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11.10.04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 11
  2. 2011.01.07 그놈의 공부 20
  3. 2011.01.06 자리 9
  4. 2010.07.29 기억 7
  5. 2010.07.27 장래희망 6
  6. 2010.07.06 비겁 3
  7. 2010.06.24 옷 갈아입기 2
  8. 2010.06.09 어울림 5
  9. 2010.06.04 왜 키울까 18
  10. 2010.05.28 세금 6

처음 두해 정도만 열심히 구경다녔지 몇년째 방구석에서 벼르기만 하다가 놓쳤으나, 이번엔 28일부터 거리 도서전을 하는 걸로 착각하고서 비오는 날씨를 미리 걱정하는 심리적 부지런을 좀 떨었더니 (원래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둘쨋날에 성공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거리도서전 책구경도 구경이지만 제니스 브레드 샌드위치와 초콜릿 스콘이 근래 부쩍 간절히 땡겼기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

어쨌든 일요일 늦은 점심을 아주 뿌듯하게 먹어치우고 나서 거리 도서전을 하는 주차장길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조짐이 예사롭질 않았다. 죠스 떡볶이랑 무슨 핫도그집, 그 옆 분식집들 앞에 각기 줄이 10미터도 넘게 서 있고 그 인파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동반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더니 드디어 전시부스의 하얀 뾰족천막이 눈에 들어왔는데... 헐... 양쪽 골목이 모두 빽빽한 인간의 물결이었다. 문학동네가 맨 처음 부스였던 것 같은데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책 진열대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 +_+ 된장, 된장... 첫날인 토요일에 올 걸 그랬다고 속으로 자책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특히 원고에 매진하지 않고 놀러나왔다고 타박할 수 있는 '갑' 입장의 거래처 담당자들 -_-;) 처음엔 슬쩍슬쩍 피해다녔는데 좀 지나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 많은 인파 중에서 과연 누가 날 알아보겠어! 게다가 아동서를 함께 내는 대다수 출판부스엔 아예 진입이 불가능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책 좀 찾아보고 싶었는데 두어번 배회하고도 끝내 인파를 못 뚫고 들어간 부스가 몇개나 됐다. 현암사, 문학동네, 시공사... 또 어디더라.

원래 따끈따끈한 신간을 30% 할인받아야 뿌듯한 건데 하도 도떼기 시장이라 신구간을 따져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으면 훑어보는 거고 아님 그냥 기웃거리다 마는 거고... 따끈한 신간 코너엔 특히 사람이 많아! 루나파크의 런던 에세이도 책 있으면 일단 구경이나 해보려 했는데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쳇

게다가 일요일이라 가족단위의 내방객이 많을 것을 예상했는지 부스마다 유독 아동서가 많아보였다. 어우... 정신없어. 아무리 일년에 한번이라지만 휴일에 불려나와 엄청난 인파에 시달리면서도 친절히 인사를 건네고 있는 출판사 직원들도 측은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나와 얼른 책을 고르라고 강요 당하고 있는 몇몇 아이들도 안쓰럽고, 꽤 오래도록 부스 안에 진입 못해서 빙글빙글 주변만 맴도는 나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ㅋㅋ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갈 순 없는 일! 그나마 사람들이 덜한 끄트머리 팝업북 코너에서 이책저책 열어보다가 (수입책이라 그런지 내가 온라인서점에서 사는 값이랑 할인가가 별 차이 없어 굳이 살 이유가 없었다) 점찍어둔 몇몇 출판사 부스에 재진입을 시도했다. 두세번 가보고도 인간의 벽을 뚫지 못한 데도 있으나, 결국엔 마음산책, 문학과지성사 구간 부스에서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오래된 문지 시선은 단돈 2천원에, 소설은 3천원에 살 수 있는데 황순원의 저 <별>은 무려 '천원'이라고 했다. 집에 황순원 소설선이 있는 걸 알기에 같은 책 아닌가 하면서도 3천원인데 뭘, 이러면서 골랐더니만 '천원'이래고 집에 있는 책은 <카인의 후예>더라. 그야말로 오늘의 득템!

아쉬운 건 30% 할인중이던 기형도 전집도 살 생각이었는데 2천원짜리 구간시집 남은 게 얼마 없어서 고르다보니 그새 까먹는 바람에 빠뜨렸다는 것. ㅠ.ㅠ. 

표정훈과 페터 회는 오래 전부터 읽을까말까 하는 책이었기에, 그리고 문지 부스에서 이리저리 밀리며 시집을 고르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원래 목표인 5권을 채워야한다는 일념으로 대충 고흐 책까지 집어 계산해달라고 했다. 다섯권 목표였는데 일곱권을 샀으니 대단히 훌륭하게 지름신을 막았다고 할 수 있다.

마침 막내동생네가 놀러온다는 바람에 애들 책을 사느라 체력과 쇼핑욕이 급격히 떨어진 덕분이기도 하다. 어딘지 출판사 이름도 까먹었고 책도 벌써 조카들이 가져가버려서 여기 자랑할 수도 없는데, 애들 책 사니깐 예쁜 연필세트도 선물로 주더라! 다만... 자녀가 몇분이냐고 물어서 잠시 머쓱. 넷이라고 하려다가, 민망하여 둘이라고 대답했는데 연필 선물로 주려고 그러는 줄 알았으면 그냥 넷이라고 할 걸 그랬다. ㅋㅋ 조카들 책까지 치면 목표량의 두배인 셈이지만 할인받은 가격을 생각하면 입이 저절로 귀에...

