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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5.07 5월 6일 14
  3. 2008.03.31 아아악~~ 11
  4. 2008.03.24 첫날의 사건 20
  5. 2008.02.29 변함없음 10
  6. 2008.02.27 이상한 일 10
  7. 2008.02.19 6시간의 외출 7
  8. 2007.11.29 일기 7
  9. 2007.08.19 어제 4
  10. 2007.03.17 봄날 7

잡다

투덜일기 2008. 8. 27. 23:41
며칠째 이가 아프다.
절반쯤 모습을 드러낸 채 썩고 있는데도 오래도록 방치한 사랑니가  드디어 세상과 내 입안에 작별을 고하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전엔 하루쯤 욱신거리다 잠잠해지곤 했는데 이번엔 멈출 기세가 아니어서 계획대로라면 드디어 내일 치과에 가서 어마어마한 공사를 시작해볼 작정이다. 웃을 때마다 위아래로 금니를 번쩍거릴 순 없다며 상아재질로 십수 개(!)의 충치를 떼워놓고 방치한지 13년이 된 나로서는 과연  견적이 얼마나  몹시 두렵다.

이가 아프니 먹고 씹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생각하고 대꾸하는 것도 여의치가 않은데 그래도 약속대로 덕수궁엘 나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청앞엔 범불교도 대회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어 버스에서 내려 서대문부터 걸어야 했다.
촛불집회 때 시청부터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가듯 걸어가며, 교통 통제된 버스 안에 갇혀 짜증을 부리며 욕설을 퍼붓던 시민들과 똑같은 심정은 아니었지만(짜증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게 옳다) 어쨌든 불편했고 늦어버린 약속시간 때문에 지인들에게 미안했다.

다행히 집회는 얼추 끝난 뒤였기 때문에, 전시 보는 내내 시끄러운 방송음이 들리면 어쩌나 염려했던 건 기우였고 단체로 장삼에 가사를 걸치고 챙 넓은 밀집모자를 쓴 스님들의 행렬을 정동길에서 마주쳤을 땐 신기해서 사진이라도 찍어두고 싶었지만 당연히 참았다.

그런데 정동길 끝에선 어떤 아줌마와 아저씨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목에 건 이름패로 보아 범불교도 대회에 참여했음이 분명한 젊은 아줌마(어쩌면 내 또래일지도 모르겠다)는
내가 곁을 지나는 순간, 젊은 아저씨에게 "내가 빨갱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야구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웅얼웅얼 뭐라고 대꾸했는데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고, 여자는 다시 "정부가 잘못하는 일을 지적만 해도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사회가 그럼 옳은 거냐?"고 되물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떼거리로 체포된 인사들의 이름이 신문에 나고, 여간첩이 잡혔다는 게 속보로 나오며 걸핏하면 <빨갱이>라는 말로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지금이 정말로 2008년인지 의아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이미 한달치 걷기를 했던 데다 전시장을 뺑뺑 도느라 다리가 아팠던 우리는 덕수궁을 나와서 이어지는 약속장소인 안국동까지 이왕이면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셋이서 기본요금이 나오기 십상인 거리에 택시를 타면 욕을 먹지 않을까 전전긍긍했고, 택시도 눈치보며 타야 하는 상황이 버럭 짜증이 났다.
물론 시청앞에서 택시는 쉬 잡히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배고픔에 괴로워하며 뚜벅뚜벅 안국동까지 걸어갔다.

