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09.10.08 내겐 아니올시다 19
  2. 2009.07.31 짜증나 11
  3. 2009.04.24 약력 25
  4. 2008.10.10 가을이 오면 11
  5. 2008.09.29 스카프의 계절 15
  6. 2008.09.22 이어지는 버리기 8

어차피 패션은 20년 주기로 돌고돈다는 말이 있고, <복고풍>이란 말이 패션계에선 단 한시즌도 빠지질 않는 걸 보면 아무리 디자이너들이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해봤자 사람들의 생각이란 게 워낙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결국 옛것에 약간의 변형을 가미해 새로운 척 내미는 시도가 되풀이될 수밖엔 없나보다. 옷장엔 한가득 옷이 들어 있어도 계절마다 옷타령을 멈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백화점이든 거리의 옷가게엘 나가봐도 선뜻 사고픈 옷은 그리 많질 않다. 나로선 신체특성상 소화할 수 없거나 소화할 마음이 없는 옷들을 제외하고 나서 어렵사리 골라보면 결국 이미 갖고 있는 옷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저 본인이나 <새옷>이라는 기분만 낸다뿐이지 남들이 보면 아마도 십수년째 만날 똑같이 우중충한 옷만 입고 다닌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기야 뭐든 잘 못 버리는 성격인 데다 옷 욕심이 많기 때문인지 20년 묵은 옷가지들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간이니, 십수년째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누가 손가락질해도 전혀 할말은 없다. 오히려 20년 전에 입던 옷이 아직도 더러 몸에 맞는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

20년 전에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20년전에 이미 대학생이었던 나는 요즘 최고 유행이라는 패션경향을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 옛날 나도 어쩔 수 없이 입고 다니긴 했지만 이후 촌스럽다고 외면했던 유행이 정말로 다시 되돌아왔구나 싶기 때문이다. 그나마 요샌 유행의 폭이 넓다고나 할까 다양성이 인정되는 분위기라서 아무리 한 가지 스타일이 유행해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 참 다행스럽다. 제 아무리 몇년째 스키니진이 유행이지만, 스키니진이 아닌 바지를 찾아 입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란 뜻이다. 과거엔 정말로 한 가지가 유행이면, 신상품은 죄다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말만 달라졌지, 요즘 유행하는 <스키니진>은 그 옛날 <빽바지>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나도 소싯적에 선택의 여지 없이 사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 물론 지금처럼 밑위길이가 짧동하진 않아서, 허리까지 올라가는 <배바지>에 가깝긴 했지만, 청바지나 진바지는 물론 교복바지까지 통좁게 줄여입고 다니는 고등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넣고 꿰매입은 듯한(울 엄마의 표현이시다)> 몸에 밀착되는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지천이었다. 그나마 요샌 다른 모양의 바지도 사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워낙에도 너도나도 똑같이 입고 다니는 집단유행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데다, 최신유행 패션을 열렬히 따를 만한  신체조건을 타고나지도 못했기 때문에 당대 유행하는 패션엔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무슨 옷이든 그저 내눈에 <예뻐> 보이면 그만이란 얘기다. 물론 첫눈에 아무리 <예뻐> 보여도 조만간 거리에 물결처럼 반복되는 패션이라면 일단 마음에서 제외된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면, 나는 두번다시 그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인데, 어떤 이는 똑같은 옷을 입었더라도 상대가 멋쟁이라면 스스로 대단히 뿌듯함을 느낀단다. <역시 유행과 패션을 아는 사람끼리는 통한다>고 생각한다나.  -_-; 작년 가을부터 요맘때면 계속 체크무늬 셔츠가 유행이라지만 나는 좀처럼 사 입을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 흔해빠진 체크무늬 말고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하고 예쁜 체크무니 셔츠를 사입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아직 그런 체크무늬는 발견하지 못했다;), 워낙 유행이라 똑같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누군가를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요즘 유행이라는 패션 가운데 내가 참아줄 수 있는 건 스키니진과 체크무늬 셔츠 정도인 것 같다. 하나같이 외래어라 더더욱 마음에 안드는 <2009 A/W 핫트렌드 패션>은 내눈엔 정말 아니올시다다! 나 같으면 거저 준다고 해도 안입을 옷들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달고 언론의 조명을 받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 가까운 지인이 입고 나타난다면 당장 말리고픈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해도, 나로선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유행패션을 골라봤다. 어디까지나 따분함을 피해보려는 소치이니, 혹시 이미 소장했거나 소장할 마음을 먹은 지인들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시길. 부디 나 같은 삐딱 촌닭과 만날 때만 선보이지 않으면 될지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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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

