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부산

여행담 2012. 11. 16. 20:29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두시간 반. 푹신하고 넓은 우등고속 좌석은 곤한 다리를 쉬기에 딱이었고 우린 터미널 카페에서 드디어 반갑게 상봉한 쓴 커피를 '원샷'한 뒤에도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심야가 아닌데도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는 버스 안 조명을 깜깜하게 꺼두었다가 부산 노포 톨게이트에 접어들고나서야 실내등을 켜 승객들을 깨웠다.

 

안동 여행을 계획하며 잠깐이라도 부산까지 찍고 오자 결심했던 이유는 처음 일본에 가려 했을 때 부산에 내려가 하루쯤 놀다가 배를 타고 일본에 다녀오면 더 재미있겠다는 사전 모의가 무산되면서 뭔가 대단히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친구 핑계대고 이왕 나선 김에 부산에 이어 통영, 해남, 순천만 생태공원까지(여름부터 친구랑 휴가 계획 짜며 모두 언급되었던 여행지들이다 ㅋ) 죄다 둘러오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2주라고 해도 S는 금요일 출국인데다 수요일엔 또 LA에서 같이 휴가나온 동료도 만나야했다. 은행장이 특별히 임무를 부여했다나 뭐라나 -_-;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올라갈 KTX도 이미 2시반에 예약해둔 터라 부산에서 보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숙소 예약하지 말고 우리도 <바다 보이는 찜질방>에서 한번 자보자고 별렀다. 하룻밤은 우아하게 별당아씨 노릇을 했으니 또 하룻밤쯤은 행랑아범처럼 쭈그려 자도 재밌겠다고. LA교포들의 정보력이란 암튼 놀랍기 그지없다. (심지어 친구의 언니는 한인 아침방송에서 봤다며 다이어트에 좋다는 '빼빼목'을 사오라고 부탁했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었을 뿐이고!) 찜질방도 퍽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잠을 잔다는 것이 가능할지 두려웠으나 까짓것 하루쯤 잠 못자면 어떠랴, 내가 LA 놀러갔을 때도 뜬금없이 코리아타운 사우나엘 데려갔을 정도로 친구는 대중목욕탕 애용자인 것을. 그리하여 만 하루가 못되는 부산일정 역시 먹는 것을 중심으로 계획했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광안대교 야경보며 시원소주에 회 먹기, 다음날 아침은 속풀이로 금수복국, 점심은 밀면! 부산 오뎅과 자갈치시장 씨앗 호떡은 간식 옵션이었다. ^^;

 

안동에선 시내버스비 1200원을 꼬박꼬박 현금으로 내야 했으나 부산에선 선후불 교통카드 사용에 불편이 없었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갔을 때 사고 남은 티머니 카드가 그래서 서울과 부산에서 아주 요긴했는데, 친구가 갖고가 버렸다. 좀 남았을 텐데 ㅋㅋㅋ 인상적인 기념품이 되었으려나. 째뜬 노포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곧장 향한 곳은 광안역.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5분이면 된다더니, 우리 걸음으론 역시나 15분쯤 걸린 듯하고 인도에 나다니는 사람들 별로 없는 아파트촌 옆을 지나면서는 친구가 미국시민 답게 좀 두려워했다. 한국은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중고딩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와 마주쳤을 땐 나도 좀 간이 오그라들었음. ㅋ 다행히 곧 나타난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은 평일임에도 휘황찬란 해변 카페, 술집마다 사람들이 드글드글, 바닷가엔 저녁 산책 및 운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해변에서 군데군데 영업중인 점 보는 파라솔! (광안대교 사진 오른쪽에도 살짝 걸쳐 나왔다 ㅋ) 대체 누가 저런 걸 보나 싶은데도, 파라솔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사주궁합 안좋다 그러면 헤어질 건가???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었음. 오른쪽 사진은 민락 회타운인가 하는 건물 꼭대기층 횟집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다. 일부러 광안대교 보이는 집으로 골라간 건데 다리쪽 방엔 자리가 다 찼다. ㅠ.ㅠ

 

그래도... 요즘 제철이라며 전어회도 따로 좀 챙겨주시고 맛과 서비스는 흡족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집어먹다가 매번 아차, 그러면서 찍은 사진들. (휴대폰에 먹고팠던 갖가지 한국 음식 사진을 넣어가는 것이 친구의 소망이라면 소망인지라;;)

 

부산에 왔으면 시원소주를 마셔줘야지 암, 그러면서 술꾼인척 소주를 시켰으나 결국엔 사이다와 소주를 3:1의 비율로 섞어 먹다 배부르다는 핑계로 반병 남기고 왔다. 소맥을 할 걸 그랬나보다. ;=p

 

 

밤이 깊어가고 있었으나, 찜질방에 체류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싶어 내가 짜낸 아이디어는 심야영화를 보는 것. CJ에서 배급하는 영화들은 LA에서도 볼 수 있다며 친구는 이왕이면 다른 걸 보고 싶어했으나 마침 볼만한 다른 한국영화가 없으니 선택은 결국 <광해>였는데, 나는 또 묘한 인연 같은 걸 느꼈다. 영화 장면장면마다 우리가 최근에 갔던 창덕궁 구석구석이 막 나오는 게 아닌가! 쓰러진 광해가 숨어있던 집 역시 안동 하회마을일 리 없는데도 낮에 본 한옥들과 겹쳐져 더욱 실감이 났다. 그토록 뜸들이다 부산에까지 와서 <광해>를 보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인가 싶기도 하고.

