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09.12.17 연말유예 7
  2. 2009.12.05 혼자서는 못해요 14
  3. 2009.11.27 요새 영화 4
  4. 2009.10.17 가을은 춥구나 8
  5. 2009.09.01 9월 결심 18
  6. 2009.09.01 도피 16
  7. 2009.07.28 일하자 일 17
  8. 2008.12.18 엉망 17

연말유예

투덜일기 2009. 12. 17. 03:15

대개 책 한권에 두달 정도로(물론 최소 넉달 이상 잡아야 하는 책도 있긴 하다) 번역기간을 정해놓으면 첫 한달은 작업량이 형편없다. 그야말로 워밍업 기간.
그놈의 워밍업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어느 첫달엔 심지어 첫장만 계속 펼쳐놓고 있던 적도 있으니 말해 무엇하리. 그래도 둘째달이 시작되면 남은 날수에 맞춰 일일 작업분량을 정해놓는다. 이번 책은 비소설이고 챕터가 달랑 열개. 하루에 한 챕터씩 하면 열흘이면 초벌 끝내겠네, 싶어 쓸데없이 가소로운 미소를 지으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크게 방심해선 곤란했다. 연말이랍시고 엠티부터 시작해서 몇몇 모임과 행사까지 있는데, 원고마감 핑계대고 놀 일에 빠질 위인이 아니므로 최소한 일주일은 없는 셈 쳐야 했으니까.
새벽까지 앉아 있어도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았던 월초를 보내며, 엠티 다녀오면 작업에 박차를 가해 가속도를 높이리라 마음 먹었는데 그놈의 끔찍한 숙취는 후유증을 이틀이나 안겨주었고, 정신 차려보니 허거덕 남은 날은 한달의 반토막이었다.
진도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주제에 초인적인 가속도가 붙었을 경우에나 가능한 <하루 한 챕터 번역>의 야망을 버리지 못한 채, <잘하면> 계약 마감일에서 늦어도 일주일 내로 원고를 털어낼 수 있을 거라 상상하던 차였다. 마침 출판사에서 내년 출간 계획을 잡아야 한다며 원고 진행상황을 묻는 메일이 날아왔다. 앗 뜨거라 싶어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나의 상상 마감일을 적어보냈더니만, 흐흐흐 원고마감 때문에 연말 연휴에도 일에 매진하는 게 아니나며 한껏 위로하는 글과 함께 원고는 1월 중순까지만 보내면 된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아싸~
마침 그 메일을 열어보는 중에 뒤에 서 있던 조카가 한 마디 했다.
"우리 고모는 놀 때 안 놀고 일만 하는 사람 아닌데. 놀 거 다 놀고 또 밤새서 일하는 사람인데..."
너무도 정곡을 찌른 그 말이 칭찬인지 꾸지람인지 언뜻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흐흐 웃고 말았다.