투덜일기 2009. 7. 31. 18:01

월급쟁이의 가장 큰 장점은 독촉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날짜가 되면 월급이 입금된다는 점일 것이다. 동료나 상사가 마음에 안들거나 일이 따분해서 사표를 쓸까말까 매번 고민하다가도 월급날이 되면 또 한달 버텨낼 힘이 불끈 생겨났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프리랜서의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불규칙한 수입.
프리랜서라도 착실한 사람이라면 꾸준히 저축을 해서 언제나 여유돈을 마련해두고 살아야 정상이며, 불규칙한 자금의 흐름 속에서도 어느정도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작업량과 원고료 수입을 배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월급쟁이도 가끔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 월급날 제대로 봉급을 받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프리랜서는 오죽할까. 아무리 장기적으로 수입을 감안해 작업량을 계획하고 여유롭게 수입과 지출을 예상해도, 의외의 변수는 꼭 있다. 경제불황과 열악한 출판시장을 이유로 결제를 미루는 것이 가장 크고 고질적인 난관.
여러번 원고료 체불로 마음고생을 한 뒤로는 지명도가 있건 없건, 회사 재정상태도 알 수 없고 각별히 나를 챙겨줄 직원도 있을 리 없는 출판사와 처음 연을 트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안면 없는 출판사와도 몇번 통화를 하고 정말로 작업 스케줄 때문에 의뢰를 거절하다가도 책이 괜찮다거나 공교롭게 작업스케줄이 비었을 때 딱 걸리면 대면하지도 않고 이미 안면을 튼 사이 같아져서, 결국엔 슬그머니 일을 맡게 된다. 물론 그렇게 시작해서 수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출판사들도 많으니, 나의 우유부단함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다행히도 요새 꾸준히 작업중인 출판사들은 내가 죽도록 하기 싫어하는 결제 독촉전화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게으름을 부리느라 원고를 늦게 넘겨서 그렇지, 제때 원고를 넘기고 나면 알아서 송금을 해주니까.

헌데 겪어보니 출판사의 규모나 지명도와 결제 습관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소규모라도 착실하고 정직하게 원고료와 인세를 제때 보내주는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수없이 일간지 광고와 라디오 광고에 나와 막대한 자금을 들인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규모 있는 출판사이건만 얼마 안되는 원고료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곳도 있다.
내가 2년째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출판사도 그런 축에 속하는 곳. 2년이나 지연되고 있는 건이고 내가 <죽도록> 하기 싫은 독촉전화를 반복한지도 9개월째이건만 아직도 해결이 안됐다!
올들어서는 거의 한달에 한번꼴로 채근을 하고 있는데도 매번 다음달에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매번 어기는 일이 반복된다. 어우 짜증나! 오늘은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도 팍 오른 김에 전화를 했더니 <정말로> 다음주엔 결제를 해주겠단다. 과연?? 그 출판사 요즘 라디오에서 신간 광고도 하던데, 그럴 돈은 있으면서 왜 밀린 번역료는 해결해주지 않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번역료를 결제 우선순위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돌리는 악덕 출판사라고밖엔 여겨지지 않는다. 

