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해당되는 글 8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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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12.15 그간... 1
  3. 2012.11.16 그리고 부산 6
  4. 2012.11.16 안동 하회마을 8
  5. 2012.11.14 드디어 안동 9
  6. 2012.11.07 일본 북큐슈 셋쨋날 14
  7. 2012.10.28 노는 건 좋구나 14
  8. 2012.10.06 수시
  9. 2012.05.22 친구의 밥상 15
  10. 2012.03.29 관계 2

전도

투덜일기 2015. 3. 25. 17:55

대화든 글이든 종교는 웬만해선 피해야할 주제임을 알지만 생각난 김에 일단 적어봐야겠다.

 

교인이 아니어도 어렸을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가본 경험들은 '누구나' 다 있으려나? 하여간에 서울 장안엔 요새도 그 옛날에도 교회는 동네마다 서너개씩 교파도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내 친구 중엔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지식과 정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어린 친구들이 기독교 신자가 되고나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으니, 그건 바로 '열혈 전도' 심리였던 것 같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친구가 지옥불에 떨어진다는데, 어리고 순진한 마음에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겠나. 그렇다고 무작정 교회로 끌고 갈 순 없는 일이고 (더욱이 우리집에 놀러 와 보면 대문과 안방에 부적도 붙어 있는데!), 적당한 기회를 보다가 불쌍한 친구를 자기네 교회로 데려가는 날을 만들곤 했다. 각종 과자와 사탕으로 온 동네 아이들을 다 유혹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은 더할 나위 없는 전도 주간이었고, 그 밖에도 '부흥회'라나 해서 자기가 연극을 하니 보러 오라고, 맛있는 것도 준대, 라며 내 손을 이끌기도 했다.

 

거절 잘 못하는 병은 그때부터 익히 발현되어 있었으니, 불교신자인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도 (가정환경조사서 종교 항목에도 매년 버젓이 '불교'라고 적기도 했었다) 나는 '딱 한번만' 와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마다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나 크리스마스 발표회는 주로 저녁 시간이어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영악하게도 나는 '숙제'와 '일기' 핑계를 댔던 것 같다. 선생님이 다녀와서 일기 쓰랬어, 라고 하면 무사 통과되는 식.

 

목청 높여 고래고래 소리치는 목사님의 설교는 좀 무서웠지만 멋진 옷을 맞춰 입은 합창단의 노래는 좋았던 것 같고, 과자와 사탕을 봉지에 담아 일일이 나눠주는 것도 신났다. 하지만 친구 소개 순서에 일어나서 이름을 말하는 시간이 오면 심장이 막 쿵쾅거렸다. 과자 욕심에 자기소개 시키고 돌아가며 교인들이 막 친한척하는 것만 없으면 그런 초대에 자주 응할 텐데, 하는 마음도 있었던 듯...


암튼 문제는 그렇게 부흥회나 성탄절 특별 예배에 쫓아가고 나면, 이후에도 일요일 아침마다 친구가 찾아와 같이 교회에 가자고 졸라댄다는 사실! 아 놔;;; OTL  엄마가 딱히 교회를 못다니게 했던 것 같진 않은데 (학창시절 울 엄마도 불교신자 외할머니에 대한 괜한 반발심에 교회 다닌 적 있단다 ^^;) 친구따라 '주일학교'에 따라갈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아침잠이 많다는 것. 생각해보니 일요일 아침에도 어쩔 수 없이 몇번 교회엘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곧바로 못할 짓이다, 라고 느꼈던 듯하다. 너무 피곤해... 그리고 따로 남겨 성경공부 시키는 것도 싫고... 


한번은 니가 교회엘 안다녀서 천당에 못가고 지옥에 갈까봐 걱정되서 자기 전에 맨날 기도까지 한다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자기는 '모태신앙'이라고 하도 진지하게 말을 해서, 나는 그말이 엄청 심각하고 무서운 낙인처럼 느껴졌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모태신앙이면, 일요일에도 절대 늦잠 못자고 교회에 가야하고 뭐든 먹을 거 앞에서 손부터 나가는 나와 달리 중얼중얼 기도부터 올려야하는 구나... 나는 모태신앙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뭐 그런 생각?


심지어 대학생 시절에도,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끔 친구따라 교회 가기는 몇년에 한번씩 연중행사로 이어졌다. 은근히 나를 전도하고 말겠다는 친구들의 고집과 인내심 덕분이었을까? 거절을 제대로 못하기도 했지만, 당시엔 그저 재미 삼아서, 친구가 맘에 품은 '교회 오빠'의 얼굴을 확인하러 한번 가주마,혹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 새 신자 동원 잔치에 할당 머릿수를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친구를 돕는다는 의미도 있었다. ^^; 어느새 집사님이 되신 친구가 새로 지은 교회에서 특별 예배를 올리는 날엔 선물 준다고 꼬드기며, 와서 제발 자리 좀 채워줘... 그러기도 했고. 그러면 다른 교회엘 다니는 친구도, 성당엘 다니는 친구도, 무소속(?)인 나도 무료 장소 제공 받고 모임 하는 셈치자 하며 참석을 해줬던 거다.


하지만 교인 친구들도 내가 '전도'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30년지기 친구 하나가 새삼스레 자기네 교회에 한번 오라고 옆구리를 찔러대고 있다. 특별히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그러니깐 그냥 한번 가주는 걸로 끝이 아니란 얘기!), 순전히 내가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아서 마음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 내가 그간 너무 징징거렸던 탓일까? 카톡으로 몇번 그런 얘기를 하길래, 종교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그냥 두라고 킥킥 거렸는데  요번엔 아예 자기네 교회 안내 팜플렛까지 가지고 와서 (영어 예배를 보는 교회란다) 열혈 전도를 하시네. 돌연 스트레쑤~! 


하여간 그래서인지 어제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개천변 공원에서 미스코리아 띠처럼 어깨에 'OOO구 제7교구'라고 적힌 노란 띠를 두른 교인들이 '차 한잔 드시고 가세요~!' 외치며 행인들의 팔을 잡는 걸 보며 반사적으로 얼른 멀리 도망쳤다. 만인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기꺼운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나... 싫은 사람은 그냥 좀 내버려두었으면. 나 이만하면 그럭저럭 행복하단 말이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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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투덜일기 2014. 12. 15. 16:50

마지막 포스팅을 한지 한 달이 넘었다. 다른 때는 종종 중간에 비공개로 써놓은 글도 있곤 했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완전 블로그를 방치했다. 바쁘기도 했고 확실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간... 별일이 좀 있었다.

늘 허둥대듯 폭풍처럼 몰아쳐 원고를 마감했고,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못 미더워 붙들고 매달렸던 원고를 이메일로 보낸 뒤 허겁지겁 대충 싼 짐가방을 끌고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탔다. 3월에 시도했다 실패했던 터키 여행. 7박9일짜리 패키지 상품에 3일을 연장해 짧게 자유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두어달 전부터 예약을 해놓고도 정말 가도 될까 염려하며 이번에도 타의로 못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일주일 전 출발확정일 뿐만 아니라 돌아오는 귀국편 비행기 연장도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는 그래, 이번엔 확실히 잘 다녀오라는 하늘의 뜻인 게야, 그렇게 생각했었다. 같이 가는 후배 J도 나도.

하지만 마음이 그리 가뿐하진 못했다. J의 어머니는 암투병 중이셨고, 울 엄마는 중이염 치료를 위해 입원을 권유받는 형편이었다. 심지어는 월요일 출국 예정인데 토요일에 의사가 얼른 치료 시작하자며 엄마에게 입원장을 내버렸다. 거기서 엄마는 또 넌 예정대로 가려므나, 난 홀로 입원할테다... 그러시고 ㅠ.ㅠ 막대한 취소 수수료를 물고 이번에도 터키를 포기해야하나, 고민하던 나는 의사와 원무과에 다시 뛰쳐가서 입원 못한다고 버텼다. 2주 뒤나에 입원 가능하다고.

암튼 우여곡절 끝에 떠나 도착한 이스탄불엔 계속 비가 내렸다. 12월부터 우기라더니 왜 벌써! 비쯤이야 뭐 방수재킷에 우산까지 준비했으니 맞아주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카파도키아에선 심지어 폭설이 내렸다. 우리보다 하루, 이틀 먼저 여행을 시작한 팀들은 폭설에 고립되어 산맥을 넘지 못했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소식도 들려왔으니, 열기구를 못 탄 것쯤이야 불운도 아니라고 위안을 삼아야했다. 그래, 눈 덮인 터키를 또 언제 내가 구경하겠니, 그러면서.