헌데 문제는 어제까지도 그럭저럭 조여졌던 긴장의 끈이 연말유예 메일과 함께 풀어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열흘 쯤 더 여유로워졌다고 당장 이밤에 또 일이 하기 싫어졌으니 원! 다시 조이는 데 한달 반이나 걸린 이 긴장의 끈을 다잡으려면 일단 이렇게 널리 자아비판을 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여 또 부끄러운 쉰소리 끼적이고 앉았다. 당장 낼모레로 다가온 할아버지 제사부터 간간이 잡힌 <놀 일>을 감안해서 제발 밤을 샐 때는 진지하게 진짜 일을 해보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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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되고프다. 헌데 생각만 그럴 뿐 현실의 나는 혼자선 못하는 게 많은 의지박약 인생이다. 요가강습 한달이 지났다. 일단 시험삼아 다녀본 결과 열두살 공주는 죄다 어른들인 틈바구니 속에서도 꽤 열심히 자세를 익혔고 체중이 1.5킬로그램쯤 내렸으며 깡말랐던 유아시절과 달리 토실하게 살이 올랐던 허리가 살짝 오목해지는 쾌거를 이루었다. 반면에 뻣뻣 무수리는 체중이 오히려 늘었고 특별히 몸이 유연해졌다거나 어딘가 선이 날렵진 느낌 따위는 전혀 없으나 다만 늘 동그랗게 뭉쳐있던 승모근의 통증이 사라졌고 몸을 웅크릴 때의 엉성함이 좀 덜한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해서 고모와 조카 커플은 일단 요가를 계속해보기로 했다. 매달 강습료는 8만원이지만 3개월을 한꺼번에 끊으면 17만원이므로 무려 3개월이라는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공주는 다음주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일주일 간 쉬었다 재등록을 하고, 나는 그나마 풀리기 시작한(?) 몸이 다시 굳지 않도록 계속 강습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근래 들어 꾸준한 운동이라곤 처음이라 나도 그럴 작정이었다.
헌데 막상 어제 홀로 가서 재등록을 하려니 어찌나 귀찮은지... 어제 저녁엔 오늘 2시 수업에 맞춰 가면 된다고 자위하며 핑계를 댔다. 하지만 막상 오늘이 되자 아침 늦게 겨우 잠들어 정오에 맞춰놓은 알람에 눈을 뜨고 보니 요가고 나발이고 우선은 더 자야 살것 같았다.
만일 공주와 함께 강습을 받고 있었다면 단 한 시간을 잤더라도 당연히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을 것이다. 아니, 벌써 전화가 몇번 걸려오는 바람에 자고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오늘 이틀째 홀로 외출을 감행하지 못하고 있노라니 참 한심하다. 요가수업뿐만이 아니다. 바람도 쏘일 겸 혼자 영화를 보러 나가려고, 덕수궁으로 배병우 사진전을 보러 가려고, 그 참에 서점에도 좀 들르려고 몇번이나 마음을 먹었지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간 약속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어차피 외출 약속이 있는 날 조금 일찍 나가서 영화를 보든 전시를 보든 서점엘 들르든 해야겠단 결심도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간 게 용할 정도.
흉보면서 닮아간다더니만 너무 의존적이라 옆사람 피곤하게 한다고 만날 왕비마마를 구박하면서, 어느새 나도 의존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나 싶어 난감하다.

오늘은 이미 너무 늦었고, 내일은 슬그머니 나가 영화 한편 보고 서점에도 들러야지. 그리고 월요일엔 기필코 혼자서라도 요가학원엘 가야지. 대외적으로 떠벌임으로써 생겨나는 무게감이라도 필요한 것 같아 또 이렇게 끼적끼적 자아반성을 하고 있다. 혼자서도 잘해야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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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영화

놀잇감 2009. 11. 27. 15:27

워낙에도 게을러서 영화를 그리 많이 보러다니는 편이 아닌지라 내 쪽에서 먼저 작정하고 영화 약속을 잡는 유형으론 살아본 적 없는 것 같다. 해서 영화를 볼 때도 홀로 관람이 아닌 한 대부분은 상대의 의견을 좇는 편이다. 공포영화는 절대로 볼 수 없고, 간혹 기분에 따라서 보기 싫은 영화가 있으면 소심하게 의견을 내놓는 정도.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내쪽에서 재미있을 것 같다거나 관심 가는 영화는 죄다 흘려보낸다.
키드님이 내내 울다 나오셨다는 <여행자>도 그렇고 파피, 미아와 보러가려고 작당했다 파토난 <파주>도 그렇고, 책과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던 <시간여행자의 아내>도 그렇다. <파주>는 아직 씨네큐브랑 모모하우스에서 하고 있으니 굳게 마음 먹으면 볼 수도 있을 텐데 한번 떨치고 나서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곰탱이 동면모드가 시작된 때문이라고 핑계대기엔 요즘 날씨도 많이 따뜻해, 한심한 한숨만 흘러나온다.
<솔로이스트>도 개봉했던데 영화관에서 내리기 전에 보러갈 수 있을까. 찾아보면 작은 영화관에서 좀 지난 영화도 하고 있을 때가 많으니, 딱히 못할 것도 없는 일을 요샌 엄청난 어려움으로 느끼고 움츠러든다. 다 11월 탓이라고 하고 싶다. 11월은 일년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달. 겨울이 오는 건 11월 탓이 아닌데도 내겐 그렇게 느껴진다. 싫은 11월이 이제 겨우 3일 남았다. 어서 가버려라.
 