청계천을 건너며 우리 앞을 거의 막아서다시피 팻말을 몸에 걸고 다가오는 1인시위자가 있었는데 팻말엔
<대운하 건설을 적극 찬성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예정지에 땅이라도 사놓으셨나보군요, 라고 피식 웃으며 그 사람을 지나쳤지만 또 치통이 도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
돌아오고 싶지 않을까봐 염려하며 한달짜리 유럽 여행 일정을 짜는 지인들에게 캐캐묵은 경험담을 조언이랍시고 전하며 고질병처럼 역마살이 춤추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요즘 같아선 어디론가 떠났다가 정말로 안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에 제풀에 주저앉는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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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

투덜일기 2008. 5. 7. 00:27
사흘만에 집밖을 나섰다가, 연휴 마지막에 추워진 날씨 때문에 방심하고 있던 사이 온 동네가 아카시아 꽃향기로 점령당한 걸 뒤늦게 깨달았다. 토요일은 여름 같더니만 다음날부터 내리 추워서 창문도 꼭꼭 걸어닫고 있는 바람에 아카시아 꽃이 피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가 완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카시아 꽃 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향기로운 꽃냄새를 실컷 맡으며 외출하긴 했지만 어쩐지 하루쯤 손해본 것 같아 속상하다.
며칠 지나면 또 말라 떨어진 꽃잎이 바스락거리며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 텐데...

외출 장소는 간만에 홍대앞.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와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바람에 일부러 골목골목 구경을 다녔다. 운이 좋아 일찍 나온 바나나빵 장수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랐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이미 날씨가 더워져서 바나나빵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주차장길엔 노점상이 하나도 없어서 아쉬웠다. 다만 새로이 생겨나고 바뀐 가게들이 어찌나 많은지 관광객처럼 두리번두리번 기웃기웃 실컷 구경하며 실실 웃어댔다.
이젠 너무 방대하고 요란해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홍대앞 골목골목엔 뭔지 모를 묘한 매력이 아직 살아넘친다. 나중에 가보고 싶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마음껏 찜해두었더니 전혀 돈 될 거리가 아닌 짓임에도 통장에 저축해둔 것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ㅋㅋ

이요님과 해리님 블로그에서 알게된 리&키키봉에도 가봤다. 너무 잔뜩 기대를 했던 탓인지 막상 들어가선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앉고 싶은 자리를 찾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 ^^;; 내가 선호하는 구석자리는 너무 구석이라 창고 같고, 아늑해 보이는 다락 같은 방석 좌석은 신발벗기 귀찮고...
동행에 따라서 어떤 날은 퍼질러 방바닥에 앉는 자리를 선호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신발 벗는 게 귀찮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신발 벗는 게 번거로운 날이었고, 내가 앉은 쪽에서 빤히 들여다보이는 천장 낮은 방석자리에 앉은 남녀가 계속 별로 아름답지 않은 영화를 찍어대는 바람에 불편하고 민망했다. -_-;;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커피랑 카모마일 차는 맛있었고, 화장실 벽장식 타일이 예뻐서 그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동행과 입을 모았다. 다른 의자도 다 그런지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의자가 푹신하질 않아서 꼬리뼈가 조금 아팠던 것도 마음 쓰였는데,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가지런히 접혀 있던 무지개 담요를 깔고 앉아야지.

외출해서 말을 많이 하고 듣다가 돌아오면 공연히 허허로운 날이 있고 속 시원하고 뿌듯한 날이 있는데 오늘은 후자쪽이다. 침묵이든 대화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만남은 확실히 영혼의 자양분인 듯.
문화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간만에 머릿속이 채워진 것 같아서 이렇게 일기로 남겨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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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투덜일기 2008. 3. 31. 22:13
월말월초마다 마감에 시달리는 게 너무 싫어서 일부러 날짜를 중순으로 옮겨 계약하기도
하지만 마냥 게으름을 부리다 '연장'을 받게 되면 결국 사정은 똑같아진다.
오늘 하루종일 출판사에서 전화올까봐 전전긍긍 떨었는데
아직도 원고에서 손을 못 털었다.
하물며 대충 푸념을 끼적인 블로그 글도 읽으면 읽을수록 고치고 싶은 부분이 나오거늘
번역원고야 오죽하랴.
번역기계가 되어 무뇌아처럼 타이핑하고 지나간 부분은 어김없이 목구멍 가시처럼 턱턱 걸려
몇번을 고쳐도 예쁘게 아무려지질 않는다.
아아아악~~~