지중해쪽 안탈랴, 케코바에 갔을 때만 잠깐 날씨가 개었을 뿐 그밖엔 계속 우중충 비가 내렸고, 장기여행이 하도 간만이라 그랬는지 서둘러 짐을 싸서 그랬는지 내가 가져갔던 옷들은 너무 두껍거나 얇아서 춥지 않으면 더워서 낑낑대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나마도 챙겨간 바지도 티셔츠도 갯수가 부족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사프란볼루를 떠나 다시 이스탄불로 갔다가 인천공항에 내리니 우릴 기다리고 있던 건 엄청난 한파. 엄마가 미리 보일러를 돌려놓았다는데도 방의 냉기는 그날 밤에야 비로소 좀 가시는 듯했는데, 오자마자 세탁기 돌려 빨아놓은 옷들이 다 마를 새도 없이 다시 병원 짐을 싸 귀국 다음날 곧장 엄마를 입원시켰다. 

집에 돌아와 딱 하룻밤 자고 다시 떠돌이처럼 병실 쪽잠을 자야한다고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여행 파트너였던 J에게 엄마 상태는 좀 어떠시냐고 문자를 보내도 통 답이 없었다. J도 귀국하자마자 잡지 마감 들어가야한다더니 바쁜가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곧이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J에게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던 어머니가 우리 떠나 있는 동안 돌아가셨다는 것. 여행 중 J가 계속 가족들에게 어머니 안부를 물었을 때도 분명 암말 없이 신경쓰지 말고 잘 놀다오라고 했다던데, 어떻게 그런 일이. 

알고 보니 이미 우리가 터키 가는 비행기 안에 있을 때 돌아가셨기에, 이스탄불에 도착해 곧장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도 시간상 장례절차가 다 끝난 다음일 것이 뻔해서 식구들이 아예 말을 하지 않은 것이란다. 아아. 자식으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만큼 평생 한이 되는 일이 없다던데 얼마나 기가 막힐까...  괜히 터키 여행을 강행했구나 싶어 J에게도 그 어머니에게도 죄스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나이롱 환자처럼 그냥 시간 맞춰 항생제 주사만 맞으면 된다던 멀쩡한 엄마가 혈압 불안정으로 입원기간 동안 또 나를 식겁하게 하는 상황도 어쩐지 천벌 받는 것 같고... 안정되지 않은 떠돌이 같은 삶이 3주를 넘어가니 심신에 쌓인 피로로 신경은 더더욱 날카로워지고...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 J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는 것도 어쩌면 몹쓸 짓일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내 마음의 무게를 덜어보겠다는 심보가 아니고 뭔가. 그래서 이 글은 생각을 좀 더 해본 뒤 공개를 안하게 될수도... 그치만 너무도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7년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곱씹으며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려 자책하는 과정을 자꾸 되풀이하게 된다. 역시 여행을 가는 게 아니었다. 왜 하필 올해 내내 터키 타령은 해가지고... 나도 이런 지경일진대 J는 괴로운 마음이 오죽할까. 부모님을 잃었을 땐 섣부른 위로가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고, 더욱이 나는 이런 상황을 야기한 죄인인지라 J에게 더더욱 할 말도 면목도 없다. 이럴 땐 나 말고 차라리 남탓을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으니 J가 내 탓을 하며 욕을 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고...  

아무튼 우리 엄마는 무사히 8일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고, 나 역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분간은 터키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워서 사진도 들여다보지 못하겠고 계속 가슴이 먹먹하다. 때로 인생은 참 가혹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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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산

여행담 2012. 11. 16. 20:29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두시간 반. 푹신하고 넓은 우등고속 좌석은 곤한 다리를 쉬기에 딱이었고 우린 터미널 카페에서 드디어 반갑게 상봉한 쓴 커피를 '원샷'한 뒤에도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심야가 아닌데도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는 버스 안 조명을 깜깜하게 꺼두었다가 부산 노포 톨게이트에 접어들고나서야 실내등을 켜 승객들을 깨웠다.

 

안동 여행을 계획하며 잠깐이라도 부산까지 찍고 오자 결심했던 이유는 처음 일본에 가려 했을 때 부산에 내려가 하루쯤 놀다가 배를 타고 일본에 다녀오면 더 재미있겠다는 사전 모의가 무산되면서 뭔가 대단히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친구 핑계대고 이왕 나선 김에 부산에 이어 통영, 해남, 순천만 생태공원까지(여름부터 친구랑 휴가 계획 짜며 모두 언급되었던 여행지들이다 ㅋ) 죄다 둘러오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2주라고 해도 S는 금요일 출국인데다 수요일엔 또 LA에서 같이 휴가나온 동료도 만나야했다. 은행장이 특별히 임무를 부여했다나 뭐라나 -_-;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올라갈 KTX도 이미 2시반에 예약해둔 터라 부산에서 보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숙소 예약하지 말고 우리도 <바다 보이는 찜질방>에서 한번 자보자고 별렀다. 하룻밤은 우아하게 별당아씨 노릇을 했으니 또 하룻밤쯤은 행랑아범처럼 쭈그려 자도 재밌겠다고. LA교포들의 정보력이란 암튼 놀랍기 그지없다. (심지어 친구의 언니는 한인 아침방송에서 봤다며 다이어트에 좋다는 '빼빼목'을 사오라고 부탁했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었을 뿐이고!) 찜질방도 퍽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잠을 잔다는 것이 가능할지 두려웠으나 까짓것 하루쯤 잠 못자면 어떠랴, 내가 LA 놀러갔을 때도 뜬금없이 코리아타운 사우나엘 데려갔을 정도로 친구는 대중목욕탕 애용자인 것을. 그리하여 만 하루가 못되는 부산일정 역시 먹는 것을 중심으로 계획했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광안대교 야경보며 시원소주에 회 먹기, 다음날 아침은 속풀이로 금수복국, 점심은 밀면! 부산 오뎅과 자갈치시장 씨앗 호떡은 간식 옵션이었다. ^^;

 

안동에선 시내버스비 1200원을 꼬박꼬박 현금으로 내야 했으나 부산에선 선후불 교통카드 사용에 불편이 없었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갔을 때 사고 남은 티머니 카드가 그래서 서울과 부산에서 아주 요긴했는데, 친구가 갖고가 버렸다. 좀 남았을 텐데 ㅋㅋㅋ 인상적인 기념품이 되었으려나. 째뜬 노포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곧장 향한 곳은 광안역.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5분이면 된다더니, 우리 걸음으론 역시나 15분쯤 걸린 듯하고 인도에 나다니는 사람들 별로 없는 아파트촌 옆을 지나면서는 친구가 미국시민 답게 좀 두려워했다. 한국은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중고딩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와 마주쳤을 땐 나도 좀 간이 오그라들었음. ㅋ 다행히 곧 나타난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은 평일임에도 휘황찬란 해변 카페, 술집마다 사람들이 드글드글, 바닷가엔 저녁 산책 및 운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해변에서 군데군데 영업중인 점 보는 파라솔! (광안대교 사진 오른쪽에도 살짝 걸쳐 나왔다 ㅋ) 대체 누가 저런 걸 보나 싶은데도, 파라솔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사주궁합 안좋다 그러면 헤어질 건가???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었음. 오른쪽 사진은 민락 회타운인가 하는 건물 꼭대기층 횟집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다. 일부러 광안대교 보이는 집으로 골라간 건데 다리쪽 방엔 자리가 다 찼다. ㅠ.ㅠ

 

그래도... 요즘 제철이라며 전어회도 따로 좀 챙겨주시고 맛과 서비스는 흡족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집어먹다가 매번 아차, 그러면서 찍은 사진들. (휴대폰에 먹고팠던 갖가지 한국 음식 사진을 넣어가는 것이 친구의 소망이라면 소망인지라;;)

 

부산에 왔으면 시원소주를 마셔줘야지 암, 그러면서 술꾼인척 소주를 시켰으나 결국엔 사이다와 소주를 3:1의 비율로 섞어 먹다 배부르다는 핑계로 반병 남기고 왔다. 소맥을 할 걸 그랬나보다. ;=p

 

 

밤이 깊어가고 있었으나, 찜질방에 체류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싶어 내가 짜낸 아이디어는 심야영화를 보는 것. CJ에서 배급하는 영화들은 LA에서도 볼 수 있다며 친구는 이왕이면 다른 걸 보고 싶어했으나 마침 볼만한 다른 한국영화가 없으니 선택은 결국 <광해>였는데, 나는 또 묘한 인연 같은 걸 느꼈다. 영화 장면장면마다 우리가 최근에 갔던 창덕궁 구석구석이 막 나오는 게 아닌가! 쓰러진 광해가 숨어있던 집 역시 안동 하회마을일 리 없는데도 낮에 본 한옥들과 겹쳐져 더욱 실감이 났다. 그토록 뜸들이다 부산에까지 와서 <광해>를 보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인가 싶기도 하고.

