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짓

투덜일기 2011. 10. 10. 03:36

준백수처럼 종일 집에서 빈둥대거나 복닥거리는 날이 이어지다 보면 요일감각, 날짜감각이 사라진다. 그래서 굳이 날짜며 요일을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많지만 주말과 월요일은 그래도 비교적 확실히 안다고 자부했다가 어제 아주 바보짓을 했다.

새벽에 인터넷을 실행시키며 분명 한글날 기념임이 분명한, 구글의 한글 로고를 보았으면서도 이상하게 난 어제가 10일, 월요일인 줄 알았다. 그래서 주말까지는 꼭 보내달라고 부탁받은 꼭지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주말까지 해달라는 말을 나는 월요일 출근 전까지 보내달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침까지 눈에 불을 켜고 일을 마쳐 메일로 쏘아주고는 드디어 노곤한 몸을 눕혔다. 

훤히 밝은 날과 소음(아래층 개자식!) 때문에 여러번 뒤척거리다 겨우 잠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퍼뜩 눈을 떠보니 이미 오후였다. 원래 월요일은 조카네 가야하는 날이다. 부리나케 점심을 먹은 뒤 씻고 나서 커피는 조카네 가서 마셔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내가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자 엄마는 화들짝 놀라며 오늘이 월요일이었느냐고, 일요일인 줄 알았다고 의아해했다. 요일 감각 없는 건 모녀가 똑같은지라 그러려니 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골목을 후진으로 거의 다  빠져나갔을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 전용으로 정해놓은 벨소리. 아 또 뭔가 싶어 이맛살을 찌푸리며 받아보니, 오늘은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 9일이라는 엄마의 전언. 못믿겠으면 휴대폰 날짜를 확인해보라신다. +_+ 확인해볼 것도 없이 민망해 하며 냉큼 그대로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오래 전 어느 휴일에 자다말고 깜짝 놀라 회사에 지각한 줄 착각해 헐레벌떡 씻고 나서다 부모님께 깨우침을 받았을 땐 늦잠 못잔 게 억울해서 그렇지 온전히 하루를 공으로 벌은 것처럼 기뻤던 것 같은데, 어젠 남은 하루가 길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젠 휴일도 고스란히 일의 영역이 되고만 삶 때문인지 그저 우스꽝스러운 바보짓인 것만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그나마 엄마가 말려줬기에망정이지 조카네 집까지 가서야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황당하고 멍청이 취급을 받았을까. ㅋ 어쨌거나 나의 착각으로 일요일 아침에 보낸 메일을 보며 담당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모르겠다. 평소처럼, 요번에도 늦어서 미안하다고 서두를 달았는데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리려나 어쩌려나. 으으. 창피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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