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16.09.21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2
  2. 2016.06.01 빌어먹을 6
  3. 2016.04.08 올해도 벚꽃놀이... 5
  4. 2016.03.30 이 동네.. 2
  5. 2016.02.12 어떤 시어머니 10
  6. 2016.01.29 전화 여론조사 6
  7. 2016.01.25 상황 역전 2
  8. 2015.08.03 슬픔이 6
  9. 2015.06.28 영화와 현실 6
  10. 2015.06.03 이게 뭔가 4

일도 바쁜데 계속 마음이 시끄러웠다. 이도저도 아니어서 도무지 한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움. 뭔가 여기다 푸념이라도 적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남부끄러운 제 얼굴에 침뱉기 같아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 옛날 가증스럽게 일기장에 원하는 바를 적어 책상에 올려두고 '일부러' 발견되는 작전을 쓴 것처럼 보이면 곤란하다 싶기도 하고. 

암튼 일주일 가까이 곰삭이다보니 드디어 얼추 정리가 된 것 같다. 그간 내가 믿어왔던 건 혼자만의 판타지였다는 걸로 결론을 내리니 갑자기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서로 최선을 다했으나, 태생적인 한계 탓에 진심이 좀처럼 가 닿지 않는 관계도 있음을 인정하면 되는 거였다. 존재 자체가 부담인 관계에선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틀어지고 괜한 오해를 낳는 것을.... 다들 일정 거리를 두고 사는 관계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뭐 잘났다고 그 거리를 좁히려 들었을까나. 바보처럼... 나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이미 그렇게 스스럼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더랬다. 결국 다 내 잘못이다. 

또 한번 나에게 대실망. 이번에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하는 쓸데없는 욕망, 그리고 스스로를 너무 큰그릇으로 착각하는 게 나의 패착이었다. ^^; 생각과 실천을 일치시키지 못한 것도 큰 문제였고...  그래서 여기서 다 놓아버리기로 했다. 안되는 걸 붙들고 미련떠는 건 그만 하기로.  

어제부터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1절 가사 때문이다. 구구절절 내마음일세.. ㅎㅎㅎ


김광진, 편지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결국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지닌 모든 관계를 담담하게 정리하고 위로하기에 정말 딱인 노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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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투덜일기 2016. 6. 1. 15:35


일년내내 책 한권 읽지 않으면서 매년 노벨문학상을 기대하는 한국인들을 비아냥거리는 기사가 언젠가 뉴욕타임스에 실렸다고 했던가.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다. 스마트폰과 그밖의 쉽고 재미난 오락거리 탓에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건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해도, 책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한국사람들의 비율은 절망스러울 정도다. 특히 나처럼 책에 기대어 밥벌이를 해야하는 사람에겐 말이다.


어쨌든 요즘들어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맨부커상>에 대해서 내게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엊그제는 70대이신 어느 선배님이 조용히 나를 따로 불러 물으셨다. 맨부커상이 그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상인가? 근데 왜 난 금시초문이지? 내가 무식한 거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그렇게 훌륭한 작품이냐... 너는 읽어봤냐... ㅋㅋ 


일단 나 역시 세계 3대 문학상이란 게 있는 줄도 몰랐다고 대답했다. 노벨상이랑 맨부커랑 또 뭐라더라...? 

물론 맨부커상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수상작을 더러 읽어보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출판계에 꽤나 몸을 담고 있었고 외국소설도 꾸준히 읽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단언컨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7,80퍼센트는 이번에 한강의 책이 후보작에 올라 연일 뉴스에 언급되기 전에는, 아니 후보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며칠 언급되다 수상에 실패했다면 또 다시 그런 게 있는지조차 관심없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에 수상을 했고, 김연아, 박태환 때처럼 개인의 성취를 마치 국가의 쾌거인양 '한국이 해냈다'는 식으로 언론에 도배질을 해댔기 때문에 전 국민이 관심을 쏟아 열흘만엔가 50만부가 팔렸겠지. 


어떤 책이든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책 구매로 이어졌다면 무조건 반길 일이다. 일시적인 냄비현상이든 아니든, 소비 둔화의 최일선에 놓여 간당간당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듯한 출판계에서 한두권이라도 집중 조명을 받아 책이 팔린다는 게 어디냐! 한강의 소설이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서, 군중심리와 호기심에 휩쓸려 덜컥 책을 산 사람들이 진짜로 완독을 하거나 애서가가 되리라는 보장은 결코 없지만, 선진국 따라하기 좋아하는 근성이 이번에도 발휘되어 노상 자기개발서나 힐링용 에세이만 읽어대던 사람들이 '문학'을 새삼 인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째뜬 나 역시 한강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고(공모전 출신 한국 소설가와 주류 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은 잘 안없어진다. ㅠ.ㅠ <소년이 온다>는 출간됐을 때 서점에서 좀 넘겨보다 말았다.) 맨부커상은 오르한 파묵, 줄리언 반스 같은 작가가 탔었는데(<내이름은 빨강>,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같은 책 들어보셨세요?--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한 것 같다고 대답해 노년의 선배님을 안심시켜드렸다. 째뜬 그분은 워낙에도 계속 공부에 힘쓰며 더러 서점에 가서 책도 사시는 터라, 이참에 책을 사보실 요량인듯. 쉽게 설렁설렁 읽히는 책은 아닐 거라고 미리 귀띔하며 다 읽고 어땠는지 알려주시라고 부탁했다. 상빨 받은 <채식주의자>가 50만부 팔렸다니깐 어째 나는 영 사주고 싶지가 않아서 원... +_+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에 관한 논란은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론 한국소설이든 외국소설이든 이참에 출판계가 반짝 되살아나, 마케팅비와 물류비 아까워서 다 만들어놓은 책도 묻혀놓고 눈치만 보고 있는 많은 출판사들이 다시 움직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열렬히 빌고 있다. 그래야 나도 먹고 살텐데!


