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투덜일기 2015. 3. 25. 17:55

대화든 글이든 종교는 웬만해선 피해야할 주제임을 알지만 생각난 김에 일단 적어봐야겠다.

 

교인이 아니어도 어렸을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가본 경험들은 '누구나' 다 있으려나? 하여간에 서울 장안엔 요새도 그 옛날에도 교회는 동네마다 서너개씩 교파도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내 친구 중엔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지식과 정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어린 친구들이 기독교 신자가 되고나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으니, 그건 바로 '열혈 전도' 심리였던 것 같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친구가 지옥불에 떨어진다는데, 어리고 순진한 마음에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겠나. 그렇다고 무작정 교회로 끌고 갈 순 없는 일이고 (더욱이 우리집에 놀러 와 보면 대문과 안방에 부적도 붙어 있는데!), 적당한 기회를 보다가 불쌍한 친구를 자기네 교회로 데려가는 날을 만들곤 했다. 각종 과자와 사탕으로 온 동네 아이들을 다 유혹하는 크리스마스 시즌은 더할 나위 없는 전도 주간이었고, 그 밖에도 '부흥회'라나 해서 자기가 연극을 하니 보러 오라고, 맛있는 것도 준대, 라며 내 손을 이끌기도 했다.

 

거절 잘 못하는 병은 그때부터 익히 발현되어 있었으니, 불교신자인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도 (가정환경조사서 종교 항목에도 매년 버젓이 '불교'라고 적기도 했었다) 나는 '딱 한번만' 와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마다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나 크리스마스 발표회는 주로 저녁 시간이어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영악하게도 나는 '숙제'와 '일기' 핑계를 댔던 것 같다. 선생님이 다녀와서 일기 쓰랬어, 라고 하면 무사 통과되는 식.

 

목청 높여 고래고래 소리치는 목사님의 설교는 좀 무서웠지만 멋진 옷을 맞춰 입은 합창단의 노래는 좋았던 것 같고, 과자와 사탕을 봉지에 담아 일일이 나눠주는 것도 신났다. 하지만 친구 소개 순서에 일어나서 이름을 말하는 시간이 오면 심장이 막 쿵쾅거렸다. 과자 욕심에 자기소개 시키고 돌아가며 교인들이 막 친한척하는 것만 없으면 그런 초대에 자주 응할 텐데, 하는 마음도 있었던 듯...


암튼 문제는 그렇게 부흥회나 성탄절 특별 예배에 쫓아가고 나면, 이후에도 일요일 아침마다 친구가 찾아와 같이 교회에 가자고 졸라댄다는 사실! 아 놔;;; OTL  엄마가 딱히 교회를 못다니게 했던 것 같진 않은데 (학창시절 울 엄마도 불교신자 외할머니에 대한 괜한 반발심에 교회 다닌 적 있단다 ^^;) 친구따라 '주일학교'에 따라갈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아침잠이 많다는 것. 생각해보니 일요일 아침에도 어쩔 수 없이 몇번 교회엘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곧바로 못할 짓이다, 라고 느꼈던 듯하다. 너무 피곤해... 그리고 따로 남겨 성경공부 시키는 것도 싫고... 


한번은 니가 교회엘 안다녀서 천당에 못가고 지옥에 갈까봐 걱정되서 자기 전에 맨날 기도까지 한다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가 자기는 '모태신앙'이라고 하도 진지하게 말을 해서, 나는 그말이 엄청 심각하고 무서운 낙인처럼 느껴졌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모태신앙이면, 일요일에도 절대 늦잠 못자고 교회에 가야하고 뭐든 먹을 거 앞에서 손부터 나가는 나와 달리 중얼중얼 기도부터 올려야하는 구나... 나는 모태신앙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뭐 그런 생각?


심지어 대학생 시절에도,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끔 친구따라 교회 가기는 몇년에 한번씩 연중행사로 이어졌다. 은근히 나를 전도하고 말겠다는 친구들의 고집과 인내심 덕분이었을까? 거절을 제대로 못하기도 했지만, 당시엔 그저 재미 삼아서, 친구가 맘에 품은 '교회 오빠'의 얼굴을 확인하러 한번 가주마,혹은 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 새 신자 동원 잔치에 할당 머릿수를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친구를 돕는다는 의미도 있었다. ^^; 어느새 집사님이 되신 친구가 새로 지은 교회에서 특별 예배를 올리는 날엔 선물 준다고 꼬드기며, 와서 제발 자리 좀 채워줘... 그러기도 했고. 그러면 다른 교회엘 다니는 친구도, 성당엘 다니는 친구도, 무소속(?)인 나도 무료 장소 제공 받고 모임 하는 셈치자 하며 참석을 해줬던 거다.


하지만 교인 친구들도 내가 '전도'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30년지기 친구 하나가 새삼스레 자기네 교회에 한번 오라고 옆구리를 찔러대고 있다. 특별히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그러니깐 그냥 한번 가주는 걸로 끝이 아니란 얘기!), 순전히 내가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아서 마음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 내가 그간 너무 징징거렸던 탓일까? 카톡으로 몇번 그런 얘기를 하길래, 종교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그냥 두라고 킥킥 거렸는데  요번엔 아예 자기네 교회 안내 팜플렛까지 가지고 와서 (영어 예배를 보는 교회란다) 열혈 전도를 하시네. 돌연 스트레쑤~! 


하여간 그래서인지 어제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개천변 공원에서 미스코리아 띠처럼 어깨에 'OOO구 제7교구'라고 적힌 노란 띠를 두른 교인들이 '차 한잔 드시고 가세요~!' 외치며 행인들의 팔을 잡는 걸 보며 반사적으로 얼른 멀리 도망쳤다. 만인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기꺼운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나... 싫은 사람은 그냥 좀 내버려두었으면. 나 이만하면 그럭저럭 행복하단 말이오.. ㅠ.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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