 

암튼 미루고 미루다 새벽 2시가 다 돼 택시타고 찾아간 달맞이 언덕 베*타 찜질방은 상상했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으나 꽤 훌륭했다. 그리고 평일이라 사람들 별로 없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드넓은 방마다 자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큰 방엔 거의 누을 자리가 없을 정도! 여성용 수면실이 따로 있긴 하던데 좁은데다 온도가 너무 높아 숨이 막힐 정도이고 코고는 소리도 요란하여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다들 덮고 자는 담요는 과연 어디에서 구하는 것일까 이리저리 구경다니며 탐색하던 우리도 드디어 담요와 목침을 하나씩 구해들고 제일 덜 더운 방에 몸을 눕혔다... 근데 거기도 너무 더워 ㅠ.ㅠ 나는 잠든 친구를 남겨두고 찬바람을 쏘이러 베란다 앞으로 갔다가 식당으로 갔다가... 결국 다시 친구 옆으로. 에구구 여행에서 잠자리는 역시 편해야 제맛임을 실감.

 

 

그렇긴 해도 또 눈을 뜨자마자 이런 광경을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곳에서 만나보는 묘미는 인정해야할 것 같다. 전날 밤 그저 깜깜한 유리창으로만 보였던 목욕탕 전면도 죄다 저렇게 바다로 향해 있어 탕에 들어앉아서도 바다감상이 가능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참 찜질방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 ㅎㅎ

 

아래는 노천탕이 있다는 옥상구경하러 올라가서 찍어온 해운대 앞바다 사진. 아침을 먹고 나서 친구에게 해운대 모래사장을 좀 걸어보겠냐고 했더니 바다구경은 충분하단다. 맞다, LA에서도 바다는 금방이었지... 

 

 

 

간단하게 때밀이(!) 목욕을 마치고 나서 행선지는 계획대로 금수복국 해운대점. 오래 전 부산에 갔을 때 택시타고 가자했더니 교묘하게 곧장 2층 입구에 내려주어 얼결에 수만원짜리 '정식'을 먹어야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조심해야지 했는데, 웬걸. 택시 아저씨가 쿨하게 큰길가에 내려주고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

 

그래서 시켜먹은 것이 은복 지리와 복주머니 만두. 

LA 한식당에 비해서 다들 음식이 왜 이리도 양이 적으냐고 투덜거리던 친구는 처음으로 1인분다운 뚝배기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서울에도 이미 분점이 있지만, 말간 국물의 복국은 어쩐지 부산에서 먹어야 제맛인 느낌. 해장할 필요도 없이 속은 멀쩡했지만 어김없이 시원했다.

 

 

마침 복국집 바로 앞에 원두커피집도 있겠다, 이날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순히 풀려주는 기분이었다. 이후 부산관광은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태종대, 자갈치시장 쪽을 돌아 기점인 부산역으로 시간 맞춰 돌아오는 것이었다. 해운대 코스를 타면 광안대교도 건너간다잖아! (버스비는 만원. 하루 종일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내리며 계속 관광이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에 간 동안 역시나 부산여행을 한 울 엄니가 가르쳐 주심. 후쿠오카 시티투어버스에 비해 훨씬 유용한데 우린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 

 

 

진짜로 광안대교를 건너가며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해운대 인근의 스카이라인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엔 정말로 뚜껑없는 이층 투어버스가 다닌다는 듯;;

 

 

 

 

 

 

 

 

 

부산역 앞에서 은행구경과 서비스 체험도 좀 하고(얼마나 친절하고 편리한지 친구가 미국은행과 비교를 원했다), 다시 태종대행 시티투어버스를 타긴 했으나, 2시반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자갈치시장은 아예 갈 수도 없을 듯했고 태종대도 제대로 볼 여유는 없었다.  잘 기억도 나진 않지만 예전엔 택시를 타고 등대앞까지 갔었던 것 같은데... 이젠 입구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거기선 다시 코끼리 열차 같은 걸 타고 올라가야 한단다. 게다가 시티'투어'버스다 보니 어찌나 해안으로만 돌고돌아 구석구석 다녀주시는지, 도심에서 태종대까지 시간도 꽤 많이 걸렸다. (나중에 택시타고 와보니깐 부산역까지 15분도 안 걸리더만!)  

 

 

말이 태종대지 솔숲길로 조금 걸어내려가 우묵하게 파인 만과 전망대 앞 바닷가를 본 것으로 이날의 관광 끝. 점심으로 별렀던 밀면을 먹을 시간조차없었다. ㅠ.ㅠ

 

 

결국 우린 회먹으러 부산 온 거였네, 라고 자조하며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할 정도였다. 헉헉대며 자리에 앉아, 또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서울역.

 

 

곧장 전철로 이동하여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의 동료들과 합류, 쌈지길과 청계천을 쏘다닌 뒤론 다시 홍대앞(주차장길 네일샵→액세서리 가게→조폭 떡볶이→커피집)을 휩쓸다 이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온 우리는 장렬히 쓰러지고야 말았다. ㅋㅋㅋ

전국이 일일생활권임을 몸소 실천한 좋은 예.

 

(2012. 10. 24)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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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여행담 2012. 11. 16. 15:01

겉은 고택이되 안은 새로이 단장한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곤하게 자고 일어난 아침,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침을 뭐라도 먹고 움직여야 하나, 일단 나가서 움직이며 배를 채워야 하나... 하룻밤 잠만 자고 나가기엔 너무 아깝다. ㅠ.ㅠ 갖고 있는 먹거리라곤 귤 몇 알과 티백 커피, 차뿐임을 잘 알기에, 우유부단하게 고민만 하고 있는 내게 친구가 일단 나가보자고 말했다.

 

꾸물럭꾸물럭 짐을 싸 아쉬운 마음으로 치암고택을 나서며 전날밤 깜깜해서 제대로 보지 못한 집주변을 먼저 감상했다. 이 또한 참 잘생긴 한옥일세.  

 

왼쪽으로 살짝 낮고 검게 보이는 것이 주인의 살림공간인 듯한 안채. 사랑채에도 객실이 두 개 있는 듯하던데 6명까지 묵을 수 있는 큰 방에 고가라 예약할 때 아예 염두에 두질 않았으나 실물로 보니 탐이 났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여럿이서 사랑채에 묵어보리라! 

 

오른쪽 방문 열린 곳이 바로 우리가 묵었던 별채 계명재. 안채, 사랑채와 동떨어져 있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독립적인 느낌은 좋았으나, 방문 밖이 바로 주차장이고 엄밀히 말해 대문 '밖'이라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문고리를 보며 약간 걱정스럽기는 했다. 

 

별당아씨 놀이를 기대했던 친구는 섬돌 바로 코앞까지 대놓은 자동차들을 보며 별채가 아니고 행랑채 같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몰러~ ㅋㅋ

 

전날 친구 M이 별나게 무섭다고 했던 이유가 따로 있긴 했다. 방 옆으로 난 문을 여니 아 글쎄 담너머 딴집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이렇게... ^^; 

술 잔뜩 먹고 엉뚱하게 문 잘못 열고 나가면 그대로 허공으로뚝 떨어지며 낙상이다.

저렇게 내려다보이는 집에도 사람이 사는 것 같던데 윗집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은근히 신경쓰일 것 같았다.