심지어 오늘은 무려 4년 전에 번역한 뒤 까맣게 잊고 있던 단편소설의 짤막한 <해설> 원고까지 <두 개>나 넘겨야 한다. *_*
시시껄렁한 옮긴이의 말을 쓸 때도,
숙제로 낼 겨우 한 페이지짜리 페이퍼를 쓸 때도 늘 백지를 앞에 두고 전전긍긍 날밤을 세웠던 내가 아닌가.
간만에 약간은 품격 있는 학술적인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니 가뜩이나 무뇌아가 되어버린 듯한
머리속에선 휘휘 공허한 바람만 부는 것 같다.

이럴 땐 골빠지는 일이 분명한  내 직업에 대한 회의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가장 좋아하는 일임에도 싫어지면 곤란하니까 그건 취미로 두고 두세 번째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말이 맞는 걸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엎질러진 물인데도, 회의적인 투덜이는 쓸데없는 고민을 또 끌어낸다.
아아아악~~~~

이렇게 시답잖은 낙서라도 하고나면 좀 위안이 되려나 했는데
이럴 시간에 일이나 하라고 스스로 뒤통수를 치고 싶어졌다.
젠장.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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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의 사건

투덜일기 2008. 3. 24. 21:50
온종일 비가 내렸던 어제와 달리 햇빛이 쨍하고 얼굴을 드러낸 월요일.
바람이 좀 불기는 했지만 자전거 타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날씨 같았다.

내가 자전거를 장만한 목적은 여러가지였다.
첫째, 여실한 본인의 운동부족 타파.
둘째, 매일 햇빛 쪼이기가 필수적임에도 혼자선 좀처럼 대낮 산책을 꺼리는 왕비마마를 이끌고 운동 나가기.
셋째, 길이 좀 험난하기는 하지만 편도 4km에 불과한 작업실까지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하여 휘발유 절약 및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동참. -_-;;
넷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토룡마을 자전거모임 참석 ^^
.
.

그리하여...
몇년만에 한번씩 오랜만에 꽤 오래 자전거를 타도 큰 무리는 없었던 <젊은 시절>의 나(생각해보니 모두 2, 30대였더군)를 과신했던 나는 겨우 첫날인 주제에 위 목적 가운데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내 공간으로 얼마나 더 남게 될지 알 수 없는 작업실에 하루라도 더 나가 일하자는 생각에
가방을 챙겨들고 (배낭이 아니라 크로스백을 무겁게 둘러맨 것부터 실수였음)
엄마를 독촉해 일단 집앞 산책로로 내려가 느루를 달려보니 거침없이 페달이 밟혀 작업실 아니라
한강까지라도 단숨에 갈 수 있을 <듯> 했다. -_-;;



