야하는 날이다. 부리나케 점심을 먹은 뒤 씻고 나서 커피는 조카네 가서 마셔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내가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자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오늘이 월요일이었느냐고, 일요일인 줄 알았다고 의아해했다. 요일 감각 없는 건 모녀가 똑같은지라 그러려니 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골목을 후진으로 거의 다 빠져나갔을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전용으로 정해놓은 벨소리. 아 또 뭔가 싶어 이맛살을 찌푸리며 받아보니,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 9일이라는 엄마의 전언. 못믿겠으면 휴대폰 날짜를 확인해보라신다. +_+ 확인해볼 것도 없이 민망해 하며 냉큼 그대로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오래 전 어느 휴일에 자다말고 깜짝 놀라 회사에 지각한 줄 착각해 헐레벌떡 씻고 나서다 부모님께 깨우침을 받았을 땐 늦잠 못잔 게 억울해서 그렇지 온전히 하루를 공으로 벌은 것처럼 기뻤던 것 같은데, 어젠 남은 하루가 길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젠 휴일도 고스란히 일의 영역이 되고만 삶 때문인지 그저 우스꽝스러운 바보짓인 것만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그나마 엄마가 말려줬기에망정이지 조카네 집까지 가서야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황당하고 멍청이 취급을 받았을까. ㅋ 어쨌거나 나의 착각으로 일요일 아침에 보낸 메일을 보며 담당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모르겠다. 평소처럼, 요번에도 늦어서 미안하다고 서두를 달았는데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리려나 어쩌려나. 으으. 창피해.
커피는 투박하고 큼직한 머그잔에, 그밖의 차는 예쁜 찻잔에 마시는 게 제격이라는 편견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 몰라도 나 또한 그 편견에 꽤나 충실한 편이다. 커피는 잔이 투박하고 큼직해야 오래도록 식지 않을 테니 맞는 말 아닐까. 그리고 주워들은 풍월에 따르면 홍차는 약간 되바라진 잔에 마셔야 향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던데.
커피를 제외한 차의 맛을 잘 모르는 무감한 혀를 가졌으되 그냥 홍차는 모르겠고 한동안 '밀크티'에 탐닉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 네다섯 번은 홍차를 마셔대는 영국인들과 거래할 일이 있던 직딩 시절 출장 직후였던가, 아니면 번역으로 전업 후 영국에 있는 친구한테 다녀온 직후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여간 겨우 며칠 영국엘 다녀온 주제에 겉멋이 들었던 것인지, 우유를 넣은 그곳의 홍차가 진짜로 기막히게 맛이 있었는지, 영문은 알 수 없어도 평소 같으면 커피 생각이 날 무렵 밀크티 생각이 간절해질 때가 있었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무조건 커피를 시키던 내가 대신 밀크티를 주문하기도 하고...
밖에서 마시는 홍차나 밀크티는 대부분 또 얼마나 예쁜 잔과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지, 차 한잔에 스스로가 괜히 우아해지는 것도 같았다. 원래부터도 예쁜 커피잔만 보면 기어코 뒤집어서 제조사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도자기 주전자와 다양한 모양의 인퓨저(거름망이라고 해야하나? 잔에 걸쳐 놓는 채 같은 형태도 있는데;;), 앙증맞은 티백 접시까지 세트로 구비되어 나오는 집엘 가면 아주 흐뭇했다. 그런 걸 보며 흐뭇하기만 하면 좋겠으나 견물생심이라고... 예쁜 티팟도 갖고 싶고, 독특한 디자인의 인퓨저도 자꾸 눈에 들어오고, 브랜드명은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가격의 찻잔도 덜컥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 돼~~! 지름신 노예의 최종 귀결지가 주방기구라지 않던가! +_+