눈물겹게도 5월말을 기점으로 드디어 나는 프리랜서 번역가에서 백수의 신세로 전락했다. 전업 번역가로 밥벌이를 시작한지 21년만의 일이다. ㅠ.ㅠ 중간에 용감하게 대학원공부를 빌미로 일을 쉬었을 때에도(2000년), 2013년에 미친 척 자체 안식년을 결정했을 때에도 놀랍게도 번역 일 의뢰는 거의 끊이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건방지게 일을 쉬어야하는 사정을 이야기하면, 계약기한을 넉넉하게 주겠다고 방학 때 맞춰 일을 해달라는 곳도 있었고, 안식년 운운했을 땐 '이러시면 안된다!'고 설득해 6개월만에 휴식을 접게 만드는 출판사도 있었다. 내 게으름 때문에 따박따박 일을 못넘긴 탓도 있지만, 길게는 1년, 짧게도 6개월치 계약은 늘 밑바닥에 <깔아놓고> 일을 해왔던 것 같은데.... 그런데.... 작년 말부터 정말이지 새로운 번역의뢰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어떻게 작업 시간 되느냐고 묻는 전화나 이메일도 한 통 없는지!!? ㅠ.ㅠ


해서 작년에 미리 계약해두었던 올 1/4분기 작업건을 끝으로 원숭이는 완전히 줄을 놓치고야 말았다. 땅바닥에 아프게 떨어져서 뒹굴뒹굴... 아.. 정말 슬프다.  (물론 업계 일부 친구들은 내가 그간 계속 일이 끊기지 않았던 게 놀라운 미스터리라고 이야기한다. 같이 번역 시작했다가 접은 이들도 많으니깐)


요즘 백수라고, 일 없어서 한가하다고 말하면, 이 참에 여행도 다니고, 자주 만나 같이 놀자는 친구들도 있지만 몇년째 5월마다 종합소득세 신고하며 푹푹 한숨을 쉬었던 저연봉 프리랜서에겐 모든 게 사치 같다. 사정 모르는 어느 후배가, 선배님은 이제 일 안하고 사셔도 되지 않아요? 라고 물었을 때 어찌나 속이 쓰리던지! 젊어서도 그랬고 얼마전까지도 나는 나 한 사람쯤은 평생 부양하고 살 능력이 되는 줄 알았었다. 헌데 이젠 그럴 자신감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과연 이 직업으로 계속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뀌어가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하나? 지금 이 나이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ㅠ.ㅠ 일단 아르바이트 거리라도 좀 찾아야하나? 

 

누군가는 니가 아직 배가 덜 고팠다면서, 여기저기 연줄을 동원해 먼저 일 좀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한단다. 몸값도 좀 낮추고...  아아악~! 


빌어먹을.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민으로 머리가 아프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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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부터 이 동네 벚꽃 축제는 내게 부채감을 안겨주는 은근한 압력인 관계로 올해도 효녀 코스프레에 나섰다. 공식 축제가 내일부터인줄 알았던 건 나의 착각.
마침 오늘부터 시작이라 오전부터 사람들이 득시글득시글... 그늘 벤치 차지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도 꽃그늘에서 김밥먹고 축하공연 리허설 잠깐 본 걸로 만족.
한들한들 봄바람에 벌써 꽃비가 하염없이 날리고 있었다. 그날 밤처럼 ㅠㅠ

​이곳의 명물 수양벚꽃은 해마다 점점 볼품없어지는 것 같다. 왕비마마 말씀으론 나무가 늙어서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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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투덜일기 2016. 3. 30. 16:58

언덕배기에 주로 엄청 오래된 집들과 새로 지은 빌라들이 혼재되어 있는 이 동네의 특징은 '노인들'이 많이 산다는 점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이름을 새긴 노란색 봉고차들이 더러 다니긴 하는데, 오래 전 ㅈㅁ이가 그랬듯이 아이들을  배웅하고 맞이하러 나오는 사람들은 젊은 부모가 아니라 할머니들인 경우가 대부분. 그래서 명절 때가 되면 아주 골목마다 본가에 다니러온 자식들 차들로 더더욱 미어터진다. 어떤 동네는 젊은이들이 주로 살아서 명절 때 골목이며 주차장이 텅텅 빈다던데...


얼마전부터 회춘하다시피 이것저것 열심히 활동하며 지내고 계신 우리 엄마를 비롯해 이 동네 노친네들도 상당히 바쁘게 살아가시는 것 같지만, 병마는 피할 수 없는 법. 동네 산책을 가려고 비슷한 시간에 나서면 아마도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진 노인들을 한두분 꼭 만난다. 보행 보조기나 네발 달린 지팡이를 짚고서 어렵사리 한발 한 발 걸음을 옮기며 운동에 열심이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내가 동네 산꼭대기에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한두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집앞 골목을 오가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반신불수가 되어 한쪽 몸이 대단히 불편해보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얼마나 재활을 열심히 했던지 몇달 뒤 훨씬 수월해진 걸음걸이로 걸어다니는 걸 본 적도 있고, 매일 지팡이를 짚고 집앞 벤치에 나와 있던 꼬부랑 할머니가(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거셨더랬다. 내가 간단하게 장을 봐가지고 걸어올라치면 뭐뭐 샀느냐고, 오늘 반찬 뭐 해 먹을 거냐고... 묻는다든지) 겨울 지나고 나서 통 보이질 않아 궁금해했더니 그예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오지랖 넓은 울 엄마가 빨간 조끼 할머니 왜 안 보이시느냐고 언덕너머 빌라 사람들한테 물어봤단다.) 


