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19.06.04 예쁘면 뭐든 좋댄다
  2. 2019.05.24 산후 우울증 4
  3. 2019.05.22 아마도 인생의 전환기 5
  4. 2019.05.17 유전이면 어쩌나 6
  5. 2019.05.09 엄마의 우울증 4
  6. 2019.04.06 전기렌지 4
  7. 2018.05.29 기억력 4
  8. 2018.04.24 손목 부실 8
  9. 2018.01.30 취미 자수 시작 5
  10. 2016.12.19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5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뭐든 예쁘면 혹하는 본능을 버릴 수가 없다. 자연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아름다운 대상에 더 끌리는 걸 어쩌란 말이냐. 암튼 예쁘면 다 용서되는 세상이 불만이면서도 나 역시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ㅎㅎ

심지어는 병원과 약국도 예뻐서 다니는 사람이 나였어! ㅋ 

원래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내과를 작년부터 한달에 한번씩 약 타러 다녔었다. 그런데 올초 와병으로 퇴원 후 약을 먹어도 계속 아픈 다리 통증 때문에 징징 울고 있을 때, 주말에 반찬 싸들고 왔던 막내올케가 그냥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다른 병원에라도 다시 가보자고 나를 꾸짖으며;; 주말에도 늦게까지(무려 저녁6시까지)진료하는 옆 동네 병원을 찾아 나를 처음 그곳으로 데려갔었다. 

동네 병원이야 다 똑같지 뭐;; 그런 생각이었는데 첫눈에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밤색 원목 바닥과 싱싱한 화분과 의자들이 언뜻 보면 카페 같은게 아닌가. 화려하게 꾸민 성형외과나 피부과 인테리어랑은 또 좀 다른 느낌. 의사 선생님도 조근조근 세심하고 친절했고, 간호사샘들도 꽤 여러명인데 시끄럽지 않고 다정했다. 내가 소리에 은근 민감해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 특유의 톤 높여 내지르는 목소리가 넘 싫다. 가뜩이나 통증 때문에 짜증 만빵인데 목청 높여서 이리 오시라 저리 오시라 5천원 되시겠다... 뭐 이런 말을 들으면 꽥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었다. 

작은 동네 의원엘 가보면 간호사를 많이 두지 않는데, 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함이란 걸 안다. 그러니 수납하랴 환자 안내하랴 바쁘고 어수선하고 간혹 불친절하거나 퉁명스러울 때가 있다. 근데 여긴 나이대가 골고루 분포한 간호사+직원들이 꽤 여럿이고, 환자마다 근처 약국을 안내하는 똑같은 멘트를 수십번 반복하면서도 다들 사근사근했다. 직원 복지가 괜찮은 모양이라고, 쓸데없는 생각까지 했다. 박봉에 시달리면 당연히 표정부터 찌들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작년부터 정형외과 외과 영상의학과 종류별로 동네 병원을 다니면서 나름 파악한 결론이다. 

하여간에 그 병원에서 다시 처방받은 진통소염제가 원인미상의 내 통증에 또 별 소용이 없었다면, 병원 인테리어와 친절함이 마음에 들었든 말았든 다시 갈 생각을 안했을 텐데, 우왕... 그날은 약을 먹고 그나마 몇 시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고 드디어 혜자로운 의사쌤과 약을 만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게다가 토요일 늦은 오후에 진료하는 병원과 세트로 늦게까지 여는 근처 약국은 주택가 2층집의 1층을 개조해 쓰고 있었는데, 약국 또한 예쁜 게 아닌가! 병원 의사샘과 약국 의사샘이 아마도 부부가 아닐까? 올케랑 속닥속닥 추측하며 약을 지어나왔었다. 처음 몇번은 그냥 주택을 개조한 약국 외관이 정겨운가보다 했었는데 내부에도 내 취향의 장식품이 있더라는;; 

설리랑 마이크 브릭이 있다니! ^^ (인스타그램에도 올린 적 있는 옛날 ㅂ약국 내부) 

암튼 그래서 별로 가깝진 않지만 나름 옆 동네에 있는 이 내과병원과 약국에 꼬박 2달간 다니며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먹었고 결국 통증에서 차츰 해방되었다. 당연히 이젠 감기약도, 혈압약도 이곳으로 타러 다녔는데 우잉.. 3월 말 병원과 약국은 나란히 500미터쯤 떨어진 건물로 이사를 갔다. (함께 이사한 것만 봐도 분명 둘은 부부 관계이거나 인척이 틀림없다! ㅎㅎ). 

2달 만에 처음 이사한 병원과 약국엘 가봤는데, 약국엔 아쉽게도 브릭 장식품들이 다 사라져 아쉬웠다. 2층 주택의 낮은 천장과 벽을 활용한 인테리어여서 일반 건물엔 어울리지 않았거나 놓을 곳이 없었겠지. 그래도 여전히 베이지색 원목 장식장을 둘러 주인장의 담백함과 깔끔함이 반영된 약국 인테리어였던 것 같다. 

병원도 분위기가 전과 달라져, 훨씬 더 환하고 눈부신 느낌이었다. 흰 벽때문이겠지? 키다리 의자 놓인 벽에 작은 그림 붙여 놓고 화분 올려둔 건 마음에 들고 여전히 예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병원 인테리어. ^^ 뭐 물론 의사쌤과 간호사쌤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병원을 나서며 기분이 좋았다. 동굴로 드나드는 느낌이 드는 계단 벽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나? ㅎㅎ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는 걸 뿌듯하게 생각하며 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제발로 걸어서 병원엘 잘도 찾아간다. 아직도 좀 버티기 증상이 있지만 저번에도 요번에도 감기를 앓아보니, 예전처럼 그냥 며칠 버텨서는 그냥 지나가지도 않고 증상이 종합세트로 나타나 너무 힘들었다. 이 또한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어쩌겠나. 이왕 갈 병원, 예쁘고 마음에 드는 곳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 여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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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 우울증

아픈 손가락 2019. 5. 24. 00:33

울 엄만 어쩌다 조울증 환자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딸로서 나의 최대 의문이다. 엄마 본인의 말로도, 외가 친척들의 이야기로도 가족력은 없다는데 엄만 대체 왜?

이 질문에 확실한 해답을 얻게 된다면, 나 역시 조울증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 잠재적 환자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나의 공포도 얼마간은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를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는 외할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에게 슬며시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가신지 벌써 십수년이 된 외할머니는 엄마가 마음의 병을 얻은 이유를 '너무 착해서'라고 믿으셨다. 울 엄마가 바보같이 너무 착해서 할 말 못하고 참다가 병이 났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외할머니에겐 못되 처먹은 시누이였고 울 엄마에게도 아동학대에 가까운 가사노동을 시켰던 고모할머니는 '가난과 고된 시집살이' 탓을 했다. 친정 살땐 그래도 웬만히 살았는데 시집가서 보니 시아버지는 엄하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해 맏며느리로서 남편과 함께 12식구를 먹여살리느라 고생한 탓이라나. 그래서 울 엄마가 아프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고모할머니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늬 아버지가 착해 빠져가지고 능력이 없어!) 친가 식구들을 욕했다.

그럴법한 이야기지만 나로선 또 의문이 생겼다. 나의 부모님은 고3때 동네 친구로 처음 만나 햇수로 8년이란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한, 1960년대 당시로선 꽤 드문 연애결혼파다. 애인이 대학 입시를 거쳐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하는 동안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엄마가 결혼을 결심했을 땐 예비 남편감의 가난과 8남매의 장남이라는 무게도 이미 알고 있었을텐데? 어려서 내가 아빠의 어떤 점에 반해서 가난한 집 8남매 장남에게 시집을 왔느냐고 엄마에게 물으면, 엄만 장녀라서 그런지 맏며느리란 존재가 좋아보였다고 했다. 물론 막연한 상상과 실체는 엄청 달랐겠지.