 

암튼 미루고 미루다 새벽 2시가 다 돼 택시타고 찾아간 달맞이 언덕 베*타 찜질방은 상상했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으나 꽤 훌륭했다. 그리고 평일이라 사람들 별로 없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드넓은 방마다 자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큰 방엔 거의 누을 자리가 없을 정도! 여성용 수면실이 따로 있긴 하던데 좁은데다 온도가 너무 높아 숨이 막힐 정도이고 코고는 소리도 요란하여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다들 덮고 자는 담요는 과연 어디에서 구하는 것일까 이리저리 구경다니며 탐색하던 우리도 드디어 담요와 목침을 하나씩 구해들고 제일 덜 더운 방에 몸을 눕혔다... 근데 거기도 너무 더워 ㅠ.ㅠ 나는 잠든 친구를 남겨두고 찬바람을 쏘이러 베란다 앞으로 갔다가 식당으로 갔다가... 결국 다시 친구 옆으로. 에구구 여행에서 잠자리는 역시 편해야 제맛임을 실감.

 

 

그렇긴 해도 또 눈을 뜨자마자 이런 광경을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곳에서 만나보는 묘미는 인정해야할 것 같다. 전날 밤 그저 깜깜한 유리창으로만 보였던 목욕탕 전면도 죄다 저렇게 바다로 향해 있어 탕에 들어앉아서도 바다감상이 가능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참 찜질방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 ㅎㅎ

 

아래는 노천탕이 있다는 옥상구경하러 올라가서 찍어온 해운대 앞바다 사진. 아침을 먹고 나서 친구에게 해운대 모래사장을 좀 걸어보겠냐고 했더니 바다구경은 충분하단다. 맞다, LA에서도 바다는 금방이었지... 

 

 

 

간단하게 때밀이(!) 목욕을 마치고 나서 행선지는 계획대로 금수복국 해운대점. 오래 전 부산에 갔을 때 택시타고 가자했더니 교묘하게 곧장 2층 입구에 내려주어 얼결에 수만원짜리 '정식'을 먹어야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조심해야지 했는데, 웬걸. 택시 아저씨가 쿨하게 큰길가에 내려주고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

 

그래서 시켜먹은 것이 은복 지리와 복주머니 만두. 

LA 한식당에 비해서 다들 음식이 왜 이리도 양이 적으냐고 투덜거리던 친구는 처음으로 1인분다운 뚝배기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서울에도 이미 분점이 있지만, 말간 국물의 복국은 어쩐지 부산에서 먹어야 제맛인 느낌. 해장할 필요도 없이 속은 멀쩡했지만 어김없이 시원했다.

 

 

마침 복국집 바로 앞에 원두커피집도 있겠다, 이날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순히 풀려주는 기분이었다. 이후 부산관광은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태종대, 자갈치시장 쪽을 돌아 기점인 부산역으로 시간 맞춰 돌아오는 것이었다. 해운대 코스를 타면 광안대교도 건너간다잖아! (버스비는 만원. 하루 종일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내리며 계속 관광이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에 간 동안 역시나 부산여행을 한 울 엄니가 가르쳐 주심. 후쿠오카 시티투어버스에 비해 훨씬 유용한데 우린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 

 

 

진짜로 광안대교를 건너가며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해운대 인근의 스카이라인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엔 정말로 뚜껑없는 이층 투어버스가 다닌다는 듯;;

 

 

 

 

 

 

 

 

 

부산역 앞에서 은행구경과 서비스 체험도 좀 하고(얼마나 친절하고 편리한지 친구가 미국은행과 비교를 원했다), 다시 태종대행 시티투어버스를 타긴 했으나, 2시반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자갈치시장은 아예 갈 수도 없을 듯했고 태종대도 제대로 볼 여유는 없었다.  잘 기억도 나진 않지만 예전엔 택시를 타고 등대앞까지 갔었던 것 같은데... 이젠 입구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거기선 다시 코끼리 열차 같은 걸 타고 올라가야 한단다. 게다가 시티'투어'버스다 보니 어찌나 해안으로만 돌고돌아 구석구석 다녀주시는지, 도심에서 태종대까지 시간도 꽤 많이 걸렸다. (나중에 택시타고 와보니깐 부산역까지 15분도 안 걸리더만!)  

 

 

말이 태종대지 솔숲길로 조금 걸어내려가 우묵하게 파인 만과 전망대 앞 바닷가를 본 것으로 이날의 관광 끝. 점심으로 별렀던 밀면을 먹을 시간조차없었다. ㅠ.ㅠ

 

 

결국 우린 회먹으러 부산 온 거였네, 라고 자조하며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할 정도였다. 헉헉대며 자리에 앉아, 또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서울역.

 

 

곧장 전철로 이동하여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의 동료들과 합류, 쌈지길과 청계천을 쏘다닌 뒤론 다시 홍대앞(주차장길 네일샵→액세서리 가게→조폭 떡볶이→커피집)을 휩쓸다 이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온 우리는 장렬히 쓰러지고야 말았다. ㅋㅋㅋ

전국이 일일생활권임을 몸소 실천한 좋은 예.

 

(2012. 10. 24)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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