하여간에 작년 가을부턴 깡마른 체구에 늘 새카만 파카를 입고서 처음엔 며느리인지 딸인지 누군가의 부축을 받다가, 나중엔 홀로 지팡이에 의지해 열심히 걷는 운동을 하던 할아버지를 산책길에 자주 만났었다. 그 할아버진 아마도 매일 그 시간에 운동을 했을 테지만 나는 산책을 나가는 날도 있고 안 나가는 날도 있었으니까.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서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유독 그 할아버지를 잘 기억하는 건, 아 글쎄 중풍에서 회복도 덜 된 그 할아버지가 비틀비틀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다 말고 비스듬히 서서 꼭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었다. 아오 보기 불안해서 원! 벤치에나 앉아서 피우시던지! 그게 아니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까지 했으면 담배를 끊으셔야지 말이야!


간혹 바람이 불어 내쪽으로 날아오는 담배연기가 싫기도 했지만 남일에 괜히 부아가 났다. 일주일에 등산 3번 다니는 걸로 건강관리 한답시고 술담배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고집불통 우리 아버지도 떠오르면서... 으휴, 할아버지들이란! 


오늘은 산책이 아니고 약국에 갈 일이 있어서 잠깐 밖에 나갔는데 한쪽 옆으로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 지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던 길에서 어디선가 담배냄새가 날아왔다. 엥? 빌라나 자동차에서 누가 창문 열고 담배를 피우나? 두리번두리번거려도 잘 모르겠더니만 길 맨 끝에 와서야 담배냄새의 연유를 알게 되었다. 


늘 새카만 파카 입고서 지팡이 짚고 다니셨던 그 왜소한 할아버지가 봉고차 바로 옆에 세워둔 전동휠체어에 앉아 언덕 아래쪽 내부순환로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으음... 내가 지나가는 소리에 흘긋 돌아보시는데, 나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빨간 조끼 할머니와 달리 원래도 인사하고 그러는 사이는 아니었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더 마르고 얼굴도 새까맣고 더 쪼그라들은 것 같은 체구.... 아 담배를 끊으셔야 한다니깐요! 아니다, 그게 소소한 삶의 낙이라면 그냥 담배라도 즐기다 가시는 게 옳은 건가? 짧은 순간 혼자 괜한 생각에 속을 끓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약국에 들렀다가 10여분만에 다시 그 길로 돌아오는데... 할아버지의 전동 휠체어는 벌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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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어머니

투덜일기 2016. 2. 12. 01:28

가끔 궁금하다.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빤하고 악독한 시어머니들 에피소드는 작가가 어디선가 듣거나 경험한 실화를 바탕으로 삼은 걸까, 순전히 상상의 결과일까, 아니면 작가들 끼리끼리 눈감아주는 양심없는 베끼기(비슷한 내용이 하도 많아서;;)일까? 혹시나 아침드라마부터 시작해서 노상 그 나물에 그밥인 일일극과 주말극을 보는 시어머니들이 막장 드라마를 보고 배워서 맘에 안드는 며느리에게 드라마처럼 못된 시집살이를 따라하는 건 아닐까? 주시청자가 노년층인 드라마에서 며느리 잡는 무서운 시어머니가 반드시 나오는 이유는 거의 평생 숨죽이고 살아온 그들의 스트레스를 대리 해소해주기 때문이라는 말도 들리던데..


아무튼 현실의 인생보다 더 드라마틱한 건 없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도무지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는 상황도 어디선가는 벌어지고 있을 것도 같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굶기고 심지어 때려죽이는 세상이니 뭐...


하여간에 내 주변에서 가장 놀라운 부류로 꼽을 수 있는 시어머니가 한분 계신데, 이분은 세월이 갈수록 기력이 쇠하는 게 아니라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핍박받는 며느리 위로를 한답시고 노친네 욕을 한바가지 하다가도 그 노친네의 패악이 문득 두려워진다.  


벌써 10년 넘게 끊임없이 구박받는 며느리 입장을 전해듣고 위로하고 함께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괜스레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이젠 폭발할 지경이다. 내 막판 조언은 거의 매번 "차라리 옛날처럼 인연 끊고 맘 편히 살아!"인데... ㅠ.ㅠ 다들 알다시피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기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라는 존재가 중간에 끼어 있으니, 사실 내 조언은 조언이 아니라 그냥 막말이다. 그런데도 그냥 답답해서 내지르는 것.


J는 초등학교 동창생과 결혼했다. J는 초혼인데 반해 남자는 이혼남이었다. 아이는 없었지만 그런데도 오히려 남자네 집에서 결혼을 결사반대했다. 특히 시어머니가 문제였다. J랑 남자의 궁합을 봤는데, J의 팔자가 사나워 남편과 집안을 말아먹을 재수 없는 여자라고 했다나. +_+ 생긴 것도 불여시 같이 못나게 생긴 게 멀쩡한 자기 아들 홀렸다며 J에게 온갖 욕과 험담을 퍼붓고 헤어짐을 강요했다. 