결국 나는 찻잔 욕심과 함께 밀크티를 끊는 쪽으로 마음을 접었고 이후 아무 잔에다 마셔도 적당한 농도에 양만 많으면 그저 기쁜 커피파를 고수했다. 그렇다고 과연 내가 티팟과 인퓨저를 하나도 사지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부담없는 수준으로 당연히 장만해 놓은지 오래라 가끔은 우아떨며 차마시기 놀이를 한다. 커피 생각 간절한데 한밤중에 커피를 마실 순 없고, 이렇게 갑작스레 서늘해진 날 따끈한 차 한 잔이 마시고 싶으면 만만한 카모마일이나 국화차, 허브차를 준비한다. 문제는 제대로 우아 좀 떨겠다고 간편한 티백 형태가 아닌 꽃이나 잎을 인퓨저에 넣고 우려내고 했다간, 나중에 치우는 일이 대단히 성가시다는 것. -_-; 새삼 방에 매달린 줄을 당겨 하인을 불러 차를 부탁하는 귀족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못할 짓이다. (매번 커피잔 씻는 것도 귀찮아서 갯수대로 있는 컵을 다 꺼내 쓰고 한꺼번에 설거지하는 인간이라고 이미 밝힌 적 있음;;)
시방도 1인용 티팟에 인퓨저로 카모마일을 우려낼까 하다가 문득 다 귀찮아져 티백을 꺼냈는데, 젠장, 대강 물을 부어 방에 와보니 종이 손잡이까지 찻잔에 몽땅 다 빠져버렸다. -_-; 혹자들은 티백에 든 차는 차로 쳐주지도 않는다던데, 그까짓 간단한 절차도 귀찮아한 사람에 대한 차의 반격일까 싶은 생각에 (쓰면서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ㅎㅎ) 웃음을 흘리며 뜨거운 찻잔에 손가락을 담가 티백을 건져냈다. 오 위대할손 나의 게으름이여.
지난 월요일 조카네 집에 가다가 오른쪽 앞바퀴에 펑크가 났다. 문방구에 들러 굳이 스테이플러 침을 사오라는 공주의 명령에 투덜투덜 낯선 동네에 차를 세우려니 삼거리에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피해보겠다고 만만한 인도에 슬쩍 걸쳐놓으려던 것이 연석 모서리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기는 했으나 내려서 살피니 차체가 멀쩡했다. 해서 얼른 문방구에 들어가 침을 사가지고 나와 차에 올랐는데 차가 오른쪽으로 폭삭 가라앉아 있었다. -_-; 차체는 멀쩡했으나 바퀴가 찢어진 것.
난감하긴 했지만, 내 이름으로 자동차보험을 든지 4년째 단 한번도 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해마다 생돈만 날렸는데 드디어 나도 써먹을 때가 왔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득의양양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보험카드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보험사 자동응답 내용에 아예 <타이어교체> 항목이 있더군. 상담원과는 한 마디도 할 필요 없이 (심지어 내 정체를 밝히는 주민번호나 보험카드 번호 확인도 필요없이 OOO 고객님이 맞으면 1번을 누르라고 하더라!) 계속 해당 번호를 누르고 나니 편의를 위해 고객의 현재 위치 통보에 동의하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오호라, 휴대폰 GPS로 바로 내 위치가 보험사에 날아가는 모양이었다. 좀 섬뜩한 기분도 들었지만 당연히 동의하고 전화를 끊었다. 1분만에 출동 기사의 전화가 와 구체적인 위치를 묻더니 10분 만에 서비스차량이 나타났다. 오 놀라운 IT 서비스천국의 혜택이여!
한시간쯤 늦어질 거라 예상했었는데 결국 모든 상황은 30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 따위는 있지도 않던 까마득한 옛날, 강변북로에서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 나는 바람에 갓길에서 혼자 낑낑대며 기구를 꺼내 자동차를 들어올리고 렌치로 나사를 풀고 양손이 온통 새까매지며 낑낑 타이어를 손수 갈았던 기억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 (나 타이어도 혼자 갈아본 사람이야!) 문제의 타이어는 단순 구멍 정도가 아니라 찢어진 거라 바꿔야할 거라고 기사님이 말했다. 비가 와서 타이어 고무가 말랑해졌나? 그 정도로 찢어지다니 나 원참 의외였다.
째뜬 임시로 타이어를 갈았으니 카센터에 내려가야 하는데 연일 비는 계속 내리고(어제 날 갰을 때 행동했어야 하거늘) 은둔본능에 휩싸여 좀체 외출하기는 싫고 심지어 냉장고가 텅텅 비었는데도 장보러 가는 게 꺼려져 웅크리고만 있다. 온갖 종류의 서비스가 다양해져 세상이 편해질수록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더욱 더 게으름을 부리게 되는 듯하다. 자동차 수리도 집에 가만히 앉아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사람 만나 설명할 필요 없이 척 차를 가져다가 척 고쳐서 다시 집앞에 세워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쯧쯧쯧...