그곳 말고도 이번주에 계약금 송금을 약속한 출판사가 있었는데 통장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안들어왔다. 예전에 출간된 책의 저작권이 만료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저렴한> 번역료로 내 원고를 넘겨받아 출간하기로 한 건이라 나로서는 어찌보면 거의 불노소득에 가까워 처음 거래하는 출판사측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계약을 하고도 순진하게 기뻐했는데 문득 너무 계약을 서둘렀나 후회스럽다. 출간 급하다고 해서 원고부터 후딱 보내주었는데 혹시 약속 잘 안 지키는 출판사라 계속 속깨나 썪으면 어쩌지.. ㅠ.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거늘...
출판계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원고 재출간임을 감안할 때  퍽 양심 있는 계약조건이라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지만, 매절 계약서에 도장 쾅 찍어 보내고 난 다음날부터 인세계약으로 할 걸 잘못했나 쓸데없이 가슴을 치기도 했던 터라 더 짜증이 난다. 이미 팔릴 만큼 팔린 책이긴 해도, 작년에 나온 문제의 <그> 베스트셀러처럼 영화 개봉으로 새삼 대중의 주목을 받아 엄청 팔리게되면 배 아파서 어쩐담. ;-p
하기야 계약금 약속도 잘 안지키는 출판사라면 인세 지불도 속썪이지 말란 보장도 없으렸다. 결국 번역가는 도를 닦듯 돈으로부터 초연해져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상대적 약자한테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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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9. 4. 24.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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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투덜일기 2008. 10. 10. 20:45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해가는 기후에 적응하려는 신체와 정신의 노력 때문인지 펄럭펄럭 감상의 과잉이랄지 이유없는 변덕과 이런저런 탐욕에 휩싸이는데 나의 경우 그 정도가 가장 심한 계절은 역시 가을이다.
봄엔 대책없이 희망과 낙천주의에 휩싸여 싱숭생숭한 마음의 방향도 아스라한 행복으로 치닫는 데 반해, 가을엔 줄어드는 일조량 탓에 우울 인자가 늘어난다는 학자들의 분석결과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툭하면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져 기어다니거나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사실 늘 비어있는 곳임에도;;) 찬바람이 숭숭 몰려드는 까닭모를 처연함에 휩싸이게 된다.

가을만 되면 스카프 열망이 타오르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열어보며 입을 옷이 없다고 뻔한 투정을 되풀이하며 소비욕에 불을 댕기는 것과는 약간 다른, 스산함에 허덕이는 가을 영혼을 어떻게든 보듬어 위로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계절의 옷타령은 그저 새로이 '입을 옷' 장만에 대한 욕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해마다 소비의 대상이 다양하고 특별히 어떤 재질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티셔츠나 청바지, 반바지, 원피스, 가볍고 따뜻한 외투 정도의 단품들이 떠오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을의 경우는 좀 다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나는 왜 이리도 가죽에 탐닉하게 되는지.

새로 산 운동화 냄새라든지, 휘발유 냄새라든지, 사람마다 독특하게 좋아하는 냄새가 있기마련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질 좋은 가죽 냄새(코를 찌르는 노린내 가죽 냄새를 말하는 게 아니다!)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동물보호 차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진짜 동물털과 가죽으로 만든 옷과 가방 따위를 거부하고 인조모피와 인조가죽을 애용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주장도 확실히 맞는 말이고, 나 역시 아무리 나이가 들어 뼈에 찬바람이 스미는 노인이 된다해도 작은 동물 수백마리를 조각조각 난도질해 이어붙인 모피코트(옷깃과 소매 정도에 두어마리 동물털을 장식으로 붙인 것이야 어쩔 수 없다. 이미 갖고 있기도  하고;;)를 입고 다닐 생각은 없다.
그런데 양가죽이나 소가죽의 경우는 좀 다르다. 어차피 같은 가죽이고 가엾은 짐승을 도축해 얻은 재료라고 비난하면 어쩔 수 없지만 짐승들이 가여워서라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달리 난 아직 고기를 꼭 먹어야 힘이 나고 살 것만 같은 야만스러운 인종이라 그 가죽에 대해서도 양심이 좀 덜 찔린다(고 우길란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대두되면서 그간 인간의 탐욕 때문에 여러 동물들이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학대받고 있는지, 일부 인구의 육식 편향 입맛 때문에 또 세계 기아인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많은 양의 옥수수와 곡식이 가축의 사료로 쓰이는지 다각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민망하게도 나는 아직 육식을 포기하지 못했고 이왕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짐승들이 제 몸가죽까지 속속들이 인간에게 바친다는 사실에 그저 고마워하기로 했다. ㅠ.ㅠ

