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14.01.13 연필 깎기 10
  2. 2013.11.25 그럼 그렇지... 8
  3. 2012.11.23 잘 될까 15
  4. 2012.09.04 팔찌 욕심 12
  5. 2012.08.30 비오는날 푸닥거리 2
  6. 2012.07.31 나름 휴가 4
  7. 2012.06.20 서도호 <집속의 집>
  8. 2012.04.25 10
  9. 2012.03.13 은행 16
  10. 2012.02.03 영하 17.1도 6

연필 깎기

투덜일기 2014. 1. 13. 21:33

새해들어 사흘에 한번은 연필을 깎아대야 했다. 연필 다섯자루로 시작했다가 현재는 아홉자루로 늘어났는데, 그나마도 중간에 몽당연필 두 개는 버렸다. 새해들어 1월 1일부터 금강경 한문 필사를 시작한 대비마마 덕분이다. 처음엔 소형 연필깎이로 돌려댔으나, 몇년째 멀쩡히 잘 깎이던 칼날이 잦은 혹사에 문제가 생겼는지 자꾸 심이 부러지기 시작했다. 연필깎다가 심이 부러지면 왜 그리도 짜증이 나는지...  암튼 자주 깎아드리기 귀찮아서 연필 갯수를 늘려 바쳤는데도 사흘쯤 지나면 컴퓨터 책상에 뭉툭해진 연필이 놓여있다. 처음엔 '좀 깎아줘'라고 적힌 엄마의 쪽지도 연필과 함께 놓여 있었다. 나 잠든 새 외출하시면서 놓고 간 거라나. ^^;

 

대비마마는 아주 오래전에도  금강경 한문 필사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땐 서예를 배우러 다닐 때라 무려 한지에 붓글씨로 필사를 했었다. 그나마 요번엔 필사용 책을 사서 흐리게 적혀있는 글씨를 선따라 베껴적기만 하는 거라 엄청 수월하다지만, 오늘 드디어 한번 필사가 끝났다는 걸 보면 3번 꼬박 베껴 적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연필로 꾹꾹 눌러 작게 한자를 쓰려면 손가락은 또 얼마나 아플까나. 암튼 매일아침 기상과 동시에 1시간씩 금강경 필사에 여념이 없는 대비마마를 보면 존경심이 일 정도다. 우리 가족 중에서 아마도 요새 제일 성실하고 건강하게 살고 계신듯!

 

새해들어 운동을 좀 해보겠다던 나의 다짐은 작심삼일도 못되고 딱 두번 나가고 끝이었건만... 하루도 안빠뜨리고 새벽마다 상을 펼쳐놓고 필사를 하다니, 그 저력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력일까 강인한 모성일까 종교의 힘일까?  필사용 책인지 공책인지 앞에 적어놓은 기도 발원문을 슬쩍 들춰보아도 노친네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찡하다. 까마득한 옛날 동생들의 입시를 앞두고도 대비마마는 새벽마다 집에서 108배를 했었다. 남들은 100일 내내 절간으로 교회로 새벽기도도 다닌다는데! 그러시면서. 물론 재수, 삼수를 거친 동생녀석들의 입시 결과로 볼 땐 하나도 효험이 없는 생고생이었지만, ^^ 새벽마다 쿵 쿵 무릎을 찧으며 절을 하는 엄마의 마음을 동생들이 설마 모르진 않았을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은 없다고 느끼지만, 그래서 대비마마의 금강경 필사와 정성스런 기도 발원이 초현실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온 가족의 건강과 사랑과 손주들의 행복을 조목조목 적어 비는 노친네의 소원이 이왕이면 이뤄지길 바라고 그렇다면 난 열심히 연필이나 깎아드려야 도리일듯. 그러나 난 벌써 연필깎는 게 귀찮아서 몇번이나 짜증을 부렸고(볼펜으로 쓰시지, 아 왜 연필로!?) 대비마마의 자립을 위해 튼실한 자동 연필깎이를 사놓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까칠한 딸이다. ㅋㅋ 헌데 나는 워낙 잘 하고 있어서(?!) 발원문을 따로 안 썼다고 하시더니만 오늘 보니 나를 위한 기도도 맨 아랫줄에 연필로 덧 적어넣은 걸 발견했고, 좀 찔려하는 중이다. 자동 연필깎이를 사? 말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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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책보따리 2013. 11. 25. 22:28

동네 도서관의 2달 휴관을 맞아 대출도서를 30권으로 늘려주겠다는 달콤한(대체 왜 달콤하다고 느꼈는지??) 제안에 덜컥 한꺼번에 빌려왔던 책 27권. 그간 두어권을 빼놓곤 계속 처음 가져왔던 그대로 차곡차곡 쌓인 채 먼지만 뒤덮고 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12월초라던 예정개관일을 두 주일이나 앞당겼다는 도서관의 안내 문자가 날아왔다. 다행히 반납일이 덩달아 당겨진 건 아니고...