하여간 예상 밖에 고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너무도 힘겨웠다면 결혼 직후 발병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검찰청 공무원이었던 엄마는 나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만에 첫딸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뒤 다시 복직했고,  연년생인 남동생을 낳은 뒤에도 곧바로 복직해 별일 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문제는 나와 4살 터울인 막내동생을 낳고나서부터였다.

나이 많은 우리 할머니 대신 엄마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학교에 쫓아다니며 학부형 노릇을 해주었다는 넷째 고모와 막내 고모의 최근 증언에 따르면 ^^;  울 엄마가 처음 조울증 증상을 보인 건 막내동생을 출산한 다음이었다고 한다. 검찰청 소속 첫번째 타이피스트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엄마는 당시 여직원의 정년이 31살쯤(헉! 겨우 만 30세?)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또한 공교롭게도 최근 정신과 주치의를 만난 자리에서 엄마가 직업병으로 끝이 구부러진 손가락들을 보이며 하신 이야기다.)  그래서 셋째를 낳은 뒤엔 복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셋째 출산 이후 엄마의 산후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온 집안에 난리가 났었다는 고모들의 증언을 듣고 보니 시기가 얼추 맞아떨어지기는 하는데, 전후 관계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엄마는 과연 산후 우울증 때문에 제대로 복직이 어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강제로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아야하는 인생의 변화를 함께 겪으며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심한 마음의 병을 얻게 된 것일까? 내가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으로 갖고 있는 요란한 굿 장면이 바로 막내동생이 태어난 이후 어느 즈음의 일인 것 같다. 

요번에 고모들과 대화를 나누며 또 하나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 정확하게 내가 몇살 때인지 좀 더 역사를 추적해보아야 하겠지만, 부모님은 첫딸인 나만 친가에 맡겨놓고 아들 둘만 데리고 분가를 했었는데, 그 이유가 글쎄! 외할머니가 어디 가서 점을 본 결과 '동쪽으로 이사를 가야 병이 낫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아버지의 직장 근처인 광진구로 이사를 했다는 것! 물론 매주말마다 엄마아빠가 할머니댁에 와서 자고가는 시스템이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분가로 할머니댁에서 한참 살다가 3학년때 비로소 부모님댁으로 합류했다. 

무속인의 점괘가 맞았을리 만무하므로, 물론 엄마는 광진구로 분가를 한 이후에도 계속 심하게 아팠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디 어린 삼십대 부부는 참 많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넷째 고모가 걱정스러워 분가한 집에 가보면 엄마는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자책하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하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늘 애처가였던 아버지는 병든 아내 수발이 괴로워 연일 소주를 마셔댔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엄마의 조울증 발병에 관한 실마리 하나를 푼 셈이다. 가끔 뉴스에도 보도되지만 산후 우울증은 사람에 따라 정말 무서운 병이다. 느즈막히 결혼을 해 마흔살인가 마흔 한 살에 첫 아이를 낳은 나의 친구 역시 출산 후 무서운 우울증을 앓았다. 저절로 모성애가 뿜어 나오기는커녕, 너무도 무기력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는 갓난아기 돌보기가 힘들고 괴로워 나쁜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고 결국 아기의 안전을 위해 친구는 시댁에 아기를 보내 백일까지 떼어놓고 치료를 받았다.  울 엄마가 평생 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듯이, 그 친구 역시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몇년에 한번씩은 다시 마음의 병이 찾아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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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이 흔들리지 않는 나이이긴 개뿔, 지금 돌아보면 전과 변함없이 유치하고 철없이 살았던 것 같다. 다만 인간 나이 마흔쯤 되면 이루어놓았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들이 하나도 없어서 민망하고 위축되었을 뿐. 그렇게 또 어영부영 사십대를 보내고 나니 왜 옛날 사람들이 인생을 10년 주기로 달리 표현하고 전환점을 삼았는지 알 것도 같다.

인간에게 오십이란 나이는 확실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는 시기다. 물론 삼십대 때도, 사십대 때도 밤샘 작업을 했다거나 몸을 많이 쓸 일이 있었을 때, 피로도가 전과 달라서, 아이고 몸이 하루가 달라...라며 엄살을 부렸다. 그러나 그때 느꼈던 신체의 쇠락이 막연한 서글픔과 약간의 피로감이었다면, 오십을 넘어서 느끼는 신체 변화는 어찌나 극적인지 '노화는 결국 질병이었구나' 깨닫는다. 

갱년기는 남녀 모두 겪는다고 하지만 특히 여성들은 차츰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다 폐경(혹은 완경)에 이르면 너무도 낯선 심신의 변화를 겪는 것 같다. 가끔 자긴 갱년기를 모르고 지나갔노라고, 안면홍조증이나 열감도 전혀 없었다고 자신하는 이들이 있어 안심했었는데 '지랄총량의 법칙'처럼 그런 증상 또한 평생에 한번은 꼭 겪어야하는 건지, 60대에 이르러 새삼 갱년기 증상으로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사십대 후반과 오십대 초반에 다른 더 무서운 질병의 형태로 발목을 잡히는 걸 목격한다.

작년, 재작년부터 지인들 가운데 암환자가 부쩍 늘었다. 한 친구는 사십대에 조기폐경을 하고도 아무런 갱년기 증상이 없었다. 귀찮은 생리에서 자유로워지니 정말 세상 편하다고 한두 살 어린 우리들에게 어서 편한 어른들의 세계로 넘어오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는데... 작년에 췌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중이다. 두살 어린 친구도 얼마 전 자궁과 난소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다섯살 어린 후배 역시 조기폐경인가 싶어 검진을 받았더니 위암이었고 복막에도 전이가 되어 아직 수술도 하지 못하고 항암중이다. 두 살 많은 선배 한 사람도 최근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다. 어휴. 

건강한 줄 알고 지내다가 갑자기 암환자로 전락한 지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들 안면홍조라든가 겨울에도 갑자기 더워져서 얼음물을 들이키고 선풍기를 틀어야한다는 열감 같은 갱년기 증상이 없었다. 그냥 오십이란 나이를 수월하게 맞이하거나 지나가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나와 9살 차이나는 막내고모도 흔히 호소하는 갱년기 증상은 없었으되 면역력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원인불명의 자가면역질환으로 오십대 중후반 몇년간 혹독하게 아팠다. 나 역시 2, 3년 전부터 수족냉증을 차츰 떨쳐버릴 만큼 체온이 좀 올라간 듯하고 더운 걸 못참게 되기는 했지만 얼굴이 확 달아오르거나 후끈후끈 열감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작년에 드디어 완경을 선언하며 이 정도면 나 역시 불편한 월경에서 자유로워진 걸 완전 기뻐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올초에 갑자기 허벅지 통증으로 2달쯤 심하게 고생을 했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결국엔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온갖 값비싼 검사로 병원비만 날렸을 뿐이다. 단일신경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나 그건 검사로도 알아낼 수 없다나. 투덜대는 내게 아는 의사쌤이 농담처럼 말했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심각한 중병은 이제 거의 다 치료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소소한 질병의 대부분은 원인조차 모르는 게 태반이라 진단만 제대로 내리면 치료의 절반은 된 셈이라고. 대학병원 의사가 내게 통증에 효력이 있는 소염진통제를 찾은 게 어디냐고, 감사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여간 다행이도 이젠 다리도, 소염진통제 때문에 뒤집어졌던 위도 거의 멀쩡해졌다. 통점이 완전 사라진 건 아니어서 살짝 무리를 하면 저기 아래쯤에서 스멀스멀 그날의 느낌이 되살아나지만, 성난 짐승 달래는 요령이 생기듯 나 역시 얼른 자세를 바꾸고 휴식을 취하고 염증에 좋다는 온갖 건강보조제를 삼키며 심신을 다스리고 있다. ㅠ.ㅠ 비전문가로서 내가 짐작하는 건 확실히 오십대에 접어들며 호르몬 변화 때문이든, 인체의 장기가 원시시대부터 입력된 DNA대로 수명을 다한 것이든, 모든 면역력이 확~~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다는 암세포는 체온이 내려갔을 때, 그러니깐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활동성이 높아지므로, 갱년기에 유독 몸에 열이 많이 나서 밤마다 땀흘리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심각한 질병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흔한 신체 변화를 겪으며 이 시기를 지나간다는 건 차라리 건강하다는 반증? 