위험하게 작업실까지 가는 건 무리라며 큰 걱정을 해대는 엄마에게 도착하자마자 전화할 터이니 걱정 마시라고 큰소리를 뻥뻥 친 나는 드디어 산책로를 벗어나 도로로 올라와 인도에서 살살 느루를 몰았다.
그러나... 좁은 인도에 오가는 수많은 초등학생과 행인들 때문에 계속 자전거를 타는 것은 무리였고
상당부분 그냥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인적이 드문 일방통행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아뿔싸... 처음엔 신나게 기어를 변속하며
오를 수 있었던 야트막한 언덕이 끝쪽엔 급경사라 하는 수 없이 다시 느루에서 내려 끌고 올라가야하는
형편이었고, 차로 다닐 땐 그저 완만하게만 느꼈건만 꽤나 가파른 언덕의 울퉁불퉁 좁은 인도에서
느루를 끌고 내려오자니 목표까지 절반도 못 간 지점에서 이미 내 욕심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곧장 다시 집으로 방향을 돌린 것은 좋았는데...
사람 많은 데선 느루를 끌다가 다시 인적이 드문 곳에선 느루를 타고 달리다
가파른 집앞 언덕에선 당연히 느루를 끌고 끙끙 헉헉거리며 올라오려니... 우리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 모퉁이를 돌 무렵엔 숨이 너무 차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을 듯했다.
집을 10미터쯤 앞둔 골목에서 그만 느루를 세워놓고 땅바닥에 주저 앉은 것. ㅠ.ㅠ
다행히도 언덕 아래엔 빨간 옷을 입은 왕비마마가 올라오고 계셨기에 손까지 흔들어 주었는데...
엄마가 반색을 하며 작업실까지 안 가고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이
나는 차츰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귀가 윙윙 울리더니 앞이 캄캄해졌다.
운동 안하던 인간이 갑작스레 심한 운동을 해 심장에 무리를 주면 죽을 수도 있다더니
내가 그꼴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덜컥 들만큼 사태는 심각했다. -_-;;

다행히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고
세발자국 걷고 다시 주저앉아 머리를 다리 사이로 숙이고 호흡을 가다듬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동네 사람들이 어서 119를 불러서 병원에 데려가라고 성화를 해대는 와중에
가까스로 괜찮다며 집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

집안에 들어와 누워서도 거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듯 숨이 가쁘고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는데
옆에서 완전 식겁한 엄마는 우황청심원을 마시고도 계속해서 무서워 엉엉 우시고
나 역시 스스로가 부끄럽고 겁도 나고 하여간 정말로 죽. 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누운 채로 엄마를 달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차려 혈압을 재달라고 하니
80에 42, 맥박도 50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
엄마는 당장 병원에 가야한다며 또 울음을 터뜨리고...
.
.

저녁까지 계속 누워서 쉬었으므로 당연히 혈압과 맥박은 서서히 회복되었고
지금은 거의 멀쩡하다. ^^*

엄마는 자전거를 사준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괜히 호통을 치시고 지금도 아까 생각만 하면
심장이 벌렁거린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아.. 민망해 죽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딱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제 체력과 실력도 모르는 주제에 기분만 믿고 무턱대고 난리를 피우다니...
첫날부터 이런 창피한 사건을 벌였으니 앞으로는 정말로 아주 살살 <느루> 타야한다는 무서운 교훈을 얻었다.
ㅠ.ㅠ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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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음

삶꾸러미 2008. 2. 29. 22:03

사람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스무살 시절엔 도저히 알 수 없던, 사람들의 변함없음을 서른살이 되고 마흔살을 넘어서면서
새삼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아득하기도 하고 눈깜짝할 새에 지난 세월 같기도 한 시절에 처음 만나
10년, 20년을 함께, 또는 따로 보낸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이면 친근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느낀다.
어깨를 휘젓는 걸음걸이,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 까르르 귀를 찌르는 독특한 웃음소리, 언제나 썰렁하기만 한 유머, 수줍은 듯 빙그레 웃기만 하며 술잔을 드는 손길, 시비를 거는 것 같은 거침없는 말투, 못마땅한 사회에 대한 투덜거림과 불평,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건 절대 용서 안되는 고집 같은 것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운동화 대신 정장과 구두가 더 어울리는 외모의 까닭모를 반듯함, 그들이 내미는 명함에 새겨진 어마어마한 직함, 눈가에 살짝 내려앉은 주름살, 솟아오른 배나 숱이 엷어진 정수리와 넓어진 이마, 서로 다투듯 술값을 계산하겠다고 내미는 법인카드, 휴대폰에 저장해놓고 보여주는 아이들 사진, 가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흘러나오는 재테크와 골프 이야기 등이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정말로 20년전으로 돌아가 탁자를 두들기며 웃다가도
금세 또 유체이탈을 해서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혼령처럼 전혀 낯선 이들의 대화를 천장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을 수시로 오간다.