 

휴관중에도 다 읽은 책은 미리미리 반납해 한꺼번에 정리 업무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해달라는 엄살어린 직원들의 당부도 들었거늘... 아무래도 반납일 통보 문자 날아오고서야 한꺼번에 또 이고지고들고 낑낑대며 책 가져가 반납하게 생겼다. 어차피 대출 연기는 대여섯 권밖에 안될 테고... 대출 연기한다고 또 다 읽는다는 보장도 없고...   대체 난 무슨 심보로 그런 턱도 없는 욕심을 부렸던 걸까??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때는 왜 더 책이 읽고 싶은지... 정말이지 한글로 된 책을 부담없이 좀 읽고 싶음 마음이 굴뚝. 이번 일이 끝나면 기필코 다시 심신을 살찌우는 독서에 힘써보리라(라고 결심하지만 밀린 다음 작업 스케줄은 어쩔거냐;;) ㅠ.ㅠ 무한한 아쉬움에 대출목록 긁어왔다. 흑... 2013년 마무리는 밀란 쿤데라로 하고 싶었는데... 과연 이 중에 한권이라도 읽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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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될까

투덜일기 2012. 11. 23. 22:54

이젠 어느 동네엘 가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소형 서점이 최근 우리 동네에 생겼다. 제법 큰 플래카드를 두어 군데나 붙여놓고 개업을 알리는 서점이 걱정스럽고도 신기해서 일부러 언덕을 넘어 구경을 갔었다. 옛날 내가 다니던 학교앞 책방처럼 학습지 교재와 잡지가 주요품목이고, 잘은 모르지만 베스트셀러 신간 정도는 갖추어 놓은 것 같았다. 늦은 오후, 비좁은 책방에 당연히 손님은 한명도 없어서 차마 들어가도 될까, 인사 받고 들어가서 구경만 하고 나오면 안될텐데, 누구든 손님이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야지 마음먹고 버스 기다리는 척 한참을 기다렸으나 손님이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괜히 들어갔다가 읽지도 않을 책이나 잡지를 집어오기도 뭣하고, 딱히 사고픈 책(있느냐고 물어볼;;)도 생각나지 않아서 결국 줏대없이 그냥 돌아섰다.

 

얼마전엔 오래도록 비어있던 동네 입구 상가 한 귀퉁이에 '이탈리아 수제 버거'집이 생겼다. 응? 햄버거가 이탈리아 음식이었나? 의문도 잠시, 입구에 나무데크를 깔고 인테리어에도 꽤나 신경을 쓴 그 가게가 걱정스러워서 나는 오갈 때마다 안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주민이라고는 노인들이 대부분인 강북의 오래된 주택가가 하루 중 활기를 띠는 때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중학교 여학생들이 등하교를 할 때 뿐이고, 하나 있는 치킨집마저도 장사가 잘 안될 지경인데 햄버거집이라니. 마치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듯 매번 부지런히 빈 테이블을 닦거나 주방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두 여인을 슬쩍 훔쳐보며 안타까웠다. 이미 '수제 햄버거'로는 동생이 뜨거운 맛을 본 뒤라 남일 같지가 않았다. 여중생들이 먹어봤자 떡볶이랑 김밥일 텐데 대체 누굴 대상으로 가게를 열었을까?

 

처음 한달은 통 손님이 든 모습을 못보겠더니 그래도 두어달 지난 요즘엔 커피잔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떠는 사람이나 유치원 끝난 아이를 데리고 들른 엄마 손님 한 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가끔 보였다. 나만큼이나 그 햄버거집을 염려하던 울 엄니('수제' 햄버거집은 웬만해선 곧 망한다고 굳게 믿고 계심;;)는 오지랖 넓게도 바로 옆에 있는 미용실 아줌마를 통해 정보를 입수해왔다. '수제' 햄버거가 '단돈 천원'부터라 여중생들이 곧잘 사먹긴 하는데 그래봤자 임대료나 나오겠느냐고, 인건비까지 뽑긴 어려울 거라고. 커피는 맛있다더냐는 내 질문에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하기야 나도 커피 한 잔 안팔아주면서 말로만 걱정은!  

 

부디 내가 볼 때만 유독 그런 것이라면 좋겠으나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가 분명한 두 가게를 보며 요즘 내 상황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주로 자고 먹고 놀고 쉬고를 반복하는 나날을 본격적으로 즐긴지 한달이 좀 넘었다. 말로는 거창하게  나도 안식년이라는 것 좀 누려보자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개점휴업, 그냥 일이 없어 노는 것과 뭐가 다른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친구의 휴가에 맞춰 일을 빼느라 꼼수를 부리긴 했다. 허나 휴가가 한두달도 아니고 겨우 2주였으니 핑계거리밖에 안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고는 순전히 일을 하기가 싫어서, 이미 너무 늦어버린 계약마감에 쫓기는 게 숨막혀서, 아니 나도 나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고 출판 담당자만 계속 물먹이는 상황이 죄스러워서, 결국 두 건은 계약금 돌려주고 일을 포기했다. 사실 한권은 절반 이상 진행된 상태라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멀미가 나서 다시는 부실한 원고륻 들춰보고 싶은 마음도 안드는 상황을... 과연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출판 담당자에겐 천인공노할 죄를 진 셈이지만 암튼 그땐 그랬다.

 

 그런데 그러고도 이상스레 마음은 편했다. 막연한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17년간 번역일을 해오면서 한번도 사라지지 않은 조바심과 다를 바 없다. 아무도 내게 일을 주겠다고 찾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모든 프리랜서의 숙명적인 고민이 아니겠나. 원숭이 줄타기의 법칙을 아무리 고수한들 언제고 한두 번은 떨어지게 돼있다. 더욱이 단군이래 최대불황이라는 출판계의 비명은 그저 엄살이 아니라 해마다 변함없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걸 왜 모르겠나. 그런데도 이 엄혹한 마당에 안식년을 즐겨보겠다는 용기가 참 가상할 지경이다. 

 

잠자리에 들어서 오늘 과연 뭘 했나 돌이킬 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무위도식하며 사는데도(어쩌면 그러기 때문에;;), 생각보다 하루는 참 빨리도 지나간다. 컴퓨터와 인터넷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것 같더니만, 일하기 싫어서 게으름 부릴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며칠씩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아무렇지가 않다. 대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긴 하지만, 부쩍 심해진 노안 덕분에 작은 화면으론 뭘 오래 보기도 어려우니 그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됐다.