호르몬이 급격하게 변했는데 신체증상이 없으면 반길게 아니라 오히려 걱정을 해야하는지도 모른다. 발열반응을 보여야하는 건강한 세포들이 어딘가 다른 데 몰려가서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는 나쁜 세포들과 싸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나처럼 이유없는 염증이 생기고, 누군가는 암세포가 몸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건강을 자신했던 주변 지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중병 환자가 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임을 안다해도 어떻게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산단 말인가! 

2년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해보면, 체중과 근육량 때문에 성분검사에서 신체나이만 젊게 나올뿐 ㅠ.ㅠ 여기저기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표재성 위염도, 약간의 빈혈도, 그밖에 몇 가지 증상들도 흔하게 다들 갖고 사는 거라지만, 막상 몇년 전 실비보험을  들으려 하니 퇴짜를 맞았다. 와, 나 겉포장만 멀쩡해보일 뿐 이제 보험도 못드는 몸이 되었네! 라는 생각에 어찌나 씁쓸하던지. 

건강염려증 환자로 살고 싶진 않으면서도 일단 한번 호되게 아프고 나니 자신감이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서 면역력을 높이고 염증에 좋다는 어성초도 먹고, 새싹보리도 먹고, 비타민도 챙겨먹고, 가능한 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삶으로 바꿔보려 노력중이다. 일단 금세 피곤해져서 무리를 할 수도 없고!  ㅋ 인간은 결국 모든 나이를 처음 경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 현재 나이에 적응이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한 목표같다. 달라진 심신에 적응할라치면 또 훌쩍 늙어버리는 걸 어쩌라고. 죽는 건 겁나지 않아, 죽도록 아플까봐 그게 겁나지. 내가 감히 깝죽대며 늘 입에 올리던 말인데 이젠 더 나이드는 것부터 겁이 난다. 인생의 전환점을 꼴까닥 넘긴 지금...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짧을 것은 확실한데,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심신을 괴롭히는 복병들이 나타날까.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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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아니 조울증 환자 엄마를 어려서부터 지켜보며, 처음엔 아픈 엄마가 낯설고 무서웠고 사춘기땐 거의 해마다 되풀이되는 상황에 짜증이 났었고, 그다음엔 나도 유전인자를 갖고 있어서 엄마처럼 정신과 환자가 될까봐 더럭 겁이 났다. 그땐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이 있을 때도 아니었으니 책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은 얻기 어려웠다. 시기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 나는 결국 엄마의 주치의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우울증도 유전이 되나요?

엄마를 10년도 넘게 담당하던 민OO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별 걱정을 다 한다고, 유전되지 않으니까 염려 말라고 단박에 나를 안심시켰더랬다. 전문가의 확인으로 내심 안도했던 시기가 몇년은 되었던가? 그러나 그 이후 우울증 및 조울증과 신경증에 관한 책들이 다양하게 출판되기 시작했고, 저자마다 조금씩 주장은 달랐지만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 역시 유전적 요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유전적 요인에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서 병이 촉발되는 건 모든 질병이 다 똑같단 얘기.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불안증에 시달리는 딸 이야기가 나온다. 지은이는 외할아버지로부터 공황장애와 불안증, 우울 인자를 물려받았다지 아마. 토할까바 두려워 유치원 등원하는 게 공포스러웠던 걸 시작으로 저자의 불안증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던데, 울 엄마의 조울증 투병 역사도 만만치 않다. 다만 엄마와 외가 친척들이 아는 한 울 엄마 이전에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는 (옛날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미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부디 엄마의 병은 유전이 아니고, 그러므로 우리 삼남매도 비록 엄마의 DNA를 물려받았더라도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기를 빌고 있다. 하긴 중년까지 잘 버텼으면 앞으로도 괜찮을까?

째뜬 난 엄마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싶진 않아서 어려서부터 방어기재를 작동시켰던 것 같다. 엄마처럼 하고픈 말을 무조건 참지는 말아야지. 남들 시선과 의견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지. 예민함이 하늘을 찌를 때면 에라 모르겠다, 다 놓아버리는 연습도 해야지. 화병이 나도록 착한 사람 노릇만 하지는 말아야지. 때로는 사납고 표독스러운 쌈닭이 되어야지. 그리고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까발려야지...

어쩌면 남들에게 부담스러운 정보였을지 몰라도 난 누구를 만나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할 전망이 보이는 이들에겐 내가 처한 상황, 특히 엄마의 조울증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던 것 같다. 워낙 자주 앓으셔서 ^^; 아픈 엄마를 온 가족이 번갈아 돌보려면 주변에 티를 안 낼 수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거다. 상태가 나빠진 엄마를 혼자 둘 수가 없을 땐 약속을 펑크내야 한다든지, 예약해둔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일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황장애 환자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가 덜했던 시절부터 환자의 가족인 난 아무래도 주변에 좀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의 상태를 발견하는 '촉'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불면과 무기력감, 자학하는 태도까지 보이는 친구나 지인을 보면 열심히 설득해 병원진료를 받게 했다. 우울증 약으로 도움 받는 게 뭐가 어때서? 우울증은 뇌에서 나쁜 물질이 나와서, 혹은 좋은 물질이 안 나와서 그러는 거래! 초기에 빨리 시작하면 약으로 완치 된대! 일단 병원에 가보자...

돌이켜보면 그들 가운데서 부모님이나 조부님 세대에 증상을 앓은 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그저 주로 마음 약하고 소심하고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고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약을 계속 먹고 치료를 받아도 완치는 되지 못해 혈압약이나 당뇨약 먹듯 매일 신경안정제를 먹는 지인도 있고, 말끔히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언제 그랬었냐는 듯 씩씩하게 잘 사는 지인도 있고, 처방된 약을 먹었다 말았다가 치료에 갈팡질팡하는 지인도 있다. 

기비혼을 가리지 않는 나의 우울증 환자 지인들도 혹시나 자식에게 유전될까봐 걱정하고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집안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확실히 우울감은 전염되기 쉽다는 거다. 점점 와병 기간이 길어지는 엄마 옆에서 시달리다 보면 나 역시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다. 힘들고 슬프고 암울하고...

작년 늦가을부터 겨우내 엄마 상태가 나빠져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 내 마감까지 겹쳐 심신이 완전히 피폐해졌을 때 설상가상 다리 통증이 생겼고, 홀로 한밤중에 응급실에 찾아가 덜컥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땐 나의 정신 건강 상태도 정말 말이 아니었다. 엄마는 계속 정신이 온전치 않아 사사건건 내가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종일 진통제 기운에 누워있다가 절뚝거리는 다리로 일어나 징징 아파 울면서 끼니를 챙기노라면 어휴... 짐스러운 엄마랑 나랑 둘이 이 세상에서 확 없어져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이 가끔 들기도 했다. 물론 곧바로 어머 이거 우울증 환자의 반응인데! 반성했지만... 