영화 얘기하다말고 또 딴소리 하고 앉았다.
암튼 영화 선정권을 지인에게 미룬 덕분에 본 이달의 영화 <청담보살>은 개봉 담날 봤다고 말하기 창피한 정도였다. 11월의 묘한 음울함을 떨치기 위한 유쾌함이 필요해 선택된 영화임을 알지만, 시간과 돈과 배우가 아깝더라.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임창정에 대한 호감을 한껏 높여놓지 않았더라면 아마 더 심한 욕과 불평을 해대며 입술을 일그러뜨렸을 거다.
역시나 개봉 다음날인 오늘 볼 뻔했던 <닌자 어쌔신>도 나에게 영화를 정하라면 선뜻 보자고 말하지 못할 영화다. 얼마나 피칠갑을 하며 잔혹하게 싸워댈지 안봐도 비디오 아닌가. 하지만 비/정지훈/Rain의 광팬인 친구는 11월 26일에 <닌자 어쌔신 번개>를 칠 것임을 익히 공고했었고 우리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거의 절반 이상 눈을 감고 얼굴을 가려야 하겠지만, 나 또한 광팬은 아니어도 비/정지훈의 첫 단독 주연 할리우드 영화를 광팬 친구와 함께 봐주고 함께 수다를 떨어줄 용의는 있단 얘기다.
솔로 데뷔 직전 녹음실에서 박진영한테 작살나게 혼구멍이 나며 노래를 되풀이해 부르던 키 껑충한 청년을 미처 못 알아보는 바람에 싸인을 못 받아둔 건 지금도 한스럽다. 발음 부정확하다고 혼나며 한소절을 수십번씩 되풀이해 부르던 신인가수가 이렇게 월드스타로 클 줄 누가 알았어야지! 그날 g.o.d.와 박진영한테 받은 싸인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에겐 데뷔를 앞둔 신인가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당연히 그에 대해 박진영이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하기야, 비의 연기자 데뷔를 반대했던 박진영도 비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몰랐을 거다.
솔직히 춤은 몰라도 가수로서 가창력은 딸린다고 생각하지만, 드라마에서 본 연기력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물론 할리우드 진출작인 <스피드 레이서>는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래도 비를 쳐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짜식, 잘 컸어.. 싶은 느낌과 함께.
<닌자 어쌔신> 역시 봤다고 자랑하기 민망한 영화일 것은 뻔한데, 보기도 전에 먼저 기대감을 토로하고 있는 걸 보면 이번 영화는 옆구리 찔려 동행하게 되는 걸 기꺼워하는 모양이다. 참 줏대없는 인간의 영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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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춥구나