 

뭘 좀 배울까, 운동을 할까, 텅빈 머리는 어떻게 채울까, 여행을 갈까, 빈한기의 삶은 어떻게 유지해야 좋은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허투루 하는 생각들은 당연히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한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우리 동네 서점과 동네 수제햄버거집처럼 나의 안식년도 과연 잘 될까, 하고. 그러고는 이내 눈을 질끈 감는다. 잘 되겠지 뭐. 서점과 햄버거집 주인들도 아마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결국엔 죽지만 죽으려고 사는 사람은 없듯이, 잘 안되려고 뭔가를 벌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나. 나는 다만 뭔가를 '벌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일이다. 해보니 그건 퍽이나 쉽다. 무위도식, 이게 딱 내 적성이었는데 그간 몰랐던 게 한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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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찌 욕심

놀잇감 2012. 9. 4. 17:50

귀걸이, 팔찌, 반지. 이 셋은 큰 돈 안 들이고 소소한 소비욕과 흡족함이 필요할 때 내가 주로 선택하는 품목인 것 같다. 반면에 목걸이는 잘 안사게 된다. 한번 목에 걸면 몇달씩 안빼고 하는 스타일이라 살갗과 땀에 닿아도 괜찮은, 상대적으로 비싼 물건을 사야하니 그런듯. 하지만 워낙 '버리지 못하는 지병' 때문에 고가의 액세서리는 물론이고 까마득한 옛날 길거리 좌판에서 겨우 몇천원 주고 사들인 것까지도 생김새만 멀쩡하면 죄다 껴안고 사는 탓에 새 액세서리를 사려면 우선은 죄책감부터 든다. 이거랑 비슷한 거 집에 있지 않나? 고만고만한 취향이 또 어딜 가는 것도 아니고...

 

귀걸이는 귓불 구멍이 걸핏하면 말썽을 부리는 통에 그나마 묵직한 디자인을 제외하다보니 그나마 좀 덜 사는 편이고, 반지도 막상 사들여봤자 끼고 나가려면 귀찮을 때가 많아서(손 씻을 때는 빼야 하는 요란한 디자인일수록 꼭 그렇다;) 최근 액세서리 구매는 팔찌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구슬팔찌 좀 주렁주렁 해줘야 시원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내 나름의 패션 철학(?).

 

여름마다 생일선물로는 꼭 한두개씩 팔찌를 골라 주변에 사달라고 종용하는 편인데, 막상 하고 다니는 팔찌는 거의 정해져 있고 최근에 산 것보다는 꼭 옛날 옛적에 선물 받아 오래 추억이 서린 물건을 애용하게 된다. 헌데 문제는 팔찌의 고무줄이 세월과 함께 녹아버린다는 것. ㅠ.ㅠ  20여년 전에 선물받은 호박 팔찌도 고무줄이 녹았으나 그건 구멍이 워낙 커 집에 있는 마끈으로 나름의 아이디어를 짜내 수선을 해서 하고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하지만 고무줄이 아니라 빡빡한 마끈을 저 마지막 구슬에 끼우는 걸 한 손으로 하려니 더운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내가 제일 좋아라했던 옥돌 팔찌마저 고무줄이 늘어나자, 몇년째 여름마다 나는 수제 액세서리 파는 곳에 가면 팔찌를 사면서 슬쩍 팔찌용 고무줄을 좀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매몰차게도 다들 없다고! ㅠ.ㅠ

 

진기한 보석도 아니고, 구슬팔찌 정도야 고무줄 늘어지고 망가지면 휙 버리고 새것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죄다 못버리고 고쳐 쓰려고 모아두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에 가면 액세서리 재료 파는 곳이 있을 거야... 라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또 몇년... 물건 잘 못 버리는 것도 병이지만, 뭐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건 잘해도 막상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이 몹시 떨어지는 건 정말이지 나의 고질병이다. 오죽하면 컴퓨터도 바꾼다 바꾼다 1년도 넘게 고민만 하다 겨우겨우 샀을라고.

 

암튼 그렇게 쓰잘데기 없는 고민만 거듭하다 요번에 팔찌재료를 인터넷으로 파는 곳에서 쉽사리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예전 실고무줄처럼 잘 늘어나지도 않고 잘 풀리지도 않는 우레탄 고무줄! 그런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야 없는 일, 어느 틈엔가 나는 이런저런 색깔의 구슬들을 마구 카트에 담고 있었고...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 정말로 엄선한 것들만 가뿐하게 결제를 했다. 하루만에 날아온 투명 고무줄과 구슬로 나는 또 구슬꿰기 놀이에 심취;;; 

외할머니가 생전에 중국 여행갔다 사다주셨기에 진짜 옥돌일 거라 굳게 믿고 있는(실제로 착용감이 완전 서늘하고 시원하다!), 제일 좋아하는 구슬팔찌도 고쳤고...

 

마끈으로 엮어놓고 나름 에스닉하다고 자평했으나 실용성은 떨어졌던 호박 팔찌도 다시 꿰고... 요번에 사들인 구슬도 죄다 팔찌로 만들었다! ^^;

 

요번에 내가 구입한 8~12mm 사이 각종 구슬은 50개 안팎 한 줄에 5천원~만원 정도. 더 비싼 구슬과 천연석도 많았지만,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색깔 위주로 사느라 애써 자제했다. 팔 굵은 울 엄니를 위해 터키석과 침수정(맨 위 갈색)은 각각 하나씩 특별히 좀 길게 만들어 드렸기에 남은 구슬이 좀 모자라지 않을까 했는데 남은 것만 엮어도 내 팔찌 만드는 덴 문제가 없었다. ㅎㅎ 재료비 3만원 정도 들여서 팔찌가 8개나 생긴 셈! 하지만 인건비랑 중간에 보석장식 같은 거까지 넣었을 재료비 따져보니 내가 그간 비싼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사곤 했던 몇만원짜리 팔찌값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내가 장사꾼이라도 팔찌 하나에 최소한 만원은 받아야겠다고 생각! ㅋ 아무래도 파는 팔찌는 고무줄 묶은 부분 안보이게 교묘하게 장식도 하나 정도 더 넣었던데 말이지...