당연히 조울증의 유전 여부에 대해선 의학전문가도 아닌 내가 결론을 내릴 순 없다. 다만 내가 현실에서 겪고 느껴왔던 경험상 100% 유전되진 않겠지만 유전인자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겠다 정도?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찾고 무거운 마음은 어디든 털어놓고 주변에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고... 지금껏 노력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헤쳐나가면 되겠거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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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여성 페미니스트'라고 할 때 퍼뜩 떠오르는 몇몇 인물 중 한 사람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인생>을 읽었다. 어느덧 80세가 된 투사 활동가의 이야기 속엔 인상 깊은 구절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독자 입장에선 나와 연결된 듯한 사연이 특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사주관상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딱 '역마살'이라고 표현할 만큼 평생 돌아다니며 산 작가의 인생도 신기했고 (나 역시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뿐 수시로 품는 여행 로망을 역마살 탓이라 여긴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작가 어머니의 우울증이었다.  별 내용도 아닌데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구절은 바로 이것.

"어머니는 슬픈 영화나 상처 입은 동물처럼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우울증이 도질 수 있었다." - <길 위의 인생> 204쪽.

와, 우리 엄마만 그러시는 게 아니구나! 이런 동병상련? 위로받는 느낌? '우울증'이 단순한 개인의 감정 기복이나 의지박약이 아니라 병증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서구에서도 현대사회에 들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전쟁 이후 먹고 살기 바빴던 6, 70년대의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은 당연히 별것 아닌 나약함의 표상이거나 괜한 투정이거나 '귀신의 소행' 쯤으로 생각됐던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이 굿하는 장면이고, 무섭게 생긴 무당이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우리 엄마에게 살아 있는 닭을 던져 푸드득 날아올라 엄청 무서웠던 게 생각난다는 고백을 서른 살 무렵 처음 털어놓았을 때 이모가 엄청 놀라셨던 적이 있다. 그거 너 서너 살 때 일인데 어떻게 그걸 기억하냐며. 시집살이가 고됐던 게 원인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마음에 병이 든 엄마 상태를 외할머니는 굿을 해서 해결하려 했던 모양이다. ^^ 물론 무당굿은 우울증에 아무런 효험이 없었고, 엄마는 결국 당시 드물게 신경정신과 진료를 했던 고려병원(현 강북 삼성병원) OOO박사의 초창기 환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한 엄마가 우울증과 싸워온 역사가 최소 50년 가까이 된다는 뜻이고, 어린 시절부터 몇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엄마의 우울증(조울증)과 투병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수많은 의문에 휩싸였다. 첫번째 의문은 우울증 발병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 외가 쪽에선 '멀쩡했던' 엄마가 시집 가서 애 낳고 살다 우울증에 걸렸으니 호된 시집살이와 가난이 이유일 거라고 친가 탓을 했었다.  그럴 법한 추론이지만, 정말로 최초의 우울증 발병이 결혼 이후일까 하는 점에 대해선 친척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엄마 본인도 그 점에 대해선 확신이 없으신 것 같고...

하여간 어려서부터 줄곧 지켜보며 나름대로 내가 파악한 우울증 촉발 인자는 대체로 갱년기, 계절 변화, 스트레스였다. 처음 폐쇄병동에 입원까지 해야했을 정도로 엄마의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심해졌던 건 내가 스무살 때였는데, 사십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엄마가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지 않았나 짐작된다. 째뜬 과거의 엄마는 몇년에 한번씩 우울증이 재발했을 때만 정신과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으나, 언제부턴가 1년 내내 우울증 치료제를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있는데도 노년이 된 엄마는 이제 일년에도 몇번씩 증상이 오락가락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해 자꾸 약을 바꿔야하는 지경이다.

작년에도 11월부터 상황이 나빠져 정말 힘들었고, 넉 달이 지난 올해 설날 무렵에야 비로소 우울증이 좀 진정세를 보였다. 투약 종류와 양을 조금씩 늘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다 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거의 정상 상태'가 되었다고 주치의가 안심했던 게 지난 4월 초였는데... 말짱한 기간을 한달도 채우지 못하고 엄마는 지난주부터 다시 불안 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니 대체 왜 또? ㅠ.ㅠ

스타이넘의 어머니처럼, 울 엄마의 우울증이 다시 도지는 이유도 이젠 딱히 꼽을만한 게 없다. 일조량이 달라지는 환절기라든지, 명절의 부담감이나 친척의 중병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라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환절기도 잘 지나갔고 딱히 '이슈'도 없는 요즘 대체 왜 그러시는가 말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어버이날 기념으로 예쁜 손주들과 자식들 만나 맛있는 거 먹고 용돈도 받고 그러시는 행복한 시기에 하필 참나. 불안 증세가 심해지고, 그러면 약을 먹어도 잠들지 못하는 불면이 이어지고, 불안이 깊어지면 도리어 흥분 상태가 되거나 무기력증을 보이기도 하는데, 부디 이번엔 너무 길지 않게 살짝만 앓다 지나가면 좋겠다. 가족이 아프면 다른 가족도 덩달아 아프고 맥빠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 엄마의 우울증 때문에 괴로운 마음을 당분간은 블로그에 풀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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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렌지

아픈 손가락 2019. 4. 6. 17:54

몇년 전 부엌 씽크대와 수납장을 새로 하면서 쿡탑으로 바꿨던 가스렌지를 버리고, 2월에 전기렌지를 들였다. 가스렌지로 음식을 조리하면 불완전 연소된 가스 때문에 집안에 일산화탄소 농도가 엄청 높아 환기가 필수라는 말도 들었지만, (그래서 할아버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생 부엌에서 조리를 많이 해온 할머니들이 치매에 걸리는 확률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그보다는 작년부터 깜빡깜빡 건망증이 심해져서 자주 냄비를 태우는 엄마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이 들면 미각만 둔해지는 것이 아니고 후각도 많이 둔해지는지, 엄마는 국이나 찌개를 데우려고 가스불을 켜놓고는 뒤 돌아 앉아 식탁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타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하셨다. 기껏 아침에 혼자 차려 드실 때 데워드시라고 한밤중에 신경 써서 끓여놓은 쇠고기 뭇국이나 된장찌개를 한끼도 제대로 못먹고 새까맣게 태워버릴 때는 정말... 눙물이 앞을 가렸다. ㅠ.ㅠ 일주일이 멀다하고 시커멓게 된 냄비를 닦으면서 화도 났지만 이러다 엄마가 집을 홀랑 태워먹지나 않을까 두려워졌다. 넘친 국물 닦던 행주를 가스렌지 옆에 그대로 놓았다가 불을 낼 뻔한 적도 있었으니...

