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ㅠ.ㅠ

투덜일기 2014. 8. 8. 01:05

어제 장을 보러가려고 주차장에 내려서다 흠칫 놀랐다.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계단 아래 새끼고양이 한마리가 웅크리고 있다가 내 발소리에 놀라 야옹 하며 차 밑으로 숨었다. 비도 오는데 너 왜 거기 있어!? 하마터면 밟을 뻔 했잖아! 기겁해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얼른 차에 올랐다. 누군가 주차장 계단 옆에 우유 그릇과 통조림 캔도 놓아준 걸 보니, 새끼고양이에게 신경쓰는 이웃 주민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왜 비도 오는데 한데서.... 먹을 것 때문인가? 고양이 문외한이자 동물혐오주의자인 나는 도대체 그 고양이가 얼마나 어린지 가늠도 되지 않았고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 


암튼 조심조심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룸미러로 돌아보니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휴 다행... 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땐 갑자기 억수로 비가 쏟아졌고 주차장으로 후진하며 계단 밑에 고양이가 없는 게 다행이다 싶었는데... ㅠ.ㅠ 앗... 새끼 고양이는 딴데로 간 게 아니라 계단 옆 모퉁이에 숨어 있었다. 엄마가 낙엽을 모아 퇴비로 쓰려고 담아놓은 비닐봉지와 계단 구석 틈새에... 으악.. 어떡해 어떡해... 집안에 들어가 엄마에게 얘기하니 아침부터 계속 거기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더란다. 다른 새끼 고양이도 두세마리 더 있다고...


다시 저녁때 비가 그치고 한밤중. 10시쯤 됐나, 조카를 집에 데려다주러 나가며 보니 아.. ㅠ.ㅠ 이젠 갔겠지 싶었던 새끼고양이는  그대로 계단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 있었고, 자동차 엔진의 온기로 몸을 말리려했는지 똑같이 몸집 작은 형제 고양이들과 어미 고양이까지 차밑에 우글우글 모여있다 쏜살같이 달아났다. 원래부터 있던 흰바탕에 검정 무늬 새끼 고양이만 계속 구석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신고를 해야하는 건가(어디에?), 제 식구들이 돌보는 중인가(아프면 어미가 물고 가지 않을까..), 통 감을 잡을 수도 없고 불길한 느낌에 겁이 날 뿐이었다. 심각한 병이 들었나... 에이, 고양이 밥준 사람이 알아서 신경쓰겠지... 애써 모른 척 외면했다. 내가 뭘 어쩌겠어!


오늘 아침 뚜벅이로 외출하며 슬쩍 주차장을 들여다보니, 새끼 고양이는 그대로 그 자리... 아 난 몰라... 형제 고양이들도 어미도 보이지 않았다. 먹이 사냥을 간 걸까. 암튼 밖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새끼 고양이 아직도 거기 있으니 신경 좀 쓰시라고 얘기하고는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ㅠ.ㅠ 주차장 앞 골목에 어미 고양이인 듯한 큰 고양이가 떡 버티고 앉아 나를 노려보고, 형제 고양이들인듯한 조그만 녀석들은 차 밑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녀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내가 내려다본 각도에선 가지런히 모은 하얗고 검은 발만 보였다. 죽었나보다는 직감. 징징거리며 집으로 뛰어올라와 엄마에게 제발 나가보시라고 안달복달을 했다. 오후에 엄마가 들여다봤을 땐 다른 고양이들이 야옹야옹 달려들 것처럼 울어서 접근 못하고 그냥 두셨다는데... 


내 예감이 맞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미 길냥이와 새끼 고양이들은 세상 떠난 새끼와 형제의 곁을 계속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는 죽은 고양이 좋은 데 가라고 나무아미타불을 외며 치우셨다고 한참 뒤에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다. 께름칙하고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애묘인도 아니고 고양이 관련지식도 없다고 자꾸 발뺌을 하고는 있는데 문득문득 죽은 고양이의 가지런히 모은 발이 떠오른다. 반성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고 그저 길냥이 애묘인들에게 지탄받을 무관심과 비정함을 토로하는 이 글을 쓰는 건 가슴이 답답해 일단 어디라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아서다. 뭔가 더 현명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앞으로 또 똑같은 일이 닥치더라도 뭔가 내가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할 것 같진 않다. 내게 길고양이는 아무리 작아도 그냥 무서운 존재인 걸...  불심 깊은 엄마의 기도 덕분에 정말로 좋은 데 갔기를(정말로 그런 데가 있다면;;) 덩달아 바라는 걸로는 안되겠지...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