자꾸 자기변명이 길어지려 하는데, 어쨌든 비난을 받거나 말거나 가을이 오면 내가 특히 가죽옷에 심취한다는 얘기다. 스카프처럼 부담없이 마구 사들일 수 있는 물건은 아니므로 많이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열망이 커지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색깔이며 디자인이 어떻게든 색다르면서도 10년이상 전혀 유행과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멋진> 가죽재킷을 장만하고 싶다는 욕망은 희한하게도 가을마다 빠짐없이 불타오른다. 긴것, 짧은 것, 검정색, 빨간색, 갈색으로 이미 기본적인 디자인의 가죽옷은 갖고 있건만, 자신없다는 생각에 선뜻 장만하지 못한, 폭주족을 연상시킬 정도의 과감한 디자인도 늘 선망의 대상이고 이런저런 깃의 모양에 따라 색색깔(짙은 파랑색, 초콜릿색, 따뜻한 베이지색, 검정색 짧은 것...)로 질 좋은 가죽옷을 옷장에 주르륵 걸어놓고 있으면 마구 기운이 솟아 스산하고 처연한 이 가을을 힘내서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ㅋㅋ

가죽 가방 또한 마찬가지다.
몇년동안 꿈의 가방이랄 수 있는, 큼지막하면서 장식이 요란하지 않고 가죽의 질과 냄새마저 좋은 짙은 색깔의 가죽가방을 찾고 있었는데 동물보호의 목소리를 높이는 누군가의 열변에 귀가 얇아져 제풀에 포기하고는 차선책으로 검정색 인조가죽 가방 하나를 사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이 블로그에 써놓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가방은 1년반쯤 꽤나 사랑을 받다가, 마음에 꼭 드는 것이 아닌 한 이내 싫증 잘 내는 주인의 눈밖에 나 차츰 방 한 구석에 걸려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결국엔 요란한 장식 한 군데가 늘어졌다는 것을 핑계로 단박에 퇴출되고 말았다. 그나마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 것은 아니고, 골목어귀에 서 있는 구세군 기부함으로 들어갔으니 원주인이 아니고선 잘 알아볼 수 없는 장식의 <흡집>을 감춘채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위로하고 있다.
그러고는 내가 또 다시 꿈의 가방을 찾아헤맸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될 터이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결국 내가 그리던 꿈의 가방 자질에 최대한 가까운, 당연히 질 좋은 가죽이기도 한 녀석을 장만하고야 말았다. ^^
작업실 포기 기념이라며 말도 안되는 구실을 붙여 나에게 주는 선물로 명명한 그 녀석을 한달 가까이 손꼽아 기다리다,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온 녀석과 상봉하던 날 비닐을 벗기고 나서 풍겨오는 은은한 가죽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쓸어 그 부드러운 감촉을 만끽하며 내가 얼마나 흐뭇했었는지 헤벌쭉 흐르는 미소 속에서 돌연, 혹시 이거 가죽 페티시가 아닌가 염려되기도 했다. 

한동안 옷장 손잡이에 가방을 걸어놓고 감상하다 가끔 쓰다듬으며 올 가을의 가죽 열망은 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그럴 리는 없다. 오늘 오후 물도 안 든 주제에 벌써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큼지막한 플라타너스 잎들을 밟으며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나는 불쑥 초콜릿색 가죽재킷을 사러가고 싶어졌다.
그나마 마트 앞에 <홍옥이 나왔어요!>라고 적힌 팻말과 함께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빨간 홍옥사과의 자태를 발견하는 바람에 올 가을 처음 새콤달콤한 홍옥 맛을 볼 생각에 정신이 팔려 얼른 지갑을 열었기에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백화점 세일기간이라는데 구경이라도 한 번 가볼까... 하는 소비욕망을 억누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야흐로 가을은 가을이다.
홍옥이 나왔고, 높은 하늘은 푸르고, 괜히 쓸쓸하고, 가죽생각은 절로 나고...
유치하고 부끄러운 나의 가을 타령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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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의 계절