똑같은 지름신을 영접하더라도 책을 사는 건 소비욕에 대한 자책감이 훨씬 덜하므로, 아마 동생네가 저녁먹으러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일단 커피숍으로 후퇴해서 카페인으로 심신을 가다듬은 다음 한번 더 공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한편 아쉽다. 그러나 올해는 일단 방구들을 박차고 나갔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최승자 시집 말고는 그냥 순전히 제목으로 고른 시집이긴 해도, 가을에 시집을 사본지가 과연 얼마만인가 싶은 것이 아주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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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첫째 조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주의 부모들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노심초사했다. 유치원엔 무려 세살부터 다녔지만 선행학습 따윈 부질없는 짓이라 여겨 한글도 입학 직전에 3개월 속성으로 겨우 깨친 조카와 달리, 다른 아이들은 책을 줄줄 읽는 정도를 넘어 독후감까지 거침없이 쓴다는 '소문'에 바짝 얼었던 거다. 염려했던 대로 12월 생이라 또래보다 좀 늦된 조카의 초반부 학교생활은 퍽 힘겨웠고 아이는 가엾게도 무책임한 공교육과 매정한 담임에게 마음의 상처를 꽤 입었다. 별달리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도 단지 개성이 강하고 고집스러운 아이를 교사들이 무조건 '사회적응 장애'로 몰아세운다는 사실을 우리도 비로소 깨달았다. 몰개성하고 유순한 규격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교육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는 걸 교육자들은 정말로 모르는지 화가 치밀었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후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들의 경우엔 어느 정도 미리 '준비'를 하는 것으로 교훈을 삼을밖에. 
 
어쨌거나 여전히 개성 넘치는 성격으로 잘 자라준 조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가족들은 또 다시 불안초조하다. 요즘 중학교는 또 어떤 난관으로 아이를 힘들게 할까 싶어서 말이다. 흔히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시기를 잘 보내야 '공부 잘하는' 아이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 공부 재능도 운동신경처럼 타고나는 거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다만 뭐든 '중간쯤' 하는 평범한 아이였으면 좋겠는데, 워낙 '미친 사교육 열풍'에 휩싸인 사회 분위기에선 그 '중간쯤'도 쉽게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벌써 웬만한 아이들은 중학교 교과 과정을 미리 공부하느라 종합반엘 다니고 있다나 뭐라나.
 
까마득한 옛날 나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상당히 겁을 냈다. 내가 배정된 중학교는 국민학교부터 대학까지 거느리고 있는 '사립학교'였고, 그 사립 국민학교 출신들이 워낙 많아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소문이었다. 아주 뛰어나진 않아도 '나름 우등생'이었던 큰딸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울 엄마도 주변에 조언을 구했는지 당시 진짜로 종로통에 있었던 '종로학원'에 영어와 수학 과목을 등록해놓았으니 새해부터 열심히 다니라고 나에게 말했다. 과외 한번 받아본 적 없는 내가 '학원'이라니 어린 마음에 바짝 긴장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나의 사교육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다. ^^; 딱 새해부터 과외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중학교 입학 전 겨울방학 내내 '잉글리시 펜맨쉽'이라고 적힌 공책에다 펜촉에 잉크를 찍어(!) 인쇄체와 필기체 대소문자 알파벳을 그려 연습하고 외웠을 뿐, 연일 동생들 데리고 스케이트나 타러 다니면서 팽팽 놀았다.

예전과 시대가 완전히 달라지긴 했지만 마음 같아선, 특목고다 뭐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입시광풍에 휩쓸리는 친구들을 목도하게 될 것이 분명한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조카에게도 '마지막으로' 실컷 놀라고 해주고 싶다. '고모로서는' 말이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조카의 영어공부를 봐주던 얼치기 과외선생으로선 걱정이 태산이다. 특히 영어과목에 대해선 요즘 부모와 애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영어에 목숨건 아이들은 이미 방학을 맞아 캐나다다 호주다 필리핀이다 해서 어학연수를 가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도 토익 수준의 단어를 하루에 스무개, 서른개씩 외운다던가. -_-; 그간 조카가 영어단어 외우기를 죽도록 싫어해서 (한글 맞춤법 좀 틀려도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 공주의 주장;; 애당초 나도 영어 거부증을 면하게 해주려고 철자 달달 안 외워도 된다고 타일렀다가 그만 발등 찍혔다 ㅠ.ㅠ) 그냥 내버려뒀던 나도 요번엔 고삐를 죄었다. 방학동안 초등학교 기본 영어단어라는 800개는 점검하고 넘어가자고 말이다. 이미 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낱말이니까 잘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고 살살 달래보지만, 실은 나 역시 조카에서 속성 암기 기계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다. 영어단어 외우라고 족치는 대신에 좋은 책이나 좀 읽고 곧 헤어질 친구들이랑 실컷 놀러다니라고 조언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하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왜 다들 공부공부 미친 타령을 해대고 있는지 안타까운 노릇이다. 나부터도 공부라면 학을 떼겠는데! (쌘이와 미아를 비롯해 아직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친구들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그 옛날의 나와 똑같이 대체 왜 써먹을 데도 없는 어려운 수학이랑 과학을 공부해야 되느냐고 묻는 조카에게 나 또한 "살아가는데 다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뻔한 대답을 해주며 한숨이 나왔다. 영어권 나라로 여행 가고 싶으면 고모를 데려가거나 영어를 잘하는 친구랑 가면 되고, 어차피 프랑스에선 영어로 해도 안 통한다며? 라고 항변하는 조카에겐 이미 영어공부의 당위성도 없어서 말문이 막힌 내가 "꼴찌는 하면 안 되잖아!"라고 윽박질러놓긴 했으나 과연 조카의 속성 단어암기 프로젝트도 성공리에 마무리될지 모르겠다. 으휴. 꼴찌 좀 하면 또 어떻다고... 그 역시 학창시절의 재미난 추억이 될 거라 여기면 좋을 텐데, 부지불식간에 꼴찌는 곤란하다고 튀어나온 걸 보면 나 역시 학력지상주의에 물든 속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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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추억주머니 2011. 1. 6. 14:14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버스에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뒤에서 두번째 줄,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다. 요샌 거기도 두 좌석이 놓여있는 버스가 많지만, 몸체가 낮고 하차문이 안쪽으로 열리는 신형 버스에도 맨뒤에서 둘째 줄엔 한 좌석짜리 버스들이 더러 있어서 드물게 거기 앉을 수 있는 날이면 몹시 기분이 좋다. 아무래도 나는 모든 공간에서 구석자리를 선호하는 모양으로 카페나 음식점에 가서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한가운데보다는 주로 모퉁이에 콕 박혀 있는 게 좋다. 요가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연코 내가 원하는 자리는 사람들 사이에 끼지 않아도 되는 벽쪽 가장자리 자리다. 하지만 공주마마를 보필하고 다니는 무수리로선 가장자리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벽쪽은 언제나 낼름 조카가 앉는다. 그래서 둘이 티격태격할 때도 있는데 내가 차지하고 싶은 요가매트는 가장자리 중에서도 버스 자리처럼 뒤에서 둘째 줄이다. 사람들이 꽉 차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뒤에서 둘째 줄에 앉아도 뒷사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첫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워낙 촘촘하게 요가매트를 깔아놓았기 때문에 맨끝줄에선 구르기 같은 동작을 할 때 잘못하면 벽에 부딪친다. 하지만 공주는 무조건 맨끝줄에만 앉으려고 든다. 앞쪽은 나도 절대 사절이지만 맨끝줄에 앉아서 설렁설렁 딴짓하며 동작도 어설프게 하다가 걸핏하면 잠들어버리는 조카녀석을 보노라면, 과거 맨뒷줄에 앉아서 노상 꾸벅꾸벅 졸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_-; 