결국 남자는 부모와 의절하고 집을 나와 J와 혼인신고 후 결혼식은 생략했다. 알콩달콩 둘이 행복하게 잘 살다가 3년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낳으면 며느리로 인정해줄 것이라 기대를 한 건지 J네 부부는 본가에 손자가 생겼음을 알렸다. 아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알려주고 싶다면서. 그러자 손자 귀한 건 알아가지고... 시어머니는 손자와 아들만 보겠다고 했었다. 며느리 노릇은 꿈도 꾸지 말라고.


그래도 착해빠진 J는 성심성의껏 도리를 다했고(주말마다 시댁에 남편과 아들을 들여보내고, 지는 집앞 카페에서 죽치고 온종일 기다렸단다, 차라리 따라가지를 말지!) 결국엔 돌잔치 무렵 며느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폭언과 간섭과 무시는 변함없었다. 내 손자의 어미이니 할 수 없이 그냥 얼굴만 봐준다는 정도였다. 명절에 J가 해간 음식들은 맛이 이상하다며 몽땅 다 쏟아버렸다고 했다. 상을 차리면, 보고 배운 게 없어서 티가 난다고 타박하는 건 부지기수. (몰상식하게 끔찍한 말만 쏟아내는 사람은 바로 그 시어머니인데!!)


암튼 매일매일 전화를 걸어서 손자 아침, 점심, 저녁 메뉴와 반찬 점검하고 영양가 없는 거 먹였다고 잔소리하고... 자기 아들 건강 안챙긴다고 혼내고, 머리를 묶고 가면 볼품없게 묶었다고 타박, 길게 풀고 가면 귀신바가지 같다고 타박... 암튼 그냥 이유없는 꼬투리 잡기가 취미인 양반이었다.


나 같으면 벌써 이혼을 하든, 시댁과 의절하든 시부모를 안보고 살것 같은데 놀랍게도 J는 온갖 핍박을 다 받아내느라 남편과도 수시로 싸우고 피가 마르면서도 계속 감내하자는 주의였다. 아 대체 왜???


암튼 두어달에 한번씩은 J가 전화로 통곡하며 내게 하소연할만한 푸닥거리를 한판씩 해주시는 J의 시어머니가 나도 정말 밉다. 그런데 작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칫하면 그 막가파 시어머니와 살림을 합쳐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왔다는 거다. J에게 너 피말라 죽는다고,  절대 안된다고 거부하라고 조언을 해주었으나, 대세는 이미 기운 듯...


그런데 여기서 더 기막힌 사실이 하나 있다. 시어머니가 같이 사는 조건으로 J에게 성형수술을 강요했다는 것! 어디 가서 며느리라고 소개하기에 볼품없고 창피한 외모라면서, 자기가 수술비용을 댈 터이니 눈과 코를 고치라고 했다나 ㅠ.ㅠ 와.. 기가 막혀서 정말.


나같으면 잘 됐다, 성형수술도 싫고 살림 합치기도 싫으니 계속 따로 살면 되겠네.. 그럴 것 같은데... 어휴.. J는 어차피 모시고 살아야할 상황이라면, 내 돈 들이는 거 아니니까 다 늙어서라도 예뻐지는 게 뭐 나쁘냐.. 수술 당장 할란다. 뭐 그러고 있다. 으허!! 


노상 매를 맞으면서도 남편을 못 떠나고 같이 살아가는 여자들의 심정과 혹시나 시어머니의 구박에 휘둘리고만 있는 J의 심리가 유사한 건 아닌가 염려스럽고, 마음에 안드는 며느리의 얼굴을 바꿔서라도 꼭 같이 살겠다는 J의 시어머니가 나는 너무 무섭다. 그런데도 나의 극단적인 의견과 조언은 도무지 들어먹히질 않으니 힘이 빠진다. 내 역할은 그저 J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고,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상황을 하소연하며 J도 내게 미안하단다. 하지만 달리 어디 속시원히 털어놓을 데도 없다고. (친정엄마한텐 자존심도 상하고 노친네 속상하실까봐 곧이곧대로 말도 못하는 인물) 아 답답해 답답해... <사랑과 전쟁>의 어느 에피소드에 며느리 외모 싫어서 성형수술 시키는 시어머니가 혹시 등장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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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여론조사

투덜일기 2016. 1. 29. 17:09

일주일에 한두번 울릴까말까 한 내 방 유선전화. 주로 텔레마케팅 아니면 보이스피싱, 그도 아니면 여론조사 전화인 걸 알기에 잘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화는 왜 안 없애는지... 인터넷이랑 결합돼서 해지는 안되는 걸거라고 확인도 없이 생각만 할 뿐이다. 아주 가끔 미국 친구가 전화를 걸기도 하니깐... 그게 핑계라면 핑계.


암튼 오늘은 오후에 걸려온 전화를 그냥 받았다. 벨소리가 시끄러워서... 총선을 앞두고, 종종 엄마네 집 전화로도 여론조사 협조요청 전화가 오는데 엄마도 나도 매번 그냥 끊곤 했다. 시간 없어요, 관심 없어요...  (일일이 질문에 대답해줄 만큼 정치에 흥미도 없고 답도 없어요..가 정답 아닐까)


암튼 그런데 오늘은 수화기 저쪽의 여론조사 요원 목소리가 너무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도 직업일텐데 참 힘들겠다. 텔레마케터가 감정노동 스트레스 1위라지..) 매몰차게 끊질 못했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화 여론조사에 따박따박 대답해주는 사람들은 노년층밖에 없어서 여론조사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둥, 죄다 보수의견밖에 안나온다는둥 하는 이야기도 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연령대별로 표본집단 수를 정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사 대상 비율을 맞추지 않을까?)