어차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은 마트 가서 장도 보고 카센터 들러 타이어도 교체해야지 하며 오늘도 할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6월도 내일이면 쫑. 바쁜 마음과 달리 몸은 좀체 빠릿빠릿 움직여주질 않는다.
하얀색이라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게 더 잘 보이는 느루의 먼지를 털어내고 완전 내려앉은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고 정말 오랜만에 어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요가 관둔지도 두달이 돼가고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랑 씹기 밖에 안한 체력은 처음부터 티가 났다. 빠르면 20분, 늦어도 25분이면 도착하던 한강변까지 결국 다 못가고 중간에 쉬어야 했다. 핑계를 대려면 운동효과를 내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은 데다 맞바람 탓이었다고 둘러댈 순 있겠으나 그래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또 깨달았다.
자전거는 한번 익히면 절대 잊지 않는 종류의 기술이라는데 사람마다 좀 다른지 나는 이렇게 간만에 자전거를 탈 때마다 서툴게 헤맨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밀려드는 공포 때문일까? 페달질 하다 페달을 놓치질 않나, 안경이 흘러내리는데 핸들 한 손으로 잡기가 무서워서 안경도 못 올리질 않나, 스스로도 좀 난감하다 싶었다. 결국은 꾸준한 연습만이 살길이라는 건데 이렇게 몇달만에 한번씩 타가지고 언제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 원.
화창한 날씨에 풀풀 날려 떨어지는 벚꽃이 유혹적이라 나갔던 건데 한강바람은 아직도 쌀쌀하고 차가워 손이 시렸다. 장갑 안끼고 나간 걸 후회하며 예쁘고 새끈한 장갑을 사야겠군, 하고......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몇번이나 타려고! 다음에 느루 타러 나오기 전에 손시렵지 않은 날씨가 될 확률이 더 높다. ㅋㅋ
아 맞다. 자전거 살 때 받았던 검정색 벨을 조카에게 빼앗기고 계속 벨 없이 다녔는데, 안되겠다. 주말이라 그랬겠지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비롯해 굳이 보행로 놔두고 자전거길로 와글와글 걸어다니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벨을 달아야지. 갑자기 요란한 전자벨 울려서 사람들 놀라게 하는 인간들이 유독 싫어서 난 아예 벨을 잘 안울리는 편이라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었으나, 그냥 띠링띠링 울리는 벨 정도는 필수품임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느루에 어울리는 벨을 그간 계속 검색하고 있었지만 마음에 꼭 차는 게 없어서 머뭇거렸는데 좀 눈에 덜 차더라도 담번에 타러 나가기 전엔 사야할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엉덩이가 심히 아프다. 흑. 허벅지의 뻐근함이야 어쩐지 지방이 근육화 된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며 흐뭇한 효과를 남긴 반면 멍이라도 들은 것처럼 아픈 엉덩이는 좀 민망하다. 간만에 자전거를 타면 왜 꼭 엉덩이가 아픈지 원! 초보자의 비애일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암튼 앉을 때마다 엉거주춤 자세가 웃긴다. ㅋㅋ
대문사진에 찍어왔던 저 조형물까지 가보려고 했으나 내 기억상 분명 지난 것 같은데 나타나질 않았다. 중간에 공사중이던 공원안쪽에 가려져 있을 가능성도 있고 헉헉대느라 내가 덜 가보고 없다고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요트선착장과 편의점을 지나면 있던 저 조형물과 벤치를 향해 달리다 결국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춥고 손시리고 숨차서 힘든데, 한강엔 아직 쌀쌀한 날씨에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쉬면서 윈드서핑을 배경으로 찍는다고 남긴 사진이다.
