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살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뭐든 예쁘면 혹하는 본능을 버릴 수가 없다. 자연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아름다운 대상에 더 끌리는 걸 어쩌란 말이냐. 암튼 예쁘면 다 용서되는 세상이 불만이면서도 나 역시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ㅎㅎ

심지어는 병원과 약국도 예뻐서 다니는 사람이 나였어! ㅋ 

원래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내과를 작년부터 한달에 한번씩 약 타러 다녔었다. 그런데 올초 와병으로 퇴원 후 약을 먹어도 계속 아픈 다리 통증 때문에 징징 울고 있을 때, 주말에 반찬 싸들고 왔던 막내올케가 그냥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다른 병원에라도 다시 가보자고 나를 꾸짖으며;; 주말에도 늦게까지(무려 저녁6시까지)진료하는 옆 동네 병원을 찾아 나를 처음 그곳으로 데려갔었다. 

동네 병원이야 다 똑같지 뭐;; 그런 생각이었는데 첫눈에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밤색 원목 바닥과 싱싱한 화분과 의자들이 언뜻 보면 카페 같은게 아닌가. 화려하게 꾸민 성형외과나 피부과 인테리어랑은 또 좀 다른 느낌. 의사 선생님도 조근조근 세심하고 친절했고, 간호사샘들도 꽤 여러명인데 시끄럽지 않고 다정했다. 내가 소리에 은근 민감해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 특유의 톤 높여 내지르는 목소리가 넘 싫다. 가뜩이나 통증 때문에 짜증 만빵인데 목청 높여서 이리 오시라 저리 오시라 5천원 되시겠다... 뭐 이런 말을 들으면 꽥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었다. 

작은 동네 의원엘 가보면 간호사를 많이 두지 않는데, 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함이란 걸 안다. 그러니 수납하랴 환자 안내하랴 바쁘고 어수선하고 간혹 불친절하거나 퉁명스러울 때가 있다. 근데 여긴 나이대가 골고루 분포한 간호사+직원들이 꽤 여럿이고, 환자마다 근처 약국을 안내하는 똑같은 멘트를 수십번 반복하면서도 다들 사근사근했다. 직원 복지가 괜찮은 모양이라고, 쓸데없는 생각까지 했다. 박봉에 시달리면 당연히 표정부터 찌들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작년부터 정형외과 외과 영상의학과 종류별로 동네 병원을 다니면서 나름 파악한 결론이다. 

하여간에 그 병원에서 다시 처방받은 진통소염제가 원인미상의 내 통증에 또 별 소용이 없었다면, 병원 인테리어와 친절함이 마음에 들었든 말았든 다시 갈 생각을 안했을 텐데, 우왕... 그날은 약을 먹고 그나마 몇 시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고 드디어 혜자로운 의사쌤과 약을 만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게다가 토요일 늦은 오후에 진료하는 병원과 세트로 늦게까지 여는 근처 약국은 주택가 2층집의 1층을 개조해 쓰고 있었는데, 약국 또한 예쁜 게 아닌가! 병원 의사샘과 약국 의사샘이 아마도 부부가 아닐까? 올케랑 속닥속닥 추측하며 약을 지어나왔었다. 처음 몇번은 그냥 주택을 개조한 약국 외관이 정겨운가보다 했었는데 내부에도 내 취향의 장식품이 있더라는;; 

설리랑 마이크 브릭이 있다니! ^^ (인스타그램에도 올린 적 있는 옛날 ㅂ약국 내부) 

암튼 그래서 별로 가깝진 않지만 나름 옆 동네에 있는 이 내과병원과 약국에 꼬박 2달간 다니며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먹었고 결국 통증에서 차츰 해방되었다. 당연히 이젠 감기약도, 혈압약도 이곳으로 타러 다녔는데 우잉.. 3월 말 병원과 약국은 나란히 500미터쯤 떨어진 건물로 이사를 갔다. (함께 이사한 것만 봐도 분명 둘은 부부 관계이거나 인척이 틀림없다! ㅎㅎ). 

2달 만에 처음 이사한 병원과 약국엘 가봤는데, 약국엔 아쉽게도 브릭 장식품들이 다 사라져 아쉬웠다. 2층 주택의 낮은 천장과 벽을 활용한 인테리어여서 일반 건물엔 어울리지 않았거나 놓을 곳이 없었겠지. 그래도 여전히 베이지색 원목 장식장을 둘러 주인장의 담백함과 깔끔함이 반영된 약국 인테리어였던 것 같다. 

병원도 분위기가 전과 달라져, 훨씬 더 환하고 눈부신 느낌이었다. 흰 벽때문이겠지? 키다리 의자 놓인 벽에 작은 그림 붙여 놓고 화분 올려둔 건 마음에 들고 여전히 예쁘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병원 인테리어. ^^ 뭐 물론 의사쌤과 간호사쌤들은 여전히 친절했고, 병원을 나서며 기분이 좋았다. 동굴로 드나드는 느낌이 드는 계단 벽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나? ㅎㅎ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는 걸 뿌듯하게 생각하며 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제발로 걸어서 병원엘 잘도 찾아간다. 아직도 좀 버티기 증상이 있지만 저번에도 요번에도 감기를 앓아보니, 예전처럼 그냥 며칠 버텨서는 그냥 지나가지도 않고 증상이 종합세트로 나타나 너무 힘들었다. 이 또한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어쩌겠나. 이왕 갈 병원, 예쁘고 마음에 드는 곳이라도 찾았으니 다행이라 여기련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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