 

암튼 망가진 엄니 염주 팔찌까지 죄다 고쳐드려야 해서 한밤중에 투명 고무줄에 일일이 구슬 꿰느라 눈알 빠지는 줄 알았다. +_+ 그러고는 엄니랑 세트 팔찌라며 희희낙락 하고 나갔다 들어와, 팔찌통에 다시 넣으며 보니 아.. 진짜 팔찌 많은데 왜 계속 욕심을 내나 싶다. 이런 자랑 겸 반성 포스팅 하고 나면 내년 여름부턴 팔찌 욕심 좀 덜 부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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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의 낡은 베란다 창문. 안닦은지 몇년인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원래 그 임무는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암튼 간간이 들이친 빗방울 맺힌 자리에 다시 흙먼지가 말라붙어 알공달공 희뿌연 창문을 볼 때마다 비오는 날 저거 한 번 닦아줘야 하는데... 하고 마음만 먹었다가 드디어 오늘 해치웠다. 생각은 워낙 오래전부터 했던 터라 지난 장마철에 다이소에서 천원짜리 땡땡이 비옷도 이미 사다뒀었다. 2천원짜리를 살까, 천원짜리를 살까 하다 어차피 한 번 입고 버릴 텐데 싼 거 사자 했더니만 ㅋㅋㅋ 이번엔 완전 싼 게 비지떡. 비닐이 어찌나 얇은지 스냅단추 채우다가 찢어지게 생긴 데다 모자가 작아서 머리가 다 가려지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비옷에 장화, 고무장갑까지 완전무장 하고서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가지고 나가 휘휘 유리창에 물을 뿌리고 나서 문질렀는데, 닦을 땐 말끔한 것 같더니만 들어와서 보니 얼룩덜룩 제대로 안닦였다. 그나마 먼저 닦은 엄마네 마루쪽창문이 좀 더 깨끗하고, 우리집 창문엔 스펀지 지나간 자국이 부채꼴로 선명하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그래도 안한 것보다는 낫다고 위로하고 있다. 일단 심한 흙먼지를 닦아내고 나면 마른 날 마른걸레로 슥슥 창문 닦는 게 수월하겠지. 과연 마른 날 창문닦기에 나서기까지 몇달을 또 벼르게 될지 자신은 없지만서도.

 

이왕 비옷 떨쳐입은 김에 비오는 날 또 하나의 숙원사업이랄까 로망도 실천했다. 다름 아닌 빗물 세차. 언젠가 영국에 살던 친구가  그랬다. 자기네 동네에선 비만 오면 아저씨들이 비옷 입고 나와 슬금슬금 자동차를 닦는다나. 그래서 비록 마일리지 엄청난 고물차일지언정 다들 차가 깨끗하다고. 직딩시절부터 나는 차가 더럽기로 유명했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데 대체 세차를 언제 하냐고! (지금도 밤엔 세차장 영업 안 하지 않나?) 주말에는 놀러나가거나 밀린 잠 자야하고 말이지. 준백수인 요즘도 차는 쓰는 날보다 세워두는 날이 더 많아 차안은 깨끗한 편이지만, 차고 바로 위에 가지를 뻗은 앵두나무, 무궁화, 사철나무에서 왜들 그렇게 철철이 잎과 꽃이 떨어지는지 원! 특히나 누렇게 차체에 엉겨붙은 무궁화 꽃은 정말 더럽고 싫다.

 

요즘 특히나 걸핏하면 비 내리고 무궁화꽃은 계속해서 떨어져내려 차체에 말라붙었다가 시커멓게 썩어 심하면 똥같아 보인다고 엄마가 며칠 전 병원 가며 언짢아하셨다. 내 돈 내고 시키는 건데도 차가 너무 더러우면 세차장에 맡길 때도 좀 민망하다고 생각. 어차피 계속 내린 비에 먼지는 다 씻겨내려갔으니, 무궁화꽃이랑 잎 말라붙어 시커멓게 된 부분만 닦아주면 되는 일이었다. 역시나 고양이 세수하듯 걸레로 알량하게 얼룩을 지우고 들어와, 아까보다는 확실히 말갛게 변한 베란다 유리창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내다보고 있자니 퍽이나 뿌듯하다. 근래들어 처음으로 몸을 이롭게 써서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한 것 같은 기분. -_-;

 

비오는 날의 마지막 푸닥거리는 아무래도 부침개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지만... 얼굴까지 튀긴 구정물  샥 다 씻고 나왔는데 또 온몸에 기름냄새 배게 하고 싶진 않다규~! 그러니까 오늘의 우천기념 푸닥거리 노동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아무려나 덴빈이 몰고온 비바람은 웬간히 하고 지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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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휴가

투덜일기 2012. 7. 31. 17:55

TV와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3박4일간 지내다 돌아와 어제는 가려움과 싸우느라(산길과 밭에서 벌레한테 팔다리를 무려 서른한군데나 뜯어먹혔다 ㅠ.ㅠ) 정신이 없었다. 한낮의 열기는 죽을 것처럼 뜨거웠어도 산밑이라 그런지 밤엔 서늘해져 큰 타월이라도 덮어야했는데, 서울은 어김없이 열대야. 어젯밤 선풍기를 계속 돌리면서도 자다깨다를 반복했더니 오늘도 대체로 멍하다. 이것은 어김없는 휴가 후유증. 휴가땐 하도 먹어대서 당연히 체중이 불어 오지만, 이번엔 하도 땀을 빼 +/- 제로가 되지 않았을까 상상했으나 체중계에 올라보니 어김없이 무거워져 있다. ㅋㅋㅋ 주로 밤에 몰아서 먹고 마셔댔으니 당연한 건가.