어딜 가나 제일 변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이젠 뒤떨어졌다는 소리로 들리니
내게도 확실히 변한 건 있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떵떵거리던 자신감과 낙천적인 사고는 이제 씁쓸한 자괴감에 쉽사리 자리를 내주고 만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약간 허황된 꿈과 로맨스를 기다리고
휘황찬란하고 복잡한 무대 한 가운데서 조명을 받는 것보다 어둑한 구석에서 소박하게 즐기는 게 더 좋고
재테크로 골치아프게 벌어들인 재산보다 인복 많은 게 더 기쁘고
편한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가 기대되고 지금껏 맺어온 인간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들여다 보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월과 함께 확실히 성숙한 사람들 틈에서
본래의 미숙함과 치기를 마냥 갖고 살면서, 나 하나쯤 그런 사람도 있어야지, 하고 위로하는
내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일까.

변함없고 한결같다는 게 자랑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미련스런 집착처럼 느껴지는 날, 그게 바로 오늘이다.
그러고 보니 날씨따라 펄럭거리는 감상주의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이러니 내일은 또 펄럭펄럭 행복할 수도 있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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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

삶꾸러미 2008. 2. 27. 17:35
아주 가끔 신경줄이 너무 팽팽해지면 있는 일이긴 하지만 연일 불면에 시달린다.
머릿속이 멍해져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도무지 진전이 되질 않는 아침이면
그냥 스르르 누워 5분만에 잠들어야 정상인데
그렇게 누워 몇시간씩 끙끙대다 보면 그냥 오후가 되어 버리는 거다.
36시간도 내쳐 잘 수 있다고 장담하는 자타공인 잠순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원고 마감일도 연장 받았는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잠과 식탐은 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불면 때문에 편두통이 생긴것도 모자라 식욕이 없다.
끼니 때를 지나 배가 고프면 화가 나고 공격적으로 변하며 손이 벌벌 떨리는 증상을 갖고 있는 내가
식욕이 없다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다.
오늘 아직 한끼도 먹지 않았는데 배도 안 고프다. 이건 더 이상하다. -_-;;

그리고 가장 이상한 일은 우리집 목욕탕에서 '지렁이'가 발견된 것.
루인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어젯밤 기겁한 일이 떠올랐다. ^^
오래된 옛날 집에 살면 여름 한철 온갖 벌레들과 만나게 되긴 하지만
난데없이 겨울 목욕탕 바닥에 지렁이 출현이라니 어찌나 놀랐던지.

하수구를 타고 올라온 모양이던데 느릿느릿 미끄러운 타일 바닥에서 방황하는 지렁이를 보고는
처음엔 내 눈과 시력을 의심했고
그 다음엔 기겁하며 비명을 지를 뻔했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다 열심히 물을 부어 다시 온 길로 돌려보냈다. -_-''

오래된 집이라도 다행히 바퀴벌레와 개미는 출몰하지 않는 반면
여름이면 노린재, 매미, 벌, 이름모를 풀벌레 따위가 날아드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들을 종이 양탄자에 태워 다시 밖으로 살려보내곤 한다.
그런 기억 때문에 어젯밤엔 지렁이도 어떻게든 집어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퍼뜩
들었는데 그랬다간 얼어죽고 말 것 같았다.

오래된 하수구엔 분명 깨진 틈이 있었을 것이고 그 틈으로 기어오른 것이 하필 우리집 목욕탕이란
얘긴데... 온갖 더러운 물과 비눗물이 내려가는 우리 집 하수구 밑에서 지렁이가 살아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최근에 지렁이를 본 건 작년 여름 하남시에 있는 외삼촌 댁 텃밭에서 감자를 캘 때였는데!