학창시절 내 자리는 거의 언제나 앞쪽이었다. 국민학생 때는 그나마도 키와 상관없이 중간쯤까지 진출했었고,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십몇번대라 둘째 줄이었으나 고등학교 올라가선 가차없이 맨앞줄에 앉아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고2땐 키와 상관없이 제비를 뽑아 자리를 정하는 바람에 나중엔 슬쩍 번호표를 바꿔 친구들끼리 앉을 수 있었고, 나는 드디어 염원하던 대로 맨 뒷자리를 몇달간 경험할 수 있었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따로없다며 친구들끼리 다닥다닥 앞뒤로 옆으로 붙어앉아 지냈던 그 시절엔 정말로 하루하루 학교 가는 게 즐거웠다. 맨앞줄에선 등잔밑이 어두운 교탁 바로 코밑자리(거기선 교탁에 교과서를 기대놓는 척하고 딴 책을 숨겨보는 게 가능했다)아니고서야 딴 책 읽기가 불가능했지만, 맨뒷줄에 앉으니 온종일 교과서에 숨겨 만화책을 비롯한 딴 책을 읽어대도 걸릴 염려가 없었다. 돌아가며 망보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러 선생들이 필기를 시켜놓고 교실 앞뒤로 돌아다니긴 했지만, 우린 교실이 좁다는 핑계로 의자를 벽에 바짝 대놓고 우리 뒤쪽으론 못다니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당시엔 아직 과외금지령이 내려져 있을 때라 학원이니 과외니 하는 것도 전혀 없었고 순전히 학교 공부로만 버텨야 하는 시대였다. 나는 예습복습을 거의 하지 않고 수업중에 바짝 정신차려 집중하는 걸로만 대충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맨 뒷줄에 앉아서 그렇게 노상 딴짓만 하다보니 성적에도 당연히 티가 날수밖에 없었다. 단순암기, 찍기의 여왕이 되려면 일단 수업중에 선생이 중요하게 언급한 부분에 형광펜이라도 칠해놓아야 하는데 그 몇달간은 망보는 임무를 맡은 수업이 아니고선 교과서며 요점정리 유인물이 그저 하얗기만 했다. 사실 딴짓하는 친구들을 위해 망을 보느라 대표로 수업을 들을 때도 맨뒷줄에선 앞줄에 앉았을 때와는 공부의 질이 달랐다. 선생에게 시선을 집중해 보아도 시야에 들어와 거슬리며 움직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을 빼앗겼고(맨앞줄에선 선생과 나의 시선을 가리는 장애물이 중간에 없다! ㅋㅋ ) 목소리가 작은 선생의 설명은 맨뒤까지 잘 들리지도 않아 수시로 졸렸다. 키가 커서 늘 뒷자리에만 앉아 지냈던 친구들은 아마도 그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수업에 집중하는 노하우를 꾸준히 쌓아왔을지 몰라도, 앞줄 붙박이였던 나는 암튼 그랬다. 그렇다고 친구들 배신하고 다시 맨앞줄로 갈 수도 없으니, 공부엔 자포자기 심정이 됐다. 그래도 고2때 아니면 언제 놀아보겠냐며, 고3 올라가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3때 다시 맨앞줄로 회귀한 뒤에도 그랬지만, 대학엘 가서도 강의실에서 내 자리는 거의 앞쪽이었다. 맨앞줄은 단호히 거부했어도 거의 두세째 줄에 늘 앉았던 이유는 워낙 거구의 친구들이 많아서 뒤쪽에 앉으면 아예 앞이 보이지도 않았고 200명씩 듣는 합동강의실이든 영문과 단독 강의실이든 뒤쪽엔 요란하게 사투리를 쓰는 '무섭고 시끄러운' 남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가끔 졸릴 때면 일부러 덩치 큰 친구 뒤에 앉아 잘 가리라고 당부하기도 했고, 싫어하던 교직과목의 경우엔 가려주는 사람 없이도 뒷줄에서 빌빌 졸았지만.