그래, 그렇다면 삐딱한 40대 여론을 대변해주마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 (만으론 아직 40대라규~ ㅋ)


첫번째 질문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것. 당연히 '매우 못하고 있다'고 대답해줬다. 이 동네 국회의원 후보의 정당별 선호도도 묻고, 지지하는 정당도 묻고, 이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가장 시급한 부분을 뭐라고 생각하느냐고도 묻고... 예전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이면 새누리당 야당이면 야당 설문조사를 의뢰한 주체가 너무도 티나게 편향적인 질문이 많던데 이번엔 어느 쪽에서 의뢰를 한 건지 질문만으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불편했던 건 마지막으로 캐묻는 개인신상!! 최종학력, 직업, 부모님 출신지 묻는 것부터 슬슬 짜증이 났는데, 이 사회에서 본인이 속한 계층을 고르라질 않나, 한달 수입 액수 범위를 고르라질 않나... 애당초 대체 내가 왜 이런 여론조사에 응하고 있는지 버럭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 건 왜 캐묻는거냐고 따지자, 불편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_-;;


작년엔가 인구표본조사에 걸린 후배가 며칠 동안 메모를 붙여놓고 찾아오는 조사원과 씨름을 한 끝에 결국 대면조사에 응하다가 너무 시시콜콜 개인신상을 파헤치길래 중간에 중단하고 내쫓아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랬더니 국가시책사업 협조에 불응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나. 그래서 더 열받아 어디 한 번 법적으로 해보라고 싸웠다더니만... 


그래, 댁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그런 여론조사 항목을 만든 이들이 잘못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최대한 협조적으로 전화통화를 마쳤다. 개인적으로 여론조사 결과따위 전혀 믿지 않는다고 생각은 하지만, 박그네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무조건 지지할 30%의 보수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사실이라고 본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무사히 넘어가는 나라이니 말이다. 그러니깐 여론조사를 안 믿는 것도 아니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나의 통화가 유의미했던 거라고 믿고 싶지만 또 딱히 그래보이지도 않는다. (아 결론이 뭐냐. ㅜ.ㅜ) 


으음 그러니깐 총선을 앞두고 술렁이는 정치판이 영 마음에 안들고, 이 나라는 지옥이고 돌파구는 안보이고 한심스럽고 그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가난한 소시민과 텔레마케터가 불쌍하다는 것 정도? 본인이 생각할 때 경제적으로 이 사회에서 상/중상/중/중하/하 가운데 고르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돌고 있다. 게으른 번역가는 수입으로 본다면 당연히 '하'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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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역전

투덜일기 2016. 1. 25. 16:51

이제는 하도 재미가 없어져서 잘 보지않는 <개그콘서트>를 어제 우연히 채널 돌리다 보게됐는데, '웰컴 투 코리아'인가 하는 코너에서 한국의 엄마들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자식이 내 옷 그거 어디 갔느냐고 찾으면, 보지도 않고 어느 서랍 몇번째 칸에 들었다고 척척 얘기해주는 엄마들의 신비로운 능력에 대해서. <응답하라 1988>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얼핏 다뤄졌었다. 엄마 없이 너무도 잘 지내던 가족들에 황망하고 섭섭해하던 엄마의 기분을 돋우려고 개정팔은 서랍을 마구 헤집어놓은 뒤 특정 옷을 찾아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한다. (빨래를 해서 잘 개어 서랍에 정리해둔 장본인이었을) 엄마 라미란 여사는 혀를 끌끌 차며 아들 방에 들어와 당연스레 그 옷을 찾아주고...


음. 서론이 길었는데 암튼 울 엄마도 옛날엔 그랬었다. 목도리나 장갑이 통 안보여 찾아 헤맬 때라든지, 계절이 바뀌고서 작년에 입었던 그 바지를 찾다가 신경질을 부리면 희한하게도 엄마는 내가 방금 찾아본 그 서랍 속에서 쏙 문제의 옷이나 물건을 찾아내주곤 했다. 이상하다? 왜 내가 찾을 땐 안보였지? 아깐 분명히 없었는데...


우린 집과 옷장이 좁아서 코트 같은 겨울옷은 봄부터 여름 내 세탁소에 맡겨두었다가 입을 때 쯤에나 찾아와서 입는 경우도 잦았는데, 막상 날이 갑자기 추워져 성질과 난리를 피우며 옷을 찾아 헤매고 있노라면 엄마가 새벽부터 세탁소에 가서 외투를 찾아다주기도 했었다. 와 울 엄마 기억력짱... 뭐 그런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들의 그런 능력은 때때로 평생 가지 않나보다. 듣자하니 어떤 엄마들은 노년에도 여전히 그런 명민한 능력을 발휘하신다는데 (실제로 울 외할머니는 팔순이 넘도록 그런 능력의 소유자였다. 사랑방 시렁에 얹어놓은 대봉시 중에서 맨 왼쪽 두개만 잘 익었으니 그 놈으로 집어오라고 안방에 앉아서도 콕 찝어서 심부름을 시키신다든지... ) 울 엄만 아니다. 