 

이 문으론 허공이라 누가 들어올 리도 없는데 M은 상상력이 뛰어난 건지 전설의 고향 운운하며그래서 더 무섭다고... ㅋㅋ

 

 

 

 

 

 

암튼 안채 마당과 사랑채를 머뭇머뭇 구경하고 있자니 아주머니가 벌써 청소도구를 들고 나오셨고, 하회마을엘 가려면 택시타고 안동역으로 가서 버스를 타는 게 낫겠다는 아주머니의 조언 대로 우린 길을 나섰다. 버스 시간표도 미리 다 검색해서 적어갔으나 생각보다 하회마을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그리 자주다니지 않았다. 한번 놓치면 막 두시간씩 기다려야 해! 해서, 안동역 근처 간잽이 아저씨 식당에서 아점으로 고등어조림을 먹고야 말겠다는 나의 열망은 또다시 물건너가야했다. 10시 반인가 45분 버스를 못타면 2시간 뒤에나 하회마을행 버스가 있었다. ㅠ.ㅠ  그럼 찐한 커피라도 마셔 카페인 파워로 돌아다녀보겠다는 바람도 실천이 어려웠다.  역 주변인데도 그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안 보이고 원두커피를 파는 편의점은 없었다. 너무 연해서 마시기 싫다고 했던 티백 커피라도 마시고 나올 것을, 아니, 고택 툇마루에 있던 자판기 커피라도 마시고 올 것을... 후회 막급이었다. ㅠ.ㅠ

 

안동 시내에서 하회마을까지는 한 40분쯤 걸렸나, 꽤 먼거리였던 느낌이다. 하회마을 입구엔 토속장터와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었고, 일단 거기서 우리도 아침을 먹었어야 했다. 하지만 오전이라 가게들은 아직 문도 열지 않은 것 같은 모양새라 쭈뼛거리던 우리는 일단 짐을 매표소 옆 사물함에 넣어두고 마을 안까지 들어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거기도 입구에 밥집 있겠지 뭐;;;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오산. 예전에 이웃주민 포스팅에서 본 마을 입구 음식점은 그러니까 장터 입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던 듯, 마을에 들어서니 가게라곤 기념품과 음료수를 파는 간이매점 같은 곳 뿐이었다. 아이고 배고파라... ㅠ.ㅠ (다시 말하지만 나는 배가 고프면 손발이 후덜거리고 분노조절이 안되는 인간형이다. 그나마 배낭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다니길 잘했지...)

 

잘 생긴 한옥들과 황토색 토담의 정갈함도 내 눈엔 잘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엔 온통 밥먹을 생각뿐! 미숫가루라도 먹으랴 물으니 친구는 빈속에 차가운 미숫가루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집 할머니께 어디서 밥 좀 먹을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몇 군데 주소를 가르쳐주며 가보라고 했다. 밥을 해달라면 해주는 집이 있긴 한데, 문을 안열었으면 주인이 없는 거라는 하나마나한 설명과 함께... 흑... 정 밥집이 없으면 다시 돌아와 뜨거운 미숫가루라도 마시게 해달라고 부탁하곤 밥집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허나 미숫가루 집 할머니가 가르쳐준 주소는 둘 다 대문이 닫혀있을 뿐이고 ㅠ.ㅠ 하는 수 없이 우린 간이매점에서 강냉이를 한 봉지 사서 한움큼씩 집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주린 배를 바삭한 강냉이로 좀 달래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한옥 구경에 돌입했던 것 같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도 본 적 있는, 유명한 양진당에 들어서니 아저씨 한분이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계셨다. 원래도 공개된 공간 안쪽은 살림공간이고 사유지이니 출입을 금한다고 팻말에 적혀 있는데, 이날은  매우 중요한 제사가 거행되고 있으니 특히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잘 보면 집안에서 쟁반 들고 바삐 오가시는 종부 어르신의 그림자도 찍혔다!) 

 

그러고는 친절하게 음력 9월 9일 중양절의 의미도 설명해주셨다. 본디 음력 8월 15일에 추석차례를 지내지만 그때는 시기가 일러 제대로 곡식이 다 익지 않았을 경우가 많고 음력 9월 9일에는 제대로 추수가 끝난 데다 음양이 조화롭고 더 길한 날이라 안동에선 제일 큰 제사가 있다나. 배를 타고 나갔거나 객사를 하여 정확한 제삿날을 모르는 모든 조상들을 위한 합동 제삿날이라고 했다. 호기심이 더욱 동하여 중문 안쪽을 기웃거리니, 정말로 도포자락 휘날리는 차림새의 어르신들이 여기저기 모여 계셨다.  

 

 

전날엔 왜 우리가 움직이는데 하필 비오고 날 추워져서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으면서, 바로 담날엔 중양절에 때 맞춰 잘 놀러왔구나 싶어져 키득거리다니 참 변덕스럽기도 하여라.

 

왼쪽은 양진당 행랑채에 딸린 마굿간. 여물통이 진짜 오래 되어 보인다.

 

 

 

 

 

 

 

평일인데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관광객이 많지 않아 아무래도 밥집 찾기는 글렀나보다 포기했을 무렵, 민박 팻말을 내건 어느 한옥에 유독 사람들이 드글거렸다. 알고보니 인근 공사중인 한옥 인부들이 매일 대놓고 밥을 먹는 듯했다. 어쨌거나 체면불구하고 들어가 할머니께 내가 물었다. 저희도 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굶주림은 얼굴을 두껍게 만든다는 진리!) 당연히 가능하나, 고등어구이와 안동찜닭 두 가지 메뉴만 된다는 기쁜 대답이 돌아왔다. 찜닭은 어제 먹었으니 무조건 고등어구이 백반!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이 달린 단칸방에 들어가 앉은 우리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날의 첫 밥상을 받을 수 있었다. 간잽이 아저씨네 식당의 고등어구이와는 상대도

되지 않겠지만... 우린 허겁지겁 맛나게 밥공기를 깨끗하게 비웠고, 칼칼한 된장찌개와 고들빼기 김치, 더덕 무침은 평범하게 느껴졌던 고등어구이의 맛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 아니라 진짜로 맛깔스러웠던 반찬이었다고 인정. 들어갈 땐 몰랐는데 나와서 보니 <작전고택>이라고 팻말도 서 있었다. 잘 몰라서 그렇지 하회마을에서 고유한 이름 없는 한옥은 하나도 없는 듯;

 

 

 

 

 

 

 

 

 

속이 든든해지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도 더 새파란 것 같고, 토담 안에 줄지어 서 있는 기와집과 초가집들이며 텃밭에서 줄지어 자라는 배추들까지 죄다 한층 더 정겨워보였다. ^^;    

 

들어가지 말라는 곳엔 왜 더 들어가보고 싶은지;; 저 멀리 안채 처마에 매달린 곶감은 또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굴뚝 하나도 그냥 쌓아올리지 않은 정성과 예술감각을 보라!

 

 

걸어가면 왕복 한 시간도 넘게 걸릴 거라는 병산서원 가는 길.

하회마을에서 나가는 시내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우리 걸음으론 무리라는 결론으로 포기하며 바라보니 어찌나 아쉽고 오솔길이 더 예뻐 보이던지. 도산서원도 못보고 병산서원도 못보고 이것 참... 반쪽짜리 안동여행일세.

(알고 보니 도산서원은 안동시내를 중심으로 하회마을과 완전 반대편에 있었고, 시내에서 그쪽으로 가는 버스편도 하루에 몇번 되지 않았다. ㅠ.ㅠ)

 

 

 

 

 

 

 

 

공터에 나타난 그네도 한번 타주시고, 친구가  대뜸"시소다!"라고 외친 널뛰기 널에도 한번 올라가주며, 마을을 거의 다 한바퀴 돌고 나니 보이는 것은 부용대 절벽과 솔숲.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뻗어있는 예쁜 오솔길. 저 길을 우리도 하염없이 걸어가고 싶었으나...

버스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

양쪽 나무가 머리를 맞댄 이 길 역시 좀 걷다가 돌아서야 했다.

 

관광철이 아니라선지 부용대 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나룻배도 없고, 그렇다면 이젠 미숫가루나 먹으며 다리를 쉬어야 할 때. ^^;

 

 

 

 

 

 

 

 

미숫가루를 먹으러 들어간 방에서, 자기도 이런 예쁜 찻상 갖고 싶다며 친구는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마침 친구S의 남편은 목공예가 취미인 사람. 생일선물로 만들어준 화장대겸 원목 책상을 나도 익히 본 적 있었다. 아마 다음번에 친구네 놀러갔을 땐 거실에 이런 야트막한 찻상이 놓여 있을지도...