사실 고2때 찍은 저 기념비적인 사진 속엔 뒷줄에 앉았든 아니든 전교1등 하던 친구도 있었으니 교실에서 앞줄과 뒷줄 여부로 공부나 집중도의 차이를 단정할 순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얼치기 범생에겐 확실히 지리적인 차이가 성적과 수업집중도에 분명 영향을 미쳤으니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도 할 수없다. 요가원 원생들을 봐도 그렇다. 언제나 맨앞쪽을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늘이고 유려한 동작을 보여준다. 수업 맨 마지막에 편하게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 자세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쿨쿨 잠을 자다가, 그만 휴식에서 깨어나라는 요가 강사의 말을 못듣고 끝까지 누워 있다가 얼떨결에 일어나는 사람들은 나의 조카를 비롯해 꼭 뒷줄에 있던 사람들이다. 나도 이젠 확실히 어떤 자리든 뒷줄이 편하고 앞장서서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뒷자리에서 구시렁거리는 걸 즐기는 사람이지만, 벌써부터 맨 뒷자리만 고집하는 조카의 기호는 너무 일찍 자리잡은 게 아닐까 염려스럽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학교에서도 만날 맨뒷자리에 앉아 딴짓하고 조는 거 아니니, 공주야? ㅠ.ㅠ 물론, 맨 뒤에 앉아 빌빌 졸거나 만화책만 읽어대도 행복하고 바른 아이로 잘만 자라준다면 걱정이 없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다 부질없는 욕심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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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투덜일기 2010. 7. 29. 00:29

인간은 워낙에도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내가 얼마나 기억력이 부실한지 새삼 놀라는 때가 있다. 바로 며칠 전에 들었음이 분명한 멍의 원인이 기억나지 않는것도 그렇고, 부러 잘 챙겨둔 물건의 위치가 완전히 깜깜하게 떠오르지 않는 때도 부지기수다. 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과거의 끼적거림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생각의 틀이라든지 일상적인 고민거리는 10년전이나 20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떻게 이렇게 유치찬란하고 얼굴 뜨거운 글을 적어놓았나 싶을 때도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적어놓은 글을 증거로 눈으로 보면서도, 그 안의 사건이라든지 정황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 막막해지기도 한다. "넌 어쩜 그런 걸 다 기억하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부 기억에 대해선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묘사할 수 있는 반면, 어떤 시기는 뭉텅뭉텅 인생에서 잘라 내 버린 것처럼 기억이 전무하다. 다 기억의 선택이 부려댄 조화겠지만, 그걸 깨달을 때마다 신기하다. 까마득한 과거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워낙 인상적이라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개는 알게 모르게 그 기억을 계속 환기해 신선도를 유지했기 때문이란다. 알게 모르게 환기되는 기억의 중요성이 대체 어떤 근거로 정해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오래 기억해두면 좋을 것들은 쉽사리 사라지고 잊고 싶은 것들만 꾸역꾸역 남기고 있진 않아야 할 텐데 말이다.

5년만에 슬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컴퓨터가 걱정스러워 그간 또 까먹고 안하던 하드 백업을 하느라 오래 전에 컴퓨터 바꾸면서 압축해둔 파일들을 새삼 뒤져보니 별별게 다 있다. 내 기억에선 거의 사라졌던 흔적들을 발견하는 기분이라 거의 보물찾기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대부분은 아 맞다, 그랬었지, 이런 짓도 했었구나, 싶은 것들이 많았으나, '으엥?' 하며 놀라게 되는 것들도 있다. 어떻게 이런 걸 잊을 수 있나 싶은 것 가운데 하나를 기막혀 하며 올려본다. 무려 2002년 5월 날짜 파일이다. 8년이면 꽤 긴 세월이긴 해도, 기억이 까맣게 지워졌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의 '소중한' 파일이었다. 스스로 너무도 한심해서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며 기억을 환기해보니 아스라이 그 그림을 얻게 된 상황은 대강 떠오르는 것도 같은데, 이후의 추이는 완전 깜깜하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었다고 농담삼아 푸념하는 게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잔혹한 현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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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하나마나 푸념 2010. 7. 27. 22:24

넌 꿈이 뭐니?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어른들이 습관적으로, 그리고 요즘은 강박적으로 아이들에게 던지는 저 질문은 내가 어린 시절에도 종종 들었던 말이다. 그때마다 나 역시 생각나는 대로, 선생님, 외교관 정도의 '모범적인' 대답을 하긴 했지만 질문을 던지는 어른이나 대답하는 나나 특별히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나눈 대화는 아니었다. 처음 만난 어른들이 괜히 할 말 없을 때 날씨 얘기, 시사 얘기 꺼내듯이 허투루  꺼내는 화제와 별 다를 게 없었다는 뜻이다.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직업이 뭔지 찾았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달려오긴 했지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의 꿈은 아마도 내가 남은 평생 선망을 품을 하나의 가능성이 아닌가 싶다.

헌데 가엾게도 요즘 아이들은 상황이 다르다. 자기 꿈이 뭔지, 뭐가 되고 싶은지 빠르게는 초등학생 때, 늦어도 중고등학생 시절엔 이미 목표를 정해 그 준비에 매진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떨려난다고 믿는 어른들 때문이다. 뭐가 되고 싶은지 확고한 주장이 없으면 꿈도 야망도 없는 하찮은 아이로 손가락질 받기 일쑤다. 대학시절을 돌이켜볼 때 나는 지금도 그 때가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여기며 4년 내내 거의 줄창 놀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보낸 추억을 곱씹는 반면, 요즘 대학생들은 신입생 때 이미 취업준비에 매달려 학점따기에 여념이 없다. 조교시절 내가 혹시 출석 확인 잘못하는 바람에 성적에 지장 있을까봐(지정좌석제라 2시간 내내 맨 뒷자리에 앉아 학생들 출결을 확인했었다) 수업 때마다 출석표를 일일이 확인하며 따져대던 학부생들한테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로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 꿈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훌륭한가 하면 절대 아니다. 초등학생들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우선은 꿈이 죄다 좋은 학교 진학인 모양이다. 국제중학교, 특목고, 명문대 따위로 이어지는 숨막히는 목표의 반복 속에서 부모들은 정말 자식의 꿈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나와 달리 학부모의 고충을 심히 겪고 있는 친구에게 엊그제 들으니 요즘 중산층 부모가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려면 필수조건이 네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버지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동생의 희생.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기가 막혀 코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했다. 그래서, 자식 하나 명문대 보내서 그 다음엔 어쩔건데???

세상이 하도 거지같다보니, 그저 행복하고 씩씩하게만 자라주었으면 싶은 사랑스러운 나의 조카들도 벌써부터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자기가 뭘 잘하는지 장래희망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왜 아니겠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코르동 블루' 같은 유명 요리학교에 진학해야 '성공'할 수 있으니까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어른들의 채근이 이어지고, '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하찮은 그림 하나 그릴 때마다 창의력을 더 키워야 하네 마네 잔소리를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지금 무슨 꿈을 이야기하더라도, 어른들의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어떻게 온 세상의 아이들이 다 공부를 잘할 수 있나! 공부 잘하는 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타고난 재능이던데...
 