암튼 불안불안하던 차에 정수기 렌탈 업체에서 전기렌지 행사기간이라며 살살 꼬드긴 김에 홀라당 넘어가, 가스렌지를 없애기로 한 거다. 물론 걱정이 없진 않았다. 자타공인 '기계치'인 엄마가 전기렌지를 제대로 사용하실 수 있을까? 도시가스 중간밸브도 잠가놓으면 당황해서 가스불을 켜지 못해 노상 중간 밸브를 열어두고 살아야 했는데 말이다.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전기렌지 사용법을 '나름 세심하게' 메모지에 적어 렌지 옆에 붙여놓았음에도 엄마는 두 달이 다 되가도록 사용법을 익히지 못했다. 가스렌지는 손잡이만 눌러 돌리면 단번에 불이 켜지는 데 반해 전기렌지는 먼저 전원을 켜고-->냄비 위치를 정해 누르고-->불세기 숫자를 누르는 3단계 행동을 거쳐야 불이 켜진다. 이 과정을 너무 오래 뜸들이면 삐삐 거리면서 또 전원이 자동으로 꺼진다. 가스렌지처럼 불이 붙었는지 한눈에 확인도 어렵다. 전기가 들어오는 소리가 징~ 하고 들리지만, 보청기를 껴야 하는 엄마의 청력으론 그게 잘 안들리는 것 같다. ㅠ.ㅠ 그나마 3구 전기렌지 중 한 군데는 인덕션이 아니라 빨갛게 불이 들어오는데, 그곳만 사용하시라고 집중적으로 교육을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해서 요즘 엄마는 전기렌지와 씨름하다 포기하고 '전자렌지'에 국이나 찌개를 데워먹는 방법을 택하거나 아예 국물요리를 포기하기 일쑤다. 왜 자기 혼자 있을 때 누르면 잘 안되는지 당신도 잘 모르시겠단다. 내가 보는 앞에서 3단계 작동법을 시연해보라고 하면 또 곧잘 하시던데... 물론 간혹 혼자서 '성공적으로' 전기렌지를 켜 국을 데워드신 적도 있지만, 그럴 땐 또 다 데운 뒤에 '끄기'를 누르지 않아서 또 다시 국 한 냄비를 홀라당 태워버린 전적이 2번이나 있다. 잠자다 말고 타는 냄새에 놀란 내가 뛰쳐나와 전원을 껐으니 망정이지. 엄만 내가 뛰어나와 불을 끈 뒤에야 비로소 탄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전기렌지 사용법을 적은 글귀가 너무 헷갈리나 싶어 다시 더 간단하게, 그림까지 곁들여 붙여 놓은 적도 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1, 2, 3단계를 거쳐야하는 작동법 자체가 엄만 그냥 복잡하게 여겨져 싫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엄마가 더 복잡한 스마트폰도 쓰시면서, 카톡으로 사진도 보내고, 찍은 사진 편집도 해 저장할 줄 알면서, 전기렌지 3단계가 뭐가 그렇게 어렵다는 건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자, 정말로 기계치라서 스마트폰도 전화 걸고 받고, 카톡과 문자, 사진찍기 이외 기능은 전혀 쓰지 않는다는 후배 하나가 자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된단다. 햄버거집이나 새로 생긴 쇼핑센터 푸드코트 같은데서 무인계산기 앞에만 서면 얼마나 진땀이 나는지 모른다나. 그 친구는 폰뱅킹, 인터넷뱅킹도 할 줄 몰라 은행업무도 ATM 머신을 꼭 찾아다니는데, 머잖아 자기 같은 사람은 퇴출 인류가 될 수도 있겠다며 걱정을 했다. 그러니 전자렌지 가지고 엄마한테 너무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 

올해로 79세가 된 엄마는 또래들 중에선 나름 인텔리고 지적인 욕구도 많으며 이 동네에선 꽤나 세련된 (아프지 않을 때만!) 할머니로 통하지만 그간 여러 지병을 앓아오며 자기가 되게 늙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건강과 관련해서 내가 조금만 잔소리를 할라치면 듣기 싫어서 내 입을 막으려는 수단으로 '내가 빨리 죽어야지' '빨랑 죽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된다' 카드를 휘두른다. 으익! 당뇨병환자임에도 단것, 열령 높은 것만 탐닉하며, 결과는 나 몰라라 하는 엄마를 보면 딱 유치원생 수준이니 그렇게 대해야한다고 마음을 다지면서도, 아직은 건망증 수준일 뿐 치매환자도 아니고! 우울증이 심하지 않을 때는 제발 든든한 우리 엄마로 자식들 입장과 사정도 좀 배려해주는 주는 마음을 품어주시길 바라게 된다.  

새로운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화에 적응 못하는 것이 노인의 특성이라지만, 엄마가 스마트폰에 적응해 어느새 중독자가 되어 하루종일 들여다보시는 것처럼 설마 전기렌지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지겠....지? 꼭 그래야한다. 모녀가 자꾸만 부딪치는 건 까탈스러움이나 잘난척의 정도가 둘 다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란 걸 느끼는데 ㅠ.ㅠ 엄마의 현재가 미래의 내 노년의 한 모습이라면 너무 슬프다. '너도 늙어봐라'고 장담하는 엄마한테 난 좀 다를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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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아픈 손가락 2018. 5. 29. 16:44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나, 이젠 그런 말을 하기 민망하다. 책이나 영화 제목, 배우 이름, 여행갔던 장소... 머리속에 이미지로는 맴도는데 콕 찝어서 원하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놓기 힘든 순간들이 점점 많아진다. 걸핏하면 그거 뭐지...라며 말 꺼내는 친구들 놀리던 게 불과 1, 2년 전이었건만... 그 영화 뭐지? 로드무비, 여자 친구 둘이 마지막에 벼랑으로 차 몰고 떨어지는 거... 아, 그거.. 그게 뭐더라. 키 큰 여자 둘이... <델마와 루이스>? 맞다! 근데 그 배우 이름이 뭐였지? 수잔 서랜든이랑.... ㅠ.ㅠ... 

결국 이날 친구들과 나는 포털사이트 검색 찬스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나 데이비스가 도저히 생각이 안나는 거라! 에효...  

오십대 초반인 내가 이럴진대 칠십대 후반인 왕비마마의 기억력이야 점점 나빠지는 게 당연하다. 뭐든 깜빡깜빡 하는 건 중노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려니 해야할 것 같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반복되는 이야기를 싫어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엄마도 나도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와 하루 일과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암튼... 기억력이 부쩍 떨어진 건 그러려니 하겠으나, 원래도 조울증 환자라 늘 조마조마한 울 엄마의 경우 지난 봄 환절기를 지나며 퍽 염려스러운 상황이 많았다. LA 친구가 우리집에서 한달 기거하며 무수리 딸이 노상 밖으로 놀러다니느라 약간의 방치를 했던 상황이 노친네에게 녹록치 않아 스트레스가 많겠거니, 나름 감안하더라도 일단 화가 너무 많아지셨다. 

친구와 나는 그래도 나름 하루 건너 한번씩은 종일 집에서 뒹굴며 보필한다고 했는데, 딸 친구가 있건 없건 아랑곳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순간이 많았다. 워낙 남의 시선과 이목을 신경쓰는 타인지향적 태도를 일관해오신 분으로선 의아할 정도였다. 모녀간에 서로 혹독한 언사를 던지는 건 일상 다반사지만 ㅠ.ㅠ 아무리 한달째 기거하는 동거인이라고 해도 딸 친구에게 막 대하실 분은 아닌데... 

본인도 기억력이 많이 떨어진데다 감정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다는데 동의했고, 결국 인지능력검사를 의뢰했다. 울 엄마를 포함한 모든 노인들의 제1공포가 치매에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나도 모르게 잃어가다 결국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질병이 다 있다니, 어휴 참 끔찍한 일이다. 원래도 엄마는 6개월에 한번씩 보건소 부설 치매지원센터에서 인지검사를 스스로 해보시는 분이다. 그래서 100에서 7을 연속으로 빼는 연산이라든지, 오각형 두개를 겹쳐놓은 그림을 따라 그려보는 테스트 같은 건 아예 암기할 정도다. 아마 나 보다 더 빨리 대답하고 그릴 걸!