몇년 전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잘 개어 서랍에 넣어둔 옷도 종종 못찾아, 버릇처럼 "암만 찾아도 그 옷이 안나온다"며 이상하다고 나를 들복는다. 물론 옷에 발이 달려 어디로 사라졌을 리 없으니, 내가 뒤지면 반드시 나온다. 옷장에 버젓이 걸려있는 외투나 스카프도 내 눈엔 빤히 보이는데 못찾겠다고...


그뿐인가. 나이들면 혀와 입주면 근육과 신경이 무뎌져서 아이처럼 입가에 뭘 잘 묻히거나 흘린다는 이야기를 누누히 듣기는 했지만 아오 진짜로 얼마나 흘려대는지! 엄마가 외출복과 집에서 입는 옷을 구분하지 않고 입는 걸 난 아주 질색을 하는데, 그 첫번째 이유가 앞섶에 생기는 얼룩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서 입고 지내는 상의 앞섶은 깨끗한 게 하나도 없다. 뭘 흘린 걸 발견하고서 금방 초벌빨래를 하거나 빨래하기 전에 잘 문지르면 지울 수 있지만, 문제는 엄마가 언제 흘렸는지도 모르게 수많은 음식물 얼룩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 ㅠ.ㅠ


본인도 밥먹으면서 잘 흘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 휴지로 옷도 닦고 식탁보도 문지르지만 ㅋㅋㅋ 나중에 보면 식탁 아래 밥풀이며 반찬 부스러기가 즐비하다. 오늘은 바닥에 점심에 끓여먹은 우동 가락까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이젠 삼둥이처럼 전용 턱받이를 장만하거나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하시라고 구박한 적도 있다. 몇번은 실제로 식탁 앞에서 앞치마를 입힌 적도 있지만 금세 민망해졌다. 까짓거 옷을 빨면 되지... 요양병원 환자도 아니고.. -.-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잘 둔 다고 보관해둔 반지나 팔찌, 용돈 봉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면 한숨부터 푹 내쉰 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수색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물론 엄마가 찾아본 곳에서 약간만 수색 반경을 넓히면 문제의 물건은 금방 발견된다. 요샌 종종 서랍안에 멀쩡히 들어 있는 손톱깎이도 사라졌다고 찾는 판국이라(다른 물건에 조금만 가려져 있어도 못 찾으신다) 나의 짜증과 분노는 점점 심해진다. 아 대체 왜 잘 찾아보지도 않고!!


그러나 그 분노가 향하는 진짜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노화와 무기력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인 것 같다. 더는 우리 엄마가 전지전능 초능력자 같았던 슈퍼맘이 아니고 그냥 늙어가는 노인이라는 것을, 그 옛날 엄마가 우릴 보살펴주었듯이 역전된 상황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싫은 거겠지.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들이 사방에서 엄마, 엄마, 여보, 여보 불러가며 이것저것 찾아달라고 해달라고 보챘던 시절의 울 엄마 나이는 사십대였다. 내가 대학1학년 때 울엄마 나이가 겨우 45세. 지금의 나보다 한참 젊다. ㅠ.ㅠ 그러니깐 30여년이나 지난 지금의 엄마에게 그 옛날의 전능함을 기대하면 안되는데, 중년이 되어서도 도무지 철딱서니 없는 딸은 여전히 늙은 엄마의 현재 모습을 선선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정작 엄마는 이제 초연한 것도 같다. 내가 아무리 길길이 날 뛰어도, 늙으면 애가 된다잖니, 너도 늙어봐라, 어쩌겠니 이렇게 된걸... 그러면서 웃어넘기신다. 그래서 다행이지만, 이렇게 모녀의 상황이 역전된 세월이 서글픈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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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투덜일기 2015. 8. 3. 23:45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감동적으로 봤다. 영화가 끝나고서... 짬나면 내리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아오.. 다들 그랬겠지만 빙봉 때문에 막판에 울었다. ㅠ.ㅠ 눈물의 가치와 슬픔의 역할을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울 일이 많지 않다. 대놓고 널 울게 만들겠어 장담하듯이 빤하게 슬픈 영화나 현실은 어쩐지 피하고 싶고... 



캐릭터들이 다 사랑스럽지만 역시나 주인공은 슬픔이.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 터틀넥 스웨터... 패션부터 좀 슬프다. 겨울엔 내가 즐겨 입고 또 좋아하는 차림이라 더 감정이입이 돼서 슬펐나? ㅎㅎ


계속 스트레스 상황이기는 하지만 주말엔 그 정도가 극에 달했고 급기야 위경련이 일어났다. 앉아도, 누워도, 엎드려도... 어떤 자세로 있어도 뭉친 속이 괴롭고 아파서 몇시간을 식은땀 흘리며 낑낑대다가 응급실엘 가야하나 고민이 될 정도로 고생을 했다. 하지만 위경련 때문에 응급실 간 사람 따라갔던 경험에 의하면 일단 엑스레이 찍어보고서 진통제였던가 근육 이완제라던가 주사 한 대 놔주고서 의사는 스트레스 상황을 없애야 근본적으로 낫는다고 하나마나 한 소리를 했던 듯. 그래서 그냥 오후부터 무식하게 참다가... 밤중이 되어도 낫질 않으니 자꾸만 병원가자고 다그치는 엄마한테 싫다고, 아파서 말하기도 힘든데 왜 자꾸 말 시키냐고 빽 소리를 지르고는 엉엉 울었다. 어느 순간 아픈데 왜 참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던가...