 

오후 들어서야 통째로 뽑아놓았던 플러그들을 콘센트에 끼고 슬슬 일 모드에 돌입하려 했으나, 컴퓨터를 켠 이후론 계속 인터넷질만 하고 앉았다. 아무래도 저녁이나 먹고 나야 슬슬 꼬부랑 글씨들이 눈에 들어올 모양. 생각해보니 여름에 제대로 휴가를 떠난 게 제주도 이후 처음이니 몇년 만이었다. 그땐 왕비마마를 동생네 모셔다두고 가야해 괜히 찜찜했었는데 올핸 훨씬 더 팔팔해진 엄니를 혼자 집에 두고 떠나면서 하나도 걱정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위 먹을라, 찬물은 싸갔냐, 공연은 재밌냐, 노친네가 내 걱정을 더 많이 했던 듯. 이 추세라면 좀 더 긴 휴가 계획도 별 걱정없이 세울 수 있겠다 싶어 의기양양 기쁘다.

 

본격 후기를 후딱 쓸까 했는데 며칠 만이라고 자판도 낯설어 계속 오타를 내는 걸 보니,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도 적응이 필요한 것 같다. 끼니때마다 뭐 먹나 걱정해야 하는 밥순이의 삶에도 적응이 필요한 것처럼. 에구구, 젠장 여섯시 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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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해마다 연초가 되면 그해 예정되어 있는 '볼만한 전시' 목록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놓는다. 그도 못 미더워 탁상달력에도 표시를 해둔다. 게으름부리다 놓치지 말라는 나름의 독촉질을 미리 해두는 거다. 그런데도 올해는 좀처럼 굼뜬 엉덩이를 들기가 쉽지 않았다. 작년말부터 3월초까지 했던 <하늘에서 본 지구> 특별전은 차일피일 벼르다 정 보고 싶으면 나중에 책으로  사보지 뭐, 그랬고,  1, 2월에 있었던 <김환기 회고전>은 나중에 '환기 미술관'에 가서 보면 된다고 스스로 핑계를 대며 건너뛰었고, 3-5월에 열린 <한국의 단색화> 전은 마감일정에 쫓기는 중인데다(언제 안 쫓기는 적 있었냐? 쳇;;) 과천까지 가야한다니 더욱 떨치고 나서기가 힘들어 놓치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적어놓은 것이 서도호의 <집속의 집> 전시. 서도호에 대해서 내가 뭐 쥐뿔이라도 알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은 '한옥 위주 설치미술'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설치미술보다는 회화쪽을 더 좋아하지만 한옥이라니! 무조건 가야해, 싶었다. 전시일정은 3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 리움미술관. 4월쯤에 보러가면 딱이겠다 계획했던 이 전시를 결국 나는 끝나기 겨우 며칠 전에야 겨우 보고 왔다. 그러기까지 이러다 기회를 놓치고 말 것 같아 어찌나 조바심을 쳤는지 원.

 

뜨거운 한옥 열풍 덕분인지, 리움미술관에서 홍보를 잘한 건지, 나만 몰랐을 뿐 서도호 작가가 워낙 유명한 예술가인 건지, 어디나 '촬영금지'를 원칙으로 삼는 우리나라 미술관에서 드물게 사진 촬영을 허락한 전시라 특히 입소문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인지, <집속의 집> 전시는 시종일관 호황이었대고, 당연히 마지막주 평일에도 사람들이 드글드글했다. 뉴스를 보니 리움에서 역대 최고의 관객수를 자랑했던 앤디 워홀 전시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찾았다나 뭐라나. 역시... 한옥 좋아하는 건 한국인은 나뿐이 아니었다. 대개 설치미술 작품 전시는 회화 작품보다 관객이 적게 마련일 텐데... 놀라워라.

 

암튼 전시를 보러가기 전부터 방송에 소개된 전시장과 작품 설명, 블로그 사진들을 꽤 많이 봤던 터라 정작 가서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없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그건 기우였다. 실제로 보지 않고선 여간해서 그 느낌을 실감할 수 없는데도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의 심정이 나도 충분히 이해가 되더라니까!  

사진은 전시장 입구에 매달려 있는 <투영>이란 작품. 철사로 틀을 잡고 한복 갑사 같은 천으로 한옥의 문을 형상화해 매달아놓은 형국인데, 어우 내가 딱 좋아하는 '파란색'이 아닌가. 다른 블로그에서 이 작품사진을 접하며 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미술관 유리창 벽에 빗물이 맺혀 있다면 더욱 운치가 있겠다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었으나, 내가 보러 간날은 해가 쨍쨍했고 설사 비가 내렸다 해도 건물 구조상 통로 옆면이라 저 유리창에 빗물이 맺힐 수는 없었다. 혹 천창에 빗물이 떨어질 수는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암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 전시장으로 내려가며 곧장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역시나 철사와 실크로 탄생시켜 천장에 매달아놓은 한옥 <서울집>이었다. 청덕궁에 있는 연경당을 본떠 작가의 아버지가 지었고 실제로 작가가 어린시절 살기도 했다는 한옥을 재현한 것이라고. 모든 작품이 섬세함과 꼼꼼함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교한 문창살은 물론이고 복잡한 구조의 분합문까지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 정도로 재현하려면 한옥 건축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설계도 잘 알아야할 것이다. 바느질이야 다른 전문가가 했다지만, 존경심에 감탄만 발할 뿐이다. ㅠ.ㅠ  

시카고 전시 때 영상을 보니 관객들이  이 작품 아래 바닥에 드러누워 서까래도 올려다보면서 실제로 한옥에 누운 듯한 기분을 체험해보던데, 용기가 없어서 차마 나는 그래보지 못했다. 그저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이런 집에 살았던 작가의 추억을 부러워하다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

 

이 인상적인 한옥의 한쪽 벽면은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했다. 이름하여 <북쪽 벽>. 