친구의 말로는 정밀 인지능력검사는 본인과 보호자 둘 다 문진을 한다고 해서 (그날 먹은 아침 메뉴라던지, 인척들 가족관계, 인생의 큰 사건 같은 게 정말로 맞는지 따로 물어 서로 대조해본다고 한다) 나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뭔가 단계가 다른 테스트였던 듯 세브란스 병원에선 환자만 1대1로 상담을 했다. 울 엄마의 말로는 보건소에서 하는 무료 인지능력검사와 크게 차이도 없었다는 것 같다. 괜히 비싼 검사비만 버렸다고 하심. 진짜 그런지는 나로선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래도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설문이 설마... +_+ 솔직히 나는 뇌사진도 찍어보자고 그럴 줄 알았는데, 문진으로 끝나는 게 좀 의아했다. 물론 울 엄마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으시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암튼 일주일간 두근두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주치의 상담을 기다렸다. 검사 당일 불안초조해서 그런지 워낙 잠을 설치고 가셨기 때문에, 결과가 좀 나쁘더라도 그러려니 하시라고 컨디션에 따라서 기억력은 크게 좌우된다고 엄마에게 미리 당부한건 곧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드디어 정기검진 날, 검사 결과가 어떻느냐는 우리 질문에 의사는 '좀 애매하다'고 웃으며 답했다. 보통 동년배 평균 기억력보다 30% 이상 떨어지면 초기 치매 판정을 하는데, 울 엄만 15% 쯤 떨어지셨단다. 100명 중에 50등 하면 되는 건데;; 끝에서 20등 정도 한다고 보면 된다는 설명. ^^; 그래도 기억력이 떨어진 건 맞으니 너무 충격은 받지 말고 '뇌 영양제'라고 생각하며 일단 기억력에 도움이 되는 약을 먹어보라고 했다. 치료도 가능하고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니 염려 마시라고. 학창시절에도 그다지 우등생이 아니었던 덕분인지, 엄마도 쿨하게 꼴지 아니면 됐지 뭐, 그나마 다행이네, 하는 반응이었다. 

처방 받은 '뇌 영양제'를 일주일간 먹어본 엄마는 확실히 기억력이 나아진 것 같다고 평했다. 흐린 날이면 아침인지 오후인지 분간도 잘 못하고, 너 어디 나간다고 했지? 똑같은 질문을 5분 안에 3번씩 하던 증세도 없어진 것 같았다. 환절기를 벗어나면서 전반적인 심신의 컨디션도 좋아졌으니 약의 도움만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닐 수도 있었다. 나 역시 불면에 시달리고 나면 시력이 떨어져 눈도 잘 안보이고 머리가 멍해져 귀도 잘 안들린다. 평소에도 안경을 빼고 있을 땐 전화 통화할 때 상대 목소리가 잘 안들리는 걸 뭐. ㅠ.ㅠ 

문제는 그 '뇌영양제'만 먹으면 엄마가 악몽을 꾼다는 것이었다. 아침 식후와 자기전에 한 알씩 드시는데; 그 약을 먹고 나선 눈만 감으면 무서운 것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심지어 하루는 꿈속에서 괴물(=이불)과 싸우다 침대에서 떨어지셨다. 젠장!

그간 엄마도 나도 바닥애호가라 침대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침대에 누우면 허공에 붕 뜬 느낌? 호텔처럼 집보다 천장이 높은 곳이라면 몰라도.. 특히 한여름엔 서늘한 바닥에 보송하고 푹신한 요를 깔고 자야 숙면을 취할 수 있는데! 암튼 그러나 엄마는 팔다리 근력이 떨어지면서 바닥에 앉거나 누웠다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어려워졌다. 더욱이 자다말고 선잠이 깬 상태에서 화장실에 가려면 젊은 사람들도 휘청거리기 일쑤인데;; 노년의 엄마야 오죽하랴. 컨디션 안 좋을 때 자다가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다 몇번 바닥에 나동그라져 멀리서 내 이름을 외쳐 불렀다는데, 밤샘 작업 중이라면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가겠지만 나도 쿨쿨 자고 있을 때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있나. 

해서 결국 엄마 방에 침대를 놓아드리고는 혹시나 떨어질까, 평소 쓰시던 라텍스 매트리스를 옆에 깔아놓았었다. 노인일수록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가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다리만 내려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쉬운 침대 생활이 필수라지만... 노인의 낙상 문제는 어휴.. 정말 흔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1달간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지켜본 결과... 엄마는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워낙에도 잠버릇이 험하고 몸부림을 치며 돌아다니고 주무시는 편인데 침대에서 자면 구석본능이 생겨나 벽에 기대 잔다던데 정말인가? 신기해하며 드디어 두툼한 매트리스를 내방으로 치웠다. 

그러나... ㅠ.ㅠ 매트리스를 치운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엄마는 아침 나절에 침대에서 TV를 보며 노닥거리다 깜박 잠이 들어 결국 낙상을 하셨고 (내가 그렇게 누워서 TV보지 말라고 일렀거늘!!! 으으으) 2번 갈비뼈가 골절됐다. 갈비뼈는 부러져도 깁스를 하지 않는다. 그냥 생활을 조심하며 뼈가 붙기를 2달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침대 낙상사고가 4월 말의 일이었는데... 가뜩이나 충격을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그놈의 '뇌 영양제' 후유증(아마도)으로 꿈결에 괴물과 싸우느라 엄마가 보름 만에 침대에서 또 떨어진 거다! 어휴....

당연히 내 임의로 뇌 영양제는 그만 드시라고 했다. 대신에 온종일 누워 있지 마시고 제발 운동 좀 하시라고! 노인들은 근육에 힘이 워낙 금방 빠져서, 며칠만 누워 있어도 다리가 홀쭉해진다. 그러니 걷는 게 더 힘들어질밖에... 그래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야하는 집에서 밖으로 나서는 걸 엄마가 더 힘들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서 재건축을 하든 이사를 가든 엄마가 더 연로해지기 전에 환경을 바꾸고 싶은 마음인데, 현실이 안 따라주니 괴로울 따름이다. 

우습게도 (웃픈건가?)... 동전의 양면처럼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에도 장점은 있다. 매일매일 보는 일일 드라마를 비롯해 몇몇 예능 프로그램도 처음 보듯 새로워 재미가 있으시단다. 분명 어제, 혹은 며칠 전에 본 드라마/예능프로그램인데 오늘 또 재방송을 보고 계신 게 답답해서 (물론 나도 단지 재미가 있단 이유로, 놓친 장면 보려고 재시청하는 경우가 있으면서!) 물어보면, 아냐, 이건 안 본 거야, 그러신다. 하긴 드라마를 보면서 휴대폰도 들여다보고 나한테 이것저것 참견도 하고 딴 생각도 하노라면 당연히 놓친 장면이 많겠지. ㅠ.ㅠ

해서 벌써 한달이 지나 드디어 내일 다시 정신의학과 정기검진일이다. 뇌 영양제를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하면 되려나? 그건 또 다시 후유증이 없을까, 아무래도 뇌 호르몬에 관여하는 약물일테니 조심스럽고 걱정이 많다. 평소 드시던 약끼리도 돌연 충돌을 일으켜 이상 증세를 경험한 적도 있는 분이라 더더욱.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그냥 서서히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여야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노화는 질병이고 장애 같다. 나부터도 기억력이 무너진 건 물론이고 아침마다 일어나면 손마디가 뻣뻣한 걸 어쩌라고. ㅠ.ㅠ 벌써 이런데 무려 100세시대라고? 그건 너무도 무시무시한 저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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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부실

투덜일기 2018. 4. 24. 00:00

어렸을 때부터 평생 한번도 키큰 축에 들어 본 적이 없다. 국민학교 들어갔을 땐 아마 전교에서 제일 작았다는 것도 같다. 암튼 체구는 늘 작아도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물리적인 힘이 약하고 체력이 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겠지만, 덩치 큰 남자애들이 괜히 힘으로 괴롭히려 들면 울먹거리면서도 입싸움으로 맞서며 지지 않으려고 했다. 남동생들만 둘 있어도 꽤 오래도록 내가 녀석들을 보호(?)하거나 챙겨주는 입장이었지, 내가 보살핌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집에 바퀴벌레나 돈벌레가 나타나도 두놈은 서로 니가 잡으라고 떠밀기만 할 뿐 재빠르게 행동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꽥~ 비명을 지르며 내가 살생에 나서는 식이었다. 또 벌레가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그냥 두고는 마음을 놓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으니 어쩌겠나. 