놀잇감 2008. 9. 29. 16:44

언제부턴가 스카프만 보면 광분하는 경향이 생겼다.
비교적 어린 주변 지인들이 스카프 매는 걸 껄끄러워하는 걸 보며 곰곰이 따져보니, 나도 20대 초반엔 스카프를 꽤나 거추장스러워했고 노회함의 상징이라 여겼던 것도 같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거추장스럽더라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선물로 받거나 어디서 생겨 매고다니던 스카프의 매끄러운 실크의 감촉은 좋아도 훌러덩 미끄러져 빠져버리거나 흘리는 일도 잦았기 때문에 찬찬하지 못한 나로선 간수가 그리 쉽질 않았다. 그래서 날씨가 아주 쌀쌀해지면 얼른 모직이나 털 목도리로 바꿔 매곤 했다.
그러다 아주 마음에 드는 스카프를 내 손으로 구입하기도 하고 즐겨 매고 다니는 일이 시작된 건 20대중후반부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직 '애기'나 다름없는 스물여섯, 스물일곱 살의 나는 후반부 직장생활에서 늘 최고참 여직원이었다. -_-;; 업계를 잘못 선택한 내 탓이 컸지만, 어쨌든 그 당시의 나는 최대한 위엄있게 보일 필요가 많았고 회사에선 유니폼을 입어야하는 데도 거의 정장을 입고 출퇴근을 했다.
여성의류를 다루던 첫 회사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옷차림이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준다> 따위의 원칙에 너무 세뇌당했던 탓에 청바지에 티쪼가리 같은 걸 입고선 도저히 출근을 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암튼 그땐 그랬다. ^^
그리고 그때 멋스러운 스카프 한 장을 목에 두르면 (짧은 목을 남들이 답답하게 여기거나 말거나;;) 내 나름대로는 노회한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여겼다). 

암튼 예나 지금이나 단조롭거나 실증난 옷차림이라도 스카프 하나만 잘 골라 매주면 그럭저럭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음은 물론이고 보온효과도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목을 감싸주면 체감온도가 5도쯤이나 올라간다는 말을 최근 몇년 꾸준히 들어온 듯한데, 이미 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그 진리를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한 여름에도 깊이 파인 목선에 가늘게 스카프를 둘러메는 인간들이 있을 만큼 스카프가 유행이라 번쩍이는 실크 이외에도 다양한 질감과 색감의 스카프가 선을 보이고 있으니 나로선 반갑기 그지없다.

물론 난 그렇게 유난을 떨 정도로 목이 길거나 우아하지도 않고;;;
참을성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여름 지나고 찬바람 불기 시작해서 한 겨울, 그리고 봄까지는 멋스럽기도 하고 보온성 또한 뛰어난 스카프를 애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삶을 단출하게 꾸려야 한다고, 쓸모없는 과잉의 욕심을 버려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좋아하는 물건에 대한 애착은 쉬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해마다 고민고민하다 정리해 버리기도 하지만 옷장엔 여전히 20년 가까이 된 스카프부터 최근에 사들이거나 선물 받은 스카프까지 빼곡하게 매달려 서로 매달라고 나를 유혹하고 있는데(왜 스카프는 해지지 않는 거냐!), 가을이 되면 나는 마치 나쁜 습관을 완전히 끊지 못한 중독자처럼 스카프에 탐닉한다. +_+

몇년 전 늦가을엔 한꺼번에 스카프를 세 장이나 사놓고는, 미쳤어 미쳤어 라고 중얼거리면서 한편으로 풍성해진 스카프 옷걸이를 보며 기뻐한 뒤 스카프 욕심 좀 그만 부리자고 다짐했고, 정 사고픈 스카프가 있으면 내가 사는 대신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누렸었다.
그러나 그 의지력의 약기운이 떨어졌는지, 올해도 지인의 생일선물을 스카프로 고르다가 급기야... 내 스카프도 사고 말았다. 그것도 두장이나. ㅎㅎ

그리고 그 스카프가 조금 전 택배로 배달되었다!
당장이라도 스카프를 두르고 나가 걸으며 바람에 펄럭이는 스카프 자락의 미묘한 흔들림을 만끽하고 싶지만 어느것부터 매고 싶은지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할 수가 없다.
내일 약속 때까지는 정해야 할 턴데... ^_______________^