서도호, [북쪽 벽]

바글바글한 사람들이 잠깐 주변을 비운 틈을 타 이 사진을 찍어오느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투명하게 비치는 이 작품 앞뒤로 사람들이 한가롭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옛날 이 집에 살았을 사람들이 안에서 거니는 것으로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게 바로 설치미술의 묘미겠거니.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연기처럼 흔들릴 것만 같은 느낌의 <서울집>(재질이 실크라고 하니까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과 달리 이 작품은 폴리에스터와 철사로 구현된 것이라 만지면 까슬까슬한 모기장 느낌이 날 것도 같았으나 확인할 길은 물론 없다. ㅋ

 

순전히 내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고, 암튼 작품 재질 때문에 손상을 우려해 브로셔도 못 갖고 들어가게 하는 (아마도) 실물 크기의 <뉴욕집>은 콘센트 하나 경첩 하나까지 일일이 천과 바느질로 정교하게 표현해놓아, 그 탄생 과정을 상상하면 숨이 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한번에 다섯 명만 작품 '안'에 들어가 관람을 할 수 있는 탓에 15분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이 <뉴욕 집>보다 나는 그 뉴욕 집이 있는 건물의 전면과 현관을 표현한 작품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작품제목에 348이라는 저 주소가 들어갔던 것도 같은데;; 하나같이 작품 제목이 벽이나 기둥 한 귀퉁이에 숨어있다시피 해서 일일이 찾아보며 다녔는데도 벌써 전시 다녀온 지가 한참 되다보니 많이 까먹었다. 흑...

아무려나 이 작품이 줄 한참 서서 구경한 <뉴욕집>보다 좋았던 건 내가 초록색보다는 무작정 파란색을 더 선호하기 때문만은 아니겠고, 어느 공간으로든  어느 공간으로든 들어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에 대해서 원래도 좀 관심이 많다.

나의 한옥 열망에는 가로지른 빗장을 풀고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리는 솟을 대문으로 드나들고 싶은 욕망도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작가가 느낀 정체성의 혼돈과 공간적 이질감 때문에 특히나 <집속의 집>이라는 주제와 이런 작품들이 탄생했으니, 작품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여러 종류의 문들도 예사로운 소재는 아닌 것 같다.

작품이 허공에 붕 떠있으니 당연히 그렇겠지만, 현관 입구의 계단부터 정겹다기보다는 어쩐지 위압당하는 느낌을 받은 건 내 착각이었으려나?

 

 

2층으로 이어지는 전시에서도 인상적인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리움버전' <문>이라는 작품으로, 방처럼 따로 마련된 전시실에서 그 문에 여러가지 영상물을 비춰 볼 때마다 느낌을 달리했다. 작품의 반대편에서도 볼 수 있고 둥근 아치 밑으로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도 있게.

새들이 날아가고 매화가 피어나고, 노루가 지나가고, 시나브로 날이 저물고...

살아 움직이는 노루와 매화 그림, 서예 글씨체를 보며, 작가가 한국화를 전공했다니 직접 쓰고 그렸나보다, 완전 천재로구나 싶었는데 브로셔를 읽어보니 일본을 비롯해 다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차용한 거란다. 아시아 예술의 접목과 만남.. 이런 주제였던 것 같은데 브로셔를 벌써 홀랑 잃어버려 확인할 길이 없다. 결론은 2층 전시에서 이 작품 <문>이 제일 좋았다는 얘기. ㅋ

 

 

나와 달리 2층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은 꼼꼼함과 정교함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별똥별>이라는 작품이었으나, 재미있는 발상과 섬세함에 감탄하기는 했어도 역시 난 한옥!이 더 좋았다. ㅎㅎㅎ 

낙하산에 매달려 날아온 한옥이 영국 어느 건물에 부딪혀 망가진 모습을 일일이 아파트 소품 하나하나까지 축소해 만들어 놓았던데, 사진으론 도저히 그 사실적인 정교함이 찍히질 않는다.

 

영상물을 보니 영국 무슨 비엔날레에서 실제로 한옥이 서양 건물 두채 사이에 날아와 떨어진 것처럼 작품을 전시한 적도 있던데, 이건 그 작품의 축소판인 셈. 

 

그밖에도 작품의 탄생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여러가지 평면도와 축소 모형, 빨간색 실을 풀분무기로 붙여 만든 듯한 작품도 있었으나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가 한옥 작품들 주변에서 좀 더 서성거리다 돌아왔다. 앞으로도 <서도호 전시>라고 하면 지체없이 달려가 보게 될 것 같다.

 

 

어느덧 올해도 반년이 다 지나가려고 하는데, 돌아보니 이게 제대로 본 첫 전시인 듯하다. 이인성 회고전도 벌써 시작했으니 그건 놓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며, 마무리하는데 3주도 더 걸린 전시관람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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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2. 4. 25. 16:24

아파트도 말로는 공동주택이지만 말본연의 의미대로 '주택'인 집에 살려면 여러가지 불편함이 따르고 각별한 관리도 필요하다.  일년에 한번 구청에서 정화조 청소하라고 엽서 날아오면 업체 불러다가 청소해야지, 몇년에 한번은 외벽도 다시 칠하고 옥상방수도 해야지, 망가진 방충망도 갈아야지...