그러고 보니 십수년 전엔 비가 온 뒤 집앞 언덕을 내려가는 일이 참 고역이었다.
여기저기 지렁이들이 길고 뻘건 몸을 뒤틀며 느릿느릿 지나가거나
자동차에 치여 처참한 시체로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비가 온 뒤에도 지렁이를 본 적이 거의 없어 공해 때문에 우리 동네 지렁이들도 죄다
어디로 이사를 갔거나 몰살당했나 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근처 땅속에 살아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상하기 보다는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목욕탕에 출현한 지렁이. 암튼 별 일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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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의 외출

삶꾸러미 2008. 2. 19. 21:36
드물게도 오전 11시에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수서에 있다는 서울삼성병원.
운전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고민하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오래 머물게 될 것 같아 주차비도 아끼고
온실가스 줄이기에 협조하자는 기특한 생각으로 가닥을 잡았다.
따뜻한 봄볕 같은 햇살 아래 공연히 기분이 좋아져 그간 부족했던 운동 삼아 좀 걷는 것도 좋겠지 싶었다.
반가운 만남과 짧은 병문안, 긴 수다로 한껏 고무된 터라 피로 따윈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총 6시간의 외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서
내 머릿속은 온통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다, 눕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ㅠ.ㅠ

크기는 해도 별 무거울 것 없는 가방은 점점 어깨를 짓누르고
바윗덩어리 같은 다리와 발을 들어올려 집앞 언덕을 올라오는데 마치 네팔 어디 쯤에 있다는
높은 산을 등반하는 것처럼 숨이 턱에 부쳤다.

오자마자 쓰러져 허리와 다리를 쉬었는데도
등짝엔 담이 철썩 들러붙어 욱씬욱씬 결리고
허벅지와 장단지가 모두 찌릿찌릿 당긴다.

중간에 다른 볼일을 두어 개 더 보기는 했지만 줄곧 걷기만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듯한데
스스로 민망하고 황당하다.
원래부터 걷기를 싫어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행을 다닐땐 아침부터 밤까지 걸어다닐 때도 있었는데
체력이 어째 이 모양이란 말인가.

불현듯 충동적으로 여권을 챙겨 떠나는 여행을 늘 꿈꾸면서
이대론 막상 떠날 여건이 돼도 몸이 따라주질 않겠다는 생각에 퍼뜩 슬퍼졌다.
거창한 운동은 관두고라도 날 풀리면 매일 좀 걷기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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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삶꾸러미 2007. 11. 29. 21:48

친구가 낡은 노트 한권을 오랜 짐속에서 발견했는데
그 안에 적어둔 글귀와 생각들이 15년 지난 지금 쓰고 있는 논문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자신의 집착을 푸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집착이 아닌 것 같다.
그냥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사람의 성향을 반영했을 뿐이겠지.
정말로 사람은 웬만해선 달라지지 않는다.
20년 전에 끼적거린 나의 일기를 들춰보면
요즘 내가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펼친 수다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때도 나는 매사에 투덜거렸고 엄마의 병세를 걱정했고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했고,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욕했고 계절이 바뀌는 걸 엄청난 시련인 양 너스레를 떨었고 가끔 외로워했다.
아마 20년 뒤의 나 또한 같은 생각과 고민으로 노년을 보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어차피 같은 생각인것을 굳이 또 뭘 이렇게 끼적대나 싶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매 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시답잖은 수다로라도 풀어내야 마음이 편해지니
천상 나는 수다쟁이일수밖에 없다.