동네 개천변 산책로는 거의 꽃길이었다. 개나리와 벛꽃, 이름까먹은 작고 하얀꽃(ㅠ.ㅠ)이 번갈아가며 지천으로 피어 있어 옆을 달리면서도 뿌듯했다. 허나 중간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찍을 생각을 못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왕비마마가 전화를 했다. 하는 수 없이 전화 받느라 자전거를 세운 김에 옳다구나 찍어왔다. 개나리에도 벌써 잎이 돋아나 완전히 샛노랗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스럽고 예쁘다. 게다가 금상첨화로 인적도 사라졌고! (개천 좌우에 다 산책로를 닦아놓았는데 이쪽 길은 옛날부터 있던 길이라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잘 안다닌다. 개천 반대편은 바글바글. 나는 길 잘 닦인 것보다 사람들 없는 게 우선이다. -_-;)
음침한 교각에 모네 그림을 코딱지만하게 걸어놓아 흉하다고 포스팅 한게 작년이었나. 내 생각과 달리 주민들의 호응이 높았거나 구청 직원들의 문화공유에 대한 의식이 투철하거나, 이유는 알 수 없어도 교각마다 또 이렇게 그림이 매달려 있었다. 이름하여 문화의 거리 르누아르 전. 지난번보다 그림 크기는 훨씬 더 커졌더라. 피아노치는 소녀는 아예 저 멀리 개천 중간에 서 있는 교각에 달려 있었는데 소녀들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_-; 물비린내 맡으며 뭐하자는 건지.
저런 그림을 걸지 않아도, 조악한 물레방아와 징검다리와 인공폭포가 없어도 원래 이 근방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곳이란 말이다!
사람들이 자꾸 자연을 훼손하며 가꾼다고 생각하는 게 서글프단 생각을 하며 막판엔 팍팍한 다리로 천천히 페달을 밟는데 산책로 거의 끄트머리에서 얘네들을 발견했다. 청둥오리인가? 해마다 이렇게 몇쌍이 날아와 새끼를 낳아 키우다 겨울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올해도 또 나타났다. 둘이 부부인듯 계속 같이 다니며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았다. 뭔가 먹을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줌으로 당겨 화질이 형편없지만 어쨌든 얘네들도 그렇고 그냥 자연은 좀 내버려두면 좋겠다고 투덜대며 올해 첫 자전거타기를 마쳤다.
4월을 넘겨 5월쯤은 돼야 지난 겨울의 잔해를 청산하는 게으름뱅이가 올해는 좀 부지런을 떨었다. 어느날인가 외출한 대낮의 햇볕에서 확실히 봄이 느껴졌고 두툼한 외투가 살짝 버겁기도 했다. 밤엔 다시 싸늘해지는 날씨를 모르는 건 아니므로, 외투를 다 치울 생각은 못하고 우선 두어개 먼저 세탁해 넣어두었다. 간만에 방청소 하는 김에 겨우내 강추위를 견디게 해주었던 소형 난로도 스팀용 물통에 남았던 물을 빼버리고 바싹 말려 걸레로 닦아 두었다. 완전히 치우지 못한 건 순전히 난로를 통째로 넣어둘 큰 비닐봉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선식품은 장바구니를 꼭 챙겨가 담아오고 그도 귀찮으면 아예 인터넷으로 장을 봤더니 집에 그리도 남아돌던 대형비닐이 완전 바닥났다. 이젠 재활용품 넣어 버리기 위해서라도 간간이 50원 주고 비닐봉투를 사야할 판국이다. 몇년전 3월에도 폭설이 내렸던 게 떠올라 털부츠와 패딩부츠까지 상자에 담아 치우며 잠시 멈칫하긴 했다. 그러면서 다시 꺼내는 사태는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느낌상 올봄엔 그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이 말로 산통이 깨져서 머피의 법칙이 발휘되는 건 설마 아니겠지.
어쨌거나 얇디 얇은 옷으로 요즘 날씨를 견디는 열혈 젊은이들을 많이 보긴 했어도 내 차림은 여전히 겨울옷에 머플러를 칭칭 감고 다니며 쉬 오지 않는 봄타령에 심술을 내고 있다. 급기야 오늘밤엔 기운이 뚝 떨어졌는지 집안 기운이 싸늘하다. 그동안 약간 내려놓고 지내도 멀쩡했던 보일러 온도계를 다시 올렸는데도 으스스한 기운이 가시질 않아 급기야 지금은 곁난로를 다시 켰다. 작업실용 털신도 안 치우고 평소처럼 게으름을 부린 게 장하다. 결론은 내가 경솔했다는 뜻이다. 원래 봄은 해마다 어렵게 찾아왔다. 그렇게 오래오래 기다려서 찾아온 봄은 또 금세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자칭 봄형 인간인 내가 이리도 조바심을 내나보다. 그러니 봄아 봄아, 이젠 그만 어서 와라. 춥다.