용인 어느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자기네 단지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1년에 한번 주방 팬 청소도 해주고 전화만 걸면 관리실에서 나와 형광등도 갈아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집에선 물론 그런 일들이 이제 다 내 차지다. 아버지가 집에 사다 쟁여놓으셨던 장수램프 형광등이 다 떨어져 얼마전 마트엘 갔더니 이제 장수램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죄다 중국산 GE 제품이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왜 국산은 없으냐고 괜히 신경질 부리다 어쩔 수 없이 또 길이별, 종류별로 GE 형광등을 사다 쟁여놓았다.  중국산 형광등은 얼마나 오래 가나 두고봐야지.

암튼 올 봄엔 외벽 칠과 방수를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6년 만에 새로 페인트를 칠했다. 사람을 불러 견적을 받고 어쩌고 공동부담액을 나누고 내가 주동이 아니었는데도 약간 골치가 아팠다. 아침 8시부터 업자들이 와서 외벽을 긁어대고 칠 작업을 사흘이나 하는 통에, 나는 첫날 커피 타서 내간 것 말고는 한 일도 없이 신경이 곤두섰다. 어휴.

30년도 넘은 오래된 집에 겉만 새로 칠해놓으니 언뜻 꼴사납게 화장발 잔뜩 세워 오히려 주름살이 더 드러난 늙은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째뜬 깨끗해져 개운한 건 사실이다. 집안 역시 제대로 가꾸자면 도배할 때도 됐고 주방 싱크대도 확 갈아치우고 싶다는 욕심을 품다가 또 결론은 이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 재건축은 아예 물건너갔으니 금세 팔릴 지 모르겠으나, 다시 부동산에 알아봐야겠구나 싶었던 거다. 부동산에 매물 내놓을 때 사진도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어본 바 있어서 충동적으로 사진도 찍었는데, 페인트발이 화장발처럼 화사하기를 바랐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조명발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이 문제일수도;;). 벌써 무성해진 나무 때문인지 무슨 귀곡산장 분위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진 올리면 오히려 보러 올 사람도 안 올듯.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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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은 이사에 미쳤으되 부동산에 연락을 하는 순간, 언제 낯선 사람이 온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고 있다. 과연 나는 이 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하여간 사소한 노력의 일환으로 쓰지 않는 오래 된 그릇을 한 보따리 쓰레기봉지에 담아 버렸고, 앞뒤 베란다 여기저기 뒹굴던 빈 화분들도 큰 자루에 넣어 처분했다. 어찌나 쓰레기 자루가 무거운지 비틀비틀 낑낑대며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 골목 어귀까지 내다놓은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팔과 어깨가 쑤셨을 정도였다. 쓸데없는 오래된 세간살이는 엄마 안 계실 때 몰래몰래 자꾸 처분하라는데, 버리지 못하는 병은 모녀가 똑같으니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나마도 옥상 방수작업은 계속 오는 비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어떤 집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 골치아프다. 지금껏 30년 가까이 붙박이로 살 수 있었음이 그저 감사할따름.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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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투덜일기 2012. 3. 13. 18:24

이런저런 이유로 세군데 은행의 통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주 거래은행은 어디까지나 한군데고 나머지 두 군데는 통장이 어디있는지, 인터넷뱅킹 신청을 했었는지 안했었는지도 까마득할 만큼 이용 빈도수가 거의 없다. 그 은행이 나의 주거래은행이 된 이유는 그저 첫 직장에서 급여통장을 개설한 곳이었고 계좌번호가 외우기 매우 쉽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른 데 계좌도 외우긴 하지만 숫자가 한두개씩 더 있어서 복잡해! 거의 모든 자동이체도, 모든 수입 입금계좌도 그 통장으로 해놓은 터라, 거래내역만 뽑아보면 따로 가계부도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며 산 것이 어언 이십여년이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이놈의 은행이 외국계로 넘어가면서 지점수가 확 줄어, 집근처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당시만 해도 다행히 작업실 바로 앞에 지점이 있어 그리 불편한 점은 없었으나 통장정리하기도 귀찮은 김에, 오로지 인터넷과 텔레뱅킹으로만 거래하는 e통장으로 바꿔버렸다. 인터넷뱅킹과 현급출납기 사용시에는 언제나 수수료 무료라는 점도 나에겐 딱이었다. 어차피 현금 찾을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라고 위로하면서. 현금이 급하면 언제든 며칠은 완전 무이자로 빌려주는 왕비마마도 집에 계시니 별로 불편할 것도 없었다. 좀 귀찮기는 해도 인터넷 뱅킹으로 집 근처에 있는 다른은행으로 송금해놓았다가 은행근무 시간 내에 돈을 찾으면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도 귀찮을 땐 에라 모르겠다, 은행들 돈 많이 벌어처먹어라, 하면서 수수료를 물고 아무데서나 돈을 찾기도 했고. 