100점짜리 시험지나 최우수상 상장을 자랑하며 한껏 어깨를 으쓱거리는 조카들을 무한히 칭찬해주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잘난 척 해도 나 역시 성적지상주의에 갈채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초등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2, 3주 전부터 밤늦게까지 시험준비를 해야하는 세상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까. 혹시라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90점, 80점으로 점수가 점점 떨어져 성적표에 '노력요함'이 적힌 과목이 차츰 늘어나면 아이들은 또 어떤 상처를 받게될까.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잇달아 당선되긴 했지만 학력중심의 사회구조와 행복은 반드시 성적순이라 믿는 부모들의 맹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나라 교육에 희망은 없어 보인다. 교육정책을 만들어내는 공무원이나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들도 과거 어린 시절 죄다 우등생이었을 텐데, 공부 하기 싫고 잘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까지 과연 헤아릴 수나 있겠나. 공부를 못하면, 고가의 사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면, 웬만한 꿈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 절반 이상의 장래 희망이 하나같이 '연예인'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그 꿈은 지긋지긋한 학교공부와는 멀어질 수 있으니까.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재롱만 피우던 조카들의 머리가 굵어지는 걸 바라보며 그 녀석들이 장차 과연 어떤 인물로 자라날지 어떤 인생을 선택할지 몹시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녀석들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는 귀찮은 질문을 던져댄다. 부모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고모로선 그저 행복한 사람, 올바른 사람, 된 사람이 되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충분할 텐데 자꾸 속물근성이 튀어나온다. 스스로 올바른 사람, 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장래희망을 나 역시 행복한 사람, 올바른 사람, 된 사람으로 바꾸어야 할 모양이다. 이미 너무 늦어버린 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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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

하나마나 푸념 2010. 7. 6. 02:22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비겁함이랬는데, 내 꼴이 딱 그짝이다.
이 동네 재건축 문제는 어떻게든 진행이 되고 있는 모양인지, 얼마 전 구청에서 재건축 정비계획 안내문이 등기로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재건축 찬성파와 반대파의 우편물도 빗발쳤다. 찬성파는 이 동네 재건축 사업이 엄청 축소되기는 했지만 30년씩 노후한 주택을 새로 지어 재산의 가치를 높일 절호의 기회이므로, 일부 '이기적인' 반대파의 논리에 휩쓸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반대파는 '재건축은 곧 자살행위'이며 멀쩡히 살고 있던 집을 빼앗기고 길바닥으로 쫓겨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촉구했다.

양쪽 다 너무도 거부감이 드는 어투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태도를 보니, 왕비마마와 나의 입장은 더욱 모호해졌다. 전국 방방곡곡이 똑같이 흉물스러운 아파트촌으로 변해가는 것은 분명 싫은 일이고,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부동산이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행위가 싫기 때문에 나도 무분별한 재개발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은 지 30년도 넘은 우리 집을 비롯해 주변 여러 집들이 조만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만큼 노후한 건 사실이고, 갈수록 거동이 어려워진 병든 왕비마마를 위해선 싫지만 계단 많은 이 집을 떠나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실행에 옮기는 게 두려워 미적거리고 있는 나로서는 마냥 재건축을 반대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이다. 해서 또 다시 우리 모녀의 생각은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재건축 반대파가 득세해서 재개발이 물건너 가면 그냥 좀 조용해 진 다음에 다른 데로 이사를 가든지 하고, 찬성파가 득세해서 정말로 재건축이 이루어진다면 또 그 상황에 맞춰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부담금은 얼마인지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결정하면 되겠다고 간단히 생각한 것이다.

헌데 현실은 우리를 그런 회색분자로 내버려두질 않았다. 결사항쟁을 촉구하던 반대파 주민들이 반대의견서를 받으러 우리집에도 찾아온 것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요번 재건축 지역에 해당되는 세대가 350여 가구 정도이며, 그 가운데 반대 의견서를 150장만 채우면 재건축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고 했다. (왜 과반수가 아닌지? 그건 모르겠다 -_-;;) 현재 반대파가 130여 세대이므로 20장만 의견서를 더 채워 제출하면 되니 우리도 동참하라는 것이 그들의 요지였는데, 그들의 얘기를 듣다가 나는 그만 빈정이 상해버렸다.

나는 이 동네 재건축을 반대하는 이들이 세입자를 중심으로 분담금 부담이 당연히 어려운 서민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은 그저 비교적 최근에 지은 빌라나 아파트에서 4, 50평씩 공간을 누리며 넓고 편하게 살던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내민 반대 의견서에는 그런 정서가 담겨 있었다. '현재 주거지에서 생활하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재건축을 할 이유가 없어서 결사 반대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서명하라고 내민 구청 제출 의견서의 맺음말이었다. 물론 나라도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재건축을 반대했을 것이다. 지은 지 얼마 안되는 새집을 대체 왜 허물고 다시 짓는단 말인가. 하지만 오르 내리기 힘든 계단과 겨울엔 추워서 달달 떨어야 하는 낡은 목욕탕, 원래가 좁아서 이층 두 집을 터서 살고 있는 등 분명히 '살기 불편한' 주거 문제를 알고 있는 나에게 무조건 그들과 똑같은 의견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하며 핏대를 높이는 태도는 나의 삐딱성을 일깨우고 말았다. 아, 우리는 불편하다니까!