 

 

한여름에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얼음 동동 띠운 미숫가루의 위용. ^^;

 

여행일정은 우리가 세운 계획이 아니라 전부 다 버스 시간표에 달려있음을 그제야 깨달은 우리는 5시쯤 하회마을을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괜스레 하회탈 박물관에 들어가 별로 볼 것 없는 구경도 하고, 그곳 매점에서 드디어 그날의 첫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때우다 안동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하회마을은 원없이 구석구석 돌아보았으나 병산서원, 도산서원 못 본 것을 안타까워 하며...

(2012. 10. 23)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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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안동

여행담 2012. 11. 14. 16:18

드디어 안동 얘기까지 왔으니 여행자의 삶 후기도 얼마 안남았다. 쓰고 보니 많이 다니지도 않았구만 왜 그렇게 노상 쏘다닌 것처럼 느껴졌는지 원. 아무튼... 이웃 주민들 영향으로 통영과 함께 선망의 여행지였던 안동에 결국 다녀왔다.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짰던 시간표와 동선은 완전히 무너져 허망했고, 얼마 다니지도 못했음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마구 찍어댄 풍경사진을 '소장'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뿌듯하며, 그곳을 30년지기와 함께 거닐었다는데 의미가 있으니 됐구나 싶다.

 

그래도 왠지 억울해서 적어보자면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고속버스편으로 아침 일찍 출발.

안동에 도착해 점심으론 <헛제삿밥>을 먹는다.

오후에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돌아본 뒤 저녁은 안동 구시장 찜닭골목에서 <안동찜닭>을 먹어줘야지.

숙소인 고택으로 가기 전에 필히 맘모스 제과에 들러 안동사과를 넣어 구웠다는 30년 전통의<사과파이>와 <맘모스빵>을 산다.

이걸로 다음날 아침 커피와 함께 요기.

이틑날 오전에는 도산서원을 돌아본 뒤 다시 안동시내로 돌아와 역앞에 있다는 간재비 아저씨네 식당에서 고등어조림과 구이로 거하게 점심. 

커피 한잔 마시며 여유 부리다 오후 늦게 부산으로 출발.

 

그러나... ㅠ.ㅠ 야무진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이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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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쨋날은 호텔서 아침먹고 나서 오후까지 그야말로 자유로이 돌아다니다 공항가기 전에 일행과 만나면 끝. 일본 호텔의 뷔페식 아침밥은 맛이 없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나는 열심히 미니 오븐에 빵을 데워 테이블로 갔더니 친구는 미소시루에 밥, 시사모 구이와 명란젓을 듬뿍 담아와 희색이 만면했다. LA에서 명란젓 얼마나 비싼 줄 아냐고, 시뻘겋고 짜디짠 것도 비싸서 못 사먹는다고, 이렇게 말갛게 신선한 명란젓 처음 본다고, 넘 맛있다고 흥분일색이었다. 나도 먹어보라고 권했으나 다시 일어나 밥푸고 자시고 하기 귀찮아.... 그러고 보니 이날 아침밥은 사진도 안남겼다. 원래도 먹거리 보면 숟가락질부터 하지, 사진부터 찍는 인간이 아니라 셋쨋날 쯤 되니 원래 하던대로 돌아간 듯.

 

전날밤부터 이날 하루 뭘하고 놀 것인가 지도와 안내책자를 보며 아침까지도 고민이 끝나지 않았던 이유는 베르메르 때문

이었다. ㅜ,.ㅠ

첫날 다자이후시에 갔을 때 이미 포스터를 발견하고 희희낙락 자유일정 때 보러가야겠노라고 결심했으나 가이드에게 물으니 후쿠오카에서 다시 가려면 거리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찾아가도 뭣하고 택시로 가면 2, 3만엔은 나올 거라고...(택시비가 3,40만원이란 말이냐!)

 

왔다갔다 왕복시간도 정확히 알수 없는데다 기껏 박물관에 찾아갔다 해도 허겁지겁 그림을 보고 나오려면 내내 불안에 떨어야할 것 같았다. 나 혼자였다면 몰라도 그림에 별 관심없는 친구를 이끌고 모험을 하는 건 아니다 싶었다. 해서 결국 포기.

그런 나를 놀리듯 시내 곳곳엔 베르메르 그림 포스터가 저렇게 떡하니 붙어있었다. 흥! 나중에 네덜란드로 보러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포스터 영문사이트 주소를 보니 베를린 어쩌고 되어 있다. 저 그림은 베를린 박물관에 있나? +_+ 암튼... 아쉬운 베르메르와의 인연.

 

자유일정에서 여행사가 추천하는 장소는 대부분 캐널시티 쇼핑몰과 도심 백화점 주변, 하카타 역 쇼핑몰 따위였으나 나와 친구는 둘 다 쇼핑을 별로 안좋아하는 인종. 쇼핑이라면 이미 전날 밤 드넓은 무지 매장을 실컷 구경한 걸로 족했다. (아직도 무지 매장에서 본 검정색 통짜 원피스가 눈에 아른아른.. 그러나 칠부소매의 겨울 원피스를 내가 언제 어디에서 입으리! 안 사길 잘했지) 게다가 이미 마냥 걸어다니는 데는 질력이 나기도 한 상태.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유람선이나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휘휘 구경을 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이었다. 허나 유람선은 야경 위주라 낮엔 탈 수도 없었는데다 시간도 몇번 되지 않았고 (어쩐지 전날 강에 배가 하나도 안 돌아다니더라;;) 시티투어도 하루에 딱 네번. 지정 정류장 아무데서나 타고 내릴 수는 있지만 표를 사려면 시청 로비까지 가야했다.  

 

지도를 보니 하핫, 우리가 전날 벤치에 앉아있던 공원이 바로 시청 뒤에 있는 텐진 중앙공원이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게야...

(이러면서 전날 사진 재활용. 공원 잔디에서 놀이기구 같은 걸로 연습하던 남녀 학생이 인상적이었다)

 

 

목표는 11시에 출발하여 항구와 해변, 도시 외곽을 도는 파란색 노선의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것이었는데 아뿔싸, 내 앞에서 머뭇거리며 이것저것 묻던 일본 아주머니가 단체 가이드였던 듯, 남은 표를 몽땅 사가버렸다. 로비에 먼저 도착한 건 우리였는데! 잠깐 안내판 보며 남은 표 열두장이라고 희희낙락 확인하는 사이에 흑... ㅠ.ㅠ 매표원이 안내판 11시 시간표에 매진 팻말을 붙여놓았다. 결국 우린 12시에 출발하는 빨간색 도심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또 다시 두 시간이나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의미. 에효.  여러 설문과 인증 끝에 한번에 15분간만(!)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시청 건물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다 너무도 날씨 화창한 밖으로 나섰다.

 

 

 

요즘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박스 모양이 대세인 일반 자동차들과 대단히 클래식한 느낌의 택시도 한 장 찍고...

(정말로 운전수가 차문 자동으로 열고 닫아주는지, 일본 택시 한번 타보고 싶어서 별로 멀지 않은 나중 집결지까지 타고 가자고 했더니 친구가 결사반대했다.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냐고,  멀지도 않은데... 그치만 얼마나 비싼가 한번 타보고 싶긴 하던데;; ㅋ)

 

도심이라 주변에 백화점들이 대거 몰려있다는 건 알지만 굳이 들어가보고 싶진 않았으나 걷다보니 다이마루 백화점 앞이었다.

 

역시나 깔끔한 건물 앞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만든 의미 모를 곰돌이도 구경하고, 귀여운 하마 모자(혹은 부녀?)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큐슈 날씨는 제주도와 비슷하려니 생각했었는데 확실히 어찌나 덥고 햇살이 뜨거운지 외투는 계속 벗어서 들고다녀야 했다.  

 

이날 돌아다니며 제일 예뻤던 꽃집 앞 화분들.