힘이 없어 보여서, 혹은 내가 여자라서 '열외'되는 특권도 때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려해주는 척 하고는 뭔가 다른 걸 요구하기 십상이란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하던 시절, 커피 심부름을 하느니 나는 차라리 생수통을 낑낑대며 들어 꽂는다든지, 복사용지 박스 옮기는 쪽을 택했다. 힘 쓰는 일은 우리가 하잖아, 그러니깐 커피 정도는 타줄 수 있지 않겠냐, 책상에 걸레질 좀 죄다 해줘라는 놈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 사전에 '연약한 척'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음료수병이나 캔을 못 따서 남자들에게 내밀며 "오빠, 이것 좀 따주세요" 따위의 말을 하는 여자들까지 은근히 째려보며 싫어했다. 우웩, 웬 내숭이냐! 쌀자루도 번쩍번쩍 들 수 있게 생겨가지고...


그런데 이제야 드디어 편협했던 나의 태도와 편견을 반성하고 있다. 음료수 병, 커피캔, 맥주캔을 힘 없어서 못 따겠다며 남자들 힘을 빌리던 여자들 중엔 정말로 손가락이나 손에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그 비율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니 자긴 손톱이 잘 부러진다면서 커피 캔 따는 걸 꼭 날 시키던 친구도 사실 있었다. 하기야 약한 척 내숭이 아니라, 힘자랑을 칭찬 받고 싶어 안달하는 단순한 남자들에게 옛다 일감을 안겨주는 현명한 처사였을 수도 있겠다. 힘에 부쳐도 난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야! 그러면서 끙끙 얼굴 시뻘게져가며 병뚜껑 돌려따는 내가 어쩌면 더 편협한 인간이었을 수도 있으려나.

하여간에 요즘 나는 병뚜껑 열기 분야에서 자신감과 독립심이 아주 바닥이다. 의사의 권고대로 요샌 한달 넘게 정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이런저런 호르몬과 염증수치가 정상으로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영 효과가 더딘 모양이다. 걸핏하면 손목과 팔이 아파서 ㅠ.ㅠ 무거운 걸 들기도, 양념병을 열기도 힘에 부친다. 바삐 끼니 준비할 때, 무겁고 뜨거운 큰 냄비도 막 한 손으로 번쩍번쩍 들던 순간의 괴력은... 더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에효.

가장 난적은 쨈병과 각종 소스 병이다. 진공상태가 되었거나 냉장고에 들어 있다가 나온 놈들은 특히 더! 다리 사이에 병을 끼우고 온 힘을 다해 낑낑대다가 결국엔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돌려야 병이 열린다. 후다닥후다닥 바쁘게 요리하다 말고 양손에 고무장갑 끼려면... 아오 짜증나.

나름 꽃무늬;;라고 오려보았다 ㅋ


마침 고무장갑 한쪽이 구멍났길래 묘안이다 싶어 손목 부분을 동그랗게 오려두었다. 작년에 캐나다에 갔을 때였나, 기념품숍에서 병뚜껑 열기 전용 실리콘 덮개를 본 적이 있었다. 꽃무늬가 예쁘게 들어간 녀석이었는데 가격보다는 너무 두꺼워서 사오지 않았다. 쨈병, 소스병 여는데는 쓸모가 있지만 작은 주스병, 소주병 뚜껑을 덮어 열기엔 너무 두툼했기 때문이다. 근데 주방용 고무장갑 두께면 완전 딱이지 않겠나. 요리하다 말고 귀찮게 손 닦고 말려 고무장갑 낄 필요도 없고. ㅎㅎ

이렇게 손바닥만하게 나름 꽃모양으로 오린 고무장갑 조각을 싱크대 걸이 한 구석에 걸쳐놓고 꽤나 요긴하게 써먹었다. 우리집에서 한달 지내다 간 (주로 설거지를 담당한) 친구에게 자랑도 했다. "내 아이디어 죽이지 않냐? 미국이랑 캐나다에선 얼핏 여러 가게에서 본 거 같은데, 한국에선 이런 거 안파나봐. 본 적 없어.." 라고.  

재수없게도 엄청 알뜰하고 지혜로운 주부인 척 했던 거다. 헌데 출국 전 다이소에서 온갖 편리한 살림도구를 장만해가겠다고 나선 친구가 주방도구 코너에서 예리한 눈썰미로 발견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것이다!



정확한 이름은 까먹었는데;; 병뚜껑 따개 도우미였던가... ㅋㅋㅋ 당연히 마데인차이나인 이 물건은 단돈 1000원에 이런 게 3장이나 들어있었다.

친구가 고무장갑 오린 거 얼른 버리고 이거 사쓰라며 쇼핑 카트에 넣어주었는데;;; 물론 나는 저 고무장갑 오린 것도 못 버리고 병뚜껑 열 일이 있을 때마다 두 개를 비교해가며 사용한다. ^___^

하긴 뭐 구멍뚤린 고무장갑 손목부분 얅게 잘라서 고무밴드 대신 사용하라는 살림 꿀팁도 본 적 있다. 노란 고무줄보다 튼튼해서 훨씬 요긴하다면서. 

다이소표 병뚜껑 도우미 3장과 저 분홍 고무장갑 조각을 함께 쓰면 앞으로 10년은 쓰지 않을까 싶은데;; 웬 궁색을 떠나 싶어 확 버릴까 하다가도 왠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놔두고 있다. 뭐든 잘 못 버리는 나의 지병 탓도 있겠고.

아무려나 병뚜껑을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매번 아메바스럽게 부실한 손목 상태를 까먹고 일단 무심히 힘을 써보고는 아야! 윽! 통증에 놀란 다음에야 비로소 이 고마운 고무재질 물건들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어떻게 손이 아프단 걸 매번 까먹을 수가 있는지 원. ㅠ.ㅠ 아마도 나 말고 집안에 힘쓸 사람이 더 있다면 나도 당연히 얼른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예전에 냉장고에 넣어둔 장아찌나 피클 병을 열 때..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온힘을 다 주어도 잘 안 열려 끙끙대고 있거나, 도움을 청하면 아버지가 다가와 이그... 진작에 아빠를 시키지 그랬니. 하셨더랬다. 당신도 손이 작은 편이라 단숨에는 해결 못하고 힘깨나 쓰신 후에 병이 열리면, 별 것 아닌 일에도 퍽 으쓱으쓱 아버지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그게 웃겨서 나도 일부러 거들었었다. 어이구, 울 아빠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몰라... 

집안에 큰 힘 써줄 남자가 없어도, 손목이 부질해져서 소주병 돌려따는 것도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지경이 되었어도 물론 모녀는 잘 살고 있다. 어떻게든 상황이 닥치면 다 살게 마련이다. 날이 궂은 날에는 팔꿈치까지 저릿저릿해서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도 마우스를 클릭해대는 것도 아예 힘겨운 날이 있다. 으음 그럼 손목받침대랑... 뭔가 또 다른 해결 방법이 있겠지? ㅠ.ㅠ

몸도 총체적으로 부실한데;; 밥벌이를 하지 않고도 남은 일생을 편히 사는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벼락을 맞는 것 = 복권 당첨밖에 없는 것 같아서 얼마 전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본 복권 5장은 천원짜리 1장 빼고 모두 꽝이었다. 그럼 그렇지 싶으면서도 또 사볼까 하는 마음이 팔랑팔랑 자꾸 드는 건 변덕스런 봄날씨 탓일까. 에잇, 이래저래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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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자수 시작