결국엔 재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찬성하는 사람들도 각자의 이기심을 실현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고, 나 역시 좀 더 편히 살겠다는 이기심을 버리고 옳은 명분을 위해 희생하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었던 거다. 비겁한 나의 결론은 역시나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겠다는 데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다. 이 동네 재건축에 관한 한은 어느쪽이 옳은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재건축 재개발 지역에선 원주민의 비율이 늘 30%밖에 안된다는데, 정말로 여기서도 그렇게 될지, 아니면 정말로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 가질 기회를 반기는 원주민들이 많은지... 확실한 건 이미 이웃들이 니편 내편 양쪽으로 갈라져 서로 반목하고 있다는 것뿐이고, 그래서 주변에 도둑 한번 든 적 없었고 새벽이면 온갖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는 이 동네에 새삼 정이 뚝 떨어졌다. 과연... 이 동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어느 쪽이든 걱정스러워서 미리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나는 진정 비겁자다. 하루 생각해볼 시간을 주겠다며, 도장 찍은 반대 의견서 받으러 내일 또 온다고 했는데 아 어쩌나. 현재의 미봉책은 왕비마마와 나 중에 한 사람만 반대의견서를 써주는 것인데 (찬성도 일리 있고 반대도 일리 있으니까) 실로 회색분자 다운 꼼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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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갈아입기

투덜일기 2010. 6. 24. 21:30

얼마 전 공교롭게 하루에 세번의 외출을 할 일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매번 다른 옷을 입었음을 알게 됐다. 중간에 집에 돌아올 때마다 두번이나 다시 뒹구는용도의 옷으로 갈아입었으니 대체 하루에 옷을 몇번이나 갈아입은 건가. 참 내.
첫 직장이 의류관련된 곳이라 그때 세뇌된 것들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모양으로, 때와 장소 상황에 맞는 옷을 최대한 맞춰 입어야한다는 강박이 심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또 편한 걸 추구하는 귀차니즘까지 동원하고 앉았으니 결국엔 모순으로 스스로를 볶아치는 셈이다. 

오전중 첫 외출은 왕비마마의 병원이었는데, 오래 전 오로지 운전수 역할만 하면 될 땐 정말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하고 눈꼽만 대강 떼낸 뒤 야구모자 하나 질끈 눌러쓰고 아무 옷이나 걸치는 편이었지만 요샌 상황이 다르다. 진료실에 함께 들어가서 청력과 기억력이 모두 부실한 환자 대신 의사 얘기를 잘 듣고 질문도 던져야하기 때문에 잠옷 같은 옷을 걸칠 순 없단 의미다. 최소한 의료진 앞에서 보호자로서의 권위를 어느 정도는 내세울 수 있는 간편한 차림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7부바지는 인정하되 찢어진 반바지, 탱크탑류는  곤란.. 뭐 이런 식이다.) 환자나 보호자의 옷차림에 따라 의료진의 친절도나 진료의 질이 달라진다는 통계는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지만, 껄렁껄렁 날라리처럼 하고 와서 쭈뼛쭈뼛 기웃대는 사람보다는 멀쩡히 차려입은 사람에게 좀 더 공손하다는 것이 그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론(또는 편견)이다.

오후 외출은 뙤약볕 아래 나서야 하기도 했고 요가 강습을 위한 거라 정말로 최대한 편하게 정말로 아무거나(반바지에 티셔츠) 입고 나갔다. 요가복을 따로 챙겨가긴 하지만 땀흘린 뒤에 입는 옷도 역시 편해야 제격. 직장인들도 요가학원에 많이 다니던데, 어휴 나 같으면 불편해서 다시 정장으로 갈아입는 짓 못할 것 같다. 마지막 외출은 간만에 동창들 만나는 자리인데 에어컨을 염려해 청바지도 긴 걸로, 상의도 소매가 좀 내려오는 걸로 선택했는데, 그러고도 버스안에서 덜덜 떨었으니 탁월한 안목이긴 했다. 

하지만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차림새 강박 때문에 종종 한꺼번에 후둘러 놓은 여러 벌의 옷을 보면 스스로가 참 한심스럽고 못마땅하다. 그렇다고 패셔니스타의 반열에 오를 만큼 뛰어난 센스를 발휘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가 말이다. 하지만 잘 차려입고 아니고의 여부를 떠나서,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 차림새로 외출한 경우(색깔 조화가 영 엉망이라든지--이 또한 순전히 주관적인 잣대가 적용된다-- 큰 맘 먹고 입었는데 치마가 너무 짧다든지!) 난 제대로 볼 일을 보지 못할 정도로 집에 당장 들어가 몸을 숨기고픈 충동을 느낀다. 한때 옷장과 서랍을 열면 죄다 검정색 아니면 회색밖에 없었을 시기가 있었던 건, 바로 색깔 조화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 내가 누군가. 싫증 잘내는 변덕쟁이로서 언제부턴가는 알록달록한 원색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특히 여름철 옷은 서랍장을 연 순간 정신이 사나워질 정도다.

요번에 여름옷 꺼내면서 최근 3년간 안입은 옷 처리하기 원칙에 따라 꽤 많은 옷을 정리했다 싶은데도, 여전히 서랍장은 미어터지고 그럼에도 막상 입고 나가는 옷은 만날 그게 그거라 입을 옷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삶을 단촐하게 유지하고 환경을 생각하며, 동시에 소비활동으로 경제에 이바지하고 소소한 욕망도 채우는 중용의 삶은 참... 실천하기가 어렵다. 일단 옷에 대한 강박관념부터 벗어나야 할 터인데, 그런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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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

투덜일기 2010. 6. 9. 16:23

세상 사람들 누구나 자기가 꼭 원하고 바라는 일을 할 형편은 안되는 것이 현실임을 잘 알지만, 그래도 내가 품고 있는 그 사람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하면 공연히 속이 상하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결정을 존중하는 마음을 품으면서도 혼자 속앓이를 하듯 한동안 그런 생각이 든다는 얘기다. 가령, 낯 많이 가리고 사교성이 심히 부족하다고 스스로도 인정하던 친구가 돌연 아는 사람이 하던 호프집을 인수해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처럼. 친구 중에 누구든 하나쯤 술집이든 카페든 주인이 되면 덩달아 나도 참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을 노상 품었으면서도, 좀 더 씩씩하고 강한 친구라면 모를까 그 친구는 못 해낼 것 같다는 생각부터 앞서는 바람에 친구의 인생에 간섭할 권리도 없는 주제에 뜯어말리려고 했던 적이 있다. 사업자등록증을 내느라 보건소에 가서 기막힌 검진을 받아야 했다며 거의 울것 같은 표정을 하는 친구 앞에서 속으로는 여전히 "너랑 호프집 주인은 정말 안 어울려!"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누누히 말려도 해보겠다는데야 결국 다 잘 될 거라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긴  했지만. 