오늘은...
날씨가 어땠는지 밖을 내다보지 않아 모르겠고
온종일 잠에 취해 다저녁때가 돼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터라 아직도 노곤한데
오른쪽 어깨가 뻐근하고 아프다.
어제 조카들과 양말 전쟁을 너무 오래 하고 놀았던 탓이다.
피로 때문인지, 비타민 부족인지 일주일 가까이 찢어져 있는 오른쪽 입가는 아직 낫지 않았다.
종일 잤는데도 또 자고 싶은 걸 보니 긴장도 풀렸고 잠 빚쟁이가 찾아왔나보다.
그래도 난 졸릴 때 행복한, 천하의 잠순이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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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투덜일기 2007. 8. 19. 12:19

지나고 보면 세월은 참 잘도 간다는 걸 느낀다.
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49일째 되는 날.
아침부터 절에 올라가 49재를 치렀다.
(참.. 절에선 제사를 지낸다고도 하지만  "'재'를 올린다"고도 표현하므로 어제 우리가 올린 의식은 49재가 맞다. 하지만 49'제'라는 말도 많이 쓰이는 듯...)
불교식으론 고인의 영혼이 49일 동안 아직 멀리 떠나지 않고 이승을 떠돌며 가족들 곁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49재는 정말로 고인을 멀리 떠나보내는 의식.
내가 보기엔 모든 장례 의식이 남은 사람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데 더욱 방점이 찍히지만
그런 절차가 전통과 관습으로 남은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다시 친지들이 모여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이 아버지의 옷을 준비했다가 살라드리고
상장과 머리 리본, 상복의 동정을 뜯어 같이 태우고
뜻 좋은 글귀를 함께 읽고 기도하는 의식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사실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어느 종교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 아버지는 "좋은 데" 가셨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좋은 데 안 가셨다면 정말로 천국이나 극락 따윈 없는 걸 테니까.
심지어 독실한 천주교인인 친구 하나는 우리 아버지가 이미 천국에 야훼와 함께 계시다는
신성한 메시지까지 받았단다. ^^

...


아버지의 일기장을 어제 돌려받았다.
1964년부터 두해 동안 군대 시절에 기록한 아버지의 일기장이 할아버지 유품 사이에 끼어 지금껏 보관 된 것은 어쩌면 놀라운 운명 같기도 하다.
12년 전에 아버지가 손수 생겨오셨다면 쑥스러운 마음에 없애셨을지도 모르는데
그 일기장이 우리 손에까지 무사히 전달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할아버지 고서와 유품을 모두 간직했던 막내고모 덕분인 듯하다.  아.. 그 전에 장남의 일기장을 오래도록 소중히 갖고 계셨던 우리 할아버지 덕분도 크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막내고모는 할아버지 유품 사이에서 우리 아버지의 흔적이 담긴 기록이 있었던 걸 생각해냈고, 그게 우리 아버지 일기장이란 걸 확인하고는 며칠 동안이나 울었다고 했다.
일기장엔 장남으로서 가난한 식솔들을 챙겨야하는 책임감과 애정이 담겨 있고
스무살때부터 연애중이었던 우리 엄마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 또한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사실 막내고모는 25살의 청년이 기록한 애틋한 연정의 주인공이 혹시나 우리 엄마가 아니면
울 엄마가 상처받을까봐 끝까지 다 읽고 상황을 파악하기 전엔 함부로 일기장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밝히기가 조심스러웠단다.
(설령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대도 우리에겐 소중한 보물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고모는 제일 먼저 '이'씨인 울 엄마의 영문 이니셜이 뭐냐고 넌지시 물었더랬다.
나는 어린 시절 이미 부모님의 연애편지를 훔쳐본 경력이 있던 터라
Rhee로 썼던 울 엄마의 이니셜을 확인해주었고, 고모는 그제야 안심을 했다.
우리 부모님이 8년간 연애 끝에 결혼한 순애보 커플이란 걸 다들 알면서도, 젊은 시절 꽤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아버지가 혹 바람이나 폈을까봐 염려했던 거다.

고모는 누구보다 우리 식구들이 제일 먼저 아버지 일기장을 읽고 싶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난 10여년 간 큰형님을 부모처럼 여겼던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들도 읽고 싶어하셨으므로
어르신들부터 돌려읽고 어제야 비로소 우리 손에 일기장이 들어오게 된 것.
일기장을 읽어본 친척 어르신들은 "역시 장남은 다르더라.."고 하셨다.
장남인 큰동생도 남다른 장남의 책임을 실감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아껴읽고 싶은 마음에 동생들과 함께 앞부분만 몇 군데 읽어보다 말았다.