엄마도 스트레스 요인을 아는 지라, 그래 실컷 울어라 쯧쯧쯧 그러고는 자리를 비켜주셨다. 한참을 꺼이꺼이 울다보면 원래 좀 스스로 웃긴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울다가 웃다가 또 다시 아파서 울다가... 그러고 났더니 꽉 뭉쳐서 꼬여있던 위가 놀랐는지 좀 풀리는 게 느껴졌고 서서히 아픔도 잦아들었다. 휴우... 뻘개진 얼굴 식히느라  찬물로 어푸어푸 세수를 하다가, 슬픔이가 나를 살렸네,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머릿속에서 기쁨이랑 슬픔이랑 서로 껴안고 있을 것 같은 느낌? ㅎㅎㅎ 아직도 밥만 먹으면 위가 뭉치는 느낌이라 좀 두렵지만, 슬픔이를 중심으로 애들이 다 알아서 잘 달래주겠지.. 그러는 중이다. 그리하여 결론은 디즈니 픽사의 위대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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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현실

투덜일기 2015. 6. 28. 22:08

줄리엣 비노쉬와 조니 뎁이 나왔던 영화 <초콜릿>. 찾아보니 2000년 작품. 벌써 15년이 지났다. 아이고 세월무상. 영화관에 가서도 봤지만 이후 케이블에서도 가끔 해줘서 몇번 더 본 적이 있다. 식탐녀답게 '음식'이 나오는 영화는 재미가 있든 없든 일단 넋놓고 보는 편이라, <초콜릿>은 아마도 조니 뎁에 대한 팬심으로 보러갔다가 초콜릿 열망까지 부풀리게 됐던 것 같다.


아무튼 책이든 영화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혹은 기분에 따라서 나이에 따라서 감상 포인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맨 처음 볼 땐 아마도 조니 뎁한테 매혹됐겠고... 이어 줄리엣 비노쉬가 만든 초콜릿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졌을 법한데... 나중엔 노년의 엄마 때문인지 주디 덴치 이야기가 오래 남았었다. 


영화에서 주디 덴치는 어떤 이유인지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손자를 거의 만날 일 없는 당뇨병환자 할머니다. 줄리엣 비노쉬가 마법의 초콜릿으로 꽉 막힌 마을 주민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영화의 주요 줄거리인데... 주디 덴치는 줄리엣 비노쉬 덕분에 손자와 화해하고, 초콜릿이 죄다 들어가는 음식으로 파티를 연 자리에서 금지된 음식들을 마음껏 먹고는 그날밤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금지된 음식인 달콤쌉쌀한 초콜릿을 마음껏 먹고 죽다니... 영화를 보면서는 강렬한 백합 향에 질식해서 숨을 거두는 방법 만큼이나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질병 때문에 자기가 너무도 좋아하는 음식이나 행동을 못하게 되는 불행과 죽음의 위협이 뒤따르는 소소한 행복 가운데서 양자택일을 해야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한 건강 쪽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게 이성적, 합리적이기도 하고. 비록 구차한 인생이라고 한탄은 하겠지만서도.


근데 막상 현실에서 용감무쌍하게 죽음의 위협이 뒤따르는 소소한 행복을 선택한 사람들을 보면,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버럭 화가 난다. 


사례1. 당뇨병 환자이신 지인의 아버지. 혈당조절용 먹는 약 단계를 넘어서 매일 인슐린 주사기를 배에 푹푹 꽂으셔야 하는 단계로 한 차례 발가락 절제수술까지 받으셨다. 당연히 식사요법이 매우 중요하고,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는 절대 금물이다. 하지만 자식들이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도, 간식으로 좋아하는 단팥방을 한꺼번에 두세 개씩 드신단다. 어차피 인슐린 맞을 건데 뭐 어때! 이러면서... ㅠ.ㅠ 혈당조절이 잘 안되면 말초혈관이 또 막혀서 발가락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어쩌시려고... 아오...


사례2. 과일광이신 우리 엄마. 과일에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질이 많이 들어 건강식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과당 때문에 건강한 사람도 과일을 많이 먹는 건 별로 좋지 못하단다. 가령, 건강검진 받았을 때 나더러도 과일은 하루 사과 반개 정도만 먹으라고 했었다. 하물며 당뇨병환자인 우리 엄마야 오죽하랴! 근데 삼시세끼 후식으로 과일을 골고루 한개씩 후딱후딱 해치우셔야 직성이 풀리는 건 도무지 고쳐지는 습관이 아니다. (그나마도 자제해서 하루 세번 과일 한알씩이지, 맘껏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참외 한 광주리도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왕비마마의 주장.) 

헌데 요번에 대장내시경을 하면서 용종 4개를 떼어냈고, 이틀간 죽을 먹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과일도 금지. 헌데 이 노친네 내시경 사흘 전부터 과일을 금지당한 관계로(실은 너무 괴로워하시길래 내가 사과랑 토마토 갈아드렸단 말이다!) 이틀을 더 과일을 굶으려니 죽을맛이었나보다. 아침 댓바람부터 자고 있는 딸을 깨워 과일 먹으면 안되느냐고 성화. 단칼에 안된다고 잘랐는데, 알고보니 벌써 천도복숭아 한개 잡수셨다고. +_+ 정 드시고 싶으면 갈아드린다니깐 아 놔;;;

용종 제거하고 난 상처에 클립으로 찝어놔서 자극적이고 거친 음식 드시지 말라는 건데... 으으으...


