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파는 마트

투덜일기 2011. 10. 24. 05:08

찾아보니 벌써 7년전이다. 부산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KTX타고 셋이 내려가면 울산에 사는 한 사람이 역으로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 회사를 마친 직딩 둘을 서울역에서 만나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으로 떠났고, 9시쯤 반가운 상봉 후 곧장 숙소를 잡아놓은 해운대로 향했다.

시간이 넉넉했던 울산 친구는 일찌감치 부산에 도착해 우리가 2박3일간 먹고 지낼 먹거리 장만까지 미리 다 해둔 터였다. 해운대 횟집에서 거나하게 배를 채우고 숙소엘 가보니, 화장실 세면대에 분홍색 장미 한 다발이 비스듬히 물에 잠겨 있었다. 광안대교가 바라다보이는 밤풍경에 이미 신이 나 있던 나는 너무 좋아서 꺅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울산 친구는 낑낑대고 혼자 미리 장을 보며 마트에서 파는 장미다발을 충동적으로 샀다고 했다. 마트에서 꽃을 판다고? 환영의 의미로 장미를 마련해둔 친구의 센스도 만점이었지만, 꽃파는 마트에 대해선 금시초문이었던 나는 부산 마트가 서울보다 좋다고 술김에 막 감탄했다. 그랬더니만 친구가 울산 마트에서도 꽃 판다고 했던 것도 같고...

암튼 그날 우리는 다시 본 술상 한 가운데 장미를 꽂아놓고 기분을 냈고, 다음날부턴 우리가 마신 빈 맥주병에 장미를 꽂아 창가에 놓아두었다. 이렇게...

떠나오는 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아깝지만 저렇게 꽂아두고 방을 나서며 빗방울 맺힌 유리창과 맥주병에 꽂힌 장미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도 마트에서 장볼 때 기회 되면 꽃도 같이 사야지 마음 먹은 게 이때였을까나...

작업실 있던 시절엔 코앞에 이마트가 있어 자주 갔었지만 매장 규모가 서울에서 제일 크다는(확실한지 모르겠다) 그곳에서도 생화는 잘 팔지 않았다. 꽃이 핀 화분(주로 양란이나 포인세티아 정도)과 알록달록 조화 파는 건 많이 봤어도, 한다발씩 묶어놓은 꽃을 파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최근 이마트는 조카들 장난감과 레고를 사러 가는 일이 없으면 아예 가질 않는다. 대형마트는 너무 정신없고 피곤하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숨이 가쁘다. 특히 멀미나게 지하6, 7층까지 뺑글뺑글 내려가 주차를 시켜놓고 나면 벌써부터 호흡곤란을 느끼는 듯.

그래서 내가 주로 다니는 마트는 동네 근처에서 주차가 그나마 편한 곳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프랜차이즈기는 하지만 매장이 단층이고 멀미나게 넓지도 않아 빠르게는 30분, 길어야 1시간내에 후다닥 장을 보기에 딱이다. 그러니 당연히 생화까지 갖춰놓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재래시장 쪽으로 가보면 화원이 하나 있기는 해도 소박한 다발꽃을 파는 것 같지는 않다. 동네 꽃집도 다 문을 닫는 바람에, 내가 가끔 전철역 근처 좌판에서 꽃을 만나면 반색하고 사는 이유도 다 워낙 꽃보기가 드물기 때문이다.

헌데 요번에 노상 다니는 굿모닝마트(혹시나 담당자가 검색하고 들어와 보고 또 꽃화분 기획하길 바라는 흑심에 밝혔다;; ㅋㅋ)엘 갔더니 입구에 꼬맹이 소국 화분이 좌르륵 놓여 있었다. '국내산 1990원'이라고 찍힌 가격표까지 붙어있는 걸 보니 어찌나 기쁘던지 쇼핑카트에 제일 먼저 소국을 두 개 실었다. 나중에 안고가기 번거롭겠지만 어떠랴. 우리동네 마트에서도 꽃을 팔다니. 아니, 마트에서 가을을 파는 것도 같았다. 1990원짜리 가을. ^^

절화는 생명줄을 똑똑 끊어 파는 거라는 말을 들어놔서, 일주일이나 열흘 쯤 눈요기 삼자고 사긴 사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찔린다. 뭐 그렇다고 살아 있는 꽃화분을 사서 결국 말리거나 썩혀 죽이는 것도 별로 나은 짓은 아니겠으나, 꽃화분을 사는 건 절화 다발을 사는 것보다는 좀 덜 찔리는 행동 같다. 분홍과 노랑, 두 종류를 품에 안고 돌아와 엄마한테 자랑하니, 엄마 역시 어느쪽을 고를까 잠시 고민하다 (처음엔 분홍을 선택하셨다) 꽃이 많은 노랑을 곁에 놓고 보겠다 하셨다.  


재주없이 따로 찍은 사진을 편집하렸더니 영 시원찮다.

꽃파는 마트로서의 위상을 계속 유지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동네 마트에서 꽃을 사왔더니 고릿적 여행추억까지 떠올라 두루두루 기뻤다는 얘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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