오래 전부터 나를 아는 친구들은 심지어 지금의 내 직업도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며 내심 아직도 염려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 회사 때려치우고 집에 들어앉아 번역을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 지인들의 절반쯤은 나를 말렸다. 나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며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홀로 조용히 틀어박혀 심심하게 하는 일을 하겠느냐고. 만날 놀러다니느라 분명 일은 뒷전으로 밀어뒀다가 결국 욕만 잔뜩 먹거나, 심심해서 못 견디고 다시 회사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1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으니 일단은 그들이 틀린 셈이다. 표면상 이 일이 나에게 어울리든 말든.

결국 남들이 생각하는 직업의 어울림은 그저 타인으로서의 느낌일 뿐이라는 얘긴데도, 요번에 공인중개사로 부동산사무실을 개업한다는 어느 친구 소식에 또 한번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대학 다니던 시절 그 친구는 유치하든 말든 자기가 쓴 글을 빼곡히 실은 문집을 만들었다며 씩 웃으면서 조악하게 인쇄된 그 개인 문집을 내게도 한 부 쥐어줬던 부류였다. 일상적인 안부와 푸념밖엔 없는 내 답장이 민망할 정도로 그 친구의 편지엔 깊은 사색과 주옥같은 글귀가 가득했으므로 나는 부디 그가 글로 밥벌이를 하면 좋겠다는 염원을 계속 품었던 것 같다. 흔한 회사원으로 살더라도 가끔은 글쓰기를 잊지 않기를 말이다. 이 땅에서 글쟁이로 밥벌이를 한다는 게 얼마나 팍팍한 일인지 잘 알지만, 그래도 그게 그 친구와 '어울리는 직업'일 듯한 나만의 착각을 아직도 못 버렸다는 뜻이다. 서비스업에 대한 나의 편견도 문제이긴 하다. 공인중개사라면 모름지기 활달한 사교성과 드넓은 대인관계를 갖춘 사람이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헌데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공인중개사로서의 성공 여부는 그런 성격적인 부분보다는 정확한 분석력과 기획력에 달려 있단다. 주절주절 수다떨며 어중이떠중이 고객에게 설레발을 치는 것보다는 매물 분석을 잘해서 계약 성공률을 높여야 한다나 뭐라나.

사람이 변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사실 아직도 그 친구가 부동산사무소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부동산 투자나 주택매매를 중개하는 광경이 상상되질 않는다. 하기야 발상을 바꾸면 나처럼 말 많은 거 싫어하는 고객들이 묵묵히 실속있는 매물과 자료로만 승부하는 공인중개사를 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 같은 고객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재테크라는 말부터 싫어하는 나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던 그 친구가 정 반대 성격의 배우자를 만나 세상물정 모른다고 질책을 받으며 따로 열심히 경제서와 실용서 쌓아둔 채 재테크 공부를 한다고 쑥스럽게 웃을 때만 해도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간만에 얼굴도 볼 겸 개업식에 오라는 친구의 목소리는 확실히 예전과 달리 자신감 넘치고 활기차게 들렸으니, 그의 선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새로 찍은 공인중개사 명함을 건네는 친구의 모습을 앞두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애써 버려볼 작정이다. 의외로 잘 어울릴지 모르잖아, 라면서. 하지만 축하의 자리를 앞두고 자꾸만 기쁨보다 아쉬움이 샘솟는다. 순전히 내 욕심이고 이기심이란 걸 아는데도 나 원 참. 누가 내 인생에 섣불리 간섭하면 애정의 조언이든 아니든 파르르 떨기부터 하는 인간에겐 영 가당찮은 태도다. 그래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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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키울까

투덜일기 2010. 6. 4. 14:54

제가 이웃들간 불화의 주인공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멍청한 놈이 모르고 있다는 데 7만원도 걸 수 있다!) 아래층 똥개(잡종견이라고 썼다가 어쩐지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은 어감이 들어 배알이 틀리는 바람에 바꿨다. 역시 한글이 좋은것이로다)의 목청은 요즘도 나날이 커져 밤중에 마음의 준비 없이 개짖는 소리와 맞닥뜨렸다가는 기절초풍할 수준에 도달했다.

<개가 짖으라고 있는 것이지 안 짖으면 그게 개냐>는 아래층 개주인 아저씨의 궤변은 그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들을 수가 있었기에 (물론 나한테 직접 한 얘기는 아니다.) 이웃간의 긴장감이 완전 살얼음판이라, 개주인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아예 개를 집안에 들여놓기도 한다. 어제도 종일 개짖는 소리가 없길래 집안에 들여놓는 날인 줄 알고 외출에서 돌아오다 커렁커렁 짖어대는 소리에 발목를 삐끗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와락 화가 치밀어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동시에 아래층 오른쪽 집과 옆집 2층에서 동시에 내가 하려던 개에 관한 욕설이 터져나왔고 나는 혹시나 쌈박질에 휘말릴까 두려워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왔다. 다행히 내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몇 초 안에 개짖는 소리가 잦아들었으므로 또 한번의 동네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개짖는 소리도 스트레스지만 이제는 그 소리로 인한 이웃간의 불화 또한 나에겐 스트레스다. 처음엔 내 대신 이웃에서 불만을 토로하면 금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를 집안에서 키우든지, 목청수술을 시키든지, 다른데서 키우라고 주어버리든지, 이 세 가지가 내가 생각한 가능성의 경우 수였고 이왕이면 맨 마지막 옵션이 선택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멍청한 똥개마저도 어여쁘다 여기고 있는 정민공주의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아래층 개주인들은 다른 방법을 대안으로 선택할 것이란다(아래층 아저씨는 자주 우리집에 들락거리는 공주가 여기 상주하는 줄 아는지, 심부름 가는 아이를 붙들고 사연을 전했단다). 이름하여 전기충격 목줄? 개가 짖으면 진동으로 목줄이 조여져 짖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라던데 정말로 그런 게 있나? +_+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또 한번 기가 막혔다. 그런 목줄의 가격이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층 개주인은 정말로 그 똥개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키우는 걸까? 물론 개의 성대를 잘라내 짖는 소리를 줄이는 것도 비인간(비동물?)적인 방법이겠지만, 짖을 때마다 전기고문을 받듯이 충격을 받아야 하는 개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주인이라면 개를 키울 자격이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목줄이 상품으로 나와 있다는 건 그만큼 수요도 있다는 뜻이니, 개가 받는 충격의 정도가 겪을만한 수준이라 여길 순 있겠지만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말로 크게 키워 잡아먹을 심산이 아니라면야, 아무리 훈련목적이라도 예뻐서 데리고 사는 개에게 어떻게 전기충격기를 목에 매달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해서라도 꼭 개를 키워야 하는 것인지!