반드시 창작이 아니더라도 글과 관련된 직업은 대개 '말이 빠져나가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채워넣지 않고 계속 줄줄 뽑아쓰기만 하면 어느 순간 번쩍번쩍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등이 켜지다가 완전히 방전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같은 번역가라고 해도 공력이 월등한 분들은 자가발전기 같은 게 늘 작동하고 있어서 별도의 충전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상상하며 씁쓸해 한 적도 있었으나, 그런 분들도 쉴 새 없이 빠져나가는 말을 다시 채워넣는 과정을 간간이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물론 사람마다 빠져나간 말을 채워넣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 다시 책 속에서 말과 글을 골라 주워담아 비어가는 머리를 채우 것이 보통이다.
예전에 소형 카세트플레이어나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닐 때 충전지를 쓴 적이 있다. 그때 배운 건 음악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배터리가 약해졌더라도 바로 충전기에 끼우지 말고 좀 더 방치해 완전히 방전시킨 다음 다시 충전을 해야 그나마 건전지가 오래간다는 사실이었다. 최근에 나온 휴대폰에 들어가는 리튬 배터리는 그럴 필요가 없어 수시로 충전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누누히 들었어도, 한번 익힌 버릇이나 습관은 쉬 고쳐지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거의 매번 배터리가 저절로 꺼질 때까지 휴대폰을 방치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내 고집이 맞다는 듯이, 2, 3년씩 휴대폰을 써도 남들보다 배터리 성능이 쉬 떨어지는 문제를 겪은 적은 없었다. (물론 아이폰의 부실한 배터리 문제는 워낙 유명하여 나도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지 두고볼 작정이다만;)
과거의 휴대폰처럼 여분의 배터리가 있다면야 완전히 방전이 되든 말든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배터리 인심이 인색한 아이폰처럼 문제는 그 누구도 머리를 여유분으로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몇달에 한번씩 자진 방학을 해가며 한가로이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방전을 피할 방법은 오로지 하나 미리미리 채워넣는 것뿐인데 참 그게 잘 안된다. 더욱이 작년엔 독서를 또 얼마나 게을리했던가. 작년에도 아마 읽다 그친 수많은 책들은 방전된 머리에 뭐라도 채워넣어보려고 잠깐씩 애쓰다 성급하게 중단한 흔적들일 것이다. 외출 직전에야 휴대폰이 방전된 걸 알고 한 30분쯤 충전기에 꽂아 겨우 한 눈금의 배터리로 불안불안하게 반나절을 견딜 때가 많은 나의 꼬락서니와 어쩜 그리도 닮았는지.
쌀독 바닥에 깔린 한줌의 쌀알을 닥닥 긁어모으듯 억지로 쥐어짜 역자후기를 한 편 써 보내고 나니 정말로 완전방전이 되는 바람에 블로그에 쓰는 시답잖은 수다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또 반권쯤 책을 읽고 열심히 TV 영화를 찾아보았지만 잘 알다시피 이렇게 전전긍긍할 때는 배터리의 한눈금도 잘 차오르지 않는 법. 알량한 이 포스팅도 썼다 중단하기를 세번쯤 했나보다. 원래도 많이 비어 있는 머리를 가득 채우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그럭저럭 밟아 넣어서라도 눈금을 좀 더 늘려야할 텐데 이젠 완전히 불량 전지가 되어버렸는지 진득하니 충전하는 과정을 통 못견디게 된 것 같아 걱정이다. 노상 걱정과 반성만 하지 말고 공부좀 하시지!
(어제 낮에 포스팅했다가 이상스레 사라진 글을 얼음배님의 도움으로 찾았다. 시답잖게 끼적인 신변잡기 잡문이라도 기껏 써놓은 글이 없어지니까 마치 소지품 하나를 잃어버린 것처럼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는데, 이렇게 찾고보니 딱 분실물 회수한 기분이다;;)
--------------------------------------------------------------------------------------------------- 잠순이 답게 꿈도 없이 (단순히 기억을 못하는 거라지만 암튼;;) 깊은 잠을 푹 자는 게 좋은데, 요샌 자고나면 뒤숭숭한 꿈이 기억난다.
