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삶꾸러미 2007. 3. 17. 00:30
아침부터 봄볕이 좋았다.

제법 훌륭한 주택가를 지나 들어가야 하는 대학과 대학병원의 북문에서
화려뻔쩍한 새병원이 서 있는 곳까지 들어가는 길은
잦은 요철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만 참으면 구불구불 오솔길과 주변의 나무와 숲이 철철이 참 아름답다. 
멀고먼 기숙사에서 교정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구경하는 것도 때로는 흥겨운데, 오늘은 눈부신 봄볕 아래 개나리에 노란 꽃눈이 매달려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강사인지 어학당 학생인지 모를 어떤 외국인은 아예 맨다리에 반바지까지 입었더군.

종합병원의 외래 진료시간은 늘 그렇듯
30분 이상 마냥 기다려 주치의와 고작 1분쯤 면담으로 끝이라 허망하지만
1주일만에 다시 찾은 병원 로비를 걸으며, 불과 지난주만 해도 환자복을 입고
어정어정 비칠비칠 걷던 왕비마마가 하늘하늘 시폰 스카프를 두르고 빨간 립스틱까지 바른 모습으로 내 팔짱을 끼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집에 들어가 꾸역꾸역 점심상 차리기 싫어서 굳이 점심을 사 내라고 고집을 부려
엄마한테 얻어먹은 회덮밥도 맛있었고. ^^

오후들어선 봄볕보다 바람이 더 힘을 자랑했지만
내친김에 강행군을 시켜야한다는 팥쥐엄마다운 마음으로
엄살부리는 콩쥐 왕비마마를 끌다시피 데려간 동네 산책로에도 어김없이 개나리는 꽃눈을 내밀었고 썬캡을 쓴 아줌마들이 씩씩하게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러고는 또 실로 간만의 외출.
전철을 타고 강을 건너 책방에서 친구와 만나
조카에게 줄 책 한권을 사고, 빼곡하게 쌓인 수많은 신간들을 건성건성 훑어보고 친구 딸들에게 선물할 예쁜 스티커와 지우개를 고르고 저녁을 먹고 긴긴 수다와 함께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까지.

운동부족의 극치를 달리는 온몸에선 여기저기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며 뻐근함을 토로하지만
몹시 푸근하고 뿌듯한 봄날이었다.

그래서 유치한 일기 슬쩍 펼쳐 놓듯 자랑 한 번 해봤음.
아.. 나는 정말 봄이 제일 좋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