내 주변의 개들이 죄다 수난기인지, 조카네서 키우는 파랑이도 퇴출위기에 놓여 있다. 그 녀석은 정말로 식구들의 애정을 꽤나 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배변 교육이 제대로 안된 탓에 식구들 침대마다 죄다 돌아가며 한두번 이상 똥오줌을 싸놓았단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걔가 스트레스를 받나보다, 애정 결핍인가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법 똑똑해보이는 녀석의 교육을 제대로 시켜볼 것을 당부했었지만 조카네도 거의 포기단계다. 정말로 온종일 홀로 애정을 쏟으며 다시 배변훈련을 시켜줄 주인에게나 가면 모를까, 장난꾸러니 사내아이까지 있고 다들 바빠 집을 많이 비워야 하는 조카네선 역부족이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하기야 아무리 개가 예뻐도 며칠만에 한번씩 돌아가며 온 식구들의 침대 시트를 빨아대야 한다면 곤란하겠지.

사실 온전히 파랑이를 예뻐하는 사람은 올케와 정민이뿐이고(정민이도 최근엔 무관심하다고;;), 두 남자는 애완견을 장난감이나 스트레스 해소대상으로 여기는 징후가 포착돼 내가 잔소리를 한 적도 있다. 나야 애완동물을 영원히 키울 생각도 없고 죽을 때까지 동물 혐오증이 사라질 기미도 없지만, 최소한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정성을 다해' 키워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생이나 지환이가 파랑이를 예뻐하는 방식은 파랑이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귀찮고 괴롭고 성가신 행동들로 보였고, 그런 부분들이 파랑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배변문제를 일으켰을지 모른다는 게 나의 짐작이다. 애정결핍이나 귀찮음에 대한 일종의 복수로. ^^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원래 주인한테서 떨려난 이유도 배변습관이 잘못됐기 때문일 거라고 동생네는 주장하고 있다. 처음 와서부터 사방에 실수를 해댔다니까 뭐;;;)

동생네의 경우 어린 지환이는 애완견을 장난감 수준으로 생각했던 약간의 오류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처음부터 네 식구가 온 마음으로 개를 키우고 싶어했고 그 열망을 현실로 이룬 집이었다. 정민이는 특히나 아기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했고, 미혼때 애완견을 키운 적이 있는 올케도 반려동물을 두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와 집안 분위기에 좋을 것이라고 못마땅해 하는 나를 설득하려 했으며, 내가 반대를 하든 말든 개를 들이는 일을 저질렀었다. 그런데도 일년도 안 돼 애완견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파랑이가 좀 더 똘똘해 배변에 아무 문제가 없는 개였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아이 둘 키우기도 벅찬 주부가 애완견까지 도맡아 키우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을 테고 결론적으로는 섣불리 애완견을 들인 동생네가 경솔했다는 의미다. 경솔한 인간의 결정으로 제일 불쌍해진 건 물론 또 새주인을 만나 다시 적응과정을 거쳐야하는 파랑이고!

사람 마음도 모르는데 내가 개의 마음까지 간파할 리는 없으니 억측은 이쯤에서 관두더라도, 암튼 내 주변의 개 두 마리는 현재의 주인을 떠나야 행복할 것 같다. 걸핏하면 짖어대는 아래층 똥개가 전기충격 목줄로 얼마나 효과를 볼지 그 결과와 상관없이, 공동주택에서 그것도 마당에 개를 키운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겐 짖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잘못도 다 인간에게 있는데 (똥개 머리가 너무 나쁜 이유도 있겠지만;;) 개를 괴롭히는 방안이 해결책으로 선택된다는 건 잔혹해 보인다. 또한 파랑이도 좁은 베란다에 갇혀살지 않으려면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앞날이 편할 것이다. 말썽쟁이 개도 주인을 잘 만나면 개과천선한다니 파랑이도 미모를 무기로 어서 좋은 주인이 나타나기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손해보는 건 늘 죄없는 짐승들인 것 같아 괜히 내가 다 화난다. 이럴 걸 도대체 왜들 키우느냐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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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투덜일기 2010. 5. 28. 16:27

어느덧 1년이 또 지나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작년 신고할 땐 2007년에 비해 2008년 수입액이 절반 밖에 안되는데도 단순경비율이 확 줄어들어 돌려받는 세금이 얼마 안 돼 화가 나더니, 올해 신고서에 적힌 2009년 수입액은 눈물날 만큼 적어 적용되는 단순경비율이 거의 배로 늘어난 덕분에 원전징수세로 뗀 세금 전액을 돌려받게 됐다. 그마저도 얼마 안되긴 하지만 역시나 인간지사새옹지마다. 세금 환급되면 그 돈으로 확~ 나를 위한 선물을 질러야지. ㅠㅠ 골빠지게 일해서 내가 번돈 다시 돌려받는 것 뿐인데도 세금환급금이 선물처럼 여겨지는 건 늘 뜯기고만 산 노동자의 습관 탓인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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