아래층 똥개임이 분명한데 모양새는 셰퍼드인지 누렁이인지 모를 커다란 개한테 물리기 직전인 상황. 나는 놈의 머리통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얼어붙어 있다. 놈은 자꾸만 그 무서운 아가리를 벌리며 고개를 돌려 내 손을 물어뜯으려 하고, 나는 징징 울면서 개의 머리통을 놓지도 못하고 코앞으로 다가온 개 이빨에 아득했던 느낌. 그야말로 개꿈이다. 일주일도 더 지났는데 지금도 기억이 선명해 몸서리가 처지는 걸 보면 아래층 개에 대한 나의 공포가 어지간한 모양;;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길인데 자꾸만 난데없이 벽이 앞을 가로막아 쾅 부딪혀 나동그라진다. 거기서 꿈이 끝나면 좋으련면 카트라이더 게임도 아니고 어느새 멀쩡해진 난 또 페달을 밟고 있고 높은 시멘트 턱이나 벽에 또 온몸으로 부딪친다. 막 아파하며 계속 자전거 사고를 반복하다 마지막에야 비로소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이 나이에 키가 크려나, 쳇. 체인에 기름만 쳐놓고 가을 내내 단 한번도 못(안)타고 겨울을 맞은 느루에 대한 나의 죄책감이 불러낸 꿈이라고 자가진단을 내렸다.
장소는 학교. 환경미화 상태로 봐선 초등학교인 것 같은데 나를 포함한 온갖 나이의 학생들이 만들기 수업을 하다가 사이렌 소리에 복도로 나가보니, 새까맣게 전투경찰들이 몰려와 구둣발과 방패를 바닥에 찍으며 쾅쾅 소리를 내 겁을 주고 있다. 나는 소국(?) 한 줄기를 들고 미술관 복도 같은 곳으로 이리저리 달아나다가 전경을 피해 어느 책상 구석으로 숨어든다. 반대편에서 살금살금 내쪽으로 오려는 어린 학생들한테 움직이지 말라고, 그러다 다 들킨다고 화를 내다가 깨어났던가... 이 꿈은 어수선한 시국탓이렸다.
원고마감 때문에 30시간 계속 깨어있다가 시체처럼 쓰러졌던 어제 저녁에 잠시 눈을 붙였을 땐 그냥 계속 이리저리 쫓겨다녔다. 누가 쫓아오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달아나는데 배가 어찌나 고프던지. 뭘 좀 먹으면 다리 놀림이 빨라질텐데 싶어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꿈에서도 식탐이라니. ㅋㅋㅋ
초절정 마감중이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블로그질은 줄곧 부지런히 하는 인간인데 일요일 새벽 난데없이 모니터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하드가 안 나간게 얼마나 다행인지!) 동생네 모니터를 떼와서 번역하던 파일을 옮기는 삽질을 해야했고, 노트북으로 작업은 가능했으나 어쩐 일인지 노트북은 인터넷선을 인식못하는 만행을 부렸다. 해서 어제 또 다시 동생네 모니터를 공수해 와야 했고, 오늘에야 비로소 급사죄와 함께 일부 원고만 쏘아주고는 시방 또 이러고 있다.
이참에 컴퓨터를 새로 살까도 생각했으나, 프로그램 깔고 파일 옮기고 어쩌고 하는 과정에 들일 시간이 아까워서 일단 점심먹고 나서 모니터나 하나 급히 사올 작정. -_-;; 요번엔 온라인으로 사고 택배 기다릴 여유도 없다. 잊지 말고 매일매일 원고 백업할 것.
마음이 이렇게 콩닥콩닥 바쁘니 개에 물리고 자빠지고 쫓기고 하는 꿈을 안 꿀 리가 있겠나. 설상가상 내일은 할아버지 제사다. 며칠 전에 친척분들한테 미리 죄다 연락해야 하는 임무를 잊고 있던 탓에 어제 오늘 어른들한테 전화로 계속 혼났다. 왜 하필 동생네는 또 이사를 가가지고 말이지. 아침 내내 주소와 길 설명하느라 문자를 수십통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