누군가 은행계좌를 물을 때 내가 그 은행 이름을 대면, 거기 없어지지 않았나? 하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간 별다른 착오가 생긴 적은 없었다. 앞에 영어알파벳이 붙긴 했어도 옛날 은행이름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이놈의 은행 이름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sc제일은행도 불편했는데 이제는 아주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란다. 외국계 은행임을 공표하는 이 이름이 나는 심히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은 현금출납기에서 은행코드 확인할 때 sc제일은행이라고 나오는 것 같은데, 설마 저 긴 이름을 죄다 쓸 리는 없고 어떻게 줄여쓰려나? 그야 뭐 그 은행 사람들이 걱정할 일이고 나로선 누군가 은행계좌 물을 때 불러주거나 적어주어야 하는 저 길고 불편한 이름이 싫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저 은행을 주 거래은행으로 고수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매달 고정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제와서 세금우대 급여통장을 개설할 리도 없고, 아무리 오래 거래를 해왔더라도 알량한 번역 수입만으로는 저 대단하신 은행에서 우수고객으로 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닌 듯하다. 이제부터 온갖 자동이체며 계약서 계좌를 다른 데로 바꾸고 나면, 송금 수수료 우대 쯤이야 어느 은행에서든 받아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혹 아닌가? ㅋ). 아무튼 가끔가다 계약서 쓸 때 단출하게 'OO은행' 대신에 무려 다섯자나 더 많은 저 은행 이름을 손글씨로 쓰는 장면을 생각하면 우선 치떨리게 싫다. 손으로 뭐든 남 앞에서 글씨 쓸 일이 있으면 별안간 부끄러워 쪼그라드는 것 같은 심정이 드는 지 오래됐다. 타닥타닥 두들기는 자판에만 익숙해져 손글씨는 정말 개발새발, 뭔가 특히 공적인 일로 양식 같은 걸 채울 땐 민망하기 그지없다.

굳이 글씨 핑계가 아니더라도, 은행의 신용도나 자산규모를 떠나, 금융회사마저 외국자본이 침투한지 오래인 이 사회의 현실이 나에겐 이제 겨우 실감된다는 게 좀 소름끼친다. 언젠가는 이 나라 은행이 모두 외국계 자본에 넘어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정리해고를 밥먹듯이 하고 노조 탄압에 압장선 외국계 은행에 내가 단순히 타성 때문에 의리를 지킬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뜻이다. 해서, 드디어 결심했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핸드폰 번호를 계좌번호로 개설할 수 있다는 은행에 새로이 주거래 계좌를 트기로. 각별히 게을러진 탓에 과연 언제 은행까지 발걸음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여기에 다짐을 적어두었으니 허튼 소리로 남진 않겠지. 아 물론... 그 수많은 자동이체를 죄다 변경하려면 진땀깨나 흘리긴 할 것 같다. 부디 다들 인터넷으로 변경 가능하기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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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7.1도

투덜일기 2012. 2. 3. 03:59

어제 서울 기온이 무려 영하 17.1도였다. 체감온도는 당연히 영하 20도가 넘는다고 했다. 2월 한파로는 55년만이라나 뭐라나. 내 기억으론 평생 겨울 날씨를 다 합쳐도 이렇게 추운 날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암튼 이런 날은 그냥 집에 콕 박혀 있어야 좋을 텐데 하필 엄니 병원 예약일이었다. 시내 곳곳에 시동 안 걸리거나 시동 꺼져버린 차들이 널려 있다는 뉴스도 들었겠다, 이틀 전 쌓인 눈도 먼저 치워야해서 완전무장을 하고 미리 나가 차에 시동을 걸고 6-7센티미터쯤 쌓인 눈을 걷어내는데 어휴... 털장갑 낀 손이 금세 시렵고 뻣뻣해졌다. 어이춰!! 그나마 단번에 시동이 걸려주어 어찌나 기쁜지 원.
 
낮이라 기온이 꽤 올랐는데도 온도 확인을 해보니 영하 10도. 거리엔 다니는 차도 드물어 원래 집에서 10-15분쯤 걸리는 병원까지 딱 6분 걸렸다. 히터에서도 간신히 더운 바람이 나오기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문제는 주차권 뽑는 기계 앞에서 창문이 열리다 말고 잘 안내려가더라는 것. 눈맞고 나서 녹았던 물이 얼어붙어 아예 창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는 전에도 겪어봤으나, 이번엔 반뼘쯤 내려가다 말고 윙윙거리기만 했다. 켁. 강추위에 옥외역에서 지하철 문이 안닫혀 난리가 났다더니만 그 비슷한 현상인가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차문을 열고 주차권을 받았다. 그 추위에 한데 서서 주차권 뽑아주는 사람들 불쌍도 하여라...

오늘도 서울은 영하14도까지 내려간단다. 그렇게 춥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들은 매일매일 새벽에 일어나 추위 속으로 나설 것이다. 문득 남극의 혹한을 묵묵히 견디느라 서로 어깨를 맞대고 모여 번갈아가며 온기를 나누는 펭귄들 생각이 났다. 따뜻한 방안에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며 그래도 동면하고 싶다고 투덜거리는 나는 비유하자면 부모의 발등을 딛고 따뜻한 뱃속(영하 40도를 넘는 남극의 추위 속에서도 펭귄의 뱃속은 35도를 유지한단다;;)에 들어있는 철부지 새끼펭귄 쯤 되려나. 한겨울의 쨍한 추위가 한여름 더위보다 훨씬 낫다는 사람들을 나로선 절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기록적인 한파 때문인지 나도 쨍하고 얼얼한 추위에 한 자락 제정신이 들어오려는 모양이다. 몇달치 먹이를 한꺼번에 먹어 몸을 불린 채 겨울잠을 자도, 봄에 깨어나면 체중이 절반으로 줄어 굶어죽기 직전이라는 곰탱이보다야 그래도 매일매일 타고난 식탐을 만족시키며 노동하는 쪽이 낫겠다. 아무렴. 그렇긴 해도 영하 17도는 좀 심했다. 주말부턴 풀린다고 했으니 부디 더는 무시무시한 추위야 오지 마라. 입춘이 바로 내일인데 말이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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