 

공연히 억울하게 시간을 허비하다 드디어 시티투어 버스에 오를 시간. 지정석인데 그나마 일찍 표를 끊은 터라 앞에서 둘쨋줄, 자리는 좋았다. 햇살이 뜨거워 그렇지 ^^;

 

그래도 관광용이니 가끔씩 영어 안내라도 해줄 줄 알았으나 그건 헛된 기대였다. 계속 일본말로만 뭐라뭐라 방송이 나왔으니, 우린 그저 지도를 보며 위치를 짐작하는 수밖에. 처음에 항구쪽 고가도로를 잠깐 달려 바다를 뵈준 다음엔 그나마 대부분 도심을 도는 거라 돌아다녀 본 곳이 많았다. ㅋ

 

겨우 50분 보는데 2천엔이나 하고, 배차간격이 너무 멀어 다시 탈 수도 없으니(그날 하루는 비슷한 노선의 다른 버스도 계속 이용할 수 있다는듯;;) 그다지 추천할만한 느낌은 아니었다. 항구와 해변쪽을 도는 노선을 탔더라면 볼 게 더 많았을까? 그야 모를 일.

 

어쨌거나 우리와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는 일본에서 길쭉한 버스가 좌회전을 할 때마다 왼쪽 끝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야트막한 가로수에 부딪칠 것 같다고 기겁을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음. 

2층 버스에 앉아 선글라스와 외투로 햇빛을 가리다가 가끔씩 사진기를 들어올리고 난사한 사진 중에 그나마 두 장. ^^;  

저것은 분명 야자수렸다? 제주와 비슷한 위도임이 분명하다고 나 혼자 우겼음. 그리고 가끔씩 도로 모퉁이에 서 있는 저 동그란 시계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는 시계탑에도 이제 다 디지털 시계로 숫자만 나오지 않던가?

 

암튼 후쿠오카 도심에서 내게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물은 바로 이것. 

용적률을 엄청 포기하고 옥상을 계단식으로 한 뒤 나무와 화초를 심었다. 나는 그냥 휴식공간이려니 했는데 버스 타고 돌다보니 저 옥상 중앙쯤에 난 계단으로 걸어내려오는 사람 발견!

 

경사면 쪽에서 보면 이렇게 생긴 건물이다. 버스투어 하며 지나다 찍은 사진이라 좀 멀다...

무슨 건물인지 나중에 지도 찾아봐야지 작정했었는데;; 아 글쎄 챙겨왔던 지도를 벌써 내다버렸지 뭔가.

사무실 건물이라면 공간을 거의 절반이나 포기하고 저렇게 꾸몄다는 건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첨부: 저 건물 이름은 아크로스 후쿠오카. 후쿠오카현 국제회관이 자리잡은 13층 건물이란다. 저 경사면은 텐진 중앙공원과 마주하고 있으며, 항시 개방되어 있는 계단 산책로와 에코 빌딩으로 유명하다고...) 

 

 

 

 

 

 

 

 

 

 

 

 

 

 

 

 

다시 시청앞으로 돌아가 빨간 2층버스에서 내려 해야할 일은 점심을 챙겨먹는 것. 일본에 왔으니 초밥을 먹을 것인가, 일본 카레를 먹을 것인가... 눈에 띄는 음식점마다 기웃거리다, 사람 많은 곳엘 가야 맛있다는 지론을 철썩같이 믿고 찾아다녀보았으나 도심에서 직장인들이 1시 넘어서까지 우글우글 밥을 먹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ㅋㅋㅋ

그러다 발견한 곳이 이 작은 우동집. 허름하고 작은데 뭔가 포스가 느껴진다고 자위하며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영어메뉴도 있음! 메뉴판과 그릇에서 '원조' 글씨를 발견하고 몹시 뿌듯해하며 메뉴 맨 위에 있는 우동을 시켰다. 좀 짜긴 했어도 퍽 맛있었음. 그러나 다시한번 말하지만 왜 이리도 양이 적은 것이냐! 눈치를 보니 다른 남자들은 거의 다 사리를 덤으로 시켜먹더군. 그럼 그렇지. 이것만 먹고 어찌 한 끼라고 할 수 있으리.

 

(물병만 크게 나왔다고 친구한테 잔소리 들은 카운터 정면 사진. 우동은 아직 한 젓가락도 안 먹은 상태. 입 큰 사람은 두 젓가락으로 끝낼 수도 있겠다. ㅋ)

 

이왕이면 다른 다리로 강을 건너겠다며 좀 멀리 돌아 다시 캐널시티 쪽으로 돌아오다 다리 위에서 찍은 강의 합류지점. 별로 안 넓은데 사진엔 퍽이나 넓게 나왔다. 이러니 한강은 찍어놓으면 바다처럼 보일지도;;  그러고 보니 가운데가 뻥 뚤린 캐널시티 쇼핑몰 건물은 한장도 안 찍어왔군.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각 시간대별로 있다는 음악분수도 꽤나 기대했다가 어찌나 미미하여 놀랐던지. ㅋㅋㅋ 그에 비하면 우리 동네 개천변에 있는 분수쇼가 더 장관이더라.

 

아래는 항구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인데, 처음 여행 계획할 때 염두에 두었던 카멜리아호가 부두에 정박해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부산에서 그 배타고 타고 9시간이나 와야했더라면 배안에서 아마 몸서리를 쳤을 듯.  전망대 올라가는 거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유리창 격자무늬가 선명하게 나온 이 사진 괜스레 마음에 든다.

 

이후 시간 때우기는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지친 다리를 쉬러 카페에 들어가서 계속 개겼던가... 일본 슈크림은 달지 않다며 그래도 한번 먹어보자고 해서 슈크림 빵도 같이 사먹었던 건 기억 나고, 사흘만에 부쩍 늘어난 뱃살에 한숨 지었던 것도 생각난다. 많이 걸어다니면 뭐하나, 고열량 간식을 좀 많이 먹었어야지.. 밤마다 맥주에... ㅎㅎㅎ

 

 

애당초 2박3일은 너무 짧지 않겠느냐고 나흘짜리 여행상품을 알아보라던 친구에게 아쉬우냐고 물었더니 이미 일주일 이상 놀러다닌 느낌이라 흡족하다고 했으나,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며 나는 마냥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3박4일짜리 홋카이도 여행을 갈 걸 그랬나... -_-;

 

 

암튼 티웨이 항공은 처음 타보는 경험이었는데 퍽 흡족했다. 그래서 다들 저가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겠지. 갈 때는 오렌지주스에 크라상 빵 하나 달랑 주기에 쳇, 외면하다 주스만 마셨는데 돌아올 때는 참치주먹밥이 나왔다. 배 안 고파서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내게 친구가 외쳤다. 맛있어! 까불지 말고 먹어둬. (집에 와서 신라면 끓여먹을 생각에 좀 버텨보다 결국 나도

다 먹었는데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는지... 공항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치는 바람에 집에 9시도 훨씬 넘어 도착했다. ㅠ.ㅠ 물론 그 밤중에도 라면 두개 끓여 김치 한 포기와 함께 폭풍흡입을 안 한 건 아니지만서도).

 

여행 다녀오면 그 어느 때보다 튼실해진다는 진리는 이번에도 입증되었다. 세끼 다 찾아먹고 사이사이 간식까지 챙겨먹는 습관에 길들여진 위는 거의 한달이 다 된 요즘에야 원래로 돌아왔다. 여행자로 산다는 건 참... 심신이 즐거운 일이다.

 

 

(2012. 10. 16)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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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건 좋구나

투덜일기 2012. 10. 28. 15:33

 

 

7년만에 한국에 다니러 온 친구 덕분에 나도 2주간 꼬박 관광객 모드로 마냥 먹고 놀러다녔다. 몇달 전부터 꼼꼼하게 다닐 곳과 먹을 것과 볼 것을 주르륵 뽑아놓고 하나하나 지워나갈 계획이었으나 돌이켜보니 큰 얼개만 맞아떨어졌을 뿐 소소한 곁가지는 도통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여행지에선 어쩜 그렇게도 시간이 잘 부서져나가는지 원.

 

친구는 다시 열세시간을 날아 왔던 곳으로 돌아갔고 남은 것은 몇장의 사진과 내몸에 붙은 살... 살...

매일같이 얼마나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잘 쉬었는지, 빵빵해진 얼굴에 주름살이 다 펴졌음은 물론이려니와 숱 적은 머리칼에 자르르 윤기마저 도는 걸 보며 노는 게 이리도 좋은 것임을 새삼 실감했다.