끝없는 나의 스카프 욕심에 핀잔을 주는 엄마한테 들킬까봐 얼른 별것 아니라고 얼버부리면서 꽤나 찔리긴 했지만, 까짓것, 수십만원짜리 사치품도 아니니 이정도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건 허락될 수 있다고 믿을란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가 속상해서 바야흐로 스카프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사실로 위로 좀 받겠다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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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대신 살림을 하면서 웬만한 음식들은 별 두려움 없이 척척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설거지는 워낙 요리보다 즐기던 거라 별 어려움이 없는데 역시 난관에 부딪치는 부분은 정리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오징어 볶음을 해먹었다고 치자. 일단 접시에 덜어 한끼니를 먹고 나면 당연히 남는 양이 있기 마련.  남은 음식을 뚜껑있는 보관용기에 넣으려고 할 때 난 왜 그렇게 음식 양에 <딱맞는>통을 짐작하지 못하는지.
무쳐놓은 나물이 통에 비해 엄청 많다고 느껴져 다른 그릇을 찾아들면, 엄마는 살림의 고수답게 넘치지 않게 통에 들어갈 테니 염려 말고 담으라고 하시는데 그 말은 늘 옳다.
그래서 또 많아 보이지만 다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관용기를 고르면 턱도 없이 작을 때가 많다. 한 마디로 눈썰미가 형편없고 크든 작든 공간감각이 부족하다는 얘기.

이번 이사 때도 그랬다.
작업실에 책이 얼마 없다고 생각했지만, 옷장 안에 두겹으로 겹쳐놓은 책들과 종류별 크고 작은 사전까지 챙기니 얼추 네박스나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똑똑한 사람 같으면 책의 권수를 세어, 버린 책의 권수와 따져보고 필요한 책꽂이 공간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멍청한 나는 책꽂이 선반을 세 개나 비웠으니 대충 책이 다 들어가겠지... 라고만 짐작했다가
이삿짐을 옮겨 박스를 풀고 나서 또 다시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_-;;

그래서 책 둘 장소 때문에 이번에 뒤늦게 또 대거 내다버린 것들은 비디오 테이프.
옛날에 중고 비디오 가게를 기웃거리며 사들인 테이프들은 그나마도 많이 버리지 못했고^^;;
dvd를 사두기 훨씬 전에 열심히 공테이프에 녹화해두었던 ER 시리즈,
케이블 영화채널 주간편성표를 들여다보며 한참 예약녹화에 힘쓰던 시절에 만들어둔 이런저런 영화 복사본들,그리고 EBS 세계의 명화와 명작드라마 자막번역한 영화들은 최대한 추려내고 다 내다버렸다.
3년간 들춰보지 않은 건 앞으로도 들여다볼 확률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몇편은 교육적인 EBS용으로 편집하지 않은 걸로 소장해두고 싶어서... (라지만 몇년 뒤엔 또 미련 없이 다 버리게 될 것 같다 ㅋㅋ)

내내 마르고 건조하던 날씨가 꾸물꾸물 흐려져 난데없이 비를 뿌리던 지난 토요일 오전.
드디어 나의 <자기만의 방> 시대는 막을 내렸고, 온몸을 근육통에 시달리며 또 다시 이틀 꼬박 이리저리 옮기고 내다 버리고 쑤셔넣어 정리를 했건만, 그럭저럭 제 모습을 찾은 건 마루와 자는 방뿐이다.
첫날엔 큰 집기와 책들만 대충 꽂아두고 엄두가 나질 않아 엄마방에서 자야 했을 정도.
작업실에선 그리 커보이지 않던 책상은 원래 컴퓨터 책상이 있던 자리에 놓이지 않을 만큼 길었고, 그래서 애써 자리를 잡아 옮겨 놓았던 책장은 또 다시 맞은 편 벽쪽으로 옮겨놓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또 다른 살림의 이동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크게 힘쓰는 일은 막내동생이 다 해주긴 했지만, 버리기와 정리 과정은 계속해서 고된 노동이었다.
아직도 컴퓨터방은 여전히 폭탄 맞은 상태. 면벽하듯 모니터를 대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여전히 CD박스, 정리하지 못한 가방들, 사진, 문방구가 가득 든 종이백들이 방바닥에 널려 있다.

그래도 오늘은 기필코 정리를 마치리라 마음 먹고 동사무소에 가서 대형폐기물 신고를 했는데, 크헉 소파는 무려 만원이나 한단다. 버리는 게 수월하지 않음을 상기시켜주듯 소파와 책상, 의자를 버리는데 드는 비용이 만육천원. 
알량한 작업실 살림 이사하면서, 삶은 단출하게 꾸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계속 얻고 있다.
앞으로는 쓸데없는 욕심 줄이면서 검소하게 살아야지.

(아 근데, 구매대행사에 주문한 '검정가죽'가방은 왜 안오는 걸까...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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