사례3. 류마티스 환자 작은아버지. 류마티스 치료약이 워낙 독해서 간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꽤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래서 간 수치가 높아졌다고... 그러니 조심해야한다고... 하지만 '똥고집'은 집안 내력인듯, 힘든 일은 좀 쉬셔야한다, 술은 절대 안된다...고 주변에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완전 무시. 그러더니 이 양반 결국 얼마 전 간성혼수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기야 등산으로 다져진 건강이라 자신하며 술담배 매일 즐기던 울 아버지도 큰소리 치다가 졸지에 가셨으니 그 피가 어디 가랴)  병명은 알코올성 간경화. 아... 기가 막히다 정말. 류마티스 약만도 문젠데 거기다 술까지. 60대 남자들의 무대뽀 정신은 정녕 아무도 못말리는 것인가.


그깟 과일 하루만 더 참지 왜 식탐을 못 버리느냐는 잔소리에 뭐 어때,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라며 '아몰랑 화법'을 시전하신 엄마한테 버럭버럭 한참 화를 내고는 독설로 마무리를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니깐!' 나는 괜찮겠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 요행을 바라다가 큰 코 다친다는 것, 후회할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사람들은 왜 잘 모를까. 물론 나도 큰소리칠 입장이 아님을 안다. 남들 잘 때 자야한다고, 모든 사람들의 몸에 돌아다니는 암 세포를 죽이는 건강한 호르몬은 밤에 자야 나온다고, 스트레스와 화는 암세포를 키우는 자양분이라고... 다 알면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걸 뭐. 그러니깐 반성한다는 얘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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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를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최근엔 본 게 없고, 작금의 현실에 딱 맞는 영화구나 생각난 건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아웃브레이크>다. 찾아보니 95년작. 무려 20년이나 된 영화라는 얘기다. 나 같은 중년 말고는 다들 존재조차 모르는 영화일 것 같다. 암튼 그 영화를 나는 에볼라 바이러스 얘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찾아보니 모타바 바이러스라는 것도 같다.  에볼라든 모타바든, 제3세계에서 생겨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미국에 전해져 떼죽음을 일으키는 이야기인데 그 전파 경로로 북한의 배가 등장한다. 할리우드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묘사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20년전 이 영화에서는 바이러스의 숙주였던 아프리카 원숭이를 밀수해 동물원에 팔아먹는 비위생적인 배와 선원의 국적이 북한이었다. 위생이나 방역에 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무지와 더러움과 응징의 대상으로 나오는 영화속 북한 선원들이 그 옛날에도 몹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포스팅 후 북한 배와 선원이 아니고 그냥 한국인이었다는 제보 입수. 내 기억이 틀린 것 같다. 맞다.. 북한 배가 어떻게 미국 항구에 정박을 한다고 나 원참;;;)  


세월이 흘러 20년 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사들은 한국이 주요 시장이라면서 다른 세계 주요도시보다 영화개봉을 먼저 하기도 하고, 그들이 서울을 배경으로 영화촬영을 한다고 그러면 유례없이 정부까지 나서서 교통을 통제해주고 기꺼이 장소를 '무료' 제공하지만 정작 영화에 등장하는 서울과 한국의 모습은 듣자하니 별로 매력적이지도 우호적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국가 홍보에 신경을 쓴다해도 대다수 외국인들에게 '코리아'는 '사우스'인지 '노스'인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뭉뚱그려지기 십상이다. 기껏해야 전쟁에 준하는 심각한 군사대치 상황 국가로만 알고 있지 않을까? 평창올림픽도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그렇게 유치하려고 애썼지만 '평양'이랑 알파벳 철자가 너무 비슷해서 선수들이 죄다 평창 대신 평양으로 날아가 북한에 억류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지리에 젬병인 나도 한반도에서 정확히 어디 붙어있는지 모르는 평창보다야 '평양'이 외국인들에게도 워낙 더 유명할 것 같다. 최소한 북한의 수도인걸.  


째뜬 무능력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 국가와 국민들의 후진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는 이번 메르스 상황을 보며, 조만간 또 재미난 한국 배경 할리우드 시나리오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개인 문자와 카톡으로는 어디선가 하루에도 몇번씩 메르스 환자가 접촉했다는 병원 명단과 예방법이 날아오고, 심지어 1번부터 30번까지(?? 기막혀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_-;) 확진 판정 환자들 명단이라면서 그들의 신상명세까지 떠도는데 -- 병원 관계자로부터 받아 전한다는둥, 담당 공무원이 최측근 지인들에게만 공개한 거라는 둥 -- 정부는 제대로 사태파악도 못한 채 우왕좌왕, 그러면서 문제의 병원 명단을 공개할 의미는 없다고 계속 한심스럽게 눙치고... 유언비어라면서 퍼뜨린 사람이나 잡아들이려 하고...  자가격리 대상이라는 사람들은 정부에서 관리랍시고 한다는 게 하루 두 번 전화로 위치 확인하는 게 전부란다. 그러니 일반인, 의료진 할 것 없이 암 생각없이 골프치러 지방 가고, 환자들 진료하고... 하하하.


어제 끝난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제도가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나서서 약자를 감싸줄 수밖에 없다는 봄이 대사가 인상 깊었는데, 이 나라는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도 제도도 아무런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개개인이 각자 제 살길을 찾아보거나 그냥 무기력하게 죽어나가야한다는 얘기다. 물론 개인이 노력해서 정말로 각자 제 살 길을 찾을 수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함정. 암담한 나라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희망이 없는 곳이란 걸 어쩜 이렇게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사건이 어떻게 이렇게도 자주 생겨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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