이북에서 월남해 부산에서 피난시절을 보낸 우리 집안에 특별히 오래묵은 골동품 가보 따위는 없지만, 우리가 늘 자랑하는 가보 1호는 부모님이 8년간 연애하는 동안 주고받으신 편지뭉치였는데, 이젠 아버지의 일기장으로 가보 2호가 생겼다.

여러 권의 앨범 한 가득 젊은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의 추억이 순간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젊다 못해 어리게 느껴지는 스물다섯 살 아버지의 또 다른 추억을 갖게 되어 몹시 기쁘다.
이니셜 R, 또는 子라는 호칭으로 아버지의 일기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인 우리 엄마 역시 아직도 차마 일기장을 읽지 못하겠다 하신다.
내용도 감동이지만 만년필 글씨체는 또 얼마나 유려한지... 글씨를 잘 써서 행정병이 되었다던 아버지의 말씀을 못믿었던 건 아니지만 새삼 놀랍다. 해서, 엄마랑 나랑은 두고두고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듯 읽어볼 생각이다.

돌아가신 분에 대해선 당연히 좋은 기억만 남는다지만, 얼핏 들여다본 청년 아버지의 모습 역시 참 멋진 분이었음은 확실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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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삶꾸러미 2007. 3. 17. 00:30
아침부터 봄볕이 좋았다.

제법 훌륭한 주택가를 지나 들어가야 하는 대학과 대학병원의 북문에서
화려뻔쩍한 새병원이 서 있는 곳까지 들어가는 길은
잦은 요철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만 참으면 구불구불 오솔길과 주변의 나무와 숲이 철철이 참 아름답다. 
멀고먼 기숙사에서 교정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구경하는 것도 때로는 흥겨운데, 오늘은 눈부신 봄볕 아래 개나리에 노란 꽃눈이 매달려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강사인지 어학당 학생인지 모를 어떤 외국인은 아예 맨다리에 반바지까지 입었더군.

종합병원의 외래 진료시간은 늘 그렇듯
30분 이상 마냥 기다려 주치의와 고작 1분쯤 면담으로 끝이라 허망하지만
1주일만에 다시 찾은 병원 로비를 걸으며, 불과 지난주만 해도 환자복을 입고
어정어정 비칠비칠 걷던 왕비마마가 하늘하늘 시폰 스카프를 두르고 빨간 립스틱까지 바른 모습으로 내 팔짱을 끼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집에 들어가 꾸역꾸역 점심상 차리기 싫어서 굳이 점심을 사 내라고 고집을 부려
엄마한테 얻어먹은 회덮밥도 맛있었고. ^^

오후들어선 봄볕보다 바람이 더 힘을 자랑했지만
내친김에 강행군을 시켜야한다는 팥쥐엄마다운 마음으로
엄살부리는 콩쥐 왕비마마를 끌다시피 데려간 동네 산책로에도 어김없이 개나리는 꽃눈을 내밀었고 썬캡을 쓴 아줌마들이 씩씩하게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러고는 또 실로 간만의 외출.
전철을 타고 강을 건너 책방에서 친구와 만나
조카에게 줄 책 한권을 사고, 빼곡하게 쌓인 수많은 신간들을 건성건성 훑어보고 친구 딸들에게 선물할 예쁜 스티커와 지우개를 고르고 저녁을 먹고 긴긴 수다와 함께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까지.

운동부족의 극치를 달리는 온몸에선 여기저기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며 뻐근함을 토로하지만
몹시 푸근하고 뿌듯한 봄날이었다.

그래서 유치한 일기 슬쩍 펼쳐 놓듯 자랑 한 번 해봤음.
아.. 나는 정말 봄이 제일 좋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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