 

계속 이렇게 탱자탱자 여행다니며 놀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로또 1등 당첨 밖에 없다는 서글픈 현실을 인정하고 내년 휴가나 또 기약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터키. 칠레. 쿠바. 파리. 아를. 더블린. 프라하. 빈. 바르셀로나. 가고픈 곳은 많은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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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투덜일기 2012. 10. 6. 16:20

얼마전 친구가 자기랑 딸을 하룻밤 재워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고3딸이 수시입학원서를 넣었는데 수리논술고사를 보러 아침일찍 와야한단다. 근데 경기 신도시에 있는 그 집에서 오기엔 너무 멀다고... 당연히 그러마고 했다. 재워도 주고 라이드도 해줄게. 다만 궁궐처럼 넓은 새아파트에 살던 아이가 30년 넘은 낡은 집에 와 방바닥에서 자는 것이 좀 낯설겠지만서도, 라고 토를 달았더니 둘 다 머리만 닿으면 자는 유형이라 염려 없단다. 수십년 전인 대학 1학년때 친구가 딱 한번 놀러온 적이 있었는데, 맙소사 바로 그 동네 그 집으로 수험생 딸을 데리고 오다니 그 세월을 붙박이로 산 내가 참 징하다 싶었다.

 

문제의 논술고사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어젯밤 광역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2시간도 넘게 걸려 온 친구와 딸을 버스정류장으로 마중 나갔다. 친구는 결혼 전 살던 친정도 천호동이었던 지라, 간만에 보는 강북의 구불구불한 도로와 언덕길과 언덕배기에 서 있는 주택 단지 구경을 신기해 했다. 대범하고 진중해서 늘 부모에게 아무런 걱정도 끼치지 않는 아이는 그래도 심적인 부담이 컸던지 밤중에 체기가 있었다. 손과 등을 주물러주다가 결국엔 찬바람 쏘이러 밤동네를 걸어다니다 편의점에서 물약 소화제를 사먹였다. (그나마 '의약외품'이라며 이름이 '가스 활'로 끝나는 소화제를 팔아서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간단한 소화제나 감기약은 진짜 편의점 판매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규!! 의사, 약사들은 쫌!!)

 

시험시작은 8시 반이라는데 입실제한은 7시 50분. 차로 가면 우리집에서 늦어도 15분이면 가니깐 염려 말라고 해도 집에서 6시 반에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두 모녀는 걱정이 컸다. 작년 수시때 학교앞 도로가 완전 꽉 막혀서 4.5km 가는데 한시간 반이나 걸려 결국 눈썹 휘날리게 뛰는 아이들이 엄청 많았다나 뭐라나. 후문으로 질러 들어갈 거라서 그럴 염려 없다고 큰소리는 쳤어도, 결국 다섯시 반을 기상시간으로 정했다. 아침은 6시에 먹는 걸로.

 

6시에 아이를 깨워 (나름 심혈을 기울인) 밥상을 안기고 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늦는 것보다는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게 낫단다. 후문을 들어섰을 때만 해도 간간이 안내하는 ROTC와 경비원 아저씨들이 보이긴 했으나 아무래도 너무 일찍 왔다 싶었는데 웬걸, 본관 앞 인문관 근처부터는 길 몰라 헤매는 차들이 벌써 엉켜 빌빌대고 있었다. 7시를 갓 넘긴 시간인데도 구름처럼 몰려 걸어들어오고 있는 인파, 인파들... @.,@ 등교시간에도, 졸업식 날에도 캠퍼스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건 본 적 없었는데, 정말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하기야 친구 딸이 원서를 넣은 학과만 따져도 시험보는 애들이 무려 3천명이란다. 이과라서 오전 시험이지, 문과는 11시 반까지, 사회과(?)는 1시까지 나누어 등교시켰으니, 첫 시험 끝나고 나가는 아이들 들어오는 아이들 겹쳐지는 시간 무렵엔 인파가 더욱 어마어마할 거라고 했다. 어휴... 벌써부터 인근 호텔에 방을 잡아놓은 친구들이 더러 있다는 말도 들었는데, 시험장에서 만난 아이의 반친구는 방을 구하지 못해 엄마와 함께 찜질방에서 자고 왔다고 했단다. 그간 대학 입시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그 치열한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니 아이들의 무한경쟁이 실감났다.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수시로 뽑혀 그 학교에 다닐 아이들은 과연 몇이나 되려는지...

 

수리논술은 워낙 대학에서 낸 출제 문제가 어려워서 80%가 0점(!)이고, 1문제만 풀어 18점만 맞으면 합격이 보장된다고 했다. 시험장인 공학관 바로 앞에 친구와 딸을 내려주고 행운을 빌었다. 평소 실력대로만 해! 후문과 달리 아수라장으로 변해 경찰 수십 명이 빨간봉을 휘두르고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정문을 어렵사리 빠져나와 집으로 오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나 학력고사 보던 옛날엔 대학입시도 참 간단했는데 요즘엔 뭐든 참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다. 수시 입학원서는 여섯 군데로 제한이 있고, 수시 합격생에게도 학교별로 수능 과목 등급 제한이 있으며, 정석검사니  특기니 해서 모집 분야도 다양하단다.

 

아까 시험 끝나 집으로 돌아간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일부러 시험 잘봤더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한달 밖에 남지 않은 수능인데 뭣하러 나까지 스트레스를 주나 싶어서. 이제껏 나는 '수시' 얘기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스시' 생각이 나면서 군침이 돌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수시'란 낱말과 함께 오늘 아침에 본 그 어마어마한 인파가 떠오를 것 같다. 옛날에 입시 치러서, 옛날에 취직해서 좋았었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이 점점 잦아지는데, 그렇다고 '요즘'을 살지 않을 수도 없으니 참, 이래저래 맥이 빠진다. 과거를 황금기로 추억하는 것보다는 지금 여기 현재를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떠올려야 하나. 10년, 20년 후에 또 오늘을 떠올리며 그때가 팔팔하고 좋았지, 그럴 인간이 분명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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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밥상

투덜일기 2012. 5. 22. 17:26

입던 옷차림에 슬리퍼를 대충 끌고 아무때나 스스럼없이 집으로 놀러가도 좋을 동네 친구는 이제 없다. 여전히 '우리집으로 놀러와'라고 말하는 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선뜻 나서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나만해도 몇년 전까진 아주 가끔 친구가 집으로 놀러오는 일이 있었으나, 조카들 놀러오는 것도 귀찮은 마당에(!) 친구가 집으로 오는 건 이제 손사래를 치며 말리고 싶다. 무엇보다도 청소하기 싫엇!

 

내 입장에선 차라리 그냥 밖에서 만나서 수다떨고 밥먹고 차마시는 게 훨씬 편하고, 전업주부든 아니든 친구들도 대개 내 의견에 동감한다. 혹시 아이가 어리다든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집에서 모이게 되더라도 밥은 반드시 나가서 먹거나 시켜먹는 것이 대세. 그렇더라도 나로선 한끼니 내 손으로 안챙겨도 해결되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누군가에게 집밥을 대접받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황공무지한 일이 된지 오래. 사실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동생네 집에 가서 큰올케가 해주는 집밥을 얻어먹으며 황송해한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내가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더러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시누이 노릇이고 아니고를 떠나 똑같이 지겨운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사람으로서 양심이 저릿저릿 하는 것 같다.

 

암튼 집밥의 귀중함을 알기에 누구에게든 함부로 청할 수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으며 누가 해준다고 하면 일견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최근 그런 귀한 집밥상을 친구에게 연달아 받는 일이 생겼다. "요리 내가 했으니 설거지는 밥값으로 니가 해!"라고 하는 친구들도 아니어서 나는 그야말로 황송하고 감격했다. 귀찮게 나가서 먹지 뭘 밥을 했느냐고, 괜한 빈말이 아니라 정말 미안해하던 나에게 그들은 좋은 사람을 위해 차리는 밥상은 전혀 피곤하지도 귀찮지도 않다는 대답으로 나를 더욱 민망하게 했다. 나는 매끼니 밥상 차리면서 노상 인상 구기고 툴툴대는 인간인데...

 

확실히 그들은 나와는 다른 유형의 인간이 틀림없다고 여기며, 괜한 죄책감까지 품지는 않을 작정이지만 사진을 담아둔 김에 고마움과 자랑을 겸한 포스팅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셋 다 내가 이런데다 자기네가 차려준 밥상 사진을 올리고 주절대는 짓거리를 하고 산다는 건 모르고 있으니 금상첨화. 친구가 해준 요리 중엔 참고 삼아 나중에 해먹어도 좋을 것들도 있으니 여러모로 유용한 기록이 될 거라 믿는다.