투덜일기 2009. 10. 17. 17:54

털갈이 모드에 접어든 듯 유달리 빠져대는 머리칼을 보면서 진즉부터 가을이라 생각은 했었고 아침저녁 보일러를 틀고 산지 꽤 됐으면서 정말로 얼마나 날이 서늘해졌는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장보러 잠깐씩 나가거나 왕비마마의 병원 보필 외출은 늘 낮이었기에 티셔츠 한장만 입어도 꽤나 더워 10월도 벌써 중순에 접어들었다는 건 날짜로만 인식했지 일기예보에서 말하는 최저기온이 얼마나 추운 건지 모르고 살았나 보다.
어제 간만에 밤외출을 하며 티셔츠 위에 나름대로 겉옷을 하나 더 입고 스카프까지 둘렀건만, 난데없는 비까지 쏟아진 날씨는 나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추위>였다. 그렇다고 계속 덜덜 떤 것도 아니었고 간혹 약간씩 한기를 느꼈을 뿐인데, 자고 일어나 보니 목이 부었다.
사실 약간의 콧물을 동반한 감기 기운은 꽤 오래 느끼고 있었는데 목까지 부으니 돌연 서글프다. 이젠 정말 추워지겠구나 싶어서. 생각해보니 가을 초입에 해야하는 옷장 서랍 바꾸기를 아직도 미뤄두고 있었다. 앞으로 입어야 할 계절 옷을 화장대 서랍으로 옮기고 여름옷은 장농 서랍으로 집어넣어야 하는데... 해마다 그 행사를 10월쯤 치른 것 같긴 한데, 올해는 게으름 부리다 특히 늦어진 모양이다.
털이 복슬거리는 두툼한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적잖은 거리에서 홀로 여름 장마 패션 같은 얇은 옷만 입고 돌아다니려니 뒷골이 더욱 서늘해지는 느낌. 마음도 스산한데 옷이라도 뜨뜻하게 입고 다녀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환절기엔 정말이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할지 모르겠다. 변온동물화 되어가는지 조금만 더워도 못견디겠고 조금만 추워도 덜덜 떨리니 원.. 두툼한 스웨터를 껴입은 이들도 적지 않던데 벌써부터 그런 옷을 입고 실내에 들어가면 난 아마 땀을 벌벌 흘릴 거다.
칩거생활을 끝내고 슬슬 활동을 개시하려면 제대로 옷부터 꺼내입어야 하는데, 청소가 귀찮아 아직도 마루에 놓여있는 선풍기를 보자니 내 마음은 아직 여름을 보내기 싫어하는 건가 싶다. 어쨌거나 스산한 오늘은 대낮부터 보일러를 팍팍 돌리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이렇게 쓸쓸한 가을엔 지구와 환경을 염려할 마음의 여유가 안생긴다. 몸이라도 따뜻해 지고 싶단 말이지! 
어쨌거나 새삼 깨달은 결론. 가을은 춥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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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결심

투덜일기 2009. 9. 1. 21:23

1. 데드라인 지키기 - 무려 세 건이다. 정신 바짝 차릴 것.
2. 자전거 일주일에 3번 이상 타기 -- 그래서 첫날이랍시고 시방 헥헥거리며 월드컵공원까지 가서 한바퀴 돌고 왔다.
3. 요가원 알아보기 - 고모와 조카의 자세교정 프로젝트. 과연...
4. 17일 이전에 보테로 전시회 보러 가기
5. 문제의 미결 출판사에 일주일에 한번씩 독촉전화하기 - 매주화요일로 할까. 오늘 일단 한번 실시.
6. 두달째 읽고 있는 책 두 권 마치기. 
7. 미용실 가기.

모니터에 해야할 일을 포스트잇으로 붙여두곤 했는데, 그간 제대로 지키는 게 거의 없었다. 혼자서는 좀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팔푼이같은 인생을 위한 게으름 방지 처방은 일단 떠벌려서 주변의 압박을 기대해보는 것. 효과가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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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

투덜일기 2009. 9. 1. 18:03

지금도 그다지 철이 든 건 아니지만 암튼 철모르던 시절 삶이 고달퍼지면 막연한 환상을 품듯 은근히 바라던 게 있었다. 아주 가벼운 교통사고 정도로 입원해서 한 보름쯤 푹 쉬면 좋겠다는 바람. 그러면 학교도, 회사도 안 가도 되는 온갖 면책권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 하면서. 물론 진짜 병원의 삶이 얼마나 참담한지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몇해 전 응급실을 거쳐 난데없이 긴급 수술을 하고 누워있던 며칠 간의 실제 병원 생활은 아프고 막막하고 괴롭기만 했다. 진통제를 맞아 아픔이 잠시 잊혀지면 병상에 누워서도 개강 전에 넘겨야 할 원고 걱정을 했었다. 생각해보니 몇년 전 그때도 8월이었다.

그 이후로는 철없는 망상을 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긋지긋한 원고를 껴안고 씨름하던 지난 8월 나는 별안간 다 버리고 어디로 도망을 가거나 차라리 신종플루에 걸려서 격리병동에 한 보름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퍼뜩 했다가 얼른 꼬리를 내렸다. 바랄 게 따로 있지... 웬만한 사람들은 일주일이면 다 나아서 퇴원한다고도 하지만, 겨우 보름 도피한다고 그 사이 어깨를 짓누르는 짐들이 사라질 리도 없으니 말이다. 다 자기 관리에 실패한 게으름 때문인데도 스스로 쌓아올린 감당하기 어려운 벽이 나타나면 늘 비겁하게 도피할 궁리부터 하고 앉았다.