놀잇감 2018. 1. 30. 01:00

내가 충동적으로 자수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공주였던가 어느 약선밥상 밥집에서 수제 자수브로치를 팔고 있었는데, 진짜 간단한 꽃 수놓아놓고 막 만원 만오천원...(비싸다면서 결국 샀다 ㅋㅋ) +_+ 인건비를 감안해야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텐데!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만들어보면 그냥 사는 게 차라리 싸다는 걸 절감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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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나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요즘 이 나라를 들끓게 했던 괴물들의 행동도 그러했고 바다 건너 들려오는 테러나 총격 사건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닭그네 순siri 사건을 보며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했지만, 대체 그들의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는 궁금함도 분노 못지 않았을 것 같다. 당연히 심리학자나 정신분석가들에게 그들의 정신 상태를 분석 진단하는 의뢰도 많았던 모양인데, sns에 올라온 어느 전문가의 글귀가 기억난다. 일단 그들의 정신과적인 문제를 알아보려는 게 불필요한 호기심이라고 말이다. 법률을 위반했으니 법대로 심판하여 탄핵하고 끌어내리면 된다는 논지였던 것 같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훗날 누구든 연구자나 언론인이 꼭 나타나서--책 팔아먹을 욕심에 헛소리 지껄이는 이들 말고--그들을 제대로 연구해주거나, 최측근의 양심선언이라도 제대로 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인간이 되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파헤쳐, 다시는 그런 괴물이 나타나지 않도록. 그들을 '미친'X이라고 욕하는 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조울증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으로서 그렇게 느끼니깐 정말이지 동급으로 취급 안하면 좋겠다. 모든 병증엔 급이 있겠으나,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를 우울증 환자와 동등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으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수 클리볼드 지음/홍한별 옮김/반비(2016)

아이고 책 후기 하나 쓰려고 시작했는데 웬 잡설이 이리도 긴가.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사건 직후 아마도 '괴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표지의 사진 속 아이의 맑은 눈망울에서 느껴지듯 아이는 괴물이 아니었다. 곁에서 아이를 평생 지켜본 부모로서도 이젠 도저히 알수 없는 부분이 영영 묻혀버리고 말았지만 그것 하나는 확실하다. 아픈 아이였던 거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다. 그 학교 학생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 두 아이가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학교에 들어가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자살했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바로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다. 

저자는 독자들이 아들인 딜런을 용서하길 바란다거나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당부하려고 책을 쓴 게 아니다. 사고 이후 16년 세월 도저히 대답할 길 없는 의문과 고통, 눈물 속에 살았을 이 어머니는 자신도 죽고 싶다고 수없이 생각하지만 결국 주변인들의 사랑과 보살핌 덕분에, 그리고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과 빚을 갚아보겠다고 결심한다. 사고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자살예방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아들 딜런이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끊임없이 꿈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이지만 결국 콜럼바인 사고는 지은이에게 아들이 가장 불행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선택한 자살 기도였던 거다.

사건 직후 사람들은 당연히 딜런의 부모를 온갖 방법으로 비난했다. 어떻게 부모가 자식의 일을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이가 총기를 구입했고 집안에 폭탄을 숨겼었고, 지하실에서 무서운 폭력성을 드러낸 동영상까지 찍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르냐고! 길고 긴 재판으로도 판명났지만 부모들은 정말로 '몰랐다'. 문제아의 부모 뒤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은 흔한 사회적 통념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애가 괜히 비뚤어질 리가 있겠냐고. 뉴스에 간혹 나오듯 자식을 학대하거나 심신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문제 부모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란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p8-9)

위에 인용한 문장은 책 맨앞에 실린 심리학자 앤드루 솔로몬의 해설 부분이다. 대다수의 짐작과 달리 딜런의 부모는 자식들을 사랑으로 기른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딜런은 십대치고(17살이었다) 부모와 대화도 많은 편이었고, 형과도 사이가 좋았다. 나중에 발견된 딜런의 일기장에서도 부모에 대한 사랑과 믿음, 미안함이 증언된다. 그러니까 부모가 아무리 주의 깊게 지켜보며 사랑을 쏟았어도 딜런에겐 '충분하지 않았다'는 거다. 

사고로 억울하게 다 큰 자식들을 잃어버린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가해자의 엄마가 책을 쓴다고 하면 대체 뭘 잘했다고 책을 쓰냐고 비난부터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걸 짐작했기 때문인지 지은이의 태도는 시종일관 대단히 조심스럽다. 자식을 가능한 한 옹호하려는 태도보다는 부모로서 자기가 뭘 놓쳤는지, 사건의 전후 사정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된 아들의 행동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편이다. 자기 이야기를 최대한 충분히 들려주어서, 다른 부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물론 사건 기록의 재구성과 딜런이 남겨둔 흔적들 말고는 가해자 아이들이 '정말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절렀는지 말이다. 그래서 부모로서 더욱 고통스러울 테고. 어쨌든 지은이는 자기 아들이 '자살'했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 흔히들 자살이 가장 비겁한 선택이라는 말도 하지만, 의사 결정 능력이 비정상일 때 내린 선택을 본인의 굳은 의지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는 심리학자와 지은이의 의견에 나도 공감한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차라리 그 용기로 살아보라고? 자살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끝낼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용기 여부와는 상관 없지 않을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의 엄마인 저자의 고통이 느껴져서 책을 읽기도 쉽지 않았지만, 알량한 후기를 쓰는 것도 몇날 며칠 적었다 말았다 한 단락씩 참 쓰기가 어려웠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무서운 진실 앞에, 꼭 읽어보아야할 책이라는 추천사도 들어있지만... 나로선 엄청 아픈 손가락인 큰조카 J의 생각도 많이 나면서 위안도 받고 또 새로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과정이었다. 제도권 교육의 테두리를 힘들어하고 못 견뎌하며 자꾸 엇나가는 아이를 보며 '대체 왜?' 커다란 의문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부모탓을 한 적도 있고, 종종 어려서부터 너무 오냐오냐하며 애 버릇을 망친 할아버지와 고모 탓이라는 비난도 많이 들었다. 원칙이 무너져 훈육에 실패한 케이스라나. (심지어 이 말은 위탁학교 관계자에게 직접 내가 들은 말이다.)

이기적인 위안은 아이의 문제가 죄다 문제 부모 탓은 아니라는 전문가의 견해다. 어쩌면 내가 J를 망쳐놓았다는 비난과 자책에서 살짝 놓여날 수 있는 빌미가 생긴 거다. 봐라, 딜런처럼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정환경에서도 타고난 기질 탓에 우울증과 폭력 성향에 기울어질 수도 있다. 딜런에 비하면 J가 저지른 갖가지 일탈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도 충분히 사랑으로 키우지 않았나. 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은 또 다시 엄청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를 면밀히 지켜보아도 놓치는 것이 있고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니, 맙소사. 아이가 숨기려고만 들면 아무리 대화 많은 부모라도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이인 경우엔 오죽할까. 

마침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11월에 한겨레신문에 이 책에 대한 정희진씨의 칼럼이 실렸다. ^^; 옴메 기죽어 그러면서 움츠러들어 더 마무리가 괴로웠던 것 같다. 감히 쨉도 안되는 주제에 무슨.. ㅋㅋ 

"이 책은 해설(앤드루 솔로몬!), 추천사,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까지 모두 명문이다."라는 단락이 칼럼 마지막 문단의 첫 문장이다. 당연히 글을 링크해야겠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69947.html#csidx455111f6840324297cd3be3adda51b6 


최소한 모든 교육자들과 부모들이 다 읽고 생각해보아야할 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공동체 육아론과도 일맥상통하고, 제 아이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태도에도 일침을 가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추천사(조한혜정)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기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부모들이 있다. 그렇지만 모든 문제아의 부모가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는 범죄일수록 부모 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외상에 의해 촉발되었다기보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비논리에서 나온 일이다.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더욱 강력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는 아이에게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니 이런 재앙을 겪을 위험이 없다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p8-9)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병의 증상이고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징후다. 대부분의 자살은 한순간에 충동적인 결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살은 대부분 고장난 사고와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싸워오다가 마침내 그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 일어난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기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죽고 싶지는 않더라도, 죽으면 이 고통이 끝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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