 

밥상1.

이중에 나도 시도해본 건 냉이무침과 새싹채소 샐러드. 뒷줄 왼쪽, 삼치를 밀가루 입혀 굽고 데리야끼 소스를 끼얹은 건 한번 해먹어보고 싶은데 귀찮아서 잘 안된다. 소금구이로도 맛있는걸 뭐! 그날 친구의 냉장고엔 이 요리를 위한 레시피 적힌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친정엄마가 해주셨다는 김치 두 종류 말고는 따끈한 잡곡밥까지 죄다 신선한 반찬. 과연 몇시간을 공들여 차려낸 밥상일지 감개무량.

 

밥상2 

당연히 밖에서 사먹을 거라 생각했다가 집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놀랐던 두번째 친구의 밥상은 사진 한장으로 담을 수가 없었다. 내가 도착한 순간 씻어놓았던 쌀로 돌솥에 밥을 앉히고 중탕으로 계란찜까지... 죄다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이라 손 가는 거 하나 없었다고 극구 주장했지만, 중탕 계란찜도 누룽밥도, 부추전도 저절로 되는 요리는 아님을 내가 왜 모르나. 우리집 계란찜은 늘 전자렌지에 뚝딱 해먹지만, 그냥 내버려두면 퍽퍽하고 딱딱해져서 계란찜 메뉴로 눌러놓고도 틈틈이 휘저어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날 밥 한공기 다 먹고 누룽밥까지 과식한 바람에 위가 아파서 저녁은 굶어야 했다. ㅎㅎㅎ

 

밥상3

 

이날도 저 수북한 밥그릇 좀 봐라. 원래 집에서 먹는 양은 저 절반쯤 되는데... 밖에만 나가면 꾸역꾸역 참 잘도 먹는다. 따끈따끈한 새밥은 정말 그냥 밥만 씹어도 맛있다는 걸 이제 나도 아는 나이랄까... ㅠ.ㅠ 이 친구네 냉장고 안엔 밑반찬이 단 한 개도 없고, 매끼니 새로운 반찬을 즉석에서 해먹는 걸로 유명하다. 가운데 있는 건 맵지 않게 끓인 닭볶음탕이고, 부추 샐러드와 부추전도 내가 보는 앞에서 금세 뚝딱 만들어냈다. 여덟살 짜리 아들놈이 초록색 부침개를 좋아해서 부추를 갈아 체에 걸러 놓았다가 저렇게 앙증맞은 부추전을 부쳐먹는단다. 켁... 가서 울 엄마 부쳐드리라고 초록색 반죽을 준다고 해서 급사양했다. 울 엄마가 애기도 아니고! 이 다음날 부추 사다가 부추가 잔뜩 씹히는 두번째 밥상 속 부추전을 만들어 먹고, 남은 생부추는 비빔국수에 넣었더니 엄만 안 씹혀 못먹겠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들기름과 간장 들깨로 버무린 향긋한 부추샐러드는 우리집에선 못해먹을 음식이란 의미. 대신에 닭볶음탕을 그렇게 간장에 청양고추만 조금 넣고 안동찜닭처럼 해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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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투덜일기 2012. 3. 29. 16:05

스마트폰을 별로 스마트하게 사용하지 않는 나는 웬만한 푸시알림 기능을 다 꺼놓고 내킬 때만 들여다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조금씩 하기는 하지만 주로 구경하는 쪽이라 SNS의 과잉현상에선 한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부턴가 그놈의 카카오톡 때문에 스트레스가 생겼다. 문자와 달리 카톡은 무료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또 무료이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시답잖은 내용을 복사해 전송하는 사람들은 왜 또 그리 많은지! 4040 번호로 오는 전화를 받으면 순식간에 2만5천원이 결제된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의 메시지는 아마 그날 대여섯번 쯤 받은 것 같다. 유행하는 유머 동영상 링크를 수시로 보내는 사람들도 꼭 있다. 참 정성도 뻗쳤다고 하겠다. 하지만 안부인사를 겸한 것이든 아니든 대뜸 띵동 띵동 일방적으로 복사해 전송하는 그런 메시지가 나는 하나도 고맙지가 않다.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유유상종인지, 보내오는 메시지 내용이 똑같을 때도 많다. 알고 보면 퍽 비좁은 카톡 세상에서 돌고 도는 유행인지 몰라도, 그들이 원한 반응은 '지루한 오후 너 때문에 한참 웃었다. 고마워!' 따위의 것인지 몰라도, 그냥 내겐 귀찮은 스팸일뿐이라고!!

얼마전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받는 이가 정식으로 읽지를 않으면 전송시간 앞에 적힌 숫자가 없어지질 않는단다. 초기화면에 알림기능으로 내용이 뜨기 때문에 완전히 읽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간 귀찮은 메시지가 오면 읽지 않는 것으로 나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무딘 사람이 아니고서야 읽지도 않고 답장도 안하고 씹으면 싫어하려니 싶어서 관두겠지 여기기도 했고. 헌데 나처럼 메시지 읽음 표시 기능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아직도 끈질기게 재미난 유머 링크나 꼭 알아야 할(?) 뉴스 따위를 친절하게 보내오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카톡스토리라나 뭐라나 새로운 앱이 나왔는지 새로이 친구신청을 하는 이들도 생겼다. 이쯤 되니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는 듯,  카톡 계정을 확 삭제해버릴까 충동이 인다. 내게 연락을 하고픈 사람이라면 문자 메시지 비용쯤은 감당하기를 바란다고 하면 너무 이기적인가? 안 그래도 수익구조에 야로가 많은 통신회사에 굳이 유료 문자전송으로 돈 벌어줄 이유가 없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어쨌든 충동 대로 곧장 카톡탈퇴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데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전화기피 증상이 심하고, 차츰 사교성도 줄어들고 그렇다고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도 아닌 삶이 이어지다보니 밖에서 친구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친구라고 해도 다들 거의 비슷한 성향의 인간들이 어울리다 보니, 누군가 성격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은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곁에 남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궁금하고 보고싶고 만나서 수다떨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실천은 하게 되지 않는 이 망설임을 과거엔 그래도 '갑갑함' 때문에라도 떨칠 수 있었지만, 이젠 정말이지 집구석이 제일 좋고 일주일, 열흘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아도 별로 갑갑하지 않다.

나의 전화 기피증과 게으름을 알기에 먼저 연락해주는 이가 아직 더러 있는 건 고맙고, 막상 불러주면 기쁘게 달려나가지만 내쪽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만남을 청하는 건 또 쉽지가 않다. 머릿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으면서 막상 연락은 못해 아쉬운 이들도 있지만, 차라리 이렇게 서서히 관계가 정리된 것이 반가운 친구들도 있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정리되어 차라리 반가운 인물이면 어떡하지?! 아무려나 점점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는 탓에 소통의 도구가 점점 줄어드는 마당에, 몇몇 과도한 친철형 인물들 때문에 카톡마저 관두는 건... 소외를 자처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일방적이고 뜬금없는 메시지가 짜증스러운 것일뿐 또 관계 자체를 아예 끊고 안 볼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조금 전, 오늘의 유머 동영상 링크를 보내온 이에게 까칠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 거 안 좋아해서 별로 안 고맙다고. 그래도 계속 보내면 카톡차단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도 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쪽도 앞으로 내게 그런 쓸데없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더 편하지 않을까. 일단은 좀 만만한 상대라서 이런 방법으로 해결을 했지만, 문제는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대상도 있다는 점이다. 대체 왜 내게 그런 정성을 들일까, 혹시 보험 같은 걸 팔려는 것일까, 의아스러운 몇몇 인물은 눈 딱감고 차단해두긴 했으나, 원천적으로 봉쇄된 게 아니라 퍽이나 찜찜하고 껄끄럽다. 아마도 메시지를 보낸 저쪽에선 그냥 내가 읽지 않은 걸로만 나온다지... 스마트 한 세상에서 스마트하게 관계를 맺는 것도 참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에 마음이 묵직하다. 이러다 완전히 혼자가 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은 또 별개의 것이지만, 싫은 건 싫은 거니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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