어쨌거나 지지부진했던 8월이 가버려서 속이 다 시원하다. 9월엔 좀 다르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다르게 살아야할 의무가 깃발을 펄럭이는 기분이다. 결국 방법은 딱 하나, 정면돌파뿐인데 왜 노상 그걸 잊는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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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자 일

투덜일기 2009. 7. 28. 16:29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며 생겨난 나의 꿈이자 로망은 번역인세로 계약한 책들이 여러 권 쌓이고 또 그게 모두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라 꾸준히 분기별로 쏠쏠한 인세수입을 안겨주는 바람에 몇년에 한번씩은 스스로 안식년을 정해 일년 내내 팽팽 놀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상황이다. 로또 당첨 같은 수십 만부짜리 베스트셀러를 꿈꾸는 것도 자유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평생 로또 한번 사본 적 없는 나의 성향과 별로 맞지 않는 일인 것 같다.
하기야 순전히 번역료 수입만으로 너무도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안식년까지 향유하는 삶을 자랑하는 번역가 또한 내 주변에선 본적 없으니, 엄밀히 말하면 나의 <로망>도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헛된 꿈일지 모르겠다. 이 땅에서 번역이란 직업은 대개 일개미나 일벌처럼 노동집약적이고 소모적인 일을 꾸준히 쉬지 않고 해서 추운 겨울을 그저 안온한 정도로만 소박하게 지낼 수 있는 여유만을 허락한다. 유명 번역가치고 저술가든, 작가든, 교수든, 강사든 다른 직업을 겸하지 않고 오로지 번역에만 힘쓰는 이를 보기 힘든 이유도 아마 그런 열악한 조건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십수년째 해마다 최악이라고 일컬으니 도대체 얼마나 더 바닥을 쳐야 부상할지 알 수 없는 출판불황의 상황임에야 오죽하랴. 얼마 전 후배가 진지하게 번역가로서의 내 수입이 홀로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만큼은 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만약 내가 홀벌이 가장으로서 생활비며 아이들 학비며, 사교육비에 노년을 위한 저축까지 책임지는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영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지금 내가 무엇보다 이 직업의 장점이라 여기는 시간과 정신의 자유는 잊고 살아야 할 것은 뻔하다. 불규칙한 수입을 감안하여 엄청난 강도로 쉼없이 거의 <떡 찍어내듯> 번역작업에 매달려야 할 테고, 지금보다 더 빈번하게 하기 싫은 장르의 책들까지 절대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받았겠지. 
더욱이 딸린 식구들 때문에 일터에서 고까운 일도 묵묵히 참아내며 열심히 일하는 가장들처럼 나도 최소한 이렇게 일년째 게으름을 부리며 슬럼프를 운운하지도 못했을 테지. 
안식년 타령을 할 만큼 아직 쌓아둔 인세번역도 많지 않은 주제에 일년쯤 일 안하고 놀 궁리만 파고드느라 어느새 또 코앞으로 다가온 마감일 앞에서 일일 의무작업량을 다시 분배하고 있으려니 참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다. 왜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고서는 열심히 일을 하지 않게 되었을까. 할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이 원래 게으른 인간의 본성이라고는 해도 매번 이건 참 심하다. 약속 안지키는 인간 싫어하면서 마감일 약속은 밥먹듯이 어기고 앉았는 인간이 되다니. 이번에도 지킬 생각보다 어길 작정을 먼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하고 있는 책도 그다지 잘 팔릴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나에게 수년간 쏠쏠한 인세수입을 안겨줄 효녀노릇을 할 거라 기대하며 제발 일이나 하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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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

투덜일기 2008. 12. 18. 19:39

요즘들어 삶이 완전 엉망이다.
준백수스러운 직업인으로서 약속이 없는 날은 아예 며칠씩 두문불출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점점 망가짐을 느낀다. 작업실을 멀리하면서 작업량과 질을 고민하는 나에게 어느 지인은 이렇게 조언했다.
자는 방에서 컴퓨터방으로 옮겨갈 때 출근한다 생각하고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 분위기를 바꿔보라고.
그러면 마냥 늘어져 좀비스러운 삶에 빠져들진 않을 거라나.
허나 게으름 면에서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내가 행여나 그럴 리가.
원래 외출을 하지 않으면 세수도 잘 안하는 인간이다보니, 세수도 이틀에 한번꼴로 하는둥마는둥
심지어 머리는 월요일에 감고 목요일인 오늘까지 버티고 있다. 아 드러워.
인간의 적응력은 또 실로 대단해서, 매일 외출할 땐 매일 머리를 감아야 살면서 집구석에서 뒹굴거릴 땐 사흘씩 머리를 안감아도 앞머리만 실핀으로 척 꽂아 넘겨주면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찐덕찐덕 끼는 머릿기름도 주인 눈치를 봐가며 두피에서 분비가 되는 모양.

꼬락서니만 엉망이면 또 별 문제가 아니다.
새벽에 잠들어 오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올빼미의 삶을 나름 규칙적으로 이어나갔을 때는
남들 점심이 내겐 아침, 남들 먹는 저녁이 나에겐 점심, 그리고 자정께의 밤참이 나에겐 저녁식사인 셈이었기에 꼬박 세 끼니를 균형있게 챙겨먹고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운동 부족인지 일조량 부족인지 총체적인 체력부실인지
밥만 먹으면 졸려서 암때나 픽 쓰러져 두어 시간씩 잠을 자곤 한다.
낮잠을 잤으니 당연히 밤잠(내게는 아침잠?)이 잘 올 리가 없다.
원래 자야할 시간인 새벽이 밝아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낑낑대다가 멍한 머리로 좀비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다가는 어느 순간 고꾸라져 하루종일 이불속을 탈피하지 못할 때도 있다.
게다가 나는 원래부터 잠을 잘 땐 절대 배고픔을 모르는 동면형 인간이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자느라 굶다가 마뜩찮게 일어나 저녁 한끼를 먹고는 또 그 식곤증을 못이겨 픽 쓰러져 잔다. -_-;

겨울만 되면 동면들어간 곰탱이처럼 빌빌댄다는 핀잔을 익히 듣긴 했으나
요즘의 작태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끼니를 해결할 땐 매일 규칙적인 시간에 음식물을 들여보내줘야 몸이 불안해하질 않는다. 불규칙하게 밥을 먹으면 살찌는 이유가, 굶주렸던 몸이 놀라 언제 또 음식물이 들어올지 모르니 무조건 저장을 해두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요즘 같아선 아무때나 제대로 챙겨먹는 끼니 한번에 두서없는 밤참 한두번이 나의 섭생이라, 이미 겨울 들어 두루뭉술 불어나던 살집은 나날이 사상 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다. 큭.
만날 고무줄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늘어져 있으니 살집이 늘어나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도 안쓰고 살지만, 벌써 일주일째 머리 자르러 미용실 가야지 맘먹은 걸 실천 못하고 있는 걸 보면 거의 폐인모드에 접어든 것이라 짐작된다. 원래 머리가 길게 느껴지면 못 견디고 그날로 자르러 가던 격한 성질머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엉망으로 무너지고 있는 일상을 되돌리지 않으면 도저히 봐줄 수 없을 만큼 늘어지고 방만하게 진행되는 작업 스케줄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부디 내일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미용실 외출에 성공하길 염원하노라.
어제로 한톨도 없이 똑 떨어진 커피원두도 사야한단 말이지! ㅠ.ㅠ
(냉동실에 늘 서너봉지씩 들어있던 원두커피가 완벽하게 떨어진 것은 그 무엇보다 내 삶이 엉망임을 가리키는 지표 같다 흑...)
간만에 먹는 맥심 커피믹스는 참 맛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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